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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수필5

무산

by 자한형 2022.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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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산(霧散)소리 / 강정숙

지금 어머님의 머릿속은 온통 안갯속이다. 자욱한 안개가 갈 길을 막고 있다. 온 종일을 출렁이며 안개 짙은 추억의 바다를 표류하고 있다. 현재의 좌표도 보이지 않는다. 삶의 방향키를 잃어버렸다. 치매이다.

갑자기 아들에게 오빠요, 외양간에 소는 메 났는기요?” 하고 묻는다. 아들은 , 매 났어요.” 한다. 이때 어머님은 외항선을 타고 바다로 나갔다가 영원히 돌아오지 못한 오빠와 어린 날 소 먹이던 시절로 가 있다.

그러다가는 알라 들은 다 어디 갔노?” 하고 손자를 찾으신다. 보고 싶은 손자들이 집으로 오면, 앞에 있어도 알아보지 못하고 기억 속의 어린 손자만 찾는다. 누워서 손주들 밥걱정에 연속 헛기침을 할 때는 어머님 밥해 놨어요.” 하면 얼굴에 안도의 빛을 띄운다.

어느 순간에는 눈 주변이 자색 빛을 띠기 시작하고 큰 소리로 싸움을 시작한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데, 눈앞에 누군가와 마주하며 욕을 하고, 입에 거품을 물고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다. 주변에 사람이 가득하다고 하신다. 갑자기 일어나 엉덩이를 끌고 온 집안을 휘젓고 다니며 당신의 물건이라고 생각되는 이불과 옷가지를 보자기에 싼다. 집으로 가야 한다며 창밖의 산더미처럼 높은 고층 아파트를 가리키면서 저 재 너머로 가면 길이 있지.” 한다.

어머님이 아들 집으로 온 지 1년이 넘었다. 지난여름 잠깐 건강이 좋아져서 시골집에 모시고 갔다. 예고 없이 떠난 집과 이별할 시간을 드리고 싶었다. 아니 평생을 살아온 집으로 날마다 가고 싶어 하셨다. 치매의 기본증상이라고 하지만 그 집에서 살아오신 기간이 70년이다.

도착하니 말없이 마루를 기어서 당신이 주무시던 방, 그 자리에 펼쳐진 이불을 걷고 들어가 한나절을 소리 없이 달게 주무셨다. 그리고 벌떡 일어나 앉으시더니 단호한 표정으로 가자!” 하셨다.

안개 낀 바닷가를 돌아 마을을 벗어 나오는데 등대에서 안개를 뒤흔드는 무산소리가 들렸다. 간절곶을 출발하여 대구까지 오는 동안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한참 동안 차 안에서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으로 어머님은 앉아 계셨다. 그런 순간이 지나고 집에 도착하니 다시 아들을 향해 오빠요.”하고 불렀다.

어쩌다 가끔 우리를 알아보실 때에 아버님이 생각나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아무 대답도 않는다. 심연의 밑바닥에 깔린 아버님과의 이별에 대해서는 말을 않는다. 눈동자에 빛을 잃고 멍하니 창밖만 바라본다. 아버님 산소 앞에서 보던 뒷모습이다.

그날도 추석을 앞두고 남편과 함께 어머님을 모시고 산소에 갔었다. 아버님 산소는 간절곶 등대가 있는 바닷가 언덕에 있다. 벌초하는 동안 어머님은 정물처럼 바다만 응시하고 앉아 있었다.

간절곶 등대 앞바다에는 커다란 암초가 있다. 산소에서 멀찍이 바라다 보이는 위치다. 아버님은 바다로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2월의 돌풍을 만나 배가 그 암초에 부딪혔다. 배가 좌초되고 선원 한 명만 살아남고 모두 실종되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른다. 지금의 산소가 있는 바닷가 언덕 아래로 시신이 밀려 나왔다. 아버님이셨다. 어머님은 그 언덕에 남편을 묻고 60여 년을 살아오셨다.

아버님을 기억하시느냐고 물으니 바다만 바라보셨다. 만나면 알아보시겠느냐고 하니 미소만 지으셨다. 어머님은 무엇을 기다리고 계신 걸까. 바다를 바라보는 어머님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당신의 가쁜 삶 속에서 뿜어내던 숨비소리를 듣고 계신 걸까. 아니면 풍랑이 치고 해무가 짙게 갈린 날, 등대에서 들려오던 무산(霧散)소리를 듣고 계신 걸까. 평생의 기다림이 전해진 듯 하늘을 닮은 어머님의 미소는 바다로 떠나보낸 그리운 사람을 담고 있었다.

어머님은 생의 어느 지점을 통과하고 계신 것일까? 또다시 안개로 혼미한 추억의 바다를 표류하고 있다. 어머님의 삶의 시간은 이미 마감되어 버린 것일까. 덤으로 기억하고 싶은 과거의 추억 속에서 살고 있다. 치매는 아들을 오빠, 할배, 아저씨로 바꾸어 부른다. 어머님은 앞이 보이지 않는 남은 기억의 안갯속에서 나아갈 방향을 알려주는 등대의 무산소리를 기다리고 계신다.

바다에 해무가 깔리면 등대의 등탑에서 무적(霧笛)을 울린다. 낮고도 우렁찬 무적은 안개 조각들을 뒤흔들며 바다로 울려 퍼진다. 그 소리를 듣고 배들은 길을 잃지 않고 항구로 돌아온다. 이른 새벽안개 사이로 들리는 그 소리는 떠나간 사람을 피안의 세계로 부르는 구원의 소리같이 들린다. 해무를 밀어내는 등대의 무산(霧散)소리가 마을을 돌아 나간다.

외출했던 남편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누구요?” 하고 어머님은 소리를 지르고 엄마~ 아들.” 하면 말의 내용은 상관없이입가에 주름을 크게 지우고 오빤기요!” 하며 반긴다.

현재를 잃어버리고 추억의 안개 바다를 표류하는 어머님은 오늘도 뿌우~”하고 고단한 삶의 안개를 걷어줄 등대에서 들려오는 무산소리를 기다리고 있다. 짙은 해무를 흩으며 바다로 퍼져가는 등대의 무산(霧散)소리는 천상에서 들려오는 구원의 소리인 듯 깊은 여운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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