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김명인 -
모감주숲길로 올라가니
잎사귀들이여, 너덜너덜 낡아서 너희들이
염주소리를 내는구나, 나는 아직 애증의 빚 벗지 못해
무성한초록 귀때기마다 퍼어런
잎새들의생생한 바람 소릴 달고 있다.
그러니이 빚 탕감받도록
아직은저 채색의 시간 속에 나를 놓아 다오.
세월은누가 만드는 돌무덤을 지나느냐, 흐벅지게
참꽃들이기어오르던 능선 끝에는
벌써잎 지운 굴참 한 그루
늙은길은 산맥으로 휘어지거나 들판으로 비워지거나
다만억새 뜻 없는 바람 무늬로 일렁이거나.
해 설
[개관정리]
◆ 성격 :
◆ 표현 :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모감주 → 무환자나무, 절이나 묘지 또는 집 근처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열매는염주를 만드는데 쓰임.
* 숲길 → 화자가 소멸(죽음)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공간임.
* 잎사귀들 → 교감의 대상
* 너덜너덜 낡아서 → 소멸의 이미지
* 염주 소리→ 소멸의 시간을 맞는 무념무상의 경지
*'나' → 잎사귀와 대비되는 화자
* 애증의 빚 벗지 못해 → 마음의 갈등을 안고 살고 있음.
* 잎새들의생생한 바람 소리 → 불안정한 마음 상태
* 빚 → 세상살이로 인한 내적 갈등
* 채색의 시간
→ 단풍 드는 시간, 소멸(죽음)을 준비하는 시간
모감주나무처럼, 생에 대해 담담한 자세를 가지며 마음의 갈등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간
* 세월은 누가 만드는 돌무덤을 지나느냐 → 소멸의 의미에 대한 깨달음
* 돌무덤 → 필연적인 자연의 섭리로서 '죽음'을 형상화한 시어
* 흐벅지게 → 탐스럽고 두툼하고 부드럽게
* 잎 지운 굴참 한 그루 → 소멸의 시간을 맞고 있는 모습
* 늙은 길은 ~ 억새 뜻 없는 바람 무늬로 일렁이거나
→ 자연의 모습을 통해 소멸의 의미와 무념무상의 삶의 경지를 깨닫고 거기에동화되고 있음.
◆ 화자 : 모감주나무를 통해담담하게 죽음을 맞는 자연의 모습을 보고 깨달음을 얻어 그와 같은경지에
이르기를 바라는 사람
◆ 주제 : 삶과죽음의 이치에 대한 깨달음
[시상의흐름(짜임)]
◆1~5행 : 자연과 자신의 상황에 대한 인식
◆ 6~7행 : 소멸의준비에 대한 갈망
◆8~끝 : 소멸과 무념무상의 경지에 대한 깨달음
[이해와감상의 길잡이]
이시에서 숲길은 화자가 소멸(죽음)의 의미를 깨닫는 공간이다. 화자는숲길을 거닐며 단풍이 물들고 낙엽이 되어 떨어져 내리는 나무들의 모습을보면서 '애증의 빚'을 벗지 못하고 '생생한 바람 소리'를 내고 있는자신의 삶에 대해 돌이켜 보고 있다. 갈등에 휩싸여 살아가는 인간의삶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알게 되는 것이다. 시인은 이를 통해 세상의만물이 결국은 소멸을 향해 간다는 이치를 전하고 있다.
■ 김명인의 시세계
김명인의시 세계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은 추억이다. 그러나 그 추억은 아름다운과거보다는 고통스러운 기억에 가깝고, 과거의 것이면서도 오늘 속에선명하게 남아 존재를 구속한다. 상처난 과거로서의 추억이라 하더라도평생 동안 가슴에 묻어 두고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시인은 그것을밖으로 드러내어 치유하려 한다. 그의 얼룩진 추억은 6 · 25와아버지라는 두 가지 어둠으로 대별된다. 전쟁 속에서 유년기를 보낸시인은 전쟁으로 훼손된 유년의 체험을 형상화하는 한편, 전쟁이라는극한 공간 속에서 보호받지 못한 과거의 기억을 아버지로 상징된 절대성에대한 부정으로 나타내기도 한다. 이러한 두 가지 어둠은 그의 시를 공간적으로는변두리 선호 경향을 드러내게 하며, 의식면에서는 서민 또는 하층 민중지향적 성격을 띠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