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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단편 소설

나들이

by 자한형 2022.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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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들 이-서정인

 

열흘째 추위가 계속되었다. 이가는 따뜻한 안방에서 저녁밥을 먹고 있었다. 그때 밖에서 대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누구야, 이 밤중에?

그가 밥을 뜬 수저를 든 채 짜증스럽게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상머리에 앉아 있던 그의 아내가 소리 없이 일어섰다. 그들의 눈길이 허공에서 잠깐 부딪쳤다, 그녀가 말없이 밖으로 나갔다.

전보예요.

잠시 후 그녀가 들어와서 종이쪽지 한 장을 그에게 내밀었다. 그는 가슴이 섬뜩했다. 그에게는 삼백 리 밖에서 살고 있는 늙고 병든 아버지가 있었다. 그는 전보를 읽었다. 종이가 그의 손가락 끝에서 빠스락빠스락 소리를 내었다. 전문은 풀어 모아 쓰기로 씌어 있었다.

oF~-L1O-I~StL~O--~T1F~-olo~---

그러고 보니 그것은 꽃 봉투 속에 들어 있었다. 그는 전보 쪽지를 방바닥 위로 밀어놓았다.

무슨 전보예요?

그가 잠자코 다시 밥숟갈을 들었으므로 그녀가 모로 앉아서 시큰둥하게 물었다.

안 보았소?

동식이 축전이에요?

그런가보오.

누가 보냈어요?

그걸 안 보았군.

그러나 그는 전보쪽지를 다시 집어들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는 밥숟갈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의 타내도 전보를 보낸 사람의 이름을 알아보기보다는 쭈그리고 앉은 채 그대로 눌러 있고 싶은 모양이었다. 둘 사이에는 조금 전처럼 말이 끊겼다. 대문 두드리는 소리와 전보의 배달이 던져주었던 충격의 파문이 점점 엷어지면서 어둠 속으로 멀어져갔다. 그는 밥을 두어 술 더 뜨다가 수저를 내려놓았다.

숭늉에 말아서 더 잡수시지 그래요?

그녀가 말했다. 그는 고양이처럼 입맛만 쩝쩝 다시면서 잠시 말없이 앓아 있었다.

초인종을 고쳐야겠소. , 밤중에 문 두드리는 소리 귀에 한번 거슬리는군.

전지만 갈아 끼우면 돼요.

그게 고치는 거지. 경심이는 언제 오우?

모레 와요.

내일 아니오? , 다 큰애를 그렇게 나돌아다니게 하는 게 아닌데 그랬어.

누가 내보냈게요.

밥상이나 내가요.

그녀는 상을 내갔다. 경심이가 서울 고모집에 다녀오겠다는 것을 허락한 것은 그였다. 그가 밥상 물린 자리에 두 팔을 괴고 우두커니 앉아 있었으므로, 그녀는 집안에서 결정된 일에 그에게만 온통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것 같아서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걸레로 밥 자리를 훔치면서 그녀가 말했다.

테레비라도 틀까요?

이 시간에 뭐 재미있는 거 있을라고?

그럼 라디오를 틀지요.

그럴까?

그러나 그는 그 가까이에 있는 라디오에다 손을 뻗치지 않았다. 그녀가 그의 말을 잘 못 들었는가 의심이 될 정도였다. 그러나 그녀는 의심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의 그럴까?그러지 말까?와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그의 말과는 상관없지 그런다는 듯이 라디오 곁으로 다가갔다.

남도소리 할 시간이 되었는지 모르겠어요.

그만둡시다. 난 일찍 자야겠소.

정말 내일 새벽 차로 가시겠어요?

그럼 가봐야지요.

주무실 때까지라도 라디오 틀지요.

광고는 다 어떻게 하고?

자리나 펼까요?

테레비가 언제부터 이렇게 재미없어졌지?

그녀는 일어서서 이부자리를 폈다. 전보쪽지를 집어들고 발신인을 알아보는 눈치였지만, 그녀는 아무 말 없이 텔레비전 궤짝 속에다 쪽지를 치워놓았다. 그는 엉덩이가 무거운 듯이 엉거주춤 일어서서 깔아놓은 요 위로 갔다. 그리고 몸 아랫도리를 이불 속에 묻고 우두커니 앉아서 벽을 바라보았다.

당신 그렇게 짭짭하시면, 담배라도 태워보시지 그래요?

하루방이 떨어졌다는군.

그녀는 그녀의 이부자리도 폈다. 그리고 옷을 벗을 생각도 하지 않고 요 밑으로 발을 쑤셔 넣었다.

궐련---는 안되겠어요?

그는 그녀가 이불자락 위에 내려놓은 잠옷을 끌어당겼다.

전보는 어디서 왔소?

박 장학사한테서 왔어요.

그는 잠옷을 갈아입었다.

궐련은 싱겁고 써서. 박 장학사가 식장에 안 나왔던가?

시거던 떫지나 말지, 어떻게 싱겁고 쓰고, 그래요?

그녀는 치마저고리를 벗고, 속치마바람으로 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그는 아직 자리에 눕고 싶은 생각이 없는지, 벽을 바라보고 하품만 벅벅했다. 집 밖에서 휘파람을 불며 달리고 있는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하루방은 쓰긴 해도 싱겁진 않거든.

생활필수품 연쇄점에 가보셨어요

거기에 없다는 얘기요.

어서 주무세요. 아침 일찍 일어나시려면 피곤하겠어요.

신문 어떻게 했소?

다 보시지 않았어요?

그녀가 몸을 일으키기 전에 그가 텔레비전 궤짝에서 후줄근해진 그 날치 신문을 찾아냈다. 그녀가 못마땅한 표정을 했지만, 그는 열 번도 더 뒤적거렸을 신문을 다시 펼쳐놓고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녀는 한 시간을 기다렸다. 그가 말했다.

신문에서 볼만한 데라고는 광고뿐이군.

그는 신문 아랫부분의 작은 글씨들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모로 누워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다시 말했다.

신문을 한번 바꿔볼까?

그녀는 여전히 바람벽을 향하고 누운 채 아무 말이 없었다. 그도 신문만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 대꾸 같은 것은 별로 기대하지 않는 눈치였다. 마침내 그가 신문을 내던졌다. 그리고 자리에 누웠다.

광고밖에 볼만한 것이 없다면, 바꿔봤자 별수 있겠어요?

그녀가 등뒤에 누운 사람에게 쳐다보지 않고 말했다.

그렇겠군,

그가 말했다. 그리고 똑바로 누워서 천정을 향하여 두어 번 눈을 껌벅거린 다음,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광고야 동판까지 같을 테지.

, 끌까요?

그럴까?

그가 불을 껐다. 두 사람은 서로 상대편이 잠들었다고 생각하면서 조금씩 잠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이튿날 이가는 늦잠을 잤다, 네 시경 확성기소리에 잠을 깬 그는 다섯 시까지 뒤척이다가 설핏 잠이 들었는데. 깨어보니 일곱 시가 지나 있었다. 그는 여섯 시 기차뿐만 아니라 일곱시 뉴스까지 놓쳤다. 그는 할 수없이 일곱 시 반에 뉴스를 내보내는 방송국으로 바늘을 맞췄다. 농약광고가 나오고, 한방 보약광고가 나왔다. 그리고 고 뒤를 이어서 양재학원과, 고시학원과, 영수학원과, 약국 광고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화장품 광고와, 사탕 광고와, 과자 광고와, 껌 광고가 줄줄이 그 뒤를 이었다. 그리고 뉴스가 나왔다. 그런데 그 새 소식은 대개가, 날씨를 제외하고는. 간밤에 두어 번씩 나왔던 것이었고, 더러는 낱말의 앞뒤 하나 다르지 않은 것도 있었다. 그는 라디오를 끄고 하품을 했다.

여섯 시 차 다음에는 몇 시 차가 있어요?

아마 여덟 시 차가 있을 거요.

그럼 빨리 서두르셔야 되겠어요. 늦겠어요.

그는 서둘렀지만, 뒤보고 얼굴 씻고 밥 먹고 나자, 여덟 시 반이 되어버렸다.

다음 차는 몇 시에 있을까요?

아마 열 시에 있을 거요.

그럼 오늘 다녀오시기는 힘들겠군요?

아마 그렇게 되나보오.

천천히 한 시간쯤 있다가 나가면 되겠어요.

그는 아홉 시 반에 집을 나섰다, 날씨는 그날도 추웠다. 길바닥 위에 괸 물들이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그리고 얼어붙은 미나리꽝에서는 동네아이들이 미끄럼을 타고 있었다. 그는 아홉 시 오십 분에 역에 도착했다. 역은 올라가는 차와 내려가는 차가 간신히 비껴갈 수 있는 선로 두 가닥의 간이역이었다. 대합실에는 사람 너댓이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차는 그의 짐작과는 달리 열시 오십 분에 있었다. 유리창 너머로 사무실 안에 역원 셋이 난로가에다 의자들을 끌어다 놓고 앉아서 담배를 피우며 잡담을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무도 아직 표를 팔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는 집으로 되돌아 갈까고도 생각했지만 결국 대합실 한쪽구석에 우두커니 앉아서 한시간 삼십 분을 기다렸다. 기차는 삼십 분 연착이었다.

그는 세시간 동안 기차를 탔다. 기차는 멈추면 떠날 줄을 몰랐다. 맞은편에서 상행열차가 들어올 때까지 한없이. 체면도 위신도 위엄도 없이. 질펀하게 주저앉아 있었다. 차장은 사과나 설명을 하지 않았다. 승객들도 아예 그에게서 그런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차창 밖을 슬쩍 쳐다보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면 그들의 입에서 특별급행을 기다린다거나. 완행이 올라온다거나, 심지어는 호남정유의 유조 열차가 올라오는 모양이다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가 지루하고 짜증이 나서 견딜 수 없다고 불평을 하자, 교육대학 입학원서를 사 가지고 그의 앞자리에 아들과 함께 나란히 앉아서 가던 중년사내가 그럼 특급을 타야할 것이 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특급 아니고 빠른 차를 타고 싶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 사내는 세상에 그런 차가 어디 있므냐면서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정색을 하고 농담을 하지 말라는 뜻인 모양이었다.

특별히 빨리 가달라는 것이 아니지요. 보통으로 발리 가달라는 것도 아니고요. 그저 가달라는 거예요. 이게 어디 가는 겁니까? 이게 어디 기찹니까? 우린 지금 십오 분을 기다렸어요.

십오 분쯤 더 기다려야 이 차가 움직일 거요.

왜요? 이 앞 정거장에서는 십오 분쯤 되니까, 슬슬 움직이기 시작합디다. 화물열차가 들어오자, 곧 떠나지 않았어요.

이번에는 뒤에서 차가 들어올 거요.

뒤에서 들어와요? 이 차 꽁무니 쪽에서 차가 들어와요?

글쎄 아마 그럴 거요.

아니, 그럼 이 차가 먼저 가버리면 될 거 아니에요?

이 차를 뒤쫓아오는 차는 특별히 급히 가는 차란 말예요. 곧 들어올 거요. 십오 분이면 들어올 때가 되었어요.

특급은 이런 정거장에서는 삼십 초밖에 안 서겠지요?

스지 않고 그냥 지나가요.

, 여기는 통과역이군. 특급 지나가면 이 차도 곧 뜨겠지요?

십오 분쯤 더 있어야 뜰 거요. 특급이 다음 정거장에까지 가는 데에 그쯤 걸릴 거 아니오?

이거 원, 완행 어디 타겠다고.

급하면 버스를 타지 말고 택시를 타라는 것과 마찬가지 얘기지요.

글쎄, 나는 발리 가는 버스를 타고 싶어요. 그런데, 이 차가 움직이는군. 특급도 아직 안 들어왔는데 이 차가 떠나지 않아요?

아마 다음 정거장에서 따라 잡을 모양이오.

뭐요? 다음 정거장에서 ? 다음 정거장에서 또 기다린단 말이오? 여기서 십오 분 기다린 건 공짜란 말이오?

십오 분은 아무 것도 아니지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장이 나서 사십 분씩 서 있는 것은 보통이었소.

그게 왜 보통이오, 불난리가 날 일이지?

사십 분은커녕 한시간을 세워둬도 아무 일도 안 일어나니, 그게 보통이지 뭐요?

그게 그래 아무렇지도 않단 말이오?

처음엔 아무렇지 않지만은 않았을 거요. 그렇지만 차츰 아무렇지 않게 돼요. 조선사람이 조선에서 살면서 아무렇지 않아야지, 아무러면 뭘 하겠소? 이렇게 달릴 때만이라도 잘 달려주는 게 얼마나 고마운데 그래요? 나는 지금 육십 리를 팔십 원으로 달리고 있어요. 짚신 감발로 재를 넘어가자면 하루해가 걸려요.

그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기차가 사람을 만들고 사람이 기차를 만든다고 생각했다.

기차를 내린 그는 역전 중국집에서 배갈 두 잔에 짜장면으로 늦은 점심을 때웠다. 그리고 빈속에 퍼져 오른 술기운으로 휘적휘적 걸어서 단숨에 집에 당도했다. 그의 아버지는 사랑채에 누워 있었다. 그는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서 너부죽이 절을 했다. 그의 아버지는 한쪽 팔로 몸을 반쯤 일으켜서 받치고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가 황급히 발뒤꿈치에서 엉덩이를 떼고 몸을 일으켜서 부축하려 들자 그의 아버지는 그의 손을 차갑게 뿌리쳤다. 그는 맥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 왔느냐 ! 그래, 집안은 다 무사허고?

아버지, 누우세요.

군대 간 놈은 돌아왔냐?

. 누우세요, 아버지.

누어? 그래, 누어야겠다.

좀 어떠세요?

너가 지어다준 약 지금 먹고 있다. 애들은 다 잘 크냐? 동식이가 제대를 했다고?

. 제대를 하고, 학교도 마저 졸업을 했어요. 취직도 하고, 그래서 장가를 보내지 않았어요?

고생했다. 이제 그놈도 제 밥벌이를 하고, 취처해서 살림을 나야지. 네 어깨가 무겁겠다.

동식이가 엊그제 초아흐렛날, 지 새색시하고 인사드리러 찾아오지 않았어요?

초아흐렛날? 오늘이 며칠이게?

열이틀이에요.

열이틀? 그럼 아직 멀었구나, 넌 무슨 일로 왔냐? 엊그제 누가 다녀갔다.

별당골 장점득이 부친이 별세를 했대요.

뭐라고?

점득이 부친이 세상을 버렸어요.

점득이가?

점득이 부친 말이에요. 치백이 장씨가 죽었어요. 부읍장을 지낸 장치백이 말이에요.

안다. 알어. 장치백이 말 아니냐? 치백이 큰아들이 너하고 동갑이다.

. 그 점득이네 집이 초상이 났어요.

점득이가 자라날 때는 어른 잘 알아보고, 머리가 영악했다. 지금도 친교가 있느냐?

. 지금 곧 가봐야겠어요.

가봐?

. 큰아들은 중풍으로 저렇게 누워 있고 작은아들은 무슨 일로 옥살이를 한대요.

옥살이?

동식이는 제대를 했다고?

. 제대를 해서 장가를 들어가지고 아파트에 살림을 차렸어요.

아팠어?

아니오. 신접 살림을 차렸다구요.

, 그래. .

그럼 상가에 좀 다녀와야겠어요.

어디?

점득이네 집에요.

점득이?

그래. . .

그는 집 앞에서 택시를 잡아탔다. 네 시가 지나 있었다. 추위 때문인지, 연초 연휴 때문인지. 백 미터도 못될 상가는 이 바진 것처럼 드문드문 문이 닫혀 있었다. 차는 중심가를 지나 별당골 입구에 닿기까지 한참을 달렸지만 요금은 이백 원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는 한때는 맑은 물이 졸졸졸 소리를 내면서 흘렀지만. 지금은 시궁창으로 바뀌어버 린 도랑을 따라서 골짜구니를 거슬러 올라갔다. 길은 가장 낮은 데만을 지혜롭게 찾아서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따라 구불구불했고, 올라갈수록 좁아졌다. 개천은 물이 기울음을 얻지 못하여 잔잔하게 기다리면서 괴어 있는 웅덩이마다가 꽁꽁 얼어붙어 있었고, 크고 작은 웅덩이들 사이로는 더럽혀진 물이 바위들과 돌무더기들 틈으로 구멍을 뚫으면서 건강하지 못한 빛깔로 쫄쫄 떨어지고 있었다. 개천도 길도 자갈 투성이였다. 중턱쯤 올라가자, 구름처럼 무성했을 잎들을 털어버 린 커 다란 당산나무 한 그루가 오랜 세월을 파도와 풍우에 씻긴 바다 바위의 검은 색깔로 산호처럼, 가시처럼, 뼈따귀처럼. 쭈삣쭈삣 삶의 아픔과 참음을 말해주면서 희부옇게 저물어 가는 겨울날 오후의 하늘에 뚜렷이 모습을 드러내고 서 있었다. 그는 그 나무 밑에서 한줌 지푸라기 위에 물밥 말아놓은 사자밥을 보았다, 그는 아뿔사 했다. 역시 죽었구나. 그는 가슴이 섬뜩하며 뜨거운 것이 목구멍을 넘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는 활짝 열려 있는 퇴락한 커다란 한식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마당 한복판에서는 모닥불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쪽으로 처마에 잇대서 어디 중학교라 씌어진 차일이 쳐져 있었다. 안방 앞 마루에 병풍을 치고 마련한 빈소에는 점득이의 스무 살 난 아들이 혼자서 고인의 영정을 지키고 있었다. 그는 마루로 올라가서 잔을 올리고 분향한 다음 상주를 보았다.

언제 운명하셨는가?

어제 아침에 돌아가셨습니다.

몇 신가?

시간은 잘 모르겠습니다. 거의 점심때가 다 되어서 돌아가셨습니다.

시를 몰라? 아버지는 임종을 하셨는가?

아버지는 편찮으셔서 건넌방에 누워 계십니다.

자네 아버지가 변소 걸음은 하는 줄 알았는데.

변소 걸음은 하십니다, 그런데 어제, 그제, 저녁 잡수신 것이 얹혔던 모양입니다. 오늘 아침부터는 조금 우선하십니다. 조금 전에도 나왔다 들어가셨습니다.

작고하신 할아버님이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시는가?

일흔여섯입니다. 아니. 일흔일곱입니다. 아니, 일흔다섯입니다.

양력으로 설을 쇴으니 일흔일곱이고. 만으로 치면 일흔여섯일세, 자네 조부님이 임인생이네.

그는 어리고 외로운 상주를 좋은 말로 위안하고 마당으로 내려섰다. 화톳불 주위에는 허름하게 옷을 입은 사람들 예닐곱이 빙 둘러서서 웃으며 큰 소리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차일 아래에서는 서너 사람이 덕석을 펴놓고 윷판을 벌이고 있었다. 그는 젊은 사람들의 이야기판에 끼어들지 않고 우두커니 서서 등으로 불만 쬐고 있는 한 중년남자에게 낮은 목소리로 술잔들이나 안 모자라게 하셨소?라고 물었다. 그 사내는 몇 번이고 머리를 굽실거리면서 , 했지요. 아까도 했고 금방도 했어요. 조금 이따가 또 해야지요라고 대답했다. 그는 그에게 오백 원짜리 한 장을 꺼내주면서 가서 담배를 좀 사오시겠소?라고 말했다.

개나리로 사와. 안 그러면 모자랄 거여.

큰 소리로 떠들고 있던 사람이 떠들면서도 옆에서 주고받는 수작을 다 귀담아 듣고 있었던지 그 사내가 그에게서 돈을 받아들자 큰 소리로 말했다. 조금 전에 옆엣 사람이 담배 하나 달라고 하자 쭈그러진 담뱃갑을 꺼내 가지고 한 개비 뽑아 주면서 이거 객초 아니여라고 그에게 들리도록 큰 소리로 말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윷을 쥔 사람이 장 종지를 손바닥에서 놀리는 것을 잠시 바라보고 있다가 뜰방으로 올라섰다. 마루 한쪽에서 젊은 사람 하나가 상을 앞에 놓고 접수를 보고 있었다. 그는 그리로 가서 봉투를 꺼내주었다. 그리고 목소리를 낮추어서 점득이가 있는 방이 바로 저거냐고 그 사내의 등뒤를 가리키면서 물었다. 그 사내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든 신을 벗고 건넌방으로 들어갔다.

점득이는 자고 있었다. 방바닥은 얼음장처럼 차가왔다. 그는 엎드려서 점득이가 누워 있는 요 밑으로 두 손을 쑤셔넣어 보았다. 거기는 미지근했다. 점득이는 더러운 무명 이부자리 속에서 모로 누워 이불자락을 코에까지 끌어당기고 가느다랗게 코까지 골면서 자고 있었다. 그가 나지막하게 점득이!하고 불렀다.

깨우기 위해서 불렀지만, 부르고 나서는 깰까봐서 걱정을 했다. 그가 자고 있는 것은 그만큼 평안스러워 보였다. 그는 벽을 향하여 모로 누워 있는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것은 추위와 아픔과 배고픔으로 이지러져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가 코를 불며 자고 있다는 사실에서 말할 수 없는 안도감을 느꼈다. 그것은 더 높은 질서. 더 높은 윤리 같기도 했고, 온몸으로 외치는 풍자 같기도 했다. 그는 또 한번 나지막하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그가 깨지 않기를 바라면서 조용히 기다렸다. 그의 숨소리가 가지런해졌다. 그는 살며시 그의 요 밑에서 두 손을 뺐다, 고리고 소리나지 않게 몸을 일으켜서 문 쪽으로 돌아섰다.

그냥 가? , 자네 올 줄 아얐저.

점득이가 말했다. 그는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점득이는 고통스럽게 몸을 일으켜서 벽에 기대어 앉았다. 그리고 벙긋이 웃었다.

잠을 깨었군. 뱃속이 불편하다더니 괜찮어?

그가 다시 주저앉으면서 말했다.

엊저녁 묵은 거, 관격이 되었나 보아.

엊저녁이 아니라 그제 저녁이지.

그제 저녁인가. 자네. 우이 아버, 아버지, 죽은 거 알어?

호상이네. 뭐라고 애도의 말씀을 다 할 수가 없네.

에익, 이 사람. 호상이여. 호상. , , , . 나는 내가 먼저 죽으이까 보아서 어이마나 걱정했저. 이제 나, 죽어도, 죄 아니여.

힘을 내게. 기운을 차리게. 뱃속이 우선하면 묄 좀 먹어야지?

자네, 입가심 좀 안했저 ? 문상왔다 그양 가먼 못쩌.

아닐세. 그냥 앉아 있게. 하더라도 밖에 나가어 함세.

아니여, 여그서 해. 나양 해. 문 좀 열어.

아닐세. 이 사람, 아닐세, 이 사람.

그러나, 그는 점득이를 말리느라 몰랐지만, 그때 방문이 열리고 술상이 들어왔다. 그것도 두 사람 맞상으로 들어왔다.

거 보아. 술 딸어.

고 술을 따랐다. 그리고 막걸리를 큰 사발로 두 사발 벌컥벌컥 들이켰다. 참 오래간만에 그는 점득이와 대작을 했다.

밖은 어두워져 있었다. 박박 깎은 머리에 두건을 둘러매고 오동나무 판자로 널을 짜고 있던 영감은 차일 안에 달아놓은 백촉짜리 전구 밑에서 다 된 널에 토분을 더운물에 개서 바르고 있었다. 주위에는 여러 사람들이 서성거리고 있었지만, 그가 거기에 생전 처음 오기라도 한 것처럼 이상할이만큼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그는 옛날 어렸을 적에 찾아왔던 기억을 되살리며 아무렇게나 자라난 정원수들 사이를 오락가락했다. 잎들은 추위로 끓는 물에 데쳐낸 것처럼 풀기가 죽어서 축 처져 있었다. 그는 나무 그늘 속에 숨은 듯이 묻혀서, 어른거리는 화톳불 너머로. 마루 위에 단정히 앉아서 눈앞을 들여다보고 있는 어린 상주를 바라보았다. 그 자신의 할아버지가 죽었을 때 그의 나이가 지금의 저 상주의 나이와 비슷했었다. 그리고 그때 지금 죽은 점득이의 아버지가 문상을 와서 상주였던 그의 아버지를 위 안 했었다. 그때가 하도 생생하고 가깝게 느껴졌으므로, 도대체 병풍 뒤에 길게 누워 있는 사람은 누구이며, 그 앞에 단정하게 앉아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리고 그 사람을 위로하고자 싸는 사람은 또 누구인가, 하는 의심이 들고, 모든 것이 애초에 부질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화톳불이 티각태각 소리를 내면서 훨훨 타올랐다. 퇴락한 기와지붕의 처마 끝에서 그림자가 춤을 췄다. 불꽃이 똑같은 모습으로 타오르는 것 같았지만, 자세히 보면. 한쪽에서 쇠라도 녹일 만큼 벌겋게 달아오른 잉걸이 폭삭 사그라지면 또 한쪽에서 서리 묻고 얼어붙은 등걸이 김을 모락모락 피우면서 지글지글 탔고, 그것이 잉걸이 되어 다시 사그라질 때쯤이면 이쪽에서 새로운 생나무가 쩍쩍 벌어지면서 불똥을 튀겼다. 어느 쪽에서 타오르든지 불길은 항상 꼭대기로 너울너울 기어올라갔다.

그는 등과 배로 번갈아 불을 쬐면서 집으로 가는 막차가 여덟 시에 있다는 것을 생각했다. 여덟 시까지는 한시간이 남아 있었다. 한시간이면 아버지한테 가서 인사를 드리고 천천히 역으로 나가기에 딱 알맞았다. 그러나 그는 똑같은 모습으로 왕성하게 움직이고 있는 화톳불과, 그 주위에 끊임없이 드나들면서도 꼭 같은 분위기를 이끌어가며 둘러서 있는 사람들을 훌쩍 떠나버릴 수 없었다. 그는 결국 여덟 시까지 그 자리에 미적미적 서 있었다.

그러나 여덟 시가 되자. 그는 문득 그가 밤샘을 하기에는 너무 늙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벌써 그의 무릎 뼈의 신경들이 불길한 신호를 보내오고 있었다. 그는 대문 밖으로 나갔다. 대문 밖으로 나가는 일은, 나가서 보니.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저 나가기만 하면 되었다. 그는 한달음에 뛰어서 큰길가로 나갔다. 뛰면서 그는 아까 역에서 보아둔 차시간이 정확히 여덟 시가 아니라 끝에 토가 달려 있었던 점과, 그것이 출발시간이 아니라 도착시간이었다는 사실에 희망을 걸었다. 그리고 은연중에는 완행열차가 연착을 잘한다는 사실에까지 기대를 두었다. 그러나 그는 큰길가에서 택시를 기다리는 데에 십여 분을 보내버렸다.

이제 거의 가망이 없었지만 차를 잡았으므로 그는 곧장 역으로 달렸다. 그는 기차가 막 떠난 다음에 역에 도착했다. 그가 개찰구로 뛰어갔을 때에는 그 기차에서 내린 마지막 손님들이 대합실로 빠져 나오고 있었다. 그는 헛일인 줄 알면서 열차 시간표를 쳐다보았다. 그가 놓친 차를 달아나는 꽁무니라도 볼 부 있었던 것은 그것이 이십 분을 연착했기 때문이었다. 오십 분 후에 차가 또 하나 있기는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내려야 할 역에서는 쉬지 않는 특별급행이었다. 그것을 타면 그는 한 정거장 앞에서 내려야 했는데, 통금시간에 임박해서 버스가 끊어지면 집에까지 이십 리를 걸어야 했다.

그는 그 차표를 끊기로 했다. 그것이 줄 속도감이 좋았고, 어쩌면 마지막 버스가 특급이 도착할 때까지 발동을 걸어놓고 그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랐다. 어쨌든 이십 리를 걷게 되더라도 그것은 지금 당장의 일은 아니었다. 그는 표를 끊고, 조금 느긋해진 기분으로 역 앞에 가서 두 홉들이 소주 한 병을 까놓고 밥을 사먹었다.

그러나 연착 -연발은 완행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무엇이든지 그가 탄 기차는 그런 것을 하기로 작정을 본 모양이었다. 그는 목적지에 시간표보다 삼십 분 늦게 도착했다. 정시착이 열한 시 삼십 분이었다. 버스는 물론 택시 같은 것도 없었다. 그는 한 소년이 이끄는 대로 역전의 한 여관으로 들어갔다. 이십 리를 걸어야 한다는 것은 기차를 타기 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 있었다. 팔 킬로 미터는커녕 일킬로 미터를 걷는 것조차도 하루종일 시달린 그의 두 다리에게는 무리한 주문이었다. 그는 숙박계를 쓰고 숙박비를 치렀다. 그리고 아침 일찍 길-.트이는 대로 떠나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손발을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는 피곤했던 모양이었다. 이부자리가 불결한 것도 눈여겨보지 못했다.

그가 불을 끄고 막 눈을 붙였을 때 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그는 옆방으로 가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그것은 그의 방문 앞에서 멎었다. 그리고 문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그를 부르는 소리가 났다. 그는 문을 열었다. 복도 한 끝에 매달려 있는 전등의 불빛을 한옆으로 받으며 조금 전의 소년이 거기 서 있었다.

아저씨, 예쁜 색시 있어요.

소년이 두 손으로 방 문틀을 붙잡고 머리를 방안으로 쑥 들이밀면서 소곤거렸다.

그래서?

데리고 올까요? 처녀여요. 진짜 새것이어요.

너 주인이 누구냐?

왜요? 아저씨 새것 안 좋아하세요? 아줌마들도 많이 있어요.

주인아줌마 좀 오라고 해라.

아이, 아저씨도. 주안아줌마는 아무한테나 안 줘요. 아저씨, 우리 주인 아줌마 알어요?

내가 -. 주인여편네를 왜 가냐?

그럼 새것으로 해요. 아저씨 운이 얼마나 좋은데 그래요? 웃돈 주고 기다리는 사람도 있어요. 오늘 아침 보따리 들고 역전 앞에 떨어졌거든요.

너 경찰서 구경하고 싶으냐?

,, 아저씨. 그런 건 구경해서 뭘 하게요? 싫으면 관두세요. . 에이, 공쳤다.

소년은 몸을 뽑아서 삥 돌아서더니 어깨를 좌우로 흔들면서 두 주먹으로 허공치는 시늉을 하며 걸어갔다.

, 이놈아. 이거 가져가야지.

뭐요?

이거,

이게 뭔데요?

그는 소년이 내민 손바닥 위에다 그의 주먹을 폈다. 소년은 손바닥 위에 떨어진 것을 받아보더니 대번에 입이 옆으로 찢어졌다.

, , 아저씨. , , , . 나 금방 뛰어오께요.

소년이 복도를 쿵쾅거리며 뛰어갔다. 그는 방문을 닫았다. 그리고 두 다리를 쭉 뻗고 벽에 기대앉았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질주하는 자동차의 기관 돌아가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그는 벌떡 일어서서 반주로 마시다 남은 두 홉들이 소주병을 꺼냈다. 그리고 주저앉아서 한 모금을 꼴깍 했다. 한참을 기다린 다음에 또 한 모금을 꼴깍 했다. 그리고 한참 있다가 또 한 모금 꼴깍 했다. 얼마를 지났을까. 소년은 나타나지 않은 채 술병은 바닥이 났다. 그리고 그는 그 자리에 쓰러졌다.

피곤과 취기로 몽롱히 든 잠에서 그가 얼핏 깨어났을 때 복도에서 말소리가 들려 왔다.

또 숫처녀라고 했냐?

빨리 들어가 봐. 늦었어.

잠을 자고 있지 않어.

깨우면 되지.

나도 졸리는데?

너 왜 술 먹냐?

너 같으면 주는 걸 안 먹을래?

들어가. 코고는 소리가 그쳤어.

정말!

그는 문 여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이불자락을 얼굴 위까지 끌어당기면서 다시 잠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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