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같은 방송인 이금희의 푸근함/ 유인경
세상의 아름다운 단어를 한데 뭉쳐보면, 그녀가 어느새 손아귀에 들어온다
평균의 세상은 결코 평균적이지 않다. 강박적으로 마르고 불쾌하게 쏘아대는 방송인과 방송 언어 속,
그저 수더분한 미소로 사람들의 말에 귀기울이고 고개를 끄덕이는 이가 있다. 방송인 이금희, 아나운서라는 단어보다 방송 그 자체로 연상되는 그녀는 전파에 향기를 싣는 재주가 있다. 그 향기를 음미한다.
번지르르한 입보다 쫑긋 세운 귀로 방송한다
방송에 등장하는 이들을 사석에서 만나면 대개는 실망한다. 화려한 조명과 화장발이 사라지고 그저 평범한 모습을 보면 “속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화면에선 그렇게 근사한 매너를 보이더니 실제론 인간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이들도 있고 이야기를 나눠볼수록 `‘텅 텅’ 소리가 나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방송에서보다 실제의 모습이 훨씬 아름답고 빛나는 이들도 있다. 방송인 이금희가 그런 사람이다. 정작 방송에선 그녀의 진가가 제대로 발휘되지 못해 안타깝다.
매일 아침 주부 프로그램인 `‘아침마당’에 출연하는 이금희의 방송 이미지는 친근하다 못해 오지랖이 넓고 수다스런 이웃집 아줌마 같다. 인터넷 시청자 게시판에도 “너무 천연덕스런 표정짓지 마세요, 짜증나요”라거나 “살 좀 빼요. 웬 처녀가 턱살이 그렇게 늘어졌나요” 등 비난성 글이 오르기도 한다.
내 주변 사람들도 “화면처럼 그렇게 뚱뚱해? 그리고 진짜 그렇게 착해?”라고 묻는다. 물론 이금희는 방송에 등장하는 전문 방송인들의 몸매는 아니다. 그러나 화면보다는 훨씬 날렵한 정상적인(?) 몸매다. 문제는 이금희가 아니라 비정상적으로 빼빼 마른 다른 연예인들이다. (이런 걸 동병상련이라고 하나…)
나도 처음엔 이금희의 진심과 순정을 의심했다. 어찌나 모든 이들의 말에 “어머, 저런저런” “아, 그랬구나” “오호, 그래서요?”라고 맞장구를 잘 치는지 “국악한마당이란 프로그램을 오래 진행해 말투에 추임새가 배었구나”고 생각할 정도였다. 게다가 말하는 사람의 감정을 그대로 이입한 듯 표정이 변화무쌍해져 “아, 참 피곤하게 사는 성격이구나”라고 여겼다.
그저 사람들의 눈높이에 시선을 맞출 뿐
그런데 10여 년을 지켜본 결과, 그 모든 추임새며 표정은 절대 작위적인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이금희는 EQ(감성지수)가 매우 뛰어난 사람이다. 요즘 방송인들에게 필수 요소라는 통통 튀는 순발력과 눈부신 미모를 자랑하지 않지만, 그것보다 더 큰 재산, 사람의 마음을 읽고 따스하게 배려해주는 사려 깊음을 갖고 있다.
방송중 어떤 이들이 출연해도 그들 눈높이에서, 그들의 마음이 되어 이야기를 들어주고 질문을 던진다. 대통령을 만나도 노숙자를 만나도 그들의 입장에 서서 그들의 마음이 시청자에게 제대로 전해지도록 노력한다.
그의 재능이 돋보였던 것은 남북이산가족 만남의 장에서였다. 각 방송사마다 아나운서, 연예인 등의 MC를 총출동했는데 화려한 분장과 옷차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질문은 초라하다 못해 화가 날 지경이었다. 50년 만에 만나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 이들 곁에 서서 마이크를 들이대며 “반가우시죠?”(아니 그럼 평생 기다린 가족인데 안 반가울 리 있나) “따님 만나니 어떠세요?”(그걸 어떻게 말로 설명하나) 등의 형식적인 질문만 해댔다. 그런데 이금희는 일단 무릎을 꿇고 앉아 가족들을 같은 눈높이로 바라보며 “스무 살때 헤어졌다는데 만나서 무슨 이야기부터 하셨나요?” 하며 그들의 말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같은 프로그램에서 방송을 진행했던 MBC 이재용 아나운서는 이렇게 증언(?)한다.
“다른 아나운서들은 준비된 진행표를 보고 있는데, 저 구석에서 이금희씨가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더라구요. 저는 다리가 아픈 건가, 아니면 몸을 푸는 건가 이상하게 생각했죠.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테이블 높이에 맞춰 앉았다 일어섰다 하며 참가한 이들과 눈높이를 맞추는 연습을 한 거였어요”
좋은 진행자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을 잘 듣는 사람이라는 게 그녀방송관이다. 또 물 같은 방송인이 되고 싶단다. 별 맛도 없지만 자극적 맛에 질리면 결국 찾게되는 게 물이라는것.
언젠가 한 기자는 인터뷰 기사에서 이금희를 이렇게 묘사했다.
“‘이금희(적)’이라는 형용사를 뜻풀이하면 어떨까? 편안한, 따뜻한, 푸근한, 낙천적인, 섬세한, 자상한, 부드러운… 이런 느낌의 형용사들을 마음 내키는 대로 한데 뭉쳐 쥐어보면, 이금희라는 사람이 손아귀에 알맞게 쏙 들어온다”
글은 그 사람이라는데 이금희는 이미 글솜씨도 정평이 났다. 수필집도 냈고 그녀의 글이 중학교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글 역시 그녀의 모습처럼 담백하고 따스하고 진솔하다. 세상을 보는 그의 시선이 그대로 녹아 있는 그의 글을 읽는 것도 즐거움이다.
스쳐 지나가지 못하는 따뜻한 감성
방송에서보다 실생활에서 그녀의 EQ는 더욱 빛을 발한다. 이금희는 만나는 이들을 편하게 해주는 것은 물론 작은 선물도 참 잘 챙긴다. 살아생전에 우리 엄마에게도 치아가 없는 할머니들도 드실 수 있는 화과자를 선물해줬다. 언젠가 어느 전문직 여성도 경탄에 마지 않으며 그녀를 칭찬했다.
“전화 왔길래 내가 직장을 그만뒀다고 했더니 그날 오후에 퀵 서비스로 꽃다발을 보내왔어요. 곧 좋은 일이 있을 거라는 카드와 함께요. 얼마나 고맙고 위로가 됐는지.”
정작 그 여성과 절친한 나는 퇴직했다는 말을 듣고도 위로는커녕 “어머, 이젠 푹 쉴 수 있겠수” 하며 부러워했으니 낯을 들 수가 없었다.
어느 방송작가는 남편이 중병에 걸려 남편의 치료를 위해 미국에 가야 했다. 도미 준비를 하는 그의 집에 이금희가 찾아와 딸에게 봉투 하나를 놓고 갔더란다. 마침 집을 비웠는데, 봉투 안에는 약간의 성금과 함께 새 휴대폰이 있었다.
“내 휴대폰이 너무 낡아 엉망이었는데 아마 그게 안쓰러웠는지 새걸 사서 집에 두고 갔더라구요. 고맙다는 말도 못했어요. 그냥 고맙다고만 할 수가 없어서….”
물론 본인에게 확인해보진 않았다. 분명히 “아냐, 아냐”라고 부인할 게 뻔하다. 이금희를 만날 때마다 가끔 겨드랑이를 눈여겨본다. 혹시 날개가 돋는 것은 아닌가 해서다. 그렇게 이금희는 남몰래 선행을 많이 한다. 자신의 수입 중 일부를 각종 불우이웃을 돕기에 성금으로 내놓고, 그런 단체의 행사에도 참가한다. 그러나 절대로 자신의 선행을 드러내려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은 라면 박스 몇 개 보내고도 사진 찍고 신문사에 홍보 자료 뿌리며 낯 뜨거운 짓을 하는데도 말이다.
야성미와 진실함 갖춘 백마 탄 왕자를 고대하다
내가 이금희를 더욱 사랑하는 이유는 정말 복스럽게 먹기 때문이다. 다이어트를 해야 할 만큼 폭신폭신해졌는데도 절대 음식 앞에서 깨작거리지 않는다. 언젠가 둘이 심각한 표정으로 걱정거리를 털어놓고 있는데, 주문한 음식이 나오자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둘의 얼굴에 환한 봄햇살이 퍼지는 걸 확인하면서 난 알았다. 우리는 날씬해지기 어려운 이들이라고.
“이금희씨 좀 데리고 와요. 내가 유인경씨랑 이금희씨랑 날씬하게 만들어줄게, 자신있다니까.”
체형 관리 전문점이나 한의원, 비만클리닉 등에서는 나와 이금희를 패키지로 묶어 새 사람(?)으로 만들겠다고 야심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이금희에게 그런 이야기를 꺼내 보지 않았다. 이금희마저 다른 방송인들처럼 깡마른 체형으로 변해 속옷인지 겉옷인지 구별이 안 가는 옷을 입고 나오는 건 싫기 때문이다.
언제나 자신보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 그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미소를 잃지 않는 그녀, 이금희. 어디 미소뿐인가, 식욕도 잃지 않는 건강함이 방송인 이금희가 꾸준히 사랑받는 비결이다. 그나저나 이금희가 좋아하는 축구선수 김남일의 야성미와 진실함을 갖춘 남자가 나타나 이금희의 결혼식장에 가봐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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