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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다른 낯설음 저너머

임진년 새해맞이

by 자한형 2023.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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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 새해맞이

 

 

대망의 임진년 새해가 밝았다. 항상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뭔가를 계획하고 뭉클한 마음으로 새롭게 시작해 보고자 한다. 대부분의 경우 작심삼일로 끝나는 경우가 많지만 그래도 뭔가를 설계하고 꿈꾸기 마련이다. 우리가족도 새해를 맞아 고향으로 향했다. 토요일과 일요일 그리고 연휴가 겹쳐있는 관계로 먼저 처가부터 가기로 했다. 조금 일찍 출발한 탓에 길은 순조로웠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다가 대전당진간 고속도로로 갈아 탔다. 보통의 주말수준이었지 않았는가 했다. 밤늦은 시간에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식구들이 모두들 기다리고 있었다. 묵은 세배였지만 세배를 드리고 덕담을 들었다. 오랜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었다. 내일아침일찍 출발할 요량이었기에 한두간 환담을 나눈 후에 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새벽이되자 일어나 자리를 출발준비를 하였다. 다들 잠자리에 든 상태였기에 인사도 드리지 못하고 출발했다. 이른시간이었기에 명절 정체는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도착하니 3시간 정도가 소요된 것으로 되어 있었다. 일단은 잠자리에 들어 피로를 좀 풀었다.

 

다음날이 되자 명절분위기가 후끈 달아 올랐다. 삼형제가 와야 했는데 두형제만 왔다. 막내는 가족과 함께 외국을 간 탓에 얼굴을 볼 수는 없었다. 미리 전화로 연락을 받았었지만 그래도 서운함은 가셔지지 않았다. 부모님께 세배를 드리고 덕담을 들었다. 그리고 조카들의 세배를 받았다. 아들도 큰녀석은 자신의 성취를 위해 공부에 전념한다고 해서 작은 녀석만을 데리고 왔다. 그래도 한녀석이라도 건진 것이 다행이었다. 예전에는 부부만 귀향을 했었던 것이었다. 세배를 마치고 떡국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는 큰집으로 제사를 모시러 갔다. 그렇게 모셔야 하는 제사가 네군데가 되었다. 첫 번째집에서 아침을 먹었다, 마지막 모실 때가 되니 점심때가 되었다. 마지막 집에서는 교통대란이 나 있었다. 인근학교의 운동장을 인조잔디로 까는 작업을 하느라 주차장 사용이 금지 되자 혼란이 있었다. 그것에 더불어 목회활동차 온 신도들로 인해 교통혼잡이 격심해졌다. 교통경찰이 혼란을 극소화하기위해 백방으로 노력을 벌였으나 좀체로 정체는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급기야는 차를 주차는 이들만 두고 다 중도에 내려 집으로 들어가는 일이 벌어졌다. 이렇게 해서 한해의 시작이 이루어 졌다. 지역의 민심은 무척이나 이반되어 있었고 경제난 등 어려움에 힘들어 하고 있었다. 다음날에 출발을 했다. 남해로 가서 김천 창원간 고속도로로 갈아 탔다가 경부선으로 대전으로 향했는데 영동쯤에서 상당한 정체가 있었다. 여차하면 중간지점쯤에서 묵어갈 수도 있다는 것에서 차선책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만한 정체는 없었다. 곧장 상경했다. 큰 어려움은 없었든 듯했다. 이것 저것 해서 여러 가지로 무척이나 많은 비용이 소요되었지만 그래도 일년에 한번이라는 것으로 해서 위안을 삼았다. 한올한올 흰머리가 늘어나는 부모님의 모습에서 걱정이 늘어났고 제대로 봉양을 못하고 있음에 마음아픔도 되살아 났다.

보일러도 TV 냉장고도 이제는 내용연수가 다된 듯 하다고 언질을 주었다. 사촌들이랑은 이제 세배를 받아야 한다고도 했으나 아직까지는 그럴 단계가 아니라고 해서 손사레를 쳤다. 그리고는 겨우 손자뻘의 중학생에게만 세배를 받았다. 이제는 환갑을 앞둔 나이가 되었다는 것에서 세월의 유수같음에 혀를 찼다.

 

다음으로는 한 모임에서 세배 행사를 했다. 어른 16명 아이들 8명이 모였다. 어른은 50대 초반에서 70대 중반까지 있었다. 아이들은 20세에서 20대 후반까지 있었다. 12시에 모이라는 얘기를 했음에도 상당히 늦어졌다. 기다리는 동안 아이들은 아이들 대로 어른들은 어른들 대로 의자에 앉아 담소를 나누며 맥주를 한잔씩하였다. 장소는 한적한 곳의 이층 양옥집이었고 마당도 널직했다. 30여분이 되자 어느만큼 성원이 된 듯했다. 자리를 정돈해서 차례로 세배 행사가 이어졌다. 가장 연장자였던 교장선생님께서 세배를 받았고 세배돈과 덕담을 건넸다. 그리고 아빠들이 세배를 받았고 돌아가면서 악수를 한번씩 했다. 다음으로는 엄마들이 세배를 받았다. 벌써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인으로 취직해서 자기몫을 다하는 사람도 있었고 얼마후 제대를 일주일 남긴 말년병장 군인도 있었다. 세배행사가 끝나고서는 만두떡국으로 식사를 했고 입가심으로 돼지 김치찌개와 굴에 약주를 한잔씩 하였다. 얼마간의 분위기가 무르익은 상태에서 윷놀이가 벌어졌다. 모두가 열심이었고 신나게 희희낙락하였다. 아빠팀과 엄마팀의 대결이 있었다. 결국은 엄마들의 승리로 결말이 났다. 그리고 저녁을 먹으러 순대집에 가서 신나게 뒤풀이를 하였다. 한집에는 다음달에 대사를 앞두고 청첩장을 돌리기도 하였다.

 

다음으로는 또다는 하나의 정초 모임이었다. 토요일 저녁 7시에 해수욕장으로 유명한 바닷가에서 모임이 있었다. 대전횟집이라는 곳에서 저녁을 먹으며 모임이 이어졌다. 한 가족이 올해가 안식년인 관계로 미국으로 나갈 예정으로 있었다. 그러니 송별회도 겸하게 되어 있었다. 아이들이 12명이었고 어른이 14명이었다. 그래도 얘들이 나름대로 컸었기에 그렇게 혼잡스럽지는 않았다. 큰아이는 올해로 중학생이 되도록 되어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아이들은 백사장에서 불꽃놀이를 즐겼다. 어른들은 노래방을 거쳐서 조개구이를 먹고 숙소로 귀가했다. 그리고도 모자라 삼삼오오 모여앉아 새벽4시까지 한담을 나누며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수련원에서 제공하는 식사로 아침식사를 했다. 조금 숙소에서 쉬었다가 11시경에 대전으로 중식을 하러 갔다. 한 식당이었는데 월남쌈을 하는 집이었다. 샤브샤브는 익숙했지만 야채나 쏘스는 독특했다. 손이 많이가는 음식이어서 노인네에게는 불편했을 듯 했지만 젊은 층에게는 선호도가 높았다. 다 먹은 후에는 쌀국수와 죽이 후식으로 나왔다. 커피까지 마신연후에 모든 공식적인 행사가 종료되었다. 작별을 고하고 다음을 기약하고 출발했다. 중국이나 이런곳은 정초가 거의 보름이 간다고 한다. 한해를 설계하고 계획하는데 한달로도 부족할 듯하다. 문제는 그렇게 세운 계획을 어느만큼 잘 실행해내고 성취시켜가는가 하는 것에 초점이 있을 듯하다. 복잡하고 시끄러울 듯한 한해가 시작되고 있다. 올림픽도 예정되어 있고 총선도 있고 대선도 막판에 잡혀져 있다. 우리나라의 국운이 과연 어떻게 제대로 승천할 수 있을지 아니면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를 선택의 기로에 서있는 듯하다. 흑룡의 해라는 임진년 새해에는 모든이들이 원하는 바를 다 성취시키고 욱일승천하는 기세로 신바람나는 한해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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