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메타포 안병욱
세 사람의 석공(石工)
20여 년 전에 배운 중학교 영어 교과서 삽화(揷話) 하나가 생각난다. 어떤 교회를 짓는데 세 사람의 석공이 와서 날마다 대리석을 조각한다. 무엇 때문에 이 일을 하느냐고 물은 즉, 세 사람의 대답이 각각 다르다.
첫째 사람은 험상궂은 얼굴에 불평불만이 가득한 어조로,
“죽지 못해서 이놈의 일을 하오.”
하고 대답한다.
둘째 사람은 담담한 어조로 이렇게 말한다.
“돈 벌려고 이 일을 하오.”
그는 첫째 사람처럼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서 불평을 갖지 않는다. 그렇다고 별로 행복감과 보람을 느끼는 것도 아니다.
셋째 사람은 평화로운 표정으로 만족스러운 대답을 한다.
“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이 대리석을 조각하오.”
그는 자기가 하는 일에 보람과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다.
이 삽화의 상징적 의미는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사람은 저마다 저다운 마음의 안경을 쓰고 인생을 바라본다. 그 안경의 빛깔이 검고 흐린 사람도 있고 맑고 깨끗한 사람도 있다. 검은 안경을 쓰고 인생을 바라보느냐? 푸른 안경을 통해서 인생을 내다보느냐? 그것은 마음에 달린 문제다. 불평(不平)의 안경을 쓰고 인생을 내다보면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이 모두 불평 투성이요, 감사(感謝)의 안경을 쓰고 세상을 바라보면 인생에서 축복하고 싶은 것이 한없이 많을 것이다.
똑같은 달을 바라보면서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서 혹은 슬프게 혹은 정답게 혹은 허무하게 느껴진다. 행복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육체(肉體)를 쓰고 사는 정신(精神)인 이상, 또 남과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회적 존재인 이상, 누구든지 먹고 살기 위한 의식주(衣食住)와 처자(妻子)와 친구와 명성(名聲)과 사회적 지위가 필요함은 말할 것도 없다. 돈, 건강, 가정, 명성, 쾌락 등은 행복에 필요한 조건이다. 이런 조건을 떠나서 우리는 결코 행복할 수 없다. 그러나 행복의 조건을 갖추었다고 곧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행복하다는 것과 행복의 조건을 갖는다는 것과는 엄연히 구별해야 할 별개의 문제다. 집을 지으려면 돌과 나무와 흙이 필요하지만 그런 것을 갖추었다고 곧 집이 되는 것이 아님과 마찬가지의 논리다.
행복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행복감을 떠나서 행복이 달리 있을 수 없다. 아무리 돈이 많고 명성이 높고 좋은 가정을 갖고 재능이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을 가지면서도 불행한 사람, 또 그와 반대로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은 별로 갖지 못하면서도 사실상 행복한 사람을 우리는 세상에서 가끔 본다. 전자(前者)의 불행은 어디서 유래하며 후자(後者)의 비밀은 어디에 있을까.
“항산(恒産)이 없으면 항심(恒心)이 없다.”
고 맹자는 말했다. 그러나 맹자는 다시, 선비는 항산(恒産)이 없어도 항심(恒心)이 있다고 단언(斷言)했다. 맹자의 ‘항산’이란 말을 ‘행복의 조건’이란 말로 바꾸고, ‘항심’이란 말을 행복이란 말로 옮겨 놓아도 별로 의미에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행복의 조건을 갖추지 못하면 행복할 수 없다. 그러나 선비는 행복의 조건을 못 갖추어도 행복할 수 있다. 이것이 맹자의 행복의 논리다. 행복의 조건이 행복의 객관적 요소라고 한다면, 행복감은 행복의 주관적 요소다. 행복은 이 두 가지 요소의 종합에 있다.
행복해질 수 있는 충분한 조건을 가지면서도 행복해지지 못하는 비극의 원인은 어디에 있으며, 또 행복해질 만한 조건은 별로 갖추지 못하면서도 행복을 누리는 비결은 무엇일까? 맹자의 표현을 빌려서 말한다면 항산이 없더라도 항심이 있을 수 있음을 어찌된 까닭일까? 그것은 요컨대 마음의 문제다.
“사람은 자기가 결심하는 만큼 행복해질 수 있다.”
고 링컨은 말했다. 행복이 마음의 문제라고 한다면 마음의 어떠한 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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