문인으로 산다는 것-장세진 [군산여상 교사·문학평론가]
아무리 디지털세상이라해도
인간에게는
변해선 안될 가치가 있다
그 이름에 맞게
지켜야 할 위치가 있다
나에겐 세 가지 삶의 위치가 있다. 문인과 교사, 그리고 국회의원 동생으로 사는 것 세 가지다. 국회의원 동생으로서의 삶의 위치는 조만간 벗어나게 되었다. 형이 4월에 있을 19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나로선 퍽 홀가분해진 셈이 되었다. 당장 총선후보 난립에 대해 '깜도 안되는 것들이'란 칼럼을 발표할 수 있었다.
그것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4년 동안 나를 억눌렀던 '짐'이라면 어느새 28년째인 교사로서의 삶의 위치는 스스로 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벌써 29년째로 접어든 문인으로서의 삶의 위치도 당연히 내가 좋아 스스로 짊어진 짐이다.
교사로서의 위치는 내게 심한 갈등 내지 고통을 안겨준 적도 있다. 극단적인 예로 2년전 교장공모(내부형)에서의 일이 그것이다. 그때 나는 국회의원 동생이라 견제가 심할 것이라는 어느 심사위원으로부터 금품제공을 요구받았다. 천만 원만 내면 1차심사를 통과시켜주겠다는 것이었다.
너무도 당혹스러웠지만, 솔직히 거절하면 당할 불이익이 떠올라 고민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나 자신과의 2박 3일 갈등 끝에 내린 결론은 거절이었다. 결과는 우려했던 대로였다. 6명 지원자중 3명을 뽑는 1차심사 탈락도 모자라 나의 순위는 6위였다. 비공개로 되어 있어 청와대 탄원까지 제기하여 알게된 결과가 그랬다.
그후 이명박 정부의 '훼방'으로 내부형교장공모의 응모 기회조차 없어졌지만, 교사로서의 삶의 위치는 지키게 되었다. 노상 학생들에게 사회정의를 가르치며 올바르게 살아야 된다고 말하는, 교육관련 비판적 칼럼을 '겁대가리없이' 써대는 그 교사로서의 삶의 위치에서 추호도 흔들리지 않았다.
이제 남은 건 문인으로서의 삶의 위치이다. 문인이 특별히 잘난 사람은 아니라하더라도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가 있는 건 분명하다. 이제야 밝히지만, 나로선 문인 야유회(문학기행 따위)에 참석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 아주 오래 전 버스가 시내를 벗어나지도 않았는데, 술을 돌려가며 노래하는 걸 '당하고'나서부터 그런 모임에는 나가지 않고 있다.
내게 그것은 진짜 충격이었다. 적어도 문인들 나들이인데, 그런 식이라면 온천여행 떠나는 아줌마 부대와 뭐 다를 게 있느냐는, 뭐 그런 절망감이었다. 그런 절망감이 최근 있었던 전북문인협회장 선거때도 엄습해왔다. 명색 선거였는데, 원칙과 절차에 맞게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구설에 오른 것이다.
후보가 공약과 정견을 발표했다. 발표가 끝나자마자 임시의장이 곧바로 연단에 올라 잘못된 공약을 바로 잡는다며 목청을 높였다. 선거관리위원장은 직방 제지도 하지 않고. 세상에 그런 선거 유세장이 어디에 또 있는지……. 아니나다를까 "전북도립문학관 관장의 '완장'"(전북일보, 12.1.17), "찜찜한 '전북문화예술수장 선거'"(전북일보, 12.1.18) 같은 비판을 받아야 했다. 전주문인협회장 선거도 "귀신이 곡할 전주문협 회장선거?"(전북일보, 12.2.6)에서 보듯 매끄럽지 못하게 진행된 모양이다.
지난해 어떤 고교생 백일장에선 이런 일도 당했다. 심사위원장이 근무하는 학교의 학생들이 3명이나 상을 받아간 것이다. 글쎄, 얼마나 3명의 작품수준이 뛰어났는지 잘 모르겠지만, 얼른 이해되지 않는 심사결과였다.
나는 심사위원 요청이 와도 거절하곤 한다. 내가 심사위원장 아닌 심사위원으로만 참여해도 내 제자들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그것이 맞는 것 아닌가?
후안무치한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문인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새삼 생각해보게 된다. 생각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기기도 했다. 당장 전주문인협회장 선거의 투표권을 포기해버렸다. 새 회장들의 임원을 맡아달라는 요청도 정중히 사양했다.
아무리 시시각각 변하는 첨단의 디지털세상이라해도 인간에게는 변해선 안될 가치가 있다. 그 이름에 맞게 지켜야 할 위치가 있다. 하물며 '인간구원'을 위해 창작의 고통도 마다하지 않는 문인임에야! 과연 '문인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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