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수업 구양근
나의 28연간의 교수생활을 마감해야 할 날이 갑자기 다가왔다.
정년을 한 학기 남겨놓고 홀연히 국가의 부름을 받은 탓에 약간 앞당겨 교수생활을 마감해야 할까 생각했다. 학교가 가까워오자 가슴이 뛴다. 부랴부랴 할 말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옳지, 그 말을 해야지.”
나는 우리 학교 학생들이 큰 뜻을 품지 않음을 항상 불만으로 여겨왔다. 나의 그 당부의 말을 오늘 학생들에게 확실하게 심어주기로 했다.
강의실을 들어선 나는 오늘이 나의 마지막 수업임을 선포했다. 학생들이 갑자기 웅성대기 시작한다.
“학생 여러분! 오늘은 기나긴 내 교수생활의 여정을 마무리 짓는 날입니다. 저는 오늘 이 예기치 못한 고별강의에서 여러분에게 마지막으로 ‘꿈을 가지라! 는 한 마디의 선물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지방의 C대학에서 3년간 근무하고 우리 대학으로 옮겨와서 25년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C대학은 우리 대학보다 수능점수가 훨씬 낮은 대학입니다. 그런대도 그 대학에서는 장관도 나오고, 많은 국회의원도 나왔으며, 판검사가 수두룩합니다. 그런데 우리 학교는 이렇게 역사가 깊은 대학인데도 단 한 명의 장관도 나오지 못했고, 국회의원 한 명도 나오지 못했으며, 판검사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습니다. 세상에 이런 대학이 있나 놀랐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깨달았습니다. 아아! 우리 학생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사람이 없었구나, 꿈을 심어주지 못한 것은 첫째 여러분의 부모님의 잘못입니다. 에이! 여자애가 뭐 공무원 시험이나 보고 교사자격증이나 하나 따면 되지, 이런 식의 교육을 시킨 것입니다. 교수분들도 그런 유사한 태도로 여러분을 대했습니다. 그런데 가장 큰 책임은 여러분 자신에게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이, 여자인 내가 뭐…. 이렇게 자학적인 생각을 하고 살아온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그런 생각들일랑 모두 털어버리십시오. 여러분은 무엇이나 할 수 있습니다. 이 시대에 여대 졸업생이라고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까? 약간 더 불리할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그것은 변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가 대통령이 되겠다고 한다면 그렇게 될 것이며, 내가 이런 대학을 하나 짓고 싶다면 지어질 것이오, 나는 중문과 학생이기 때문에 중국에 진출하여 우리의 고토 고구려를 찾아오겠다. 혹은 간도 정도는 꼭 빼앗아 오고야 말겠다 한다면 꼭 그렇게 될 것입니다.
꿈이란 것은 처음 들어서는 좀 황당한 것입니다. 좀 웃기는 것입니다. 들어서 황당하거나 웃기지 않으면 그것은 꿈이 아닙니다.
나는 대학생 때 학교에서 배운 것을 그날로 노트에 써보며 몇 번이고 소리 내서 읽어보겠다는 것이 제 계획이었습니다. 외국어도 한국어도 그런 식으로 하니 거의 다 외워졌고 100점 맞고 1등이 되었습니다. 그까짓 것 외기 시작하니 한 학기 동안 배운 분량이 몇 페이지 되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또 한중일 삼국에서 대학을 하나씩 졸업하겠다는 소박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랬더니 실지로 한중일 삼국에서 대학을 하나씩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문사철(文史哲)을 골고루 하는 학자가 되겠다고 혼자 다짐했습니다. 지금에 와서 제 논문을 다시 돌아보니 문사철에 관한 논문이 골고루 발표되어 있지 뭡니까.
대만에 유학을 떠날 때는 단돈 2백 불을 비상금으로 넣고 간 것이 저의 전 재산이었습니다. 2백 불이라고 해보았자 지금 우리 돈 2십여 만 원 정도밖에 안됩니다. 그런데 나는 그 돈으로 5년간의 유학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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