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딘스키 추상 회화의 아버지/ 아트랑
칸딘스키 / 노랑 빨강 파랑(1925년) / 파리 국립 미술관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 1866년 12월 16일 ~ 1944년 12월 13일(향년77세)
- 추상 미술의 개척자 바실리 칸딘스키에 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작품 활동
바실리 칸딘스키는 러시아 출신의 화가로 추상회화 예술의 선구자입니다. 그의 예술 활동은 현대 미술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작품은 시각적, 정신적 차원에서 강력한 영감을 줍니다. 미술의 정신적인 가치와 색채에 대한 탐구로 20세기 가장 중요한 예술가로 꼽힙니다.
그는 대학에서 법과 경제를 전공하였으나 뒤늦게 예술가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칸딘스키는 자신만의 예술철학을 구축해 가며 다양한 연구를 해 나가는데 예술가의 생각과 감정 등의 내적 요소가 작품의 형식을 결정한다는 이론서<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를 씁니다. 이 책은 캔버스 위의 작가가 표현하는 것들은 작가의 내면세계를 반영한 것이고 작가가 느낀 감정을 감각적으로 표현했을 때 보는 이도 같은 감정을 느낀다는 것으로 많은 지식인들의 호평을 받았습니다. 그는 대상의 구체적 표현이 아닌 선명한 색채와 점, 선, 면 등의 순순한 조형 요소만으로 감동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작품에 작가 내면의 감정을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아방가르드의 모임인 청기사파를 조직했으며 <점, 선, 면>이라는 이론서를 출간합니다. 이는 추상표현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한 것이며 예술교육 방법을 제시해 줍니다.
그는 음악은 그림이 될 수 있고 그림도 음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자신만의 표현법으로 추상 작품을 완성해 냅니다.
그의 작품에서 보이는 다채로운 색상과 자유분방한 조형요소들은 많은 분야에 영감을 주고 있으며 그의 그림은 오늘날 미술 교육에서도 많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주요 작품으로는 <인상>시리즈, <구성>시리즈, <즉흥>시리즈, <푸른 하늘>, <검은 광장에서>, <노랑 빨강 파랑>, <블랙 바이올렛>, <상승> 등이 있습니다.
생애.그리고 추상미술로의 전환
칸딘스키는 1866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납니다. 오데사에서 성장했으며 부유한 환경이었기에 어릴 때부터 여행과 음악 등 다양한 경험을 합니다. 1886년 모스크바 대학에서 법학과 경제학을 전공하고 1892년 변호사 자격증을 땁니다. 그의 사촌 안나 키미야키나와 결혼하고 1896년 법학 교수직을 제안받았으나 예술에 관심이 커져 독일 뮌헨에 가서 회화를 배웁니다. 모스크바를 떠나기 전 클로드 모네의 <건초더미>를 보고 큰 감명을 받았는데 훗날 그의 작품에 큰 영감으로 작용합니다.
그는 인상주의 작품에 감동을 받았기에 처음 그의 작품은 인상주의적이었습니다. 1901년 뮌헨에 팔랑크스 전시협회 및 미술학교를 창립하고 그곳에서 그보다 11살 어린 독일의 표현주의 화가 '가브리엘 뮌터'를 만나게 됩니다. 그녀는 그의 첫 제자였고 미술에 재능을 가지고 있던 그녀는 그와의 수업에서 새로운 예술을 경험하고 그와 사랑에 빠집니다. 그리고 아내와 별거 중인 칸딘스키와 동거합니다. 그는 그녀와 몇 년간 수많은 도시를 여행하면서 함께 작품 활동을 했습니다. 그의 작품을 점차 표현주의적 경향이 강해졌으며 1909년 '신예술가 협회'를 설립합니다.
1910년 칸딘스키가 추상미술로 전환한 시기로 수채화로 최초의 추상화를 완성하고 이후 작품에서 점차 대상의 모습이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그는 모네의 <건초더미>에서 느꼈던 그 대상이 무엇인지 모르고 감동을 받은 것처럼 조형적 대상이 없어도 작가의 내면의 표현으로 감동을 줄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1911년 자신의 추상미술을 받아주지 않는 '신예술가 협회'를 탈퇴하고 '청기사파'를 창설하고 추상 화가로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하여 국외 퇴거 명령을 받은 칸딘스키는 러시아로 떠납니다. 뮌터는 그를 기다렸으나 그는 연락하지 않았고 1916년 결별합니다. 그리고 1917년 50이 넘은 나이에 그보다 27살이나 어린 장군의 딸 니나 안드레프스카야를 만나 두 달 만에 결혼합니다. 러시아에서 문화연구자로 활동하고 모스크바 미술 학교의 교수로 지내다가 1921년 독일로 돌아옵니다.
1922년부터 1933년까지 예술과 건축을 위한 학교인 바우하우스에서 회화와 미술이론을 가르치는 교수로 지냈으며 나치에 의해 바우하우스가 폐쇄될 때까지 부교장으로서 자리를 지켰습니다.
그의 추상화는 형태와 색채가 모두 격렬한 움직임을 보이는 '드라마틱한 시대', 건축적 구성의 '컴포지션 시대', '원의 시대', '구체 예술'의 시대로 나뉠 수 있습니다.
1933년 파리로 망명하여 프랑스 국적을 취득하고 작품 활동을 하다가 1944년 77세의 나이로 생을 마칩니다.
점, 선, 면의 고정 관념을 깨고 이를 이용한 기하학적인 조형 요소들과 다채로운 색상들로 이루어진 독창적인 그의 작품과 그의 이론은 추상회화 발전에 밑거름이 되었을 뿐 아니라 미술사에 있어서도 크나큰 변화와 혁명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추상미술
추상미술은 색채와 형태가 대상 세계를 재현하지 않는 비대상적 미술을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대상의 구체적인 형상을 나타낸 것이 아니라 점, 선, 면, 색과 같은 순수한 조형요소로 표현한 미술의 한 흐름으로 형이나 색은 각각 고유한 의미와 느낌을 가지고 있어 그것들의 어울림만으로 그린 이의 생각과 느낌을 표현할 수 있다는 이론입니다.
추상미술은 초현실주의에도 영향을 주었으며 현대 건축이나 공예 디자인에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 정리 /느림보아톰
● Wassily Kandinsky (1866 ~ 1944) [출처] 바실리 칸딘스키 (naver.com)
러시아 출신의 표현주의 대표화가 추상회화의 창시자이다.
법학과 경제학을 전공했으나 추후 독일에서 미술 교육을 받고 화가가 되었다.
초기에는 화려한 색의 풍경화나 러시아 민요 등의 영향을 받았으나 차츰 구상적인 묘사에서 벗어나 추상적인 작품에 집중하였다.
그의 추상회화는 형태와 색채 모두 격렬한 동세(動勢)를 보이는 ‘드라마틱한 시대’ (1920~1924), 건축적 구성의 ‘컴포지션 시대’ (1920~1924), ‘원의 시대’ (1925~1928),
만년의 ‘구체 예술의 시대’로 크게 나눌 수 있다.
<<늦은 예술가의 길>>
모스크바에서 열린 프랑스 인상파 전시회에서 모네 "건초더미"를 보고 화가의 길을 접어든다.
뮌헨에서 미술을 배우며,야수파, 표현주의에 영향을 받아 색의 표현적 파워를 보여주며,
색채주의자로서의 능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① Beach Tents in Holland, 1904
② Couple riding, 1906
③ Colorful life, 1907
④ Autumn in Bavaria, 1908
《구성 4, Composition IV》 (1911)
그림이 돌려져 있어 뭔지 모르다가 자신 작품이란 걸 깨닫고 남은 생애동안 새로운 방향을 바꾼 작품.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 파괴를 통한 생성이라는 니체의 개념을 받아들여,
이러한 변화를 이론적으로 설명하고자 했으며, 철학자 루돌프 스타이너 외의
몇몇 사람들이 보급한 계시록의 성경개념과 연결되었다.
애매한 활기와 흥분이 넘치는 화면 왼쪽은 좋은 시절이 끝나버린 세계를 묘사하고 있다.
무지개에 에워싸인 태양은 검은테에 가려져 있다.
전사의 전투용 창들이 왼쪽에서부터 그림속으로 침투하고 있으며, 그들 위로 두 마리의 말이
뒷다리를 맞잡으며 일어서고 있다.
멸망을 부추기는 거대한 물결과 더불어, 화면 중앙에는 세 명의 카자흐스탄 기병대가
등장하고 있으며, 그들 위로는 성곽 도시가 산꼭대기에 불안정하게 자리잡고 있다.
한결 밝고 평온해보이는 화면 오른쪽은 중앙의 푸른 산이 상징하듯, 영적 갱생을 암시한다.
수의에 덮인 채 깨어난 두 명의 죽은 시신은 요한 계시록에 묘사된 바와 같이,
죽은 사람들이 다시 일어나야 하는 순간을 표현한다.
1911년, 구성 No 4, Oil on canvas, 159.5 x 250.5 cm, 뒤셀도르프,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미술관
어느 날 저녁 때, 야외에서 제작을 하다가 돌아온 그는 전에 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그림을 발견했다. 비정형의 형태와 색채만 보이고 무엇을 그렸는지 알 수 없는 그 그림은 실은 벽에 옆으로 눕힌 상태로 세워져 있던 자기의 그림이었다.
이것을 보고 그는“나의 그림을 나쁘게 만들고 있는 것은 대상(對象)이다.”
라고 깨닫고 그의 화면에서 구체적인 대상이나 형태를 없애는 방향으로 나가게 되었다.
무르나우에서 그린 그림들은 특별하게 강렬하고 화려한 색이 인상적이다.
구조의 정확성과 작열하는 색채, 파랑색(blue)과 노랑(yellow)의 보색대비를
주로 사용하면서 점차적으로 모든 형태를 더욱 단순화시키며 화면을 형식화하고 있다.
결국 그의 그림은 풍경 그 자체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색으로 구성된
삼각형이나 사각형으로 이루어진 구조였고 일종의 기호였다.
① Autumn in Bavaria, 1908
② Murnau, Burggrabenstrasse 1, 1908
③ Murnau-Landscape with Church 2, 1910
④ Kochel - Graveyard and Rectory, 1919
<<뮌헨 & 러시아 작품활동>>
“외부 세계로부터 받은 인상에 더하여, 내적 세계의 필요성을 경험하면서,
자유로운 예술적 형성과 조합을 희망한다.”라는 간단한 표명을 내세워
뮌헨의 "신미술가 동맹"을 결성하고 그 내부에서 다시 청기사파(The Blue Reiter)를 만들었다.
청기사파 활동을 통해저서 [예술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을 발간 후 최초의 추상 수채화 <Oars>를 그렸다.
① Improvisations 3, 1909,
② Oars, 1910
③ Lyrically, 1911
④ Final design for the cover of the
Almanach de Blaue Reiter, 1911-1912
칸딘스키는 회화적 언어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물적 언어를 사용하지 않아야하며,
인간 내면, 예술가의 내적 필요에 의한 정신적인 것을 위해서는 전통적인 예술의 재현적・대상적 표현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런 자신의 이론에 부합하는 작품을 제작했다.
<Impressions, 인상>에서는 자연에 대한 경험을 통한 감정과 어떤 내적 울림과 관계된 내용의 표현이었으며,
<Improvisations, 즉흥>는 외부의 대상과 상관없는 무의식적 특성이 담긴 내적 표현이었고,
<Compositions, 구성>는 외적인 우연성과 관계없는 전적인 조형요소의 조합을 달성하기 위한 시도였다.
① Improvisation 10, 1910
② Impression 4(Gendarne), 1911
③ Composition 4, 1911
④ Improvisation 26(Rowing), 1912
<<독일 바우하우스 작품활동>>
[출처] 칸딘스키-7. 독일로, 바우하우스
예술의 실용적 기여가 중요한 문제로 대두 되면서1907년 ‘미술의 실생활화’를 제창했던
독일 공작연맹은 바우하우스의 선도자였다. 이곳에서는 기계 생산품의 질적 향상을 위해
미술과 근대공업의 결합을 주장했다.
칸딘스키는 ‘미’를 퍼뜨리기 위해, 모든 사물을 미적 존재로서 구원하기 위해
열등한 것인 산업생산물을 예술과 접목시켜야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칸딘스키가 ‘키치(Kitsch)’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이때부터이다.
그리고 자신의 그림에 일련의 장식적인 모티브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면서
형태의 장식적 속성을 실험했다.
주) 키치 : 질이 낮고 값싼 예술품이나 공예품
그가 사용한 기하학적 모양들 즉, 사각형, 마름모, 원, 격자문의, 선 그리고 꼬인 곡선으로 이루어지는 기하학적 표현 양식은 상당히 매력적이고 구성적인 우아함을 가지고 있다.
① Black Grid, 1922
② Composition 8, 1923
③ Through-going Line, 1923
④ On White 2, 1923
칸딘스키의 에세이
[점, 선, 면까지(point, line to plane)]은 예술 교육방법을 자세히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출처](명화감상) 칸딘스키의 ‘노랑 빨강 파랑’ - YouTube
어떤 의미도 부여되지 않은 수순한 조형 요소들을 만들어내는 회화적 어휘를 창출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시각 예술은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추상 표현의 방법론에 대한 체계화를 위해 언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① Upward Tension, 1924
② Yellow-Red-Blue, 1925
③ On Point, 1928
④ Light, 1930
<<파리 생활 작품과 죽음>>
말년의 표현은 추상의 종합 단계로 주로 선명도가 높은 순수색조를 사용하며,
그 동안 그가 사용했던 다양한 빛깔들이 집약되면서 더 조화로우면서도 엄격한 조형 논리에 의해 배치된 색채를 나타냈다.
그 결과 동원된 모든 요소들은 각각의 특징을 드러내며 활기 넘치는 하나의 화면으로 나타나게 된다.
[출처] 칸딘스키-8. 피난과 종합 그리고 죽음
① Two Green Points, 1935
② The White Line, 1936
③ Composition 9. 1936
④ Centre with Accompaniment, 1937
⑤ Many-colourd Ensemble, 1938
⑥ Composition 10, 1939
Sky Blue는
자연 속 미시세계에 대해 근원적 형태로 접근하는 의미를 가진 작품!
작품을 보면 마치 현미경으로 유리 플레이트의 미생물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며,
이 형태들은 중력에 영향을 받지않고 자유로운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으며,
파란 바탕 위에 마치 부유하고 있는 듯한 작품이다.
칸딘스키가 자연의 순수한 형태를 찾으려 할 당시의 작품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Tempered Elan은 1944년 6월에 완성한 최후의 작품!
그해 병상에 들어 12월 13일에 사망했다.
① Sky Blue, 1940
② Reciprocal Accord, 1942
③ Tempered Elan(그의 마지막 작품), 19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