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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들었다놨다 나훈아 현상의 비밀

by 자한형 2023.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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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들었다놨다 '나훈아 현상'의 비밀1 /이빈섬

나훈아는 콘서트 중에 이 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내 노래는 다 서정적입니다. 고모부 처형하고 이복형 암살하고 회의 때 존다고 사람 죽이는 뚱땡이 살인마 앞에서 사랑노래가 어떻게 나오겠습니까. 아마 옆에 있으면 노래 부를 일이 아니라 귓방망이 날리는 것 밖에 못할 것 같습니다.“

더뷰스 가요인문학 : 나훈아를 다시 본다

가수 나훈아. 2020년 공연에서.

나훈아라는 시인에 관하여

나훈아는 대중의 심금에 능란하게 파고드는 보기드문 시인이다. 워낙 뛰어난 가수이기에 이 점이 오히려 가려져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이 세상에 하나 밖에 둘도 없는 내 여인아(사랑), 잊으라 했는데 잊어달라 했는데 그런데도 아직 난 너를 잊지 못하네(영영). 울지마 울긴 왜 울어 고까짓것 사랑 때문에(울긴 왜 울어). 이미 와버린 이별인데 슬퍼도 울지 말아요(무시로). 내가 왜 이러는지 몰라 도대체 왜 이런지 몰라(갈무리). 살다보면 알게돼 일러주지 않아도().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사랑은 눈물의 씨앗). 청춘을 돌려다오 젊음을 다오(청춘을 돌려다오). 미워도 한 세상 좋아도 한 세상(너와 나의 고향). 간간이 너를 그리워하지만 어쩌면 너를 잊기도 하지(내 삶을 눈물로 채워도). 자네는 아는가 진정 아는가 8자는 뒤집어도 8자인 것을(자네!). 간다면 누가 너를 못 보낼 줄 알고 가라지 누가 너를 잡을 줄 알고(가라지). 이왕에 만났으니 한백년을 살고 갑시다(한백년).

이 노랫말들은, 처음 만나자마자 호감과 중독을 불러일으키는 말맛을 지니고 있다.

일상적으로 불쑥 내뱉듯이 튀어나오는 말에서 골라낸 말 같지만, 그 말솜씨가 여간하지 않다. 마음에 찰싹 달라붙고 목청에 은근히 올라붙는 매력을 품고 있다. 배워서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그 노랫말을 읊으며 감정을 태우도록 곡()이 오히려 추임새를 넣는 느낌이다.

김소월이나 서정주의 천재성이 막걸리 한 잔에 풀린 듯한 대중의 혀끝으로 내려와 감정을 움직이며 서정을 만들어낸다. 그 가사에 의지하여, 어눌한 이들이 제 심경을 길어올리고 고백하기 좋도록 해놓았다.

나훈아의 가사 첫 마디는, 첫 인상에 승부를 거는 만남의 자리처럼 순식간에 착 감기도록 되어 있다. 첫 카피로 결판내는 솜씨는 시인은 물론이고 카피라이터의 언어 센스와 문자 육감을 뺨친다.

흰 머리 날리면서 달려온 어머니를

그 말들의 날렵한 통찰이나 두툼한 질감 또한 쉽게 얻어지는 싯귀를 넘어서 있다.

사랑한다 말할까 좋아한다 말할까 아니야 아니야 말 못해 나는 여자이니까(여자이니까). 흰 머리 날리면서 달려온 어머니를(고향역). 생각이 난다 홍시가 열리면 울엄마가 생각이 난다(홍시). 첫사랑 만나던 그날 얼굴을 붉히면서(애정이 꽃피던 시절). 돌담길 돌아서며 또한번 보고(물레방아 도는데).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황혼빛에 물들은 여인의 눈동자(해변의 여인). 전해다오 전해다오 고향잃은 서러움을 녹슬은 기찻길아(녹슬은 기찻길) 어매 어매 우리 어매 뭣할라고 날 낳았던가(어매). 아무도 찾지않는 바람부는 언덕에 이름모를 잡초야(잡초). 어쩌다가 한바탕 턱 빠지게 웃는다 그리고는 아픔을 그 웃음에 묻는다(테스형).

()들이 유치하다는 기분에 훌쩍 넘어가버린 자리에 남은, 일상의 질척한 서정이 기억과 통대(痛帶)를 작심하고 건드리는 듯한 나훈아 시()들은, 새롭게 조명되어야 한다. 저 노랫말들이 왜 대중의 목젖 속에서 울컥거리며 살아남고 그토록 절규처럼 높이 뛰어올랐는지를.

나훈아(羅勳兒)는 본명이 최홍기(崔弘基). 부산시 동구 초량중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선원이었다고 한다. 유년시절 집에 외국서 사온 축음기가 있었다고 나훈아가 털어놓은 적이 있다. ‘테스형의 가사에 등장하는 울아부지 산소(山所) 이야기가 나훈아 내면의 부친을 잠깐 드러내보일 뿐이다. 출생년은 논란이 있다. 1947년생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의 출신학교인 부산 초량초등학교, 대동중학교, 서울 서라벌예고 동창생들의 증언으로 1953년생 쯤으로 짐작되기도 한다.

당시 트로트 쌍벽으로 경쟁관계에 있던 남진(1945년생)에 밀리지 않으려고 나이를 좀 올렸다는 설이 있다.

남진과 나훈이는 여러 가지로 대비된다. 남진은 잘 생긴 외모에 호방한 목소리가 매력 있었고 나훈아는 용모는 상대적으로 투박한 감이 있으나 싱어송라이터로 음악적 실력을 인정받았다. 즐겨부른 노래를 보면, 남진은 도시 이미지의 가사가 많고, 나훈아는 시골의 서정적인 분위기가 주를 이뤘다. 양쪽의 팬들이 만나면, 남진팬들은 소도둑놈 꺼져라고 외치고 나훈아팬들은 돼지 멱따개 비켜줘라고 소리 질렀다.

나훈아는 중학교 야구선수였다

나훈아는 중학교 시절 야구선수로 뛰었다. 허구연 야구해설 위원은 2013년에 라디오방송에 나와 자신이 경남중학교에서 야구를 하던 시절, 나훈아가 대동중학교에서 야구선수였다고 밝히기도 했다. 중학교 선배였던 이희수 감독(1948년생)도 나훈아가 뛰어난 내야수였다고 기억했다. 서라벌예고 13회 졸업생인 화가 이목일(1951년생)은 이런 말을 했다.

고등학교 1학년 시절 우이동 골짜기에 봄소풍을 갔다. 그대 홍기가 이별의 부산정거장을 불렀다. 그런데 함께 소풍왔던 동덕여고생들이 몰려들어 환호성을 질렀다.”

이목일 화백이 이 장면을 보았다면, 그때 나훈아도 고등학교에 진학해 있어야 한다. 이런 정황 때문에 그를 1951년생(호적상 나이는 이렇게 되어 있다)으로 보기도 한다.

그가 서라벌예고에 진학한 것은 성악가가 되고자 함이었다. 당시 오아시스레코드사 손진석 사장과의 인연으로, 가수의 길로 들어섰다. 아버지는 돌아갈 때까지 이런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노래방 곡목책엔 나훈아 노래 최다

아버지는 인정하지 않았으나, 세상은 그의 50년 가수인생에 열광했다. 지금까지도 그를 노래의 황제급인 가황(歌皇)으로 우러른다. 800곡 이상의 자작곡, 전체 2,600곡 정도를 취입한 가수는 대한민국에서 나훈아 뿐이다. 그 중에서 120곡 이상의 히트곡을 냈고 앨범은 200장 이상을 발매했다. 노래방 곡목책에 가장 많은 곡이 올라와 있는 가수도 그다.

나훈아 콘서트는 지금도 티켓 발매 개시 10초가 안되어 동난다. BTS와 명절전 일반열차, 한국시리즈 7차전 때의 발매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나훈아 공연티켓을 구했느냐에 따라 효자와 불효자가 나눠진다는 소문도 만들어졌다.

스타란 하늘의 별과 같아야

나훈아는 스타의식이 국내 최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스타란 하늘의 별과 같아야 한다. 꿈을 파는 사람으로 뒷무대가 보여지면 환상이 깨진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를 신비주의자로 부르는 건 가당치 않다. 작사, 작곡을 하기 위해서는 꿈을 채우는 시간이 필요하고 책을 읽는 준비도 필요하다. 6개월 이상은 준비를 해야 하기에 공백이 있다. 이 사이에 언론이 신비주의라 윤색하는 것이다."(2020년 한가위 대한민국 어게인콘서트).

그는 본래 슈퍼스타는 30%의 싫어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싫어하는 사람이 있어야, 좋아하는 사람들이 미치도록 좋아할 수 있다. 너나 나나 다 좋아하는 사람은 슈퍼스타가 아니라 그냥 스타이다.“ 연예인들도 나훈아 실물을 영접하는 일은 몹시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데뷔 30년이 넘은 유재석도 그를 실제로 뵌 적이 없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자존심 갑(), 나훈아

자존심 갑()의 일화들이 수두룩하다.

미국에서 공연제의를 받았을 때였다. 외국가수들은 한국에 와서 공연할 때 과한 조건을 불러대는데, 한국가수들은 미국 구경하는 기분으로 공연을 하는 게 자존심 상했다. 그래서 거절을 할가 하고 굉장히 허세를 부린 조건을 제시했다. 그런데 미국 에이전시에서 내가 말하는 조건을 모두 들어줘서 결국 공연을 하게 됐다.“(199811SBS ‘김혜수 플러스유에서)

1992년 총선 때 여당이던 민자당에서 공천을 제의받았다. 그는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지. 나는 가수가 천직이오라고 말하며 거절했다. ”정치인들은 내가 뭘 하는 사람인지, 뭘 하면 나라에 도움이 되는지를 생각할 줄 모르고, 자기 당이 한 석 더 차지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고 일갈하기도 했다.

일본 공연서 "독도는 우리땅"

19969월 일본 오사카에서 공연을 했다. 공연 마무리 때 2천여명의 관중과 함께 쾌지나칭칭나네를 합창했다. 그 가사에다가 즉흥적으로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말을 넣었다. 이 때문에, 일본 우익들이 죽여버리겠다고 협박 전화를 했다. 나훈아는 때리 직일라면 직이삐라(때려 죽이려면 죽여버려라)“고 익살스럽게 응수했다.

김용철변호사가 낸 책 삼성을 생각한다에는 이런 얘기가 들어있다. 삼성 일가가 이건희 회장 생일 때 나훈아의 공연을 요청했다. 이런 경우 노래를 두세곡 부르고 3천만원을 받는 것이 관례였다. 이 가수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대중예술가다. 내 공연을 보기 위해 표를 사는 대중 앞에서만 공연한다. 내 노래를 듣고 싶으면 표를 끊어서 입장하는 게 맞다.“

어떤 가수로 남긴 뭘 남어?

20202월 코로나 확산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대구에 누가 익명으로 3억원이란 거액을 기부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나훈아였다. 그해 9월에 추석기념 콘서트를 열었다. 이훈희 KBS 2본부장이 이렇게 물었다. ”앞으로 어떤 가수로 남고 싶습니까?“ 이 관성적인 질문에 그는 대답했다. ”나는 흐를 류, 행할 행, 노래 가, 유행가 가수입니다. 뭔가 남는 게 웃기는 거죠. 뭘로 남는다는 말 자체가 웃기는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2021년 북한 평북의 10대 소년들이 나훈아 노래 사내를 영상으로 보고 따라부르다가 인민반장의 신고로 발각되어 노동교화소에 보내졌다. 국가보위성이 소년들에게 심문했다. ”남조선 노래 중에 너희를 유혹한 것이 대체 무엇이어서 이 지경이 되었는가?“ 한 소년이 대답했다. ”사내답게 살다가 사내답게 갈 거다 라는 노래 구절이 너무 와닿았습네다.“ 이 말이 주민들에게 알려지면서 이 노래가 관심을 끌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