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세계 최고의 휴양지& 프리버드07
오늘은 어제 13일 화요일 방영했던 tvN 벌거벗은 203회 '비극의 섬 하와이는 어떻게 세계 최고 휴양지가 되었나?'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볼까 하는데요.
하와이. 정확히 하와이 제도는 태평양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미국의 50번째 주로, 섬과 환초로 이뤄진 곳인데요. 이중 가장 큰 섬의 이름인 하와이가 대명사처럼 지역명으로 쓰이고 있는 셈이죠ㅎㅎ
여러 특색이 있겠지만 특히나 하와이는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명성이 높은데요. 1년 내내 기후가 좋기도 하고, 4면이 바다인지라 해양 레저를 즐기기에도 적격이라고 하고요.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신혼여행의 전통적인 명소로 꼽히는 곳이기도 하죠.
그런데 이러한 최고의 휴양지로 자리매김한 하와이의 과거 역사 속에는 비극적인 일들이 많았었다고 합니다.
미국의 땅이 아니었던 하와이
상술한 것처럼 태평양 한가운데 위치한 하와이 제도는 당초 미국의 영토가 아닌 원주민들의 땅이며 독립적인 왕국이었다고 하는데요.
사실 어찌보면 당연한게 과거 하와이에 대한 접근이 쉽지도 않았을 것이고, 애초에 미국도 영국으로부터 독립 전쟁 끝에 1879년에 정부를 수립한 것이었으니깐요. 게다가 이후 서부개척시대부터 지나와야할테니
아무튼, 이 하와이는 대륙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대양 한가운데 자리한, 그것도 큰 하나의 섬이 아닌 제도로 이뤄져 있는 특성상 고립된 형태로 존재했었는데요. 이런 고립된 섬 하와이에 터를 잡은 최초의 인류는 폴리네시아인이라고 합니다.
폴리네시아는 오스트렐리아 대륙 북동쪽의 자리한, 약 1천개가 넘는 섬들의 지역으로 이곳에 살던 폴리네시아인들은 남태평양의 해양민족으로서 지리적 특성상 일찍이 해양술이 발달해 남태평양의 여러섬에 퍼져 정착했다고 하는데요.
이날 방송에 따르면 이들 폴리네시아인들이 약 600년경 하와이까지 항해를 해서 와서 정착했다고 합니다. 하와이라는 이름도 그들이 정착한 후 '신들이 머무는 땅'이란 의미의 하와이를 이름으로 붙인 것이라 하네요.
그렇게 하와이를 비롯한 각 섬에 자리 잡아 부족국가 형태로 이어오던 하와이에 첫 번째 변곡점이 생겼으니, 18세기 후반 영국의 등장이었습니다.
영국의 등장과 하와이 공화국
아시다시피 18세기 영국은 이른바 대영제국 시절로 전세계에 식민지를 건설하면서 전성기를 구가하던 때였는데요. 당시 영국의 탐험가인 제임스 쿡은 1778년 탐사대를 이끌고 유럽인 최초로 하와이에 도착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날 방송에 따르면 당시 하와이의 원주민들은 제임스 쿡을 매우 환대했다고 하는데요. 그를 자신들이 모시는 로노 신의 귀환이라 여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로노신은 자신이 바다를 통해 돌아올 것이다라고 예언을 했다고 하며, 하와이 원주민들은 로노신의 신성함을 기리기 위해 하얀 천을 깃발처럼 거는 풍습이 존재했다고 하는데요.
그런데 딱 제임스 쿡의 탐험선이 하얀 돛을 달고 바다를 통해 하와이에 당도했으니…>< 제임스 쿡은 원주민들로부터 신성한 존재로 대우받으면서 공물 역시 받았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이들 영국 탐사대의 하와이 방문은 하와이 비극의 시작이었다고 하는데요. 첫 번째로 종전에 없었던 각종 전염병에 노출된 것이었죠. 이는 역사상 수차례 있던 일(콜럼버스 탐사대, 피사로와 코르테스의 원정대 등)이기도 한데, 제임스 쿡 탐험대 일행이 감염된 채로 가져온 병들이 하와이 원주민들에게 퍼져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던 것이었죠.
이날 방송에 따르면 특히 치명적으로 작용한 전염병으로 매독이 꼽혔으며, 같은 성병인 임질 역시 확산됐다고 하는데요. 때문에 하와이 원주민 여성의 불임, 유산율이 증가하고 유아 사망률 역시 증가하면서 이는 하와이 원주민 인구 감소로까지 이어졌다고 합니다. 또한 결핵 역시 하와이 원주민들을 강타해 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하고요.
실제 제임스 쿡이 처음 하와이에 방문한 1778년 하와이 원주민의 인구수가 최대 약 70만명 가량이었다고 하는데, 1840년대 원주민 인구는 무려 84%나 감소한 11만명 정도로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이런 인구 감소는 노동력 부족, 문화 정체성을 유지에도 어려움으로 돌아왔기에 점차 원주민 사회의 체제가 무너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아울러 영국은 하와이에 금속 무기를 전달해 또 다른 비극을 야기했다고 하는데요. 결국 무기는 폭력과 싸움을 유발하니깐요. 이날 방송에 따르면 하와이 원주민들 중에서도 영국인들의 무기(총) 위력에 주목한 인물이 있었는데, 바로 하와이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족장인 카메하메하 1세였다고 합니다.
카메하메하 1세는 영국에서 총잡이를 고용하고 총과 대포를 구입했으며, 이를 통해 하와이 정복 전쟁에 나섰다고 합니다. 그리고 5번의 주요 전쟁을 통해 하와이 대부분을 복속시킨 카메하메하 1세는 1795년 하와이 왕국을 건국했다고 하고요. 그 반대 급부로 많은 하와이 원주민들이 죽어나갔을 것이고 말이죠.
하와이 왕국과 미국의 등장
무튼 카메하메하 1세는 하와이 역사상 최초로 통일 왕국을 건설했는데요. 그런데 애초에 자주적으로 한 것도 아니고, 이래저래 전체적인 인구는 줄어든 상황이었으니…아울러 과거에야 태평양 한가운데 고립된 제도였지만 이제는 태평양 한가운데 자리한 중간 기착지로서 열강들의 시선을 끌만한 곳이 된 상태였는데요.
이런 하와이에 영국에 이어 등장해 본격적으로 접수(?!)를 시작한 나라가 바로 현재 하와이가 속한 나라인 미국입니다. 이날 방송에 따르면 1820년 미국의 선교사들이 기독교 전파를 위해 하와이 왕국으로 갔다고 하는데요.
선교사들은 카메하메하 1세의 왕비 카아후마누 여왕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는데 성공하면서 하와이에 빠르게 기독교를 전파하는 한편, 근대화를 추구하는 하와이 왕국의 니즈에 발맞춰 서구식 교육 등에 선교사들이 참여하면서 하와이 왕국 내 미국 선교사들의 입지가 날로 강해지면서 그들은 하와이의 엘리트 지배계층으로 자리매김했다고 하죠.
그러면서 이 미국인 선교사들이 하와이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하와이 전통 신앙와 문화를 탄압했다고 하는데요. 그렇게 하와이를 비극의 섬으로 만들어갔다고 합니다.
여기에 미국인 자본가들이 대대적으로 하와이에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다름 아닌 강우량이 풍부한 대규모 사탕수수 농장을 조성 및 운영하기 위해서였다고 하는데요. 그렇게 하와이의 종교, 문화, 그리고 경제 영역까지 미국인들이 실권을 쥐게 된 것이었죠.
이날 방송에 따르면 하와이 왕국 전체 토지의 99% 가량이 정부 고위층과 미국 자본가들의 소유였다고 하니 말 다했네요.
하와이 왕국의 멸망과 하와이 공화국
그렇게 하와이의 엘리트층을 형성하고 실권을 쥔 미국인들은 이른바 하와이안 리그를 구성했다고 하는데요. 급진적인 개혁을 지향하는 하와이 왕국내 미국인 대농장주와 자본가, 변호사, 군인 등으로 이뤄진 하와이안 리그는 하와이 왕국의 각종 법을 미국인들에게 유리하게끔 개혁을 주도했다고 합니다.
사실상 하와이 왕국이 미국인들의 손아귀에 떨어진 것이나 다름 없는 상태가 된 것인데요. 이에 당시 하와이 여왕이었던 릴리우오칼라니는 하와이 원주민의 투표권 회복과 미국의 불평등 조약을 무효화하는 개혁을 실시하려고 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이미 실권은 하와이안 리그에게 있었기에 당연히 큰 반발을 일으켰고, 1893년 이들을 중심으로 한 미국 자본가들이 하와이 왕국 수도 호놀룰루에서 쿠데타를 주도했다고 합니다. 미군도 자국민 보호를 명분으로 군사적 개입을 했고, 결국 릴리우오칼라니 여왕은 왕위에서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고 하는데요.
그렇게 하와이 왕국은 98년 만에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고, 그 빈자리에는 미국 자본가들 주도하에 하와이 임시정부가 수립되고, 이후 하와이안 리그 출신의 자본가이기도 한 샌퍼드 밸러드 돌을 초대 대통령으로 하는 하와이 공화국을 설립했다고 하죠.
다만 이때 이들은 하와이의 미국 편입을 바랐다고 하는데요. 그런데 미국은 쿠데타를 통해 하와이 왕국을 전복시키고 한 일련의 과정이 국제적 비난을 받을 수 있었기에 당장은 머뭇거렸다고 하는데,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죠.
하와이의 미국 편입
벌거벗은 세계사 166회, 스페인을 발판으로 세계 최강대국으로 올라선 미국에 대한 이야기 어제부터 확실히...
그러던 중 1898년 4월 쿠바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스페인 전쟁이 발발했는데요. 이때 미국은 쿠바쪽뿐 아니라 당시 스페인령이었던 필리핀에서도 스페인과 교전을 벌였는데, 이 때문에 하와이의 군사적 중요성이 크게 대두됐다고 합니다.
그렇게 1898년 7월 7일 뉴랜즈 결의안을 통해 하와이는 미국에 편입돼 준주의 지위를 받으며 일종의 미국령 자치령이 됐다고 하는데요.
이후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은 새로운 태평양의 패권국가로 떠올랐는데요. 덩달아 하와이의 군사적 거점으로서의 중요성이 더 커져 미국은 진주만을 중심으로 하와이에 해군기지와 육군기지를 설치했다고 합니다.
군사기지가 설립된다는 것은 상주할 군인과 관련된 군속, 가족들 등 많은 인구가 증가함을 말했고, 하와이는 그렇게 번영의 길로 접어들게 됐다고 하죠.
그런데 이날 방송에 따르면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인해 하와이가 참화를 겪으면서 위기가 찾아왔었다고 하는데요. 그렇지만, 일본의 진주만 공습 이후 미군이 더 하와이에 군사주둔을 하고 기간시설 투자를 하면서 하와이에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됐다고 합니다.
이후 전쟁이 끝난 후 하와이는 크루즈 여행 등을 통해 본격적으로 관광산업을 키워갔다고 하는데요. 기존에 사탕수수 농장은 골프장으로 변모했고요. 여기에 하와이에 공항이 건설되면서 성장하던 관광업이 급격하게 발전해 나갔다고 하네요.
미국의 50번째 주, 세계적 관광지 하와이
이렇게 관광지, 휴양지로 주목받으면서 성장하던 하와이는 1959년 8월 21일, 준주에서 정식 주로 승격하면서 미국의 50번째 주가 됐는데요.
이 덕분에 하와이는 미국 정부로부터 더 많은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고, 이날 방송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약 34억 달러(현재가치 약 5조 3,900억원)를 하와이에 투자해 하와이에 수많은 숙박시설이 세워지고, 대형 쇼핑센터가 개업하는 등 관광지로서 더욱 더 기반을 갖추게 됐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와이는 빼어난 자연의 풍광과 아름다운 바다를 가져, 자연 경관만으로도 매우 좋은 관광지이자 휴양지였다고 하는데요. 특히 엘비스 프레슬리가 하와이를 배경으로 한 영화 블루 하와이를 찍으면서 전 세계에 하와이가 더욱 더 널리 알려지게 됐다고 하죠.
아울러 하와이가 세계 최고의 휴양지로 성장한 원동력에는 일본이 한몫했다고 하는데요. 1960년대 일본의 경제가 고도성장하면서 여유가 생긴 일본의 국민들이 해외 여행에 눈을 돌렸는데, 딱 들어온 것이 하와이였던 것이었죠.
하와이는 일본과 비교적 가까운 거리(약 8시간 비행)였으며, 과거 사탕수수 농장이 운영되던 시절 이곳에서 많은 일본인들이 일을 했었기에, 하와이에 정착하고 살던 일본인 이민 세대들이 자리잡고 있어 문화적 접근성도 용이했다고 합니다.
이날 방송에 따르면 하와이안 셔츠의 유래가 일본의 유카타라는 설도 있다고 하며, 하와이의 푸드인 포케나 무스비 역시 일본 이민자들을 통해 현재의 모습이 돼 로컬푸드로 자리잡았다고 하네요.
하와이 역시 일본에 대한 적극적인 관광유치 마케팅을 통해 일본인 여행객들을 하와이로 끌었다고 하는데요. 우리나라 역시 일본의 영향을 받아 하와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하는데요.
그러던 중 1989년 해외여행 전면 자유화가 되면서 많은 이들이 하와이로 여행을 떠났으며, 여전히 베스트 해외 여행지에는 하와이가 자리하고 있죠:) 전 여전히 못가봤…ㅠ 언젠간 가보겠죠 뭐
벌거벗은 세계사 아름다운 휴양지 하와이에 숨겨진 뼈아픈 역사는?/ baolove77
눈부신 햇살, 에메랄드빛 바다, 그리고 낭만적인 훌라춤. 하와이를 떠올리면 누구나 한 번쯤 꿈꿔봤을 법한 풍경들이 펼쳐집니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섬, [벌거벗은 세계사 하와이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우리가 알고 있던 낭만적인 이미지 뒤에 숨겨진 뼈아픈 역사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년 내내 따뜻한 기후와 빼어난 자연환경으로 연간 900만 명의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하와이. 연간 27조 원의 관광 수익을 올리는 이 곳은, 과연 어떻게 세계적인 휴양지로 발돋움했을까요?
하와이는 본래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고립된 섬이었습니다. 호주, 남미와도 8,000km 이상 떨어진, 태평양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죠. 이곳에 최초로 정착하게 된 인류는 바로 폴리네시아인이었습니다. 아시아 대륙에서 출발한 그들은 카누를 이용해 하와이에 정착, 섬의 자연환경에 맞춰 부족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며, 자연을 숭배하고 훌라춤, 타투 등 독특한 문화를 발전시켰습니다.
폴리네시아인들은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하며,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은 족장, 사제, 노동자, 그리고 최하위 계층으로 이루어진 카푸 제도를 통해 사회 질서를 유지했습니다. 엄격한 계급 사회였지만,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공동체 의식은 그들의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그들은 자연의 섭리를 존중하고, 훌라춤을 통해 신들에게 감사와 기원을 전했습니다.
영국의 등장, 하와이에 시작된 비극
1778년, 영국의 탐험가 제임스 쿡이 하와이를 발견하면서 하와이의 운명은 급변했습니다. 쿡은 하와이를 "샌드위치 아일랜드"로 명명했고 처음에는 원주민들의 환대를 받지만, 원주민들에게 비극이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쿡의 등장은 하와이에 매독, 임질, 결핵 등 치명적인 전염병을 퍼뜨렸습니다. 이로 인해 원주민들의 인구가 감소하는 엄청난 비극을 겪었습니다. 쿡이 처음 하와이에 도착했던1778년 70만명이나 되었던 인구는 1840년대 11만명으로 80% 이상 감소했죠.
금속 무기를 접할 기회가 없었던 하와이 원주민들. 자연에서 얻는 재료보다 좋았던 금속 무기는 선원들에게 식량을 주고 교환할 정도로 인기가 좋았는데요. 하지만 이후 쿡은 원주민들과의 사소한 갈등으로 총기를 사용, 족장 카메하메하 1세는 총기를 이용해 통일 왕국을 건설했지만, 누우아누 전투와 같은 잔혹한 전쟁을 불러왔습니다.
하와이 두번째 비극의 시작, 미국의 등장
19세기 초, 미국 선교사들이 하와이에 들어와 기독교를 전파하면서 하와이는 미국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됩니다. 선교사들은 하와이 왕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고, 전통 문화를 탄압했습니다. 이후 미국 자본가들이 하와이에 대규모 사탕수수 농장을 건설하고, 원주민들을 저임금 노동으로 착취당했습니다. 미국은 하와이에 무관세 혜택을 주는 대신, 진주만을 요구하며 하와이를 경제 식민지로 만들었습니다.
미국 선교사들은 하와이의 전통 신앙과 문화를 억압하고, 자신들의 종교인 기독교를 강요했습니다. 미국 자본가들은 하와이의 토지를 헐값에 사들여 대규모 사탕수수 농장을 건설하고, 원주민들을 가혹하게 착취했습니다. 결국 하와이는 미국의 경제적 지배를 받게 되었고, 군사적 요충지인 진주만을 미국에 내주게 됩니다.
1891년, 릴리우오칼라니 여왕이 즉위하면서 하와이는 변화를 모색합니다. 여왕은 원주민들의 투표권을 회복하고, 불평등한 조약을 무효화하려 했습니다. 샌퍼드 돌을 비롯한 미국의 자본가들이 반발, 쿠데타를 일으켜 여왕을 폐위, 하와이 공화국을 세웠습니다. 이후 미국은 하와이를 병합, 미국의 영토가 되었습니다.
비극의 역사를 이겨내고 세계적인 휴양지로 발전한 이유는?
스페인과의 전쟁을 치르며 군사적 요충지로 필요성이 강화된 하와이. 태평양의 지배권을 강화하기 위한 군사기지 건설로 미군의 숫자가 증가하며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진주만에 해군기지와 같은 시설이 들어오면서 다양한 인프라도 확충되기 시작했는데요. 이는 진주만 공습 이후 하와이의 경제 발전에 큰 영향을 주어 1959년 미국의 50번째 주로 승격이 되었습니다.
활화산과 하와이 해변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서핑, 전통문화로 자리잡은 훌라춤 등 하와이의 독특한 문화는 관광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1960년대부터 일본,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관광객들의 증가와 관광인프라 확충으로 하와이는 세계적인 휴양지로 자리 잡았습니다.
오늘날 하와이는 세계적인 휴양지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지만, 그 아름다움 뒤에는 잊혀지지 않는 역사가 존재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하와이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닌, 우리에게 많은 것을 배우게 해주는 살아있는 역사 박물관입니다. 이번 회차는 우리에게 하와이를 더욱 깊이 이해하고,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며, 함께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는 영감을 주었습니다. 아름다운 섬 하와이의 역사, 기억해야 할 아픈 역사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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