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인의 깊은 애국심 –박혜인
튀르키예에 처음 도착했을 때 길에서 무의식적으로 카메라를 들고 찍은 사진이 있다. 누가 봐도 이곳이 튀르키예 땅이라고 알려주는, 별과 초승달이 담긴 붉은 국기 월성기였다. 특별한 국경일이어서 국기를 걸어둔 것이 아니었다. 길에도, 상점에도, 심지어 자동차나 사람들이 입은 티셔츠에도 월성기가 또렷이 그려져 있었다.
집집마다 의무적으로 국기를 내걸어야 하는 규율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곳 사람들은 365일 매일같이 바깥에서 잘 보이는 위치에 국기를 걸어둔다. 국기가 더러워지거나 헤지면 깨끗하고 온전한 것으로 신속하게 교체한다. 국기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느끼면서 나는 자국을 향한 튀르키예 국민들의 자부심을 엿보았다.
튀르키예 사람들은 국기 게양만으로 애국심을 표현하지 않는다. 언행과 마음가짐, 눈빛을 통해서도 나는 국가에 대한 그들의 투철한 애정을 느낀다. 나라를 사랑하는 것은 물론, 나라를 건립한 초대 대통령 케말파샤 아타튀르크(1881~1938)에 대한 존경과 사랑도 맹목적이다. 매년 11월 10일 오전 9시 5분 무렵이 되면 나는 세상이 멈춰버린 듯한 놀라운 경험을 한다. 그날은 아타튀르크의 서거일. 거리의 월성기는 높이를 낮추고 이스탄불의 높고 큰 빌딩들 앞에는 아타튀르크의 거대한 초상화가 걸린다. 그가 사망한 9시 5분에는 “지금이야!”라고 신호를 주듯 여기저기서 자동차 경적소리가 울린다. 그러고는 모두 차에서 내려 아타튀르크의 초상화를 바라보며 묵념한다. 소음으로 가득했던 도심 한복판은 순식간에 고요해진다.
이방인인 나도 그 엄숙한 분위기에 압도당해 저절로 경건해진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평소에는 이슬람 기도 소리가 흘러나오는 확성기에서 튀르키예의 독립 행진곡이 울려 퍼진다. 그 위에 국민들의 목소리가 덧입힌다. 국경일도 아닌데 모든 추모의식이 길거리에서 자발적으로 이뤄진다. 국가와 국부에 대한 튀르키예인들의 마음이 하나로 모여 이렇게 세상을 멈추게 할 수도 있구나 하고 느끼는 날이다.
튀르키예의 인상 깊은 국경일은 4월 23일, 튀르키예의 독립기념일이자 어린이날이다. 이날은 축복의 날이라 거리에 국기가 가랜드 형태로 걸려 마치 파티장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특히 대중교통 내부에는 가랜드처럼 국기가 걸리는 것은 물론이고 지하철 안내방송이 어린이 목소리로 나온다. 어린이를 존중하고 특별히 여기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순간이다. 이날처럼 튀르키예의 행복한 국경일에는 좋은 점이 한 가지 있다. 바로 국민들에게 대중교통 이용을 무상으로 제공한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휴일인데도 도로가 오히려 평소보다 한산하다.
아타튀르크는 새싹 같은 어린이들이 튀르키예 공화국의 탄생을 상징한다며 독립기념일과 어린이날을 같은 날로 지정했다. 그는 어떻게 그 옛날, 아동인권에 관심을 갖고 중히 여겼을까. 현명한 리더의 지혜로운 정책 안에서 국민들의 애국심이 자연스럽게 싹트고 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국민들을 하나로 연결 짓게 하는 것 같다.
“용감한'이란 뜻의 튀르키예는 최근 국명을 변경한 터키의 새로운 이름이다. 터키(turky)는 영어로 칠면조란 뜻인데 겁쟁이, 패배자라는 속어로 통용되기도 한다. 이 단어는 애국심 강한 튀르키예인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용감하고 자랑스러운 투르크의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비로소 제대로 된 국명을 갖게 되어 기쁘다.
박혜인
경험한 것은 반드시 글과 그림, 사진으로 남겨야 직성이 풀리는 '기록 중독자'입니다. 하루 만보 걷기를 새롭게 실천하며 이스탄불 곳곳을 누비는 하루를 '혜비게이션'이란 제목으로 운영하는 블로그에 담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