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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수필2

116. 독서와 인생

by 자한형 2022.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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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讀書)와 인생(人生)   이희승

사람은 생각하는 갈대다.”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갈대라고 한 것은 아마 약하다는 뜻을 나타낸 것이 아닌가 한다. 갈대는 웬만한 바람일지라도, 이리 흔들리고 저리 쏠리고 한다. 그러나, 사람은 이와 같이 약한 존재(存在)이면서도, 생각하는 작용(作用)을 한다. 생각한다는 일, 이것이 사람을 다른 동물(動物)과 구별(區別)하는 중요한 조건(條件) 중의 한 가지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사람을 만물(萬物)의 영장(靈長)이라 이르는 것도, 이 생각하는 작용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은 그만큼 놀랍고 위대(偉大)한 것이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는 달리, 문화(文化)를 창조(創造)하여 내려 왔고, 또 그것을 흐뭇하게 누리고 있는 것은 온전히 사고 작용(思考作用)의 덕분(德分)이라 할 수 있으며, 오늘날 월세계(月世界)를 다녀오고 또 다른 행성(行星)에 가 보려고 하는 계획(計劃)을 세우는 것도 사람이 생각하는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벌써 수십 년 전의 일이다. 극장(劇場)에 구경을 갔더니, 막간(幕間)에 배우(俳優) 한 사람이 나와서 재담(才談)을 하는데, “이 세상에서 제일 큰 방울이 무엇이냐?” 하는 수수께끼를 내고서, 제 스스로 해답(解答)하는 것을 본 일이 있다. 그 해답이란 별다른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제일 큰 방울은 빗방울, 물방울, 은방울, 말방울, 퉁방울, 왕방울, 죽방울 등 어떠한 방울도 아니요, 곧 사람의 눈방울이라는 것이었다. 왜냐 하면, 사람의 눈방울 속에는 안 들어 오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주위(周圍)에 있는 인간(人間), 동물, 주택(住宅), 산천 초목(山川草木) 등의 모든 풍경(風景)이 동공(瞳孔)을 통하여 사람의 눈 속으로 들어온다. 만일 높은 산에라도 올라서면 더욱 넓은 세계(世界)가 눈 속으로 들어오게 되고, 천문대(天文臺) 망원경(望遠鏡)이라도 빌게 된다면, 수억(數億)의 별이 있는 큰 우주(宇宙)가 사람의 조그마한 눈 속으로 들어오게 되니, 눈방울이 과연 크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는 사람의 사고 작용에 대해서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우주의 이 끝에서 저 끝까지도(즉 공간을) 생각하여 볼 수 있고, 태양계 생성(太陽系生成)의 초기(初期)로부터 지구 냉각(地球冷却)의 말기(末期)까지도(즉 시간을) 생각하여 보려 하고 또 할 수도 있으니, 인간의 생각이란 참으로 굉장(宏壯)한 작용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런데, 사람이 이와 같은 생각의 범위(範圍)를 어떻게 넓히고 높이고 깊게 하겠느냐 하면, 별수없이 남의 지식(知識)을 빌어 오는 도리(道理)밖에 없다. 빌어 오되, 한 사람의 지식뿐만 아니라, 될 수 있는 대로 여러 사람의 지식을 대량(大量)으로 거둬들여야 할 것이다. 현대인(現代人)의 지식뿐만 아니라 옛 사람의 지식도, 신변(身邊)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지식뿐만 아니라 먼 거리(距離)에 떨어져 있는 사람들의 지식도 빌어 와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하지 않고서는, 우리의 사고 작용의 도()를 넓히고 높이고 하여, 그 활동(活動)을 활발(活潑)하고 왕성(旺盛)하게 할 수가 없다. 여기서 우리는 서적(書籍)의 필요를 느끼게 된다.

사고 작용을 활발하고 왕성하게 하기 위하여 서적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피차간(彼此間)에 가진 생각을 서로 교환(交換)하는 수단(手段)으로 언어(言語)라는 것을 사용한다. 그런데, 언어는 이것을 이용(利用)하기에 힘이 안 들어 용이(容易)하고, 또 돈이 안 들어 경제적(經濟的)으로도 유리(有利)하지마는, 표출(表出)하는 순간(瞬間)에 사라지고 말아서, 보존(保存)하여 두고 되풀이하여 들을 수가 없고, 또 사람의 성량(聲量)은 한도(限度)가 있어서, 먼 곳에까지 들릴 수가 없다. 따라서, 아무리 목소리가 큰 웅변가(雄辯家)라 할지라도, 그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의 수효(數爻)는 무한정(無限定) 많을 수가 없다.

이러한 것을 언어는 시간적(時間的)으로 공간적(空間的)으로 제한(制限)을 받는다고 이른다. 이 제한을 어떻게 제거(除去)할 수 있느냐 하면, 그것은 곧 자기의 하고 싶은 말을 글자를 써서 기록(記錄)으로 바꾸어 놓으면 된다. 그러면, 이 기록을 두고두고 볼 수도 있고, 또 먼 거리에 보낼 수도 있게 된다. 그리고, 여러 사람이 돌려 볼 수도 있다. 사람이 기록을 만들 필요를 이런 일에서 절실(切實)히 느끼었고, 따라서 문자(文字)를 발명(發明)하여 낸 이유(理由)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사람끼리 서로 만나서 회화(會話)를 교환(交換)하게 되면, 서로 전달(傳達)하고 싶은 생각을 곡진(曲盡)하게 철저(徹底)하게 할 수 있는 편리(便利)가 있는 반면(反面), 그 말로써의 표현(表現)은 처음부터 끝까지 질서(秩序)가 잡히고 조리(條理)가 밝을 수는 없다. 대개는 그 표현이 산만(散漫)하고 중복(重複)이 있고 군더더기가 붙어서, 간결(簡潔)하고 세련(洗練)된 표현이 되기 어렵다. 이러한 폐단(弊端)을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이 곧 자기의 생각을 정돈(整頓)하여 기록(記錄)에 옮기는 일이다. 이러한 정돈된 생각을 조리를 따져 가며 체계(體系)를 이루어 기록하여 내면, 그것이 곧 책으로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개의 경우에 있어서는 무용 유해(無用有害)한 생각을 서적(書籍)의 형태(形態)를 빌어서 만들어 내는 일은 없고,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까지 필요하리라 생각되는 바를 질서 있게, 체계 있게, 그리고 조리가 밝게 기록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서적은 사색(思索)의 결과(結果)요 지식의 창고(倉庫)인 동시에, 사색의 기록이 되며, 지식의 원천(源泉)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말과 같이, 의식주(衣食住)의 생활을 충족(充足)시키면 인간의 할 노릇을 다하였느냐 하면 그런 것은 결코 아니다. 의식주는 자신의 생명을 유지(維持)하는 데는 불가결(不可缺)한 필수 조건(必須條件)이지마는, 사람은 그만 못지않게 정신 생활(精神生活)의 신장(伸張)을 욕구(慾求)하고 있다. 그리고, 이 정신 생활의 신장이란 이상(理想)을 추구하고 있다. 사람은 어쨌든지 당면(當面)한 현 상태(現狀態)에만 만족(滿足)하지 않고, 인간의 생활을 좀더 고도화(高度化), 심화(深化), 미화(美化)하려 한다. 이것이 곧 이상을 추구하는 정열(情熱)이다. 그리고, 이 정신 생활의 고도화를 실현(實現)하려면, 각 개인의 인격 수양(人格修養)이라는 것이 절대(絶對)러 필요하게 된다. 이와 같은 이상의 추구뿐만 아니라. 당면한 현실 생활(現實生活)을 질서(秩序) 있게 평화(平和)스럽게 영위(營爲)하려는 데도 각 개인(各個人)의 인격 수양(人格修養)이라는 것이 절대로 필요하다. 왜냐 하면, 이러한 수양(修養) 없이는 사람은 자기 본위(自己本位)로만 생각하기 쉽고, 따라서 사회악(社會惡)을 지어 내게도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격(人格)이나 덕행(德行)의 뒷받침이 없는 지식은 인류 생활(人類生活)의 이익(利益)이나 행복(幸福)을 가져오기는커녕 해독(害毒)과 불행(不幸)을 지어 내기 쉬운 위험성(危險性)을 내포(內包)하고 있다 할 것이다. 따라서, 수양에 관한 서적(書籍)은 사람인 이상 누구에게나 필요한 등불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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