칡꽃 필 무렵 / 김선화
언젠가는 맞아야 하고 또 겪어야만 될 삶과 죽음의 기로. 누군가의 말처럼 우리는 지금 죽음을 향해 소멸해 가는 것일까, 영원을 향해 한 걸음씩 전진하는 것일까. 나는 지금, 인생의 막바지에 처한 그분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초연하질 못하다.
장수하는 노인이 중풍 앓는 딸 생각이 나서 과일 몇 개를 사들었다가 사고를 당했다. 그런데 20여 일간의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그는 무의식중에도 젊은 날을 이야기한다. 눈동자를 허공에 둔 채, 일찍이 혼자되어 아들딸을 키워냈다는 이야기를 한숨처럼 토한다. 그 시절의 아련한 추억으로 현재를 버티는 것이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입에든 것마저 내어주던 어머니들의 세대가 이렇게 기울고 있는데…. 그러나 정녕 그 자녀들은 발길이 뜸하다. 노인 곁에는 품삯에 고용된 간병인만이 권태를 참으며 앉아있다.
이는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팔월의 늦장마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사경을 헤매는 시어머님을 초·중생인 아들형제에게 맡겨두고 남편을 졸라 물 구경을 나갔다. 때마침 큰비가 내려 산 속의 작은 호수에도 물이 넘치고 있었다. 수로를 타고 미끄러지는 물줄기는 내 가슴속의 봇물이 터지기라도 한 듯 시원스레 흘렀다. 그 물줄기에 시어머님의 인생여정이 흐르고, 그분과 함께 해온 내 삶이 흐른다. 날개를 접고 울어대는 매미소리가 화음(和音)처럼 어우러진다.
소화기질환으로 암수술을 받으신 시어머님에게는 아들 다섯, 며느리 다섯이 있다. 그리고 딸 사위도 있다. 허나 그분이 맘을 터놓는 곳은 정해져 있어서 셋째인 내가 시어머님의 병수발을 들게 되었다. 함께하는 병원생활이 길어져갈수록, 또 그분의 의중을 헤아리면 헤아릴수록, 나는 세월을 껑충 건너 70넘은 노인의 친구가 되어갔다. 시어머님이 살아온 인생의 무게가 40대 초반의 내 어깨에 얹혀, 그 육중함을 어쩌지 못해 흔들리기도 하였다. 차도가 좀 있으신가 싶으면 다시 까라지고, 정신적 여유를 찾으시나 싶으면 이내 삶에 대한 회한으로 몸부림을 치신다. 온몸으로 끌어안고 계신 삶의 편린들을 그만 내려놓으라 하지만, 노인의 고집이란 그런 것인지 좀체 수그러들질 않는다. 고통스러워하는 배를 문질러드리다가는 내 설움에 겨워 몰래 울기도 하였다.
아이들이 보다 어릴 때, 전세금마저 남편의 사업자금에 보태고 시골집에 들어가 산 적이 있다. 이 때가 아니면 또 언제 내 아이들에게 시골정서를 심어줄까 싶어, 농촌 생활에 푹 젖어 살았다. 그런데 큰물 지던 날, 서른두 살 새댁이었던 내 손에 인분(人糞)바가지가 들려졌다. 마을가셨나 했던 시어머님이 손잡이가 긴 바가지를 빌려와 쥐어주고는, 당신은 초롱을 매단 지게를 지고 우뚝 서 계셨다. 아들이 다섯이나 되는 집에서 며느리인 내게 무슨 일을 시키시는지를 알면서도 불시에 내려진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일은 남자들이나 하는 것으로 알아온 터이니 내심 놀랐지만, 시어머님의 고된 삶을 생각하며 맘을 다졌다. 그 옛날 물지게를 지고 저렇듯 걸었을까. 뒤뚱뒤뚱 걷는 시어머님 모습에서 그분의 살아온 날들이 읽혀졌다. 시아버님께서 몸이 약해 궂은일을 도맡았다는 분이다. 이와 같이 시어머님을 이해하다 보니, 사람 불러서 하자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꼴깍 삼켰다. 그렇게 하여 시어머님과 나는, 큰일 한 가지를 해내기에 이르렀다.
누구에게 들킬세라 조바심하면서도 장장 세 시간이 넘게 그 일을 하고는, 산후로 약해진 관절이 말썽을 부려 밤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야속함 반 연민 반으로 시어머님의 허리를 찜질해 드리는데, 어깨에 난 지게멜빵 자국이 너무나도 선명했다. 전등 아래로 드러난 벌건 상처를 보면서, 바쁘다는 구실로 어머님의 일상을 살피지 못하는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내 아픔 따위는 젊다는 사실만으로 위안 삼았다.
이제껏 그 일은 우리 고부만이 아는 일이지만, 장마철이면 한 차례씩 되살아나곤 한다. 그 날의 앙금을 씻어내려는 것인지 큰물 질 때면 무시로 물 구경을 나간다. 그런데 내가 물소리를 찾아다니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어렸을 때는 명산의 물줄기를 보며 자랐다. 계룡산 상봉인 '천왕봉'에서부터 푸른 바위벽을 타고 흐르는 물은 은빛장관이었다. 그리고 뒷산 정상에서 흘러내리는 폭포수는 산울타리 안의 사람들 가슴을 시원히 적셔주었다. 그 물줄기가 마을을 가로지를 때면, 내 마음도 드넓은 곳을 향해 유유히 흘러갔다. 이렇듯 여름 한 철을 흐르는 물소리와 벗 삼아 지내는 나는 마음 맞는 사람의 웃음소리만큼이나, 굽이치는 물소리에 맘을 기댄다.
다시 이야기를 돌려, 호수를 감싼 주변의 수목들이 검푸르게 다가온다. 자질구레한 들꽃들은 작은 빗방울에도 오슬오슬 몸을 떤다. 그런데 참으로 기이한 꽃이 눈에 들어왔다. 잡풀을 휘어 감고 아까시나무 끝까지 기어올라 함초롬하게 피어있는 진보랏빛 색채. 그것은 마치, 좋은 시절 다 보낸 어머니들의 젖가슴처럼 시들해져 있었다. 칡꽃이었다. 땅속 깊이 뿌리를 묻고 무엇이든 휘감아 둥글려야 하는 칡덩굴에도 저렇듯 고운 꽃이 피다니…. 순간, 감당 못할 슬픔 같은 것이 솟구쳤다. 그 동안 한번쯤은 보았음직도 한데 그 추리해진 칡꽃 앞에서 마음이 정지되는 것 같았다. 외로운 길을 걸어온 사람들의 가슴속멍울처럼 아리게, 또 고된 역경을 견디어낸 사람들의 생명줄처럼 장하게 가슴을 울려댔다.
애써 맘을 다독이고 돌아서는데 초췌한 칡꽃이 우리 부부의 발길을 잡는다. 이내 떨어져 내릴 듯이 애처롭다. 대롱 끝에 매달린 물방울은, 막다른 길목에 몰린 이들에게 남겨진 생의 마지막 수액일까. 아니면 지나온 삶에 대한 회한의 눈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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