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
그럼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비 이야기라면 어떨까? 가슴의 가장 깊은 곳까지 스며들어서는 삶을 온통 뒤흔들어놓는 빗줄기 말이지. 전사로 허여금 삶의 모든 것을 걸게 만드는 빗줄기. 그러니까 1950년 10월 19일. 변경의 하늘로 하루종일 구름이 몰려들어 어두워지는가 싶더니 해가 질 무렵이 되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네.
행군을 앞두고 군장 검사를 모두 끝마친 병사들만이 누릴 수 있는 긴장된 침묵이 어느새 고자룩해지고 차거운 가을비가 병사들의 배낭과 털모자로 늘쩡늘쩡 스며들었네. 빗방울이 아니었더라도 병사들의 눈빛이 하염없이 아래로 떨어졌을 그런 날이었네. 겁이 나서 그랬느냐고? ?뿌젠. 그런 말이 어디 있는가? 전사가 겁을 내다니.
"전쟁에서 지고 이기는 것은 예측할 수 없는 것./수치스러운 것을 참고 견디는 것이 남자다." 출전을 앞둔 전사의 심장에서는 가만히 있어도 그런 시가 흘러나온단 말이지. 노전사들은 알지. 인간의 마음이란 계집과 같은 것이라는 걸.
호두알처럼 내 손아귀에 꽉 잡혔는가 싶으면 어느새 수리가 되어 푸른 하늘의 자유를 만끽하지. 평생 몸에서 화약 냄새가 사라지지 않았던 노전사에게도 매번 전쟁은 새로운 것. 무서울 정도로 요염해서 온 마음과 온뭄이 떨려오는 것. 우리는 국민당 놈들을 쫓아 해남도까지 밀고내려갔던 40군이었다네. 해남도를 완전히 해방시키고 난 뒤, 우리는 서로 부둥켜안고 기뻐하면서고 한편으로는 전쟁이 끝낫다는 사실에 아쉬움을 느꼈지. 들판을 침상 삼아 눕고 천궁을 이불 삼아 덮고 자본 남자라면 그 아쉬움이 어디서 비롯하는지 잘 알지.
전쟁이 끝나고 나면 더 이상 온몸과 온 마음이 떨리는 일은 없어질 테니까. 배포는 배포, 눈물은 눈물. 진짜 사내는 그 두 가지를 알지. 그런 우리가 겁이 나서 떨어지는 한줄기 빗방울에 떨어댔다고 말한다면 그건 모독이 아닐 수 없어. 무서울 정도로 요염하기 때문에,거부하면서도 빠져 들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는 소년처럼 떨리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거야. 알겠는가?
몸은 그럴 때 떨리는 거야. 그렇게 병사들의 삶을 온통 뒤흔들어놓는 빗줄기가 서서히 어둠속으로 아슴푸레 해질 무렵, 마침내 출정의 명령은 떨어졌고 우리는 압록강 철교를 건너가기 시작했어. 그날 밤 같은 시각, 중국 인민지원군38, 39, 40, 42군과 3개 포병사단은 안동, 장전하구, 집안 등 세 나루터에서 일제히 강을 건넜지. 한국인이니까 자네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가히 역사를 바꿀 만한 도하가 아니었겠는가?
40군에 속했으니까 나는 안동, 그러니까 지금의 단동을 거쳐 조선 땅으로 들어갔다네. 그날 물 흐르는 소리가 어찌나 요란하던지. 비는 내리고 강은 보이지 않으니 그건 비가 쏟아지는 소리라고 해도, 강물이 흐르는 소리라고 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었지. 나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어. 소리는 번갈아 하늘에서, 강에서 들려오다가는 결국 내 몸에서 들려오기 시작했어. 드디어 출정이다, 라는 생각에 온몸이 터져나갈 것 같았지.
그때 일을 다시 생각하려니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그 소리 참으로 요란하다네. 세상을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 단숨에 역사가 바뀌는 소리, 그런 소리가 자네 몸에서 들려온다고 생각해보게. 당장이라도 계집들에게 그 몸을 보여주고 싶지. 그런 게 바로 사내의 몸이지. 여기에 앉아 내가 읽고 싶은 얼굴은, 또 손은 바로 그런 것이지.
재미없는 일이지만, 기억을 한번 더듬어보자구. 자네는 이런 이야기를 잘 모를꺼야. 한국인들은 그 전쟁에 대해서 누구도 기억하려 들지 않으니까. 어쨌든 노르망디의 경험이 있으니까 미군은 인천에 상륙해 조선잔쟁의 전세를 일시에 역전시켰어. 그건 정말이지, 멋진 작전이 아닐 수 없었어.
진짜 전사라면 여자들이 보석함에 장신구를 모아두듯 그런 작전을 추억 속에 담아두는 거야. 조선인민군의 허리를 잘라버린 미군은 승승장구하며 1950녀누10월 7일 38도선을 넘어 북진을 계속했다네. 중국 인민혁명군사위원회 모택동 주석이 팽덕회를 중국 인민지원군 사령원 겸 정치위원으로 임명하고 그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전보를 보낸 것은 그 다음날인 10월 8일이야.
내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이런 내용이었지. 조선 인민의 해방전쟁을 지원하고 미 제국주의와 그 졸개들의 진공을 반대하며 조선 인민과 동방각국 인민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중국 인민지원군이 속히 조선 경내로 진출해 조선 동지들과 함께 협동작전함으로써 영광스러운 승리를 쟁취할 것을 명령한다.
인민지원군이라니, 무슨 뜻으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 짐작하겠는가? 표면적으로 중국 정부에서 직접 나서서 전쟁을 선포한 것이 아니라 자원한 인민들로 군대를 조직해 출전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지. 그건 제공권을 장악한 미군이 중조변경을 초토화시켜 대량의 지원군을 파견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오기 전에 비밀리에 조선에 들어가기 위해서였어.
따라서 우리는 헤방군의 모표도, 가슴의 휘장도 달지 않은 채 족선인민군의 군복을 착용했지. 그거 묽은 별 다섯 개 찍힌 단추만이 우리가 누구인지 증명해줬다네. 우리가 압록강을 건너기 전날인 10월 18일 하달된 모주석으리 명령에는 이런 섯도 있었다네. 먼저 비밀을 지키기 위해 도장 부대들은 매일 황혼부터 다음날 새벽 네시까지 건너고 다섯시 전에 은폐를 끝마치고 반드시 검사까지 진행할 것.
또한 경험을 얻기 위해 첫날 밤에는 2,3개 사단만 남기고 이튿날 밤에 증가하거나 감소하는 것은 정황에 딸라 적당히 처리할 것. 우리에게는 이름이 없었다네. 어둠처럼, 검은 강처럼 우리는 조선 땅에 스며들었다네.
말도 할 수 없었다네. 누구에게도 우리는 말 할 수 없었다네. 그래서 심지어는 퇴각하는 조선인민군들도 우리가 어떤 군대인지 모를 지경이었어. 그 다음날인 20월 19일, 미군 제1군단 3개 사단은 평양을 점령했으며 중국인민ㅂ지원군은 압록강을 건넜지. 10월20일, 미군 제 287공수여단은 평양에서 퇴각하는 조선인민군의 퇴로를 끊고자 숙천과 순천에 낙하했으며 조건 평안북도 동창과 북진 사이의 구릉지대까지 파고들었어.
미군 사령부는 몇 가지 이유 때문에 중국군이 조선전쟁에 참전할 수 없으리라고 속단했어. 그렇지, 몇가지지. 그 정도면 충분해. 모든 게 바뀌기에는 말이야. 그게 옳은 이유였든 그릇된 이유였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모든 게 바뀌고 나면 말이야. 자네는 몇번이나 전쟁을 겪어봤는가? 한번도 겪어보지 못했다고? 음, 그럴 수도 있겠군. 시대가 바뀌었으니까. 들어봐. 전쟁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을 닮았어. 몇가지 이유만 있으면 완전히 딴판이 되어버리거든. 하하하, 재미있나? 조심하게. 사실 전쟁은 재미있지만 전쟁이야기는 재미없어.
전쟁에는 진실이 있지만, 전쟁 이야기에는 조금의 진실도 없으니까. 내가 전쟁이란 삶을 닮았다고 하지 않았는가? 누가 자네에게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그것도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먼저 하품을 하게나.
지금 내 꼴이 그렇긴 하지만 삶은 살아가는 것이지. 이야기 하는 게 아니거든. 항일전쟁, 해방전쟁, 조선전쟁까지 도합 세 번의 전쟁을 겪은 내 몸은 전사 따위에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지. 하지만 하품이 나오더라도 참게나. 내게 손가락이 잘려나갔느냐고 먼저 물어본 사람은 자네니까.
인간의 운명은 육체를 닮았어. 끊임없이 바뀌는 것이지. 손금을 읽고 관상을 본다는 건 그렇게 바뀌는 몸을 본다는 거야. 볼 수 있는 것은 그저 지금의 운명일 뿐이지. 지금 자네가 누구인가에 따라 자네의 운명은 미친 듯이 요동치게 마련이야.
그게 바로 삶의 신진대사야. 전선이 끊임없이 오르내리듯, 사람의 육신이 쉼없이 변해가듯 인간의 운명 역시 한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고 계속해서 움직여. 한결같은 운명은 죽은 자의 것, 그러므로 운명은 절대로 말로 표현 할 수 없어.
말하는 순간, 그 운명은 바뀔 테니까. 뿌넝숴, 뿌넝숴. 하지만 그런 바보 같은 짓을 여기서 한번 해볼까? 지금 여기, 우리가 앉아 있는 인민로 중국은행 앞이 전쟁터라고 상상해보게나. 그런데 저기 서시장 쪽에서 세 발의 총성이 울리는 거야. 그럴 때, 자네는 어떤 것을 보거나 읽을 수 있겠는가?
자네 두 눈에 맺히는 그 그림을 말로 설명할 수 있겠나? 그래, 말해봐. 어서 말해봐. 하하하,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전쟁터에서 세 발의 총성을 들을 때, 마음속에 그려지는 그림이란 하나도 없어. 그 순간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울부짖거나 정신없이 달려가는 것뿐이지. 한번만이라도 온몸으로 다른 인간을 사랑해 봤다면, 마음에 그림 따위가 그려질 겨를은 없는거야.
그저 움직일 뿐이지. 뿌넝숴, 운명이 드러나는 순간에 언어 같은 것은 완전히 사라지는 거야. 혹시 임진강이라고 아는가? 임진강에서 중국 인민지원군의 3차 전역이 시작된 것은 1950년 12월 31일이었어. 왜 12월 31일이었냐고 묻는다면 그럴 수밖에 없없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게 옳지.
그건 곤충들이 제집을 찾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본능적인 일이야. 전젱터에서는 가장 본능적인 자들만이 살아남는 거지. 전사에는 그렇게 나와 있어. 미군에게 제공권을 빼앗긴 인민지원군으로서는 밤에만 전투를 벌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면 달빛을 한줌이라도 더 모아야 할 형편이었다.
우리의 전역은 보통 7일이 소요되는데, 그 7일동안 달빛의 도움을 받으려면 보름을 얼마 앞두지 않은 12월 31일이 최적의 공격개시일이었다. 하지만 나는그 말을 믿지 않아. 우리는 본능적으로 총을 잡고 진격한 거야. 그게 12월 31일이었던 것이지. 우리 40군단은 31일 18시 30분에 임진강을 건넜다네.
"십리엔 해질녘 구름, 빛을 잃었는데.
북풍은 기러기를 몰아가고 눈발이 어지러이 날린다.
가는 길에 알아주는 이 없을까 걱정하지는 말라!
천하에 그대를 모를 사람이 누가 이겠는가."
해가 바뀌는 동안, 우리는 한개의 강물을 건넜다네. 그게 얼마나 긴 노정이던지, 날이 밝자 강변에 시체들이 늘비했어. 말하지 않았나?
우리가 백전노장이라는 건 우리가 살아온 역사가 증명해. 하지만 그 광경을 보고 나서야 새삼스럽게 전쟁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더군. 전쟁이란 그런 것이더군. 어제 나는 죽을 수도 있었지. 하지만 오늘은 살아 있지. 전쟁터에서 나는 매일 새로 태어나는 거지. 그런 광경을 바라보노로면 저절로 고개가 수그러져.
하늘을 울려다볼 염두가 나지 않는 거야. 하늘을 올려다보는 경우는 죽은 전우의 시체를 땅애 묻고 허공에 세 발의 총성을 울려 애도를 표할 때 뿐이야. 전쟁터에서 들리는 세 발의 총성이란 한편으로 그런 의미야. 그건 원망도 분노도 아니야.
그저 인간이라는 것, 그러고 나서도 또 인간이라는 것, 그걸 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 없으니까 세 발의 총성으로 대신하는 거야. 그렇게 묻힌 전우의 청춘은 너덜너덜해진 지도상의 좌표로만 남게 되지. 그런 상황에 이르면 인간의 몸은 참으로 표현력이 부족하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돼.
고작 울부짖거나 마른 눈물만 흘릴 뿐이라니. 심장을 꺼내 전우의 시신과 함께 묻어줄 수도 없고 두 눈을 줘 감긴 그 눈을 뜨게 할 수도 없다니. 그러므로 하늘을 향해 쏘는 세 발의 총성, 거기에 모든 것을 의탁할 수밖에 없는 거야. 알겠는가? 세 발의 총성, 그건 그런 의미야.
믿을 수 있겠는가? 나도 그 세 발의 총성의 주인공이 된 적이 있었다면? 도대체 무슨 소리냐는 듯한 눈길이구먼. 믿기지 않는다면 믿지 않아도 좋아. 듣는 자리에서 당장 믿을 만한 얘기만을 골라서 내뱉는 인간이 되고 싶지 않으니까.
하지만 자네만은 결국 믿지 않을 도리가 없을 것이네. 왜냐하면 자네는 작가니까. 자네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맞히니까 눌라운가? 말하지 않았는가? 지금 한 인간의 운명이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 알아맞히는건 대단히 쉬운 일이라고.
자기의 온몸인 양 두 눈을 동그렇게 뜨고 그 인간의 생김새를 뚫어지게 쳐다보면 모든 게 투명하게 보이는 거야. 보다시피 오른손 손가락이 이렇게 잘려나갔으니 나야 글을 쓸 수는 없으되,
지금 내 앞에 앉은 인간이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 알아맞히는 재주 정도는 남아 있다네. 물론 내일 자네가 어떻게 될지는 나도 몰라. 때로는 본인도 자기가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걸 안다면 매일 아침 이다지도 심하게 가슴이 뛸 리가 없지 않겠는가?
인생이란 사냥꾼에 쫓기는 노루 같은 것이라 끊임없이 움직이지. 그런 점에서 전쟁이란 삶의 다른 이름이야. 계속 얘기해볼까? 1950년 1월 초까지 인민지원군은 동이에서 쏟아지는 물처럼 아래로 아래로 밀고내려갔어.
미군과 괴뢰군들은 37도선까지 퇴각해야만 했지. 거기서 조금만 더 밀어붙였더라면 아마도 조선은 완전히 해방됐을 거야. 그런 전황이었는대도 인민지원군은 38도선 남방, 서울을 장악한 지점에서 3차 전역을 매듭지어야만 했다네.
정치적인 문제나 외교벅인 문제 때문이 아니었어. 한없이 길어진 보급선 탓이었네. 그래서 37도선이 아니라 38도선에서 진공을 멈춰야만 했어. 그게 지금 자네 조국의 허리를 가르고 있는 그 선의 본래 뜻이 아니겠는가? 중국 인민지원군의 보급선이 최대한 가닿을 수 있는 지점이 바로 거기였던 셈이니까.
전략적인 37도선까지 후퇴한 미군 지휘부는 금방 이 사실을 감지해 1월 15일부터 소부대를 이용해 조금씩 수원과 이천 등지에서 탐색적인 반격을 시도하다가 25일부터 본격적인 공세에 나섰지. 우리로서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반격이었어. 팽 총사령관을 비롯한 인민지원군 지휘부는 비밀리에 주력을 동부전선으로 이동시켜 횡성과 원주를 확보해 서부전선과 동부전선에 걸친 적 병력의 허리를 자른 뒤 서부전선에 있던 미8군 주력의 측방을 공격하려는 계획을 세웠지.
2월 11일, 인민지원군 4차 전역은 그렇게 시작됐지. 이틀 뒤, 인민지원군은 횡성을 수비하던 괴뢰군 제 8사단을 격파했으며 같은 날 밤, 22시부터 미 제 23연대가 벙어하던 지평리를 공격하기 시작했다네. 지평리를 확보하게 되면 여주와 이천을 통해 곧장 서부전선에 집결한 미 8군 주력을 에워살 수 있었다네.
그런 까닭에 지평리는 피아간에 누구도 양보할 수 없는 전략지였지. 여기에 앉아서 오가는 사람들의 얘기를 듣자하니 중국돈 8만 위안만 있으면 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더군. 이렇게 하루종일 길바닥에 앉아서는 다른 사람의 운명을 점친답시고 믿지 못할 얘기만을 늘어놓는 주제에는 호사스러운 소망이겠으나 만약 내게 8만 위안의 돈이 있다면 꼭 한국으로 들어가 지평리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어. 농담이 아니야.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직도 남아 있다면 나는 그래야만 하는 거야.
"묻노라, 매화꽃이 어디에 떨어졌기에.
하룻밤 사이에 바람에 불려 관산에 가득히 퍼졌단 말인가."
추운 변경에 어디 매화가 떨어지겠느냔 말이야? 하룻밤 사이에 들판으로 수없이 떨어져내린 것은 다만 젊은 병사들이었을 뿐. 거기가 바로 내가 죽어야만 할 곳이지. 하지만 너무 멀어. 이제 다시는 가보지 못할 것 같아. 꼭 한번 가보고 싶은데, 한국에 돌아가 기회가 있다면 꼭 지평리에 가보게나.
적어도 자네가 작가라면 거기 서서 져버린 매화 꽃잎이 들판을 가득 메운 광경을 상상해보게나. 그걸 상상하지 못한다면 잡히는 대로 붓이란 붓은 당장에 꺾어 버리는 게 좋아. 그렇게 속절없이 떨어져내린 매화 꽃잎처럼 즐비한 병사들의 시체를 뒤로 하고 2월 16일 인민지원군 병력은 결국 지평리에서 찰수하기 시작했다네. 이로써 네 번에 걸친 우리의 성공적인 전역은 반격을 당하기 시작했지.
전날 밤, 우리는 밤새도록 햇불을 밝혀 들고 전사병과 부상병을 담가에 실어 옮겼다네. 밤새도록 미군의 포사격은 계속 됐다네. 포탄이 떨어질 때마다 들판으로는 꽃잎이 흩날렸다네. 붉은색 꽃잎들이 산산히 찢겨나갔다네.
분노라거나 슬픔이라는 단어로는 도저히 설명 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네.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것마저도 살아남은 자의 사치처럼 보였다네.
그리고 한순간, 나도 한점 꽃잎이 되어 날아갔다네. 피리소리에 우리는 모두 한점 꽃잎이 되어 온 산을 가득 매웠다네. 이튿날 아침, 왼쪽 다리와 하복부의 살점이 떨어져나간 채, 죽은 전우들 사이에 누워 있던 나는 죽음을 예감하고 옆에 떨어진 총을 잡아 요염하도록 텅 비어 보이는 창공을 향해 세 발의 총알을 발사했지. 첫 발은 나 자신을 위해서,
다른 한 발은 죽은 전우들을 위해서, 그리고 나머지 한 발은 우리 모두의 운명을 위해서. 그 세발 의 총성이 모든 것을 다 바꿔어놓았다네. 그리고 나는 의식을 잃었어.
연변은 비가 흔치 않은 고장이야. 봄에는 더 말할 나위도 없지. 대여섯 번 정도 봄비를 볼 수 있다면 자네는 행운아야. 그렇기 때문에 나는 비를 즐기는 게 습관이 됐어. 깊이 잠들었다가도 새벽에 봄비가 내리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릴라치면 잠에서 깨어나. 걱정이 있다거나 슬픔이 밀려와서 그런 게 아니야.
봄비가 내리는 소리가 들리는 한에는 잠들 겨를이란 없는 거야. 나이가 들면 들수록 그 느낌이 더욱 간절해. 정도는 덜하지만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건 아주 오래된 습관이야. 왕청에서 중학교를 다닐 때부터 나는 그랬단 말이야. 비가 내리고 나면 이 세상이 또 어떻게 변해가는지 궁금해서 온몸이 간지러울 지경이었으니까.
그때, 사람이 참 건실하고 매사에 열정적이라고 해서 연락원 일을 맡게 됐지. 존경하는 선배들과 선생님들이 귀여워해주니까 신이 나서 열심히 뛰어다녔는데 나중에 알고 봤더니 그게 지하당원들 사이에 오가는 서신이었던 거야. 그렇게 나는 길을 오가며 혁명의 도리를 깨쳤어.
그런 급박한 시절에도 나는 봄비가 내리면 가만히 서서 빗소리에 귀를 기울였단 말이야. 때로는 나 몰래 꽃이 필까봐, 때로는 나 몰래 꽃이 질까봐, 제아무리 긴급한 편지였다고 하더라도 봄비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자 하는 내 마음을 막을 수는 없었지.
내가 그렇게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선배들이 나를 두고 '샤오멍' 그러니까 꼬마 맹호연이라고 놀려댔지.
"밤사이 비바람 소리 들리더니.
꽃이 얼마나 떨어졌는지" 라는 시를 쓴 맹호연 말이네. 온 세상이 전사들로 , 시인들로, 영웅들로, 가득했던 시절의 일들이야. 세상 가장 작은 소리에도 쫑긋 귀를 세우는 사람들로. 세상에는 그렇게 귀를 기울이는 자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꽃이 피었다가는 또 그렇게 져버리는 거야. 그렇지 않다면 어찌 봄이 왔다고 해서 그렇게 많은 꽃들이 피어오르겠는가 말이야.
내가 쏜 세 발의 총성을 들은 사람도 비로 그런 사람이었지. 전쟁터에서 울리는 연속 세 번의 총소리는 전사자를 애도하는 것인 동시에 부상병들의 긴급 구호신호이기도 하니까.
나를 찾아온 그 여성 구호원은 군복을 찢어 상처 부위를 지혈한 뒤, 자신의 피를 뽑아 내게 300그램의 피를 수혈 했어. 그 피를 받아들이고 내 몸은 다시 의식을 되찾기 시작했지. 정신을 차렸더니 나를 빤히 쳐다보는 그 여성의 눈이 보이더군. 도토리처럼 짙은 두 개의 눈동자였어.
하나가 아니라 두 개라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눈동자였지. 그 눈동자를 바라보자마자 나는 살았다는 생각에 창피한 줄도 모르고 소리내 엉엉 얼었어. 아마도 그건 배설이었지 울음은 아니었다고 생각해. 몸 안에 가득 쌓였던 공포가 체액의 형태로 분비돼 나오는 거지.
사선을 넘었다가 돌아오는 부상병들은 대개 그렇게 운다는 것인지 별로 놀라는 기색도 없이 그녀는 한손으로는 내 손을 움켜잡고 다른 손으로는 내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주더군. 눈물이 조금씩 줄어들 무렵,
그녀는 허공을 향해 관총을 발사해 구호대 동료들에게 부강병이 있음을 알렸어. 구호대원들이 나를 들 것에 실어 큰길가로 옮겼지. 그동안에도 나는 그녀의 손을 놓지 않았어. 그렇게 간절하게 잡은 손을 뿌리칠 수 있는 여자는 세상에 없는 법이니까 그녀도 손을 잡은 채로 나를 따라왔어. 감사하다는 내 말에 괜찮다고 말하는 대답을 듣고 나서야 나는 그녀가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지.
신작로에는 철수하는 아군들로 가득했어. 구호대 역시 철수해야만 하는데, 내가 있으니까 구호대장은 지나가는 자동차에 나를 태워 병원으로 보낸 뒤 부대를 따라오라고 그녀에게 명령했지.
그리고 신작로에는 우리 둘만 남게 됐어. 널린 게 시체였으니 부상병이 있다고 해서 목숨을 담보로 자동치를 멈출 바보는 없지. 몇 대의 자동차를 보내고 난 뒤였지. 추위가 느껴지면서 온몸이 덜덜덜 떨여왔어. 다시 죽음의 공포가 나를 사로잡았어. 왈칵 겁이 치밀어오른 나는 소리내어 시를 암송했어.
"포도로 빚은 술 야광배에 부어
마시려니 비파소리 말 위에서 자지러진다."
내 목소리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그녀가 뒤를 받아 노래하더군.
"취해서 모래밭에 누웠다고 그대는 웃지 말라
예로부터 전쟁에서 돌아온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나는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볼 수밖에 없었지. 그런 상황에서 달리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시를 다 읊조린 그녀는 마침내 권총을 꺼내 우리를 행해 다가오는 자동차에 발사했지. 바퀴에 총알을 맞은 자동차는 얼마 지나지 않아 멈춰섰고 그녀는 운전사에게 사정을 설명했어.
그녀가 아주 단호한 목소리로 지금 당장 나를 병원으로 옮겨야만 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투덜대던 운전사도 별수없이 바퀴를 갈았어. 운전사와 함께 나를 차에 옮겨놓은 뒤, 그녀는 내 심장에 손을 올려놓으며 당신은 지금 살아 있다. 고 중국어로 말했어.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고맙다며, 이 심장은 이제부터 당신의 것이라고 대답했어. 나는 잡은 손을 오랫동안 놓지 못했지.
운전사가 이제 그만 가야 한다고 말할 때까지도. 그리고 대답을 기다리다가 지친 운전사사 우리 둘을 모두 실은 채 차를 몰고 갈 때까지도. 나는 손을 ?을 수가 없었어. 왜냐하면 그녀가 눈물을 흘렸기 때문에. 그리고 이윽고 내 옆에 쓰러져 잠들었기 때문에. 후에야 나는 그녀가 지평리전투에서 도합 800그램의 피를 뽑어냈다는 사실을 알았다.
혹시 한국에 있을 때, 조선전쟁과 관련한 책을 읽은 적이 있는가? 거기에는 지평리전투가 어떻게 기록돼 있는가? 지평리전투에서 죽은 인민지원군 병사들에 대해서는 뭐라고 기록돼 있는가? 이곳 역사책에 기록된 죽은 미군과 마찬가지로 다만 숫자로만 남아 있는 게 아닌가? 그것도 잔뜩 부풀린 숫자로만. 지평리전투에서 죽은 인민지원군의 숫자는 5천명에 달했다네.
그 처참한 광경을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뿌넝숴, 뿌넝숴. 역사라는 건 책이나 기념비에 기록되는 게 아니야. 인간의 역사는 인간의 몸에 기록되는 거야. 그것만이 진짜야. 떨리는 몸이, 흘러내리는 눈물이 말해주는 게 바로 역사야. 이 손, 오른손 검지와 중지가 잘려나간 이 손이 진짜 역사인 거야. 생각해보게나. 조선전쟁이 일어난 지 채 일백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이 나라로는 한때 우리가 괴뢰군이라고 부르던 한국인들이 자유롭게 왕래하지 않는가? 지평리에서 죽은 병사들에 대해서는 다 잊어버린 셈이지. 고작 일백년도 지나지 않아 망각할 그런 따위의 사실을 기록한 책과 기념비라니, 그게 바로 지금 자네가 손에 들고 있는 책이 아닌가? 그런 책 따위는 다 던져버리게나. 내 손보다도 못한 그따위 책일랑은. 나는 죽고 나서도 이 손가락의 사연은 잊지 못할 거야.
바로 이런 게 역사란 말이야. 이 손은 언제라도 이런 얘기를 들려주지. 그날 우리가 타고 올라가던 트럭은 채 한시간을 달리지 않아 미군 전투기의 피습을 받았다네. 운전사는 즉사했고 트럭은 길 옆 골짜기로 굴러떨어졌지.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신작로에서 십여 킬로미터 떨어진 골짜기의 한 농가에 누워 있었어. 도대체 어떻게 거기까지 옮겨지게 됐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어. 왜냐하면 그 농가에는 그녀와 나, 둘뿐이었으니까.
내가 잠시 정신을 차리고 그녀를 따라 걸어갔다는 것일까? 아니면 그녀가 혼자서 나를 둘러메고 옮겨놓았다는 것일까? 우리는 그 집에서 이틀간 잠만 잤다네. 매우 추운 날씨였기 때문에 서로 부둥켜안고 잤다네.
죽읍보다 깊은 잠이었어. 자다가 깨면 미숫가루를 얼마간 먹은 뒤 다시 잠들었다네.
나는 그녀의 깡마른 가슴을, 그녀는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든 내 성기를 움켜잡았지. 몹시도 성욕이 일었나으나 잠을 이기지는 못하더군. 그리고 이틀이 지난 뒤, 우리는 서로 몸을 섞었지. 그러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었으니까. 우리는 져버린 매화로 가득한 들판을 봤으니까. 나는 도저히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그녀가 위에서 몸을 흔들었는데 그때마다 상처가 아파서 견딜 수 없었어.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나는 그녀에게 계속하라고 채근했고 그녀는 연신 미안하다고 말하면서도 끊임없아 몸을 움직였지.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
그때의 일은. 살아 있다는 건 그토록 부끄럽고도 황홀하고도, 무엇보다도 아픈 일이더군. 아프다는 게, 소리를 지를 수 있다는 게,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게 그 순간만큼 기뻤던 적은 없었어.
그레서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는데도 계속하라고 채근할 수밖에 없었던 거야. 우리는 쉬지 않고 몸을 섞었어. 죽음이 지척이었으니까.
그녀는 지평리에서 본 것들을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네. 지평리에서 너는 무엇을 봤느냐? 그녀는 대답했어. 뿌넝숴.
여태 그 말이 잊히지 않아. 말할 수 없어요. 말할 수 없어요. 우리는 그 집에 숨어지냈지. 나는 다리를 쓰지 못했기 때문에, 그리고 전쟁에 환멸을 느낀 그녀는 원대 복귀를 포기했기 때문에.
그 일주일 동안 전투기의 굉음과 포성과 총성은 사방에서 들려왔지만 아군도 적군도 그 어느 쪽도 우리를 찾아오지 않았어. 낮동안에는 적기의 공습을 받을 수도 있었기 때문에 숲속에 들어가 그저 하염없이 앉아 있었고 밤에는 다시 농가로 기어들어가 아프다고 소리치며, 또 미안하다고 말하며 서로의 몸을 탐했지.
공포도, 불안도, 절망도 없었던 나날이었어. 낮에 숲 속 덤불에 앉아 있을 때는 서로 기억하는 시를 들려주면서 시간을 보냈지.
"아미산에 걸친 반 조각 가을달
그림자는 평강강 강물에 비쳐 흐른다
밤에 청계를 떠나 삼협으로 향하며
그대를 생각하면서도 보지 못한 채 유주를 내려간다"
"가을비 내리는 강을 따라 밤새 오나라로 들어가고
그대를 보내는 새벽 초나라 산들이 외롭다
낙양의 친구들이 안부를 물어보면
한조각 얼음 같은 마음 옥병에 간직했다고 하게"
같은 시들, 미처 입으로 말할 겨를이 없어 심장으로 말하는 시들, 미처 귀로 들을 틈이 없어 심잠으로 듣게 되는 시들, 어느 새벽었을 거야. 전투기 소리에 우리는 잠에서 깼지. 전투기는 몇번이고 상공을 선회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집을 폭격하는 줄 알고 얼른 집에서 뛰쳐나갔다네.
동쪽 하늘에 깃털처럼 가는 하현달이 걸려 있었지. 매우 아름다웠지. 그렇게 아름다운 달을 보게 되자, 절로 손이 그녀의 어께 쪽으로 음직였지. 내가 말했어. 정의는 우리에게 있으니 우리는 분명히 이 전쟁에서 이걸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나면 너를 찾아갈 것이다. 그걸 위해서라면 나는 기꺼이 죽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녀가 내 손을 뿌리쳤어. 전쟁터에서 올려다보는 하현달 따위는 하나도 아름답지 않다고 말하더군. 그러고 나서 그녀가 뭐라고 말했던가? 나를 사랑하는가?
사랑한다. 얼마나 사랑하는가? 죽을만큼 사랑한다. 당장 그녀를 안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으므로 나는 애원하듯이 대답했어. 하지만 그녀는 이렇게 말하더군.
죽음이 도처에 널린 이런 곳에서 인간의 목숨 따위는 필요없다. 목숨 따위는 정의에나 바쳐라. 아무리 피를 뽑아서 수혈해도 되살릴 수 없었던 병사들로 가득한 지평리에나 던져버려라. 숨이 턱 막히더군.
목숨으로도 증명할 수 없는 게 세상에 있다는 것을 비로서 알게 됐으니까. 국가는 내게 목숨 정도만 원했지. 그러나 그녀는 내게 그 이상의 것을 원했어. 벌떡 얼어서서 뒤로 물러서는 그녀를 행해 나는 엎드려 빌었어.
제발, 한번만 나를 안아주게나. 제발.
내 나이 또래 중에서 이렇게 오른손 검지와 중지가 잘려나간 자는 사람대접을 받지 못한다네. 나 역시 한평생 조롱과 멸시 속에서 보냈어.
이 소낙락을 알아본 사람들이 내게 사연을 물어오면 지금 자네에게 하듯이 이 이야기를 들려줬지. 그럼 내 얼굴에다 대고 침을 뱉는자들이 수두룩했지.
거잣말히자 마라. 이 벌레 같은 녀석아, 전쟁에 나가기 싫어서 손가락을 자른 겁쟁이야. 내가 아무리 항일전쟁을, 해남도 전역을, 조선전쟁을 얘기해도 소용이 없었다네.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나? 좋을 대로 생각하게나.
이런 얘기는 소설에나 써먹을 수 있겠지. 역사책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겠지. 고작 일백년도 가지 못할 역사책 따위. 어쨌든 하던 얘기는 마저 끝내도록 하지. 그리고 그녀는 한번도 나와 몸을 섞지 않았다네.
포성은 점점 더 북쪽으로 올라가고 있었다네. 낮이면 숲속에 앉아 북쪽으로 날아가는 미군 전투기들을 바라봤고 밤이면 농가로 기어들어가 그녀에게 한번만 나를 안아달라고 애원했다네. 거러는 동안 먹을 것은 다 떨어졌다네. 당장이라도 몸을 추슬러 퇴각하는 부대를 쫓아가지 않으면 낙오되리라는게 분명했지만 우리 둘다 움직일 힘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네.
낙오됐다는 게 분명해질수록 나는 더욱더 그녀에게 애원했다네. 비명을 지르게 해달라고, 눈물을 흘리게 해달라고, 아프게 해달라고. 그녀는 그런 내손을 잡고 말했어. 자신이 지평리에서 본 것에 대헤서는 말할 수 없다고, 뿌넝숴, 뿌넝숴.
그 날 밤, 도합 800그램의 피를 병사들에게 수혈하면서 세상의 모든 남자들의 손가락을 자르고 싶?던그 마음을 도저히 말할 수는 없다고, 다시는 총을 잡지 못하도록 다 잘라버리고 싶은 그 마음을. 핏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멍한 눈동자로 나는 그녀 앞에 엎드려 말했어.
제발, 제발, 베발, 한번만 나를 안아달라고, 간절하게. 온 마음과 온몸으로 빌었다네. 그녀는 내 얼굴을 들어 두 눈을 바라봤다네. 아무리 나의 피를 수혈해도 죽은 병사들을 되살릴 수 없었어요. 당신만은 죽게 내버려두지 않을 거야. 할 수 있겠어?
나는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네. 나를 살려달라고. 제발 한반만 안아 달라고. 그녀는 내 눈을 빤히 쳐다봤네. 그제야 나는 숨ㅇ늘 쉴 수 있을 것 같았어.
그 집에서 우리가 보낸 시간은 얼마 정도였을까? 2월말까지 인민지원군과 조선인민군은 주력을 38도선까지 퇴각시켰다네.
3월 7일, 미군과 괴뢰군은 5개 군단의 도합 14개 사단, 3개 여단, 2개 연대의 병력을 집중시켜 모든 전선에서 전반적인 공세에 나섰다네 3월 14일,
인민지원군과 조선인민군은 서울에서 철수했으며 이튿날 미군 제3사단과 괴뢰군 제 1사단이 서울을 점령했다네. 3월 23일, 적들은 고양, 의정부, 가평,
춘천 일선을 점령하고 미군 187공수여단을 문산에 투입헤 인민군 제1군단의 퇴로를 막았다네. 4월 10일, 전선은 한강 입구에서 임진강을 따라 38도선 이북 부근 지구를 거텨 양양 일선까지 올라왔다네.
그리고 4월12일, 적들은 전공의 주력을 철원, 평강, 금화지구, 즉 철의 삼각지대에 집중시켰다네. 언제까지 우리가 그 집에 누워 있었는지는 나도 알 수가 없어. 어쨌든 그 집에서 우리는 수없이 몸을 섞었지.
아프다고 소리치며 눈물을 흘리며, 그리고 먼저 그녀가, 그리고 내가 정신을 잃었어. 몇번이나 해가 뜨고 저물었는지, 몇번이나 달이 둥글어졌다가 다시 여위어졌는지 나는 모른다네. 괴뢰군 수색대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가 반듯하게 누운 우리의 모습을 보고는 죽었다고 생각했는지 코를 감싸쥐고 그냥 돌아나간 적도 있었다네.
나는 죽어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의식만 살아서 지켜보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지. 바닥에는 내가 흘린 피가 흥건하게 고여 있었고, 그 피 웨에 우리 두 사람이 누워 있었어.
그녀의 표정은 더없이 평온해 보였지. 두번째 수색대가 들이닥친 뒤에야 나는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녀는 이미 죽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 수색대에 끌려가며 나는 그녀를 위해 시를 읊었지.
"이때에 서로 바라보기만 할 뿐 소식 전하지 못하니.
달빛 따라 님의 곁에 흘러 비추기를 원한다
기러기 멀리 날지만 달빛을 넘지 못하고
물고기 잠겼다 솟았다 하지만 물애 파문만 일으킬 뿐
어젯밤 쓸쓸한 강가에서 꽃 지는 꿈을 꾸었는데
불쌍하게도 봄이 다 가도록 집에 돌아가지 못하네."
내가 중국어로 시를 읊조리자, 무슨 말인지 모르던 남조선 병사들이 개머리판으로 내 머리를 쳤다네. 그리고 나는 정신을 잃었다네. 그 집에서 나는 그녀에게서 1,000그램이 넘는 피를 수혈받았다네. 나는 지평리에서 그렇게 살아남았다네. 그녀는 죽고 나는 살아남았다네.
어머, 저기 나비가 날아오르는군. 이제 슬슬 봄이 찾아오는 모양이야. 나는 벌써 10년째 여기에 앉아서 점을 봐왔다네. 점이라는 것은 간단해. 눈으로 나비를 보고 입으로 봄이 온다고 말하는 일이야.
온몸과 온 마음을 열고 뜨겁게 세상을 바라보거나 귀를 기울이는 일이야. 왜 사람들은 책에 씌어진 것이라면 온갖 거짓말을 다 늘어놓아도 믿으면서 사람이 말하는 것이라면 때로 믿지 못하는 것일까?
인간의 운명과 역사란 결국 지금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온몸과 온 마음으로 귀를 기울이는 일이라는 걸 알지 못하고 텔레비젼과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말에만 빠져 있는 것일까?
몸소 역사를 격어온 사람들은 한결같이 뿌넝숴라고 말해도, 역사를 만드는 자들은 거기에다가 논리를 적용해 앞뒤를 대충 짜맞추고는 한 편의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바로 그런 이야기를 학생들은 학교에서 궁보하고 사람들은 기념관에 가서 구경하지.
한번도 의심해보지 않고, 지평리전투에서 인민지원군은 공세적으로 퇴각했다고, 서울에서 주도적으로 철군했다고 말하지. 그건 자네가 읽는 역사책에도 마찬가지일 것일세. 서로는 서로를 괴뢰군이라고 부르고 서로는 서로를 격멸?다고 말하고, 그런 역사책은 하나도 의심하지 않고 믿으면서 내가 이런 말을 하면 거짓말이라고 내 얼굴에 침을 뱉지.
고작 일백년도 지나지 않아 휴짓조각으로 버려진 믿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내게 마구 발길질을 하지. 왜냐하면 내 손이 바로 진실을 말해주니까. 역사책에 나와 있지 않은 진실을 말해주니까. 이제 알겠는가?
봄에는 왜 나비가 날아오르는 광경을 바라보면서 꿈을 꿔야만 하는지? 나비가 날아오지 않고 찾아오는 봄은 없는 거야.
책에 씌어진 얘기가 아니라 두 눈으로 보이는 것에 대해 얘기하게나. 두 눈으로 보이는 그 광경이 무엇을 뜻하는지 온몸으로 말해보게나. 뿌넝숴, 뿌넝숴. 그런 말이 터져나올 때까지 들려주게나.
도저히 말로 설명 할 수 없는 이야기, 자네가 아는 한 세상에서 가장 믿기 어려운 얘기들을 내게 말해보게나. 그럼 자네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운명을 타고났는지 내가 말해줄 테니까.
책에 씌어진 얘기 말고. 자네가 몸으로 겪은 얘기, 뿌넝숴. 뿌넝숴. 그 말이 먼저 나올 수밖에 없는 얘기. 말해보게나. 어서, 어서.
(사흘간, 뿌넝숴, 말할 수 없는 것들과 열애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실패였다. 처음의 감동은 사소한 오점들에 감금 당하기 일쑤였다. 필사를 하니 읽을 때완 달리 군더더기가 더러 보였다. 그리고 어떤 한계상황을 보고 말았다. 그래서 후보작에 그쳤구나,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중국으로 꺼리를 찾아 나선 우리의 작가는 정말로 거리에서 점을 봤을지도 모르겠다. 거기서 그는 영감을 받아 지평리 전투를 떠올렸고 거기서 거룩한 희생자인 그녀, 간호장교를 탄생시켰을 것이다.
독자이면서 소설을 쓰고자 하는 나는 꺼리와 구성을 찾아 그가 만난 이들을 책 속에서 만나고 다니지만 우리 사이엔 너무나 깊은 강이 있구나! 뿌넝숴,
말할 수 없는 게 너무 많거늘, 그것이 언어화 되지 못하는 갑갑한 상태, 바수어지기를. 아니다. 스스로 박살내어 내 안에 갇혀 울부짖고 있는 언어들을 해방 시켜 주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