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 조명숙
마을 어귀에 자동차를 세웠다. 훅 달아오른 한여름 무더위를 밀치고 내리려는데 발밑에 검은 물체가 엎뎠다. 반사적으로 발을 안으로 들이는 순간, 그 물체는 일어섰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꼬리를 흔들었다. 늙었지만 낯익은 모습이다. 시고모님을 뵈러 온 길에 내 차 소리를 알아듣고 마중 나온 건 까미였다. 몇 년 만의 해후다.
고모님 댁은 수안보 면이다. 면에서도 골짜기로 쑥 들어가 고개를 젖혀 올려다보면 산봉우리에 집 몇 채가 희미하게 걸려있는 동네다. 구곡양장의 좁은 길을 한동안 올라야 닿는다. 거기서도 윗집이어서 하늘을 이고 서면 선인이 된 듯 고통이나 질병 없이 영원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천혜의 자연을 품은 곳이라 그런지 고모님은 이곳으로 시집와, 구순에 이르기까지 무병장수하신다. 층층시하의 겸양지덕으로 살아온 세월에 허리가 굽긴 했지만 매사 의지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가 한결같으니 안락한 삶을 누리신다. 어른들은 오래전 잠들고 슬하에 칠 남매도 제 갈 길로 떠나 벅적벅적하던 집이 휑했다. 하지만 지아비는 밭 갈고 지어미는 씨 뿌리며 부부가 다붓하게 살다 보니,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행복이 새록새록 솟았다.
그때 별안간 고모부께서 운명하셨다. 자식들은 의지처였던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홀로 된 어머니 걱정이 태산이었다. 강아지를 입양한 건 고모부의 삼우제를 지낸 직후였다. 큰딸이 허허한 어머니 마음을 헤아려 갓 태어나 눈도 뜨지 못한 것을 데려왔다. 제를 지내고 각자 집으로 나서던 사람들이 작고 새까만 것이 고물고물 움직이는 모습이 신기해 한참을 눈여겨보다가 돌아갔다. 얼마 후 다시 왔을 때는 검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태엽 감은 강아지 인형처럼 뒹굴어 앙증맞기 그지없었다. 검정 털이 짧고 매끄럽게 광택이 나는 미니어처 핀셔 강아지를 가족들은 까미라고 불렀다. 그렇게 까미는 고모님과 한솥밥을 먹게 되었다.
까미는 누구를 보고도 짖지 않았다. 기일이 되어 제를 지내러 가거나 명절에 고모님을 찾아뵐 때도 꼬리만 흔들 뿐 멍 소리 한번을 내지 않았다. 혹시 벙어리가 아니냐고 여쭈었더니, 한번 다녀간 친척은 용케 알아서란다. 언젠가 연락 없이 방문한 적이 있다. 텅 빈 집에 까미 혼자 있었다. 그때 타지에서 만물 장수가 물건을 팔러 왔다. 장수가 집 앞을 서성거리자 으르렁대기 시작했다. 안으로 들어와 가방에서 물건을 꺼내 들고 거래를 하려 하자 사납게 컹컹댔다. 내가 이 동네 사람이 아니라며 손사래를 쳐도 흥정을 벌이자 격렬하게 짖어 장수를 내쫓고 말았다. 타인을 경계하고 낯익은 이들에게는 얌전하게 구는 게 가족을 보호하려는 사랑으로 보였다.
까미는 일종의 파수꾼이다. 수안보 오일장이 서는 날이면 고모님은 텃밭에 심어 가꾼 푸성귀들을 채취해 장터로 나가신다. 사람 구경하고 이웃들과 남새도 나누며 친구 만나 소주잔을 기울이신다. 까미는 종일 집을 지킨다. 낯선 사람이 나타나면 거세게 공격하는 통에 얼씬도 못 한다. 집을 보다가 벌떡 일어나는 때가 있다. 고모님이 오는 걸 미리 알고 마중하는 경우다. 밖을 내다보면 영락없이 함지박을 인 고모님이다. ‘까미야, 집 잘 보고 있었어?’라고 사람 대하듯 물으면 꼬리를 흔들며 화답한다. 대견한 마음에 머리를 쓰다듬으며 장에서 가져온 치킨 봉지를 뜯어 함께 드시곤 말씀하신다. “야만 집에 있으면 든든햐, 웬만한 사람보다 낫다니께.” 그 말 속엔 깊은 신뢰가 담겨있다.
동장군이 찾아오면 까미는 고모님과 안방에서 지낸다. 같이 밥 먹고 한 이불 속에서 잔다. 고모님도 겨울 동안은 장에 나가는 것을 포기하고 두문불출하신다. 한번은 안위가 염려되어 눈 내리기 전에 다녀오려고 수안보로 향했다.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밟고 살며시 안방 문을 열었다. 모두 깊은 잠에 빠져서 내가 온 줄 몰랐다. 곁에서 자고 있던 까미가 먼저 일어나 옷자락을 물어 당기며 고모님을 깨웠다. 깰 기미가 보이지 않자 앞발로 차고 혀로 얼굴을 핥으며 부산을 떨었다. 단잠에서 깬 고모님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야는 밥때도 안됐는데 왜이랴.’ 하시며 몸을 일으켰다. 까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한쪽에 물러앉아 멀뚱멀뚱 나를 쳐다보았다.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는 듯 귀를 쫑긋거리며 형편을 살폈다.
그때 고모님이 말씀하셨다. “야는 그냥 개가 아녀, 남편처럼 의지가 되고 아들같이 미덥고 딸만치 내 마음을 안다니께. 꾀가 말짱해서 매사를 거들어 준다니께. 지금도 봐봐 니 왔다고 날 이렇게 깨우잖혀! 인자 야 없이는 하루도 못 살것어. 근디 야도 나도 나이 들어가니 어째. 갈 때 가더라도 같이 갔으면 좋것는디…….” 미니어쳐 핀셔의 수명은 13~16년이다. 당시 까미 나이가 12살이었으니 80을 갓 넘긴 고모님 연세와 비슷했다. 한낱 미물에 지나지 않은 개이지만 황혼의 짝꿍으로 살다가 세상을 등지고 싶은 것이 고모님 원이었다. 까미의 바람도 그럴 것이다. 나란히 세상을 뜨고 싶은 것은 그들의 소망이었다.
‘철컥’ 차 잠긴 소리가 나자 까미가 앞장선다. 얼마나 쏜살같이 달리는지 뛰다시피 뒤를 따른다. 마당을 지나, 까미가 훌쩍 툇마루로 올라섰다. 한 뼘 남짓 열려 있는 안방 문을 앞발로 열어젖혔다. 고모님이 누워 계신다. 주무시나 싶어 들어가 보니 탈진 상태다. 식사한 흔적이 없는 게 폭염에 끼니를 거르고 기운을 차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급히 119에 전화를 건다. 까미가 고모님 옷자락을 붙잡고 애처롭게 낑낑댄다. 우는 것 같기도 하다. 그 모습을 보며 목울대가 뜨거워진다. 어쩌면 까미는 날 마중 나온 것이 아니라 이런 상황을 알리려고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렸는지 모른다.
성경에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다. 라는 구절이 있다. 하지만 까미의 소리로 전하는 사랑, 행동으로 옮기는 믿음, 끝까지 동행하고픈 소망은 다 사랑이다. 그 사랑을 한 땀 한 땀 박음질하며 가슴에 새긴다.
'현대수필 6'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색깔있는 그림자 (3) | 2024.03.15 |
---|---|
나는 왜 수필을 쓰는가 (3) | 2024.02.15 |
한 알의 씨앗일지라도 (1) | 2023.10.07 |
맛글 (1) | 2023.10.04 |
물 때 (0) | 2023.09.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