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세 송이 / 정형숙
붉고 커다란 장미 세 송이가 화폭을 채웠다. 강렬한 색감과 화려함이 나를 이끌었다. 가까이 다가갔다, 한 발짝 뒤로 물러나기를 반복했다. 제목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찾고자 했다. 한참을 그림 앞에서 서성였다. 화가의 의도를 파악하고자 노력해도 끝내 떠오른 생각은 없었다. 전시장에 걸린 다른 그림을 보면서도 떨떠름했다. 다시 장미 세 송이 작품으로 돌아왔다. 눈 맞춤이 계속되자 사각형 그림 속에 작은 틈새가 보였다. 틈새는 검푸른 공간으로 확대되어 교실 뒷문 손잡이를 잡는 내가 있었다.
말소리가 창문을 넘자 복도는 시끌벅적했다. 저마다 선물꾸러미를 들고 자랑하기 바빴다. 교실에 빈손으로 들어서는 나를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다. 선생님이 오기를 기다렸다. 대기업에 취업한 미숙이가 들어오자 모두 반갑게 맞이했다. 화답하듯 그녀는 환하게 웃었다. 그녀 주위로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나는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멀리서 바라보았다. 아침에 급하게 먹은 밥이 체했는지 가슴이 답답했다.
따뜻한 밥이라도 먹고 가야 한다며 새벽부터 어머니는 분주했다. 반면 어머니 얼굴은 굳어 있었다. 정말로 가지 않아도 되는 거냐며 거듭 나에게 물었다. 밥알을 목구멍으로 넘기며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학교에 가서 졸업장만 받고 오기에 별문제 없다며 어머니를 안심시켰다. 어머니는 되묻지 않았다. 내 뒷모습을 어머니가 지켜보는 것 같아 어깨를 펴고 대문을 나섰다. 좁은 골목을 벗어나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부모 기대에 못 미친 자식이지만 한 번쯤은 축하한다는 말을 건넬 법한데…. 괜스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나는 나 자신을 자축하겠다고 다짐했지만, 무시할 수 없는 현실에 발걸음이 무거웠다.
선생님은 교탁을 두드렸다. 웅성거리던 말소리는 잦아들었다. 이름이 호명되면 한 사람씩 선생님 앞으로 나가 졸업장을 받았다. 어느새 내 차례였다. 졸업장을 주며 선생님은 가벼운 포옹과 짧은 격려의 말을 건넸다. 두꺼운 종이에 이름 석 자 적힌 졸업장이 선생님에게 받은 마지막 인사였다. 졸업장 수여식은 금방 끝났다. 친구들은 짝을 이루어 선생님 곁에 다가가 사진을 찍었다. 복도에 서성이던 많은 어머니, 아버지가 달려와 자식 가슴에 꽃다발을 안겨 주었다. 교실과 복도는 사람들로 어수선하였다. 그곳을 조용히 빠져나왔다.
적막한 운동장을 가로질렀다. 버스정류장에 들어서자 곧바로 버스가 앞에 섰다. 버스에는 나와 운전기사 둘뿐이었다. 모두가 꽃다발을 든 사람들 속에서 손에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나를 운전기사는 흘끗흘끗 쳐다봤다. 몇 정거장을 지나자 부모와 함께 타는 아이들로 번잡했다. 아이들 가슴에는 꽃다발이 한 아름이었다. 갖가지 색과 향기가 버스 안을 꽃밭으로 만들었다. 나는 도화지에 채색하다 망친 공간처럼 느껴졌다. 창밖으로 꽃다발이 둥둥 떠다녔다. 창밖 풍경은 눈에서 멀어진 지 오래였다. 어수선하고 뒤숭숭한 마음을 누르며 나는 집으로 향했다.
연탄아궁이의 공기구멍이 열려 있었다. 연탄 한 장이라도 아껴야 한다며 공기구멍을 조금만 열어놓는 어머니가 아닌가. 열린 구멍을 통해 들어온 바람은 연탄을 활활 태워 방바닥을 지폈다. 얼마나 타올랐는지 온수통의 차가운 물이 펄펄 끓었다. 얼어있는 몸과 마음을 녹이기에 충분했다. 어머니 품처럼 아늑했다. 뜨거운 방바닥에 등을 대고 눕자 번잡한 졸업식에 갔다 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코끝이 시큰거리면서 눈언저리에 걸린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졸업식에 어머니를 오지 못하게 막았던 일이 마음에 걸렸다. 후회가 몰려왔다. 취업하거나 대학에 합격한 자랑스러운 모습을 어머니에게 보이고 싶었다. 결국 어느 것도 이루지 못했다. 다가올 내일, 무슨 일을 하며 살아야 할지 막막했다. 재수학원으로 달려가 공부를 시작하거나, 아니면 취업전선에 뛰어들어 직장을 알아보러 다녀야 하는 처지였다. 꿈꾸는 것은 자유라고 하지만 나는 꿈조차 꾸기 힘든 조건에서 출발했다. 출발부터 다른 이와 달라 버거웠다. 언젠가는 잘 가꾸어진 정원을 거닐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왜 가지지 않았을까.
장미 세 송이가 눈에 담겼다. 그림 옆에 작게 써진 제목은 <졸업>이었다. 활짝 핀 장미가 방긋거렸다. 화가에게 졸업은 기쁨과 열정이 살아 있는 시간이자 부모에게 최고 좋은 선물을 선사한 날이었을 것 같다. 붉게 타오르는 장미를 그린 화가의 당당함과 자신감이 부러웠다. 그것이 나를 멈춰 세운 이유였다. 나는 졸업이라는 단어를 우울한 경험이 포함된 문자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림은 졸업이란 ‘새로운 출발의 축하이기에 환희로 넘치는 시간 속에 머물 수 있음’을 말하는 듯했다.
그림이 이해되자 졸업식 날을 되돌아봤다. 그날 어머니는 마음으로 꽃다발을 보냈지만 내가 받아들이지 아니했다. 그땐 축하의 말도 꽃다발도 건네지 못한 어머니 심정을 헤아리기 힘들었다. 연탄을 아끼고 아끼는 어머니가 그날만은 뜨겁게 방을 데웠던 그 마음을 이제야 알아차렸다. 뜨겁게 타오르는 연탄이 한 송이 붉은 장미로 다가와 내 가슴에 꽂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