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 비혼 만혼 여성을 위한 변명/ 함인희 논설위원
설이 나흘 앞이다. 명절 신드롬도 세월 따라 움직이는 듯하다. 민족의 대이동으로 인한 고속도로 정체는 고향의 부모님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난 데다, 빠른 길을 안내해주는 다양한 내비게이션 덕분에 상당 부분 해소되었다. 명절 신드롬에 시달리던 며느리들 불만도 날로 젊어지는 시어머니 세대교체(?)로 인해 점차 잦아들고 있는 느낌이다. 대신 ‘결혼 적령기’를 훌쩍 넘긴 싱글 자녀들이 명절 때 고향 찾는 일을 기피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려온 지 꽤 시간이 흘렀다. 자녀들 혼사는 어떻게 된 건지 굳이 묻지 않는 것이 은밀한 예의로 자리 잡는 분위기다.
2022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결혼해야 한다’가 50.0%,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가 43.2%, ‘하지 말아야 한다’가 3.6%로 나타났다. 결혼하지 않는 이유로는 ‘결혼 자금 부족’이 28.7%로 가장 높았고, 뒤를 이어 ‘고용상태 불안정’이 14.6%, ‘결혼 필요성 못 느낌’이 13.6%, ‘출산 및 양육 부담’이 12.8%로 집계됐다.
20대 후반~30대 중반 여성들을 만나 결혼 의지나 의향을 주제로 인터뷰를 해보면, 여성들 머릿속은 그리 간단치가 않다.(반면 비슷한 연령대 남성들 생각은 그다지 복잡하지 않다.) 대개의 여성들은 도대체 결혼할 의지가 있다는 것인지 없다는 것인지 불분명하거니와, 시간이 지나 상황이 바뀌게 되면 결혼 의지 또한 수시로 변화하기도 한다. ‘결혼 적령기’에는 인연을 만나면 하시라도 결혼할 의지가 있다는 속내를 비치다가도, 나이가 들면 은근슬쩍 비혼주의자로 마음을 굳히기도 하고, 불현듯 마흔 살 넘어 웨딩드레스를 입기도 한다.
또 다른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21년 결혼율이 사상 최저를 기록한 가운데 30대 혼인 건수가 20대 혼인 건수를 압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1990년에는 20대 신부가 30대 신부의 18배를 기록했는데, 2000년에는 8배, 2010년에는 2배로 급감하더니 드디어 2021년에는 역전되었다는 것이다. 실제 평균초혼 연령은 여성 31.1세, 남성 33.4로 집계되었다.
미디어나 사회 분위기는 20대 신부가 가뭄에 콩 나듯 하는 현실을 은연중 안타까워하는 분위기이지만, 여성의 초혼 연령이 30대 초반이 되었다 함은 단순히 결혼을 미룬다는 의미가 아님은 물론이다. 30대 초반이면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할 경우 감당해야 할 기회비용이 상대적으로 높아짐을 고려할 때, 30대 초반 여성의 삶에서 결혼이 갖는 의미는 20대 중반 결혼하던 이전 세대와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노벨경제학상에 빛나는 시카고대학 게리 베커(Gary Becker, 1930~2014) 교수는 일찍이 결혼시장도 경제적 이해득실에 따라 작동한다는 전제하에, 남편은 생계를 책임지고 여성은 가사와 양육을 전담하는 교환이 여성 입장에서 가장 유리하다는 주장을 폈다. 이 주장의 배경에는 유감스럽게도 1950년대 미국 가족이 황금시대를 구가했다는 고정관념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시기 미국 여성들은 23세에 결혼했고 평균 3명의 자녀를 낳았으며, 도심을 벗어난 한적한 교외의 그림 같은 내 집에서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전업주부를 꿈꿨다. 하지만 역사학자이자 문화비평가인 스테파니 쿤츠(Stephanie Coontz, 1944~)가 발견한 바에 따르면, 1950년대 전업주부들은 우울증에 시달렸고 정신과 의사를 찾느라 바빴으며 심지어 알코올 및 마약중독 사례도 증가했다고 한다. 그러니 가족의 황금시대란 결코 존재한 적 없다는 것이 쿤츠가 내린 결론이었다.
한국은 불과 30여 년 전만 해도 결혼퇴직 및 출산퇴직이 관행이었던 시대를 지나왔다. 그런 상황에서 결혼은 여성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안정된 삶을 위한 유일한 선택지요 노후 보장까지 고려한 최선의 결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성에게도 평생취업 기회가 열린 오늘날, 경제적 안정을 이유로 결혼을 선택할 이유는 사라졌다. 노후 보장 또한 자녀의 손에서 국가의 책임으로 넘어간 마당 아니던가.
이제 획기적으로 변화한 여성들의 결혼 이유로는 ‘표현적 개인주의’(expressive individualism)가 화두로 떠올랐다. 여기서 ‘표현적 개인주의’란, 결혼이 오롯이 개인의 선택지가 되었다는 사실, 자녀를 위해 희생하기보다 부부가 중심이 되는 결혼을 선호한다는 사실, 더불어 부부관계 속에서 행복감 만족감 충만감을 경험하고자 하는 의지와, 결혼을 통해 성장하고 발전하고 성숙하고 싶다는 갈망 등이 담겨 있음을 의미한다. 이들 기대가 충족되지 않을 경우 미련 없이 부부관계를 청산하고 새로운 파트너를 찾아 나서겠다는 생각 또한 포함되어 있다.
'표현적 개인주의’는 한국의 결혼시장에도 그다지 낯선 개념은 아닌 것 같다. 결혼에 관한 한 그 어느 때보다 머리 터지게 고민하고 있을 우리네 딸들에게 결혼을 왜 안 하는 거야? 도대체 결혼은 언제 할 거야? 다그치기보다는, 진정 어떤 결혼을 하고 싶은 건지, 구체적으로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는 건지, 경청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물어야 할 것 같다. 이번 설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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