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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수필2

70. 낙엽도 나무의 몸이다.

by 자한형 2022.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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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도 나무의 몸이다   임영석

어느덧 내 나이가 쉰아홉, 스물셋 어린 나이에 시인이 되겠다고 신춘문예에 응모도 하고 문예지 추천을 받았던 게 엊그제 같은 데,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한마디로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던 강아지 꼴이다. 그래도 1985년 현대시조 봄호에 2회 추천을 받아 시인이 된 후, 꾸역꾸역 멈추지 않고 35년을 내 마음을 벼르고 벼르며 버티어 왔다.

나무가 제 허릿살, 뱃살을 늘려 나이테를 숨겨온 것처럼, 나도 내 허릿살, 뱃살만 늘려 세월만 감추고 살았다는 느낌만 든다. 해마다 아쉬움이라는 감정을 더 많이 떨구어야 하고, 해마다 새로운 잎을 피워내기 위해 더 많은 고통을 참고 참아내야 살아갈 수 있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 특별히 없었다. 그러니 참고 참는 방법으로 시를 선택해 시를 써왔을 뿐이다.

내 삶은 無情 함의 한 부분처럼 서 있는 나무다. 이웃 사람들과 친밀함도 못 갖고, 형제들에게 애틋한 정을 나눠주는 사람도 못 되고, 시인들과 어울려 갈대처럼 서걱거리는 날도 보내지 못한 사람이었다. 오르지 살아내야 한다는 생각에 세상과 싸웠고, 내 삶과 싸웠고, 고독과 싸워왔을 뿐이다. 그 결과 내 몸 하나 겨우 챙기며 살아온 게 전부다.

젊어서는 세상과 싸우겠다고 노조활동도 해보고, 동료들이 눈치껏 타협하며 회사에서 진급도 하고 말석의 자리라도 직책을 맡았을 때, 나는 알량한 자존심 하나 꺾지 않고 버티다가, 결국 스스로 2016년 정년을 5년 남기고 희망퇴직을 했다. 내 삶의 현실은 늘 나와 나를 타협이란 공간에 묶어두지 않았다. 마음으로는 뿌리 깊이 무언가 모르는 의식을 키우겠다고 몸부림쳤고, 눈빛으로는 하늘의 해를 보며 뻔히 지고 말 것을 알면서도 그 해를 째려보며 살았다. 그러니 이제는 두 눈도 앞을 분간 못하고 쓸모가 없는 눈이 되고 말았다.

내 몸에서 35년 동안 의 독을 품고 살았으니, 그 독을 해독하기 전에는 죽을 수도 없다는 것인지, 밤낮으로 글을 쓰고 시를 읽고 시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 일이 일상이 되었다.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다. 오르지 나를 위한 일임에도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간 낙엽 같은 일들이 나를 지켜내는 거름이 되어 내 몸을 감싸고 새로운 나뭇잎을 피워주는 힘이 되어주었다.

스물다섯에 고향 진산 엄정리을 떠났으니 타향살이만 34년째이다. 올 한식날, 다섯 살에 돌아가신 아버지와 스물둘에 돌아가신 어머니 묘를 이장하며 유골로나마 기억에도 없는 아버지를 보았고, 고생만 하시다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死後에 만났다. 도둑질 남 못 준다고 아무리 염색을 해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머리가 희끗희끗 보일 때마다 그 흉함을 보고 나서 내 머리 깎기 전에 고향의 부모님 산소를 찾아가는 일을 하나 더 만들었다. 용돈도 주고 맛있는 음식도 챙겨드리는 사람들을 보며 내가 궁극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한 결과가 마음에서라도 부모님을 만나자는 것이었다. 이것도 내 빈 욕심 하나를 채우기 위한 일이라는 것을 잘 안다.

내가 고향을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것은 상엿집에 놓인 울긋불긋 색칠해 놓은 꼭두의 모습이다. 스물넷 나이에 사촌 형 장례를 치르고 나서 상여의 틀을 갔다가 놓으며 상엿집 속의 꼭두를 본 것이 고향에 대한 마지막 추억이 되었다. 그 후 난 나 스스로가 세상의 꼭두가 되어 살았다고 본다. 이제는 꼭두와 같이 고향이라는 색도 다 벗겨져 사라졌고, 세상과 다시 어울리지 못하는 꼭두로 변해 꼭두인지 인형인지 구분도 되지 않는 그런 모습이 되어 있다.

그래서 이제는 고향에 대한 소재의 시는 잘 쓰지 않는다. 너무 오랜 시간 고향을 떠나서 살다 보니 고향이 어떻게 변해가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졌다. 아니 사실 어떻게 할 힘도 없다. 겨우 친구들 집안의 애경사에서 얼굴을 보며 잘 살고 있냐는 안부를 묻는 게 내 일의 전부다. 여기서 세월이 무섭다는 것을 나는 느낀다. 거주하지 않으면 거주하지 않는 만큼 모든 권리도 없다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는 것을 알았다.

내 고향 진산은 작고한 수필가 진웅기 선생, 아동문학가 한상수 선생, 시인 안용산, 시인 황구하, 지금은 절필을 선언한 김선주 시인, 그리고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이다. 작은 면에서 여섯 명이나 문인이 태어났다. 모두 훌륭한 문장과 실력을 자랑하고 있지만 나만 아직도 빈곤한 문장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마저도 나는 서두르지 않는다. 없는 재주를 억지로 부려서 흉한 모습만 더 보이지 않겠다는 것이 내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저 내 재주껏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데 그 의미를 두고자 한다.

어버이 저승 가시고

재롱떠는 아들을 보니

씨감자 눈트듯이

무거운 의 시름만

한 장의 窓紙로 가려

童佛처럼 달려온다.

1987년 쓴 故鄕詩抄의 일부분이다. 당시 태어난 아들이 장성하여 가정을 이루었다. 내 삶의 중간에 부득이 이혼을 하여 아들을 혼자 키우다 보니 부족함이 많았다. 지금도 제때에 사랑을 채워주지 못한 마음이 가장 미안하고 가슴 아픈 일로 기억된다. 그래도 시간은 흘러 여기까지 흘러왔다. 수많은 삶의 낙엽이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자식도 그 낙엽 같은 씨앗의 하나이다. 내가 쓴 도 그 낙엽 같은 잎이었다.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간 낙엽들이 어느 허공 방황하지 않고 뭍으로 흩날리지 않고 내 몸 가까이 바닥에 떨어져 울긋불긋 아름다움을 더해주었다. 35년이란 시간, 글을 써온 덕분인지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간 낙엽 같은 시들이 내 몸의 일부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틈이 나는 대로 큰 나무들을 찾아가 쉬었다가 온다. 원주에는 반계리 은행나무가 천년의 세월을 자랑하고, 행구동 느티나무가 천년 세월을 이겨낸 나무이다. 대안리 느티나무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잘 버티고 살아가고 있다. 오래된 고목 밑에 잡목이 살지 않음을 바라보며 고목이 된다는 것이 어떤 외로움을 이겨내야 하는지를 배운다.

고향을 떠나 살아오면서 30여 년 살아온 이곳 원주가 타향이란 생각보다 이제는 고향이 되어가고 있다. 강원문협에서 주는 제38회 강원문학상을 올해 내가 수상하게 되었다. 글을 잘 썼다기보다는 오래 쓰고 오랜 고독을 이겨낸 마음을 위로해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도 욕심이라면 나무와 나뭇잎이 한 몸처럼 보이는 시를 써 남은 내 삶의 외로움을 이겨내고 싶다. 낙엽 같은 어제의 날들이 내 몸처럼 느끼는 것도 모두 후회스러움을 스스로 덮어주는 내일의 삶의 날이 있기에 가능하다고 본다.

내 오랜 벗, 에게 누추한 옷을 입혀 미안하다. 그래도 스스로 울긋불긋 단풍 들어 나를 위로해주는 날도 있으니 고맙다. 나 떠나고 없는 날, , 너 혼자 이겨낼 외로움의 날들을 생각하며 더 붉고 뜨거운 낙엽이 되도록 내 살아 있는 동안 더 노력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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