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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수필가 작품

모래알만한 진실이라도 퀸스드림(박완서)

by 자한형 2021. 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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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마음이 따뜻해졌다. 할머니의 편안한 음성으로 읽어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읽으면서 느껴지는 잔잔한 감동은 덤이다. 화려하게 꾸미지 않아도 스펙터클한 사건사고가 없어도 잔잔한 강가를 바라보면서 많은 생각에 잠기게 하는 그런 에세이였다.

이런 에세이가 600편에 달한다는 것도 정말로 대단하다. 40대부터 쓴 글을 80세까지 썼다니...

육아에만 전념한 40년이 나머지 40년을 이끈 것 같다. 나에게 있어서 40대는 늦은 나이인데, 작가님에게 40대는 시작의 나이였다.

40대도 중반이 되는 나인데... 이제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때 박완서 님의 글을 읽으면 위로받게 되는 것 같다.

"아냐... 절대로 늦은 것이 아니야. 네가 시작하려고 하는 날부터 시작하면 돼."

4명을 양육하신 분이라서일까? 사진 속 작가님의 모습도 아직도 소녀 같은 모습이 보이는듯하다.

큰 소리 한번 내지 않았을 것 같은 온화한 모습. 80세로 기력을 다할 때까지 꾸준하게 글을 쓰시는 모습이 연상된다.

아직도... 아직도 출간되지 않은 글들이 많다는 따님의 인터뷰 글을 본 적이 있다.

40년 동안 얼마나 많은 글을 쓰신 걸까?

잔잔한 글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흘려버릴 수 있었던 작은 사건 속에서 안타까워하고, 속상해 잠 못 이루셨다는 작가님의 마음이 읽혀서, 잘 모르지만 왠지 알 것도 같은 기분이 든다. 나의 글도 이랬으면 좋겠다. 사람들에게 꾸준하게 읽히는 글. 죽어서도 내 글을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큰 꿈을 꿔본다. 그렇게 향기 나는 사람이 되길... 그런 향기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길... 간절하게 바래본다.

[ 다시 읽고 싶은 글귀]

왜 목소리가 그 모양이냐고 먼저 이쪽의 우울증을 짚어내기에 나는 왜 노래도 못할까? 하면서 하소연을 시작했다. 친구는 딱하다는 듯이 네가 노래까지 잘하면 어떡하게,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나는 그 간단한 한마디를 뛸 듯이 반기며,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재차 확인까지 했다. 기분이 단박 밝아졌다. 노래도 못한다고 생각할 적엔 나 같은 건 이 세상에서 무용지물과 다름없더니, 노래까지 잘하면 어떡하느냐는 소리를 들으니까, 노래만 빼고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줄줄이 떠올랐다.

나는 손자에게 쏟는 나의 사랑과 정성이 갚아야 될 은공으로 기억되기보다는 아름다운 정소로 남아 있길 바랄 뿐이다. 나 또한 사랑했을 뿐 손톱만큼도 책임을 느끼지 않았으므로. 내가 불태운 것만큼의 정열, 내가 잠 못 이룬 밤만큼의 잠 못 이루는 밤으로 갚아지길 바란 이성과의 사랑, 너무도 두렵고 무거운 책임감에 짓눌려 본능적인 사랑 또한 억제해야 했더니 자식 사랑... 이런 고달픈 사랑의 행로 끝에 도달한, 책임도 없고 그 대신 보답의 기대도 없는 허심한 사랑의 경지는 이 아니 노후의 축복인가.

자랑할 거라곤 지금도 습작기처럼 열심히라는 것밖에 없다. 잡문 하나를 쓰더라도, 허튼소리 안 하길, 정직하길, 조그만 진실이라도,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진실을 말하길, 매질하듯 다짐하며 쓰고 있지만, 열심히라는 것만으로 재능 부족을 은폐하지는 못할 것 같다. 작가가 될까 말까 하던 4년 전의 고민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채다.

비켜나 있음을 차라리 편안하게 여기게 되었고 와중에 있는 것보다는 약간 비켜나 있으면 돌아가는 모습이 더 잘 보인다는 것도 터득하게 되었다. 비켜나 있음의 쓸쓸함과 약간 떨어진 위치에서 사람 사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 거리를 가장 잘 보이게끔 팽팽하게 조절할 때의 긴장감은 곧 나만이 보고 느낀 걸 표현해 보고 싶다는 욕구로 이어졌다. 그런 욕구를 충족시키고 나면 인간관계에서 비실비실 비켜나 있음이 촌스러울 뿐 아니라 떳떳지 못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자격지심이 조금은 위로받을 수 있다는 것도 글 쓰는 보람이다.

작가의 눈엔 완전한 악인도 완전한 성인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한테 미움받은 악인한테서도 연민할만한 인간성을 발굴해낼 수 있고, 만인이 추앙하여 마지않는 성인한테서도 인간적인 약점을 찾아내고야 마는 게 작가의 눈이다. 그리하여 악인과 성인, 빈자와 부자를 층하하지 않고 동시에 얼싸안을 수 있는 게 문학의 특권이자 자부심이다. 작가의 이런 보는 눈은 인간 개개인에게뿐 아니라 인간이 만든 사회나 제도를 보는 데도 결코 달라질 순 없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나를 치유해 준 것이다. 이 나이까지 살아오면서 깨달은 소중한 체험이 있다면 그건 시간이 해결 못할 악운도 재앙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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