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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수필4

41. 육필원고

by 자한형 2022.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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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필원고(肉筆原稿) 김선화

모 대학 도서관측으로부터 육필원고 청탁을 받았다. 육필원고가 줄어드는 시대니 만큼 학교도서관에 소장하고 자료로 삼겠다는 내용이다. 그렇긴 한데 나이도 아직 새파랗고, 문단에서도 신출내기나 다름없는 내게 가당치도 않은 것 같아 선뜻 응하지 못하고 있다.

육필원고하면 그 첫인상부터가 제법 묵직하다. 육필이란 말 자체에서 이미, 범상치 못할 어떤 힘이 느껴지는 것이다. 문예적으로 보나 인품으로 보나, 남이 본받을 만한 어른들에게나 품위 있게 육필원고를 대하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뛴다. 원고지 칸칸을 매운 필적에서 필자의 체취를 느끼기도 하고, 평소 존경하는 분들의 서가를 엿보는 듯한 재미도 맛본다. 하지만 친근감에 빠져드는 것도 잠시이고, 한 자 한 자 이어나간 필체를 통해 글을 쓰며 고뇌했을 정신을 읽는다. 시원스레 이어진 문장보다도 끼워 쓰기라든가 삭제표시가 되어있는 부분에서 내 마음은 더욱 더 머뭇거린다. 누군가로부터 몇 자 필적에 담긴 책을 받아들 때에도 연상 작용을 한다. 필적에서 느껴지는 훈훈함은 단순히 그 책 한 권의 가치로 셈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덕수궁 미술관에서 러시아 예술가들의 흔적을 돌아본 일이 있다. 러 수교 10주년을 기념하여 열린 전시회인데, 다양한 전시물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 중에서도 유독 눈길을 끄는 것이 러시아 문학가들의 노트 뭉치였다. 유리관에 들어 있어 책장을 직접 넘겨볼 수는 없었지만,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자필노트란 표제를 달고 그 위용을 보이고 있었다. 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전쟁과 평화는 다 알지만 거기에 담긴 내용이라든가 예술성, 또 웅대한 구상 등은 세계문학 중에서도 손꼽는 작품이다. 그뿐 아니라 러시아 민족작가로 불리는 푸시킨의 작품도 자필 초고와 그림이란 이름표 아래서 수없이 퇴고한 자국을 드러내고 있었다. 푸시킨의 시Evgenij Onegin, 오네긴을 통해 방탕한 귀족건달의 모습과 당시 러시아사회의 복잡한 모순을 격조 높은 필치로 풍자한 것으로 알려진 작품이다.

톨스토이와 푸시킨, 나는 이들의 육필을 만나 적잖이 흥분하였다. 마치 시공을 초월한 대 문호(文豪)와 한 자리에 선 것처럼 감회에 젖어, 그들의 예술적 가치에 대해 생각이 깊어졌다. 그들의 육필원고를 보면서 당시 러시아 현실을 상상해 보았다.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문학은 어떤 형태로든 그 시대를 반영한다는 이치를 되뇌어 보게 된다. 그것을 증명하듯, 전시장에 진열된 러시아 문학가들의 작품도 당대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육필로 원고를 썼지만 요즘엔 거의가 컴퓨터를 이용한다. 나도 컴퓨터를 이용해 글을 쓰는데, 초안 작업은 펜으로 하고 수차례 퇴고과정을 거쳐서야 컴퓨터에 옮겨 쓰기를 한다. 그런 다음에는 알아 불 수 없게 된 초안의 원고를 누가 볼까 싶어 서둘러 없애버린다.

하지만 이런 내게도 소홀히 넘길 수 없는 육필이 있다. 내가 글을 쓰는데 지침이 되어주는 분들의 필적이다. 그런 필적들이 요즈음의 내게 든든한 밑천이 된다. 글을 쓰다가 의미가 약하거나 표현이 서툴러 글이 어설퍼질 때면, 파일 속의 육필은 떡 하니 버티고선 모습 그대로 가없는 채찍을 가해온다. ‘그대는 글을 왜 쓰는가?’ 하고 넌지시 물어오는 것만 같다. 나직하면서도 정곡에 와 박히는 이 질문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든다. 그리고는 살아 있기 때문에라는 답을 얻는다. 그렇게 한 차례씩 소용돌이치는 정신을 가다듬고 나면, 차마 그분들의 필적을 대하기가 민망스럽다. 미소를 짓는 듯이, 혹은 매서운 채찍으로 어수룩한 내게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육필의 힘, 그런 힘에 의해 나약해지기 쉬운 한 부분을 지탱해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아는 Y선생은 육필에 대해 말하기를, 당신의 서가에서 보물 1호를 꼽는다면 단연 김구 선생백범일지라 하였다. 책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 속표지엔 김구 선생의 자필 서명이 들어있기 때문이라 한다. Y선생은, 붓으로 힘 있게 쓴 애국지사(愛國志士)의 육필에서 무한한 의미를 읽어내는 듯하였다.

육필은, 글씨를 쓰는 사람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낸다. 성격이 호탕한 사람은 글씨도 활달하고, 성격이 호탕하지 못한 사람은 글씨도 왠지 오종종하다. 간원도 내린천 가에는 목마와 숙녀로 잘 알려진 박인환 선생의 시비가 세워져 있는데, 거기에는 그의 육필 시 세월이 가면이 음각(陰刻)되어 있다. 세로쓰기 한 원고를 확대 복사하여 새긴 것이라 하는데, 연 띄우기 표시까지 그대로이다. 실존주의 시인으로 한국전쟁의 비국과 정치적 혼란을 겪으면서도 궁극적인 존재에 대해 고심했던 젊은 시인의 기개가 쭉쭉 뻗친 필체에서 확연히 느껴진다.

육필이란 이렇게, 글을 쓴 사람의 필체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그 단순함을 떠나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가 배어나는 것이 육필이고, 더 나아가서는 개개인의 성격과 크고 작은 힘까지를 읽어내게 한다. 육필원고에는 적어도 살아 번뜩이는 기운이 있다. 이런 기운으로, 휘청거리는 후진들에게 지팡이와도 같은 역할을 한다. 힘겨울 때 한 번쯤 짚고 일어설 수 있도록, 또 자만에 삐지기 쉬운 사람들에게는 돌다리도 두들겨보는 혜안(慧眼)을 가지도록, 그래서 자신의 글을 책임지게 하는 지팡이가 되어주는 것이다. 아무리 요즘의 글쓰기가 자판을 두들기는 글치기형태로 바뀌어간다 하더라도, 육필은 육필 나름으로 그 가치와 몫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으로 가득할 때에 처음으로 받아본 육필원고 청탁서는 나로 하여금 더 글에 대한 의미를 일깨우게 한다. 부족하지만 누군가에게 내 육필이 제구실을 할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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