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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수필

8. 결혼에 대하여

by 자한형 2021.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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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에 대하여 이문열

독신 여성이늘어가는 현상을 해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결혼이란제도의 본질에 대한 고찰에서 출발하는 게좋다. 결혼이란 인류가 고안해 낸 가장 오래된사회제도의 하나로서, 난혼(亂婚) 또는 모계사회나집단혼(集團婚)을 인정하는 견해가 널리 퍼져있기는 하나 결혼의 가장 보편적인 형태인일부일처제는 적어도 오늘날 우리가 그릇 믿고있는 것보다는 훨씬 오랜 역사를 가진 것으로보인다. 따라서 여기서 쓰는 결혼이란 좁은뜻에서의 일부 일처혼으로 한정하기로 한다.

우리가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결혼은 대략 다섯가지 측면을 가진 제도로 보인다. 흔히 알고있는 대로 성()과 종족보존 외에 경제적협력과 정서 및 보험의 기능이 그 다섯 가지측면의 내용이다.

먼저성의 제도로서의 결혼은 그 성이 일반적으로금지된 상태라는 것과 관련이 있다. 다시 말해성에 대한 사회의 일반적인 금지에서 유보된부분, 더욱 적극적으로 보면 성에 대한 금지를합법화한 것이라고 하는 것이 좋다. 아주 특수한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배우자간의 성행위는모든 제약에서 자유롭다.

그다음 종족보존의 면은 일부일처혼의 경우에는특히 남성의 후계자 확정을 위한 제도로 파악하는편이 보다 정확하다. 사람의 일 가운데서 가장괴로운 것의 하나는 일생을 피땀흘려 이룩한것들, 이를테면 재산이나 권세나 명예같은것을 죽음과 함께 내놓고 떠나야 하는 일이다. 따라서 태어난 자식이 자신의 혈통임을 쉽게인지할 수 있는 제도를 고안함으로써, 그 자식과자신과의 동일시를 통하여 그쓰라림에서 벗어나려한 것인데, 그것이 바로 일부일처제의 결혼이다.

세번째로 결혼은 경제적인 협력을 위한 제도이다. 일반적으로 남자의 노동력은 일차적인 생산및 전투에 유리한 반면 여자의 노동력은 관리나가공 같은 이차적인 생산과 봉사 및 접대에유리하다. 결혼은 그렇듯 서로 다른 특질을가진 남녀의 노동력을 결합하여 보다 효율적인생활을 도모하는 제도의 하나이다.

네번째로 결혼은 정서의 제도이다. 우리가 받을수 있는 위로와 격려 중에서 가장 효과적인것은 이성으로부터 오는 위로와 격려이다. 결혼은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삶의 비참함과고독을 이겨내기 위한 상설의 상담역, 위로역, 격려역을 갖게 만들어주는 제도이다.

마지막으로결혼은 가장 오래된 보험제도 가운데 하나이다. 사람의 일생에는 반드시 남의 도움에 의지해 넘겨야 할 고비가 있게 마련이다. 질병이라든가재난 같은 개별적인 것은 물론 누구도 피할수 없는 노쇠 같은 것이 바로 그 고비이다. 거기에 대한 일차의 인적 보험은 부모 형제이다. 하지만 통상 부모는 자신보다 일찍 죽어 보험능력을상실하고, 형제 자매도 언젠가는 헤어지게마련이다. 따라서, 자신의 노쇠에 대한 보험은결국 배우자와 직계비속이 맡게 된다. 결혼은우리가 바로 그 배우자와 직계비속을 갖게해주는 제도이다.

그런데 현대로 접어들면서 결혼제도의 그 같은 기능들은차츰 빛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먼저 성을 위한 제도로서의 결혼은 그 방면의 욕구 충족이손쉬워지면서 필요의 절실함이 많이 줄었다. 아직 성은 그 대부분이 금지 상태에 놓여 있지만, 그 금지를 실효있게 만드는 책벌은 우리 시대에 들어와 더욱 노골적이 된 성의 상업화와 산업사회의익명성으로 거의 불가능해졌다. 성의 상업화는, 오늘날의 미혼 남성들을 결혼이란 거추장스런의식을 치르지 않고도, 거리에 넘치는 인스턴트식품을 구입하듯 몇 푼의 돈으로 간편하게구입할 수 있게 해준다. 또 도회의 익명성은 미혼 여성들로 하여금 지난 시대의 여자들이입었던 불리를 거의 두려워 할 필요없이 자신의 성을 즐길 수 있도록 해준다. 하려고만 들면도심에 나가 이름을 숨긴 채 가장 멋진 남자를골라 하룻밤을 세우고 빈 콜라 깡통 버리듯다시는 만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다음 경제적인 협력제도로서의 결혼도 이 시대에들어와서는 눈에 띄게 그 의의를 잃어가고있다. 남자의 경우 옛날에는 여자의 봉사에만의지해야 했던 대부분을 이제는 여자의 도움없이도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세탁기, 냉장고, 전기밥솥, 재봉틀 같은 기계며, 어디서든 쉽게 살 수있는 기성복, 인스턴트 식품, 또 세탁소, 여관, 식당 같은 서비스업의 발달이 그 원인이다. 여자의 경우도 이제는 더 이상 남자의 생산력에만의지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 됐다. 일차산업이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듦에 따라 근육의힘과 거친 용기에 있어서 남성보다 불리한여성들에게도 알맞는 일자리가 늘어났고, 특히고급한 학력을 가진 여성의 경우에는 남자에지지 않는 보수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바꾸어말하면, 구태여 결혼이란 제도를 통하지 않고도필요한 봉사나 스스로의 생활을 남녀가 각기해결할 수 있는 세상에 우리는 살게 된 것이다.

정서적인제도로서의 결혼도 앞서와 마찬가지로 그 의미를점점 잃어가고 있다. 삶의 외로움이나 고통은별로 줄어든 바 없지만, 그것들을 잊게 해주거나우리의 감정을 마비시켜주는 장치와 고안의발달로 이제는 반드시 그 역할을 결혼에서만기대할 필요가 없어졌다. 예술의 대중화 - 값싸고 질 좋은 전자기기의 발달은 비싼 자리값을물고 오페라 하우스나 음악당을 찾지 않아도유럽의 명문 오페라단이 공연하는 <나비부인>이나 로열발레단의 <백조의 호수>를볼 수 있고, 필하모니의 연주로 베토벤이나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을 들을 수 있게 한다. 스포츠나 프로화 - 이제는 야구는 물론 권투, 레스링, 축구, 테니스 따위 스포츠의 대부분이직업적인 곡예에 가까워져, 그것을 하는 사람의심신 단련이나 인격 도야를 위해서보다는 보는사람을 즐겁게 하는 데 바쳐지고 있다. 거기다가그밖에 새로이 고안된 각종의 위락 장치까지가세하여 고개만 돌리면 우리의 눈과 귀와코와 혀를 사로잡고, 때에 다라서는 사고까지마비시킬 준비를 갖추고 있다.

결혼을 통한 종족 보존 또는 후계자 확정에 의한 삶의연장도 개인주의 발달로 점차 설득력을 잃고있다. 오늘날 아무도 자신의 삶과 자식의 삶을동일시하는 사람은 없으며, 죽은 뒤 자기의피붙이가 대를 잇는다 해서 그것이 자기 삶의연장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보다는 오히려자신의 개인적인 성취에 삶을 걸기 때문에, 이제 그런 이유로 미혼의 남녀에게 결혼을권유하려 드는 것은 낡은 미신의 권유와 다름없이되어 버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험적인 제도로서의 결혼도 이시대에 와서는 역시 예전의 기능을 다 하지못하고 있다. 보다 확실하고 경제적으로 정비된현대의 각종 보험과 발달된 사회보장제도를두고, 변덕스럽고 불확실한 인간의 애정과선의에만 매달릴 필요는 없어졌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결혼은 보험으로서는 가장 낡고인기 없는 품목이 되어 버린 셈이다.

이같은 다섯 가지 측면의 변화에서 보편적으로 진행되는것은 비정상적인 만혼(晩婚), 또는 독신과이혼율의 증가이다. 그런데 이혼율의 증가는당면한 논의와 무관함으로 그걸 빼면 결국지금까지 살펴본 것은 비정상적인 만혼 또는독신의 증가 원인을 일반론에 따라 추적해본 셈이 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여성 쪽이주된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그쪽이비교적 우리의 경험에 새로운 현상으로 비치기때문이다.

하지만그렇다고 해서 우리 사회에서 독신여성이 늘고있는 것을 앞서와 같은 일반론으로만 처리할수는 없다. 그것이 사회의식의 표면에 떠올라우리의 주의를 끌 게 된 데는 그런 일반론에가세하여 일을 한층 심각하게 만든 다른 특수하고구체적인 원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가운데서 가장 먼저 들 수 있는 것은 남녀의연령별 분포다. 어찌된 셈인지 이 나라의 통계는혼인적령기의 남자가 여자에 비해 현저하게부족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좀 과장적인것은 삼할에 가까운 부족률을 보이고, 그보다는덜한 통계라 해도 남자 쪽의 부족에 우려를보이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그다음에 지적될 수 있는 것은 갑작스런 교육량의증대에서 비롯된 결혼적령기의 변화다. 고등교육이일반화되면서 이 나라에서 제대로 구실을 할만큼 교육을 받는데 통상 16년이 걸린다. 거기다가남자들은 병역 의무가 더해져 그들의 사회진출은빨라야 스물 예닐곱이 된다. 그러나 중산층이하의 출신인 경우에는 그들이 새로운 가정을꾸밀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을 갖추기 위해다시 몇 년이 더 필요하다. 왜냐하면 이 나라의부모들을 대개 자신의 경제력인 여력을 교육비로다 써 버려, 교육이 끝난 자식은 도울래야도울 수 없는 형편이 돼 버리기 십상인 때문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남자들은 대학 교육만으로부모에게 감사하고, 나머지는 온전히 자기힘으로 시작해야 되는 까닭에 그들의 결혼은일쑤 서른을 넘기고 만다. 그런데 문제는 그뒤에 있다. 그럭저럭 결혼 준비를 끝낸 남자들이자신의 신부감을 그들의 연령층에서 구하지않고 훨씬 어린 층에서 구하기 때문이다. 최근들어 신혼부부간의 연령 차이가 전에 비해늘어나고 있는 것이 그 한 예이다. 그렇게되면 자연 그들의 연령층인 20대 후반의 여성들이노처녀란 이름으로 체증을 이루게 된다. 물론세월이 지나가면 나름의 균형을 회복하여 절로해결될 일시적인 현상이지만, 어쨌든 그것이최근 들어 유난히 눈에 띄는 독신여성 증가의한 원인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다음에 또 들 수 있는 것은, 근년에 두드러진여성의 사회 진출이다. 고급한 교육을 받은여성의 태반은 결혼 때까지 직장을 가지게되는데, 자기가 맡은 일이 마음에 들 경우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혼기를 놓치고 만다. 취직을 않고 자기 분야에서 독자적인 성취를이룩한 경우에도 결과는 비슷하다. 그런데남자는 혼기가 엄격하지 않고, 또 넘겼다 해도회복이 가능하지만 여자의 경우는 종종 치명적이된다. 이 나라의 여자들은 아직도 연하의 남자와결혼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앞의 문제와 무관하지는 않는 것으로 독신여성, 정확히 말해서 노처녀가 증가하는 또 하나의원인은 여자의 선택 범위가 남자보다 좁다는데 있다. 이를테면 남자는 상대가 마음에 들면학력이나 나이, 재산, 신분 등에 크게 구애되지않지만 여자에게는 그런 것들이 하나같이 큰문제가 된다. 특히 학력의 경우가 그러해서이 나라에서는 아직 고등교육을 받은 여자가그 이하의 학력을 가진 남자와 결혼하는 것은정상적인 결혼에서는 거의 예를 찾아볼 수가없다. 따라서 남자보다 선택의 범위가 좁다보니자연 여자 쪽이 잔류자가 많아지게 마련이다.

남자에대한 여자들의 인내심이 줄어든 것도 이혼율의증가뿐만 아니라 독신여성의 증가의 한 원인이된다. 예전에는 당연하게 여겨졌던 주부로서의희생과 봉사가 이제는 예속이나 굴종으로 이해되며, 또는 당연하게 인정되어 왔던 남성의 일반적인우위가 이제는 독선이나 횡포로 느껴지게 된것이다. 지난 날에는 거의 아무런 저항없이포기되었던 여성의 여러 권익도 현대교육에힘입어 차츰 그 회복을 주장하게 되었으며 - 따라서 그런 현대 여성의 눈에는 아직도보수적인 요소를 청산하지 못한 이 나라 청년들이종종 이기적이고 독선적으로 비쳐 결혼을 망설이게하는 이유가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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