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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수필2

77. 미운 간호부

by 자한형 2022.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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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간호부

 

어제 S병원 전염병실에서 본 일이다. A라는 소녀, 7-8세 밖에 안 된 귀여운 소녀가 죽어 나갔다.

적리로 하루는 집에서 앓고, 그 다음 날 하루는 병원에서 앓고, 그리고 그 다음 날 오후에는 시체실로 떠메어 나갔다.

밤낮 사흘을 지키고 앉아 있었던 어머니는 아이가 운명하는 것을 보고, 죽은 애 아버지를 부르러 집에 다녀왔다.

그동안 죽은 애는 이미 시체실로 옮겨 가 있었다. 부모는 간호부더러 시체실을 가리켜 달라고 청하였다.

 

 

"시체실은 쇠 다 채우고 아무도 없으니까, 가보실 필요가 없어요."

하고 간호부는 톡 쏘아 말하였다. 퍽 싫증난듯한 목소리였다.

 

 

"아니, 그 애를 혼자 두고 방에 쇠를 채워요?"

하고 묻는 아머니의 목소리는 떨리었다.

 

"죽은 애 혼자두면 어때요?"

하고 다시 톡 쏘는 간호부의 목소리는 얼음같이 써늘하였다.

이야기는 간단히 이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때 몸서리처짐을 금할 수가 없었다,

'죽은 애를 혼자 둔들 어떠리!' 사실인즉 그렇다. 그러나 그것을 염려하는 어머니의 심정! 이 숭고한 감정에 동정할 줄 모르는 간호부가 나는 미웠다.

그렇게 까지도 간호부는 기계화되었는가?

 

 

나는 문명한 기계보다도 야만인 인생을 사랑한다. 과학상에서 볼 때, 죽은 애를 혼자 두는 것이 조금도 틀릴 것이 없다.

그러나 어머니로서 볼 때에는……. 더 써서 무엇하랴?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하고, 동정할 줄 모르는 간호부!

그의 과학적 냉정이 나는 몹시도 미웠다. 과학문명이 앞으로 더욱 발달되어 인류 전체가 모두 다 '냉정한 과학자'가 되어 버리는 날이 이른다면…….

나는 그것을 상상하기에만도 소름이 끼친다.

()! 그것은 인류 최고 과학을 초월하는 생()의 향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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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달린 평설

 

 

주요섭은 30년대 사랑손님과 어머니로 유명하지만 그에 앞서서 사회주의 문학 경향도 짙었었다.

해방 후 까지 꾸준히 써 나간 작품들은 민족의식이 강하고 정의감이 뚜렷하다. 이 작품도 그렇다. 미운 간호부는 과학 만능주의가

인간의 삶을 얼마나 황폐화시키고 있는지를 날카롭게 비판한 작품이다.

 

" 나는 문명한 기계보다도 야만한 인생을 사랑한다. 과학생에서 볼 떄, 죽은 애를 혼자 두는 것이 조금도 틀릴 것이 없다.

그러나 어머니로서 볼 때에는……."

 

작자는 이런 주제를 병원에서 일어난 하나의 사건을 통해서 분명하게 주장하고 있다.

갑자기 어린 자식을 잃은 어머니는 슬픔의 극한 상황에 도달해 있다.

어린 자식은 적리에 걸린 지 이삼 일 만에 죽어 버렸다. 그런데 어머니는 병원에서 잠깐 자리를 비웠다가 죽은 자식 얼굴도 보기 어렵게 되어 있다. 남편을 찾으러 나간 사이에 병원 측에서는 죽은 아이를 시체실로 옮기고 쇠를 잠가 버렸기 때문이다.

여기서 병원 측의 조치는 잘못이 없다. 시체는 시체실로 옮기는 것이 당연하고 특히 전염성이 있는 병자이니 그렇다.

그런데 문제는 간호사의 매정한 말투다. 죽은 애인데 시체실에 혼자 두고 쇠자물통을 잠근들 어린애가 무서움이나 외로움을 알 까닭이 없으니 잘못이 아니라는 말투다.

작자는 이렇게 매정한 간호사를 통해서 과학의 발달이 얼마나 인간성 상실의 냉혹한 시대를 초대하고 있는지를 나타내고 있다.

 

"시체실은 쇠 다 채우고 아무도 없으니까, 가 보실 필요가 없어요."

하고 간호부는 톡 쏘아 말하였다. 퍽 싫증난 듯한 목소리였다.

"아니, 그 애를 혼자 두고 방에 쇠를 채워요?"

하고 묻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떨리었다.

"죽은 애 혼자 두면 어때요?"

 

이 몇마디는 인간적 정서가 고갈되어 가는 사회의 잔홍성을 단적으로 잘 드러내고 있다.

그러면서 아무리 과학 문명의 발달이 우리에게 편리하고 또는 풍요로운 세상을 약속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인간의 따뜻한 정을 상실해 버리는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라면 차라리 불편하더라도 정이 있는 야만의 세상을 선택하겠다는 것이 작자의 생각이다.

 

그런데 이 부분은 조금쯤 더 설명이 필요할 듯하다. 이처럼 정이 넘치는 세상에 대한 작자의 주장에 기본적으로 동의하더라도 이 주장이 완벽한 설득을 얻는 데는 조금쯤 무리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작품속의 간호사는 분명히 냉혹하다. 자식을 잃은 어머니를 위로하려는 태도가 전연 없기 때문에 너무 매정하다.

물론 간호사로서는 자신이 맡은 기본적인 사무직 역할은 다 한 셈이다. 그렇게 무서운 세균성 질환자의 주검은 신속하게 시체실로 옮기고 병원 담당자 외의 출입은 철저하게 통제해야 옳다. 그것이 더 틍 재앙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이며 이 원칙을 어기고 어머니에 대한 동정으로 시체실 문을 열어 주고 어머니가 시페에 메달려 통곡하는 장면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그러니까 이것은 간호사의 사무적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교양의 문제다.

이런저메서 보면 "나는 문명한 기계보다도 야만인 인생을 사랑한다"라고 말한 것은 다소 논쟁의 소지가 있다.

오늘날 우리가 '인문학의 위기'라고 말하는 것도 그처럼 과학의 발달이 인간적 정서의 상실과 황폐화 현상을 말하는 것이지만

과학의 발달이 필연적으로 그처럼 휴머니티의 소멸을 필수조건으로 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의 기본적 삶을 위한 사회적 조건은 사실로 과학의 발달과 병행해서 항상되어온 것도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몇 줄만 더 세심ㄴ한 논리의 전개가 필요할 듯이다.

이 작품에 나타나는 휴머니즘 정신은 그의 전 작품에서 거의 일관성을 이루고 있다.

가장많이 알려진 소설 사랑손님과 어머니는 너무도 순수하고 또 고전적인 사랑의 형태를 통해서 남녀간의 에로티시즘보다는 고답적인 도덕적 정서의 아름다움을 더 많이 나타냈으며, 장편소설 구름을잡으려고는 조국을 잃은 우리 민족의 슬픔과 고난을 파헤친 역작이고, 단편 인력거꾼은 가난하면서도 바르게 살아 나가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강력하게 휴머니즘 정신을 일깨워 준다. 그의 수필은 이런 소설 등과 함께 총괄해서 작자의 내면세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대화와 지문의 문장을 훌륭하게 발휘해서 한 편의 콩트 같은 느낌을 준 것은 소설가가 쓴 수필로서 더욱 매력을 더해 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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