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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민사회운동 새로운 미래는 (2023기획특집 월간중앙)

한국시민사회운동의 새로운 미래는 있는가

by 자한형 2023.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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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민사회운동의 새로운 미래는 있는가(1) / 임현진 공석기, 시민 없는 시민운동, ‘운동성까지 사라졌다

공익활동으로 전환되면서 정부 정책과 차별성 희박해져

진정한 의미의 개발·협력 위해 건강성·역동성 키워내야

서울시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의 리더십 변화에 따라 시민사회운동은 정치기회구조의 급격한 축소에 직면했다. 10년 가까이 추진해온 풀뿌리 주도의 사회혁신 사업, 즉 마을, 청년, 도시재생, 에너지 전환 관련 사업이 하루아침에 지속가능성을 상실하게 됐다. / 사진:연합뉴스

한국 시민사회운동이 쇠락의 길에 들어섰다. 젊은 활동가가 들어오지 않는다. 들어와도 쉽게 떠난다. 다수의 시민사회 단체가 사무국을 중심으로 정부나 기업의 정책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조직을 유지한다. 언론을 동원한 이슈 파이팅 전략은 더는 일반 국민의 시선을 붙잡지 못하고 광장에서의 집회도 영향력을 잃고 있다. 반면에 광화문, 서울시청, 국회, 법원·검찰청 주변은 공공선보다 진영과 이권으로 결집한 떼쓰기운동만 반복되고 있다. 왜 시민사회운동은 일반 국민에게 신뢰를 얻지 못하는가? 월간중앙은 이에 답을 찾고자 한국 시민사회에 관한 연구를 꾸준히 수행해온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임현진·공석기 교수의 글을 싣는다. 5회에 걸쳐 진행될 이번 시리즈가 한국 시민사회운동의 새로운 미래를 함께 고민할 수 있는 활발한 논의의 장이 되기를 기대한다. [편집자 주]

한국 사회운동의 경험을 돌아보면 민주화를 위한 강한 시민사회연대, 노동자·농민의 저항, 탈핵운동, 그리고 촛불집회를 떠올리게 된다. 공공선에 반하는 국가정책을 변화시키기 위해 직간접 집합행동으로 정부에 도전해왔다. 주로 갈등정치(conflict politics) 전략과 전술을 활용했다. 이러한 변화, 도전 그리고 갈등의 속성을 지속적으로 유지하지 못하면 그 운동성’(activism)은 일시적인 집합행동에 그치거나 사업 활동에 자리를 내주게 된다.

국내외적으로 한국 시민사회를 민주화를 달성한 강한 시민사회로 자주 언급한다. 이는 한국 시민사회운동이 지속적으로 운동성을 견지하며 정부 혹은 기업에 도전하고, 변화를 추동하며 갈등적인 관계를 유지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1990년대 초 절차적 민주화를 달성하면서 한국 시민사회운동은 국가, 기업과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게 됐고, 그것은 제도화의 길이었다. 소위 거버넌스 시대를 열었던 것이고, 이는 동시에 운동성의 약화를 앞당기는 시간이었다.

당시 시민사회운동은 국민의 신뢰를 한 몸에 받았고 한국 사회의 실질적 민주화를 견인할 주체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부실한 정당정치의 한계를 보완하는 과정에서 사회운동은 과잉사회화의 길을 걷게 된다. 1990년대에 시민사회운동의 전성시대를 맞이했고, 그 결과 시민사회운동의 분화, 전문화가 급격히 진행됐다. 동시에 시민사회운동 단체는 문제 제기자에서 문제 해결자로 자리를 이동하기 시작했다. ()정당의 역할을 했다. 시민사회운동 30년을 돌아볼 때 항상 노정된 문제, 즉 시민 없는 시민운동, 백화점식 운동, 중앙 중심의 이슈 파이팅 운동의 한계는 돌림노래처럼 반복됐다.

운동성 상실하며 현실에 안주

시민사회운동은 부실한 정당정치의 한계를 보완하는 과정에서 과잉 사회화의 길을 걷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그사이에 사회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확산돼 공동체보다 개인을 우선시하며 각자도생의 능력주의가 팽배해지고 승자독식을 당연시하는 사회로 변했다. 공동체보다는 개인과 가족을 우선시하며, 타자와의 소통보다는 SNS를 통한 익명의 다수와의 쉬운 연결에 중독되고 있다. 전 지구적 차원의 빠른 연결(connection)로 손쉬워진 상품소비, 정보나 지식공유를 통해 마치 글로벌 시민으로 성장한 것 같은 착각과 환상에 빠지게 됐다.

하지만 지난 3년 전대미문의 코로나19 팬데믹을 경험하고, 플랫폼 자본주의 습격을 목도하면서 전지구적 차원의 연대와 협동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절감하고 있다. 시민사회운동이 지속가능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풀뿌리 시민사회의 참여가 전제돼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디지털 플랫폼 경제로 모든 관계가 수렴되는 상황 아래 능동적 시민과 시민사회운동의 회복이 더욱 절실하다. 알고리즘 지배하에 통제 및 감시받고 있는 플랫폼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독해 위에서 도전과 갈등을 통해 사회변화를 이끌어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이런 여건에서 시민사회운동이 경쟁(competition)과 협력(collaboration)의 자세로 정부나 기업의 정책변화를 추동한다는 것은 순진한 기대로 보인다. 필자들은 한국 시민사회운동이 국내외적 도전 속에 매우 열악한 위치에 처하게 한 여러 요인 중 하나를 운동성의 상실에서 찾고자 한다. 시민사회운동은 국가 혹은 기업과의 관계 측면에서 개념에 따라 사회운동조직(SMO), 비정부조직(NGO), 비영리조직(NPO)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러나 어느 한 시민사회운동 단체를 하나의 고정된 개념의 정체성으로 규정하는 것은 타당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실제 그 단체는 운영과정에서 세 가지 속성을 역동적으로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 단체를 사회운동이라는 이념적 지향만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으로, 혹은 그 반대로 NGONPO의 정체성만 고집하는 단체로 규정하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필자들이 한국 시민사회 지형변화를 연구한 결과, 정체성 전환이 어려운 것으로 보고 현실에 안주하는 것을 확인했다.

정부의 조력자, 정책 수행자로 전락

경찰로부터 고문을 받다 사망한 고 이한열군 고문경관 재판 결과 항의와 호헌철폐 등을 주장하며 연세대학교 학생들이 19876월 민주화 항쟁의 불씨를 이어나갔다.

첫째, 시민사회운동에서 공익활동으로 용어가 전환된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운동성 상실의 근거로서 제도화 과정에서 시민사회운동 단체의 용어 선택이 주목된다. 운동성의 약화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파트너십을 구축한다는 측면에서 많은 시민사회운동 단체가 대거 정부와의 거버넌스(협치) 공간으로 이동했다. 공익 개념을 확산하면서 좀 더 중립적인 활동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으며 이는 운동성 약화를 초래했다. 영역별 분화를 통한 다양한 사업과 관련 프로그램이 증가한 반면, 연대와 협력을 축소시켰다. 그 결과 사회변혁을 추동하는 시민사회운동의 운동성은 옅어진 반면, 시민사회의 저변은 넓어지고 다양화되고 전문화됐다. 이를 통해 과연 시민사회운동의 영향력이 확대됐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정부와 친화성이 확대됐지만, 정부의 다양한 문제 해결 정책으로 흡수됐다. 한마디로 시민사회운동과 정부 정책의 차별성이 희박해졌다. 정부의 조력자 혹은 정책 수행자로 전락해 좋게 평가하자면 파트너지만, 동시에 나쁘게 평가하자면 10급 공무원 하청업자로까지 폄하된다.

정책 발굴도, 프로젝트 기획도, 사업 수행도 시민사회운동 단체가 담당한다. 과연 행정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그저 사업을 선정하고 수치화하고 사업비를 집행하는 선에 그치고 있다. 사업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한다. 그저 리더의 마음에 드는 정책발굴, 아이디어만 마련하는 것이다. 일종의 정책 만들기에 올인하느라 협치에 참여한 시민사회 단체도 어느덧 이런 악습에 영향을 받고 정책구현에 집중하지 못한다. 이러한 고질적인 문제와 악순환을 뛰어넘기 위해서도 운동성이 절실하다.

한편, 광의의 시민사회 영역에 속한 단체는 사회운동 영역과의 구별 짓기를 통해 안정적인 자원동원에 집중한다. 정부는 이를 주목하고 시민사회운동과 공익활동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전자는 도전과 갈등의 속성을, 후자는 경쟁과 협력의 속성을 강조한다. 이 두 가지는 서로 구별될 수 있지만 상호 연결될 수 있는 보완적인 것이다. 그런데 다수의 시민사회 단체는 우리와 그들로 구분하고 자원 배분을 통해 고착된 경계 짓기를 진행했다.

한국 시민사회운동의 불안정성은 바로 이러한 고착된 정체성에 기초한다. 예를 들어 국제개발협력 분야의 시민사회 단체 다수는 왜 우리가 사회운동인가? 우리는 참여연대가 아니야. 우리는 빨갱이가 아니야. 우리는 운동권이 아니야! 우리는 자선이야.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이야. 신앙심의 발로야!”라는 경계 짓기에 목소리를 높인다.

제도화의 길에 너무 빨리 들어선 대가

201612월 최순실 게이트에 따른 박근혜 대통령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6차 주말 촛불집회 모습. 촛불집회는 한국 사회운동 가운데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사실 한국 사회의 개발협력 분야에서 NGO가 급격히 성장했고 정부나 기업의 좋은 파트너로 인정받고 있다. 거버넌스라는 이름 아래 수평적(?) 파트너십을 유지하는 것으로 스스로 경계를 짓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 방향과 수원국(受援國) 시민사회의 역량개발, 시민성 제고를 위한다는 진정한 의미의 개발협력을 하려면 시민사회의 건강성, 역동성을 키워내야 한다. 그러려면 수원국 시민사회의 저항성, 비판성, 도전성, 자립성, 도덕성을 길러줘야 한다. 정부 정책을 구현하는 조력자로서, 프로젝트를 대행하는 정책 수행자로서 머물게 될 때 위와 같은 시민사회 연대, 협력의 본질을 놓치게 된다. 개발협력 분야 시민사회 스스로 이를 성찰해야 한다.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서야 한다. 정책 대변(advocacy) 혹은 서비스 전달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라는 경계 짓기를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