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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수필

미운 간호부

by 자한형 2021.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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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섭

어제 S병원 전염병실에서 본 일이다. A라는 소녀, 7, 8세밖에 안 된 귀여운 소녀가 죽어 나갔다. 적리(赤痢)로 하루는 집에서 앓고, 그 다음날 하루는 병원에서 앓고, 그리고 그 다음날 오후에는 시체실로 떠메어 나갔다. 사흘 밤낮을 지키고 앉아 있었던 어머니는 아이가 운명하는 것을 보고, 죽은 애 아버지를 부르러 집에 다녀왔다. 그 동안 죽은 애는 이미 시체실로 옮겨가 있었다. 부모는 간호부더러 시체실을 가리켜 달라고 청하였다.

"시체실은 쇠 다 채우고 아무도 없으니까, 가 보실 필요가 없어요."

하고 간호부는 톡 쏘아 말하였다. 퍽 싫증난 듯한 목소리였다.

"아니, 그 애를 혼자 두고 방에쇠를 채워요?"

하고 묻는 아이 어머니의 목소리는 떨리었다.

"죽은 애 혼자 두면 어때요?"

하고 다시 톡 쏘는 간호부의 목소리는 얼음같이 싸늘하였다. 이야기는 간단히 이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때 몸서리쳐짐을 금할 수가 없었다.

'죽은 애를 혼자 둔들 어떠리!' 사실인즉그렇다. 그러나 그것을 염려하는 어머니의 심정! 이 숭고한 감정에 동정할줄 모르는 간호부가 나는 미웠다. 그렇게까지도 간호부는 기계화되었는가?

나는 문명한 기계보다도 야만인 인생을 더 사랑한다. 과학적으로 볼 때, 죽은 애를 혼자 두는 것이 조금도 틀릴 것이 없다. 그러나 어머니로서 볼 때에는……. 더 써서 무엇하랴? 어머니를이해하지 못하고, 동정할 줄 모르는 간호부! 그의 과학적 냉정(冷靜)이 나는 몹시도 미웠다. 과학 문명이 앞으로 더욱 발달되어 인류 전체가 모두 다 '냉정한 과학자'가 되어 버리는 날에 이른다면…… 나는 그것을 상상하기에만도 소름이 끼친다.

()! 그것은 인류최고 과학을 초월하는 생()의 향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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