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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론[수필 작법, 글쓰기 , 기타 ] 비평 수필이론 등

글쓰기와 관점

by 자한형 2023.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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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와 관점 / 김시래

도전에 응한 이유를 묻자 48살의 추성훈은 '쉬운 길보다 어려운 길을 가야 배울 것이 많을 것'이란 아버지의 가르침을 꺼내들었다. 모두 감동했다. 남은 그의 여정도 그럴 것이다. 백전노장의 말에는 인생을 대하는 관점이 담겨있다. 말과 글은 관점의 도구다. 글속에 담긴 관점은 그의 인생처럼 유일무이해야 한다. 공감마저 얻는다면 세상을 넓히고 세상을 키울 자격을 얻는다. 단어와 어휘가 사용되고 매끄러운 문장력이 동원 될 것이다. 그러나 잊지 말라. 단골 손님이 그릇 구경하러 음식점에 가는 게 아니다. 맛 때문이다. 글도 마찬가지다. 글은 문체가 아니다. 관점이다. "그리운 건 그대일까, 그 때일까" ,"구겨진 종이가 더 멀리 간다". 하상욱 작가의 단문이다. 댓구로 이뤄진 감각적 문체보다 고단한 세상살이에 대한 작가 특유의 시선과 해석에 주목해보라. "유언이란 말 속에 죽은 자가 남아 있는 것", "너무 울어 텅 비어버렸는가 이 매미 허물은" 이란 문장을 보자. 표현은 전혀 다르다. 하지만 생명은 죽음 이후에도 불멸의 흔적을 남긴다는 관점은 유사하다. 관점은 사물과 사건을 대하는 자신만의 해석과 태도다. 세상엔 얼굴의 모양만큼 다양한 관점이 널려있다.

사랑도 가지가지다. 영적 대상에 대한 숭고한 사랑, 피 흘리듯 갈구하는 절절한 사랑, 얼음장에 갇힌 냉기 서린 사랑, 닿지 못한 혼자만의 서글픈 사랑, 사랑 그 자체로 행복한 순수한 사랑이 그것이다.

'신령님, 처음 내 마음은 수천만 마리 노고지리 우는 날의 아지랑이 같었습니다.번쩍이는 비늘을 단 고기들이 헤엄치는 초록의 강 물결 어우러져 날으는 애기 구름 같었습니다. 서정주 [다시 밝은 날에-춘향(春香)의말2]부분

봄이 오고 너는 갔다. 라일락꽃이 귀신처럼 피어나고 먼 곳에서도 너는 웃지 않았다. 자주 너의 눈빛이 셀로판지 구겨지는 소리를 냈고 너의 목소리가 쇠꼬챙이처럼 나를 찔렀고 그래, 나는 소리 없이 오래 찔렸다.찔린 몸으로 지렁이처럼 기어서라도, 가고 싶다. 네가 있는 곳으로. 최승자 [청파동을 기억하는가]부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기형도 [빈집] 부분

처음 한 말이 있었네 채 눈뜨지 못한 솜털 돋은 생명을 가슴 속에서 불러내네 사랑해 아마도 이 말은 그대 귓가에 닿지 못한 채 허공을 맴돌다가 괜히 나뭇잎만 흔들고 후미진 내 가슴에 돌아와 혼자 울겠지 사랑해 정희성 [그대 귓가에 닿지 못한 한마디 말]전문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유치환 [행복(幸福)] 전문

글쓰기는 자신의 인생이 투영된 관점을 세상에 드러내는 일이다. 은희경작가의 "까실까실한 수건처럼 삶의 습기가 제거된" 문체는 삶의 위악과 냉소에 주목한 자화상이다. 김훈작가의 단도직입적 문장 스타일도 지리멸렬한 관념을 차단하고 삶에 구체적으로 작동하는 사실성을 내세운 결과다. 글 속에 사물과 사건에 대한 자신만의 해석을 담아라. 모든 예술품은 관점의 부산물이다. 영화도 그렇다. '설국열차,괴물,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은 자본주의의 얼룩진 현실을 그린다.' 올드보이,친절한 금자씨,아가씨'의 박찬욱 감독은 피냄새 나는 극단(極端)의 창시자다. '장화홍련전, 달콤한인생, 놈놈놈'의 김지운 감독의 주무기는 원색의 색감과 서사적 미장센이다. '하하하','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소설가의 영화'의 홍상수 감독은 가식과 허위로 가득찬 일상을 까발린다.

글은 인생의 부산물이고 관점의 대변인이다. 누구라도 마찬가지다. "오늘, 저는 여러분께 제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세가지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게 모두입니다. 별로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구요. 딱 세 가지입니다.먼저 인생의 전환점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Today, I want to tell you three stories from my life. That'sit. No big deal. just three stories. The first story is about connecting the dots. ) 21세기 최고의 발명가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인생이 원인과 결과로 이어져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우직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라(Stay Hungry ,Stay Foolish)는 교훈을 남겼다. 아이폰은 그런 인생과 관점의 부산물이다. 그의 인생이, 그의 관점이 21세기의 발명품을 만들었다. 글이 빈 깡통이 되지 않으려면 삶의 관점부터 정리해라.

[김시래 성균관대학교 미디어융합대학원 겸임교수]

 

글의 과녁 / 김시래

얼마전 MBC ‘놀면 뭐하니?’를 연출한 김태호 PD가 백상예술대상에서 한 수상소감은 의아했다. 그는 큰 상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놀면 뭐하니?’가 시즌제로 가야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유재석씨가 혼자 끌어가는 것이 큰 스트레스일 거라 생각했는데 어느덧 2년을 향해 달려갑니다.유재석씨가 데뷔 30주년을 맞았는데 센스있는 백상예술대상에서 그 선물을 준비해 주려는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평소 담백했고 겸손한 프로듀서였다. 이날도 수상의 영광을 파트너의 수고와 공으로 돌려 시상식의 스포트라이트를 양보한 듯 보인다. 하지만 그는 다소 방심했다. 시상식의 주인공은 프로그램의 출연자가 아니라 시청자다. 시청율을 올려준 것도,시상식을 보는 사람도 시청자다. 그는 이점을 간과했다. 그의 소감은 유재석과 둘이 만나 사석에서 주고받을 내용이었다. '센스''선물'이란 찬사를 유재석이 아니라 시청자나 관객에게 돌려주었다면 자신들이 빛났을 것이다. 은연중에 자화자찬으로 들리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있었다. 무한도전과 차별화를 주기 위해 싱글 MC를 내세운 것도, 2년차 인기 프로그램의 숨은 주인공도 결국 자신이기 때문이다. 결국 시청자를 앞에 놓고 두 사람의 파트너쉽을 자랑하는 꼴이 됐다. 어떤 분들은 지나치게 예민하거나 까탈스럽다고 하실 것이다. 하지만 성공의 이력이 쌓인 사람들이 잊기 쉬운 것이 역지사지의 관점이다. 자기 생각이 굳어져 남을 살필 겨를도 여지도 사라진다. 글쓰기의 고수는 상대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전략적으로 선별한다.

글쓰기의 출발은 생각이다. 내 관점을 세우기전 상대의 의중을 읽어야한다. '읽히더라!' 라는 찬사는 문체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아니라 그의 생각부터 읽어야 한다. 투우사가 소의 입장에서 생각하듯이 상대의 입장에서 시작해라. 영화 '강력3'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배우 김민준과 허준호는 선후배형사다. 후배가 형사라는 직업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그만 두려고 하자 선배형사가 꺼내든 방법은 무엇이였을까? 그는 말없이 서랍속에 간직해 둔 사직서를 꺼내 보여주었다. 자신도 같은 입장임을 알렸다. 사람은 자신같은 타인을 신뢰한다. 그의 생각부터 살펴라. 살피되 진짜 마음을 살펴야한다. 쉬운 일이 아니다. 내 마음 나도 모르니 말이다. 스승의 날, 후배가 아들의 담임선생님에게 감사의 글을 보냈다. 선물 포장지에 붙여진 엽서에 "아이가 공부에 취미를 붙여 다행입니다. 선생님을 존경하고 있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며 즐겁게 학교생활을 하는 모습이 대견합니다. 진정한 공부란 사람에 대한 예의를 배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라고 적었다. 그가 선생님에게만 보낸 글일까? 또 다른 독자가 숨어있다. 엽서를 전달하는 아들이다. 아빠는 아이가 먼저 읽어 글처럼 훌륭하게 자라나길 바랬다. 독자에 대한 심도깊은 조사나 연구를 선행해라. 골프를 좋아하는 사람과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의 관심사는 다르다. 아이가 없는 독신자는 입시문제에 무관심할 것이다. 마음을 읽어야 취향과 관심에 맞는 문장을 쓸 수 있다. 개인주의와 디지털테크 시대의 독자들은 확실한 실리를 쫒는다.

글에 독자에게 챙겨줄 구체적 혜택을 담아내라. 한옥연구가 이상헌 작가는 그의 책 '이야기를 따라가는 한옥여행'에서 한옥마을의 멋을 자연스런 일상의 언어로 표현했다. “한옥에는 음악처럼 높낮이가 있어 끊임없이 리듬을 만들어낸다. 지붕 선이 리듬을 타고 추녀 끝에 걸리면, 벽면을 채운 재료들이 질감의 변화를 이끌며 흥을 돋운다. 한옥에서 시작한 율동감은 자연스럽게 마을로 이어진다. 가을이 봄처럼 화사한 도래마을이라면 율동감이 당연 도드라진다. 마을에 들어서는 순간 강한 율동감이 몸을 자극해 저도 모르게 발걸음이 흥겹다." 라며 읽히는 문장의 진수를 보여준다. 그의 문장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읽는 사람이 가져갈 실리를 가미했다. “겉모습을 중시하는 다른나라 건물과 달리 한옥은 사는 사람을 중시한다. 때문에 한옥을 제대로 보려면 그 집에 사는 사람의 시선을 가져야 한다.그 집에 사는 사람처럼 대청에 올라 먼산바라기도 하고,방에 앉아 문턱보다 높은 창턱인 머름에 팔을 얹고 마당도 내다봐야 한다."라고 덧붙인 것이다. 한옥마을의 아름다움에 더해 한옥을 감상하는 방법까지 아울렀다. 글의 가치는 자기만의 관점이고 어휘나 문체는 그 관점을 드러내는 수단이다. 새로운 시대의 문장은 독자에게 전해줄 실리적 이득이다. 시대의 흐름이라는 알맹이를 놓치지 말라. 어느 영화에서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라고 했다지만 그것도 과녁을 바라보고 시위를 당겨야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