꾀꼬리 김태길
천장이 뚫린 맥고모자를 깊숙이 눌러 쓴 사람이 새 두 마리를 앞에 놓고 길거리에 앉았다. 그것이 바로 꾀꼬리라는 말에, 그리고 사흘만 길을 들이면 집이 떠나가게 운다는 바람에, 그만 욕심에 불이 붙었다.
“그런데 그것이 잘 삽니까?”
눈치를 보면서 물었더니,
“그야 살다뿐입니까. 잘하면 새끼까지 치지요.”
“무엇을 먹이면 되죠?”
“콩이나 녹두를 맷돌에 타서 주면 그저 그만입니다.”
값을 물었더니, 남대문통 가면 한 쌍에 만 환 안 주곤 만져도 보지 못하는 것이지만, 자기는 제 손으로 잡은 것이요, 갈 길도 멀고 하니, 단돈 오천 환에 내버리겠다는 대답이었다.
“한 마리만 삽시다.”
주머니 속에 오천 환까지 없다는 슬픔을 참작하고 이렇게 흥정을 걸었더니,
“꾀꼬리만은 한 쌍이라야 합니다. 그래야 수놈이 울면 암놈도 따라 울고 하죠. 아, 노래에도 ‘양류 청청(楊柳靑靑) 꾀꼬리 쌍쌍’이라 있지 않습니까.”
여러 말이 오고 간 끝에 결국 삼천 환을 내고 두 마리를 얻었다. 이토록 귀한 것을 가지고 전차나 버스를 차마 탈 수 없어서 택시를 멈추는 동기에는, 시가(時價) 만 환짜리를 단돈 삼천 환에 얻었다는 자랑과, 내일부터는 서울 한복판에서 전원 생활을 즐길 수 있다는 기쁨을 한시 바삐 식구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 아름다운 노래를 처마 끝에 들으면 도회지의 피로가 금세 가실 것이 아닌가.
[* 꾀꼬리를 사서 가슴 설레이는 상상을 함 ]
어린것들의 환영은 과자 봉지를 능가하였다. 지나친 소동을 진압하느라고 잠깐 시간이 지체된 후, 우선 시장할 것이니 당장에 콩을 빻아서 대접한다. 하나 어찌된 셈인지 돌아보지도 않는다. 녹두를 주어 보아도 일반이요, 누구의 말을 듣고 참깨를 사다 주어 보았어도 여전 반응이 없다. 새집도 하나 장만할 겸 불안한 마음을 안고 큰거리 새장수 집으로 달려갔다.
역시 전문가(專門家)의 의견은 달랐다. 꾀꼬리는 본래 곡식 먹는 동물이 아니다. 그 주식(主食)은 송충이인데 송충이가 없으면 배추벌레도 무방하다는 얘기다. 매우 친절하게 가르쳐 주는 것이 고마워서, 달라는 금을 다 주고 새장 하나를 사 들고 돌아왔을 때는 이미 황혼이 가까웠다.
만약 동란 때 폭격으로 생긴 빈터를 이용하여 손바닥만한 배추밭을 가꾸는 특지가(特志家)가 이웃에 없었더라면, 등불을 들고서라도 북악산(北岳山)까지 올라갔을 것이다. 그러나 남의 채마전에 함부로 들어갈 수는 없으니, 취지를 밭 임자에게 얘기하고 양해(諒解)를 구하는 수속은 간단한 듯하면서도 까다로웠다. 큰길 가에 엎드려 벌레를 찾는 꼴이 너무나 궁상맞을 듯해서 아이들을 시켰더니, 겨우 서너 마리밖에 잡아오지 못하였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그 이상은 없다는 보고였다.
다음날은 요행히도 일요일이다. 조반을 마치자 바로 깡통 하나를 휴대하고 북악으로 향했다. ‘입산 금지’를 무시하고 목적지에 다다라보니, 송충이는 신문지상의 얘기처럼 흔하지는 않았다. 더러 보이기는 하나 대개 손가락만큼씩 굵고 보니 도무지 건드릴 용기가 나지 않는다. 꾀꼬린들 그 흉측한 놈을 먹을 듯 싶지가 않다. 자그마한 애기송충이들로만 골라서 잡으려니, 일이 진주를 찾는 해녀의 그것처럼 힘든다.
점심때가 지났으나 성과는 꾀꼬리 두 마리의 이틀 양식이나 될지 의심스럽다. 그러고 보니 꾀꼬리 한 마리를 제대로 기르자면 사람 하나는 꼭 붙어 있어야 할 모양이다. 일요일이 매일 계속되지 않는 한, 직장에 사표를 내거나, 그렇지 않으면 사람 하나를 전임으로 채용해야 될 형편이다. 벌레를 보기 힘든 겨울 동안은 임시 직원을 추가 채용하거나 애조(愛鳥)를 동반하여 남쪽 나라로 장기 여행을 떠나야 할 것이다. 새를 사랑하는 중국 사람 얘기가 거짓말이 아님을 이제서야 깨닫겠다.
중국의 애조가(愛鳥家)는 자기의 모든 재산이 날아갈 때까지 새에게 정성을 털어 바친다. 명예나 지위는 고사하고, 집 한 칸마저 없어져 몸뚱이 하나만 남은 뒤에까지도 새장만은 놓지 않는다. 헐벗은 옷과 주린 창자로 새장을 안고 산으로 올라간다. 멋있게 뻗은 나뭇가지에 새장을 매달고, 사람은 그 아래 누워서 사랑하는 이의 노랫소리를 들으면서 인생의 슬픔과 괴로움을 초월한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그림이냐. 아름다운 줄 알면서도 내 몸과 목숨을 바쳐서 그 한 폭의 그림이 되기를 결심할 수 있도록 시인의 기질이 아님을 뉘우치면서 산길을 내려왔다.
[* 꾀꼬리를위한 먹이 구하기 ]
행여나 무슨 좋은 충고라도 들을까 하는 약한 마음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누구에게나 꾀꼬리 자랑 아닌 걱정을 한다. 그러나 반가운 소식을 들려주는 사람은 없다.
꾀꼬리가 그렇게 함부로 사는 줄 아오. 난 아직 꾀꼬리 기르는 데 성공한 사람 못 봤소.”
이것이 함경도 태생의 H선생의 단언이다.
“그래도 이건 돈 주고 샀으니 최선을 다해 보시오. 잘하면 4, 5일은 연명시킬 수 있을 것이오.”
이것은 은근히 사람 곯리는 P선생의 충고다.
“도대체 삼천 환이라는 값이 가당찮소. 한 쌍에 이천 환씩만 내시오. 내 얼마든지 사다 줄 거니.”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죽기 전에 빨랑 갖다 새장사에게 넘기시오. 거저 내버리느니 몇 백 환이라도 건지는 것이 나을 게 아뇨.”
하는 친구도 있다.
“이 사람아, 그 꾀꼬리 죽거든 새장은 날 주게.”
하는 농담까지 나오자, 온 방 안이 와아 하고 웃는다. 농담 기분이 아닌 것은 나 한 사람뿐인 모양이다.
[*꾀꼬리에대한 여러 사람의 조언]
생각다 못해 '새 박사'라는 별명이 붙은 생물학 교수Y씨를 찾아갔다.
"꾀꼬리라고 키우기가 불가능할 리야 있겠습니까."
하고 Y 교수는 강의조로 설명을 시작한다.
"매년 봄마다 서울 장안으로 잡혀 들어오는 꾀꼬리의 수효는 약 삼천 마리에 달합니다. 그러나 그것들 가운데서 삼분의 이 이상이 사흘 안짝에 죽고, 나머지 삼분의 일 중에서 가을까지 살아남은 것은 불과 스무 마리도 되지 않습니다."
통계 숫자로써 사실을 밝히는 자연 과학적 수법에 새삼스러운 감탄을 느끼면서, 다음 질문으로 들어갔다.
"그러면 그렇게 살아남은 꾀꼬리는 집 안에서 노래를 부릅니까?"
"물론 여기에도 불가능은 없습니다. 그러나 꾀꼬리를 울리는 것은 그것을 살리기보다도 더욱 힘든 일입니다."
[ * Y교수와의 상담]
이러한 서두로 시작되어 Y 교수의 설명의 요지는 다음과 같았다.
대자연의 자유를 잃고 새장 속에 구속된 꾀꼬리는, 다시는 노래를 부르지 않기로 결심이라도 한 듯이 굳게 입을 다문다. 이 닫힌 입을 여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뿐이다. 그것은 꾀꼬리의 집을 까만 보자기로 싸가지고 꾀꼬리들이 많이 있는 산 속으로 들어가는 과정부터 시작된다. 캄캄한 조롱 속에 갇힌 꾀꼬리는 대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부르는 옛 친구들의 노랫소리를 들을때, 옛 고향을 사모하는 마음 간절하여 침통한 심정으로 귀를 기울인다. 이때 새장을 덮었던 보자기를 확 벗긴다. 이 순간, 찬란한 광명과 새장 밖으로 보이는 대자연의 모습이 갇혔던 꾀꼬리의 눈을 부시게 하며, 밖에서 부르는 옛 친구들의 노래는 더욱 황홀하게 고막을 울린다. 찰나에 조롱 안의 꾀꼬리는 또다시 해방이 왔다는 착각에 사로잡히며, 잃었던 옛노래를 소리 높이 부른다. 마치 플라톤의 생멸계(生滅界)로 타락된 영혼이 그림자를 보고 이데아를 상기하는 순간과도 같이, 그러나 날개를 뻗쳐 높이 날려던 꾀꼬리가 여전히 갇힌 신세하는 것을 깨닫자 그는 또다시 굳게 입을 다물어 버린다.
[ * Y교수의 설명]
한 번 울리기가 그렇게 힘든대서야 감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산에까지 가서 노래를 들을 바에야 구태여 조롱 속의 새소리를 들어야 할 이유도 없을 것 같다. 후련한 뉘우침에 Y교수의 연구실을 나오는 몸과 마음이 거든해짐을 느꼈다. 동시에 꾀꼬리의 입을 여는 또 하나의 방법이 있음을 깨달았다.
집에 돌아와 보니 다행히도 꾀꼬리들이 아직 살아 있었다. 조롱문을 조용히 열어 주었다.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꼼짝도 않는다. 끄집어내서 멀리 날렸더니 그제서야 훨훨 창공으로 달아난다.
[* 소유에 대한 뉘우침과 꾀꼬리를 놓아줌]
꾀꼬리가 날아간 하늘에는 흰구름장이 둥실 떴다. 첫여름 훈훈한 바람이 빈새장을 가늘게 흔든다.
[* 꾀꼬리가 날아간 하늘과 빈 새장]
[* 특지가 →뜻있는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
* 꾀꼬리가날아간 하늘에는 흰 구름장이 둥실 떴다 → 자연성의 회복을 상징하는 배경 묘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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