칡 멜빵/ 신재기
부모가 더러 자식한테 호되게 야단을 치거나 매를 들 때가 있다. 그러고 난 다음 대부분 자신의 언행에 대해 후회한다. 남매를 둔 나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아이들을 야단칠 때마다 성격이 급해서 그런지 늘 감정이 앞선다. 그러고서는 아이에게 왜 그런 말을 함부로 했을까, 그만 참을 걸, 아이가 마음에 상처를 받지는 않았을까,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이런저런 생각으로 마음이 괴로울 때가 있다.
초등학교 육학년 때다. 그때 내 고집이 나 자신도 놀라울 정도였다. 나는 끝까지 고집을 꺾지 않았다. 부모님은 인내심을 발휘하여 며칠 전부터 열네 살짜리 막내아들을 설득했다. 나는 당시 고향에서 백 리나 떨어진 지방도시에 있는 중학교에 입학원서를 내어놓고 있었다. 집안 사정이 여의치 않아 아버지나 어머니 중 한 사람도 시험 보러 가는 데 동행하지 못할 형편이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같은 중학교에 원서를 낸 친구와 그 아버지를 따라가, 시험 볼 동안 친구의 친척 집에 묵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시험 보는 곳에 함께 따라가 주지 않는 부모가 야속하고 원망스러웠다. 무엇보다도 어린 나이에 집과 가족 곁을 떠나 며칠 동안 낯선 곳에서 지내야 한다는 점이 두렵고 불안했다. 버스도 타 보고 도시 구경도 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었으나 아버지와 어머니가 옆에 없다는 생각을 하니 도무지 안심이 되지 않았다.
시험 날짜가 다가올수록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뜻을 넌지시 비추었다. 시험 날이 임박해지자 울면서 만약 누구라도 함께 가지 않으면 나도 시험 보러 가지 않겠다고 떼를 썼다. 거듭 달랬다가 내가 말을 듣지 않자 아버지는 들고 있던 소쿠리를 마당 한가운데로 냅다 던지며, “시험이고 뭐고 다 때려치워라”라는 마지막 선언을 하고 말았다.
눈물과 콧물이 범벅된 나는 아버지의 화난 목소리에 덜컥 겁이 났다. 정말로 시험 보러 보내 주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가닥 걱정과 아버지에 대한 야속함이 교차하는 가운데 서럽게 한참이나 울먹였다. 아버지는 마당 끝에 웅크리고 앉아 나에게 등을 보인 채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다가 화난 모습으로 곧장 집 밖으로 나갔다. 사립문을 나서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이제는 내 고집을 꺾어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그날 아버지는 밤이 깊어서야 돌아오셨다. 잠결에 아버지에 대한 어머니의 푸념과 아버지의 긴 한숨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나 보니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봉당 끝에는 내가 가지고 가야 할 짐 꾸러미 하나가 아주 단단하게 꾸려져 있었다. 그 짐 꾸러미에는 등에 질 수 있도록 칡덩굴을 반으로 쪼개어 만든 멜빵이 매여 있었다. 아버지의 솜씨임을 금방 알았다. 갈라진 칡의 하얀 속살이 아침 햇살에 선명하게 드러났다. 내가 조금이라도 편하게 짐을 지고 갈 수 있도록 공들여 짐을 꾸린 아버지를 생각하니 떼를 쓴 일이 미안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짐을 등에 지니 칡 멜빵이 내 어깨에 자로 잰 듯이 딱 들어맞았다. 아버지가 아니면 누구도 그런 멜빵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친구의 아버지를 따라 친구와 시험장으로 버스를 타기 위해 읍내까지 오십 리 길을 걸었다. 십이월 차가운 바림이 얼얼하도록 사정없이 후려갈겼다. 눈을 뜰 수 없을 지경이었다. 바람을 맞으며 묵묵히 걸었다. 등 뒤에는 석 되의 쌀과 나의 일용품을 싼 꾸러미가 제법 무겁게 매달려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등짐의 무게가 더해 갔고 어깨가 조여 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은 너무나 편했다. 등짐의 무게를 통해 아버지의 진정한 마음이 무엇인지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때 ‘때려치워라’고 화를 내던 아버지의 모습은 나로 하여금 그 먼 길을 걸을 수 있도록 힘을 보태어 주었다.
나는 서럽게 울었다.
아니 울지 않았다. 아버지가 계속 내 등 뒤에서 따라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옛날 ‘때려치워라’는 아버지의 말이 본인 자신을 향한 분노였음을, 나도 자식을 키우면서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칡 멜빵을 매면서 자신이 뱉은 말로 무척이나 가슴 아파했을 것이다. 아마 칡을 반으로 가를 째에는 자신의 가슴을 가르는 듯했을 것이다.
부모는 언제나 자식 때문에 가슴 아파하고, 그로 말미암은 상처를 안고 사는 듯싶다. 오늘따라 육십을 못 넘기고 돌아가신 아버지가 무척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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