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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수필

91. 오월

by 자한형 2021.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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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피천득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 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스물 한 살 나이였던 오월

불현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에 간 일이 있다

해변가에 엎어져 있는 보트

덧문이 닫혀 있는 별장들

그러나 시월같이

쓸쓸하지는 않았다

가까이 보이는 섬들이

생생한 색이었다

得了愛情痛苦

얻었도다 애정의 고통을

失了愛情痛苦

버렸도다 애정의 고통을

젊어서 죽은 중국 시인의

이 글귀를 모래 위에 써 놓고

나는 죽지 않고 돌아왔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 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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