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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소비와 소확행 공존사회 좌절 혹은 행복 2

by 자한형 2024. 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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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소비와 소확행 공존 사회 좌절 혹은 행복 2/ 김호기

소비의 두 얼굴

그런데 이쯤에서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베블런에서 부르디외로 이르는 일련의 분석이 보여주듯, 현대 자본주의 시대에 소비는 부정적 측면만 갖고 있는 걸까. 소비가 갖는 긍정적 측면을 부각한 연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영국 사회학자 콜린 캠벨은 긍정적 시각을 대변한다.

캠벨은 자신의 저작 낭만주의 윤리와 근대 소비주의 정신’(1987)에서 소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했다. 캠벨에 따르면, 인간에게 내재한 낭만주의 윤리는 직관을 중시하고 욕망과 쾌락을 추구한다. 이 낭만주의 윤리는 소비활동에서 진정성을 추구하는 중간계급의 가치로 뿌리내린다. 그런데 구입한 상품에 대한 만족이 이내 사라지면, 새로운 욕망과 쾌락을 다시 추구하게 된다. 낭만주의 윤리가 소비주의 정신을 고취하고, 소비자의 끝없는 욕망이 자본주의를 전진시킨다는 게 캠벨의 논리였다.

한국에서 출간된 콜린 캠벨의 낭만주의 윤리와 근대 소비주의 정신’(The Romantic Ethic and the Spirit of Modern Consumerism, 나남출판, 2010). [나남출판]

여기서 주목할 것은 캠벨이 소비를 부정적으로만 파악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비를 향한 인간의 내밀한 욕망 추구가 자아실현을 위한 필요조건을 이룬다고 캠벨은 강조한다. 이러한 견해는, 생존에서 풍요로 서구 사회생활의 흐름이 변화한 이후 특히 젊은 세대에게 개성적 취향과 이에 따른 소비문화가 중요해진 까닭을 설명해 준다.

그렇다면 21세기 정보자본주의 아래서 소비의 미래는 어떻게 볼 수 있을까. 두 가지를 특히 주목하고 싶다. 첫째, 소비에 대한 관심이 더욱 증대할 것이다. 이 만개하는 개인주의 시대의 개인적 정체성 형성에서 의식주, 문화, 여가의 소비에 대한 선택은 갈수록 중요해질 것이다.

둘째, 소비에 대한 새로운 성찰이 필요하다. 소비를 통해 결국 얻으려고 하는 것은 행복의 감정이다. 그런데 이 행복감을 정의하기란 어렵다. 어떤 이에겐 더 많은 소비가, 어떤 이에겐 더 적은 소비가, 다른 이에겐 이른바 착한 소비가 행복감을 안겨줄 수 있다. 소비를 일방적으로 비판하지 않되, 소비에 담긴 인간적·사회적 의미를 성찰해야 할 시대 앞에 인류는 서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명품 소비와 소확행

21세기에 들어와 우리 사회에서 주목할 대표적인 두 가지 소비 현상은 명품 소비와 소확행이다. 먼저, 의류, 핸드백, 신발, 액세서리 등을 포함한 명품을 선호하는 것은 어느 나라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명품 소비 경향은 매우 두드러진다. 이러한 명품 소비 경향을 둘러싸고 뜨거운 사회적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명품 소비는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는 상징이다. 앞서 말한 베블런이 개념화한 과시적 소비의 전형적 사례다. 상류층의 과시적 소비는 다른 계층의 모방적 소비를 부추긴다. 우리 사회에서도 명품 소비는 물론 모방적 소비가 널리 확산돼 왔다.

주목할 것은 명품 소비의 확산 과정에서 새로운 차별화 경향을 관찰할 수 있다는 점이다. 명품족()은 특정 회사와 상품에 따라 등급이 나눠지고, 이들 사이에는 쫓아가기 어려운 격차가 생긴다. 일부 상류층은 상품 로고도 거의 보이지 않고 아는 사람만 아는 제품을 골라서 소비하기도 한다. 여기서 부르디외 소비이론을 떠올릴 수 있다. 취향은 타고나는 동시에 길러지는 것이다. 우리 사회도 계급에 따른 소비 양식이 부르디외가 말한 아비튀스로 자리 잡아왔음을 보여준다.

루이비통이 올해 첫 가격 인상을 단행한 61일 서울의 한 백화점 루이비통 매장을 찾은 시민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뉴스1]

명품 소비 현상에서 특기할 것은 소비 양극화의 이중적 경향이다. 명품 소비와 모방적 소비 간의 양극화가 하나라면, 명품·모방적 소비자들과 그로부터 배제된 사람들 간의 양극화가 다른 하나다. 과시적 소비는 물론 모방적 소비조차 참여할 수 없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현실에서 명품 소비의 확산은 계층적 위화감을 증대시켜 사회통합을 약화시키고 공동체적 연대를 훼손할 수 있다. 소비는 자아실현의 자유이자 자기 정체성의 구현일 수 있지만, 자신의 소비가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한편, 최근 흥미로운 소비 현상으로 부상한 것이 소확행이다. 소확행이란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의미한다. 이 소확행이란 말은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 랑겔한스섬의 오후에 기원한다. 갓 구워낸 빵을 손으로 찢어서 먹는 것, 겨울밤 부스럭 소리를 내며 이불 속으로 들어오는 고양이의 감촉 등이 바로 행복이라는 메시지다.

소확행은 소비 트렌드의 일종이다. 소확행에 앞서 웰빙’ ‘힐링’ ‘욜로등이 존재했다. 김난도 등의 트렌드 코리아 2018’이 지적하듯, 소확행은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라는 욜로(YOLO·You Only Live Once)가 구체화된 모습이다.

우리 사회에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경향이 최근의 일은 아니다. 소확행은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마음에 드는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자기 방식의 휴식을 취하는 평범한 일상들이다. 길게 본다면 1950~60년대에 추구됐던 소시민적 행복한국적 소확행의 역사적 기원일 것이다.

평범하지만 소중한 일상이 재발견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였다. 불평등이 구조화되고 불안이 일상화되는 과정에서 삶의 의미에 대한 성찰이 진행되고, 행복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 제기됐다. 학업·취업·결혼으로 이어지는 생애주기의 자연스러운 진화가 어려워지면서 중산층의 삶을 누리는 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현실에 직면하게 됐다. 채워지기 어려운 미래의 욕망보다 당장 이룰 수 있는 현재의 행복이 더 중요한 소확행이 부상한 맥락이다.

행복으로서의 소비

앞서 말했듯, 행복은 정의하기 쉬우면서도 어려운 말이다. 행복이란 만족감·즐거움·기쁨이 존재하는 마음의 상태다. 아리스토텔레스 방식으로 말하면 최상의 좋음’, 다시 말해 최고선이 행복이다. 행복이 간단하지 않은 것은 사람마다 그 최고선이 다르다는 데 있다.

이처럼 행복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로 존재한다. 만족감·즐거움·기쁨의 대상은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행복을 성취할 수 있는 조건 또한 다양하다. 어떤 이들은 쉽게 행복에 도달할 수 있는 반면, 다른 이들은 노력을 기울여도 행복에 다가서기 어려울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소비에 담긴 행복의 질문은 결코 가볍지 않다. 삶이 일상의 연속이라면, 그 일상에 행복을 안겨주는 소비를 부정적으로만 파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 이제 결론을 내리자. 명품 소비와 소확행은 소비가 경제 현상을 넘어서 사회적·문화적 삶에 작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시적 소비를 도덕적 기준으로 비판하는 것은 위험하지만, 그렇다고 사회적 위화감을 부추기는 소비 양태를 그대로 지켜보는 것 또한 불편하다는 게 솔직한 생각이 아닐까. 소확행은 젊은 세대가 겪는 사회적 좌절의 반작용 이상의 의미, 다시 말해 자신만의 일상과 삶의 의미를 찾고 채워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21세기 현재 소비가 일상의 가장 중요한 부분의 하나임은 부정하기 어렵다. 일상이 행복하지 않은데 인생이 행복할 리 없다. 어떤 소비가 내게 행복을 안겨주고, 타인의 소비를 어떻게 봐야 할지는 개인적 차원에서 한 번쯤 숙고해야 할 문제다. 소비사회의 진전에 따라 소망스러운 소비 양식 및 문화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이냐 하는 새로운 과제 앞에 우리 사회는 이미 서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