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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수필

한국 대표수필 (1-3)

by 자한형 2021.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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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표수필(copyleft)

 

 

 

 

 

엮은이:김동리 외 9

지은이:한용운 외

발행인:고종옥

발행처:진문출판사

 

 

 

차례

 

한용운 최후의 오분간/ 번민과 고통

 

신채호 실패자의 신성/ 차라리 괴물을 택하리라

 

최남선 국토 예찬

 

이광수 금강산 기행

 

민태원 청춘 예찬

 

이희승 독서와 인생/ 청추 수제

 

방정환 어린이 찬미

 

설의식 헐려 짓는 광화문/ 돼지의 대덕/ 수천석두

 

심 훈 7월의 바다/ 조선의 영웅

 

김진섭 매화찬/생활인의 철학/병에 대하여/우송

 

이은상 한 눈 없는 어머니

 

양주동 질화로/ 몇 어찌/ 면학의 서

 

이양하 신록 예찬

 

조윤제 은근과 끈기

 

김광섭 수필 문학 소고/ 나무/ 일관성에 관하여

 

이헌구 시인의 사명/어머니

 

이효석 채롱/ 낙엽을 태우면서

 

김소운 창원 장날/ 선의의 불씨/ 퇴색치 않는 사랑

 

윤오영 부끄러움/ 마고자/ 백사장의 하루

 

이무영 낙엽과 문학

 

최재서 문학과 인생

 

한흑구 옥수수/ 석류

 

이상 권태

 

피천득 구원의 여상/ 인연/ 수필/ 유순이

 

안수길 일하는 행복

 

정비석 산정 무한/ 나의 참회록

 

류달영 슬픔에 관하여/ 겨울 정원에서/ 초설에 붙여서

 

노천명 항토 유정기/ 겨울밤의 얘기/ 시골뜨락

 

김동리 만월/ 수목송/ 흰나비/

 

임옥인 감사

 

원응서 낚시의 즐거움/ 그 놈을 잡으려/ 이삭주이

 

이항녕 깨어진 그릇

 

이영도 매화/ 오월이라 단오날에/ 모색

 

전관용 가을의 여정/ 나의 고향

 

전숙희 삶의 슬기/

 

조지훈 지조론/ 돌의 미학

 

김태길 인간의 존엄성과 성실/ 글을 쓴다는 것

 

조연현 손수건의 사상/ 친절한 사람들

 

김상옥 백자 이제

 

안병욱 끝없는 만남/ 조화/ 고독과 사색

 

류주현 탈고 안 될 전설/ 신의 눈초리

 

송건호 한국 지성의 어제와 오늘/ 선비 정신/ 고향을 향한 마음

 

박완서 40대의 비 오는 날/ 떳떳한 가난뱅이

 

전혜린 회색의 포도와 레몬빛 가스등/ 사치의 바벨 탑/ 독일로 가는 길/ 몽환적 시월

 

이어령 지게/ 네 잎의 클로버

 

 

 

간행사

 

 

 

, 고교 국어 교과서를 분석해 보면 수상, 수감, 논고 등 수필에 포함시킬 수 있는 글이 70 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각종 국어 과목 시험에 출제되는 문제도 보면 거개가 수필이다. 이로써 우리 나라 국어 교육, 나아가서 문학 교육에서 수필이 얼마나 중시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수필은 다른 어떤 장르의 문학보다도 더 직접적으로 생활로부터 나오는, 생활과 이어진 문학이다. 수필이야말로 실용적인 문학 그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학생을 문학 전문가가 아니라 유능하고도 평균적인 생활인으로 기르는 것을 기본 목표로 하는 학교의 국어 교육에서 수필이 중시되는 까닭이다. 자기 의견을 충분히 표현하고 남의 의견을 올바로 이해하게끔 되기 위해서는 생활의 문학인 수필, 실용 문학인 수필보다도 더 좋은 교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의 수필 교육만으로는 아직도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각계의 의견이다. 학교의 국어 교육을 충실히 받은 사람도 사회에 나와서는 실용문 하나 제대로 쓰지 못한다는 사실이 그 증거로 들어진다. 더욱이, 고입 및 대입 학력 고사가 객관식 고사에서 주관식 고사로 바뀌어가고 있는데, 이 경우 작문을 갖추지 못한 학생들이 이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걱정하는 이도 적지 않다.

 

우리는 이를 깊이 고려해서, 이 책이 학교의 국어 교과서가 충분히 가지고 있지 못한 내용을 보충함으로써 보조적 교재로 쓸 수 있게 했으며, 학생들이 실용 문장을 공부함에 있어 모범이 될 수 있는 글을 골라 뽑았다. 또한 그러는 가운데서 수필의 참맛을 알 수 있게끔 우리 나라 명수필을 빼놓지 않고 실었다.

 

이 수필집 한 권으로써 학생 여러분은 어떠한 형식에도 구애받지 않는 수필이 왜 현대에 가장 총애받는 장르의 문학이 되었으며, 이것이 실제 생활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가를 알게 될 것이다.

 

, 고교 필수 문학 작품 선정 위원회

 

 

 

 

 

 

 

 

 

 

 

 

 

 

"한용운편"

 

 

 

한용운(1879__1944)

시인. 승려. 법호는 만해. 충남 홍성 출생. 한학 수학.

33인 중의 하나인 그는 "님의 침묵" "알 수 없어요" 등 예술적. 사상적

깊이가 있는 시를 쓴 것으로 유명하다. 어려서 신동으로 불리었고 18세 때는

동학에 참여하였고 그 후 승려로 한국 불교계의 혁신을 도모하였고 만주에

건너가 독립 운동에 공헌하였다.

 

 

 

 

 

 

최후의 오분간

 

 

 

벌써 근 30년의 회상이다. "음빙실문집"에서 얻은 기억의 한 토막이다. 지나(중국)의 양계초가 무술 정변에 실패하고 미국에 망명하였을 때에 미국 조야 인사를 방문하였는데 모건은 미국에서 유명한 부호요, 기업가요, 돈도 많고 일도 많은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어떠한 사람을 면회하든지 5분 이상을 하는 일이 없는 사람이었다.

 

모건은 부호요 거상이니만큼 면회하는 사람도 많을 것인즉, 그만큼 바쁜 사람으로 그만한 사람을 면회하자면 오랜 시간을 허비할 수가 없는 것도 사실이겠지만, 그보다도 그에게는 그만한 능력이 있었던 것이니, 능력이라는 것은 그의 두뇌를 말하는 것이다. 그에게는 심상한 방문객도 없지는 않겠지마는 대부분은 일이 있어서 찾는 사람일 것이요, 그 중에 복잡한 사단과 장황한 이론을 필요로 하는 방문도 많았을 것이다.

 

그리하면 어찌하여 다만 5분간의 면회로 그러한 일들을 해결할 수가 있는 지가 의문이네, 모건은 어떠한 복잡한 일을 당하든지 지엽의 토의를 필요로 하지 아니하고 편언척어로 요령을 포착하여 단도 직입, 언하에 신속히 판단하고, 한 번 판단하면 여하한 경우라도 그것을 변개하는 일이 없다 한즉 그는 그러한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로 그러한 판단력과 의지력이 있어서 5분간의 면회로도 미해결의 일은 없다 한다.

 

모건은 대부호이니만큼 미국 정부에서도 그에게 돈을 꾸어 쓰는 일이 있는데, 그러한 때에는 대통령이 직접 모건을 방문하게 된다. 모건은 대통령의 방문에도 물론 5분 이상을 허비하지 않는다 한다. 모건은 일개의 우연한 부상(부자기업인)이 아니라 실로 일종의 걸물인 것이 틀림없는 것이다.

 

양계초가 그를 찾은 것은 소관이 있어서가 아니라 일종의 호기심이었던 것이니만큼 그들의 면회는 3분간에 끝났는데, 양이 떠날 때에 자기에게 기념될 만한 말을 청한즉 모건은 '성공은 최후의 5분간에 있다'는 간단한 말로 고별사를 지었다 한다.

 

세계적 부호요 서반구적 걸물인 모건으로 당시 지나 일폭의 풍운아로서 정변에 실패하고 천애윤락 이역에 망명하여 미래의 부침이 적어도 4억만 생령에 관심되는 양계초에게 기념적으로 준 말이라면 반드시 심상할 말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대적 추상보다 그 말 자체를 음미하면 실로 우리들의 좌우명이 될 만한 말이다.

 

이 말은 중도의 실패에 낙망하지 말고 최후까지 노력하라는 뜻이다. 사람이 경영하는 일은 성공을 목표로 하지 않는 일이 없고 성공까지에는 반드시 다소의 시일이 요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시일을 두고 참담 경영하던 일이 최후의 종국은 5분간으로서 족한 것이다. 구인의 산은 최후의 일궤를 가하는 5분간으로 부족이 없는 것이다.

 

일을 영위함에는 시간의 조만도 문제이지만 성공의 5분간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성공기의 지속이 그 일을 영작하는 노력의 질적 양적의 다과로 정비례될 뿐이다. 물론 여기에서 영위하는 일이라는 것은 산판상으로 타산하여서 전도를 예측할 수 있는 대금업이나 토목 공사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전도의 성패를 알 수 없으면서도 사람으로서 당연히 당할 일을 말하는 것인데, 사람이 하고자 하는 일은 매양 순경보다 역경을 당하는 일이 많게 되는 것은 조화용의 장난인지도 모른다 하려니와, 그보다도 순경에 처한 사람보다도 역경에 있는 사람이 하고자 하는 일이 많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궁할수록 달하고 싶고 퇴할수록 진하고 싶은 사람의 욕망이라고 하느니보다 차라리 생물의 본능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자고로 위대한 사업은 흔히 역경을 만난다고 하지마는 위대한 사업일수록 역경에서 출발하기가 쉽게 되느니 그 출발점이 역경인지라 그 진로가 순경일 수가 없는 것이다. 만일 그들에게 순경이 있다면 그것은 이른바 성공하는 최후의 5분간으로부터일 것이다. 그러므로 천하의 모든 역경에 선 사람들도 순경을 개척하기 위하여 노력한다면 마땅히 그것을 먼저 간파하지 아니하면 아니 될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아니하여 일을 영위하다가 곤란이 있다고 중도에 퇴보한다든지 진로를 변경한다면 그것은 최초의 본의가 아닐 뿐 아니라 그 사람에게는 언제든지 성공은 없을 것이니, 그러면 그 사람의 일생은 실패와 비애로 시종할 것이다. 그러한 사람은 자기의 소위에 대하여 일시적 성취가 사람으로 그것을 영위하고 거기에 용진하여 백절불굴, 쉬지 않고 행하다가 광란을 기도에서 돌이키고 대하를 장경에서 붙들어서 성공의 최후 5분간을 본다면 사람의 희열이 거기에 있고 진정한 행복이 거기에 있는 것이다. 세도의 일빈일소에 영수향응하여 조동모서로 종작이 없어 부침하는 경박아, 천장부에게는 각각으로 실패의 5분간을 계속할 뿐이다.

 

 

 

 

 

 

 

 

 

번민과 고통

 

 

 

 

 

번민과 고통은 밖에서 오는 것, 정신 활동으로 번민을 제하자

 

먼저 고통과 번민에 대한 관념부터 말씀하겠습니다. 우리가 보통 받는 고통으로 말하면 두 가지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

첫째 정신상으로 받는 고통과, 둘째 물질상으로 받는 고통입니다.

모든 고통은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것이니, 이것을 받은 때에 받아서 느낀 때에 비로소 고통이 생기는 것이외다. 다시 말하면, 고통을 고통으로 알고, 고통을 고통으로 느끼는 그 느낌이 고통이외다. 들어오는 고통을 받지 말고, 스스로 나아가 기쁘게 즐겁게 영적 활동으로 나아가면 고통이란 없을 것이외다.

이렇게 말하면, 어떤 분은 현실 세계를 부인한 모순의 말이라 할 것이외다. 우리가 아무리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하더라도, 밖으로 들어오는 고통 그것은 다름없이 있을 것이 아니냐고 할 것이외다. 이렇게 되면, 문제가 좀 넓어집니다. 허나 이것이 결코 현실 세계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외다. 다만, 그 고통이 생기는 까닭이 고통을 느끼는 데 있으므로, 만일 이 고통을 느끼면서 밖으로 그 고통 주는 바를 쳐 버린다든지, 또는 그 고통을 없이할 만족을 요구한다든지 할진대, 아마 그 고통은 용이하게 없어지지 아니하리다. 더욱 고통은 고통을 더할 것이외다. 옷이 없어서 고통이외다. 밥이 없어서 고통이외다. 자유를 잃어서 고통이라 합니다. 그래서, 밥을 구하며 옷을 주기를 기다립니다. 자유를 빼앗은 자를 원망합니다. 고통이 주는 모든 것에 대하여 반항도 하고, 애원도 합니다.

그러나 그 고통을 주는 고통 그것이 또한 피()라는 자리에 있어서 아()에게 요구합니다. 나와 같이 겨룹니다. 이렇게 되고도 고통이 없어질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되고도 번민치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현재 우리 조선 사람이 정신상으로나 물질상으로나 무한한 고통을 받음은 사실이외다. 남다른 설음과 남다른 고통으로 울고불고하는 터외다. 밥이 넉넉지 못하고, 옷을 헐벗어 목숨을 부지하기에 갖은 고통이 일어납니다. 자유가 없으니까, 눈이 있으나, 입이 있으나 없으나 다름이 없습니다. 손이 날래고 발이 튼튼하다 하더라도 아무 보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고통을 느끼어 갑니다. 그러나, 이 고통을 물리치려고 없이하려는 태도로 수단을 부리고 길을 취한다 하면, 고통은 점점 더할 것이외다. 근본적으로 이 고통의 탈 가운데서 뛰어나와 쾌락하게 평화로운 영적 활동을 계속하여 가면, 고통은 자연히 없어질 것이외다. 고통이 우리에게 고통을 주지 못할 것이외다.

 

 

 

 

 

 

 

 

 

 

 

 

 

 

 

 

 

 

 

 

 

"신채호편"

 

 

 

 

 

신채호(1880__1936) 사학자. 호는 단재. 충북 청주 출생.

순수한 민족주의적 역사관으로 당시의 식민주의적인 일체의 학설들을

배격하었으며 항일 운동의 이념적 지도자로 언론계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하였다. 일본 관헌에 체포되어 여순 감옥에서 옥사하였다.

 

 

 

 

 

 

 

 

 

 

 

 

실패자의 신성

 

 

 

나무에 잘 오르는 놈은 나무에서 떨어져 죽고, 물 헤엄을 잘 치는 놈은 물에 빠져 죽는다 하니, 무슨 소리뇨?

 

두 손을 비비고 방안에 앉았으면 아무런 실패가 없을지나, 다만 그러하면 인류 사회가 적막한 총묘와 같으리니, 나무에서 떨어져 죽을지언정, 물에 빠져 죽을지언정, 앉은뱅이의 죽음은 안 할지니라.

 

실패자를 웃고 성공자를 노래함도 또한 우부(어리석은 사람)의 벽견이라. 성공자는 앉은뱅이같이 방 안에서 늙는 자는 아니나, 그러나 약은 사람이 되어 쉽고 만만한 일에 착수하므로 성공하거늘, 이를 위인이라 칭하여 화공이 그 얼굴을 그리며, 시인이 그 자취를 꿈꾸며, 역사가가 그 언행을 적으니, 어찌 가소한 일이 아니냐. 지어 불에 들면 불과 싸우며, 물에 들면 물과 싸우며, 쌍수로 범을 잡고 적신으로 탄알과 겨루는 인물들은 그 십의 구가 거의 실패자가 되고 마나니, 왜 그러냐 하면, 그 담의 웅과 역의 대와, 관찰의 명쾌와 의기의 성장이 남보다 백배 우승하므로, 남의 생의도 못하는 일을 하다가 실패자가 되니, 그러므로 실패자와 성공자를 비하면 실패자는 백보나 되는 큰 물을 건너뛰던 자이요, 성공자는 일보의 물을 건너뛰던 자이어늘, 이제 성공자를 노래하고 실패자는 웃으니, 인세의 전도가 또한 심하도다.

 

 

 

 

이와 같이 실패자를 비웃음은 동서양의 도도한 사필들이 거의 그러하지만 수백 년래의 조선이 더욱 심하였으며, 조선 수백 년래에 이따위 벽견을 가진 이가 적지 않으나, 김부식 같은 자가 또한 없었도다.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일부 노예성의 산출물이라. 그 인물관이 더욱 창피하여 영웅인 애국자--곧 동서 만고에도 그 비루가 많지 안할 부여 복신을 전기에 빼고, 백제사 말엽에 12구뿐 부록함이 벌써 그에 대한 모멸인데, 게다가 또 사실을 무하여 면목을 오손하였으며, 연개소문이 비록 야심가이나 정치 사상의 가치는 또한 천재 회유의 기물이어늘, 다만 그 2세 만에 멸망하였으므로 오직 신, 구 당서를 초록하여 개소문전이라 칭할 뿐이요, 본국의 전설과 기록으로 쓴 것은 한 자를 볼 수 없을 뿐더러 또 그를 흉불완하다 지척하였으며, 궁예와 견훤이 비록 중도에 패망하였으나 또한 신라의 혼군을 항하고 위기를 거하여 수십 년을 일방에 패하였거늘, 이제 초망의 소추라 매욕하였으며, 정치계의 인물뿐 아니라 학술에나 문예에도 곧 이러한 논법으로 인물을 취사하여 독립적 창조적 설원, 영랑, 원효 등은 일필로 도말하고, 오직 지나사상의 노예인 최치원을 코가 깨어 지도록, 이마가 터지도록, 손이 발이 되도록 절하며 기리며, 뛰며, 노래하면서 기리었다.

 

그리하여 김부식이 자기의 옹유한 정치상 세력으로 자기의 의견과 다른 사람은 죽이며, 자기의 지은 "삼국사기"와 다른 의론을 쓴 서적은 불에 넣었도다.

 

그리하여 후생의 조선 사람은 귀로 듣는 바와 눈으로 보는 바가 김부식의 것밖에 없으므로 모두 김부식의 제자가 되고 말았으며, 모두 김부식과 같은 논법에 같은 인물관을 가졌도다. 하늘과 다투며, 사람과 싸워 자기의 성격을 발휘하여, 진취, 분투, 강의, 불굴 등의 문자로써 인간에 교훈을 끼침이어늘, 우리 조선은 그만 김부식의 인물관이 후인에게 전염하여 고금의 실패자는 모두 배척하고 성공자를 숭배하게 되니, 성공자는 아까 말한 바 약은 사람이라. 이제 창졸히 ''의 정의는 낼 수 없으나 세상에서 매양 '약은 사람'의 별명은 '쥐새끼라'하니, 약은 사람의 성질은 이에서 얼만큼 추상할 수 있도다.

 

 

 

 

(1) 엄청나는 큰 일을 생의치 안하며,

(2) 남의 눈치를 잘 보며,

(3) 죽을 고비를 잘 피하며,

(4) 제 입벌이를 자작만 하여 그 기민함이 쥐와 같은 고로 쥐새끼라 함이라.

 

 

 

 

 

아으, 수백 년래의 인물에, 어찌 범이나 곰이나 사자 같은 사람들이

없었으리오마는 대개 쥐새끼들이 사회의 위권을 장악하여 학술은 독창을

금하고, , 주 등 고인의 종 됨을 사랑하며 정치는 독립을 기하고 일보 일보

물러가 쇠망의 구렁에 빠짐이라.

실패는 이같이 싫어하였는데, 어찌 실패보다 참악한 쇠망에 빠짐은 무슨

연고이뇨, 이는 나의 전언에 벌써 그 이유의 설명이 명백하니라.

 

 

 

 

 

 

 

 

 

 

 

 

차라리 괴물을 취하리라

 

 

 

1

 

한 사람이 떡장사로 득리하였다면 온 동리에 떡방아 소리가 나고, 동편 집이

술 팔다가 실패하면 서편 집의 노구도 용수를 떼어 들이어, 진할 때에 같이

--하다가 퇴할 때에 같이 우르르 하는 사회가 어느 사회냐. 매우 창피하지만

우리 조선의 사회라고 자인할 수밖에 없다.

삼국 중엽부터 고려 말일까지 염불과 목탁이 세가 나, 제왕이나 평민은

물론하고 남은 여에게 권하며, 조는 손에게 권하여 나무아미타불한 소리로 팔백

년을 보내지 안하였느냐.

이조 이래로 유교를 존상하매, 서적은 사서오경이나 그렇지 않으면

사서오경을 되풀이한 것뿐이며, 학술은 심, , , 기의 강론뿐이 아니었더냐.

이같이 단조로 진행되는 사회가 어디 있느냐.

예수교를 믿어야 하겠다 하면, 삼두락밖에 못 되는 토지를 톡톡 팔아 교당에

바치며, 정치 운동을 한다 할 때에는 이발사가 이발관을 뜯어 가지고 덤비나니,

이같이 뇌동부화하기를 즐기는 사회가 어디 있느냐.

 

2

 

개인도 사회와 같아 갑종교로 을종교를 개신하거나, 갑주의로 을주의에

이전할 때에 반드시 주먹을 발끈 쥐고 얼굴에 핏대가 오르며 씩씩하는

숨소리에 맥박이 긴급하며, 심리상의 대혁명이 일어나 어제의 성사가 오늘의

악마가 되어 무형의 칼로 그 목을 끊으며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구적이 되어

무성의 총으로 그 전부를 도륙한 연후에야 신생활을 개시함이 인류의 상사어늘,

근일의 인물들은 그렇지도 안하다.

공자를 독신하던 자가 이제야 예수를 믿지만 벌써 36년 전의 예수교인과

같으며, 제왕의 충신으로 자기하던 자가 처음으로 민주주의를 존봉하지만, 마치

자기의 모복증에서부터 민주의 혼을 배워 가지고 온 것 같으며, 그러다가

돌연히 딴 경우가 되면 바울이 다시 안연도 될 수 있으며, 당톤이 다시

문천상도 될 수 있으며, 바쿠닌의 제자가 카이제르의 시종도 될 수 있으니,

이것이 무슨 사람이냐.

그 중에 아주 도통한 사람은 삽시간에 애국자, 비애국자, 종교가, 비종교가,

민족주의자, 비민족주의자의 육방팔면으로 현신하나니 어디에 이런 사람이

있느냐.

그 원인을 소구하면, 나는 없고 남만 있는 노예의 근성을 가진 까닭이다.

노예는 주장은 없고 복종만 있어, 갑의 판이 되면 갑에 복종하고, 을의 판이

되면 을에 복종할 뿐이니, 비록 방촌의 심리상인들 무슨 혁명할 조건이 있으랴.

 

3

 

손일선의 삼민주의는 민주주의, 사회주의 등을 혼동하여 그리 찬탄할 가치는

있는지 모르겠으나 그래도 주의는 주의다.

우리의 사회에는 수십 년 동안 지사, 위명자가 누구든지 한 개 계시한

소주장도 없었다.

그리하여 일시의 활용에는 썩 편리하였다.

실업을 경영하는 자를 보면 나의 의견도 실업에 있다 하며, 교육을

실시하려는 자를 보면 나의 주지도 교육에 있다 하며, 어깨에 사냥총을 메고

서북간도의 산중으로 닫는 사람을 보면 나도 네 뒤를 따르겠노라 하며, 허리에

철추를 차고 창해역사를 꿈꾸는 자를 보면 내가 너의 유일한 동지로다 하고,

외인을 대하는 경우에도 중국인을 대하면 조선을 유교국이라 하며, 미국인을

대하면 조선을 예수교국이라 하며, 자가의 뇌 속에는 군주국, 비군주국, 독립국,

비독립국, 보호국, 비보호국, 무엇이라고 모를, 집을 수 없는, 신국가를 잠설하여

시세를 따라 남의 눈치를 보아, 값나가는 대로 상품을 삼아 출수하는도다.

애재라. 갑신 이후 40여 년 유신계의 산아들이 그 중에 시종 철저한 경골한이

몇몇이냐.

 

 

 

4

 

어떤 선사가 명종할 때 제자를 불러 가로되,

"누워 죽은 사람은 있지만 앉아 죽은 사람도 있느냐?"

"있습니다."

"앉아 죽은 사람은 있지만 사서 죽은 사람도 있느냐?"

"있습니다."

"바로 사서 죽은 사람은 있으려니와 거꾸로 사서 죽은 사람도 있느냐?"

"없습니다. 인류가 생긴 지가 몇만 년인지 모르지만 거꾸로 사서 죽은 사람이

있단 말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그 선사가 이에 머리를 땅에 박고 거꾸로 사서 죽으니라.

이는 죽을 때까지도 남이 하는 노릇을 안 하는 괴물이라, 괴물은 괴물이

될지언정 노예는 아니 된다. 하도 뇌동부화를 좋아하는 사회니 괴물이라도

보았으면 하노라.

관악산중에 털똥 누는 강감찬의 후신이 괴물이 아니냐.

상투 위에 치포관을 쓰고 중국으로 선교온 자가 또한 괴물이 아니냐.

이는 군함, 대포, 부자유, 불평등, 생활 곤란, 경제 압박 모든 목하의 현실의

대적이지 못하고 도피하여 이상적 무릉도원의 생활을 찾음이니 무슨 괴물이

되리오.

 

 

 

5

 

조선인같이 곤란, 고통을 당하는 민족 없음을, 따라서 조선에서 무엇을 하여

보자는 사람같이 가읍할 경우에 있는 이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경우가 그렇다고 스스로 퇴주하면 더욱 자살의 혈에만 근할 뿐이며,

남의 용서를 바라면 한갓 치소만 살 뿐이니, 경우가 그렇다고 남의 용서를

바랄까, 치소만 살 뿐이니라. 스스로 퇴거할까, 더욱 자살의--중간

누락--경우가 이러므로 조선에 나서 무엇을 하려 하면 불가불 그 경우에서

얻는 전염병을 예방하는 방법이 있어야 할 것이다.

안순암이 처음 이성호를 보러 가서 목이 말라 물을 청하였다. 그러나 물은

주지 않고 이야기만 한다.

밤이 으슥한 뒤에, 성호가,

"이제도 목이 마르냐?"

하거늘,

"사실대로 목마른 증은 없어졌습니다."

한즉, 성호가 가로대,

"참아 가면 천하의 난사가 다 오늘 밤의 목과 같으니라."

하였다.

이같이 목말라도 참고, 배고파도 참고, 불로 지져도 참고, 바늘로 손, 발톱

밑을 쑤셔도 참아, 열화지옥의 만악을 다 참아 가는 이는 아마 도학 선생 같은

이가 아닐까.

 

 

 

 

 

 

 

 

 

 

 

 

 

 

 

"최남선편"

 

 

 

 

최남선(1890__1957)

문인, 국학자, 사학가. 호는 육당. 서울 출생. 국학 수학, 일본 와세다 대학

중퇴.

독립 선언문을 기초한 사람으로 유명한 최남선은 한국 최초의 신체시와 시조

등 많은 문학 작품을 발표하였다. 언문 일치의 문장, 자유시의 제창, 시조의

현대화, 수필체 문장의 도입 등 분멸의 공적이 많다.

 

 

 

 

 

 

 

 

 

국토 예찬

 

 

 

우리의 국토는 그대로 우리의 역사이며, 철학이며, 시이며, 정신입니다. 문학 아닌 채 가장 명료하고 정확하고, 또 재미있는 기록입니다. 우리 마음의 그림자와 생활의 자취는 고스란히 똑똑히 이 국토 위에 박혀서 어떠한 풍우라도 마멸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믿습니다.

 

나는 우리 역사의 한 작은 학도요, 우리 정신의 한 어설픈 탐구자로서, 진실로 남다른 애모와 탄미와 함께 무한한 궁금스러움을 이 산하대지에 가지는 것입니다. 자갯돌 하나와 마른 나무 한 밑동도 말할 수 없는 감격과 흥미와 또 연상을 자아냅니다. 이것을 조금씩 색독이나마 하게 된 뒤부터 우리 나라가 위대한 시의 나라, 철학의 나라임을 알게 되고 또 완전, 상세한 실물적 오랜 역사의 소유자임을 깨닫게 되고, 그리하여 쳐다볼수록 거룩한 우리 정신의 불기둥에 약한 시막이 퍽 많이 아득해졌습니다.

 

곰팡내나는 서적만이 이미 내 지견의 웅덩이가 아니며 한 조각 책상만이 내 마음의 밭일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도리어 서적과 책상에서 불구가 된 내 소견을 진여한 상태로 있는 활문자, 대궤안에서 교정받고 보양을 얻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통절히 느꼈습니다.

 

묵은 심신을 시원히 벗어 던지고, 자유로운 공기를 국토 여래의 상적토에서 호흡하리라 하는 열망은 시시각각으로 나의 가슴을 태웠습니다. 힘 자라는 대로, 시간이 허락되는 대로 국토 예찬을 근수하기는, 나로서는 진실로 숭고한 종교적 충동에 끌린 바로서, 부득불연한 일입니다. 무엇보다도 큰 재미와 힘을 여기서 얻었고, 얻고, 얻을 것이니, 생활의 긴장미로만 해도 나의 이 수행은 오래도록 계속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국토에 대한 나의 신앙은 일종의 애니미즘일지도 모릅니다. 나의 보는 그것은 분명히 감정이 있으며 웃음으로 나를 대합니다. 이르는 곳마다 꿀 같은 속삭임과 은근한 이야기와 느꺼운 하소연을 듣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의 심장은 최고조의 출렁거림을 일으키고 실신할 지경까지 들어가기도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때의 나는 분명한 한 예지자의 몸이요, 일대 시인의 마음을 가지지만, 입으로 그대로 옮기지 못하고 운율 있는 문자로 그대로 재연하지 못할 때, 나는 의연한 일 범부며, 일 박눌한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섭섭히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 그러내 하면, 나의 작은 재주는 저 큰 운의를 뒤슬러 놓기에는 너무도 현격스러운 것이니까, 워낙 애닯고 서운해할 염치가 없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혹은 유적, 혹은 전설에 내일을 기다리기 어려운 것도 있고, 혹은 자연의 신광, 혹은 역사의 밀의에 모르는 체할 수 없어서, 변변하지 않은 대로, 간 곳마다 견문 고검의 일반을 기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는 진실로 문장으로 보거나 논고로 볼 것이 아니요, 또 천 년의 숨은 자취를 헤쳤거나 만인의 심금을 울릴 무엇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런대로 우리 국토에 대한 뜨거운 마음이 넘쳐 나온 것이니, 내게는 휴지로 버리기 어려운 점도 없지 아니합니다. 이러므로, 다만 한 가지 또 어슴푸레하게라도, 우리 정신의 숨었던 일면이 나타난다면 물론 분회의 다행입니다. 그렇진 못할지라도, 우리 청전구물에 대한 나의 애처롭고 안타까운 정리를 담은 것이 혹시나 강호의 동정을 산다면, 이 또한 큰 소득입니다. 아무튼 우리 국토의 큰 정신을 노래해 내는 이의 어릿광대로 작은 끄적거림을 차차 책으로 모아 갈까 합니다.

 

이제 그 첫권로 내는 "심춘 순례", 작년 삼월 하순부터 수미 50여 일간, 지리산을 중심으로 한 순례기의 전반을 이루는 것이니, 마한 내지 백제인의 정신적 지주였던 신악의 여훈을 더듬는 것이요, 장차 해변을 끼고 내려가는 부분을 합하여 서한의 기록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진인의 고신앙은 천의 표상이라 하여 산악으로써 그 대상을 삼았으며, 또 그들의 영장은 뒤에 대개 불교에 전승되니, 이 글이 산악 예찬, 불도량 역참의 관을 주는 것은 이 까닭입니다. 적을 것도 많고 적을 방법도 있겠지만, 매일 적잖은 산정을 발섭하고 가쁜 몸이 침침한 촛불과 대하여 적는 데도 이것도 큰 노력이었습니다. 선재와 행문이 다 거침을 극한 것은 부재 이외에도 까닭이 없지 아니합니다. 그러나, 고치자니 새로 짓는 편이 도리어 손쉽고, 새로 짓자니 그만 여가가 없으므로 숙소에서 주필하여 날마다 신문사로 우송하였던 원고를 그대로 배열하게 되었습니다. 후안의 꾸지람은 얼마든지 받겠습니다.

 

행중에 여러 가지 편의를 주신 연로의 여러 대방가, 특히 각 산의 법승들에게 이 기회에 심대한 사의를 드립니다. , 남순 소편에 다소라도 보람 있는 구절이 있다면, 이는 시종 일관하게 구책 유액의 노를 취해 주신 여러분의 현교와 암시에서 나온 것임을 아울러 표백해 둡니다.

 

 

 

 

 

 

 

 

 

 

 

 

 

 

 

 

 

"이광수편"

 

 

 

 

이광수(1892__?)

소설가. 호는 춘원. 평북 정주 출생. 일본 와세다 대학 영문과 중퇴. '창조'

동인. 조선일보, 동아일보의 편집 국장 역임. 6.25사변 때 납북.

이광수는 최남선과 함께 우리 나라 신문학의 개척자이다. 톨스토이의 영향을

받은 그는 계몽적이며 인도주의적인 작품을 많이 썼다. 장편 소설에 "무정"

"개척자" "" "유정" "사랑" 등이 있고, 단편 소설에 "소년의 비애" "어린

벗에게" "" 등이 있다.

 

 

 

 

 

 

금강산 기행

 

 

 

우리는 점심을 먹고 이럭저럭 한 시간이나 넘게 기다렸으나, 이내 운무가 걷히지를 아니합니다. 나는 새로 두 시가 되면 운무가 걷히리라고 단언하고 그러나 운무 중의 비로봉도 또한 볼 만한 것이다 하며 다시 올라가기를 시작했습니다.

 

동으로 산마루를 밟고, 줄 타는 광대 모양으로 수십 보를 올라가면, 산이 뚝 끊어져 발 아래 천 길 낭떠러지가 있고, 거기서 북으로 꺾여 성루 같은 길로 몸을 서편으로 기울이고 다시 수십 보를 가면 뭉투룩한 봉두에 이르니 이것이 금강 만 이천 봉의 최고봉인 비로봉의 머리외다. 역시 운무가 사방으로 막혀 봉두의 바위들밖에 아무것도 보이지 아니합니다.

 

그 바윗돌 중에 중앙에 있는 큰 바위를 '배바위'라 하는데, '배바위'라 함은 그 모양이 배와 같다는 것이 아니라, 동해에 다니는 배들이 그 바위를 표준으로 방향을 찾는다는 데서 나온 이름이라고 안내자가 설명합니다. 이 바위 때문에 해마다 여러 천 명의 생명이 살아난다고, 그래서 선인들은 멀리서 이 바위를 향하여 제를 지낸다고 합니다. 이 안내자의 말이 참이라 하면, 과연 이 바위는 거룩한 바위외다.

 

바위는 아주 평범하게 생겼습니다. 이 기묘한 산마루에 어떻게 이렇게 평범한 바위가 있나 하리만큼 평범한, 동그란 바위외다. 평범이란 말이 났으니 말이지, 비로봉두 자신이 극히 평범합니다. 밑에서 생각하기에는, 비로봉이라 하면 설백색의 칼끝 같은 바위가 하늘을 찌르고 섰을 것 같더니, 올라와 본즉 아주 평평하고, 흙 있고 풀 있는 한 조각의 평지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저기 놓인 바위도 그 모양으로, 아무 기묘함이 없이 평범한 바위외다. 그러나, 평범한 이 봉이야말로 만 이천 중의 최고봉이요, 평범한 이 바위야말로 해마다 수천의 생명을 살리는 위대한 덕을 가진 바위외다.

 

위대는 평범이외다. 나는 이에서 평범의 덕을 배웁니다. 평범한 저 바위가 평범한 봉두에 앉아 개벽 이래 몇천만 년을 말없이 있건마는, 만인이 우러러보고 생명의 구주로 아는 것을 생각하면, 절세의 위인을 대하는 듯합니다. 더구나 그 이름이 문인, 시객이 지은 공상적, 유희적 이름이 아니요, 순박한 선인들의 정성으로 지은 '배바위'인 것이 더욱 좋습니다. 아마 이 바위는 문인, 시객의 흥미를 끌 만하진 못하겠지마는, 여러 십리 밖 드넓은 바다로 다니는 선인의 진로의 표적이 됩니다.

 

 

 

 

배바위야, 네 덕이 크다. 만장 봉두에 말없이 앉아 있어

 

창해에 가는 배의 표적이 된다 하니,

 

아마도 성인의 공이 이런가 하노라.

 

 

 

 

만 이천 봉이 기로써 다툴 적에

 

비로야, 네가 홀로 범으로 높단 말가.

 

배바위 이고 앉았으니 더욱 기뻐하노라.

 

 

 

 

이윽고 두 시가 되니, 문득 바람의 방향이 변하여 운무가 걷히기 시작하니, 동에 번쩍 일, 월출봉이 나서고, 서에 번쩍 영랑봉의 웅혼한 모양이 나오며, 다시 구룡연 골짜기의 봉두들이 백운 위에 드러나더니, 문득 멀리 동쪽에 짙푸른 동해의 물결이 번뜻번뜻 보입니다. 그러다가 영랑봉 머리로 칠월의 태양이 번쩍 보이자 운무의 스러짐이 더욱 빨라져, 그러기 시작한 지 불과 4, 5분 후에, 천지는 물로 씻은 듯이 본래의 제 모양을 드러내었습니다. 아아, 그 장쾌함이야 무엇에 비기겠습니까? 마치 홍몽 중에서 새로 천지를 지어 내는 것 같습니다.

 

"나는 천지 창조를 목격하였다."

 

"나는 신천지의 제막식을 보았다."

 

하고 외쳤습니다. 이 마음은 오직 지내 본 사람이어야 알 것이외다. 어둡고 어두운 홍몽 중에 난데없이 한 가닥 밝은 빛이 비치어 거기 새로운 봉두가 드러날 때, 우리가 가지는 감정이 창조의 기쁨이 아니면 무엇입니까? "나는 창조의 기쁨에 참여하였다." 하고 싶습니다.

 

 

 

 

홍몽이 부판하니 하늘이요 땅이로다.

 

창해와 만 이천 봉 신생의 빛 마실 제,

 

사람이 소리를 높여 창세송을 부르더라.

 

 

 

 

천지를 창조하신 지 천만 년가 만만 년가.

 

부유 같은 인생으로 못 뵈옴이 한이러니,

 

이제나 지척에 모셔 옛 모양을 뵈오니라.

 

 

 

 

진실로 대자연이 장엄도 한저이고.

 

만장봉 섰는 밑에 만경파를 놓단 말가.

 

풍운의 불측한 변환이야 일러 무삼하리요.

 

 

 

 

참말 비로봉두에 서서 사면을 돌아 보면, 대자연의 웅대, 숭엄한 모양에 탄복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봉의 높이는 겨우 69 척에 불과하니, 내 키 56촌에서 이마 두 치를 감하면, 내 눈이 해발 6144촌에 불과하지마는, 첫째는, 이 봉이 만 이천 봉 중의 최고봉인 것과, 둘째 이 봉이 바로 동해 가에선 두 가지 이유로 심히 높은 감각을 줄 뿐더러, 그리도 높고 높게만 보이던 내금강의 여러 봉이 저 아래 2천 척 내지 3, 4천 척 밑에 모형 지도 모양으로 보이고 동으로는 창해가, 거리는 40리가 넘지마는, 뛰면 빠질 듯이 바로 발 아래 들어와 보이는 것만 해도 그 광경의 웅장함을 보려든, 하물며 사방에 이 봉 높이를 당할 자가 없으므로, 한계가 무한히 넓어 지름 수백 리의 일원을 일모에 내려다봄에랴. 그 웅대하고 숭고한 맛을 비길 데가 없습니다.

 

 

 

 

비로봉에 올라서니 세상 만사 우스워라.

 

산해 만리를 일모에 넣었으니,

 

그 따위 만국 도성이 의질에나 비하리요.

 

 

 

 

금강산 만 이천 봉 발 아래로 굽어보고,

 

창해의 푸른 물에 하늘 닿는 곳 찾노라니,

 

청풍이 백운을 몰아 귓가으로 지나더라.

 

 

 

 

 

 

 

 

 

 

 

 

"민태원편"

 

 

 

 

민태원(1894__1935)

소설가, 번역 문학가. 호는 우보. 충남 서산 출생. 일본 와세다 대학 정경과

졸업. '페허' 동인. 번안 소설로 많은 감명을 준 작가로서 동아 일보 사회 부장

역임. 강건체, 화려체의 문장이 두드러진다.

 

 

 

 

 

 

청춘 예찬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청춘! 너의 두 손을 가슴에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을 들어 보라. 청춘의 피는 끓는다. 끓는 피에

뛰노는 심장은 거선의 기관과 같이 힘있다. 이것이다. 이류의 역사를 꾸며

내려온 동력은 바로 이것이다. 이성은 투명하되 얼음과 같으며, 지혜는

날카로우나 갑 속에 든 칼이다. 청춘의 끓는 피가 아니라면 인간이 얼마나

쓸쓸하랴? 얼음에 싸인 만물은 죽음이 있을 뿐이다.

그들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따뜻한 봄바람이다. 풀밭에 속잎 나고, 가지에

싹이 트고, 꽃피고 새우는 봄날의 천지는 얼마나 기쁘며 얼마나 아름다우냐!

이것을 얼음 속에서 불러 내는 것이 따뜻한 봄바람이다. 인생에 따뜻한

봄바람을 불어 보내는 것은 청춘의 피가 뜨거운지라, 인간의 동산에는 사랑의

풀이 돋고, 이상의 꽃이 피고, 희망의 놀이 뜨고, 열락의 새가 운다.

사랑의 풀이 없으면 안간은 사막이다. 오아시스도 없는 사막이다. 보이는

끝끝까지 찾아다녀도, 목숨이 있는 때까지 방황하여도 보이는 것은 거친

모래뿐일 것이다. 이상의 꽃이 없으면 쓸쓸한 인간의 꽃이 없으면 쓸쓸한

인간에 남는 것은 영락과 부패뿐이다. 낙원을 장식하는 천자만홍이 어디 있으며,

인생을 풍부하게 하는 온갖 과실이 어디 있으랴?

이상! 우리의 청춘이 가장 많이 품고 있는 이상! 이것이야말로 무한한 가치를

가진 것이다. 사람은 크고 작고간에 이상이 있음으로써 용감하고 굳세게 살 수

있는 것이다.

석가는 무엇을 위하여 설산에서 고행을 하였으며, 예수는 무엇을 위하여

황야에서 방황하였으며, 공자는 무엇을 위하여 천하를 철환하였는가? 밥을

위하여서, 옷을 위하여서, 미인을 구하기 위하여서 그리 하였는가? 아니다.

그들은 커다란 이상, 곧 만천하의 대중을 품에 안고 그들에게 밝은 길을 찾아

주며, 그들을 행복스럽고 평화스러운 곳으로 인도하겠다는 커다란 이상을

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길지 아니한 목숨을 사는가시피 살았으며

그들의 그림자는 천고에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가장 현저하여 일월과

같은 예가 되려니와 그와 같지 못하다 할지라도 창공에 반짝이는 뭇 별과 같이,

산야에 피어나는 군영과 같이, 이상을 실로 인간의 부패를 방지하는 소금이라

할지니, 인생에 가치를 주는 원질이 되는 것이다.

이상! 빛나는 귀중한 이상! 그것은 청춘의 누리는 바 특권이다. 그들은

순진한지라 감동하기 쉽고, 그들은 점염이 적은지라 죄악에 병들지 아니하고,

그들은 앞이 긴지라 착목하는 곳이 원대하고, 그들은 이상의 보배를 능히

품으며 그들의 이상은 아름답고 소담스러운 열매를 맺어, 우리 인생을 풍부하게

하는 것이다.

보라, 청춘을! 그들의 몸이 얼마나 튼튼하며, 그들의 피부가 얼마나 생생하며,

그들의 눈에 무엇이 타오르고 있는가? 우리 눈이 그것을 보는 때에, 우리의

귀는 생의 찬미를 듣는다. 그것은 웅대한 관현악이며, 미묘한 교향악이다.

뼈끝에 스며들어가는 열락의 소리다.

이것은 피어나기 전인 유소년에게서 구하지 못할 바이며, 시들어 가는

노년에게서 구하지 못할 바이며, 오직 우리 청춘에게서만 구할 수 있는 것이다.

청춘은 인생의 황금 시대다. 우리는 이 황금 시대의 가치를 충분히 발휘하기

위하여, 이 황금 시대를 영원히 붙잡아 두기 위하여 힘차게 노래하며 힘차게

약동하자.

 

 

 

 

 

 

 

 

 

 

 

 

 

 

 

 

 

"이희승편"

 

 

 

 

이희승(1896__1989)

국어 국문 학자, 시인. 호는 일석. 경기도 개풍 출생. 경성 제대와 일본 도쿄

대학원 졸업. 문학 박사. 서울대 교수, 동아 일보 사장 역임. 시집에 "박꽃",

수필집에 "벙어리 냉가슴"이 있고 "국어학 개설" "국어 대사전" 등의 저서가

있다.

정확한 문장과 전형적인 우유체의 문체로 교과서에 흔히 실리는 글들이다.

 

 

 

 

 

 

 

 

 

독서와 인생

 

 

 

'사람은 생각하는 갈대다'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갈대'라고 한 것은 아마

약하다는 뜻을 나타낸 것이 아닌가 한다. 갈대는 웬만한 바람일지라도,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고 저리 쏠리고 한다. 그러나 사람은 이와 같은 약한

존재이면서, 생각하는 작용을 한다. '생각한다'는 일, 이것이 사람을 다른

동물과 구별하는 중요한 조건 중의 한 가지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사람을

만물의 영장이라 이르는 것도, 이 생각하는 작용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은 그만큼 놀랍고 위대한 것이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는 달리 문화를

창조하여 내려 왔고, 또 그것을 흐뭇하게 누리고 있는 것은 온전히 사고작용의

덕분이라 할 수 있으며, 오늘날 월세계를 생각하는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벌써 수십 년 전의 일이다. 극장에 구경을 갔더니, 막간에 배우 한 사람이

나와서 재담을 하는데, '이 세상에서 제일 큰 방울이 무엇이냐?' 하는

수수께끼를 내고서, 제 스스로 해답하는 것을 본 일이 있다. 그 해답이란 별다른

것이 아니다. 이 세상의 제일 큰 방울은, 빗방울, 물방울, 은방울, 말방울,

왕방울, 죽방울 등 어떠한 방울도 아니요, 곧 사람의 '눈방울'이라는 것이었다.

왜냐 하면, 사람의 눈방울 속에는 안 들어 오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주위에

있는 인간, 동물, 주택, 산천 초목 등의 모든 풍경이 동공을 통하여 사람의 눈

속으로 들어온다. 만일 높은 산에라도 올라서면 더욱 넓은 세계가 눈 속으로

들어오게 되고, 천문대 망원경이라도 빌리게 된다면, 수억의 별이 있는 큰

우주가 사람의 조그마한 눈 속으로 들어오게 되니, 눈방울이 과연 크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는 사람의 사고 작용에 대해서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우주의 이 끝에서 저 끝까지도(즉 공간을) 생각하여 볼 수 있고, 태양계 생성의

초기로부터 지구 냉각의 말기까지도(즉 시간을) 생각하여 보려 하고 또 할 수

없다. 그런데, 사람이 이와 같은 생각의 범위를 어떻게 넓히고 높이고 깊게

하겠느냐 하면, 별수없이 남의 지식을 빌려 오는 도리밖에 없다. 빌려 오되,

사람의 지식뿐만 아니라, 될 수 있는 대로 여러 사람의 지식을 대량으로

거둬들여야 할 것이다. 현대인 지식뿐만 아니라 옛 사람의 지식도, 신변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지식뿐만 아니라 먼 거리에 떨어져 있는 사람들의 지식도 빌려

와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하지 않고서는 우리의 사고 작용의 도를 넓히고

높이고 하여, 그 활동을 활발하고 왕성하게 할 수가 없다. 여기서 우리는 서적의

필요를 느끼게 된다.

사고 작용을 활발하고 왕성하게 하기 위하여 서적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피차간에 가진 생각을 서로 교환하는 수단으로 언어라는 것을 사용한다.

그런데, 언어는 이것을 이용하기에 힘이 안 들어 용이하고, 또 돈이 안 들어

경제적으로도 유리하지마는 표출하는 순간에 사라지고 말아서 보존하여 두고

되풀이하여 들을 수가 없고, 또 사람의 성량은 한도가 있어서, 먼 곳에까지 들릴

수가 없다. 따라서 아무리 목소리가 큰 웅변가라 할지라도, 그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의 수효는 무한정 많을 수가 없다.

이러한 것을 언어는 시간적 공간적으로 제한을 받는다고 이른다. 이 제한을

어떻게 제거할 수 있느냐 하면, 그것은 곧 자기의 하고 싶은 말을 글자를 써서

기록으로 바꾸어 놓으면 된다. 그러면, 이 기록을 두고두고 볼 수도 있고, 또 먼

거리에 보낼 수도 있게 된다. 그리고 여러 사람이 돌려 볼 수도 있다. 사람이

기록을 만들 필요를 이런 일에서 절실히 느끼었고, 따라서 문자를 발명하여 낸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사람끼리 서로 만나서 회화를

교환하게 되면, 서로 전달하고 싶은 생각을 곡진하게 철저하게 할 수 있는

편리가 있는 반면에, 그 말로써의 표현은 처음부터 끝까지 질서가 잡히고

조리가 밝을 수는 없다. 대개는 그 표현이 산만하고 중복이 있고 군더더기가

붙어서 간결하고 세련된 표현이 되기 어렵다. 이러한 폐단을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이 곧 자기의 생각을 정돈하여 기록에 옮기는 일이다. 이러한 정돈된

생각을 정돈하여 기록에 옮기는 일이다. 이러한 정돈된 생각을 조리를 따져

가며 체계를 이루어 기록하여 내면, 그것이 곧 책으로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개의 경우에 있어서는 무용 유해한 생각을 서적의 형태를 빌려서 만들어 내는

일은 없고,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까지 필요하리라 생각되는 바를 질서 있게

체계 있게, 그리고 조리가 밝게 기록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서적은 사색의

결과요 지식의 창고인 동시에, 사색의 기록이 되며, 지식의 원천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은 빵으로만을 살 수 없다는 말과 같이, 의식주의 생활을 충족시키면

인간의 할 노릇을 다 하였느냐 하면 그런 것은 결코 아니다. 의식주는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는 데는 불가결한 필수 조건이지마는 사람은 그만 못지않게 정신

생활의 신장을 욕구하고 있다. 그리고, 이 정신 상태에만 만족하지 않고, 인간의

생활을 좀더 고도화, 심화, 미화한다. 이것이 곧 이상을 추구하는 정열이다.

그리고 이 정신 생활의 고도화를 실현하려면 각 개인의 인격 수양이라는 것이

절대로 필요하게 된다. 이와 같은 이상의 추구뿐만 아니라, 당면한 현실 생활을

질서 있게 평화스럽게 영위하려는 데도 각 개인의 인격 수양이라는 것이 절대로

필요하다. 왜냐 하면, 이러한 수양 없이는 사람은 자기 본위로만 생각하기 쉽고,

따라서 사회악을 지어 내게도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격이나 덕행의

뒷받침이 없는 지식은 인류 생활의 이익이나 행복을 가져오기는커녕 해독과

불행을 자아내기 쉬운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할 것이다. 따라서 수양에 관한

서적은 사람인 이상 누구에게나 필요한 등불이라고 할 수 있다.

 

 

 

 

 

 

 

 

 

청추 수제

 

 

 

벌레

 

 

 

낮에는 아직도 90 몇 도의 더위가,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의 숨을 턱턱

막는다. 그런데, 어느 틈엔지 제일선에 나선 가을의 전령사가 전등 빛을

따라와서, 그 서늘한 목소리로 노염에 지친 심신을 식혀주고 있다. 그들은

여치요, 베짱이요, 그리고 귀뚜라미들이다.

물론, 이 전령사들이 전초역을 맡아 가지고 훨씬 먼저 온 것으로 매미,

쓰르라미가 있지마는 그들은 소란한 대낮에, 우거진 녹음 속에서 폭양에

항거하면서 부르는 외침이라, 듣는 사람에게 '가을이다'하는 기분을

부어주기에는 아직 부족한 무엇이 있었다. 그렇더니, 이 저녁에 들리는, 정밀

속에 전진하여 오는 소리야말로, '인젠 확실한 가을이로구나!' 하는 영추송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튀어나오게 한다.

 

 

 

 

 

 

전등을 끄고 자리에 누우니 영창이 유난히 환하다. 가느다란 벌레 소리들이

창 밖에 가득 차 흐른다.

'!' 하는 사이에, 나는 내 그림자의 발목을 디디고, 퇴 아래 마당 가운데

섰다. 쳐다보아도 쳐다보아도 눈도 부시지 않은 수정덩이가, 도시의 무수한

전등과 네온사인에 나 보아란 듯이 달려 있다.

저 달이 생긴 뒤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그를 어루만지고 주무르고

꼬집고 하였을까? 원망인들 오죽 쌓였을라고. 그의 얼굴은 따뜻한 듯 서늘한

, 쌀쌀하면서도 다정도 하다.

성결한, 숭고한, 존엄한 그의 위력에 나는 다시 내 자리로 쫓겨 들어왔다.

 

 

 

이슬

 

 

 

이슬은 가을 예술의 주옥편이다. 하기야 여름엔들 이슬이 없으랴? 그러나

청랑 그대로의 가을이라야 더욱 청랑하다.

삽상한 가을 아침에 풀잎마다 꿰어진 이슬 방울들의 영롱도 표현할 말이

막히거니와, 달빛에 젖고 벌레 노래에 엮어진, 그 청신한 진주 떨기야말로 보는

이의 눈을 부시게 할 뿐이다.

 

창공

 

옥에도 티가 있다는데, 가을 하늘에는 얼 하나 없구나! 뉘 솜씨로 물들인

깁일러냐? 남이랄까, 코발트랄까, 푸른 물이 뚝뚝 듣는 듯하구나!

내 언제부터 호수를 사랑하고, 바다를 그리워하고, 대양을 동경하였던가?

심장은 저 창공에 조그마한 조각배가 되어, 한없는 항해를 계속하여 마지않는,

알뜰한 향연을 이 철마다 누리곤 한다.

 

 

 

독서

 

 

 

'서중 자유 천종록'이란, 실리주의에 밝은 중국 사람에게 있을 법한

설법이렷다. 그러나, '속대 발광 욕대규'란 형용이 한 푼의 에누리도 없는 삼복

더위에, 만종록이 당장 무릎 위에 떨어진다기로서니, 독서 삼매에 들어갈 그런

목석연한 사람이 있을라고. 지나친 자아류의 변설인지는 모르나, 그러기에 나는

60일 휴가 동안 제법 독서 줄이나 하였다고 장담할 뱃심을 가지지 못하였다.

먼 산이 불러나온 듯이 다가서더니, 아침 저녁으로 제법 산들산들한 맛이

베적삼 소매 속으로 기어든다. 벌레가, 달이, 이슬이, 창공이 유난스럽게 바빠할

, 이 무딘 마음에도 먼지 앉은 책상 사이로 기어가는 부지런이 부풀어오름을

금할 수 없다.

 

 

 

 

 

 

 

 

 

 

 

 

"방정환편"

 

 

 

 

방정환(1899__1931)

아동 문학가. 호는 소파. 서울 출생. 일본 토요 대학 중퇴. '어린이'라는 말을

만들어 내고 '어린이날'을 만들어 낸 방정환, 그는 한국의 아동 문학을

본격화시켰으며 어린이 보호 운동을 펼쳤다.

3.1운동 때는 독립 운동의 선봉에 섰으며 번안 동화의 소개에도 앞장섰다.

동화, 소년 소설의 창작과 '색동회'의 활동을 주재했던 그는 뛰어난

문장가이기도 했다.

 

 

 

 

 

 

어린이 찬미

 

 

 

어린이가 잠을 잔다. 내 무릎 앞에 편안히 누워서 낮잠을 자고 있다. 볕 좋은 첫여름 조용한 오후이다. 고요하다는 고요한 것을 모두 모아서 그 중 고요한 것만을 골라 가진 것이 어린이의 자는 얼굴이다. 평화라는 평화 중에 그 중 훌륭한 평화만을 골라 가진 것이 어린이의 자는 얼굴이다. 아니 그래도 나는 이 고요한 것은 모두 이 얼굴에서 우러나는 듯싶게 어린이의 잠자는 얼굴은 고요하고 평화스럽다.

 

고운 나비의 날개, 비단 같은 꽃잎, 아니 아니 이 세상에 곱고 보드랍다는

 

아무것으로도 형용할 수가 없이 보드랍고 고운 이 자는 얼굴을 들여다보라.

 

서늘한 두 눈을 가볍게 감고 이렇게 귀를 기울여야 들릴 만큼 가늘게 코를

 

골면서 편안히 잠자는 이 좋은 얼굴을 들여다보라. 우리가 종래에 생각해 오던

 

하느님의 얼굴을 여기서 발견하게 된다.

 

어느 구석에 먼지만큼이나 더러운 티다 있느냐. 어느 곳에 우리가 싫어할 한

 

가지 반 가지나 있느냐. 죄 많은 세상에 나서 죄를 모르고, 부처보다도

 

예수보다도 하늘 뜻 그대로의 산 하느님이 아니고 무엇이랴.

 

아무 죄도 갖지 않는다. 아무 획책도 모른다. 배고프면 먹을 것을 찾고

 

먹어서 부르면 웃고 즐긴다. 싫으면 찡그리고, 아프면 울고, 거기에 무슨 꾸밈이

 

있느냐. 시퍼런 칼을 들고 핍박하여도 맞아서 아프기까지는 방글방글 웃으며

 

대하는 것이다. 이 넓은 세상에 오직 이 이가 있을 뿐이다.

 

오오 어린이는 지금 내 무릎 위에서 잠을 잔다. 더 할 수 없는 착함과 더 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갖추고 그 위에 또 위대한 창조의 힘까지 갖추어 가진 어린

 

하느님이 편안하게도 고요한 잠을 잔다. 옆에서 보는 사람의 마음 속까지

 

생각이 다른 번수한 것에 미칠 틈을 주지 않고 고결하게 순화시켜 준다.

 

나는 지금 성당에 들어간 이상의 경건한 마음으로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사랑스러운 하느님의 자는 얼굴에 예배하고 있다.

 

어린이는 복되다!

 

이 때까지 모든 사람들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복을 준다고 믿어 왔다. 그 복을

 

많이 가져온 이가 어린이다. 그래 그 한없이 많이 가지고 온 복을 우리에게도

 

나누어 준다. 어린이는 순 복덩어리다.

 

마른 잔디에 새풀이 나고 나뭇가지에 새 움이 돋는다고 제일 먼저 기뻐

 

날뛰는 이도 어린이다. 봄이 왔다고 종달새와 함께 노래하는 이도 어린이고

 

꽃이 피었다고 나비와 함께 춤을 추는 이도 어린이다. 별을 보고 좋아하고 달을

 

보고 노래하는 것도 어린이요, 눈 온다고 기뻐 날뛰는 이도 어린이다.

 

산을 좋아하고 바다를 사랑하고 큰 자연의 모든 것을 골고루 좋아하고

 

진정으로 친애하는 이가 어린이요, 태양과 함께 춤추며 사는 이가 어린이다.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기쁨이요, 모든 것이 사랑이요, 또 모든 것이 친한

 

동무다. 자비와 평등과 박애와 환희와 행복과 이 세상 모든 아름다운 것만

 

한없이 많이 가지고 사는 이가 어린이다. 어린이의 살림 그것 그대로가 하늘의

 

뜻이다. 우리에게 주는 하늘의 계시다.

 

어린이의 살림에 친근할 수 있는 사람, 어린이 살림을 자주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배울 수 있는 사람은 그만큼 행복을 얻을 것이다.

 

어린이와 마주 대하고는 우리는 찡그리는 얼굴, 성낸 얼굴, 슬픔 얼굴을 못

 

짓게 된다. 아무리 성질 곱지 못한 사람일지라도 어린이와 얼굴을 마주하고는

 

험상한 얼굴을 못 가질 것이다. 어린이와 마주 앉을 때 적어도 그 잠깐

 

동안은--모르는 중에 마음의 세례를 받고 평상시에 가져 보지 못하는 미소를

 

띈 부드러운 좋은 얼굴을 갖게 된다. 잠깐 동안일망정 그 동안 순화되고

 

깨끗해진다.

 

어떻게든지 우리는 그 동안 순화되는 동안을 자주 가지고 싶다.

 

하루라도 3천 가지 마음 저저분한 세상에서 우리의 맑고도 착하던 마음을

 

얼마나 쉽게 굽어 가려고 하느냐? 그러나 때로는 방울을 흔들면서 참됨이

 

있으라고 일깨워 주고 지시해 주는 어린이의 소리와 행동은 우리에게 큰 구제의

 

길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피곤한 몸으로 일에 절망하고 늘어질 때에 어둠에 빛나는 광명의

 

빛깔이 우리 가슴에 한 줄기 빛을 던지고 새로운 원기와 위안을 주는 것도

 

어린이만이 가진 존귀한 힘이다. 어린이는 슬픔을 모른다. 그리고 음울한 것을

 

싫어한다. 어느 때 보아도 유쾌하고 마음 편하게 논다. 아무 댈 건드려도

 

한없이 가진 기쁨과 행복이 쏟아져 나온다. 기쁨으로 살고 기쁨으로 커 간다.

 

뻗어나가는 힘! 뛰노는 생명의 힘! 그것이 어린이다. 온 인류의 진화와 향상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어린이에게서 기쁨을 빼앗고 어린이 얼굴에다 슬픈 빛을 지어 주는 사람이

 

있다 하면 그보다 더 불행한 사람은 없을 것이요, 그보다 더 큰 죄인은 없을

 

것이다. 어린이의 기쁨을 상해 주어서는 못쓴다. 그리 할 권리도 없고 그리 할

 

자격도 없건마는... 무지한 사람들이 어떻게 많이 어린이들의 얼굴에 슬픈 빛을

 

지어 주었느냐.

 

어린이들의 기쁨을 찾아 주어야 한다. 어린이들의 기쁨을 찾아 주어야 한다.

 

어린이는 아래의 세 가지 세상에서 온통 것을 미화시킨다.

 

이야기 세상--노래의 세상--그림의 세상.

 

어린이 나라에 세 가지 예술이 있다. 어린이들은 아무리 엄격한 현실이라도

 

그것을 이야기로 본다. 그래서 평범한 일도 어린이의 세상에서는 그것이

 

예술화하여 찬란한 미와 흥미를 더하여 가지고 어린이 머릿속에 전개된다. 그래

 

항상 이 세상 모든 것을 아름답게 본다.

 

어린이들은 또 실제에서 경험하지 못한 일을 이야기 세상에서 훌륭히

 

경험한다. 어머니와 할머니 무릎에 앉아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을 때 그는

 

아주 이야기에 동화해 버려서 이야기 세상 속에 들어가서 이야기에 따라 왕자도

 

되고, 고아도 되고, 또 나비도 되고 새도 된다. 그렇게 해서 어린이들은 자기의

 

가진 행복을 더 늘려 가고 기쁨을 더 늘려 가는 것이다.

 

어린이는 모두 시인이다. 본 것 느낀 것을 그대로 노래하는 시인이다. 고운

 

마음을 가지고 어여쁜 눈을 가지고 아름답게 보고 느낀 그것이 아름다운 말로

 

굴러나올 때, 나오는 모두가 시가 되고 노래가 된다. 여름날 성한 나무숲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보고 바람의 어머니가 아들을 보내어 나무를 흔든다 보는

 

것도 그대로 시요, 오색의 찬란한 무지개를 보고 하느님 따님이 오르내리는

 

다리라고 하는 것도 그대로 시다.

 

 

 

 

개인 밤 밝은 달의 검은 점을 보고는

 

 

 

 

저기저기 저 달 속에

 

계수나무 박혔으니

 

금도끼로 찍어 내고

 

옥도끼로 다듬어서

 

초가삼간 잡을 짓고

 

천년만년 살고지고

 

 

 

 

고운 노래를 높이어 이렇게 노래를 부른다. 밝디밝은 달님 속에 계수나무를

 

금도끼 은도끼로 찍어 내고 다듬어서 초가삼간 집을 짓자는 생각이 얼마나 곱고

 

어여쁜 생각의 소지자이냐?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 장수 울고 간다.

 

 

 

 

이러한 고운 노래를 기꺼운 마음으로 소리높여 부를 때, 그들의 고운 넋이

 

얼마나 아름답게 우쭐우쭐 자라갈 것이랴? 위의 두 가지 노래는 어린이 자신의

 

속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고 큰 사람의 지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하나 몇

 

해 몇십 년 동안 어린이들의 나라에서 불러 내려서 어린이의 것이 되어 내려온

 

거기에 그 노래에 스며진 어린이의 생각, 어린이의 살림, 어린이의 넋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어린이는 그림을 좋아한다. 그리고 또 그리기를 좋아한다. 조금도 기교가

 

없는 순진한 예술을 낳는다. 어른의 상투를 재미있게 보았을 때 어린이는

 

몸뚱이보다 큰 상투를 그려 놓는다. 순사의 칼을 이상하게 보았을 때, 어린이는

 

순사보다 더 큰 칼을 그려 놓는다. 얼마나 솔직한 표현이냐. 얼마니 순진한

 

예술이냐.

 

지나간 해 여름이다. 서울 천도교당에서 여섯 살 된 어린이에게 이 집

 

교당(내부 전체를 가리키면서)을 그려 보라 한 일이 있었다. 어린이는 서슴지

 

않고 종이와 붓을 받아들더니 거침없이 네모 번듯한 사각 하나를 큼직하게

 

그려서 나에게 내밀었다. 얼마나 놀라운 일이냐? 그 어린 동무가 그 큰 집에

 

들어앉아서 그 집을 보기는 크고 네모 번듯한 넓은 집이라고밖에 더 달리

 

복잡하게 보지 아니한 것이었다. 얼마나 순진스럽고 솔직한 표현이냐? 거기에

 

아직 더럽혀지지 아니한 이윽고는 큰 예술을 낳아 놀 무서운 참된 힘이 숨어

 

있다고 나는 믿는다. 한 포기 풀을 그릴 때 어린 예술가는 연필을 쥐고

 

거리낌없이 쭉쭉 풀 줄기를 그린다. 그러나 그 한 번에 쭉내어 그은 그 선이

 

얼마나 복잡하고 묘하게 자상한 설명을 주는지 모른다.

 

위대한 예술을 품고 있는 어린이여! 어떻게도 이렇게 자유로운 행복만을

 

갖추어 가졌느냐?

 

어린이는 복되다. 어린이는 복되다. 한이 없는 복을 가진 어린이를 찬미하는

 

동시에 나는 어린이 나라에 가깝게 있을 수 있는 것을 얼마든지 감사한다.

 

 

 

 

 

 

 

 

 

 

 

 

"설의식편"

 

 

 

 

설의식(1900__1954)

 

 

평론가, 언론인. 호는 소오. 함남 출생. 일본 니혼 대학 사학과 졸업. 동아

 

일보 편집 국장, 부사장, 새한 민보 사장 역임.

 

'일장기 말소 사건' 당시의 동아 일보 편집 국장이었던 설의식은

 

민족주의자였으며 그의 날카로운 비평문 속에는 민족주의적인 사관과 지사풍의

 

자세가 담겨 있다. 그의 필치에는 독자들의 마음을 격동시키며 청신하게

 

각성시켜 주는 매력이 있다. 사물을 관조하되 근원으로부터 꿰뚫는 눈이

 

있었으며 거기에 유머와 위트까지 곁들여 그를 뛰어난 에세이스트로 빛나게

 

하였다. 수필집으로 "해방 이전", "화동 시대" 등이 있으며 '유관순 추념문'

 

유명하다.

 

 

 

 

 

헐려 짓는 광화문

 

 

 

헐린다 헐린다 하던 광화문은 마침내 헐리기 시작한다. 총독부 청사 까닭으로 헐리고 정책 덕택으로 다시 짓게 된다. 원래 광화문을 물건이다. 울 줄도 알고, 웃을 줄도 알며, 노할 줄도 알고, 기뻐할 줄도 아는 사람이 아니다. 밟히면 꾸물거리고 죽이면 소리치는 생물이 아니라, 돌과 나무로 만들어진 거물이다.

 

의식 없는 물건이요, 말없는 건물이라 헐고 부수고 끌고 옮기고 하되, 반항도

 

회피도 기뻐도 설워도 아니 한다. 다만, 조선의 하늘과 조선의 땅을 같이한

 

조선의 백성들이 그를 위하여 아까워하고 못 잊어할 뿐이다. 오랜 동안 풍우를

 

같이 겪은 조선의 자손들이 그를 위하여 울어도 보고 설워도 할 뿐이다.

 

석공의 망치가 네 가슴을 두드릴 때 너는 앎이 없으리라마는 뚜닥닥 소리를

 

듣는 사람이 가슴아파하며 역군의 연장이 네 허리를 들출 때에 너는 괴로움이

 

없으리라마는 우지끈 하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 허리 질려 할 것을 네가 과연

 

아느냐 모르느냐?

 

팔도 강산의 석재와 목재 인재의 정수를 뽑아 지은 광화문아! 돌덩이 한 개

 

옮기기에 억만 방울의 피가 흐르고 기왓장 한 개 덮기에 억만 줄기의 눈물이

 

흘렀던 광화문아! 청태 끼인 돌 틈에 이 흔적이 남아 있고 풍우 맞은 기둥에 그

 

자취가 어렸다 하면, 너는 옛 모양 그대로 있어야 네 생명이 있으며 너는 그

 

신세 그대로 무너져야 네 일생을 마칠 것이다.

 

풍우 몇백 년 동안에 충신도 드나들고 역적도 드나들며, 수구당도 드나들고

 

개화당도 드나들던 광화문아! 평화의 사자도 지나고 살벌의 총검도 지나며,

 

일로의 사절도 지나고 청국의 국빈도 지나던 광화문아! 그들을 맞고 그들을

 

보냄이 너의 타고난 천직이며 그 길을 인도하고 그 길을 가리킴이 너의 타고난

 

천명이었다 하면 너는 그 자리 그 곳을 떠나지 말아야 네 생명이 있으며 그

 

방향 그 터전을 옮기지 말아야 네 일생을 마칠 것이다.

 

너의 천명과 너의 천직은 이미 없어진 지 오래였거니와 너의 생명과 너의

 

일생은 헐리는 그 순간에, 옮기는 그 찰나에 마지막으로 없어지고 말았다. 너의

 

마지막 운명을 우리는 알되 너는 모르니, 모르는 너는 모르고 지내려니와 아는

 

우리는 어떻게 지내랴?

 

총독부에서 헐기는 헐되 총독부에서 다시 지어 놓는다 한다. 그러나 다시

 

짓는 그 사람은 상투 짠 옛날 그 사람이 아니며 다시 짓는 그 솜씨는 웅건한

 

옛날의 그 솜씨가 아니다. 하물며 이때 이 사람의 감정과 기분과 이상이야

 

말하여 무엇하랴? 다시 옮기는 그 곳은 북악을 등진 옛날의 그 곳이 아니며

 

다시 옮기는 그 방향은 경복궁을 정면으로 한 옛날의 그 방향이 아니다.

 

서로 보지도 못한 지가 벌써 수년이나 된 경복궁 옛 대궐에는 장림에 남은

 

궂은비가 오락가락한다. 광화문 지붕에서 뚝딱 하는 망치 소리는 장안을 거쳐

 

북악에 부딪친다. 남산에도 부딪친다. 그리고 애달파하는 백의인의 가슴에

 

부딪친다.

 

 

 

 

 

 

돼지의 대덕

 

 

 

금년은 세차 간지로 정해니 풀어서 '돼지해'. 부르기가 거북한 이름이다.

 

더럽고, 못나고, 먹기만 하고, 놀기만 하는 일체의 악명을 온통 돼지에게 돌리어

 

'돼지 같은 놈, 돼지 같은 놈' 하고 거세가 일치하야 나무라는 관계상,

 

어학만으로는 불쾌한 이름으로 정론이 되어 있다.

 

그렇게 불쾌하거든 애초에 쓰지 말 일이다. 쓴다고 할진대, 자 갑자,

 

을축으로부터 임술, 계해에 이르는 육갑의 노선은 수미일관이니 하는 수 없다.

 

요즈음 세태처럼 방편대로 뜯어 고치는 '뒤범벅'일 수는 없다. 성립이 급하다고

 

기정된 수의 법문을 즉석에서 고치는 '입법의원'처럼, 그렇게 간단하게 '정인'

 

호랑이로 고칠 수는 도저히 없는 노릇이다.

 

작년은 병술이니 '', 재작년은 을유니 ''이다. 닭이라 하면 새벽을

 

연상하야 서광을 의미하고, 각성을 우의하야 태동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랬는지,

 

을유의 재작년에 해방의 서광을 보았고 대업의 태동을 보았다.

 

새 날이 밝는다고 닭은 울었지만 아직도 새벽이었던지라. 강산을 얼빤--

 

어둠 속에서 갈피를 못 찾았고 민중은 늦잠이 풀리지 못한 채

 

허둥지둥하였다.''으로 표현하기에 거의 알맞는 정도의 동태였음은 묘한

 

일이었다.

 

''는 영역감에 민첩한 동물이요 영지욕에 탐람한 동물이다. 그러므로 자령을

 

편수하기에 사력을 다하여 덮어놓고 배타를 일삼아 짖기를 잘 한다. 침경은

 

고사하고 접경도 못 할 정도로 날뛰고 싸움을 잘 한다. 냄새도 잘 맡지만

 

꼬리도 잘 흔든다. 한 술 밥에도 꼬리를 흔들고 한 덩이 고기에도 아양을

 

부린다... 이렇게 쓰다가 보니 '' 이야기가 아니라 작년 1년간 걸어온 우리

 

자신의 자화상 같아서 붓이 저절로 멈추어진다. 자괴와 자책을 느끼는

 

까닭이다.

 

을유가 그렇고, 병술이 그런지라, 정해의 금년은 무엇을 암시하는가? 혹은

 

무엇을 계시하는가? 엉터리없는 ''자에다 연을 달아서 돼지의 대덕을 일컬어

 

보자.

 

돼지라고 더러운 것을 자진하여 즐겨할 이치는 천만에 없겠다. 집이거나

 

자리거나 사람들이 더럽게 하여 주니까 그저 순수할 뿐이겠다. 매사에 까다롭지

 

않은 태음적 기질이 유달리 드셀 뿐이다. 미추와 편부에 대한 둔감이라

 

하기보다도 그를 초월한 태연자약이니 말하자면 포용 중에도 대포용이다.

 

'하해는 불관오독지수'라 하야 하해가 가진 관용의 지덕을 일컫거니와 이 같은

 

논법으로는 돼지의 그 점이 실상 돼지의 미덕인 것이다. 그런고로,

 

나무라기보다도 차라리 이 잡을 나위도 없이 광막한 돼지의 대덕을 우리도

 

본떠서 금년 1년은 태음적으로 나갈 수 없을까? 숙시라 할 것 없이, 숙비라 할

 

것 없이, 대포용, 대둔감으로 거세정조를 한입에 집어 삼키고 상하좌우를 한

 

팔에 끼어 품는, 그러되 태연자약하는 그러한 지도자가 과연 없을 것인가?

 

해년을 위하여 우리는 이것을 대망한다.

 

먹기만 하고 놀기만 하는 돼지의 살림을 ''으로 지목하야 모두들 나무라기만

 

한다. '제 똥 구린 줄 모른다'는 속담도 있지마는 책기엔 불충이요 책인엔 충인

 

식으로 책돈에는 어찌도 그리 충실한가? 먹기만 하고 놀기만 하여서 그야말로

 

돼지같이 살진 사람이 인세에는 과연 없는가?

 

돼지는 놀고 먹을지언정 그래도 최후는 '살신성인'의 대희생을 천성으로

 

각오한 짐승이다. 사람에게 이 각오가 있는가? 중생의 번영을 위하여 자신의

 

1명을 버리는 희생, 그를 감수하는 대덕을 가진 자 과연 몇이나 되는가?

 

아는 돼지가 있어서 만일 이 수록을 읽는다면 독파 지차에 빙그레 웃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방성하야 대곡할 것이다.

 

돼지를 못났다고 하는 것은 아마 그 체국을 가라킴이리라. 특히 없는 듯한

 

짧은 목과 명목만의 그 꼬리를 가리킴이리라. 미상불 '볼품'으로는 낙제다. 거듭

 

말하거니와 오직 '볼품이 없을 뿐'이다. 이 볼품 때문에 못났다고 하는 것은

 

볼품만으로 발라 맞추려는 덜 익은 사람들의 덜 익은 말이다.

 

볼품 있는 꼬리로서는 금류에 공작이 있고 수족에 여우가 있다. 필자는

 

공작의 꼬리를 미워한다. 그 오만불손한 꼬리! 유한 마담의 부화와 같은 그

 

잡색의 어지러운 꼬리, 시대가 시대인만큼 형식의 장식에 흐르는 값싼 무지개적

 

환몽의 상징 같은 그 꼬리를 필자는 즐기지 않는다. 더구나 간사하고 요망한

 

여우적 꼬리, 하늘거리고 날름거리고, 이리로 알랑, 저리로 달랑거리는 그

 

환술적 꼬리는 애초에 불취다.

 

돼지에게 있어서는 볼품 있는 꼬리가 본질적으로 필요치 않았다. 볼품보다는

 

'속품'으로 살아가는 돼지의 처세관으로도 그러하거니와, 청빈에 자안하고

 

누옥에 자적하는 그 심법상으로도 아도에 필요한 흔드는 꼬리의 소유가 필요치

 

않았다. 배추동물로서의 지체와 명분을 확보하기 위하여 꼬리의 명목만 세우면

 

그만이다. 이로써 못났다 할진대, 차라리 명분 있는 속품의 못난이가 될지언정

 

신기루 같은 볼품의 잘난 이는 안 되겠다! 하는 것이 돼지의 소신이요 또

 

본회인 것이다. 사람으로서 돼지의 이같은 심경에 공명하는 자 그 얼마나 될

 

것인고!

 

돼지는 목이 짧다. 사뭇 없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짧다. 없기론

 

생선이 1위여 포유족엔 아마 돼지가 상석일 것이다. 그러나 목이 짧으니까

 

반드시 못난 것이요, 길어서 잘났다는 논법은 어디에 있는가?

 

목이 길기론 기린이 수석이다. 그런 실상 길어서 결이다. 그 길다란 목을

 

늘이어 좌로 우로, 혹은 전후로 상하로,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는 그 줏대 없는

 

겁쟁이 태도는 보기에 어떠한가? 이리 살피고 저리 살피면서 어슬렁어슬렁

 

걸어가는 그 보조는 풍신 좋은 체구와는 전연 딴판이다. 이로써 기린 자신에

 

욕은 될지언정 자랑될 이치, 천만에 없겠다.

 

돼지는 다행으로 짧아서 곧은 목이다. 고집은 셀지 모르나 좌고우시의 추태는

 

있을 수 없다. 목표를 향하여 일직선으로 직진할 뿐이다. 그러기에

 

'저돌지용'이라 하야 부탕도화의 용과 검산 도수를 초개같이 보는 유진무퇴의

 

용은 오직 돼지에게 있는 것이다.

 

정해의 금년은 돼지의 대덕을 본뜨자. 대포용, 대희생, 대용맹으로 신지를

 

향하여 일로로 직진하자!

 

 

 

 

 

 

수천석두水穿石頭

 

 

 

중학 시대의 도화, 습자는 으레 을이었다. 그만큼 나는 그림과 글씨에 재주가

 

없었다. 재주는 없었으나, 취미는 또 무던하여서 서, 화를 즐겼다. 기능의

 

부족을 감상으로써 보충하려는 심산인지도 모른다.

 

하여간 이와 같은 심경으로 그림을 모았다. 원래 힘 부족이라 고급품은

 

생염도 못 하였고 그저 너저분한 고물상을 뒤졌을 뿐이다. 그나마도 만만한

 

것은 또 구복을 위해서 팔기도 하였다. 두제의 문구가 남아 있는 현판 중의

 

하나이니 추사의 글씨다. 이것만은 팔 수가 없어서 서재에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글씨 때문만이 아니라, 그 내력에 있어서 심금에 울리는 귀중한 마디가

 

있는 까닭이다. 한문이나마 이 글을 쓰는 핑계도 여기에 있다.

 

수천석두--물이 돌머리를 뚫는다. 이 문구의 출현은 함경도가 본향이 아닐까

 

싶다. 내 조상과도 관련이 있는 듯싶어서 유다른 감흥을 느끼는 것이다.

 

이유는? 그 유래를 풀기 위하여 이야기는 옛날로 올라간다.

 

'문불과장의요, 무불과첨사'--서북인에 대한 이 같은 악정을 뒤집기 위해서

 

일어선 홍경래란은 누구나 다 아는 이조사상 뚜렷한 자취다. 옛날에는 역적으로

 

몰았거니와, 오늘에 있어서는 시대적 감각에 피가 통하는 혁명의 선구적 의의를

 

가지는 것이닌 번거롭게 따질 필요도 없겠다.

 

이 혁명의 풍운아가 동지를 얻으려고 서북을 유력하여 관북에 이르렀다.

 

함북과 함남 경계선에는 마천령이란 산이 있었다. 그 산상에 지었다고 전하는

 

시에

 

'마천령상파운좌, 만학천봉차제조'

 

마천령 꼭대기에 구름을 헤치고 앉았으니 만학천봉이 차례로 조회한다.

 

시구에 나타난 그의 심혼에는 이미 제왕적 기백이 보였던 것이다. 그는

 

무용뿐이 아니라 시문에도 이같이 능숙하여 곳곳에 심회를 남겼던 것이다.

 

함남의 수부, 함흥에는 반룡산 기슭으로 흐르는 성천강이 있으니 '함흥차사'

 

이름 있는 함남의 큰 강이다. 이 반룡산 꼭대기에 앉아서 지은 시--

 

'산욕도강강두립, 수난천석석두회'

 

산은 강을 뛰려고 강머리에 섰는데, 물은 돌을 뚫기 어려워 돌머리를 돌더라.

 

1구는 붕정을 달리는 의취가 있으나 제 2구이 ''가에 이르러 이미

 

지기가 부족하였다. 이는 실패가 암시된 일종의 언참이기도 하였다. '수난...'

 

대신에 '수장천석--물이 장차 돌을 뚫으려고...' 이렇게 되었다면--그 같은 시가

 

튀어나올 수 있도록 그의 저력이 절대하였다면 성공하였을 것이라고 후세의

 

평은 애달파하는 것이다.

 

이 사실의 확, 불확은 모르겠다. 그러나 함남 주읍에는 널리 퍼진 전설이니,

 

관북 지방에서 유배 생활을 겪은 추사는 이 글을 따서 이 글씨를 썼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굴러서 오늘에 내 서재를 단속하고, 그리고 나로하여금 이 글을

 

쓰게 한 것이다.

 

'수천석두'--물이 돌을 뚫는다. 아마 이것은 '불능'에 속할 것이다. 맹자는

 

'협태산이초북해'를 불능의 일례로 들었다. 난중의 난사를 가리켜 '하늘의

 

별따기'라고 우리의 속언은 전하여 온다. '수천석두'도 그만 못지않게 지난사요

 

불능사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그와 같은 ''

 

있을 수 있다. 그 같은 '의욕', 그 같은 '신념', 그 같은 '용기'는 있을 수

 

있고 또 있어야 하는 것이다.

 

'기함동서구, 각축오대주'--이 같은 일이 있을 수 없으나, 이와 같은 노래가

 

있었기 때문에 중국의 1차 혁명은 '동자군'의 피로써 계승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의욕이 있어도 되기가 어려운 것이 세상사거든, 하물며 당초부터 의욕도

 

없음이랴? 가능, 불가능의 수판만 따져 가지고야 어디서 용기가 생길 것이냐?

 

가능하면 하고 가능치 못하면 그만둔다--이와 같은 심법으로야 무엇이 얻어질

 

것이냐? 얻어진들 몇 푼짜리가 될 것이냐?

 

'수천석두!' '수난천석두회'가 아니라 '수장천석두회' 그렇다! 의욕과, 신념과,

 

용기를 가지자. 희망으로 맞아야 할 신춘에 이와 같은 희망을 가지자.

 

'수천석두'의 희망을 가지자.

 

얼마나 어려운 일인고! 그러나 또 얼마나 보람 있는 일일 것인고! '수천석두!'

 

아침 저녁으로 이것을 바라보는 나는 저절로 젊어지는 것이다. 늙어질 수가

 

없는 것이다.

 

 

 

 

 

 

 

 

 

 

 

"심훈편"

 

 

 

 

심훈(1901__1936)

소설가, 시인. 본명은 대섭. 서울 출생. 상해 원강 대학 중퇴. 중앙 일보 학예

부장 역임.

오늘날도 널리 읽히는 농촌 계몽 소설 "상록수"의 작가 심훈. 그는 당시의

선각자들이 거의 그러했듯이 '조선 만중의 구원'을 늘 염원했던 민족주의자였다.

3.1운동에 참가하여 복역한 후 상해에서 망명 생활을 했고 귀국 후 신문 기자

생활을 하다가 영화에 투신, 1926년에 "먼동이 틀 때"를 각색, 감독하는

정력적인 활동을 보여 주었다.

"상록수"는 충남 당진으로 잠적하여 쓴 것으로 동아 일보 현상모집의

당선작인데, 당시의 시대상을 여실히 반영시켜 크게 반향을 일으켰던 작품이다.

 

 

 

 

 

 

7월의 바다

 

 

 

흰 구름이 벽공에다 만물상을 초 잡는 그 하늘을 우러러보아도, 맥파만경에 굼실거리는 청청한 들판을 내려다보아도 백주의 우울을 참기 어려운 어느 날 오후였다.

 

나는 조그만 범선 한 척을 바다 위에 띄웠다. 붉은 돛을 달고 바다 한복판까지 와서는 노도 젓지 않고 키도 잡지 않았다. 다만 바람에 맡겨 떠내려가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나는 뱃전에 턱을 괴고 앉아서 부유와 같은 인생의 운명을 생각하였다. 까닭 모르고 살아가는 내 몸에도 조만간 닥쳐올 죽음의 허무를 미리다가 탄식하였다. 서녘 하늘로부터는 비를 머금은 구름이 몰려 들어온다. 그 검은 구름장은 시름없이 떨어뜨린 내 머리 위를 덮어 누르려 한다. 배는 아산만 한가운데에 떠 있는 '가치내'라는 조그만 섬에 와 닿았다. 멀리서 보면 송아지가 누운 것만한 절해의 고도다.

 

나는 굴 껍데기가 닥지닥지 달라붙은 바위를 짚고 내렸다. 조수가 다녀나간 자취가 뚜렷한 백사장에는 새우를 말리느라고 공석을 서너 잎이나 깔아 놓았다. 꼴뚜기와 밴댕이 같은 조그만 생선이 섞인 것을 해쳐 보려니,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이 외로운 섬 속에도 사람이 사나 보다.'

 

나는 탐험이나 하듯이 길로 우거진 잡초를 헤치고 인가를 찾아 섬 가운데로 들어갔다.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잡 한 채 고기 잡는 아버지와 철 모르는 딸 있다.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늙은 아비 홀로 두고 영영 어디 갔느냐?

 

어려서 부르던 노래를 휘파람 섞어 부르며, 뱀이 지나간 자국만치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언덕으로 올라갔다. 과연 집이 있다! 하늘을 꿰뚫을 듯 열 길이나 까마아득하게 솟아오른 백양목 그늘 속에서 게딱지 같은 오막살이 한 채를 발견하였다.

 

'저기서 사람이 살다니 무얼 먹고 살까?'

 

나는 단장을 휘두르며 내려갔다. 추녀와 땅바닥이 마주 닿은 듯한 그나마도 다 쓰러져 가는 초가집 속에서 60도 넘어 보이는 노파가 나왔다. 쑥방석 같은 머리를 쓰다듬어 올리면서 맨발로 나오더니,

 

", 어디서 사시는 양반인데... 이 섬 구석엘 이렇게 찾아 오셨시유?"

 

하고, 바로 이웃집에서 살던 사람이나 만난 득 얼굴의 주름살을 펴면서 나를 반긴다.

 

"여기서 혼자 사우?"

 

나는 그 노파가 말을 잊어버리지 않은 것을 이상히 여길 지경이었다.

 

"아들허구 손주새끼허구 살어유."

 

"아들을 어디 갔소?"

 

"중선으로 준치 잡으로 갔슈."

 

노파는 흐릿한 눈으로 아득한 바다 저편을 건너다본다. 그 정기 없는 눈동자에는 무한한 고적에 속절없이 시들어 가는 인생의 낙조가 비치지 않는가? 백양목 윗가지에는 바람이 씽씽 분다. 이름도 모를 물새가 흰 날개를 펼치고 그 위를 난다.

 

"쓸쓸해서 어떻게 사우?"

 

나는 저절로 한숨이 쉬어졌다.

 

"여북해야 인간 구경두 못 허구 이런 데서 사나유. 농사처가 떨어져서 죽지 못해 이리루 왔지유."

 

나는 차마 더 묻기 어려워 머리를 숙이고 돌아서는데, 노파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침침한 부엌 속으로 들어간다. 수숫대로 엮은 울타리 밖에는 마늘과 파를 심었다. 북채만한 팟종에는 씨가 앉아 알록달록한 나비가 쌍쌍이 날아다닌다. 조금 있자,

 

"이거나 하나 맛보시유."

 

하는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돌아다보니 노파는 손바닥만한 꽃게 하나를 들고 나왔다. 내 어찌 불쌍한 노파의 친절을 물리치랴. 나는 마당 구석에 가 쭈그리고 앉아서 짭짤한 삶은 게발을 맛있게 뜯었다. 그대로 돌아 설 수가 없어 백동전 한 푼을 꺼내어, 한사코 아니 받는 노파의 손에 쥐어 주고 나왔다.

 

"아아, 인생의 쓸쓸한 자태여!"

 

나는 속으로 부르짖으며 그 집 모퉁이를 돌아 나오려는데, 등 뒤에서,

 

"응아, 응아"

 

어린애 우는 소리가 들렸다.

 

'어린애가 우는구나? 그 늙은이의 손주가 우나 보다.'

 

나는 발을 멈추었다. 불현듯 그 어린애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한번 안아보고 싶은 충동을 억제할 수 없어 발을 돌렸다. 토굴 속 같은 방 속에서 어머니의 젖가슴에 달라붙어 젖을 빠는 것은 이 집의 옥동자였다. 그 침침한 흙방 속이 이 어린애의 흰 살빛으로 환하게 밝은 듯,

 

"나 좀 안아 봅시다."

 

나는 손을 내밀었다. 살이 삐죽삐죽 나오는 배옷 한 벌로 앞을 가린 젊은 어머니는 부끄러워 머리를 들지 못한다. 노파는,

 

"이 더러운 걸..."

 

하며, 손주를 젖에서 떼어나간 내 팔에 안겨 준다.

 

어린것은 젖살이 포동포동하게 오른 사지를 바둥거리며 내 얼굴을 말끄러미 쳐다본다. 울지도 않고 낯도 가리지 않고 반가운 인사나 하는 듯 무어라고 옹알거린다. 고사리 같은 손가락을 제 힘껏 감아쥐고는 놓지를 않는다. 까만 눈동자의 별같이 영롱함이여! 조그만 코와 입 모습의 예쁨이여!

 

나는 가슴에 옮겨드는 어린 생명의 따스한 체온에서 떨어지기 어려웠다. 이 고도의 어린 주인을 떼치고 차마 발길을 돌릴 수 없었다. 바다 위에는 저녁 바람이 일어 성낸 물결은 바윗돌에 철썩철썩 부딪친다. 내 얼굴에는 찬 빗발이 뿌리고 백양목은 한층 처창한 소리를 내며 회색빛 하늘을 비질한다.

 

내가 그 집에서 나오자 어린애는 다시 울었다. 걸어오면서도, 배를 타면서도, 등 뒤에서 '응아, 응아' 하는 소리가 바람결을 따라 들렸다. 머리 위에서 날으는 물새의 소리조차 그 어린애의 애처로운 울음 소리인 듯.

 

'그 어린애가 잘 자라는가?'

 

'그들은 그저 그 섬 속에서 사는가?'

 

그 뒤로 나는 바람 부는 아침, 눈 오는 밤에 몇 번이나 베갯머리에서 이름도 모르는 그 어린 아이가 병없이 자라기를 빌어 주었다. 그 애처로운 울음 소리가 언제까지나 내 귓바퀴를 돌며 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 뒤로 1년이란 세월이 꿈결같이 흘렀다. 며칠 전에 나는 마을 젊은 친구들과 함께 숭어 잡는 구경을 하려고 나갔다가 '가치내' 섬으로 뱃머리를 돌렸다. 그 노파와 젊은 며느리는 전보다도 갑절이나 반가이 나를 맞아 주었다. 그들은 1년에 한두 번 사람 구경을 하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인듯... 그러나 어린애는 눈에 띄지 않는다.

 

"어린애 잘 자라우?"

 

하고 묻는데, 때묻은 적삼 하나만 걸친 발가숭이가 토방으로 엉금엉금 기어나오지 않는가? 작년에 내가 대접을 받은 꽃게 발을 뜯어먹으며, 두 눈을 깜박깜박 하고 우리 일행을 쳐다본다.

 

"오오, 네가 벌써 이렇게 컸구나."

 

나는 그 어린애를 끌어안고 해변을 거닐었다. 어린애는 1년 동안에 몰라보도록 컸다.

 

오래 안아 주기가 힘이 들 만치나 무거웠다. 그 날은 바다 위에 일점풍도 없었다. 성자의 임종과 같이 수평선 너머로 고요히 넘어가는 태양을 바라보며, 나는 석조에 타는 붉은 물결을 멀리 보며 느꼈다. 이 외로운 섬 속, 쓰러져 가는 오막살이 교목과 상록수와 같이 장성하는 것을 생각할 때, 한없이 쓸쓸한 우리의 등 뒤가 든든해지는 것같이 느껴지지 않는가!

 

 

 

 

 

 

조선의 영웅

 

 

 

우리집과 등성이 하나를 격한 야학당에서 종치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집 편으로 바람이 불어 오는 저녁에는 아이들이 떼를 지어 모여가는 소리와, 아홉 시 반이면 파해서 흩어져 가며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틀에 한 번쯤은 보던 책이나 들었던 붓을 던지고 야학당으로 가서 둘러보고 오는데 금년에는 토담으로 쌓은 것이나마 새로 지은 야학당으로 가서 둘러보고 오는데 금년에는 토담으로 쌓은 것이나마 새로 지은 야학당에서 남녀 아동들이 80명이나 들어와서 세 반에 나누어 가르친다. 물론 5리 밖에 있는 보통 학교에도 입학하지 못하는 극빈자의 자녀들인데 선생들도 또한 보교를 졸업한 정도의

 

청년들로, 밤에 가마니때기라도 치지 않으면 잔돈 푼 구경도 할 수 없는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네들은 시간과 집안 살림을 희생하고 하루 저녁도 빠지지 않고 와서는 교편을 잡고 아이들과 저녁내 입씨름을 한다. 그 중에는 겨울철에 보리밥을 먹고 보리도 떨어지면 시래기 죽을 끓여 먹고 와서는 이밥이나 두둑이 먹고 온 듯이 목소리를 높여 글을 가르친다. 서너 시간 동안이나 칠판 밑에 꼿꼿이 서서 선머슴 아이들과 소견 좁은 계집애들과 아귀다툼을 하고 나면 상체의 피가 다리로 내려 몰리고 허기가 심해져서 나중에는 아이들의 얼굴이 돋보기 안경을 쓰고 보는 듯하다고 한다. 그러한 술회를 들을 때, 그네들을 직접으로 도와 줄 시간과 자유가 아울러 없는 나로서는 양심의 고통을 느낄 때가 많다. 표면에 나서서 행동하지 못하고 배후에서 동정자나 후원자 노릇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기 때문에 곁의 사람이 엿보지 못할 고민이 있다. 그네들의 속으로 벗고 뛰어들어서 동고동락을 하지 못하는 곳에 시대의 기형아인 창백한 인텔리로서의 탄식이 있다.

 

 

 

나는 농촌을 제재로 한 작품을 두어 편이나 썼다. 그러나 나 자신은 농민도 아니요 농촌 운동자도 아니다. 이른바, 작가는 자연과 인물을 보고 느낀 대로 스케치판에 옮기는 화가와 같이 아무것에도 구애되지 않는 자유로운 처지에 몸을 두어 오직 관조의 세계에만 살아야 하는 종류의 인간인지는 모른다. 또는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현실 세계에 입각해서 전적 존재의 의의를 방불케 하는 재주가 예술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물 위에 기름처럼 떠돌아다니는 예술가의 무리는, 실사회에 있어서 한 군데도 쓸모가 없는 부유층에 속한다. 너무나 고답적이요 비생산적이어서 몹시 거추장스러운 존재다. 시각의 어느 한 모퉁이에서 호의로 바라본다면 세속의 누를 떨어 버리고 오색 구름을 타고서 고왕독맥하려는 기개가 부러울 것도 같으나 기실은 단 하루도 입에 거미줄을 치고는 살지 못하는 유약한 인간이다.

 

'귀족들이 좀더 젠체하고 뽐내지 못하는 것은 저희들도 측간에 오르기 때문이다.'라고 뾰족한 소리를 한 개천의 말이 생각나거니와 예술가라고 결코 특수 부락의 백성도 아니요, 태평성대의 일민도 아닌 것이다.

 

적지않이 탈선이 되었지만 백 가지 천 가지 골이 아픈 이론보다도 한 가지나마 실행하는 사람을 숭앙하고 싶다. 살살 입살 발림만 하고 턱 밑의 먼지만 톡톡 털고 앉은 백 명의 이론가, 천 명의 예술가보다도 우리에게 단한 사람의 농촌 청년이 소중하다. 시래기 죽을 먹고 겨우내 '가갸 거겨'를 가르치는 것을 천직이나, 의무로 여기는 순진한 계몽 운동자는 히틀러, 뭇솔리니만 못지않은 조선의 영웅이다.

 

나는 영웅을 숭배하기는커녕 그 얼굴에 침을 뱉고자 하는 자이다. 그러나 이 농촌의 소영웅들 앞에서는 머리를 들지 못한다. 그네들을 쳐다볼 면목이 없기 때문이다.

 

 

 

 

 

 

 

 

 

 

 

 

 

 

 

"김진섭편"

 

 

 

 

김진섭(1930__?)

수필가, 독문 학자. 호는 청천. 전남 목포 출생. 일본 호세이 대학 졸업.

서울대 교수. 6.25사변 때 납북됨. 저서로 "인생예찬" "생활인의 철학" 등이

있다.

한국 수필 문학의 개척자. 생활의 예지와 감흥을 가지 넘치는 생활 철학의

 

 

발견으로까지 발전시켰다.

 

 

 

 

 

 

매화찬

 

 

 

나는 매화를 볼 때마다 항상 말할 수 없이 놀라운 감정에 붙들리고야 마는 것을 어찌할 수 없으니, 왜냐 하면, 첫째로 그것은 추위를 타지 않고 구태여 한풍을 택해서 피기 때문이요, 둘째로 그것은 그럼으로써 초지상적인, 비현세적인 인상을 내 마음속에 던져 주기 때문이다.

 

가령 우리가 혹은 눈 가운데 완전히 동화된 매화를 보고, 혹은 찬달 아래 처연히 조응된 매화를 보게 될 때, 우리는 과연 매화가 사군자의 필두로 꼽히는 이유를 잘 알 수 있겠지만, 적설과 하늘을 대비적 배경으로 삼은 다음에라야만 고요히 피는 이 꽃의 한없이 장엄하고 숭고한 기세에는, 친화한 동감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굴복감을 우리는 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니, 매화는 확실히 춘풍의 태탕한 계절에 난만히 피는 농염한 백화와는 달라, 현세적인, 향락적인 꽃이 아님은 물론이요, 이 꽃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가장 초고하고 견개한 꽃이 아니면 안 될 것이다.

 

모든 것이 얼어붙어서 찬 돌같이 딱딱한 엄동, 모든 풀, 온갖 나무가 모조리 눈을 굳이 감고 추위에 몸을 떨고 있을 즈음, 어떠한 자도 꽃을 찾을 리 없고 생동을 요구할 바 없을 이 때에, 이 살을 저미는 듯한 한기를 한기로 여기지 않고 쉽사리 피는 매화, 이는 실로 한때를 앞서서 모든 신산을 신산으로 여기지 않는 선구자의 영혼에서 피어오르는 꽃이랄까?

 

그 꽃이 청초하고 가향이 넘칠 뿐 아니라, 기품과 아취가 비할 곳 없는 것도 선구자적 성격과 상통하거니와 그 인내와 그 패기와 그 신산에서 결과된 매실은 선구자로서의 고충을 흠뻑 상징함이겠고, 말할 수 없이 신산한 맛을 극하고 있는 것마저 선구자다워 재미있다.

 

매화가 조춘 만화의 괴로서 엄한을 두려워하지 않고 발화하는 것은, 그 수성 자체가 비할 수 없이 강인한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이 동양 고유의 수종이 그 가지를 풍부하게 뻗치고 번무하는 상태를 보더라도, 이 나무가 다른 과수에 비해서 얼마나 왕성한 식물인가 하는 것을 알 수 있거니와, 그러므로 또한 매실이 그 독특한 산미와 특종의 성분을 가지고 고래로 귀중한 의약의 자료가 되어 효험이 현저한 것도 마땅한 일이라 할밖에 없다.

 

여하간에 나는 매화만큼 동양적인 인상을 주는 꽃을 달리 알지 못한다. 특히 영춘 관상용으로 재배되는 분매에는 담담한 가운데 창연한 고전미가 보이는 것이 말할 수 없이 청고해서 좋다.

 

 

 

 

 

 

생활인의 철학

 

 

 

철학을 철학자의 전유물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한 일은 아니다. 왜냐 하면 그만큼 철학은 오늘날 그 본래의 사명--사람에게 인생의 지식을 교시하려 하는 의도를 거의 방기하여 버렸고, 철학자는 속세와 절연하고 관외에 은둔하여 고일한 고독경에서 오로지 자기의 담론에만 경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철학과 철학자가 생활의 지각을 완전히 상실하여 버렸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그러므로 생활 속에서 부단히 인생의 예지를 추구하는 현대 중국의 '양식의 철학자' 임어당이 일찍이 '내가 이마누엘 칸트를 읽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석 장 이상 더 읽을 수 있었을 적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는데 이 말은 논리적 사고가 과도의 발달을 성수하고 전문적 어법이 극도로 분화한 필연의 결과로서, 철학이 정치, 경제보다도 훨씬 후면에 퇴거되어, 평상인은 조금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철학의 측면을 통과하고 있는 현대 문명의 기묘한 현상을 지적한 것으로서 사실상 오늘에 있어서는 교육이 있는 사람들도, 대개는 철학이 있으나 없으나 별로 상관이 없는 대표적 과제가 되어 있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나는 물론 여기서 소위 사변적, 논리적, 학문적 철학자의 철학을 비난, 공격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나는 오직 이러한 체계적인 철학에 대해 인생의 지식이 되는 철학을 유지해 주는 현철한 일군의 철학자가 있었던 것을 알고 있으며, 그러한 의미에서 철학자만이 철학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요, 어느 정도로 인간적 통찰력과 사물에 해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는 이상, 모든 생활인은 그 특유의 인생관, 세계관, 즉 통속적 의미에서의 철학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다음에 말하고자 함에 불과하다.

 

철학자에게 철학이 필요한 것과 같이 속인에게도 철학은 필요하다. 왜 그러냐 하면, 한 가지 물건을 사는 데에 그 사람의 취미가 나타나는 것같이 친구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도 그 사람의 세계관, 즉 철학은 개재되어야 할 것이요, 자기의 직업을 결정하는 경우에도 그 근본적 계기가 되는 것은 물론, 그 사람의 인생관이 아니어서는 아니 되겠기 때문이다. 가령, 우리들이 결혼이라는 것을 한번 생각해 볼 때, 한 남자로서 혹은 여자로서 상대자를 물색함에 있어서 실로 철학은 우리들의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는 훨씬 지배적이고도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됨을 알 수 있을 것이요, 우리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생활을 설계하느냐 하는 것도 결국은 넓은 의미에서 우리들이 부지중에 채택한 철학에 의거하여 실행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들이 생활권 내에 취하게 되는 모든 행동의 근저에는 일반적으로 미학적 내지 윤리적 가치 의식이 횡재하여 있는 것이니, 생활인의 모든 행동은 반드시 어느 종류의 의미와 목적에 대한 관념을 내포하고 있다. 모든 사람은 소위 이상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고, 그러한 이상이 각인의 행동과 운명의 척도가 되고 목표가 되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이상이란 요컨대 그 사람의 철학적 관점을 말하는 것이며 그 사람의 일반적 세계관과 인생관에서 온 규범의 한 파생체를 말하는 것이다.

 

'내 마음이 선택의 주인공이 된 이래 그것이 그대를 천 사람 속에서 추려 내었다.'고 햄릿은 그의 우인 호레이쇼에게 말하였다. 확실히 우인의 선택은 임의로운 의지적 행동이라고는 하나, 그러나 그것은 인생 철학에 기초를 두는 한, 이상의 지배를 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햄릿은 그에 대하여 가치가 있는 인격체이며, '천지지간만물'에 대한 이해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리하여 이 인생 생활을 저 천재적이나 극히 불운한 정말의 공자보다도 그 근본에 있어서 보다 잘 통어할 줄 아는 까닭으로, 호레이쇼를 우인으로서 택한 것이다.

 

비단 이뿐이 아니오, 모든 종류의 심의 활동은 가치관의 지도를 받아 가며 부단히,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운명을 형성하여 가는 것이나, 적어도 동물적 생활의 우매성을 초극한 모든 사람은 좋든 궂든 하나의 철학을 갖는 것이다. 사람은 대개 이 인생에 대하여 무엇을 요구해야 할까를 알며, 그의 염원이 어느 정도로 당위와 일치하며, 혹은 배치될지를 아는 것이니, 이것은 실로 사람이 인간 생활의 의의에 대하여 사유하는 능력을 갖기 때문에 오직 가능할 수 있는 것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생활 철학은 우주 철학의 일부분으로서 통상적인 생활인과 전문적인 철학자와의 세계관 사이에는, 말하자면 소크라테스와 트라지엔의 목양자의 사이에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현저한 구별과 거리가 있을 것은 물론이나, 많은 문제에 대하여 그 특유의 견해를 갖는 점에서는 동일한 철학자인 것이다.

 

나는 흔히 철학자에게서 생활에 대한 예지의 부족을 인식하고 크게 놀라는 반면에는, 농산어촌의 백성 또는 일개의 부녀자에게 철학적인 달관을 발견하여 깊이 머리를 숙이는 일이 불소함을 알고 있다. 생활인으로서의 나에게는 필부필부의 생활 체험에서 우러난 소박, 진실한 안식이 고명한 철학의 난해한 글보다는 훨씬 맛이 있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원래 현실적 정세를 파악하고 투시하는 예민한 감각과 명확한 사고력은 혹종의 여자에 있어서 보다 더 발달되어 있으므로 나는 흔히 현실을 말하고 생활을 하소연하는 부녀자의 아름다운 음성에 경청하여, 그 가운데서 또한 많은 가지가지의 생활 철학을 발견하는 열락은 결코 적은 것이 아니다.

 

하나의 좋은 경구는 한 권의 담론서보다 나은 것이다. 그리하여 언제나 인생의 지식인 철학의 진의를 전승하는 현철이 존재한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그래서 이러한 무명의 현철은 사실상 많은 생활인의 머릿속에 숨어 있는 것이다. 생활의 예지--이것이 곧 생활인의 귀중한 철학이다.

 

 

 

 

 

 

병에 대하여

 

 

 

문득 어쩐지 몸에 이상이 있음을 느낀다. 몇 차례씩이나 근심스러이 손을 머리에 대어 본다. 그렇다면 머리도 좀 더운 것 같다. 드디어 병은 찾아 온 것일까? 한동안 앓지 않았으니 병도 올 때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약간 억울하기는 하나 조용히 누워 몸을 풀어 버리는 것도 무방하겠지. 진실로 병은 나를 찾아온 것일까? 아무리 생각하고 따져 보아도 그럴 리가 없는 데 이 이상은 그러나 어인 까닭이뇨? 하여간 병의 심방이 틀림없음을 우선 확증하는 것이 절대 필요하므로 여러 가지 방법에 의하여 이전의 건강 상태와 현재의 증상을 혼자서 묵묵히 비교하여 보곤 한다.

 

원래 인생이란 순순하지 못할 뿐 아니라 흔히는 괴롭고 또 재미조차 없는 물건인데, 이 위에 병까지 뒤집어쓴다면 어이하나? 생각할수록 여러 가지가 마음에 결려 실로 걱정이 아닐 수 없으나, 일단 찾음을 받은 병은 일종 불가항력에 속하므로 내 힘만으로 물리칠 도리는 도저히 없는 일이다.

 

병은 여기 찾아왔는지라 백사를 제지하여 관념의 눈을 감고 하여간에 병상에 몸을 이끌어 털썩 누우매 일시에 셀러에 이른바 '형이상학적 경쾌'가 퇴각을 개시함은 물론이요, 또 공동생활에 의하여 연계되었던 이제까지의 사회적 관련으로부터 졸연한 이탈이 강요되는 데서 유래하는 병상의 기묘한 고독과 무력을 통감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고통 속에서도 일종의 향락이 성립될 수 있다는 것은 병자를 위하여 다행한 일이니, 오슬오슬 오한에 떨리는 몸과 뻐근히 저리는 사지 속에서 잔잔한 세류 비슷이 한 갈래 흘러 오르는 병적 쾌감은 말할 수 없이 유수하고 몽환적인 나라로 병자를 인도하여 간다.

 

영영 축축, 악착한 이 세상에 초연히 누운 이 통쾌한 묵살, 이 초현실적 안정, 이 풍부한 시간, 장차 어찌 될지 병의 귀추가 물론 적이 걱정이야 걱정이지만 이왕 걸린 병인지라 할 수 없는 일이잖느냐, 불평 불만의 정을 품는 것도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므로 오로지 미지의 우인 병 그 자체의 음성에 경청하기로만 결심한다.

 

병은 실로 한 심방자와도 같으니, 그는 대체 나로부터 무엇을 요구하려는 것일까? 또 병은 한 여행과도 같으니 대체 나는 어디로 향발하여야 될 것일까? 또 병은 무엇을 경고하려는 한 친구와도 같으니 그는 말하는 것이다. '주의를 해야 되네. 이러한 곳에 자네의 결함이 있는 것이니 잘 좀 생각하고 반성해야만 된단 말일세.'라고 우정 찾아와서 병우에게 이 같은 충고를 하며 또 여행의 길로 나서게 하는 한 친구의 정의를 우리는 물리쳐야 될 것인가? 아니다. 우리는 그의 심방을 진심으로 감사하여야 될 것이니, 우리는 다만 여장을 준비하고 조용히 길을 떠나기만 하면 좋은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목적지가 어디며 거리가 어느 정도이며, 또 방향이 어느 쪽인가를 모르는 아득한 꿈길의 출발임은 두말할 것이 없으니, 우리는 알지 못하는 인도자의 뒤만 따를 수밖에 다른 도리는 없다.

 

사람은 병이 무엇인가를 안다. 그리하여 이 병에 대한 인식, 그 속에 실로 건강시에는 예상하지 못하였던 비극적 생존은 누워 있다. 병이 침입자의 인상을 주며 병자를 문득 습격할 때 모든 근친자의 동정이 또한 무력한 것이니 병실의 문이 닫쳐지는 순간 병자의 고독과 적막을 위무할 방법이라고는 전무하기 때문이다.

 

이 고립적이요, 독자적인 영원한 격투와 고민 속에서 그가 어렴풋이 보는 것은 이 곳에 두 방문자 있음이니, 하나는 본능이란 자이요, 다른 하나는 정신이란 자이다. 이 순간에 무엇을 하자고 본능과 정신, 이 양자는 문득 각성하여 나를 심방한 것일까? 본능과 정신, 이 양자는 말하자면 병자에 대하여 의사 이상의 역할을 하는 자이니, 그들은 상호 제휴하여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나에게 중대한 발언을 하여야 되는 것이요, 병자의 치유를 위하여 일치 협력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 것이다.

 

본능은 육체를 치유하여야만 되는 것이요, 정신은 영혼을 병으로부터 구출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참된 건강이란 진실로 육체적 건강을 말하는 동시에 영혼도 역시 건강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본능은 육체를 치료한다. 원래가 이것은 그러한 것으로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니, 왜 그러냐 하면 모든 치료는 자기 치료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어떠한 명의, 어떠한 신약도 이 신비로운 업무를 대행할 수는 없다. 의사와 검제는 결국 본능이 수행하는 치료를 보조하며, 간호하며, 고무함에 불과하고, 무릇 치유 과정은 그 자신의 충동에 의하여 저절로 자발적으로 자연히 성수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시에 본능은 병을 제거하기 위하여 그 병적 징후에 직접으로 작용하는 방법을 취하지 않는 것이니, 원시 병세는 합목적적으로 진행하는 법이며, 그 자체가 치유에 봉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병적 증상은 진행될 데까지 진행되면 자연히 없어진다. 본능의 자기 치료는 그보다는 새로운 구성과 조직 속에 성립되는 것으로 병자와 의사는 이 새로운 구성과 조직을 향하여 가장 신중히 또 가장 완곡히 보조를 맞추어 걸어가는 것이니 새로운 구성과 조직에 필요한 것은 무엇이냐 하면 그것은 물론 휴양이요, 안정이요, 정력의 절약이요, 공기요, 일광이요, 쾌활한 기분 등이다. 여타지물은 그 후에 비로소 필요하다면 필요한 것이다.

 

그리하여 환자에게 만일에 경청하는 능력이 있다면 그는 곧 본능이 전연히 단독으로 병에 대하여 유용한 것을 염원하고 유해한 것을 염기하는 사실을 인식할 것이니, 대개 병중에 환자의 좋아하는 바가 병에 이로우며, 환자의 싫어하는 것이 병에 독이 되는 이유는 실로 본능에 엄격한 명령, 그 속에서 탐지되어야 한다.

 

본능은 신뢰를 굳이 의욕한다. 본능이 확호한 자신을 가지고 나타나면 나타날수록, 그리하여 그에 대하여 순종적인 태도를 취하면 취할수록 보다 신속히 자기 치료의 효과는 발생하는 것이니, 이것이 실로 치료 방법의 근본 원리임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다. 본능이 육체를 치료함과 같이 정신은 영혼을 치료한다. 여기서도 치료가 자기 치료를 의미함은 물론이니, 다만 여기 있어서는 그 치료의 방향이 '하부에서' 오지 아니하고 '상부로부터' 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그러므로 병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리 중병 상태에 처하여 있는 경우에라도 불평과 원한과 절망을 품어서는 아니 되고 일종의 철학적 달관을 가져야 된다는 것이다.

 

병에는 평온한 영혼, 쾌활한 기분, 부동의 신념이 절대로 필요하다. 병이란

 

흔히 뻗대는 성질의 것이므로 병의 치유에는 또한 어느 정도로 유장한 시간과

 

공간(병원, 온천, 요양지 등)이 필요한 것이다. 이 모든 조건은 병에 대하여

 

은혜를 끼치는 가능성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나 물론 중대한 투병의 단계는

 

이 모든 조건을 구비한 후에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다.

 

이 진지한 투병에 있어서 본능과 정신 양자가 병을 통하여 우리에게 전하는

 

중대한 발언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내가 평상시에 심신을 잘 조정할 줄을

 

몰랐다는 것이요, 또 내가 건강을 하늘이 주신 선물로서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는 것이요, 그러므로 병에 대한 책임은 나 자신이 져야만 된다는 것이요,

 

그리하여 건강은 그 자체가 이미 행복과 열락을 의미한다는 것 등이니, 사실

 

내가 아름다운 것으로 충만한 이 인생에 대하여 눈을 감고 무관심하게

 

지내왔다는 것, 그리하여 애와 선과 희생과 영웅적 행동에 대한 무수히 많은

 

가능성이 안전에 제공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지의 탓으로 하여 그대로

 

간과하여 버리고, 그와는 반대로 내가 이제까지 가장 훌륭한 선물의

 

낭비자로서만 살아왔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이냐!

 

우리는 병석에 누워 흔히 내일부터는 이 인생을 다시 시작할 것을 결심하는

 

것이니, 병고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결코 적은 것이 아니다. 사람이란 원시

 

반평생을, 아니 일평생을 고생으로 산다는 것, 그리하여 사람이 고뇌를 통하여

 

자각과 청정과 개선에 이를 수 있으며, 모든 고뇌로부터 일편의 참된 혜지를

 

급취할 수 있다는 것을 병은 여실히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병은 참으로 우리들 사람을 위하여, 다행한 교도자다. 병은 사람의 새로운

 

육성을 위하여, 휴양을 위하여, 또 그 순화를 위하여 막대한 진력을 하는 자이기

 

때문에 그 위에 우리는 장차 병으로부터 해방되어 쾌유의 즐거운 날을 가질

 

것이 아니랴! 이 위에 더 여하한 위안이 우리에게 필요할까?

 

병은 흔히 사람을 신경지로 만든다. 환자의 이 애처로운 심리를 우리는

 

승인하지 못할 바 아니나 이것은 그가 아직도 정신의 그윽한 소리를 듣지 못한

 

탓이라 할지니, 병자가 명심해야 할 것은 병에 구이함이 없이 병으로부터

 

초월하여야 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대개는 자기

 

자신에게서 온 이 시련을 감수하여 써 자기를 육성하는 한 좋은 수단으로 삼지

 

않으면 안 된다. 확실히 사람은 병에서 크는 것이다.

 

아이들이 병에 울 때 우리는 보통 '자고 나면 낫는다.'고 말한다. 수면은 병에

 

있어서 약이다. 수면이 경과의 양불호를 결정하는 신묘한 복선이 되는 것도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바 사실이다. 수면이라면 병중에 우리를 부단히

 

습격하는 저 수마는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병자에게 허락된 유일한 위안은 독서다. 그런데 시력이 쇠하고 팔힘이

 

부족한데다가 책을 보기만 하면 우리의 정신이 잠들어 버리는 데는 감당할

 

도리가 없다. 무엇을 생각하다가도 곧 잠드는 것인데, 다시 잠을 깨고 나면 무슨

 

생각을 했는지를 알지 못할 경우가 많다.

 

병 중에 가장 우울한 시간은 식사 시간이니, 식사래야 미음 아니면 죽 등

 

속으로 가히 연설할 나위가 못 되거니와 구미가 쓰고 혀는 깔깔하여 그것일망정

 

약을 먹듯이 먹어야 되고 달게는 도저히 먹을 수 없는 것이 유감이기 때문이다.

 

병자는 식전 식후에 누워서 한가함에 맡겨 자기가 일찍이 맛본 진수 성찬의 한

 

가지 한 가지를 입 위에 가만히 얹어 보는 것이나, 단 한 가지라도 구미에

 

당기는 것이 없는 데는 삭연한 감을 품지 않을 수 없다. 병으로 누워서 사람은

 

더욱이 먹는 재미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통감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흔히 병 중에 못 먹은 분량의 음식을 병 후에 결국은 다 찾아 먹고야

 

만다.

 

또 병상에 누워 있으면 자기가 일어나서 직접 나아가 볼 수 없는 까닭으로

 

자기와 완전히 격리된 이 세상은 사실 이상으로 지극히도 멀어 보이는 법이다.

 

그 먼 세상에서 아는 사람들이 찾아와서 그 먼 세상의 소식을 전할 때 병자가

 

받는 인상은 예상 이상으로 신선하고도 강렬하다. 이 사실은 사람이 공동

 

생활을 떠나서는 하루라도 살 수 없다는 것을 여실히 말하는 것밖에 없다.

 

사람이 병에서 크는 것과 동일한 근거에서 사람은 또한 병 때문에 늙기도

 

하는 것이다. 이 사실은 나이를 먹은 후에 병을 앓아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곧 수긍할 것이다. 나는 이것을 이번의 병에서 통절히 경험하였다.

 

하여간 병을 하나의 위안으로 삼는 기술을 체득한다는 것--이것이야말로

 

병자에 대하여 가장 중대한 생명 철학인 것이다.

 

 

 

 

 

 

우송雨頌

 

 

 

이제로부터서는 차차로 겨울에는 보기 드물던 비가 내리기 시작할 때다. 꽃을

 

재촉하는 봄비로부터 우울한 가을비에 이르기까지 혹은 비비하게, 혹은

 

방타하게, 혹은 포르티시모로, 혹은 피아니시모로, 불의에 내리는 비가 극도로

 

절약된 자연 속에 사는 도회인의 가슴에까지도 문득 강렬한 자연감을

 

일으키면서 건조한 대지를 남김없이 적실 시기는 이제 시작된 것이다.

 

참으로 비는 눈과 한가지로 도회인에게 남은 오직 하나의 변함없는 태고

 

시대를 의미하며, 오직 하나의 지묘한 원시적 자연에 속한다.

 

겨울에 변연히 내리는 편편백설이 멀고 먼 동경의 성국을 우리가 사는

 

곳에까지 고요히 고요히 싣고 와 우리에게 여러 가지의 아름다운 시취를 일으킬

 

수 있음에 못지않게 또한 비는 우리에게 경쾌하고 청신한 정감을 다양 다모하게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본지가 수필 일 편을 청함에 맡겨 우송을 택한

 

것은 지난 겨울에 백설을 바라다가 드디어 얻지 못하고 따뜻한 봄을 맞이하게

 

되니 그 대상을 비의 자연에 구한다느니보다는 철이 되면 철따라 요사이 어쩐지

 

비 자체가 한없이 그립기 때문이다.

 

대체 비라는 것은 물론 누구의 의견을 두드려 보아도 그렇겠지만 왔다가는

 

개고 개었다가는 오는, 말하자면 갈망의 결과로서 내려 세갈의 의하면 써

 

그치는 바 물이라야 하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이리 하여야만 모든 것이 그

 

자신의 질서 속에 더욱 명랑한 정신을 획득할 수가 있다.

 

노아의 대홍수는 광휘 있는 40일 동안의 장림의 결과였다고 한다. 그 결과가

 

반드시 홍수에는 이르지 않는다 하더라도 밤낮으로 비만 오고 햇볕이 조금씩

 

나타나려다가 또다시 내리는 비에 숨기어지고 마는 지루한 장마가 계속되면

 

모든 사람의 마음은 침울하게 되고 성급하게 되어 나중에는 세상을 저주하고,

 

하늘을 저주하고, 특히 무엇보다도 비라는 놈을 욕하고 주먹질한다.

 

한발도 견디기 어렵지만 장림은 더욱 견디기 어려운 듯 보인다. 사실에 있어

 

비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까닭이다. 오직 그들의 소중한

 

금전옥답에 천연의 관개를 필요로 하는 농부들만이 다른 사람이 얼마나 많이 이

 

'궂은' 일기에 대하여 저주할 때라도 도저히 동감의 의를 표치 않을 따름이다.

 

참으로 농부들은 너무도 직접적으로 이 하늘이 주는 기적, 이 하늘이 내리우는

 

축복을 체험하고 있는 까닭이다. 그들은 우후의 놀라운 성장을 백곡천채에

 

있어서 관찰하고 하늘의 섭리에 감사하여 마지않는 것이다. 그들에 있어서는

 

오늘과 같은 과학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모든 자연 현상은 오히려 하나의 경이에

 

멈춘다.

 

그러나 반대로 도회인으로 말하면 피해를 입으면 입었지 그 은택을 느낄

 

기회를 전연 갖지 아니하므로, 우연히 우중봉사를 직무로 택한 자동차 운전수와

 

우산 제조업자의 일군을 제외하고 보면 이들은 모든 종류의 비에 불의의 모욕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리하여 도회인은 흔히 지루한 비가 인간의

 

정신에 작용하는 바 영향을 통론하여 그 때문에 유래한, 퇴치할 수 없는 침울

 

속에서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른다.

 

좀 생각하여 보라. 사실 비가 오면 예삿일이 아닌 것이다. 첫째로 불쾌한

 

것은 젖은 발이다. 화사를 사랑하는 도회지의 신사 숙녀로서 분노의 정을

 

일으킬 뿐이 아니라 감기까지 모시고 오는 것이 실로 비 때문에 젖은 양말이며,

 

비 때문에 물이 된 구두인데야 어찌 이 괴악한 그의 소행을 용사할 수 있으랴!

 

비를 예찬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붓을 든 나도 비에 젖은 신발의 불쾌감을

 

생각하면 비에 대한 일말의 증오심이 일어나지 않는다고는 할 수 없다.

 

그리하여 문제는 물론 이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더욱 나아가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것을 타기를 사랑하나 다른 사람이 타고 달리는 것을 싫어하는

 

도회지의 자동차가 특히 비 오는 날에 우리의 아껴야 할 의복에 사정없이 펄을

 

한 주먹 뿌리고 도망간 아직도 괘씸한 기억을 찾아 낼 수 있으며, 또는 모처럼

 

벼르던 일요일의 원대한 이상이 예기치 않았던 비 때문에 애인을 위하여 특별한

 

마음으로 장만하여 둔, 혹은 한 송이의 비단꽃이, 혹은 한 권의 책이 불길한

 

징조를 예시하는 듯이 탐욕스러운 소낙비에 의하여 속속들이 젖고야 말았던

 

애달픈 기억 등, 기타의 많은 불쾌한 기억을 우리의 생활 속에서 찾아 낼 수가

 

있다.

 

이러한 가지가지의 회상을 더듬으면 어떠한 의미에 있어서도 우리가 적어도

 

도회에 사는 이상 비를 예찬할 기분이 안 될 것은 의심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성급한 마음을 잠깐 억제하고 조금쯤 이에 대하여 반성할 여유를

 

갖는다면 이 따위 구구한 추억은 가히 문제될 거리가 아니다.

 

비의 폐해를 구태여 이런 추억 속에 찾는다면 우리는 그 반면에는 또한 항상

 

비의 이익이 병행하고 있는 사실을 예증치 않을 수 없다. 가령 비가 오니까

 

떠나가려는 애인이 좀더 우리 곁에 앉아 있을 수도 있는 것이며 비가 오니까

 

틀림없이 찾아올 터인 채귀의 언제나 같은 힐난의 액을 면할 수도 있는 것이며,

 

또 여기서 우리는 생략하여도 좋은 많은 용무, 많은 회합이 불의의 강우로

 

인하여 결연히 단념될 수 있는 데서 유래하는 방, 저 명랑한 쾌감을 일일이

 

열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대체 떨어진 구두를 신고 흙물에 들어간다고 해서 비가 싫다는 것은 무어라

 

하여도 좀 창피한 감상이다. 두 다리를 조종하여 길을 다니는 이상엔 청우를

 

불문하고 무엇보다도 신발 단속이 급선무일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참으로

 

악화가 소위 인간 삼환의 일자로서 지적되는 것도 이유 없지 않다 할 수 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폐리를 끌고 다니지 않는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비에 대하여 안전한 신발을 신고 있을 뿐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사람마다 장차

 

오는 휴일에 잔뜩 처담은 단꿈이 비 때문에 깨어진 기억을 가지고 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며, 또 노상에서 우연히 대우를 만나 암만 속력을 내어 달음질을

 

했어도, 물에 빠진 새앙쥐 신세를 짓고야 말았다는 수도 있을 수 없는 터에야,

 

소수인이 드물게 겪은 바 불운한 예를 가지고 구태여 비를 원망할 수도 가만히

 

생각하여 보면 없는 일이 아니냐?

 

이리하여 우리는 도회의 비를 한없이 찬미하려는 자이지만, 우리가 비를

 

찬미하려기 때문에는 우리는 먼저 비에 약한 무리를 물리치고 비에 강한 무리

 

속으로 몸을 집어 넣지 않으면 아니 된다. 비에 강한 무리란 두말할 것도 없이

 

바닥창이 두꺼운 구두를 신은 사람을 의미하며, 밀회를 갖지 않는 건전한

 

사람을 의미하며, 여름이 되어 다른 사람들이 휴가를 이용하여 피서갈 때에도

 

오히려 항상 변함없이 초열의 도회지를 사수하고 있는 사람들을 그것은

 

의미한다.

 

풍우한설에 대하여 우리가 이를 피할 수 있는, 집이라는 안전지대를 갖는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이 안전 지대인 우리들의 집 창문에 우리가 서로 기대어

 

거리의 모든 생활이 비비히 내리는 세우에 가벼이 덮이어 거대한 몸을

 

침면시키고 있는 정경을 볼 때 누가 과연 그 마음이 기쁘지 않다 할 수 있으랴!

 

이 집은 물론 우리 자신에 속한 집이 아니고 다른 사람에게서 빌린 집이며,

 

집은 또 혹은 좁아서 걱정이며 혹은 더러워서 곧 이사가려는 경우에 처하고

 

있는 때라도 우리는 이 때만은 부슬부슬 내리는 이슬비의 불역의 귀결을

 

감상함으로 인하여 이 집은 벌써 좁지 아니하며, 이 집은 벌써 더럽지 않을 뿐

 

아니라, 주소간 속 깊이 잠재하여 떠나지 않던 전택의 욕망도 전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비는 한 개의 시가로서 우리 앞에 군림하여 이 한없이 큰 매력은 불안하기

 

그지없는 세가를 그리운 자저로 화하게 하고 피할 수 없는 번민을 존재의

 

희열로 변하게 한다. 비의 위대한 정화력은 그 영역 속에 모든 사람에게서

 

그들의 괴로운 현실을 빼앗고 그것에 대치하되 보다 심원한 초현실로써 하는

 

것이다. 거리거리의 모든 구조물을 세척할 뿐이 아니라 그것은 실로 인간의

 

영혼까지를 세탁하는 것이다. 비가 노래하는 혹은 들리고 혹은 들리지 않는

 

단순한 절주는 가장 고상한 음악에 속할 자이다. 그것은 하나의 음악일 뿐이

 

아니라 또한 그것은 변화무쌍한 일폭의 활화이기도 하다.

 

우리가 꺽다점에나 카페에 앉아서, 때마침 장대같이 내리는 빗줄기가

 

분간없이 유리창을 때리며, 바람은 거리와 거리를 휩쓸어 신사의 모자를 날리고

 

부인네들의 우산을 뒤집는 소란한 정경을 객관적으로 완미 할 수 있을 때 누가

 

과연 이에 쾌재를 부르짖지 않을 자이랴!

 

내 아직 경험이 적으므로 인생의 생활이 얼마나 한 행복을 우리에게

 

약속할는지는 감히 추단키 어려우나 적어도 현재의 내 생각 같아서는 이만한

 

행복감을 줄 수 있는 시추에이션도 이 인간 생활 속에서는 그다지 많이 찾을

 

수는 없는 것같이 보인다. 이 때에 우리가 마시고 있는 한 잔의 차, 한 잔의

 

맥주는 이중으로 삼중으로 맛이 늘어가는 것을 도저히 부정할 수 없다.

 

더욱이나 우리가 재채기를 하고 욕설을 하며 젖을 옷을 툭툭 털고 들어오는

 

무고한 피해민을 안락 의자에 팔을 괴고 보게 되면 그것은 참으로 얻기 어려운

 

일복의 청량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이때 피로를 잊을 뿐 아니라 잠시 동안

 

근심을 잊고, 걱정을 잊고, 실로 흔히는 자기 자신까지를 망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뜻하지 아니한 천래의 일장 연극에 입장료도 지불함이 없이 여기서

 

완전히 도취할 수 있으니, 이와 같은 우신의 신묘한 희롱에 어찌 우리는 법열을

 

느끼지 아니할 수 있으랴!

 

비란 원래 사람의 예단을 반발하고, 측후소의 존재 의미까지 의심케 하도록

 

졸지에 내리고 또 그치는데, 떠도떠도 다 하지 않는 교치한 맛이 있는 것이지만,

 

여름의 더운 날 같은 때에 난데없는 일진광풍이 돌연히 소낙비를 데리고 오면,

 

참으로 이 곳에서 우러나는 재미야말로 진지하다 할 수 있다. 천하의 행인은

 

뚝뚝 던지는 비의 기습에 크게 놀래어 잠시는 이 불온한 형세에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문제는 극히 간단하므로, 곧 동분서주, 서로 머리를 부딪쳐 가면서

 

피할 장소를 구하여 배회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중에 혹은 물둠벙에 빠지는

 

신사를, 혹은 땅바닥에 미끄러지는 노인을, 혹은 치맛자락을 높이 껍어들고

 

달음질하는 숙녀를--이 하늘의 불의의 발작, 이 하늘의 기교한 즉흥시에 박수와

 

갈채를 아끼지 아니하고, 작약흔무하는 아해의 무리무리 속에 발견하기란

 

너무도 용이한 노력에 속한다. 이리하여 지극히도 황당한 수순이 경과한 뒤에

 

모든 불운한 행인이 그들의 불운한 몸을 집집의 벽과 벽에 꼭 붙임을 겨우

 

얻어서 천하는 오로지 한 곡조의 요란한 우성 속에 갇혀 고요히 움직이지 않을

 

, 우리가 만일 자동차에 편히 앉아 곳곳에 불안과 불평을 숨기고 있는 평화한

 

거리거리를 지나게 되면--이거 또한 한없이 기껍지 아니한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간혹 집 문을 들어서자 비가 쏟아지기 시작만 해도

 

감동하여 희열의 저을 금할 수 없지는 아니한가?

 

아까 우리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일대의 젊은 남녀가 어딘지 산보 가는

 

것을 보고 확실히 흥분을 깨달았을 뿐 아니라, 그렇잖아도 우울한 마음이 더욱

 

우울해짐을 어찌할 수 없는 것이지만, 이제 비가 돌연히 쾌청한 공기를

 

교란하고 있음을 보게 되니 벌써 우리는 그들에게 선망의 염을 일으킬 필요는

 

전연 없다. 그의 좋은 양복과 그의 고운 애인은 가련하게도 이 비에 쪽딱 젖고

 

말았을 것이 아니냐?

 

비는 참으로 비가 와야 해될 것이 없는 모든 사람에게 대하여 하나의 큰

 

위안을 제공하는 바 비근한 일례에 불과하지만--또는 세우가 비비하게 내려

 

도회의 포도를 걸레질하는 정도로 먼지를 닦아 낸 때 같은 햇빛보다도

 

포근하고, 부드럽고, 또 시원한 비를 차라리 맞고 다님이 특히 정서 깊음을 과연

 

누가 느끼지 아니하랴? 이런 때엔 빈 자동차가 승객을 찾음이겠지, 열을 지어

 

힘없이 거리 위를 완보함을 봄도 확실히 통쾌하다.

 

도회에 비가 내리는 기쁨은 대강 이러한 것들로 요약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럼으로써 비에 대한 찬미는 한 개의 자명한 사실로서 당연히 승인되지

 

아니하면 아니 될 것임이 또한 틀림없다.

 

그러니 여기서 사람은 도덕과 윤리의 이름에 있어서 나의 '우송'에 단연

 

반의를 표명할지도 모른다. 즉 이를 도덕가류의 의견에 의하면 우리가 비를

 

기뻐하는 것은 비 자체에 대한 순수 무잡한 희열이라기보다는 다른 사람이 비에

 

의하여 피해를 입는 것을 즐기는 악의 속에 그 근본 동기를 둔다는 것이다.

 

엄격할 뿐인 윤리적 견지에서 보면 과연 그렇게 단순히 말하여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특히 이 경우에 한해서는 도덕은 결국 무생명한 한 개의

 

이론에 불과한 감이 없지 않다. 무어라 하여도 인생의 엄연한 사실은 다른

 

사람이 길에서 삐적하고 미끄러지는 것을 보면, 또는 잘못하여 손에든 찻잔을

 

떨어뜨리는 것을 보면, 우리와의 이해 관계를 떠나서 어쩐지 그것은 까닭 없이

 

우습고도 즐거운 것을 항상 예증하여 주는 까닭이다.

 

우리가 마음이 나쁜 까닭으로써 웃는 것이 결코 아닌, 말하자면 인간 통유의

 

이러한 자연스러운 기쁨에 대한 도덕적 판단은 인성 선악의 선천적 문제에까지

 

파고들어가야 비로소 해결될 수 있을 것은 두말할 것도 없지만, 암만 도덕이

 

여기서 그렇지 않기를 명령하여도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이 비에 젖는 것을

 

보게 되면 어쩐지 자연히 유쾌하여지는 마음을 도저히 물리칠 수 없음을

 

어찌하랴!

 

비에 젖지 않을 수도 있는 경우에 비에 젖는 것이 실수인 것을 한번 긍정하여

 

보면, 이 실수를 실수로써 책하되 웃음으로써 임함은 차라리 더욱 아름다운

 

도덕이라 말할 수 있다. 비맞은 사람을 보고 일일이 슬퍼하는 것이 참된

 

윤리라고 할 수 없다. 이러한 것은 원래 처음부터 도덕이 감히 용훼할 수 없는

 

초도덕적 문제로서 인간의 예술감에 그 좋은 판단을 맡김이 더욱 온당치나

 

않을까 한다.

 

도덕이 어찌 되었든 여하간에 우리는 비를 찬미치 않을 수 없는 자이지만,

 

물론 또 우리는 다른 사람이 비의 피해를 입은 것을 보고 그것이 즐거운 오직

 

한 개의 이유로서만 비를 찬미하는 것은 아니다. 비는 비 자체로서도 항상

 

아름다운 것인 까닭이다. 춘우를 몸에 무릅쓰며 거리를 거니는 쾌감에 대해서는

 

앞에서도 말하였거니와, 사실 홍진만장인 건조한 대지가 신선한 비를 가질 때

 

지상의 어떠한 것이 과연 기쁨을 느끼지 않을 자이랴! 정직하게 말하면 비를

 

미워한다는 도회인도 비가 내리면 이 신선하기 짝이 없는 자연에 흔히 숙였던

 

우울한 얼굴을 드는 것이다. 윤습한 광휘 속에 그들의 안색이 쾌활해질 뿐이

 

아니라, 도회의 먼지 낀 가로수와 흔히 책상 위에 놓인 우리의 목마른 화원도

 

이 진귀한 하느님의 물을 떨며 마시며, 공원에서만 볼 수 있는 말라붙은 초원도

 

건조무미한 점에서 문득 눈을 뜨는 것이다.

 

참으로 모든 사람이 비를 자모의 천애한 손같이 여기는 것은 너무나 떳떳한

 

일이다. 다른 모든 것을 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여기 특히 염염한

 

하일에 경험하는 취우의 은택을 망각하여 버릴 수는 없다. 천하가 일시에 얼음

 

먹는 듯한 양미--이는 참으로 우리들 가난한 자에 허락될 유일한 피서적

 

기회이다. 이러한 기쁨이 만일에 평범한 것이라면, 우리는 비의 위대한

 

낭만주의를 얼마든지 사상에 구하여 흥취 깊은 예를 들어 말할 수가 있으나,

 

그것은 이 곳에서는 약하기로 한다.

 

 

 

 

 

 

 

 

 

 

 

 

 

 

"이은상편"

 

 

이은상( )

 

시조 시인, 사학자. 호는 노산. 경남 마산 출생. 연희 전문 졸업. 일본 와세다

대학 수학.

시조의 현대화에 기여했으며 대부분의 작품들이 작곡이 되어 가곡으로 불릴

만큼 시조 형식을 현대적 운율로 소화해 내었다. 뛰어난 문장가로 많은

수필집을 낸 바 있으며 교단은 물론 많은 학술 단체, 사회 단체에도 관여하였다.

 

 

 

 

 

 

 

 

 

한 눈 없는 어머니

 

 

 

김 군에게

 

김 군이 다녀간 어젯밤에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소. 김 군에게 보내는 이 편지는 쓰고 싶으면서도 실상은 쓰고 싶지 않는 글이오. 왜냐 하면 너무도 어리석은 일을 적어야 하기 때문에, 너무도 슬픈 사연을 담아야 하기 때문이오. 그러나, 나는 이 글을 꼭 써야만 한다는 무슨 의무감 같은 것을 느끼었소. 그래서 이 붓을 들었소.

 

어젯밤 우리가 만난 것은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었소.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르오. 우리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소. , 거기서만 끝났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소. 그대는 품속에서 그대의 돌아가신 어머니의 사진 한 장을 꺼내어 내게 보여 주었소. 나는 그대의 어머니를 생전에 뵈온 일이 없었기로 반가이 받아들었소. 그런데, 그대의 가신 어머니는 한 눈을 상하신 분이었소. 그것을 본 순간, 내 머리에는 '불행'이란 말이 퍼뜩 지나쳤소. 그와 동시에 나는 그대가 더욱 정다워짐을 느끼었소.

 

그러나 뒤를 이어 주고받은 그대와 나와의 이야기, 김 군, 그대는 이 글을 통해서 어젯밤 우리가 나눈 대화를 한 번 되새겨 주오. 그대는 어느 화가의 이름을 말하면서 내가 그와 친하냐고 묻기에,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소.

 

 

 

 

"그럼, 한 가지 청할 것이 있습니다."

 

"무엇인가요?"

 

"이 사진을 가지고 내 어머니의 모습을 하나 그려 달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보수는 상당하게 드리겠습니다."

 

"내 힘껏 청해 보지요."

 

 

 

 

그림으로나마 어머니를 모시려는 그대의 착한 뜻이 얼마나 고마운지 몰랐소. 그래서, 나는 쾌히 약속을 했던 것이오. 그러나, 그 다음에 나온 그대의 말, 그대는 가장 부자연스런 웃음과 어색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였소.

 

 

 

 

"그런데 그림을 그릴 적에 두 눈을 다 완전하게 그려 달라고 해 주십시오."

 

 

 

 

김 군, 순간 내 눈앞은 캄캄해지고 내 가슴은 떨리었소. 나는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소. 두 입술이 떨어지질 않았소. 겨우 입을 열어 내가 한 말은 돌아가 달라는 한 마디뿐이었소. 나는 그대를 보내고, 괘씸하고 분한 생각에 가슴을 진정할 수가 없었소. 그대가 평소에 어머니의 눈 때문에 얼마나 한스러웠기에 그림에서라도 온전히 그려 보려 했을까? 이렇게 생각하려고도 해 보았소. 그러나 그대의 품속에 들어 있는, 그대의 돌아가신 어머니의 사진, 한 눈 상하신 그 어머니의 얼굴이 눈앞에 나타나 원망의 눈물을 흘리시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소.

 

김 군,

 

그 즉석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만, 그러나 그대는 나의 열리지 않던 입에서 분명히 듣고 간 것이 있었을 것이오. 말없던 나의 입에서 듣고 간 것이 없소? 만일 없다면, 이제라도 한 마디 들어 주오. 그러나, 내 말을 듣기 전에, 그대는 먼저 그대의 품속에서 그대 어머니의 사진을 꺼내 자세히 들여다보오. 상하신 한쪽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자세히 보오. 눈물 가진 눈으로 보오.

 

김 군,

 

한 눈을 상하신 까닭으로 평생을 학대 속에 사셨는지도 모를 그 어머니...

 

애닯소. 한 눈 없이 그대를 낳고 기르고, 그대를 위하여 애태우시다 이제는 저 차가운 땅 속에 드셨거늘, 자식인 그대마저 어찌 차마 그대 어머니의 상하신 한 눈을 업신여겨 저버린단 말이오? 그대에게 한 눈 가지신 어머니는 계셨어도 두 눈 가지신 어머니는 없었소. 온 세상이 다 불구라 비웃는대도 그대에겐 그 분보다 더 고우신 분이 또 누구이겠소? 한 눈이 아니라 두 눈이 다 없을지라도 내 어머닌 내 어머니요, 내가 다른 이의 아들이 될 수는 없는 법이오.

 

김 군,

 

그림으로 그려 어머니를 모시려 한 착한 김 군, 그런 김 군이 어떻게 두 눈 가진 여인을 그려 걸고 어머니로 섬기려 했단 말이오? 그대는 곧 한 눈 없는 어머니의 영원한 사람의 품속으로 돌아가오. 그리하여 평생 눈물 괴었던 그 상하신 눈에 다시는 더 눈물이 괴지 않도록 하오. 이만 줄이오.

 

 

 

 

 

 

 

"양주동편"

 

 

 

 

양주동(1903__1977)

시인, 국어 국문 학자. 호는 무애. 경기도 개성 출생. 일본 와세다 대학

영문과 졸업. 문학 박사.

일찍이 향가의 해독에 큰 공격을 세운 바 있으며, '국보'라는 별명과 함께

변설에 비상한 재능을 보였다.

지적이면서도 해학이 넘치는 수필이 많으며 문장은 건축감이 있어 선명한

인상을 준다.

 

 

 

 

 

 

질화로

 

 

 

촌가의 질화로는 가정의 한 필수품, 한 장식품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정,

그들의 사랑의 용로이었다. 되는대로 만들어진, 흙으로 구운 질화로는,

생김생김부터가 그들처럼 단순하고 순박하건마는, 지그시 누르는 넓적한 불돌

아래, 사뭇 온종일 혹은 밤새도록 저 혼자 불을 지니고 보호하는 미덥고

덕성스러운 것이었다. 갑자기 확확 달았다가 이내 식고 마는 요새의 문화

화로와는 무릇 그 본성이 다른 것이다.

이 질화로를 두른 정경은 안방과 사랑이 매우 달랐다.

안방의 질화로는 비록 방 한구석에 있으나, 그 위에 놓인 찌개 그릇은 혹은

'에미네''남정'을 기다리는 사랑, 혹은 '오마니''서당아이'를 고대하는

정성과 함께 언제나 따뜻했다. 토장에 무를 썰어서 버무린 찌개나마 거기에는

정이 있고, 말없는 이야기가 있고, 글로 표현하지 못할, 그윽하고 아름답고

정다운 세계가 있었다. 누가 식전의 방장을 말하는가. 누가 수륙의 향연을

이르는가. 진실로 행복된 점에 있어서야, 진실로 참된 정에 있어서야, 우리 옛

마을 집집마다 그 안방에 놓였던 질화로의 찌개만하랴.

마음에서 소년은 '서당아이'라 불리었다. 혹은 사략 초권을 끼고, 혹은 맹자를

들고 서당엘 다니기 때문이다. 아잇적, 서당에 다닐 때 붙은 서당아이란 이름은,

장가를 들고 아들을 본 뒤까지도 그냥 남아서, 30이 넘어도 그 부모는

서당아이라고 불렀다. 우리집 이웃의 늙은 부부는 늦게야 아들 하나를 얻었는데,

자기네가 목불식정인 것이 철천의 한이 되어서, 아들만은 어떻게 해서든지 글을

시켜 보겠다고, 어려운 살림에도 아들을 서당에 보내고, 노상 '우리 서당애'

'우리 서당애' 하며 아들 이야기를 했었다. 그의 집 단칸방에 있는 다 깨어진

질화로 위에, 점심 먹으러 돌아오는 애의 서당아이를 기다리는 따뜻한 토장

찌개가 놓였음은 물론이다. 그 아들이 천자문을 읽는데, '질그릇 도, 당국

'이라 배운 것을 어찌 된 셈인지 '꼬끼요도, 당국 당'이라는 기상천외의

오독을 하였다. 이것을 들은 늙은 '오마니', 알지는 못하나마 하도 괴이하여

의의를 삽한즉, 영감이 분연히,

"여보 할멈, 알지도 못하면서 공연히 쓸데없는 소리 마소. 글에 별소리가 다

있는데, '꼬끼요 도'는 없을라고."

하였다. 이렇게 단연히 서당아이를 변호한 것도 바로 질화로의 찌개 그릇을

둘러앉아서였다. 얼마나 인정미 넘치는 태고연한 풍경이냐.

사랑에 놓인 또 하나의 질화로는 이와는 좀 다른 풍경을 보이었다. 머슴,

소배들이 모인 곳이면, 신삼기, 둥우리 만들기에 질화로를 에워싸 한창

분주하지마는, 팔씨름이라도 벌어지는 때에는 쌍방이 엎디어 서로 버티는

서슬에 화로를 발로 차 온 방 안에 재를 쏟아 놓기가 일쑤요, 노인들이 모인

곳이면, 고담책보기, 시절 이야기, 동네 젊은 애들 버릇 없어져 간다는

이야기들이 이 질화로를 둘러서 일어나는 일이거니와, 노인들의, 입김이 적어서

꺼지기 쉬운 장죽은 연해 화로의 불돌 밑을 번갈아 찾아갔었다. 그리하여,

기나긴 겨울밤은 어느덧 밝을녘이 되는 것이다.

돌이켜 우리집은 어떠했던가? 나도 5, 6세 때에는 서당아이였고, 따라서

질화로 위에는 나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찌개 그릇이 있었고, 사랑에서는 밤마다

아버지의 담뱃대 터시는 소리와 고서 읽으시는 소리가 화로를 둘러 끊임없이

들렸었다. 그러나 내가 다섯 살 되던 해에 그 소리는 사랑에서 그쳤고, 따라서

바깥 화로는 필요가 없어졌고, 하나 남은 안방의 화로 곁에서 어머니는 나에게

대학을 구수하시게 되었다. 그러나 어머니마저 내가 열두 살 되던 해에 그

질화로 옆을 길이 떠나가시었다. 그리하여 서당아이는 완전한 고아가 되어, 신식

글을 배우러 옛 마을을 떠나 동서로 표박하게 되었고, 화로는 또다시 찾을 수

없는 어머니의 사랑과 함께 영영 잃어버리고 말았다.

질화로의 찌개 그릇과 또 하나 질화로에 깊이 묻히던 장죽, 노변의 추억은

20년 전이 바로 어제와 같다.

 

 

 

 

 

몇 어찌

 

 

 

내가 중학교의 전 과정을 단1년 간에 수료하는 J중학 속성과에 입학한 것은

3.1운동 이듬해였다. 그 때까진 고향에서 한문학에 몰두하고 있었다.

한문학이라면 노상 무불통지를 자처하는 나였으나, '처녀작','삼인칭' 같은

신식 말 때문에 크게 고심하던 중이어서, 나는 참으로 부푼 가슴을 안고

신학문을 배우러 들어갔던 것이다.

나는 개학 전날, 교과서를 사 가지고 하숙에 돌아와 큰 호기심을 가지고

훑어보았다. 그러던 중, '처녀작', '삼인칭'에 못지않은 참 기괴한 또 한 단어를

발견했는데, 그게 곧 '기하'라는 것이었다. '기하'''''이란 뜻이요,

'''어찌'란 뜻의 글자임이야 어찌 모르랴만, 이 두 글자로 이루어진 '기하'

말의 뜻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기하'? '몇 어찌'라는?

첫 기하 시간이었다. 나는 자리를 정돈하고 앉아서 선생님을 기다렸다.

이윽고 선생님께서 들어오셔서 우리들의 예를 받으시고, 막 강의를 시작하려

하실 때였다. 맨 앞줄에 앉았던 나는 손을 번쩍 들고,

"선생님, 대체 '기하'가 무슨 뜻입니까? '몇 어찌'라뇨?"

하고 질문을 했다. 선생님께서는 이 기상천외의 질문을 받으시고, 처음에는

선생님을 놀리려는 공연한 시문으로 아셨던지 어디서 왔느냐, 정말 그 뜻을

모르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러나 곧, 나에게 아무 악의도 없음을 알아채시고,

말의 유래와 뜻을 가르쳐 주셨다. 가로되, 영어의 '지오메트리(측지술)', 중국

명나라 말기의 서광계가 중국어로 옮길 때, 이 말에서 '지오()'를 따서

'지허'라 음역한 것인데, 이를 우리는 우리 한자음을 따라 '기하'라 하게 된

것이라고.

"알겠느냐?"

"."

", 한문은 얼마나 배웠느냐?"

"사서삼경, 제자백가 무불통지입니다."

"그런데, '기하'의 뜻을 모른다?"

"한문엔 그런 말이 없습니다."

"허허, 그런데, 너 내일부터는 세수 좀 하고 오너라."

"."

사실 나는 '기하'란 말의 뜻과 그 미지의 내용을 생각하는데 너무 골똘했던

나머지, 세수하는 것도 잊고 등교했던 것이다. 나머지 시간은 일사천리로 강의가

계속되어, ', , '의 정의를 배우고 ', 예각, 둔각, 대정각'을 배우고,

'공리, 정리, '란 용어를 배웠다.

하숙에 돌아온 나는 또, '정리란 증명을 요하는 진리다.'와 같은, 참으로

기괴한 문장을 뇌까리면서, 다음 기하 시간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다음날의 기하 시간이었다. 공부할 문제는 '정리 1. 대정각은 서로 같다.'

증명하는 것이었다. 나는 또 손을 번쩍 들고,

"두 곧은 막대기를 가위 모양으로 교차, 고정시켜 놓고 벌렸다 닫았다 하면,

아래위의 각이 서로 같을 것은 정한 이치인데, 무슨 다른 '증명'

필요하겠습니까?"

하고 말했다. 선생님께서는 허허 웃으시고는, 그건 비유지 증명은 아니라고

하셨다.

"그럼, 비유를 하지 않고 대정각이 같다는 걸 증명할 수 있습니까?"

"물론이지. , 봐라."

선생님께선 칠판에다 두 선분을 교차되게 긋고, 한 선분의 두 끝을 AB,

또 한 선분의 두 끝을 CD, 교차점을 O,그리고 ...AOCa, ...COBb,

...BODc라 표시한 다음, 나에게 질문을 해 가면서 칠판에다 식을 써

나가셨다.

"a+b는 몇 도?"

"180도입니다."

"b+c180도이지?"

"."

"그럼, a+b=b+c이지?"

"."

"그러니까, a=c 아니냐."

". 그런데, 어찌 됐다는 말씀이십니까?"

"잘 봐라, 어떻게 됐나."

"아하!"

멋모르고 ", ." 하다 보니 어느덧 대정각(a c)이 같아져 있지 않은가!

그 놀라움, 그 신기함, 그 감격, 나는 그 과학적, 실증적 학풍 앞에 아찔한

현기증을 느끼면서, 내 조국의 모습이 눈앞에 퍼뜩 스쳐감을 놓칠 수 없었다.

현대 문명에 지각하여, 영문도 모르고 무슨 무슨 조약에다 ", ." 하고

도장만 찍다가, 드디어 "자 봐라, 어떻게 됐나,"의 망국의 슬픔을 당한 내 조국!

오냐, 신학문을 배우리라. 나라를 찾으리라. 나는 그 날 밤을 하얗게 새웠다.

나는 지금도 첫 강의 시간에는 대개, 위에 적은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들려

주고, 중학교에 들어가서 기하를 처음 배울 때, 그 말의 뜻을 묻는 학생이 과연

몇이나 되느냐 하고 농담삼아 질문을 한다. 그리고, 이러한 '발의심'과 새

세계에 대한 '경이감'을 잃지 않았기에, 알량하나마 학적 저서 약간 권을

이룩했노라고 말한다.

 

 

 

 

 

면학의 서

 

 

 

독서의 즐거움! 이에 대해서는 이미 동서 전비들의 무수한 언급이 있으니,

다시 무엇을 덧붙이랴. 좀 과장하여 말한다면, 그야말로 맹자의 인생 삼락에

모름지기 '독서, 면학'의 제 4일락을 추가할 것이다. 진부한 인문이나 만인

주지의 평범한 일화 따위는 일체 그만두고, 단적으로 나의 실감 하나를

피력하기로 하자.

열 살 전후 때에 논어를 처음 보고, 그 첫머리에 나오는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운운이 대성현의 글의 모두로 너무나 평범한 데 놀랐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이런 말씀이면 공자 아닌 소, 중학생도 넉넉히 말함직하였다. 첫 줄에서의 나의 실망은 그 밑의 정자인가의 약간 현학적인 주석에 의하여 다소 그 도를 완화하였으나 논의의 허두가 너무나 평범하다는 인상은 오래 가시지 않았다.

그랬더니 그 후 배우고, 익히고, 또 무엇을 남에게 가르친다는 생활이 어느덧 2, 30, 그 동안에 비록 대수로운 성취는 없었으나, 몸에 저리게 느껴지는 것은 다시금 평범한 그 말의 진리이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정씨의 주는 워낙 군소리요, 공자의 당초 소박한 표현이 그대로 고마운 말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현세와 같은 명리와 허화의 와중을 될 수 있는 한 초탈하여, 하루에 단 몇 시, 몇 분이라도 오로지 진리와 구도에 고요히 침잠하는 여유를 가질 수 있음이, 부생 백년, 더구나 현대인에게 얼마나 행복된 일인가! 하물며, 난후 수복의 구차한 생활 속에서 그래도 나에게 삼척안두가 마련되어 있고, 일수의 청등이 희미한 채로 빛을 내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일전 어느 문생이 내 저서에 제자를 청하기로, 나는 공자의 이 평범하고도 고마운 말을 실감으로 서증하였다.

 

 

독서란 즐거운 마음으로 할 것이다. 이것이 나의 지설이다. 세상에는 실제적

목적을 가진, 실리 실득을 위한 독서를 주장 할 이가 많겠지마는 아무리 그것을

위한 독서라도, 기쁨 없이는 애초에 실효를 거둘 수 없다. 독서의 효과를 가지는

방법은 요컨대 그 즐거움을 양성함이다. 선천적으로 그 즐거움에 민감한

이야기야말로 다생의 숙인으로 다복한 사람이겠지만, 어렸을 적부터 독서에

재미를 붙여 그 습관을 잘 길러 놓은 이도, 그만 못지않은 행복한 족속이다.

독서의 즐거움은 현실파에게나 이상가에게나, 다 공통히 발견의 기쁨에 있다.

콜럼버스적인 새로운 사실과 지식의 영역의 발견도 좋고,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보면 내 가슴은 뛰노나.'식의 워즈워스적인 영감, 경건의 발견도 좋고,

더구나 나와 같이, 에머슨의 말에 따라, '천재의 작품에서 내버렸던 자아를

발견함.'은 더 좋은 일이다. 요컨대, 부단의 즐거움은 맨 처음 '경이감'에서

발원되어 진리의 바다에 흘러가는 것이다. 주지하는 대로 '채프먼의 호머를 처음

보았을 때'에서 키츠는 이미 우리의 느끼는 바를 대변하였다.

 

그때 나는 마치 어떤 천체의 감시자가 시계 안에 한 새 유성의 헤엄침을 본

, 또는 장대한 코르테스가 독수리 같은 눈으로 태평양을 응시하고--모든 그의

부하들은 미친 듯 놀라 피차에 바라보는 듯--말없이 다리엔의 한 봉우리를.

 

혹은 이미 정평 있는 고전을 읽으라, 혹은 가장 새로운 세대를 호흡한 신서를

더 읽으라, 각인에게는 각양의 견해와 각자의 권설이 있다. 전자는 가로되,

"온고이지신."

후자는 말한다.

"생동하는 세대를 호흡하라."

그러나 아무래도 한편으로만 기울어질 수 없는 일이요, 또 그럴 필요도 없다.

지식인으로서 동서의 대표적인 고전은 필경 섭렵하여야 할 터이요,

문화인으로서 초현대적인 교양에 일보라도 낙오될 수는 없다. 문제는 각자의

취미와 성격과 목적과 교양에 의한 비율뿐인데, 그것 역시 강요하거나 일률로

규정할 것은 못 된다. 누구는 '고칠 현삼제'를 취하는 버릇이 있으나, 그것도

오히려 치우친 생각이요, 중용의 좋다고나 할까?

 

 

 

다독이냐 정독이냐가 또한 물음의 대상이 된다. '남아수독오거서'는 전자의

주장이나, '박이부정'이 그 통폐요, '안광이 지배를 철함'이 후자의 지론이로되,

'나무를 보고 숲을 보지 못함'이 또한 그 약점이다. 아무튼, 독서의 목적이

'모래를 헤쳐 금을 캐어 냄'에 있다면, 필경 ''''을 겸하지 않을 수

없으니, 이것 역시 평범하나마 '박이정' 석 자를 표어로 삼아야 하겠다. ''

'정은 차라리 변증법적으로 통일되어야 할 것--아니, 우리는 양자의 기념을

궁극적으로 초극하여야 할 것이다. 소인의 다음 시구는 면학에 대해서도 그대로

알맞은 경계이다.

 

 

 

 

벌판 다 한 곳이 청산인데,

행인은 다시 청산 밖에 있네.

 

 

 

 

나는 이 글에서 독서의 즐거움을 종시 역설하여 왔거니와, 그 즐거움의

흐름은 왕양한 심충의 바다에 도달하기 전에, 우선 기구, 간난, 칠전팔도의

괴로움의 협곡을 수없이 경과함을 요함이 무론이다. 깊디 깊은 진리의 탐구나

구도적인 독서는 말할 것도 없겠으나, 심상한 학습에서도 서늘한 즐거움은 항시

'애씀의 땀'을 씻은 뒤에 배가된다. 비근한 일례로, 요새는 그래도 스승도 많고

서적도 흔하여 면학의 초보적인 애로는 적으니, 학생 제군은 나의 소년

시절보다는 덜 애쓴다고 본다. 나는 어렸을 때에 그야말로 한적 수백 권을

모조리 남에게 빌려다가 철야, 종일 베껴서 읽었고, 한문은 워낙 무사 독학,

수학조차도 혼자 애써서 깨쳤다. 그 괴로움이 얼마나 하였을까마는, 독서 연진의

취미와 즐거움은 그 속에서 터득, 양성되었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끝으로 소화 일편--내가 12, 3세 때이니, 거금 50년 전 일이다. 영어를

독학하는데, 그 즐거움이야말로 한문만 일과로 삼던 나에게는 칼라일의 이른바

'새로운 하늘과 땅'이었다. 그런데, 그 독학서 문법 설명의 '삼인칭 단수'란 말의

뜻을 나는 몰라, '독서 백편 의자현'이란 고언만 믿고 밤낮 며칠을 그 항목만

자꾸 염독하였으나, 종시 '의자현'이 안 되어, 마침내 어느 겨울날 이른 아침,

눈길 30리를 걸어 읍내에 들어가 보통 학교 교장을 찾아 물어 보았으나, 그 분

역시 모르겠노라 한다. 다행히 젊은 신임 교원에게 그 말뜻을 설명받아 알았을

때의 그 기쁨이란! 나는 그 날, 왕복 60리의 피곤한 몸으로 집으로 돌아와, 하도

기뻐서 저녁도 안 먹고 밤새도록 책상에 마주 앉아, 적어 가지고 온 그 말뜻의

메모를 독서하였다. 가로되,

"내가 일인칭, 너는 이인칭, 나와 너 외엔 우수마발이다 삼인칭야라."

 

 

 

 

 

 

 

 

 

 

 

"이양하편"

 

 

 

 

이양하(1904__0963)

영문 학자, 수필가, 평남 강서 출생. 일본 도쿄 제대 영문과 졸업. 서울대

문리대학장 역임.

영국의 정통과 수필을 도입하여 김진섭과 함께 서구적 본격 수필의 기초를

다졌다. 시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깊은 사색의 세계를 영탄에 가까운 정서로

노래한 시작품을 발표한 바 있다.

 

 

 

 

 

 

 

 

 

신록 예찬

 

 

 

봄 여름 가을 겨울, 두루 사시를 두고, 자연이 우리에게 내리는 혜택에는

제한이 없다. 그러나 그 중에도 그 혜택을 풍성히 아낌없이 내리는 시절은 봄과

여름이요, 그 중에도 그 혜택을 가장 아름답게 내는 것은 봄, 봄 가운데도

마산에 녹엽이 싹트는 이 때일 것이다.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고 먼 산을

바라보라. 어린애의 웃음 같이 깨끗하고 명랑한 오월의 하늘, 나날이 푸르러

가는 이 산 저 산, 나날이 새로운 경이를 가져오는 이 언덕 저 언덕, 그리고

하늘을 달리고 녹음을 스쳐 오는 맑고 향기로운 바람--우리가 비록 빈한하여

가진 것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러한 때 모든 것을 가진 듯하고, 우리의

마음이 비록 가난하여 바라는 바, 기대하는 바가 없다 할지라도, 하늘을 달리어

녹음을 스쳐 오는 바람은 다음 순간에라도 곧 모든 것을 가져올 듯하지

아니한가?

오늘도 하늘은 더할 나위 없이 맑고, 우리 연전 이래를 덮은 신록은

어제보다도 한층 더 깨끗하고 신선하고 생기 있는 듯하다. 나는 오늘도 나의

문법 시간이 끝나자, 큰 무거운 짐이나 벗어놓은 듯이 옷을 훨훨 떨며, 본관

서쪽 숲 사이에 있는 나의 자리를 찾아 올라간다. 나의 자리래야 솔밭 사이에

있는 겨우 걸터앉을 만한 조그마한 소나무 그루터기에 지나지 못하지마는, 오고

가는 여러 동료가 나의 자리라고 명명하여 주고, 또 나 자신도 하루 동안에

가장 기쁜 시간을 이 자리에서 가질 수 있으므로, 시간의 여유 있는 때마다

나는 한 특권이나 차지하듯이, 이 자리를 찾아 올라와 앉아 있기를 좋아한다.

물론 나에게 멀리 군속을 떠나 고고한 가운데 처하기를 원하는 선골이

있다거나, 또는 나의 성미가 남달리 괴팍하여 사람을 싫어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역시 사람 사이에 처하기를 즐거워하고, 사람을 그리워하는

갑남을녀의 하나요, 또 사람이란 모든 결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가장

아름다운 존재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사람으로서도 아름다운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사람 사이에 살고, 사람 사이에서 울고 웃고 부대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때--푸른 하늘과 찬란한 태양이 있고, 황홀한 신록이

모든 산, 모든 언덕을 덮은 이 때, 기쁨의 속삭임이 하늘과 땅, 나무와 나무,

풀잎과 풀잎 사이에 은밀히 수수되고, 그들의 기쁨의 노래가 금시라도 우렁차게

터져 나와, 산과 들을 흔들 듯한 이러한 때를 당하면, 나는 곁에 비록 친한

동무가 있고, 그의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할지라도, 이러한 자연에 곁눈을

팔지 않을 수 없으며, 그의 기쁨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또, 어떻게 생각하면 우리 사람이란--세속에 얽매여, 머리 위에 푸른

하늘이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주머니의 돈을 세고, 지위를 생각하고, 명예를

생각하는 데 여념이 없거나, 또는 오욕 칠정에 사로잡혀,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싸우는 데 마음에 영일을 가지지 못하는 우리 사람이란,

어떻게 비소하고 어떻게 저속한 것인지. 결국은 이 대자연의 거룩하고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조화를 깨뜨리는 한 오점 또는 한 잡음밖에 되어 보이지 아니하여,

될 수 있으면 이러한 때를 타서, 잠깐 동안이나마 사람을 떠나 사람의 일을

잊고, 풀과 나무와 하늘과 바람과 한가지로 숨쉬고 느끼고 노래하고 싶은

마음을 억제 할 수가 없다.

그리고 또, 사실 이즈음의 신록에는 우리 마음에 참다운 기쁨과 위안을 주는

이상한 힘이 있는 듯하다. 신록을 대하고 있으면, 신록은 먼저 나의 눈을 씻고,

나의 머리를 씻고, 나의 가슴을 씻고 다음에 나의 마음의 모든 구석구석을

하나하나 씻어 낸다. 그리고, 나의 마음의 모든 티끌--나의 모든 욕망과 굴욕과

고통과 곤란이 하나하나 사라지는 다음 순간, 별과 바람과 하늘과 풀이 그의

기쁨과 노래를 가지고 나의 빈 머리에, 가슴에, 마음에 고이고이 들어앉는다.

말하자면, 나는 흉중에도 신록이요, 나의 안전에도 신록이다. 주객 일체, 물심

일여라 할까, 현요하다 할까, 무념무상, 무장무애, 이러한 때 나는 모든 것을

잊고, 모든 것을 가진 듯이 행복스럽고, 또 이러한 때 나에게는 아무런 감각의

혼란도 없고, 심정의 고갈도 없고, 다만 무한한 풍부의 유열과 평화가 있을

따름이다. 그리고 또, 이러한 때에 비로소 나는 모든 오욕과 모든 우울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고, 나의 마음의 모든 상극과 갈등을 극복하고 고양하여,

조화 있고 질서 있는 세계에까지 높인 듯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

그러기에, 초록에 한하여 나에게는 청탁이 없다. 가장 연한 것에서 가장 짙은

것에 이르기까지 나는 모든 초록을 사랑한다. 그러나 초록에도 짧으나마 일생이

있다. 봄바람을 타고 시 움과 어린 잎이 돋아 나올 때를 신록의 유년이라

한다면, 삼복 염천 아래 울창한 잎으로 그늘을 짓는 때를 그의 장년 내지

노년이라 하겠다. 유년에는 유년의 아름다움이 있고, 장년에는 장년의

아름다움이 있어, 취사하고 선택할 여지가 없지마는, 신록에 있어서도 가장

아름다운 것은 역시 이 즈음과 같은 그의 청춘 시대--움 가운데 숨어 있던

잎의 하나하나가 모두 형태를 갖추어 완전한 잎이 되는 동시에, 처음 태양의

세례를 받아 청신하고 발랄한 담록을 띠는 시절이라 하겠다. 이 시대는 신록에

있어서 불행히 짧다. 어떤 나무에 있어서는 2, 3주일을 셀 수 있으나, 어떤

나무에 있어서는 불과 3, 4일이 되지 못하여, 그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은

지나가 버린다. 그러나 이 짧은 동안의 신록의 아름다움이야말로 참으로 비할

데가 없다. 초록이 비록 소박하고 겸허한 빛이라 할지라도, 이러한 때의 초록은

그의 아름다움에 있어 어떤 색채에도 뒤지지 아니할 것이다. 예컨대, 이러한

고귀한 순간의 단풍 또는 낙엽송을 보라. 그것이 드물다 하면, 이 즈음의

도토리, 버들, 또는 심산에 있는 이름 없는 이 풀 저 풀을 보라. 그의 청신한

자색, 그의 보드라운 감촉, 그리고 그의 그윽하고 아담한 향훈, 참으로 놀랄

만한 자연의 극치의 하나가 아니며, 또 우리가 충심으로 찬미하고 감사를 드릴

만한 자연의 아름다운 혜택의 하나가 아닌가?

 

 

 

 

 

 

 

 

"조윤제편"

 

 

 

 

 

조윤제(1904__1976)

국문학자. 호는 도남. 경북 예천 출생. 경성 제대 졸업 문학 박사. 서울대

문리대학장, 성균관대 부총장 역임.

그의 국문학사 연구는 민족 정신의 고취와 독립 운동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저서로 "국문학사" "조선 시가 연구" 등이 있다.

 

 

 

 

 

 

은근과 끈기

 

 

 

한국 문학과 한국 사람 생활의 특질이란 어떤 것인가?

오랜 역사의 전통에서 살아 온 한국 사람의 생활에 특질이 없을 리 없고,

그를 표현한 한국 문학에 특질이 없을 수 없다.

한국의 예술을 흔히들 선의 예술이라 하는데, 기와집 추녀 끝을 보나, 버선의

콧등을 보나, 분명히 선으로 이루어진 극치다. , 미인을 그려서 한 말에 '반달

같은 미인'이란 말이 있으니, 이도 또한 선과 선의 묘미일 뿐 아니라, 장구

소리가 가늘게 또 길게 끄는 것도 일종의 선의 예술일시 분명하다.

그런데, 반달은 아직 충만하지 않은 데 여백이 있고, 장구 소리에는 여운이

있다. 어 여백과 여운은 그 본체의 미완성을 말함일지 모르나, 그러나 그대로

그것은 완성의 확실성을 약속하고, 또 잘리어 떨어지지 않는 영원성을 내포하고

있으니, 나는 이것을 문학에 있어, 또 미에 있어 '은근''끈기'라 말하고 싶다.

춘향전은 고전 문학에 있어 걸작이라 평하고, 주인공 춘향은 절대 가인, 만고

절색이라 한다. 그러나 춘향전은 어디가 좋은가? 춘향과 이 도령의 로맨스쯤은

어디에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니, 그것만이 춘향전의 우수성이 될 리 없고,

춘향전이 가곡이라 했자, 그 외에도 얼마든지 좋은 가곡이 있어 하필 춘향전이

걸작 될 것 없는 것 같지마는, 그래도 어딘지 모르게 좋고, 언제 어디서 몇 번을

보고 듣고 읽어도 좋다. 이것은 무엇인가? , '은근'이다. 좋다는 점이 뚜렷이

그대로 노출되지 않고, 여백과 여운을 두고 있는 곳에 은근한 맛이 있어, 일상

보고 듣고 읽어도 끝이 오지 않는다. 더욱 춘향의 미에 이르러서는, 그 얼굴,

몸맵시 어디 하나 분명히 손에 잡힐 듯이 묘사된 바 없고, 그저 '그름 사이에

솟아 있는 밝은 달 같고, 물 속에 피어 있는 연꽃과 같다.' 하였지마는, 춘향전

전편을 통해서 보면, 춘향같이 예쁜 계집이 없고 아름다운 여자가 없다. ,

춘향은 둘도 없는 절대 가인이요, 만고 절색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곧 춘향의

미가 은근하게 무럭무럭 솟아 올라와, 독자로 하여금 마음껏 그 상상에 맡겨,

이상적인 절대의 미경에 춘향을 끌고 가게 하기 때문이다.

 

 

, 고려 때 시가에,

 

 

 

 

가시리 가시리잇고

바리고 가시리잇고

날러는 엇디살라 하고

바리고 가시리잇고

잡사와 두어리마나는

선하면 아니 올셰라

셜온 님 보내옵노니

가시는든 도셔 오쇼셔

 

 

 

 

라는 이별가가 있다. 이 또 얼마나 은근한가? 그이운 임을 보내는 애끊는

정은 측정할 수 없고, 따라 그 애원, 호소, 연연의 정이 지극하지마는, 그것이

실로 은근하게 나타나 애이불비하는 소위 '점잔'을 유지하면서, 문자 밖에

한없는 이별의 슬픔이 잠기어 있다.

이렇게 은근하고 여운이 있는 정취는 저절로 끈기가 붙어 있는 것이니, 알의

가시리 이별가에서 볼지라도, 그 그칠 줄 모르게 면면히 길게 또 가늘게

애처롭게 끄는 그것은 일종의 '끈기'라 아니 할 수 없다. 더욱이 정포은의

단심가,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이시랴.

 

 

 

 

에 이르러서는 한국 문학의 끈기가 온통 그대로 표출되어 있는 감이 있다.

이러한 표현과 묘사는 우리 문학 작품에 있어 결코 희소하지 않으니, 이를테면

유산가의 일절에,

 

 

 

 

층암 절벽상에 폭포수는 콸콸, 수정렴 드리운 듯, 이 골 물이 주룩주룩, 저 골

물이 솰솰, 열에 열 골 물이 한데 합수하여 천방져 지방져, 소코라지고 평퍼져

넌출지고 방울져, 저 건너 병풍석으로 으르렁콸콸 흐르는 물결이 은옥같이

흩어지니, 소부, 허유 문답하던 기산 영수가 아니냐.

 

 

 

 

라 한 것이라든지, 또 사설 시조에,

 

 

 

 

나무도 바윗돌도 없는 뫼에 매게 휘쫓긴 까토리 안과,

대천 바다 한 가운데 일천 석 실은 배에, 노도 잃고 닻도 잃고 용총도 끊고

돛대도 꺾고 키도 빠지고 바람 불어 물결치고 안개 뒤섞여 잦아진 날에,

길은 천리 만리 남고 사면이 거머어득 저문 천지 적막 가치놀 떠 있는데, 수적

만난 도사공의 안과,

엊그제 임 여읜 내 안이야 얻다가 가흘하리요.

 

 

 

 

라 한 것이라든지, 또 모든 소설의 주인공들이 파란 중첩하고 복잡 기괴한

일생에서 모든 간난을 극복하고, 결국 해피 엔드로 끌어가는 것이라든지 하는

것은 다 그러한 것이다.

 

 

 

'은근''끈기', 이것은 확실히 한국 문학에 나타나는 현저한 한 모습일

것이다. 혼돈 광막한 것이 중국 문학의 특성이고, 유머러스한 것이 영국 문학의

특성이고, 담백 경쾌한 것이 일본 문학의 특성이라고 한다면, 나는 감히 이

'은근''끈기'를 한국 문학의 특성이라 주장하고 싶다.

우리 민족은 아시아 대륙의 동북 지방, 산 많고 들 적은 조그마한 반도에

자리잡아, 끊임없는 대륙 민족의 중압을 받아 가면서 살아 나와서, 물질적

생활은 유족하지를 못하였고, 정신적 생활은 명랑하지를 못하였다. 그리하여,

우리는 어느덧 자신도 모르게 은근하고 끈기 있는 문학 예술 내지는 생활을

형성하여 왔다. 그것의 호불호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과거의 전통이었고,

운명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살아 나왔고, 그렇게 살고 있고, 또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그러므로, '은근'은 한국의 미요, '끈기'는 한국의 힘이다. 은근하고 끈기 있게

사는 데 한국의 생활이 건설되어 가고, 또 거기서 참다운 한국의 예술, 문학이

생생하게 자라나갈 것이다.

 

 

 

 

 

 

 

 

 

 

 

 

"김광섭편"

 

 

 

 

 

김광섭(1905__1977)

시인. 호는 이산. 함북 경성 출생. 일본 와세다 대학 영문과 졸업. 대통령

공보 비서관, 세계 일보 사장, 경희대 교수 역임.

초기에는 고요한 서정과 냉철한 지성으로 민족 의식을 노래한 것이 많았으나

그 후로는 여유 있는 인생의 정취를 담았다. 말기의 시에는 사회 비평적 의식과

근원에서 향수가 짓들어 있다.

 

 

 

 

 

 

수필 문학 소고

 

 

 

수필이란 글자 그대로 붓 가는 대로 써지는 글이다. 그러므로, 다른 문학보다

더 개성적이며 심경적이며 경험적이다. 우리는 오늘날까지의 위대한 수필

문학이 그 어느 것이나 비록 객관적 사실을 다룬 것이라 하더라도, 심경에

부딪치지 않은 것을 보지 못했다. 강렬하게 짜내는, 심경적이라기보다 자연히

유로되는 심경적인 점에 그 특징이 있다. 이 점에서 수필은 시에 가깝다.

그러나, 시 그것은 아니다.

우리는 시를 쓰려 한다. 소설을 지어 보려 한다. 혹은 희곡을 만들어 보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때 그 어느 것이나 함부로 달려들려는 무모한은

아니다. 동일한 작자면서도 그 태도가 서로 다르다. 시는 심령이나 감각의

전율된 상태에서, 희곡과 소설은 재료의 정돈과 구성에 있어서 과학에

가까우리만큼 엄밀한 준비에서 시작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보면 수필은 달관과

통찰과 깊은 이해가 인격화된 평정한 심경이 무심히 생활 주위의 대상에 혹은

회고와 추억에 부딪쳐 스스로 붓을 잡음에서 제작되는 형식이다. 제작이라고

하나, 수필에 있어서는 의식적 동기에서가 아니요, 결과적 현상에서이다. 다시

말하면, 수필은 논리적 의도에서 제작된 일은 없다. 수필은 써 보려는 데서

시작되어 써진 것이다. 어느 작가가 소설이나 희곡이나 시를 써 보려는

한가로운 마음에서 쓸 것인가, 그것들은 작가에게서 의식적으로 제작되었다.

진실로 제작되었다. 그러나 수필은 한가로운 심경에서의 시필쯤에 그치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수필은 수필되었다고 하고 싶다.

그러므로 희곡이 조직적, 활동적이요, 시가 운율적. 정서적이라면, 수필은

진실한 태도에서 인생을 관조하는 격이라고 비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걷잡을 수 없으면서, 그래도 어딘가 한 줄기의 맥이 있다. 그것이 위대한 정도에

따라서 더욱 그렇다. 우리는 사람의 기분이란 어딘가 무책임하게 기복하는

듯함을 느끼면서, 그 이면에 인격이라는 그림자가 숨어 있음을 본다. 한 개의

영혼 위에 얼마나 많은 기분이 노는가? 이 기분을 무시하여 버리면 수필은 또한

같은 운명에서 무시될 것이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은 기분의 배면에 있는

영혼의 존재를 망각하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좋은 기분에서 살 필요를

느낀다. 또한 살고자 희구도 한다. 그것은 영혼의 환경인 까닭이다. 이와 같이,

수필에는 기분 가운데서 고백되고, 어둠 속에서 흐르는 광선 같은 맥이 있다.

여에 소설이나 희곡같이 짜이지 못하면서도 빛나는 경지가 있는 것이다.

문학의 형식에서 보면, 수필에는 소설이나 희곡에서 보는 바와 같은 어떤

완성된 폼이 없다. 단편 소설을 제작하려면 우리는 적어도 에드거 앨런포나

안톤 체호프나 혹은 모파상에게 잠시라도 사숙하여야 하겠고, 시나 희곡을

지으려면 괴테나 셰익스피어나 혹은 입센 등에게서 그 완성된 폼을, 비록

모델로 삼지 않는다 할지라도 한번 살펴볼 아량쯤은 있어야 하겠지만, 수필에

있어서는 그 형식을 구하거나 참고하려고 찰스 램이나 해즐리트를 찾을

필요성까지는 없을 것 같다. 가장 아름다운 수필을 찾아 우리의 문학적 항심을

만족시키며 영양 시키려는 점은 찬하여 마지아니할 바이나, 그 형식의 섭취에

구속될 바는 없는 것이다. 오직 우리는 사로잡히지 않는 평정한 마음에서, 마치

먼 곳 그리운 동무에게 심정을 말하려는 듯한 그러한 한가로운 듯한 붓을

움직여서, 무의식한 가운데서의 단성으로 한 편의 문장을 써 내면, 그것은

수필이 될 것이다. 잘 되었으면 훌륭한 창작으로서의 문학에까지, 못 되면

잡문에까지, 상하의 단계가 지어질 것이니, 그것은 문학으로서의 소설. 시가

있음에 비하여, 흔히 문학 아닌 소설이 있고 시가 있음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므로, 형식으로서의 수필 문학은 무형식이 그 형식적 특징이다. 이것은

수필의 운명이요, 또한 성격이다.

한 시대나 한 세기의 소설, , 희곡은 내용이나 형식으로 보아 객관적으로 몇

가지의 주류에 분류하여 논할 수 있다. 그것은 시대 사조나 사회 의식에

연결되어 발전 쇠퇴하는 특징을 가진 문학 형식인 까닭이지만, 수필에 있어서는

그 성쇠 기복이 시대적 제약에 의거한다고 간주하기 보다 오히려 생활 단면에

부딪치는 까닭에 그렇게 커다란 조류와는 비교적 관련이 적게 자라 간다고 할

수 있다.

일시에 준비된 의식이나 사상의 눈을 떠나서, 가을밤 무심히 잡은 펜이 그

유래와 아름다운 가지가지의 서정을 느끼는 대로 쓸 수도 있겠고, 어색한

악수의 풍경에 나타난 세정을, 혹은 사소하나마 매력 있는 제목을 붙잡고

시종이 없을 듯한 기분으로 표현 향락할 수도 있겠고, 혹시 야시의 풍경에서도

흥미진진한 글 한 구절 쓸 수 있을 것이니, 참고서를 구하거나 지식의 정돈을

요할 바는 아니나, 어딘가 탁마된 세련과 각고의 노력이 있어야 함은 문학의 그

어느 분야에서나 공통될 것이다.

이렇게 잡다한--모든 것이 그냥 그대로 내용이 될 수 있는 수필은, 단순한

기록에 그쳐서는 우리의 흥미를 긴장시키지 못할 것이다. 거기에는 유머가

있어야 하겠고, 위트가 있어야 한다. 전자는 무의식적 소성에서 피는 꽃같은

미소요, 후자는 지혜와 총명의 샘과 같다. 이 천연스런 유머와 보석 같은 위트는

수필의 본성같이 인식되어, 일대의 수필가 램이나 해즐리트에게 있어서 빛나고

있다. 그렇지 않았던들, 건조로운 생활적 심경적 기록에 우리는 매혹되지 않고,

소설이나 희곡에만 경도되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유머나 위트가 수필의

속성이라고 판정될 것은 아니다. 그것은 소설이나 희곡에도 솜씨 좋게 짜여서

섬광하는 까닭이다. 그 이외에 어떠한 만화적 특징이나, 역사적, 전기적 혹은

기상적 성벽으로도 수필은 또한 찬란하게 시험되어진다. 그러나 오늘까지

위대한 문학으로의 수필에는 유머와 위트가 혼연히 숨어 있어, 우리를 매혹하는

마치 수필의 본질같이 되어 있다.

모든 문학과 예술은 결국 사람에게서 생겨서 사람에게로 돌아간다. 소설이나

희곡이라는 이름에 사로잡혀서, 그것이 수필보다 우월하며 향상성이 많다거나,

혹은 수필이라는 산만하여 보이는 어의에서 오는 선입견 때문에 그것이

발전성이 적다 하는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어떤 사회이건 그것이 인간의

사회요, 인간으로 구성되는 이상 수필은 전인격적 문학 표현으로 어느 사회에나

존재할 것이다. 사람은 이데올로기적 상태에서만 사람이 아니요, 훌륭한

사람이면 그 어느 정신적 심적 상태에서도 인간일 것이며, 그것은 또한 수필을

통하여서는 허식 없이 표현된다. 그러므로, 수필이란 개성적 심경과 기분에

싸여서 어떠한 대상이나, 또는 문제를 간단하게 단편적으로 그리면서도,

진지하게 붓 가는 대로 써 내려는 심정에서의 제작일 것이다. 그 심정이 정치,

경제로 향하든지, 사회 문제나 생활 개선으로 향하든지 그것은 평론에 미치지

못하는, 그러면서도 평론이 가질 수 없는 영역을 가지는, 따라서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 완성을 기다리지 않으면서 완성되는 점에 문학적 특수한 위상이 있다.

모든 문학의 출발점이 인간에 있다면, 수필같이 자연스럽게 인간성을 띤 문학

형식은 서정시 이외에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수필의 맛은 결국 어떠한

시간에 어떠한 문제나 어떠한 대상에 작가의 기분이 부딪쳐서 표현되는

인간미에 있다. 그 인간미를 보여 줄 흥미나 부질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평론이나 소설은 만들 수 있을지언정 수필은 쓸 수 없다.

인간의 생활이란 요컨대 수필의 심경에서 성숙된다. 그러므로, 수필을 써 보지

못하고 문필을 끝마친 문인이 있다면, 나는 그를 인간성으로 보아 불행하다

하고 싶고, 또한 문학 성격의 전면으로 보아 불행하다 하고 싶다. 생활을 시와

산문의 조화에서 성숙된다. 그것이 문학으로 볼 때 곧 필수이다. 그러므로

수필의 성격은 인간의 성격이라 하면 가장 타당할 것이다.

 

 

 

 

 

 

나무

 

 

 

널찍한 마당도 아닌데 남쪽 한귀퉁이에 파초 한 그루, 단풍 한 그루, 무궁화

한 그루와 풀 몇 포기가 살고 있는 조그마한 화단이 있어서 겨울을 지낸 마른

가지에 새싹이 돋아나기를 기다리며 풀에는 어서 봄이 되어 꽃이 피기를

기다리며 마루에 앉아서 외로울 때면 저으기 위로도 받으며 말은 없지만 변함

없는 친구처럼 대한다.

그러니까 나무는 식물이라는 경계선을 넘어서 나에게 친근해진다. 어떤

때에는 머리를 흙 속에 파묻고 땅에 거꾸로 서서 팔을 위로 올리고 하늘에

기도하는 경건한 자세같이 보이기도 하여 일생에 한 번도 경건한 마음을 가져

보지 못한 위인보다도 더 고상해 보인다.

그러므로 나는 나무를 창생이라고 느끼는 때도 있다. 창생이란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초목에 비유해서 가리키는 말인데, 그 창생이 하도 많고

우글거리기에 억조창생이라고도 한다.

지구상에 인구가 억으로 헤일 만큼 많기도 하지만 아직 조에는 이르지

못한다. 조라면 천 억의 10배다. 처음에 억조창생이라 한 것이 아니라 한자의

과대성을 빌려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저 울창한 나무처럼 그렇게 많다는

것을 암시란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렇게 생각될 때 사람과 같이 나무까지

합쳐서 억조창생이라 한 것이 아닌가도 생각된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나무를

사람같이 본 적이 많았다.

성황당에 서 있는 나무도 그랬고 단군의 나무처럼 보아 온 박달나무 아래

처음으로 신시가 열렸다 해서 그 때의 박달나무를 신단수라 하여 신성시한 것도

그런 점에서일 것이다. 지금도 시골 같은 데서는 마을에 몇백 년 묵은 노목이

있으면 그 나무에 제도 지내고 치성까지 하는 경우도 있어서 그런 나무에

불경한 식을 하면 벌을 받을까 두려워서 함부로 도끼질을 못할 뿐 아니라 그

마을의 수호신처럼 어렵게 대한다.

그래서 산에 나무가 무성하면 그 가까이 사는 사람들에게 유익한 점도

많거니와 사람의 정신과 마음을 흐뭇하게 해 주기도 한다. 나무가 울창한 곳에

사는 사람들을 보면 신화적인 생존자들 같기도 하다. 이런 데서 산림의

사상이라는 것이 발생하기도 하는데 신화의 발생이 곧 그것인 것이다.

그러므로 잘사는 나라에는 산에 나무가 울창하고 또 신화나 전설이 많다.

따라서 나무는 인류의 문화에까지도 관련된다. 나무는 주로 산에 산다. 사람의

대부분은 나무처럼 산에 사는 것이 아니고 들에 살지만 그 나라의 인구가

부조리하게 늘어나면 원인이야 따로 있겠지만 간접적으로 산까지 해를 입어

점점 황폐해져서 나무가 자연 그대로 살지 못한다.

사람이 가까이 살면 새나 짐승도 마음놓고 살지 못하지만 나무도 사람 냄새가

풍겨서 그런지 사람 곁에서는 잘 자라지 못한다. 그러니까 인구가 많은 나라나

대도시에서는 수목 애호와 애림 사상이 발생하게 되어 대도로나 거리에까지

나무를 심어 자연의 작은 일부나마 즐기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 나라는 한국으로서 유명한 것이 아니라 옛날부터 금수강산으로 유명해서

우리의 머릿속에 전승되어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금수강산, 금수강산 한다.

그렇게 아름답던 금수강산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동안에 마음과 정신도

황폐하고 산도 황폐해진 까닭에 국토를 다시 애호하는 정신으로 정부에서 산에

나무심기 운동을 전국에 펴기 시작한 것이 식목일의 제정인 것이다.

그뿐 아니라 산에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입산금지까지 강력히

실시하고 있으나 식목일이 있어 20여 년이 되건만 산은 녹화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니 통일하겠다는 자각과 결심에 얼마나한 실천력이 우리에게 있을까.

 

 

 

 

 

일관성에 대하여

 

 

 

내 나이 이제 일흔이니, 이른바 기성 세대다. 아니, 기성 세대에서 구세대라

할 것이다. 그러나 구세대는 구세대임으로 겪어야 했던 과거가 있으니, 이는

젊은 세대들이 그들의 삶을 영위하는 데 혹 참고가 될지도 모른다. 70을 살고도

한 시간의 생각거리가 못 되는 인생이나마 여기 적는 것은 다만 '참고하기'

바라는 뜻에서이다.

나는 1905년에 태어났다. 내가 태어난 집안에는 자녀가 드물었기 때문에,

나의 조부모께서는 나를 백 날 동안 사람에게도 해에도 달에도 보이지

않으시고, 당신들의 방 안에서 무릎에다 놓고 키우셨다 한다. 나는 이 일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나쁜 일이나 하지 않으면서 살려고 생각한다. 이것이

평범한 한 아기를 그토록 소중히 여기신 그분들께 최소한으로나마 보답하는

길이라고 믿는 까닭이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또 하나의 까닭을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 세대)가 다른 사람의 가해를 너무 많이 받았다는...

내가 어렸을 때 우리집 이웃에 서당이 있었다. 나는 거시 놀러 갔다가, 칼을

찬 누런 복색의 일본 헌병을 보았다. 그는 서당 아이들을 내쫓고 그 방을 썼다.

그 다음날부터 나는 길에 버티고 서서 그를 보았다. 그리고, 그는 한 어린이의

감시자가 되었다. 나는 그를 통하여 일본 제국주의의 이미지를 본 것이다.

사상의 씨도 그 때 뿌려진 것이다. 그 다음에 나는 독립군, 의병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면, 간밤에 다녀갔다는 귓속 이야기가 들렸다. 소년은

무슨 장한 것을 남몰래 속에 품은 듯이 자랑스러웠다. 그 후, 삼일 운동을

보았다. 이것을 본 것이 나의 인생길의 방향을 고정시켰다. 소년은 이 때부터

이순신이니 김옥균이니 하는 분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 얼마 후, 나는 서울에 가서 중등 교육을 받고, 일본으로 건너가 영문학을

공부했다. 나는 열심히 공부했다. 그것이 나의 책임을 다하는 길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망국민이기 때문에 당하는 괴로움, 그 수모는 형언할 수조차

없는 것이었다. 당시 도쿄는 공산주의의 아성이었다. 나는 우리의 독립에

혹시나 도움이 될까 하여 한동안 그들을 넘겨다보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기대할 수가 없었다. 나는 차라리 조용한 한 인간으로 살자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힘이 없어 일제에 항거할 수도 없고, 이 땅의 아들이라 순종할 수도

없는 그 가운데, 미칠 듯이 달려드는 고민과 몸부림은 이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마침내 항일 운동에 가담하고 만 것이다. 참으로 뼈저린, 일본의

8년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서울에 돌아온 나는 '극예술 연구회'에 들어갔다. 나는 물론

연극인이 아니다. 그러나 민족극을 수립해 보고 싶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참절비절한 현실이었으므로, 이 소극적인 저항마저 쉬운 일은 물론

아니었다.

나는 또 한편으로 교편을 잡았다. 영어 교과서는 나의 큰 위안이 되었다.

바이런, 셸리, 키츠, 워즈워즈 등의 시가 있었다. 나는 이 시들을 풀이하면서

민족을 이야기하고 자유를 말하고, 그리하여 간접적으로나마 학생들에게

'한국인임'을 깨우쳐 줄 수가 있었다. 끊임없이 일경에게 불려다니면서도 나는

이 일을 그만둘 수가 없었다. 궁성 요배라는 것도 할 수 없었고, 창씨 개명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나는, 마침내 그들의 형무소에 갇힌 바 되었다. 그 때 나를

담당했던 일인 검사가, 너 같은 자를 내놓는다면 대일본 제국이 성립되지 못할

것이라고 극언하던 것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나는 거기서 괴롭고 고독한 3

8개월의 독방 신세를 졌다. 그 동안에 외국인이 될 수 없다는 나의 신념은 점점

굳어만 갔다.

감옥에서 나오자 나는 곧 광복을 맞이했다. 비록 병상의 몸으로나마,

제국주의의 시체를 보면서 목청껏 만세를 불렀다. 내가 부른 만세는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나는 어려서 본 삼일 만세의 이미지 그대로 부른 것이다.

그리고 그 후에도 그 이미지를 눈앞에 그리며, 사회 활동도 하고 반공 운동도

벌였다. 그리고, 우리 나라의 공무원 노릇도 했다.

문득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어린 나를 감시하던 그 일본 헌병, 소곤소곤

들리던 독립군 이야기, 어린 눈으로 바라본 삼일 운동, 이 일들은 모두 나의

어린 가슴 속에 민족사의 한 목표, 내가 향해서 걸어가야 할 목표를 설정해 준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아무것도 이룩한 것이 없지만, 그런대로 이 한

목표를 향하여 일관하게 가는 길이라 별다른 후회가 없다.

오늘날, 세계의 젊은이들 가운데는 방황하는 사람들이 적잖은 것 같다. 그들은

이 시대를 매우 어려운 때로 보고, 심각한 전환기니 상실의 시대니 하면서

고독해하고, 또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 난무를 즐긴다고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풍조는 어느덧 우리나라에도 상륙하여, 일부 청소년들이 이에 쏠리고 있는

듯하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것은 자기 방치다. 시대를 핑계삼지 말아야 한다.

목적지가 없는 사람들, 목적지가 있어도 사명감이 없는 사람들, 오직 그들만이

시대를 핑계삼아 불순하고 나약한 자기를 합리화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스라엘 족속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 그들은 모세의 인도로 애급의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 가나안 복지를 향했다. 그러나, 그리로 가는 도중에

그들은 어찌했는가? 좀더 참지 못하고 추악한 난무 속에 휩쓸리고 말았다. 4

년의 노예 생활에서 구제되는 날에도 자기를 찾지 못한 것이다. 이제 우리가

그들의 전철을 되밟아야 할 것인가?

우리는 명백한 목표가 있다. 안으로는 통일을 이룩하며, 밖으로는 세계에

웅비해야 할 우리들이다. 그것이 또한 제군의 자기 실현이기도 하다. 이렇듯

명명백백한 목표가 있는데도 방황해야 할 것인가? 작은 생활 하나하나에도

경건한 태도로 임하여 한 발씩 한 발씩 우리들의 목표에 접근해 가야 할

것이다.

인생, 나는 이것을 잘 모른다. 그러나 무엇인가 일관된 것이 있어야 할 것

같다. 방황하는 것이 아니어야 할 것 같다. 더구나, 남에게 괴롭힘을 많이 받은

우리의 인생은 이것이 첫째 자기 구제인 것이다.

 

 

 

 

 

 

 

 

 

 

 

 

"이헌구편"

 

 

 

 

이헌구(1905__1982)

평론가. 함북 명천 출생. 일본 와세다 대학 불문과 졸업. 문학 박사. 민중

일보 사장, 공보처 차장, 이화 여대 문리대학장 역임.

일제 시대에 민족적 자유 정신과 세계적 양식을 추구하는 일련의 평론을

발표하다가 일제 말기에는 붓을 꺾었었다. 해방 후에는 반공 자유 문화를

일관성 있게 제창하였다.

정확한 비평 논조와 문장으로 지목된 평론가였으며 그 면모를 여기에 실린

수필들 속에서도 볼 수 있다.

 

 

 

 

 

 

시인의 사명

 

 

 

평화로운 시대에 있어서 시인의 존재는 가장 비싼 문화의 장식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시인이 처하여 있는 국가가 비운에 빠지거나 통일을 잃거나

하는 때에 있어서, 시인은 그 비싼 문화의 장식에서 떠나, 혹은 예언자로, 또는

민족혼을 불러일으키는 선구자적 지위에 놓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부도 군대도 가지지 못하고, 제정 러시아의 가혹한 탄압 아래 있던 폴란드

인에게는, 시인의 존재가 오직 국민의 재생을 예언하며, 굴욕된 정신 생활을

격려하는 크나큰 축도를 드리는 예언자로 생각되었으며, 아직도 통일된 국가를

가지지 못하고 이산되어 있는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시성 단테는 '오로지 유일한

이탈리아'로 숭모되어 왔었으며, 1차 세계 대전 때에, 독일군의 잔혹한

압제하에 있었던 벨기에 인에게 있어서, 시인 베르하렌은 조국의 한 신령으로

추앙되었었다.

우리가, 과거 40년간 일본 제국주의의 탄압 밑에서, 인류가 정당히 가질 수

있는 모든 자유와, 의욕과, 사색과, 행동을 여지없이 박탈당하고 있던 중에서도,

오히려 우리의 시가는 문학의 다른 어느 부문에서보다도 훨씬 생기를 띠고

찬란하여, 예술의 아름다운 경지를 지켜 왔을 뿐 아니라, 우리 민족의 아름다운

언어를 풍요하게 하는, 높은 문화의 생산자이기도 하였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기 1, 2년 전부터, 저들은 민족 문화 말살의 최악의 행동을

전개시키기에 사력을 다하여, 한국 문화 전멸 운동으로 나왔으니, 어론 기관은

폐쇄 당하고, 한글 운동을 탄압되고, 드디어는 창씨 제도라는 인류사에 없는

야만 정책을 베풀어서까지 우리 민족의 문화를 없애 버리려 들었던 것이었다.

이리하여, 모든 시인의 붓은 꺾이어지고, 아니, 불타는 정의와 민족애의 시혼은

저들의 칼끝 아래서 저주받고 절단되어 버렸고 오직 일부의 반동적인 문학만이,

불가항력이라기보다 착각된 의식전도로 민족적 불행의 사실을 연출함에 그치고

말았다.

그러나 815일에 이르기까지의 약 5년간의 혼란기와 반동기에 있어서,

시인들은 오로지 침묵함으로써 웅변 이상으로 우리의 시가와 민족의 정신을

지켜 온 영광의 전사였다. 이제, 우리의 모든 감정과 지혜와 심혼은 해방되었다.

폐쇄되었던 시의 전당의 철비는 일격에 깨뜨려지고 말았다. 우리의 말이

홍수처럼 밀려나오고, 우리의 감상이 조수처럼 부풀어오르는 자리에서, 시인의

가슴은 미어지는 듯 터지는 듯한 흥분 속에 휩싸여졌다. 그리하여 저들이

우리에게 준 지옥의 낙형에서 소생하였다.

선정이라고 가르치던 억압에서, 미덕으로 꾸미어 내던 약탈에서, 굴욕을

충절이라고 깨우치려 들던 그 모욕에서 벗어나, 이제 우리들은 아름답지 못한

과거를 불살라 버리고, 우리 혈관 속으로 흘러든, 그 불순한 피의 원소를 모조리

씻어 낸 다음, 우리의 심경에 일점의 흐림도 없이, 재생하는 조국의 광복만을

비추어 볼 것이 아닌가? 폴란드의 모든 시인처럼, 단테나 베르하렌과 같이,

우리의 진정한 시혼으로 하여금, 해방의 역사 위에 빛나는 시의 기념탑을

세워야 하고, 유일한 예언자나 신령처럼 숭앙되어야 할 이 땅의 시인들이

아닌가? 시인아, 이제 너는 불사의 민족혼을 불러일으킬 선구자의 위치에 놓여

있다.

 

 

 

 

 

 

어머니

 

 

 

어머니의 사랑, 그 지극하신 사랑! 사랑의 참뜻을 처음으로, 그리고 가장 깊이

가르쳐 주신 어머니...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나서 처음으로 입을 열었을 때, 그 때 우리 입에서 나온

최초의 언어는 '엄마', 곧 어머니가 아니었던가!

어머니를 부르고 어머니를 외치며 우리는 인간임을 알았고, 그런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는 무시로 어디서나 어머니를 부르고 어머니를 외쳤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즐거운 곳에서나 괴로운 곳에서나, 마음이 아프거나 몸이 아프거나,

우리는 언제나 어디서나 어머니를 찾으며 이렇게 자라 왔다.

어머니는 온통 우리를 보호해 주시는, 무너짐 없는 성이었다. 어느 누구든지,

어머니의 품속에서는 이 세상에 무서워할 것도 없는 똑같은 왕자요 공주였다.

거기서는 항상 다사로움과 밝음과 꿈과 노래마저 숨어서 빛나는 것이었다.

이렇게 엄마, 어머니를 생각하매, 나의 머릿속에는 문득 세 가지의 어머니의

상이 스치고 지나간다.

그 하나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니오베이다. 자기만이 세상의 모든 영화를

다 누리는 듯이 안하무인으로 오만했던 왕비 니오베가, 아폴로의 노염을 사서

열넷이나 되는 아들딸들을 다 잃자,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려

마침내는 '니오베의 샘'이 되었다는 그 이야기. 아무리 현실적인 영화나 높은

지위를 차지했다 할지라도, 그 아들 딸을 잃어버린 한 여인, 한 어머니로

돌아왔을 때의 그의 슬픔은 결코 끝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이,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임을 깊이 깨달은 니오베의, 그 끊임없이

흘러내리던 희한과 비통의 눈물...

다음은, 인간의 모든 죄를 대속하고 십자가에 달려 숨진 예수 그리스도를

안고 비탄에 잠긴 마리아의 모습, 한 소박한 여인으로서, 그 아들이 부활할 것과

그 아들이 인류 역사를 꿰뚫은 거룩한 존재임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항상

가난하고 헐벗었으며 하루도 평안한 날이 없었던 그리고 마침내 극형으로 숨진

그 아들의 주검을 본 마리아의 슬픔. 누구의 위로도 없던, 이 세상에서 가장

외롭고 불행했던 그 어머니. 그러나,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로 새겨진 그 모자의

, 숨져서 고요히 그 어머니의 무릎 위에 안긴 예수의 모습, 그 아들과 그

어머니의 무언의 무한한 대화, 삶과 죽음을 초월한 곳에서 영원히 빛날 그

어머니의 사랑...

끝으로, 한 젊은 아들을 형장에 보낸, 우리 나라의 어느 가난한 어머니의

모습. 북악산에서 몰아치는, 거세고 매서운 찬바람을 무릅쓰고 매일같이

교도소를 찾은 그 가엾은 어머니. 어느 날, 그는 품속에서 우윳병을 꺼내 그

아들에게 주었다. 일찍이 그 아들을 안고 젖을 먹여 주었던 어머니. 그러나,

이제는 늙고 만 어머니가, 식을세라 차질세라 하고 품속에다 품어 온 우윳병,

체온과 더불어 그 뜨거운 사랑으로 더워졌을 우윳병을 꺼내 준 그 어머니의

손길, 그 큰 사랑이 마침내 그 아들로 하여금 그 사실을 수기로 쓰게 했고,

그리고 그 수기를 읽으며 목메던 필자...

모든 어머니가 다 불행하지는 않았으리라. 그러나, 많은 어머니들이, 견딜 수

없는 가지가지의 현실적 불행과 고난과 경멸과 모욕을 달게 받으며, 그 아들과

딸을 위해 한 몸을 온전히 바쳐 왔다. 당신의 어머니도 나의 어머니도 그런

상황 속에 살고 계시고 혹은 살다가 가셨다. 아무 보상도 없이...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나는 온몸에 심한 오한을 느꼈다. 내 어머니의 모습이

눈앞에 나타나셨기 때문이다. 주름이 잡히고 조금도 미인이 아니신, 얼굴에 약간

자국마저 가지신 내 어머니의 모습. 한평생 그리움과 삶의 고됨에 시달리다

가신 나의 어머니...

우리의 어머니들에게도 좀더 자유롭고 인간적인 삶을 향유할 수 있는, 그런

자리를 마련해 드려야겠다. 우리의 어머니는 영원히 웃으시고 기뻐하시고

자유로우셔야 한다. 그리고, 어머니의 그 한없는 사랑에 대한 우리들의 대답이

선명해야 할 것이다.

'우리들 머리 위에 얹으신 그 손길의 따사로움이 영원하소서.'

 

 

 

 

 

 

 

 

 

"이효석편"

 

 

 

 

이효석(1907__1942)

소설가. 호는 가산. 강원도 평창 출생. 경성 제대 법문학부 졸업. 숭실 전문

학교 교수 역임.

한국적인 자연의 아름다움을 배경으로 주옥 같은 단편 소설을 썼던 이효석은

수필에도 여러 작품을 남겼다. 간결체 문장의 전형을 볼 수 있다.

 

 

 

 

 

 

채롱

 

 

 

시골

 

 

 

 

우거진 여름 나무 그림자가 아니라 잎이 떨어지고 가지만이 앙상하게 남은

겨울 나무의 그림자라는 것을 사람들은 그다지 생각해 본 적이 없을 듯하다.

우거진 나무 그림자라는 것은 으슥한 낮잠의 터는 되어도 겨울 나무 그림자의

외롭고 아름다움은 없다. 겨울 나무가 푸른 그림자를 처녀설의 흰 막 위에

던지고 있는 그림은 쓸쓸하면서도 깨끗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그런 아름다운 그림을 나는 겨울에 함경선을 지난 때에 가장 흔히 본다.

과수원이나 혹은 낙엽송림에 눈이 쌓여 아직 밟히지 않은 그 백지 위에

나뭇가지 혹은 수풀의 그림자가 푸른 목판화같이 또렷하게 밝혀져 있는 풍경은

아무리 상 주어도 오히려 부족하다. 차창에서 눈을 떼지 않고 지나가는 그 한

폭을 아깝게 여기며 다음 것을 기대하는 수밖에는 없다. 조촐하면서도 쓸쓸한

나무 그림자를 볼 때 나는 시골의 생활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차가 한적한 역에 머물러 눈에 싸인 마을을 바라보면서 고요한 길을 걷노라면

대체 마을에는 사람이 살고 있는가 없는가 그 속에도 생활이 있나... 의심하게

된다. 별것 아니라 나무 그림자 같은 생활이 그 속에 있음을 깨닫게 되고

이상한 것은 그런 생활에 곧 또 익어져 감이다. 화려한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지극히 쓸쓸한 곳에서도 사람은 살 수 있는 것이요, 살라는 마련인 듯하다.

무료한 속에서 나는 C의원을 찾는 날이 많았다. 응접실에서 난로를 쪼이면서

한가할 때의 닥터 B와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지운다. 밤이면 나로가 달아서

한구석이 과실같이 새빨갛게 익은 것을 둘러싸고 앨범을 뒤적거리고 '우울한

일요일'의 레코드를 듣다가 이웃방에 준비되어 있는 늦은 만찬을 시작한다.

식탁의 진미는 인읍에서 주인이 손수 사 온 도미, 굴과 식혜, 수정과, 부인이

손수 만든 아이스크림, 더운 온돌방에서는 이 이상의 선미는 없다. 식사가

끝나면 윷놀이를 하고 상품을 나눈다.

그러나, 시골의 살림은 나무 그림자같이도 호적하고 쓸쓸하다. 난로를 끼고

창으로 눈을 내다보고--너무도 단조하면 젊은 B박사는 인읍으로 영화 구경을

종용한다. 30 몇 년 형인지의 조금 낡은 자가용 차를 손수 운전해 가지고 집

앞까지 맞으러 온다. 같이 타고 몇 마일권 채 못 가서 발동이 머물고 속력이

없어진다.

간신히 몰아 가지고 온 길을 되돌아 어디로 가는가 하고 의아해하노라면 차는

도로 병원으로 들어가 차고 앞에 선다. 여러 날 쓰지 않았던 차에 물을 넣은

지가 오래 된 까닭에 어느 결엔지 얼어 버려서 발동에 지장이 있다는 것이다.

하는 수 없이 굳은 눈이 구두 밑에서 빠작빠작 울리는 밤거리를 걸어가서

차부에서 버스를 타면 아무래도 인읍까지는 10분이 넘어 걸린다. 늦은 영화관에

들어가면 이어 케이블과 콜베엘의 '어느 날 밤에 생긴 일' 시작된다. 낡고

망측한 토키를 끝까지 듣고 나면 골이 띵하다.

거리의 찻집 ''에서 이것도 망측한 커피를 마시며 한 시간쯤 쉬다가

이번에는 택시를 세내서 고개를 넘어 집으로 돌아온다.

이튿날 한낮은 되어서 B씨를 찾으면 그는 조반이 끝났다고 하면서 피곤의

빛을 띠고 나타난다. 들어 보면 놀라운 곡절이다. 새벽 네 시는 되어서 초에서

난산의 급한 환자가 있다고 사람이 뛰어온 까닭에 십리나 되는 원수대까지 차를

몰고 가, 사경의 산부를 수술하고 태아를 조각 조각 오려서 낸 후 집에 와서

잠깐 잠이 들었다가 늦은 조반을 먹고 나니 그 때라는 것이다.

아무렇거나 간에 단조를 깨뜨린 셈이기는 하지만 그러한 병원의 흥분은

지나쳐 처참하다. 중요한 것은 산부의 뒷소식인데 며칠 후에 들으니 참혹하게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18세의 애잔한 소부가 마을의 젊은이와 눈이 맞아

만주에까지 뛰었다가 다시 마을에 돌아와 살림을 시작했으나, 마을 사람들의

눈에 나서 그가 위독할 때에 누구 한 사람 위문 오는 사람도 없고 수술을

시작할 때에는 물 끓여 부는 사람조차 아쉬워서 곤란이었다는 것이다.

말하는 B씨의 낯에도 피곤의 빛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쓸쓸하고 외로울

뿐만 아니라 비참한 이야기다.

시골의 생활이 겨울 나무 그림자같이 적적하고 외로운 것이기는 하나 그러나

나무 그림자의 푸르고 아름다운 점만은 이 산부의 이야기와 인연을 붙여서

말하고 싶지는 않다.

 

 

 

소설

 

 

 

B씨에게서 나는 여러 차례나 만찬의 대접을 받고 어간유의 선물을 받고

했으나 그가 거리의 내 집을 찾아오기 전에는 똑같은 형식으로 갚아 줄 도리는

없다. 찻집에서 마시는 차가 아니라 집에서 손수 만든 차를 낼 수 있으며 손수

요리한 도미와 굴과 아이스크림을 대접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자가용 차는

없어도 구경만은 부자유스럽지 않게 동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그가 직접 나를 찾기 전에는 어쩌는 수 없는 것이며 옷가지나

과자 상자쯤을 소포로 보낸댔자 별로 신통한 것이 아닐 것이요, 차라리

그렇다면 소설책을 보냄이 더 뜻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B씨는 소설을 유난히 좋아한다. 난로 전을 싸고 앉아 늦도록 이야기한 것도

말하자면 대부분이 소설 이야기와 문학 이야기였다. 광범한 그의 소설 지식에는

놀랄 만한 것이 있으며 신문 소설을 등한히 보는 나로서 부끄러울 때가 많다.

그 대신 나는 고전으로 그를 이기며 그의 지식에 그 무엇을 첨가하여 줌을

기뻐한다.

소설책이라고 하여도 자신의 것은 초라하니 훌륭한 책, 가령 해외의 것이라면

맨스필드의 단편집쯤이 적당할 듯하다. 이와나미판쯤으로는 체재가 너무도

빈약하니 좀더 고가의 호화판이나 나오면 한 부 보내리라.

그의 단편집은 확실히 B씨의 시골 살림에는 윤택과 위안을 줄 것이며 특히

"행복" 같은 걸작은 기어이 추천하고 싶은 일편이다. 물론 그 내용보다도

예술적 향기를 그에게 띄워 주고 싶은 것이다.

남편 해리와 미스 팰튼, 아내 영과 에디워렌의 두 쌍의 미묘한 관계를 나는

즐겨하지 않는다. 다만 해리와 영 부처의 행복스러운 가정적 윤곽, 집뜰 앞에 선

한 포기의 만발한 배꽃으로 상징되는 아내의 행복감, 그것이 그들에게 들려

주고 싶은 주제이다.

배꽃이라는 것이 그렇게 아름다운 것임을 사실 나는 이 작품에서 처음 알았고

그것의 행복감의 상징이 이 작품에서같이 여실하게 울려 온 적은 없다.

'...저 쪽편 담으로 향해 한 포기의 밋밋한 배나무가 가지가지에 그득 꽃을

달고 있었다. 마치 구슬같이 푸른 하늘에 고요하고 화려하게 뻗치고 있다. 아직

피지 않은 봉오리가 한 개나 있을까. 시들어 버린 송이가 한 송이나

있을까--한창 깨끗하고 흐뭇하게 활짝 피어 있는 것이 멀리 서 있는

피어사에세 완연히 보여 왔다--'

'...그 나무는 고요하게 그러나 타는 촛불의 불꽃과도 같이 하늘에 뻗치고는

아름답게 떨리고 있다. 볼 동안에 자꾸만 높아져서 금시에 하늘 위 둥근 달에

채일 듯하다...'

봉실한 꽃송이가 바로 행복감 그것이다. 능금꽃과는 달라서 배꽃은 일률로

희다는 점에 작자가 특별히 배꽃을 든 비유와 암시가 있지 않은가 생각한다.

만발했을 때의 능금꽃이라는 것도 물론 아름다운 것도 물론 아름다운 것이기는

하나 지금까지에 능금꽃의 아름다움만이 눈에 뜨이고 배꽃의 미를 등한시했음은

무슨 까닭이었던가 의심한다.

어떻든, 나는 배꽃을 맨스필드의 단편에서 처음으로 발견한 셈이다. 하기는

맨스필드만이 아니라 이 곳의 젊은 시인 중에도 배꽃을 노래한 사람은 이미

있으니 그의 시구가 나의 배꽃의 인상을 도와 주었을 것도 사실이다.

 

돌배꽃 필 때면 뻐꾸기 울고

뻐꾸기 울면 하늘이 파아랗나니

배나무 그늘이 가슴에 푸르고

연두색 잎새 햇볕에 손뼉치고

우거진 가지마다 쫙 펴진 가지마다 웃음 또 웃음...

 

 

 

 

 

 

영화

 

 

 

수업 제한에서 오는 양화 결핍으로 말미암아 요사이 거의 어느 상설관에서나

한 번 상영했던 영화의 재상영을 번번이 본다. 여간한 예술품이 아니고는 두 번

이상 감상하고 싶은 흥이 솟지 않는 것이나 영화의 감상은 짧은 시간을 요하는

것이라 한 번 기억에 남았던 일편에는 식욕이 동하지 않는 바도 아니어서 두

번째 보러 간다.

그러나, 세상에 좋은 영화라는 것은 그다지 흔한 것이 아니다. 대개는 처음에

느꼈던 감흥이 반감되고 품고 있던 아름다운 환상까지 도리어 부서져 버리고

마는 것이 통례다. 한절 한절의 컷의 구성에는 간혹 치밀한 수법과 자연스러운

연기가 보여 그 이상의 표현 방법은 없으리라고 감탄되는 대목도 있으나 전체로

흠이 보여 오고 결함이 드러나게 되어 겨우 이 정도의 영화였던가 하고 환멸을

느끼게 된다.

감독과 연기자들이 인생을 여실히 그려 내겠다고 땀을 뻘뻘 흘리며 눈물겨운

노력을 하나 나타나는 화면이--불과 몇 센티 평방의 셀룰로이드 딱지가 종시

말 안 듣는 것이다.

연기의 부족으로 허덕거리는 장면을 대할 때는 꾸며 놓은 세트 장치 앞에서

상을 찡그린 감독이 메가폰으로 고함을 치며 삼군이 아니라 삼문 배우들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가엾게도 귀에 들려 오는 듯하다. 그러나 문제는 배우뿐만

아니다. 참으로 감독자 자신의 두뇌와 천분에 더 많이 달렸으니 그가 가장

옳다고 생각하고 연기자에게 가르쳐 주는 표정과 동작이 과연 진실을 포착한

것이어서 만인을 똑같이 감동시켜 줄 수 있는가 없는가--에 달려 있다.

슈탄벅이나 크레엘이나 듀비베가 아무리 능청맞다고 하더라도 그들 역시 각각

한 개의 형이 있는 것이요, 결국 자기류의 발휘에 지나지 못하는 것이다.

예술이란 개성의 조작이니 그것으로 족할지 모르나 문제는 그 자기류로서

어느 정도 리얼리티를 잡았고 보다 더 많은 사람을 감동시키는가 하는 것이다.

참으로 여간한 천재를 가지지 않고는 벌써 현대인의 눈을 속일 수는 없게

되었다.

한다하는 천재도 까딱하다가는 일개 무명의 관객에게 뜀을 받고 계발을 입게

될는지 모른다. 거리의 구석구석에 할거하고 있는 군웅은 말할 것도 없고 누가

그래도 가장 많은 사람을 속여 왔을 것인가. 폐데일까 루놜일까 채플린일까.

'7천국'을 보려니 성탄제 때의 아동 연극의 정도 밖에는 못 되어서

는적거리는 남배우의 낯짝에다 정신이 번쩍 들게 물을 끼얹고 싶은 충동이

났다. '장군 새벽에 죽다'도 두 번째는 지루하고, '유령 서로 가다'는 장난과

꾀가 너무나 드러나 보였다. '미모사관', '춘희', '다드워스', '대지' 등이 아무리

힘을 들였다고 해도 이 역 두 번 본다면 같은 느낌을 받을 것이며 비교적

솔직하게 감상할 수 있는 것은 '마라, 샵드레드', '야성의 부르짖음'이었다.

제작들이 교묘한 꾀를 피웠다 하더라도 그것은 다 작품의 품격에서 받는 감동

속에 숨어 버려서 순진한 눈으로 끝까지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두 편의 영화보다는 원작인 소설편이 한층 우수함은 웬일일까.

훌륭한 영화라고 하여도 그것이 소설의 풍미와 암시를 항상 덜어 버리는 것은

일단 시각화된 화면은 아무리 우수한 한 폭이라고 하여도 벌써 결정적 운명의

옷을 입고 나타나는 까닭에 소설이 주는 풍부한 환상을 옹색하게 한 까닭으로

규정해 버리고 이지러뜨리는 까닭이다.

그러기에 영화란 아주 잘 된 영화가 영화이지 섣불리 되었을 때는 가장

졸렬한 소설보다도 더욱 졸렬한 운명에 놓이게 된다.

소설은 그래도 참을 수 있는 것이다. 영화난은 이 점에도 있다. 차라리

'미완성 교향악'이나 '악성 베토벤'을 허물없이 본 것은 음악의 덕이었고 '모던

타임스'에서 끝까지 진진한 흥미를 느낀 것을 풍자보다도 웃음의 덕이었다.(

작품의 풍자란 너무도 진부하고 상식적이다. 채플린의 독창적인 교태와 거기서

솟아나오는 웃음이야말로 마땅한 듯하다.) 섣불리 본격적으로 겨루다가

실패라는 편보다는 차라리 웃음과 음악으로 대독시키는 곳에 영화의 다른 길이

암시된다. 근대의 걸작은 '아부일족'이었고 앞으로 기대되는 것은 봐이에 주연의

'마이아링크'. 하기는 봐이에의 연기도 벌써 코에 냄새가 미칠 지경으로 되고

말았다.

대체 배우의 생명이 그다지 긴 것이 못 되어서 아무리 명우라고 해도 작품을

4,5편 거듭하면 연기의 형이 결정되어 버린다. 아리볼이나 풀무니, 가르보나

다류가 아무리 차례차례로 연기를 보인다고 하여도 신축자재한 애교가 아니고

사람인 이상 어느 정도에 이르러 고정해 버림은 하는 수 없는 노릇이다.

데아나다빈이 첫 작품에서 벌써 싫증이 남은 웬일일까.

가령 애수가 얼굴에 잔뜩 서리어, 보기만 해도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특이한

종류의 배우는 나타나지 않는가. 국외자의 욕심이란 한량이 없는 것인 듯하다.

 

 

 

우유

 

 

 

'모던 타임스'에서 채플린이 고따드와 가정 생활을 공상하는 대목이 있다.

물론 집이 교외에 있는 탓도 있겠지만 바로 문 밖에 열린 포도를 따먹고 우유는

문간에 매어 둔 소에게 직접 짜서 그 자리에서 마신다.

이 목가적 취미는 아마도 현대인의 누구나가 환상하는 것일 듯하다. 목가적

취미의 사치한 치장은 그만두고 그저라도 우유를 풍족히 먹고 싶다는 원부터가

우선 급하다.

나날의 곡량은 물론이거니와 시민마다가 우유를 풍족히 마실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된 사회일까. 만반 문제의 출처인 요점을 이렇게 간단히 말해

버린다면 어리석은 잠꼬대가 될는지 모르나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어떻든 우유를 중요한 양식으로 삼고 그것을 때마다 흡족하게 마시는 습관과

처지에 있는 서방인이 확실히 우리보다는 행복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우유를 마시는 풍습은 물론 근래의 것, 적어도 피유리가 흑선으로

동방에 시항해 온 이후에 속한다. 그 이전에는 그것을 대신할 만한 것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면 그만큼 불행하였던 것도 사실이다.

어떤 극동인이 인도에 여행하였을 때에 간디는 인도의 서민층의 생활을

생각하고 두부 만드는 법을 물었다고 한다. 영웅으로서 오히려 이러한 세밀한

배려가 있음은 하찮은 식물 한 가지의 보통화가 족히 백성 전부에게 큰 복지를

가져오는 까닭이다. 백성 전체가 우유를 흡족하게 마시는 나라야말로 두말할 것

없이 이상 사회일 것이다.

학교 농장에서 아침 저녁으로 배달해 오던 우유를 흔하게 마실 때에는 아무

걱정 없던 것이 농장의 우유가 끊어진 이후로는 크게 공황을 느끼게 되었다.

질과 값으로 거리의 우유가 도저히 농장의 것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현관문을 열면 그 어느 날이나 번기는 법 없이 마치 성탄옹의

선물과도 같이 어림없이 듬직한 5흡들이 콜병이 유회색 문등 아래편 시멘트

바닥 위에 놓여 있었다. 로이드 영화에 나오는 커다란 그 병이다. 여름에는

담쟁이의 이슬을 맞고 겨울에는 언 채로 오뚝 놓여 있는 그 풍모부터가 우선 상

줄 만하다. 물론 새벽에 갓 짠 생우유다.

냄비에 붓고 표면에 얇은 유막이 앉을 때까지 끓여서 식후에 숭늉을 대신으로

벌떡벌떡 켜는 것이다. 겨우 한 잔의 우유로 혀를 댈까 봐 고양이같이 홀짝홀짝

핥는 것과는 운치와 격이 다르다.

특히 겨울에 얼어서 살얼음이 잡힌 것을 끓여서 흡사 풋옥수수 삶은 냄새

나는 눅진한 액체를 입안에 그득 머금었을 때 우유의 진미는 그 한 모금에

있다.

해외를 돌아온 학자가 스위스에서 먹었다는 우유 자랑을 하나 농장에서 오는

우유가 결코 그에 밑지지 않을 듯하다. 한 홉에 실비로 3, 한 콜에 15,

하루에 두 콜이라도 30, 한 달에 서 말의 우유를 위 속에 부어도 9원이면

족하다. 그것이 요사이 와서는 사정이 너무도 달라졌다. 농장이 없어진 까닭에

당장에 우유 기근을 만난 셈이다. 한 홉 7전의 거리의 우유를 하루에 한 되를

마시려면 한 달에 20원을 넘는다. 미곡과 신탄대를 합한 액수보다도 많다.

농장에 있는 배달부가 K목장으로 고용을 간 날로 구면이라고 즉시 주문을

맡으러 왔다. 하는 수 없이 하루 아침에 세 홉씩을 부탁해서 식구들과 나누게

되었으나 당초에 부족한 양일 뿐 아니라, 아무래도 협잡물이 든 것 같아서

농도가 옅고 맛이 덜하다.

아침에 일어나 현관문을 열면 전과는 달리 아치형의 좁은 홍예문 아래편

시멘트 바닥 위에 가느다란 한 홉 병이 세 개 나란히 늘어서 있는 것이 콜병의

위용과는 엄청나게 빈약하게 보인다. 겨울보다 체중이 반 관이나 준 것을 우유

부족의 탓으로 돌린대도 과장을 아닐 듯싶다.

어떻든 농장의 우유는 생각할수록에 행복스런 선물이었고 지금 우유는 그래도

나으나 더 못한 악질의 우유를 찾는다면 함경선 식당차에서 파는 바로

그것이다. 세상에 우유치고 이보다 더 못한 것을 구하려면 지옥으로 가야 할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우유를 넉넉히 먹을 수 있는 세상이 지금에 있어서는

가장 원하는 세상이며 바라건대 거리의 복판마다 냉장의 우유 탱크를 세우고

오고 가는 시민에게 자유로 마시게 하거나 혹은 수도와 마찬가지로 지하에

우유를 묻고 각 가정에서 나사만 틀면 적량의 신선한 우유가 언제든지 졸졸

쏟아지게 하는 설비가 국가 경영으로서 하루바삐 생겨질 날을 공상--이 아니라

충심으로 원하는 바이다.

 

 

 

향연

 

 

 

일각이 천금의 값이 간다는 봄날 저녁, 거리의 향연에 감은 옛날 아가톤의 집

축하연에 모여 가는 기쁨보다 못할 것은 없다. 모이는 사람들이 반드시 희랍

시대의 철학자들일 필요는 없는 것이나, 그러나 일단 가서 모여든 면면에

접하였을 때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80여 명의 소위 거리의 지명의 사를

망라한 대연이었으니 80여 명에서 겨우 80분지 34명밖에는 구면이 없음이다.

60504030대의 각 연대에 뻗쳤고, 종교가, 교육가, 법률가, 도규가,

조고가들이 쓸어 왔으니 희랍 시대의 초대객보다는 확실히 색채인 셈이다. 물론

그들의 지혜가 아가톤의 집에 모였던 옛 사람들에게 미치는지 못 미치는지

그들에게 비겨 자라격에나 갈는지 못 갈는지는 별문제다. 그들에 의해서 반드시

거리가 운전된다고도 할 수 없으나 그 얼굴들이 별로 신통할 것은 없는 것이요,

어떻든 이것도 저것 같고 저것도 이것 같아서 아물아물 그 수가 퍽도 많은

것이다.

도회의원도 많거니와 의사도 퍽은 많다. 인사 받은 몇 사람을 구면의 분에게

조용히 물어 볼 때 "그 사람은 상당한 지식인이오." "그 사람은 그다지 좋지

못한 사람이오." 대답하고는 좌석을 군데군데 짚어서 설명한다. "저건 돈푼이나

있죠." "저건 고리 대금 업자요." "저건 술주정꾼이오..." 잡동사니다.

오월동주이기는 하나 잔치가 되었을 때에는 준연한 식욕으로 향해서 화기

준연하게 통일되었고 술이 돌았을 때에는 운명의 배멀미에 취한 듯

흐느적거리며 당 안이 낭자하였다. 10여 명의 명기가 틈틈에 끼어서

술시중뿐만이 아니라 이야기 사중에 여념이 없다. 청초한 맑은 자태들이 점홍이

아니라 점백의 정취를 나타냈다. 사람은 항상 무슨 말들이 그렇게 많을까.

아가톤의 집 연회에서는 연애를 논의하고 사랑의 원리를 이야기들 하였다. 잔치

마당에서는 그것이 가장 격에 맞는지도 모른다.

나도 이 날 밤의 한 구석의 회화를 비역해 본다. 연애론이 아니고

치정론이라면 결국 현대인의 그만큼 고대의 희랍인보다 타락했다는 증명뿐이요

내 허물은 아닌 것이다.

"요새 까딱 안 오실 젠 신문사 일이 바쁜신 모양이죠?"

"바빠서 안 가는 줄 아나?"

"그럼 아직두 그걸 노여워하고 계시나요? 내 곡절을 얘기한다 하면서 못

했군요. 오늘 밤에는 기어이 얘기해 드리죠."

"발명은 왜, 뻔히 아는 노릇을 이제 새삼스럽게 발명할 테야?"

"세상 소문이란 대개 사실과는 다르거든요. 말이란 양편 말 다 들어야지, 왼편

말만 가지군 아나요."

"암만 그래 보지, 곧이듣나."

"그 날 밤같이 우리집까지 오셨던 건 아시죠. 얘기는 게서부터 시작되는데

선생이 가신 뒤 군이 자꾸 쉬구만 가겠다는군요. 손님 대접이라 하는 수 없이

이불을 펴 주구 전 어머니방에 가 잤죠. 그뿐이에요."

"그 군의 말과 다르거든."

"그건 그렇죠. 아침에 일어나 그 방에 갔을 때 노여노여하면서 내 겨드랑이를

들추겠지요. 변태인가 봐요. 보이는 건 그뿐이에요."

"흥 그걸루 설명이 다 됐다구 생각하나."

"그럼요. 그 이상 아무것두 없는 걸 어떡해요. 그 뒤에 다시 시골서 왔을

때엔 아침부터 허덕거리고 와선 보구 싶어 왔다는구먼요. 문제는 그 날 밤인데

여기저기 불리면서 늦도록 놀다가 좋은 사람과 같이 돌아가서 자리에 누웠죠..."

"요것 봐, 새롱새롱 말 막 한다."

"이렇게 된 바에야 막 하지 않구 어떡해요. 그래두 믿지 않으시면서. 대문

거는 것 깜빡 잊었던 것이 불찰이었죠. 별안간 문 소리와 발 소리가 나더니

주추 앞에서 부르는 목소리가 바로 그이의 목소리겠지요. 벌써 자리에 누웠구

하는 수 있어야죠. 불을 탁 끄구 시침을 떼면서 몸이 고달프니 가라구만

졸랐죠. 들어 줘야 말이죠. 이러쿵저러쿵 실랑이를 치던 끝에 기어이 마루에

뛰어올라 문을 열라는군요. 그래서 결국 터지구 말았죠. 방 안의 군이 이불을

홱 차구 일어나더니 고래 같은 소리루 누구냐구 고함을 쳤던 거죠. 그 한

마디에 밖이 별안간 조용해지구 그뿐이었어요. 생각하면 미안두 하구

부끄럽기두 하구"

"천연스럽게 말하는 품이 영웅인가 요물인가?"

", 이젠 오해 다 풀어 주세요... 어쩌나 사람들이 벌써 어느새 이렇게

헤졌네. 이 길루 우리집에 가시지 않겠어요? 오래간만에..."

"...글쎄 가 볼까. 요것봐. 웃긴 왜 웃어."

사내라는 게 다 만만하단 말인가. 나도 실상 사내면서도 사내 맘 모르겠다.

 

 

 

 

 

 

낙엽을 태우면서

 

 

 

가을이 깊어지면 나는 거의 매일같이 뜰의 낙엽을 긁어모으지 않으면 안된다.

날마다 하는 일이언만, 낙엽은 어느덧 날으고 떨어져서 또다시 쌓이는 것이다.

낙엽이란 참으로 이 세상의 사람의 수효보다도 많은가보다. 30여 평에 차지

못하는 뜰이언만, 날마다의 시중이 조련치 않다. 벚나무 능금나무... 제일 귀찮은

것이 벽의 담쟁이다. 담쟁이란 여름 한철 벽을 온통 둘러싸고 지붕과 연돌의

붉은 빛만 남기고 집 안을 통째로 초록의 세상으로 변해 줄 때가 아름다운

것이지, 잎을 다 떨어뜨리고 앙상하게 드러난 벽에 메마른 줄기를 그물같이

둘러칠 때쯤에는 벌써 다시 지릅떠 볼 값조차 없는 것이다. 귀치 않은 것이 그

낙엽이다. 가령 벚나무 잎같이 신선하게 단풍이 드는 것도 아니요, 처음부터

칙칙한 색으로 물들어 재치 없는 그 넓은 잎이 지름길 위에 떨어져 비라도 맞고

나면 지저분하게 흙 속에 묻혀지는 까닭에 아무래도 날아 떨어지는 쪽쪽 그

뒷시중을 해야 된다.

벚나무 아래에 긁어모은 낙엽의 산더미를 모으고 불을 붙이면 속의 것부터

푸슥푸슥 타기 시작해서 가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바람이나 없는 날이면 그

연기가 얕게 드리워서 어느덧 뜰 안에 가득히 담겨진다. 낙엽 타는 냄새같이

좋은 것이 있을까. 갓 볶아 낸 커피의 냄새가 난다. 잘 익은 개암 냄새가 난다.

갈퀴를 손에 들고는 어느 때따지든지 연기 속에 우뚝 서서 타서 흩어지는

낙엽의 산더미를 바라보며 향기로운 냄새를 맡고 있노라면 별안간 맹렬한

생활의 의욕을 느끼게 된다. 연기는 몸에 배서 어느 결엔지 옷자락과

손등에서도 냄새가 나게 된다. 나는 그 냄새를 한없이 사랑하면서 즐거운

생활감에 잠겨서는 새삼스럽게 생활의 제목을 진귀한 것으로 머릿속에

떠올린다. 음영과 윤택과 색채가 빈곤해지고 초록이 전혀 그 자취를 감추어

버린 꿈을 잃은 헌출한 뜰 복판에 서서 꿈의 껍질인 낙엽을 태우면서 오로지

생활의 상념에 잠기는 것이다.

가난한 벌거숭이의 뜰은 벌써 꿈을 메우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탓일까. 화려한

초록의 기억은 참으로 멀리 까마득하게 사라져 버렸다. 벌써 추억에 잠기고

감상에 젖어서는 안 된다. 가을이다. 가을은 생활의 시절이다. 나는 화단의

뒷자리를 깊게 파고 다 타 버린 낙엽의 재를--죽어 버린 꿈의 시체를--땅 속

깊이 파묻고 엄연한 생활의 자세로 돌아서지 않으면 안 된다. 이야기 속의

소년같이 용감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전에 없이 손수 목욕물을 긷고 혼자 불을

지피게 되는 것도 물론 이런 감격에서부터이다. 호스로 목욕통에 물을 대는

것도 즐겁거니와, 고생스럽게 눈물을 흘리면서 조그만 아궁이로 나무를 태우는

것도 기쁘다. 어두컴컴한 부엌에 웅크리고 앉아서 새빨갛게 피어오르는 불꽃을

어린아이의 감동을 가지고 바라본다. 어둠을 배경으로 하고 새빨갛게 타오르는

불은 그 무슨 신성하고 신령스런 물건 같다. 얼굴을 붉게 태우면서 긴장된

자세로 웅크리고 있는 내 꼴은 흡사 그 귀중한 선물을 프로메테우스에게서 막

받았을 때의 그 태고적 원시의 그것과 같을는지 모른다. 새삼스럽게 마음

속으로 불의 덕을 찬미하면서 신화 속 영웅에게 감사의 마음을 바친다.

있으면 목욕실에는 자욱하게 김이 오른다. 안개 깊은 바다의 복판에 잠겼다는

듯이 동화의 감정으로 마음을 장식하면서 목욕물 속에 전신을 깊숙이 잠글 때

바로 천국에 있는 듯한 느낌이 난다. 지상 천국은 별다른 곳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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