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의 방 강석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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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도 동생은 집에 들어오지 자았다. 이틀 연이어 무단외박을 한 셈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럴 경우엔 친구를 시켜 전화를 걸고, 어머니는 친구 집 전화번호를 묻는 것으로 허락을 표시했는데, 그 아이는 휴학을 공표한 뒤론 제멋대로 외박할 뿐 아니라 아버지에게 손찌검을 당해도 침묵으로 일관하는 등 계속 우리를 놀라게 했다.
소양의 입에서 휴학했노라는 말이 처음 나왔을 때 정말이지 우리는 충격을 받았다. 한 달 전 일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소양이가 이 학기 등록금을 내러 간 날이었다. 그날 아침부터 등허리가 후끈거릴 정도로 무더웠는데 소양은 밤 열 한시가 가까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아래층에선 모두 잠들었는지 초인종이 세 번 울려도 기척이 없었다. 그 시각엔 대개 늦게까지 공부하는 정우가 문을 열어 주지만 막내도 잠을 자는 것 같았다.
나는 혀를 차며 아래층으로 내려가 문 열기도 전에 소양에게 짜증을 냈다. 내 기분이 그닥 좋지 않은 상태였다. 퇴근 후 약혼자와 약간의 말다툼을 한데다가 집에 오니 할머니와 어머니가 콩장 반찬 하나를 놓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할머니는 콩장뿐 아니라 이 집 반찬이 대체적으로 달다, 늙은 사람이 이렇게 음식을 달게 먹어서는 당뇨병에 걸리기 십상이라고 자신의 건강을 생각해 주지 않는다는 요지로 투정을 부렸고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할머니가 건강에 대해 신경 과민이다, 그런 잔 신경만 쓰지 않으면 백 살까지도 너끈히 사실 거라고 맞받았다.
할 말이 없어진 할머니는 그 자리에 없는 소양을 들먹이며 계집아이가 연락도 없이 늘 늦게 싸다닌다, 제대로 된 집안에선 그럴 수 없다며 어머니를 측면 공격했다.
이건 할머니의 어거지였지만 아무튼 소양이 때문에 말다툼이 더 심해졌고 이런 유치한 정경을 자주 보아 왔으면서도 나는 체하여 잠을 쉬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소리치듯 늦은 귀가를 나무라는데 밖에선 아무 대꾸가 없었다. 나는 의아해서 누구세요? 물었다. 그제서야 소양은 나야, 하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답했다.
무심히 문을 열었으나 코에 횐 반창고를 붙이고 서 있는 소양을 보고선 주춤했다. 소양은 내게 아랑곳 않고 현관으로 들어가 곧장 이층 제 방으로 갔다. 싸는 뜰로 난 안방 창을 흘끗 보았다. 창엔 불이 꺼져 있었다. 나는 소리 죽이고 현관으로 들어서서 이층으로 올라갔다.
내가 소양의 방에 들어섰을 때 소양은 치마를 훌렁 벗어 던지고 티셔츠와 팬티 바람으로 방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큰 키는 아니었으나 어릴 때부터 무용으로 단련된 몸매라 단단하고 긴 다리가 새 같았다. 나는 대뜸 코가 왜 그래? 물었고 소양은 태연하게 그러나 우울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응, 얻어맞았어. "
휘파람이라도 부는 듯한 가벼운 대꾸였다. 나는 잠시 어리둥절했다. 요즘 젊은애들의 기발한 유행어인가. 그게 아니라면 사내애도 아닌 계집아이가 치고 박고 싸웠단 말인가. 가까이 보니 한쪽 콧구멍엔 솜이 박혀 있었다.
네가 깡패냐, 코까지 얻어터지고 그게 무슨 꼴이냐고 나는 핀잔을 주었다.
"쓰리꾼한데 얻어맞았어. 내 등록금 훔쳐 가는 걸 붙잡았거든, 그랬더니 이게 내 코를 치잖아. 길에서 코피를 막 쏟았어."
소양은 티셔츠까지 벗어 내 옆으로 획 던졌다. 시큰한 땀 냄새가 풍겼다. 코에 반창고를 붙이고 속옷만 걸치고 있는 소양의 모습이 한 대 얻어맞은 권투선수의 정부 같았다.
정말이야? 나는 믿을 수 없어서 다시 물었다. 소양은 통자루 같은 지지미 잠옷 속으로 목을 디밀며, 보고도 그래,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래서 등록금은 찾았어 ? 도대체 언제 그런 일이 있었어, 그러면 먼저 집으로 연락해야 되잖아, 그 꼴로 밤 늦게까지 쏘다니다니."
소양은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획 돌아서선 언니, 많니 다쳤냐고 먼저 물어 봐 줄 순 없어? 나 아프게 안 보여? 대들 듯 말했다. 신경질적이라기보다 독이 오른 표정이었고 입술까지 세퍼드처럼 날카롭게 세웠다.
나는 멈칫하다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학교는 갔어? 소양은 짧고 숱 많은 머리칼에 빗을 박고 속옷을 챙겨들며 한 마디 했다.
"나 휴학했어. 엄마한테 내일 말할 거야."
나는 멍해질 정도로 놀랐지만 욕실로 나서는 소양을 바라보기만 했다. 소양의 말엔 나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뜻도 내포돼 있었고 도전적이기까지 한 그 어투가 나를 위축시켰다. 그러고 보니 소양과 얼굴을 맞댄 것도 오랜만이었다.
다음 날 아침을 먹을 때 소양은 주방에 내려오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에게 미리 귀띔하려다가 어젯밤 소양이 한 말이 사실인지 또 내가 잘못 들은 건 아닌지 확신도 서지 않아서 퇴근 뒤로 미루었다.
그날 내내 소양의 일 때문에 꺼림칙했는데 오후 세 시경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어머니는 대뜸 오늘도 최 서방과 만나고 늦게 들어올 거냐고 물었다, 최 서방이란 같은 은행에 근무하는 내 약혼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결혼을 앞둔 데다가 며칠 뒤면 내가 은행을 그만 두게 되어서 우리는 퇴근 뒤 거의 매일 만나고 있었다.
왜 그러세요, 내가 묻자 어머니는 아이 참, 한숨도 아닌 묘한 소리를 냈다. 나는 그것이 소양이 때문이려니 짐작했으나 퇴근하는 대로 곧 갈께 엄마, 하고 모처럼 친근감 가는 반말을 했다. 아버지가 있어도 중요한 문제는 늘 나와 상의했던 것이 떠올라 기분 좋았고 또
얼마 뒤면 집을 떠난다는 것이 감상을 주었다.
내 생각대로 어머니는 소양이 얘기를 했다.
"딸 셋 둔 것이 알맞다했더니 그 중 하나가 시집가고 나면 집이 텅 빌 것 같다. 요새 내가 그렇게 허전해 있는데 소양인 왜 속을 썩이니."
"휴학했대요, 소양이?"
내가 대뜸 묻자 너한테 얘기하디? 어머니는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어제 소양이 코에 반창고를 붙이고 들어온 거며 소양에게 들은 말을 했다. 그리고 등록금을 잃어버렸대요? 하고 역시 가장 궁금한 것을 물었다, 어머니는 혀를 찼다.
"등록금 잃어버려서 휴학한 게 아니냐, 물으니까 그건 아니란다."
"그럼 왜 휴학했대요."
등록금은 잃어버린 것이 착실해졌다.
"나도 이왜 못하겠어."
어머니는 전제한 다음, 밑도 끝도 없이
"사루비아 때문이래."
했다.
사루비아 때문이라니. 무슨 말이냐고 설명을 재촉하자 소양의 말을 그대로 옮기겠노라 했다.
소양이 휴학할 생각을 한 것은 갑작스런, 즉 충동적인 것인 듯했다. 소양은 분명 등록금을 낼 생각으로 학교에 갔다. 덧없이 한 학기를 보냈으며 지겨운 학기가 또 시작됐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것이 유별난 감정을 불러일으킨 정도는 아니었다.
등록금을 내러 많은 아이들이 몰려가고 있었다. 소양은 떠밀리듯 그들 속에 섞였다, 교문에서 학관으로 걸어 들어가자 사루비아 화단이 눈에 들어왔다.
붉은빛이 쏟아져 들어왔다고 표현할 만큼 강렬했나 보다. 사루비아는 늦여름의 태양 아래 선혈을 뚝뚝 흘리고 있었고 소양은 강물처럼 밀려오는 붉은 꽃무리에 익사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휴학했단다. 그게 이유야."
나는 입을 벌린 채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사루비아에 얽힌 어떤 사건을 상상하고 있었는데 늦여름 태양 아래 붉게 타오르는 사루비아 화단 한 장면이 전부라니. 또 선혈을 뚝뚝 흘리고, 따위의 표현은 내 감정에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소양이가 그렇게 이상한 아이였던가? 어머니의 말을 듣고 내 머리에 먼저 떠오른 생각은 그것이었다. 나는 양미간을 세우고 고개를 갸웃하다가 요새 애들은 참! 하고 혀를 찼다. 뿐 아니라 개 어떻게 된 거 아녜요! 목소리를 높였다.
혹시 소양이가 등록금을 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순간 떠올랐다. 나도 은행에 있어서 잘 알지만 한번 돈에 손대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어느 여직원은 돈 다발에서 천 원 짜리 오천 원 짜리 한 장씩 빼 내 쓰기 시작하다가 고객의 통장 돈을 빼돌리게 됐다. 시계바늘처럼 정확해야 할 은행원도 그런 사고를 저지르곤 하는데 그까짓 손에 든 등록금 쓰기야 식은 죽 먹기일 테지.
이어 돈의 용도에 관해 추측해 보았다. 평상시 돈을 잘 쓰고 멋을 부리는 편이지만 등록금을 털어 사치품을 산다거나 유흥비로 쓸 만큼 허황된 아이는 결코 아니었다. 그렇다면 등록금은 누구를 위해 쓴 것이 아닐까.
내 빈곤한 상상력은 여기까지 달음질쳐와 그 대상이 남자로 낙착되었고 남자는 요즘 신문에 종종 나오는 반정부운동으로 수배된 대학생이 아닐까 싶었다.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추리한 모양이었다. 나보다는 더 건전한 방향으로 생각해서 소양이가 혹시 데모로 잘린 건 아닌가 했다.
"소양이 말이. 그런 뚜렷한 명분이 있으면 자기도 행복하겠단다.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이해가 안 되는구나. 아니 우리들이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는 자체가 소양이 이해 받기 힘든 아이라는 증거가 아니겠어."
나는 잠시 후에야 그 뜻을 헤아리고 어머니를 흘긋 보았다. 국민학생이 책을 읽는 것 같은 또박또박한 말투에는 자신의 명석함을 돋보이게 하려는 허영이 깃들어 있었다. 어머니답지 않은 정머리 없는 분석과 여유에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나는 우선 소양을 설득시켜 휴학을 취소시키도록 하자고 의견을 말했다. 스페인 소도 아닌데 빨간 사루비아를 보고 충동을 받다니. 비논리적인 것을 혐오하다시피 하는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도대체 뚜렷한 이유도 없이 왜 휴학을 한단 말인가. 취직을 하든가, 결혼을 하든가, 하루라도 빨리 대학을 나와야 될 일이었다.
일단 제출된 휴학계는 다시 되돌리거나 바꿀 수 없다는 어머니의 말은 나를 김빠지게 했다. 어머니는 이미 체념한 듯 학생들이 휴학하는 정도의 일이라면 집에 확인을 해야 되지 않느냐, 학생들 멋대로 놔 두는 게 대학이냐, 하면서 애꿎게 대학을 탓했다.
나는 그제야 학교에 전화해 봤느냐, 물었다. 어머니는 소양이가 휴학 안 한 걸 했다고 그러겠냐, 해놓고 안 했다고 하는 수는 있어도, 라고 딱딱하게 말하고선 내가 학교로 전화하면 어머니가 딸 휴학한 사실도 모르세요? 물을 것이 아니냐, 본심을 털어놓았다.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어머니는 자기 생각만 해요, 이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으나 빨리 손을 써서 소양의 휴학을 백지화시키는 길이 있는지 알아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모 형제가 왜 필요하고 가정이 왜 필요하겠어요. 아이가 방황할 때, 헛발 디딜 때 손잡아 주는 거라구요."
나는 어머니와 상의한 끝에 소양의 학교로 전화하기로 했다. 불문과 교수와 만나서 휴학계를 되물릴 방법을 강구하기로 했다. 소양을 설득시키는 건 다음 문제였다.
천성적으로 낯가림이 심한 어머니는 학교로 전화하는 것을 몹시 부담스러워했으므로 그 일은 내가 맡아야 했다. 나는 다음 날 점심시간에 소양의 학교로 전화했다.
불문괍니다. 여자의 목소리가 울리자 카는 과장님이 계신가 물었다, 교수 이름을 모르니 그렇게 찾을 수밖에. 상대방은 과장님이 안 계시노라, 누구시냐 되물었고 나는 할 수 없이 이 학년생 이 소양의 언니라고 밝혔다.
이 소양, 이 소양 여자는 두어 번 되풀이하다가 아 휴학생요, 했다. 나는 휴학생이란 말이 낯설어서 소양인 어제 휴학계를 냈다는데--- 머뭇거렸다.
이어 소양이가 부모의 허락도 받지 않고 요즘 젊은애들의 소위 그 자주성으로 어제 갑자기 휴학을 했다는데 그걸 백지화시킬 수 없을까 상의하려 한다고 용건을 말했다.
상대편 쪽에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여보세요, 불렀고 그제야 상대편은 녜녜, 듣고 있다는 표시를 했다.
"저, 이 소양 학생 언니시라구요---"
여자는 머뭇거리며 물어보더니 말투를 바꾸어 소양이가 어제 휴학계를 냈대요? 봄 학기에 학교 다니다가 휴학했어요, 재빠르게 말했다,
이번엔 내 쪽에서 침묵했다. 말문이 막혔던 거다. 도대체 무슨 소리야. 혹시 이 여자가 소양을 다른 학생으로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닌가. 나는 소양이가 봄에 휴학했다구요? 이 소양 맞아요? 확인하려 했으나 조교는 이 소양이란 이름은 전체 학생 중 한 명밖에 없다, 머리를 커트한 학생 아니냐, 짐짓 짜증까지 섞인 투로 말했다.
눈앞에 쇠뭉치가 떨어지는 듯했고 나는 눈을 찔끈 감았다. 할 말을 잃었으나 무언가 말을 이어야 할 것 같아서 휴학은 어디서 확인할 수 있느냐, 겨우 한 마디 했다.
"학생처로 확인해 보세요. "
“저, 학교에서 무슨 사고를 낸 건 아니죠. 데모를 했다든가."
“그런 일이 있었다면 집에서 모를 리가 있겠어요."
조교가 조금만 친절했더라면 소양의 일을 의논했을 거다. 찾아가서 교수님도 뵙겠노라고, 아니 나는 면목이 없어서 그냥 전화를 끊었다.
아이가 휴학한 지 반 년이 되는데 가족이 모르고 있다니. 아마 어머 니가 전화했더라면 소양이가 봄에 이미 휴학했다는 사실보다 조교에게 창피했다는 것 때문에 괴로워했으리라.
이왕 일이 벌어졌으므로 나는 학생처에 전화해서 휴학을 확인했다. 조교 말대로 불문과에서 한 명밖에 없는 이 소양은 지난 봄 학기에 휴학을 했다. 날짜까지 캐묻자 더 이상 친절을 베풀 수 없다는 듯 학교 에 와서 직접 알아보세요, 하곤 전화를 끊었다.
소양이 생각으로 머릿속이 산만했으므로 그날 오후 업무는 엉망이었다. 돈을 두 번 세고도 맞는지 자신이 없었고 지급 전표의 삼십 만 원 액수가 삼백 만 원으로 헛보였다.
무엇보다 내게 갈등을 일으킨 것은 그 아이의 깜찍함이었다. 등록금을 쓰리 맞았다는 거며 사루비아 얘기며 모두 거짓말이 아닌가. 또 소양은 그 동안 식구들을 감쪽같이 속였다. 나는 직장에 다녀서 몰랐다 치고 집에 있는 어머니까지 모르다니. 소양의 연기가 그만큼 훌륭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소양이 밤늦게 책가방을 메고 들어온 것을 나도 몇 번 본 기억이 있다. 지난 오월에는 계속 밤늦게 들어와서 나는 마루에서 부딪친 소양에게 너무 늦게 다니지 말라고 웃음 없는 얼굴로 말했다.
소양은 요즘 시험이야, 도서관에서 오는 거야, 하곤 피곤한 듯 눈을 부볐다. 소양이가 방으로 들어가다 떨어뜨린 책도 기억하는데 카뮈의 원서였다. 그때 나는 소양이가 대견해서 다음 월급날 용돈을 주리라 생각했다. 여고 때까지 늘 우등을 한 의대생 혜양이나 소양이와
달리 나는 공부에 취미가 없었고 이 점을 일찍 간파한 어머니 덕분에 피아노를 전공하게 됐지만 학문에 대한 존경심을 남몰래 지니고 있었다.
소양의 휴학이 내게 안겨준 고민은 그 사실을 어떻게 어머니에게 알리느냐는 거였다. 자존심 강한 어머니는 무엇보다 딸이 자신을 속였다는 것에 배반감을 느낄 것이다. 그런 감정이 소양을 이해하고 설득시키려 하기보다 더욱 빗나가게 하지 않을는지.
중학교 때 내가 말없이 피아노를 그만두려 하자 보름이나 나를 외면했던 어머니였다. 나는 견디다 못해 울음을 터뜨리고 잘못했다고 빌었다. 그때 나도 같이 맞섰더라면 그 냉전은 얼마나 오래 끌었을까. 그때 일을 생각하자 어머니에 대한 원망이 새삼 솟구쳤다.
어머니에게 얘기하지 말고 소양을 설득시켜 등록하게 만드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등록금은 내가 어머니에게 말해서 타주겠다, 그게 내키지 않으면(우리 집 여자들은 남에게 아쉬운 소리하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했다) 내가 꾸어 주겠다, 네가 학교만 다닌다면 은행돈을 홈쳐서라도 주겠다고.
이렇게 생각하고 나자 내가 그 동안 소양의 존재를 잊을 정도로 무심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애가 우리를 속인 것을 모를 정도로 우리는 소양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소양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날 퇴근 후 최 대리와 차 한 잔만 마시고 집에 일이 있다며 빨리 돌아왔다. 아버지도 벌써 들어와 신문을 보고 있었다. 나는 내 방에 들어가기 전 소양의 방 앞으로 살금 걸어가 귀를 기울였다. 층계 앞에 있는 할머니 방에선 불빛이 새어나왔으나 이층은 조용했고 소양의 방에서도 아무 소리 들리지 않았다.
살그머니 손잡이를 돌렸다. 문이 잠겼는지 돌아가지 않았다. 안에서 자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방문을 두드렸으나 여전히 기척이 없었다. 나간 모양이었다.
소양이가 나갈 때 방문을 잠근다는 것을 나는 그날 처음 알게 됐다. 그것은 나를 약간 놀라게 했는데 우리 집 사 남매 중 방문을 잠그고 다니는 아이는 없었다. 언제부터 그런 습관을 가졌는지 모르지만 지난해만 해도 나는 일요일 같은 때 소양의 빈 방을 몇 번 이용했다. 햇빛이 들지 않는 북향이어서 낮잠 자기가 좋았다.
그날 저녁식사는 일부러 혼자 했다. 저녁을 먹으라고 불렀을 때 목욕을 하고 내려가겠노라 했다. 소양이 얘기를 어떻게 꺼내야 할지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할머니와 정우까지 있는 자리에서 콩 먹듯 말할 수는 없었다. 다혈질의 아버지는 숟가락부터 내던질지 모른다.
내가 젖은 머리로 아래층에 내려갔을 때 아버지와 정우는 거실에서 텔리비젼을 보고 어머니는 막 설겆이를 끝내고 있었다. 나는 주방으로 들어서면서 문을 닫았다. 바닥에 놓인 열무 단을 식탁에 올려놓고 다듬으려던 어머니는 더운데 왜, 하고 문을 힐끗 보았다. 나는 의자 에 앉으며 소양이 아직 안 들어왔어요? 말을 꺼냈다.
"낮에 집에 있더니만 내가 시장 갔다 오니까 나가고 얼더라. 집에 아무도 없었는데 문도 안 잠그고."
나는 미역 냉국을 숟가락으로 휘젓다가 소양이 휴학 벌써부터 했어요, 단숨에 말했다. 벌써부터가 뭐야. 어머니는 설명을 들으려고 나를 잠자코 바라보았다. 말뜻을 못 알아들은 것이 당연하다. 나는 태연히 밥을 먹으면서 학교서 확인한 사실을 들려주었다.
어머니는 식탁 위에 열무를 쌓아놓은 채 입을 다물지 못하고 내 얘기를 들었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도 이상했다.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탐색하는 듯했다. 나는 조교와 통화하면서 가족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웠다는 말까지 하고 이젠 소양에게 확인하는 일만이 남았다고 결론지었다.
어머니는 내 앞에 놓인 보리차를 꿀꺽 마시고 잔을 내려놓다가 남은 물을 쏟았다. 애들이 많으니까 별 애를 다 보는구나, 하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물을 닦았지만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충격을 받은 것이 틀림없었다.
어머니에게 진정할 시간을 주느라고 나는 아버지가 소양이 휴학 건을 알고 있는지 물었다. 어머니는 가만 고개를 내저었다. 내가 학교로 알아보면 자세한 얘기를 듣고 말하려 했다면서 네 아버지가 사루비아 어쩌고 하면 알아들으시겠니, 말끝을 흐렸다.
"엄마, 오늘 소양이 붙들고 얘기 좀 해보지 그랬어요. 소양이가 사루비아 때문에 휴학했다는 말을 이해한 거예요? 납득이 가냐구요. 납득을 하나마나 그것도 거짓말이잖아요."
내 목소리가 높아졌는지 어머니는 문 쪽을 흘끗 보았다, 그리곤 열무 하나를 뽑더니 잔뿌리를 칼로 자르며 그럴려고 했는데 두렵더구나, 나직이 말했다,
뭐가요. 나는 되물으며 재촉하듯 어머니를 지켜보았다. 어머니는 공연히 열무 다듬는 시능을 하다가 숨이 찬지 큰 숨을 내쉬었다.
"소양이와 마주앉아 얘기할 자신이 언어. 코가 시퍼렇게 멍든 채로 내 앞에서 사루비아 얘기를 할 때의 모습이라니. 나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소양이가 백 번 얘기해도 엄마는 모르실 거예요, 할 전 저 애가 정말 때 뱃속에서 나온 앤가 싶어 멍하니 쳐다봤다."
그러면서 나는 보지도 못한 둘째 외삼촌 얘기까지 해주었는데, 해방 뒤 좌우익이 갈라져 날뛸 때 외삼촌이 갑자기 공산당에 입당해 식구들을 동무라고 불렀을 때도 그렇게 섬뜩하진 않았다고 덧붙였다. 그 비유는 약간 과장된 것으로 느껴졌지만 어머니가 소양에게 받은 충격은 그만큼 컸던 것 같았다.
"그럼 엄만 계속 소양일 방관할 작정이세요?"
내가 다그치듯 말하자 소양이가 봄부터 휴학을 했었다구? 왜 나를 속였을까, 가슴이 떨려, 하고 한 손으로 가슴을 눌렀다.
어제만 해도 여유를 갖고 있던 어머니가 안절부절하는 것을 보자 소양이 일이 보다 큰 사건으로 실감되었다. 먹구름이 갑자기 집안에 드리워진 듯했고 내 결혼을 두 달 앞둔 때임을 생각하자 불안하기까지 했다.
"엄마, 어쩌다 이런 일이 생겼을까?"
나는 불쑥 말하고 어머니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내가 그렇게 잘못한 것 같지도 않은데,,,,,,"
어머니는 도톰한 아랫입술을 깨물곤 열무줄기를 똑똑 분질렀다. 전에 없었던 심약한 모습이어선지 눈 밑의 잔주름도 깊어 보였다. 나는 오랜만에 어머니에게 친근감을 느꼈다. 내가 떠나기 전까지라도 어머니의 힘이 되고 싶었고 이 집안의 맏딸로서 의무랄까, 사명감 같은 것을 가지고 싶었다. 소양이 문제는 내게 주어진 마지막 과제처럼 여겨졌다.
그날 밤 소양이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두 시까지 뜬 눈으로 기다리며 소양이에 대한 생각을 여러 가지 했다. 무엇보다 서로 단절된 원인을 추적해 보았는데 개인주의 생활방식에 문제가 있음을 깨달았다,
우리는 머리가 커지면서 서로 간섭 않고 자기 할 일만 해왔다. 이런 개인주의 생활을 가능케 한 것은 각자의 방이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내 방을 가지고 있었지만 중학교 때까지 함께 방을 썼던 혜양이와 소양이도 오 년 전 지금의 삼층 집에 이사오면서 각기 제 방을 차지하게 되었다.
혜양이도 그랬지만 그때 소양이가 좋아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소양은 먼저 제가 좋아하는 비틀즈 판넬을 방에 걸고 어머니를 졸라서 응접실에 있던 낡은 전축을 제 방으로 옮겼다. 소양이 방에선 매일 팝송이 울려나왔고 소양은 사흘이 멀다 하고 꽃과 양초를 사들고 왔다. 용돈의 대부분이 그것들을 사는 데에 쓰인 듯 반 년도 못 가서 소양의 방엔 말린 꽃들과 가지각색의 양초들로 채워졌다. 여고생 때면 한창 그럴 나이지만 소양의 유미적 취미는 기갈난 사람의 그것처럼 한정을 몰랐다.
한번은 밤에 내가 좋아하는 음유시인 레널드 코엔의 노래가 들려와서 소양의 방에 들어간 적이 있다. 방엔 십여 개의 촛불이 작은 흔들림처럼 피어 있고 천장엔 말린 꽃 그림자가 성에처럼 깔려 있었다.
굴 속 같은 방으로 한 발 한 발 걸어 들어가자 벽 가까이서 촛불을 등지고 누워 있는 소양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머리맡엔 박쥐 같은 것이 웅크리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그것은 까만 우산이었다. 방안에서 까만 우산을 쓰고 누워 있는 모습은 괴이하기까지 했으나 촛불 때문인지 신비하게도 보였다,
까만 우산 천에 불빛이 부딪쳐 흩어졌고 소양은 눈을 감은 채 꼼짝 않고 있었다. 그때까지 내가 방에 들어온 것도 모를 정도로 자기 세계에 빠져 있었다. 그래, 지금에야 이 표현이 떠오르지만 그것이 소양의 세계였다. 주문처럼 타오르는 양초들, 제 스스로 당겨 놓은 불을 못 견뎌서 소양은 또 빛들을 까만 우산으로 차단하고 있었다.
다시 생각하니 전율이 올 정도로 그날 밤의 인상이 강하다. 나는 소양이 모르게 방을 빠져 나왔다. 소양은 다른 세계에 사는 것 같았고 나는 그것을 세대 차라고 단정지음으로써 편하게 소양의 공간을 인정했다.
그후론 소양을 특별히 눈여겨 본 적이 없는 듯하다. 내가 소양에게 신경 쓰지 않은 것은 촛불을 켜놓고 우산을 쓰든 말든 소양은 여전히 우등생이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나는 소양을 믿었고 속으로 어머니 이상 기대했다.
재주가 많은 소양을 예전에 나는 정말 귀여워했다. 피아노를 내 어깨 너머로 배워 혼자 칠 정도로 감각이 뛰어난 아인데 어릴 전 무용을 잘 해서 무용소 선생은 다른 아이들의 질투를 묵살하고 소양을 늘 앞에 세워 시켰다. 유연한 몸짓이며 아이답지 않게 감정이 우러나는 춤을 보는 것이 즐거워서 나는 시간만 나면 소양의 무용소에 따라가 토신을 신겨 주곤 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체육 선생의 눈에 띄어 피겨 스케이트를 시작했다. 그때 나는 한창 바쁜 대학 신입생이었으나 롱 스케이트를 타러 소양이 연습하는 동대문 스케이트장에 가끔씩 갔다. 두 팔을 펼치고 빙판에 원을 그리며 도는 모습도 새처럼 날렵했는데 우리 집 딸 중에선 인물이 빠지는 편이지만 춤출 때의 소양은 나를 매혹할 만치 아름다웠다.
우리가 멀어진 것은 확실히 삼층 집에 이사오고 부터다. 소양도 제 방을 가지게 됐지만 나는 그 즈음 내 인생에서 가장 큰 고통을 겪고 있었다. 심한 우울증에 빠진 근 일 년 동안 식구들과도 말다운 말을 나누지 못했다. 졸업 뒤엔 엉뚱하게 은행에 취직해서 사회에 적응하기 바빴다.
여고 때까지만 하더라도 내 방을 기웃거리며 브람스나 바하의 레코드를 곧잘 빌어가던 소양이 뜻밖에 대학입시에 떨어지면서 걸음이 뜸해졌다. 내가 한때 그랬듯이 식구들과 말하는 것조차 귀찮아하고 일요일에도 제 방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이따금 밤늦게 술 냄새를 풍기고 들어오기도 했지만 재수생의 좌절감이려니 생각하고 아무도 소양을 나무라지 않았다. 다행히도 소양은 다음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고 발랄한 옷차림과 여러 서클에 가입하는 등으로 제 생활을 찾은 듯했다.
서로가 그토록 단절된 것은 나와 소양이 사이에 낀 혜양이가 공부 벌레라는 사실과도 무관하지 않다. 혜양은 밥 먹을 때도 김이 서려 있는 밥 뚜껑에다 영어단어부터 쓰는 아이였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엔 물이 쏟아진 식탁이나 성에 낀 버스 유리창이나 가리지 않고 영어 단어를 복습했다. 밥 먹기 전에 할머니가 기도하라고 설교하면 나는 무신론자라고 영어로 말하면서 단어까지 외었다. 할머니를 비롯해 영어를 모르는 식구들은 매사에 이런 혜양에게 질려서 아예 말을 시키지 않았다.
영어 때문에 혜양은 학교에서도 근신조치를 받을 뻔한 적이 있다. 기독교 계통의 여학교에 다니던 혜양은 매일 새벽에 집에서 나갔다. 선교사 집 앞에서 선교사를 기다려 학교에 가는 동안 함께 영어를 하기 위해서였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 일이 이어지자 학교에 이상한 소문이 퍼졌다. 혜양이 선교사와 연애한다는 소문이었다.
이것은 학교 당국의 귀에도 들어갔다. 어머니까지 학교에 불려가게 되었는데 그 얼마 뒤 선생은 아이들에게 소문의 진상을 밝혔다. 혜양인 편애한 것은 선교사가 아니라 영어였다고.
아무튼 잠도 책상에 엎드려 잘 정도로 지독하게 공부하는 아이였다. 내가 독촉하는데도 화장실 변기 위에 앉아 식도에서 대장까지 음식이 소화되는 과정을 화학기호까지 덧붙여 읊어서 내 분통을 터뜨린 적도 있다,
이런 혜양으로부터 벗어났으니 소양이 굶주린 듯 양초와 꽃을 사들이고 음악에 몰두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내가 알기로는 한때 소양은 생물학자가 될 꿈을 갖고 있었다. 멘델의 유전법칙에 몹시 흥미를 느껴 좋은 인자를 개발하는 유전공학자가 되겠다고 했다.
예술가의 재질을 갖고 있으면서 학구적인 꿈을 갖게 된 것은 혜양에게 받은 영향이 아닌가 싶은데 둘 사이는 무척 좋았지만 각기 방을 따로 쓰고 혜양이 대학에 들어가면서 서로 멀어진 듯했다.
우리 집의 개인주의는 어머니로부터 비롯된 면이 없지 않다. 어머니는 일류여고 출신임을 긍지로 삼고 있는 자존심 강한 여자이다. 공부도 잘했지만 께끼 바느질 솜씨가 뛰어나서 중매가 밀려들었다고 한다. 광산으로 벼락부자가 된 아버지 집에선 가난하지만 머리와 미모와 솜씨를 갖춘 어머니에게 혹했다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공부하기를 죽기보다 싫어해서 고보도 끝내지 못하고 할아버지 사업을 도왔다는 아버지는 지적인 어머니를 몹시 자랑스러워하고 떠받들며 살아왔는데 딸 셋에게 양띠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표적으로 양자를 넣어 이름지어 준 걸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어머니는 지금도 웬만한 옷은 재봉틀을 돌려 만든다, 패션쇼를 해도 될 정도로 아버지의 가운도 많이 만들었고 우리들도 어릴 땐 전부 어머니가 만든 옷을 입고 다녔다. 딸기 모양의 빨간 주머니가 달린 옷이나 수녀복처럼 크고 둥근 깃이 달린 외투는 지금도 기억나는데 당시로선 파격적인 것이어서 내 옷은 늘 아이들의 시선을 받았다
세 딸 중 유일하게 어머니 재주를 물려받아서 나도 간단한 옷은 눈 짐작으로 만들고 스웨터를 떠 입었지만 어머니 솜씨에는 결코 미칠 수 없었다.
어머니는 자신이 완벽한 만큼 웬만한 건 눈에 차질 않아서 딸들에게도 여간해서 잘했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그 점이 여느 엄마 같지 않아서 우리들의 불만을 샀다. 덕분에 남의 칭찬을 바란다거나 자기 도취에 빠지는 일은 없게 됐지만 우리들은 어머니의 잔정을 받아 보
지 못한 셈이다,
맏딸인 나는 커가면서 또 한 가지 못마땅한 점을 발견하게 됐는데 어머니가 나를 같은 여자로서 대한다는 점이었다. 그것 때문에 기분이 묘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래층 안방엔 욕실이 딸려 있다. 안방에서 얘기하다 나는 오줌 마려워 그 욕실에 들어가려 했다. 어머니는 빨래가 있는데-----말끝을 흐리면서 밖에도 화장실이 있잖아, 쌀쌀하게 덧붙였다. 물론 그것은 부부가 사용하는 욕실이지만 어머니는 마치 남이나 보는 것처럼 싫은 기색을 했다.
그 뒤 나는 안방에 들어가는 것부터 삼갔지만 어쩌다 들어가게 되면 욕실을 흘끗 보며 어머니와 아버지가 벌거벗은 장면을 떠올렸고 잘난 체해야 동물인걸, 복수하듯 중얼거렸다, 아무튼 이 일은 두고두고 나를 기분 나쁘게 만들었다.
이뿐 아니다. 어머니에겐 또 우습기 짝이 없는 면이 있는데 몹시 수줍어한다는 것이다. 졸업반 축제 때 나는 음대생 미전에 글씨를 출품했다. 당연히 어머니를 초대했고 어머니는 그날 입을 옷까지 생각하며 아이처럼 달떴다.
그러나 어머니는 정작 전시회에 나타나지 않았다. 학부형들이 방명록에 붓글씨를 쓴다는 말을 듣고서다.
소양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데 있어서도 어머니의 태도는 못마땅할 정도로 소극적이었다. 다음날 오전 내가 집으로 전화할 때도 어머니는 푸념만 했다. 소양이가 이날 아침에야 친구를 시켜 집에 전화했지만 헛일이라는 것, 어제 밤 아버지에게 소양이 얘기를 했으니 오늘은 집 안이 시끄러우리라는 것이었다.
봄부터 휴학한 것두요? 나는 조심스레 물었으나 어머니는 물론이야, 담담하게 답했다. 소양과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얘기를 나눈 다음 아버지에게 알리는 것이 좋을 텐데. 일이 드디어 터지는가 싶었지만 나로서도 별 수 없었다.
그날은 퇴사를 하루 앞둔 날이어서 가른 부서의 여은행원들과 저녁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소양이 일로 마음이 급했으나 다시 함께 저녁 시간을 가질 기회가 얼을 것 같아서 취소하진 않았다. 그 대신 집에 일이 생겼다고 양해를 구하고 저녁을 먹은 돌솥밥 식당에서 커피까지 마시고 그것으로 끝냈다.
내가 집에 들어갔을 전 아홉 시가 채 못 된 시각이었다. 누구세요? 인터폰으로 어머니의 목소리가 울리기에 나는 대뜸, 미양이예요, 소양인 들어왔어요? 물었다. 어머니는 대답 대신 기다려라, 하고 끊었다.
대문은 어머니가 직접 나와 열어 주었다. 나는 문밖에서 어머니가 현관으로 나서는 기척을 들으며 벌써 집에 일이 벌어졌음을 알아챘다.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는 문을 열고 침통한 얼굴로 말했다.
"조용히 들어가 봐라, 아버지가 소양이 야단치시는 모양이다. 밥도 아직 안 먹었다던데."
현관 앞에서 희미하게 들리던 소리가 안으로 들어서자 또렷하게 울려왔다. 소양인 아버지 맞은편 소파에 앉아 있었다. 허리를 곧추세우고 엉덩이를 반만 걸쳐 앉다시피 한 아버지의 자세가 불안정한 데 비해 푹신한 레저 소파에 파묻혀 있는 소양의 자세는 고양이처럼 편안해 보였다.
"부모를 속인다는 건 용납할 수 없다, 요즘 젊은애들이 어른 말 안 듣고 제멋대로인 건 알지만 넌 우릴 속이기까지 했잖아. 부모를 바보로 만들어도 분수가 있지, 대학서 배운 게 그 따위냐."
아버지는 말하다 말고 나를 흘긋 보았으나 소양은 눈길을 탁자에 둔 채 잠자코 있기만 했다. 꼼짝하지 않는다는 것 외엔 표정이 태무심해서 야단맞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다녀왔습니다. 인사하고 나는 이층에 올라가 재빨리 옷을 갈아입고 내려왔다, 저녁은 먹었지만 조금이라도 숟가락을 뜰 생각이었다. 주방에선 아버지와 소양의 말을 들을 수 있을 테니까.
"말을 해야 네 속을 알 게 아니냐. 뭐가 불만이고 뭐가 문제냐. 너무 호강해서 문제냐."
아버지는 계속 다그치고 있었고 내가 옆으로 지나가도 소양은 여전히 본 체하지 않았다. 소파에 몸을 푹 파묻고 한 손으로 머리를 고이고 있었다.
"소양이 아직 밥 안 먹었어요?"
식탁에 두 사람의 수저가 놓여 있어 물으니 어머니는 고개만 끄덕이며 내 앞에 국 그릇을 놓았다.
"딸한테 감쪽같이 속은 것이 챙피했는지 네 엄마도 처음엔 나한테 거짓말을 했다. 네가 지난 봄에 휴학한 걸 진작 알았지만 내가 납득 못할까봐 망설이기만 하다가 이제야 말한다고. 그게 말이나 돼? 벌써 몇 달이 지나서 말한다는 게. 내가 자꾸 다그쳐 물으니 할 수 없
이 말했지. 나는 영 모르고 넘어갈 뻔했네. 기가 차서."
아버지의 혀 차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물을 한 잔 다 마셨다. 그리고 내가 소양이 학교에 연락해서 휴학 건을 알게 된 것을 소양이가 알고 있는지 따지듯 물었다. 나는 소양이가 아직은 그것을 모르기를 바랬다. 평상시엔 관심도 갖지 않았으면서 경고장 같은 휴학건을 내놓으니 허둥지둥 뒤를 추적했다는 것도 민망했고 무엇보다 나는 그 일에 대해 소양과 단 둘이 얘기하고 싶었다.
"그걸 숨길 게 뭐 있어. 언니가 동생 일에 관심 갖는 게 당연하지."
관심이라는 말에 벌레가 얼굴에 기어오르는 듯했다, 당기지 않는 국을 떠먹는 시늉을 하는데 아버지 말소리가 다시 울렸다.
"도대체 그게 무슨 짓이냐. 무슨 실수를 해서 등록금을 썼다고 치자. 물론 처음엔 야단을 쳤겠지만 우리가 그 정도 돈으로 널 휴학하게 만들겠어? 그 무슨 큰 죄를 지었길래 봄에 휴학한 걸 여태 숨겼어. 사내애 뒷바라지했어, 불장난하다 일이 생겼어?"
무식스럽기까지 한 아버지 말에 눈쌀이 절로 찌푸려졌다. 소양의 비음이 연이어 들려왔다.
"이해 못할 테니까 얘기 않겠어요. 지금 하신 말들이 그걸 입증해요. 이번 등록금을 써 버린 건 사실이지만 처음엔 복교해 볼까 하는 마음으로 받았어요."
"이해 못할 테니까? 좀 가르쳐 놓으니 부모한테 저 따위 말대답이나 하고."
그건 아버지가 우리를 비난할 때 쓰는 상투어였다. 혜양의 표현으로 무학자의 열등감이었다.
이어 아버지는 사람 생각이라는 게 다 부처님 손바닥에 손오공이지 너는 산꼭대기에 올라 앉았느냐, 살았으면 얼마나 살았어, 못된 것, 하며 그르릉 거렸다. 아버지 말투가 자꾸 거칠어져서 가슴을 졸이고 있는데 소양도 계속 맞서 대꾸했다.
"내가 잘 나서 아버지가 이해 못하신다는 게 아니에요. 나 자신부터 내가 왜 그래야 했는가를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어요. 가짜로 살았다는 생각이 들고 학교도 껍데기 같고,,,,,, 암튼 학교는 못 다니겠어요."
"그런 식으로 말하면 어떤 부몬들 이재하겠냐. 온 식구를 다 속인 건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이야. 난 심장이 떨리는 것 같아 잠도 못 잤다."
어머니는 어느새 차를 끓여 거실로 나갔다. 늘 그렇듯이 아버지의 권위를 세우느라 잠자코 있다가 중요한 대목에서 나서는 것이다. 어머니는 소양이 앞엔 찬 인삼차를 놓고 아버지 옆에 나란히 앉았다.
"어쨌든 이번 학기엔 등록해. 오늘 학교에 알아보니까 이차 등록기간이 남아 있다더라."
그건 내가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해결책이라도 발견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 등록 아직 끝난 거 아니래요? 되물었다. 그러면서 확인하러 거실로 나서는데 소양은 양 눈썹을 모으며 그럴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날 일은 여기까지만 말하자. 그 뒤 장면은 과히 유쾌하지 않다. 소양을 얼르지 못한 아버지는 모처럼 세워 보려 했던 가부장의 위엄이 묵살 당했다고 생각했음인지 순종할 기색이 없는 소양에게 정신나간 것이라고 혐오스런 표정으로 뱉았다.
이어 요샛 것들은 너무 배 불러서 문제를 일으킨다. 자기 세대는 전쟁 때 전우의 시체를 넘으면서 살아 남았다. 전쟁 뒤엔 식구들 양식을 구하느라 배낭을 짊어지고 강원도 산골을 헤매 다녔고, 나일론 양말공장에서 시작하여 스웨터 수출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이날까지 하루도 발뻗고 자 본 일이 없다는 등 생존 경력을 읊었다. 그리고 공연히 무슨 사상이나 있는 척하며 데모나 하고 제멋대로인 젊은 것들의 뻔뻔한 상판대기가 보기 싫으니 빨리 꺼지라고 소리쳤다.
그날 소양을 이층으로 올려보낸 것은 나였다. 아버지에게 욕을 들으면서도 소양은 푹신한 소파에 파묻혀 꼼짝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따분해 보이는 표정은 일어서는 것조차 귀찮은 듯했다.
자식들의 정신세계는 들여다볼 생각도 않고 물질적인 것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려는 아버지도 싫었지만 성의 없이 앉아 있는 소양에게도 화가 났다.
나는 소양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소양은 용수철이 튀듯 가볍게 이끌려 일어서서 여태 들은 아버지 말에 대한 의무라도 하듯, 아버지 도움을 받지 않고 살아갈 생각도 하고 있다, 한 마디 했다. 홧김에 텔리비젼을 크게 틀어 놓아서 아버지는 그 소리를 듣지 못했고 그것은 다행이었다. 대부분의 가장들이 그런지도 모르지만 아버지근 한 가족의 생계를 이끌어가고 있다는 것에 대해 자부심이 강했다.
소양이 이층으로 올라가자 나는 주방으로 가서 국을 데웠다. 쟁반에 밥을 차리고 보리차까지 놓아 소양의 방으로 들고 갔다. 층계에서부터 음악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소양이 즐겨 듣는 코엔의 노래, (빨치산)이었다. 배음으로 울리는 여자들의 합창이 어둑한 이 층에 깔렸고 그것은 슬픔의 그림자처럼 가슴에 무겁게 드리웠다.
소양의 방문을 가볍게 두드리며 손잡이를 돌렸으나 열리지 않았다. 소양아, 문 좀 열어 봐. 나는 쟁반을 든 채 큰소리로 불렀다. 한동안 대답이 얼었고 나는 다시 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 문이 열렸다. 배음으로 깔린 여자들의 합창이 문밖으로 쏟아지면서 이마를 찌푸린 소양이 어둠 속에서 나타났다. 불을 끈 방안엔 전축에서 새어나오는 파란 불빛만 가물거렸다, 언니 왜? 소양은 무뚝뚝하게 말하곤 내 손에 들린 쟁반을 흘긋 보았다.
그때 소양이 눈썹을 곧추세운 것은 뜻밖이라는 뜻일까. 그러고 보면 근래에 소양에게 커피 한 잔 타다 준 일이 없었다. 나는 겸연쩍어 엄마가 차려 가래서, 하곤 떠안기듯 쟁반을 내밀었다
2
내가 소양을 적극적으로 추적한 것은 은행을 그만두고서다. 은행을 영구 직장으로 생각해 보지 않았으니만큼 결혼을 앞두고 당연히 사직했다. 용돈은 집에서 타 쓰면서 오 년 짜리 재형 저축과 정기 적금을 부었고 퇴직금까지 합쳐 육백만 원을 어거지로 모았다. 거기다 장래의 남편가지 만났으니 은행에 더 이상 미련이 없었다. .
섬유업을 크게 하는 이모부에게 부탁해서 거래 은행에 특채로 들어갔던 것이 오 년 전이었다.
재산세만도 일 년에 이천만 원씩 내는 교수 고객을 단골로 둘 만큼 연륜도 쌓았지만 처음엔 큰 돈 뭉치를 보면 숨이 막히고 은행 셔터를 내리고 그날 시제를 맞출 전 또 무슨 실수를 했을까 싶어 눈썹까지 곤두섰다.
만 원 안팎의 돈은 숱하게 차질이 생겼다. 이런 돈은 못 찾을 것이 뻔하므로 계정 처리를 하지 않고 내 돈을 밀어 넣었다. 어느 날엔 삼십 육만 원의 차이가 나기도 했다. 사만 원 수표를 사십만 원으로 보고 돈을 내주었던 게 분명했다.
이런 나를 보고 차라리 은행에 다니지 않는 것이 이익일 것이라고 말한 동료도 있었지만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직장이란 그때 내게 절실한 것이었다. 대졸 은행원이 편한 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하는 여고 출신 텔러와의 갈등도 심했지만 나는 끈기 있게 버티어 나갔다.
어디서나 마찬가지겠지만 은행 역시 하나의 작은 사회여서 나는 이곳에서 불신을 배웠다. 어떤 실직자인 듯한 남자가 구십만 원을 입금시켜 놓고 다음날, 예금을 맡긴 부인과 함께 와서 백만 원을 넣었다고 우기는가 하면 방금 입금한 돈을 함께 온 사람이 다시 찾아가는 네다바이 사건도 종종 있었다.
이런 일로 늘 긴장해 있지만 외부에서뿐 아니라 은행 안에서도 서로 피해를 줄 수 있어서 동료와도 거리를 두고 친해야 했다. 손님에게 돈을 받고 옆 사람의 도장을 찍을 수도 있었다. 애인의 사업을 도우느라 한 여은행원이 실제 그런 일을 저지른 적이 있었다. 나도 피해자의 한 사람이었지만 아무튼 잠시 자리를 비워도 도장은 꼭 갖고 다녀야 했다.
음악과 전혀 다른 세계를 원해서 은행을 택했지만 이러한 긴장은 어느 땐 나를 멍하게 만들기도 했다. 약혼자인 최 대리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백치 상태의 주기적인 조울증에 걸렸거나 은행을 훨씬 빨리 그만두었을 거다.
최 대리는 처음에 전혀 내 눈에 띄지 않았던 사람이다. 사회의 초년생인 내게 대리라는 직함부터 거리감을 주었고 무의식적인 기피였겠지만 또 당시 나는 남자에게 무관심했다.
은행원들의 사내 연애가 대개 그렇게 이루어지듯이 최 대리가 내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내나 곤경에 처했을 때 알게 모르게 정신적인 힘이 되어 주면서다. 입금전표와 지급전표에 의한 시제가 맞지 않아 쩔쩔매면 그때마다 돈 액수에 따라 상황을 판단해 내가 적절히 처리하도록 조언했고 계산을 끝낼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한 달만에 돌아오는 월말 잔액대조 때는 우리 계원들과 함께 야식을 들며 밤을 새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가까워지게 됐는데 내가 삼십 육만 원의 차액을 물고 울화를 삼키던 어느 날은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술을 샀다.
그날 나는 평상시 정신을 빠뜨리고 일하는 내 자신이 싫고 자존심이 상해서 그의 위로가 달갑지 않았다. 나는 선수치듯 이번의 차액도 계정 처리하지 않고 내 돈을 넣겠다, 사만 원 대신 사십만 원을 양심 없이 가져간 사람이 반납할 리 없으니 깨끗이 책임지겠노라 했다.
최 대리는 반대하진 않았다. 단지 액수가 너무 많으니 상사로서 함께 책임지고 싶다는 뜻을 비추었다, 나는 상사가 아니라 아버지라도 그런 책임을 전가할 수는 없다고 거절했다.
그때 최 대리는 갑자기 오빠 같은 표정을 지으며, 가만 보면 미스 리는 오기로 은행 다니는 것 같구먼, 피아노 치던 손으로 왜 하필 돈 셀 생각을 했어요, 기악부원으로 들어오라는 것도 싫다고 했다면서요, 물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은행마다 행사 때 피아노를 치는 음대 출신 기악부원을 한 명씩 뽑지만 나는 고졸 대우를 각오하면서까지 특채로 들어갔다.
내가 그날, 원하는 만큼의 돈을 모을 때까지는 은행에 다니겠다, 사람 마음은 알 수 없으므로 결혼한 남자가 행여 싹수 없는 짓을 하면 당당히 혼자 독립할 기반을 갖기 위해서라고 속마음을 털어놓은 걸 보면 최 대리를 왜 믿고 있었던 것 같다. 최 대리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그런 식의 적자를 낸다면 정년퇴직 때나 결혼해야 하는 거 아니요, 하며 억지로 웃음을 참았다.
나도 웃지 않을 수 없었고 바래다주겠다는 그의 제안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그것이 우리의 첫 데이트였다.
결혼을 두 달 앞두고 사직서를 낼 즈음 소양의 휴학 건이 알려졌으므로 뜻밖의 걱정이 생긴 셈이지만 한편으론 소양에게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도록 기회가 적절히 주어진 듯했다.
나는 처음부터 섣불리 설득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 동안 우리는 각기 제 울타리 속에서 살았다. 소양은 소양대로 제 성을 굳건히 쌓고 있어서 쉽사리 문을 열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우선 명주부터 만나기로 했다. 명주는 소양과 여고 단짝으로 함께 재수를 한 친구다. 과는 달리 지망했으나 같은 학교에 들어갈 정도로 가까웠는데 지난해까지만 해도 종종 집에 놀러 왔다. 명주라면 소양의 휴학을 벌써부터 알고 있었을 거다, 내 경우도 그랬지만 젊은 아이들이란 부모나 가족보다 친구끼리 더 잘 통한다고 생각하는 법이다.
우리 집 전화 명단에 있는 명주 전화번호는 옛날 것이었다. 전화 받는 사람이 전화번호가 바뀐 지 일 년이 다 되어 간다는 걸 보면 명주네는 벌써 이사를 간 듯했다.
불과 두 달 전에도 소양은 명주 집에서 자겠다고 어머니에게 허락을 받아 외박을 했다. 물론 소양을 믿고 확인전화를 해보지 않았겠지만 어머니는 보기 좋게 속은 셈이다. 몰래 휴학했을 때부터 그런 셈이지만.
은행에 출근하지 않은 첫날, 나는 이불 속에서 꿈지럭대며 한가함을 맛보려 했으나 이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명주를 만날 생각이었다. 소양에게 명주 전화 번호를 묻는다는 것은 형사가 용의자에게 추적을 예고한 꼴이어서 나는 무작정 학교에 가기로 했다. 혹시 명주를 못 만나더라도 소양의 학교에 일단 가 보면 무언가 얻을 것이 있을 듯했다.
기척 없는 소양의 방을 흘긋 보곤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주방에서 할머니와 혜양이가 밥을 먹고 있었다. 할머니는 연보라색 블라우스를 입고 머리에 금빛 망사수건을 두르고 있었다. 아침부터 맛사지를 했는지 옆에 앉자 상큼한 오이 냄새가 끼쳐 왔다.
혜양이와는 사흘 전에 함께 아침을 먹었으나 오랜만에 보는 듯했다. 오늘 학교 늦게 가? 내가 말을 걸자 혜양은 신문에서 그제야 눈을 뗐다.
"언니, 이제 은행 안 나간다며? 결혼하고도 다니지 그래. 자기 일 없으면 지겹잖아."
"나도 그건 반대다. 최 대리가 그렇게 원하더라도 다른 지점으로 옮긴다든지 하지, 젊어서부터 퍼지고 앉으면 못쓴다. 남자가 밥 먹여 주면 편할 것 같지만 여자도 자기 경제권이 있어야 큰소리쳐."
그건 할머니 자신의 얘기였다. 할아버지가 남긴 말죽거리 땅값이 치솟아 그것으로 빌딩을 짓고 세를 받아들이는 할머니였다.
"남자 밥 그냥 안 얻어먹으려고 여태 직장 다닌 거 몰라요? 그 점에선 염려 놓으시라구요. 피아노를 치더라도 내 밥벌이는 할 테니까."
결혼을 밥과 연결시키는 것이 못마땅해서 퉁명스레 대꾸하고 나는 소양이 아직 내려오지 않았느냐 물었다. 혜양은 대뜸 걘 요새 너무 우리를 놀라게 해, 하곤 이마를 찌푸렸다.
"어쩜 그렇게 깜찍한 짓을 잘 수가 있느냐, 다그쳐 물었더니 휴학이 그만큼 절실했다, 언니 같은 공부벌레는 이해 못할 거야, 딱 한 마디 하잖아. 대화도 거부야. 요새 애들은 위아래도 없고 자기만 옳아"
"소양인 요새 사탄에 씌웠어. 마귀 시험에 들었어요. 안수기도 받으러 잘 아는 목사님께 가자고 했더니 벼락같이 화를 내더라."
그 말을 듣자 나는 어이가 없었다. 주님의 은총을 받은 할머니가 직접 안수해 주지 그래요, 빈정거리곤 혜양에게 이번 일요일에 시간이 되면 소양일 데리고 나가서 함께 점심을 먹는 것이 어떻겠느냐 뜻을 물어보았다. 혜양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난 걔가 이해 안 돼. 너무 깜찍해서 끔찍해. 나하고 얘기도 안 하려 들면서 툭하면 내 구두 꺼내 신고 가서 흙먼지를 피워 내팽개쳐 놓는단 말야."
혜양의 신발이 우리 집 신발장을 채울 정도로 많긴 하지만 그건 처음 듣는 얘기였다. 혜양의 구두는 열 켤레가 넘고, 운동화도 대여섯 개나 되는데 그것은 혜양의 유일한 사치였다. 나는 혜양을 슬쩍 흘겨 보았다.
"넌 신발이 많잖아."
"소양인 지 신발이 없대?"
"그래도 친하다고 네가 만만한가 봐. 소양이가 내 구두 신은 적은 한번도 없어."
나는 다둑이듯 말했으나 혜양은 끝까지 투정을 부렸다.
"친할수록 예의를 지켜 됐으면 좋겠단 말야."
그날 아침, 나는 어머니와도 소양이 문제를 놓고 의견을 나누었다. 어머니는 소양이 원치 않더라도 등록을 하자는 생각이었고 나는 소양의 의견을 존중하자는 쪽이었다. 저 흔자 휴학 결단을 내린 아이가 집에서 억지로 등록을 해준다고 학교에 다닐 것 같지 않았다.
그러려면 우선 소양일 설득해야죠, 하다가 나는 어머니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당분간은 제가 원하는 대로 내버려두자, 이십 세의 감수성은 칼 끝 같은데 모든 것이 버거운 듯하다, 그럴 전 차라리 쉬면서 자기 정리를 하도록 지켜봐 주어야 한다고.
철없는 짓이니까 등록은 꼭 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어머니도 내가 소양이 나이의 신경증에 대해 말하자 생각을 바꾸는 눈치였다. 나는 그 나이 때의 나를 생각했지만 이유 없는 반항의 제임스 딘을 무척 좋아했던 어머니여서 말이 통하지 않는 바는 아니었다.
나는 그날 오전 서둘러 소양의 학교로 갔다. 교문으로 들어서자 숲 속에 솟아 있는 고풍스런 석조 건물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바깥 세상 것과는 다른 신성한 위용을 보여서 성역과도 같았고 몇 년만에 대학 교정을 걸어가노라니 야릇한 감회가 살아났다.
명주가 다니는 사학과 사무실엔 열 한 시가 넘어 도착했다. 수업 시간표부터 알아보니 마침 열 한 시에 사학과의 전공 수업이 있어서 끝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마이크 소리가 울리는 어둑한 강의실 복도를 빠져 나와 밖으로 나서자 사루비아 화단이 눈부시게 다가섰다. 갑자기 쏟아지는 햇볕과 함께 그것은 핏물처럼 시야에 번졌고 나는 거의 현기증을 느꼈다.
건물 어구인 화단 왼편에 벤치가 놓여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플라타너스 아래로 결어가니 각종 포스터와 공문들이 빈틈없이 붙어 있는 두 개의 게시판이 보였다.
날조된 가치관, 집단의 횡포, 양심에의 경종, 아서 밀러의 시련 예매중
기술자립인가 기술종속인가 주제논문 발표
XX대학교 대동제 개교 30주년
민주 민중 민족해방을 위한 통일굿
학도여! 신새벽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경고! 떼지 마시오. 우리의 광장을 침입하는 자 철저히 감시합시다
굵은 모딕체의 글씨들이 다투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왠지 선혈 같아서 전율과 연민을 동시에 느끼게 했다.
학원사태는 이미 내가 태어난 60년대부터 한일 회담, 3선 개헌 반대 등으로 불붙었고, 유신체제에서 열기를 더해 갔는데 74년도의 민청학련 사건을 거치면서 거세게 확대되었다.
유신시대에 생겨난 제적생이 786명이나 되지만 박대통령 피살 이후 안개정국에서 떠오른 군부 주도세력이 전국으로 계엄령을 확대하고 대학 휴교령을 내린 80년 517조치 이후 학원가엔 민주의 열망이 성난 파도처럼 번졌다.
시위학생들에 대한 계엄군의 무력진압으로 625동족상잔 이후 최대의 민족적 비극인 광주사태가 발생하면서 83년 말 복교허용 발표 때까지 무려 1,363명의 학생이 제적되었다.
하루 한 명 이상이 학원사태로 구속 제적된 셈인데 신문지상엔 일 단 짜리 학원 기사가 시대의 밑반찬처럼 연일 오르내렸다.
자유의 회오리바람이 잠들지 않는 대학의 광장은 신성했다. 그러나 무자비한 권력의 손목이 언제라도 그림자를 드리울 수 있는 유예된 특권의 땅이었다. 세상 밖으로 한 발짝만 나오면 젊음의 숨들 꺾을 방패가 복병처럼 숨어 기다리고 있었다.
벤치에 앉아 있노라니 어디선가 기타소리가 들려왔다. 스페인 풍의 무곡 같았으나 감정이 깃들어 있지 않아 권태롭게 들렸다.
숲에서 남녀 학생들의 잔잔한 웃음소리가 들려왔고 내 앞으로 껑충한 통바지에 뾰족 구두를 신은 한 여학생이 귀걸이를 흔들며 바삐 걸어갔다. 어깨에 닿을 정도의 긴 금속 줄에 삼각형까지 달린 귀걸이가 우스꽝스러웠지만 그것도 젊음의 모습인지 모른다.
기타소리를 들으며 망연히 앉아 있으려니 풍경을 관조하고 있는 자신이 문득 늙은이 같은 생각이 들었다. 결혼을 앞두고 있어서일까. 아니 청춘을 상해 받지 않았더라면 나는 영원히 그것을 누리고 싶어했을 것이다. 그리워할 것이며 투명한 초록색 공 같은 청춘을 추억 속에서 한없이 부풀렸을 거다.
강의가 끝날 즈음부터 강의실 밖에서 기다렸던 나는 명주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명주는 처음에 어리둥절해 했지만 내가 일부러 찾아온 것을 알자 그래요? 하곤 혼자 짐작하는 듯했다. 점심 시간이었으므로 나는 명주를 데리고 교정을 빠져 나왔다.
경양식 집에 자리잡자 명주가 먼저 소양이 안부를 물었다. 소양이를 만난 지 얼마나 돼? 그간 명주 전화번호가 바뀐 것을 상기하며 나는 그것부터 되물었다.
"학기말 시험 전이니까 두어 달 돼요"
"아, 그때 소양이가 니네 집에 갔지. 전화했잖아."
소양의 말이 거짓말이 아니었다는 안도감으로 나는 아는 체를 했다. 명주는 녜, 하곤 네 시에 갔어요, 통금해제 기다렸다는 듯이, 라고 덧붙였다.
"통금? 요즘 통금이 어디 있어."
"어떤 행동을 할 때 가장 극적이고 효과적인 타임이 있잖아요. 그 날 우리는 밤새고 이야기했지만 의견이 자꾸 빗나갔어요. 네 시 종이 치자 소양인 더 이상 있을 필요가 없다는 듯이 발딱 일어났어요. 나 간다, 하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요. 걔, 심통이잖아요."
맹랑한 아이들이라고 생각하는데 명주는 떨떠름하게 웃었다. 내 기억으론 그날 소양인 내가 출근할 때까지도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캄캄한 새벽거리로 나서서 소양인 어디로 갔을까.
나는 그날 둘이 무슨 얘기를 했는지 듣고 싶었다.
"우리들의 진실에 관한 얘기죠, 뭐."
명주는 이렇게 운을 떼곤 요즘 자기는 사회의 불평등에 관심이 많다고 서두를 꺼냈다, 우리 같은 과도적 산업사회의 구조상으로는 권력이나 경제에서 한 집단의 승리는 다른 집단을 희생시켜 얻어진 것이고 그래서 모든 사회 계층 체계는 그 원칙에 대한 저항을 자아내며 그 자체가 억압의 씨앗을 낳는다, 사회에서 불리한 위치를 가진 사람들이 그들 스스로에게 보다 나은 소득을 약속해 주는 규범 체계를 세우려고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말끝에 명주는 학생 운동으로 대화를 끌고 갔다. 대학생이란 어쨌든 선택받은 환경의 사람들인데 그러니 만큼 사회 진보를 위해 앞장서야 한다. 기성인들은 안락한 자기 울타리를 지키기 위한 소시민으로 타락해서 현실에 순응하고 타협하므로 자신들이야말로 순수하게 싸울 수 있노라 했다,
"그것도 엘리트 의식 아냐?"
나의 반문에 명주는 전위의식이죠, 수정했다, 자기들이 알고 있는 구조적 모순을 억압받는 계층에게 일깨워 주는 중간 역할을 할 뿐 노동 운동의 주체자는 어디까지나 노동자들이라는 것도 알고 있노라 힘주어 말했다.
명주는 이어, 알고 있는 이론이나 관념을 경험으로 다시 터득하기 위해 자기를 포함한 대학생들이 공장에 직접 들어가 일하면서 현장을 체험한다, 명주 자신은 방학 동안 보세 공장의 시다로 들어가서 월급 팔만 원을 받고 칼러 다림질이며 시접 접기 등을 했다, 공장에 들어가서도 일을 못하면 동료들에게도 말발이 안 서기 때문에 지금은 개인 하청업자에게 미싱을 배우러 다니노라 했다.
나는 접시를 다 비웠으나 명주는 불평등에 관해 열변을 토하느라 밥을 거의 먹지 못했다. 시골처녀처럼 긴 머리를 하나로 묶고 다니던 재수생 때의 명주를 떠올리며, 나는 점심부터 빨리 들라고 권했다. 명주는, 사실 이런 데 들어와서 부르조아처럼 칼질하는 것도 우습죠 뭐, 하곤 끊어졌던 소양이 얘기를 또 계속했다.
"나는 주로 이런 얘기를 했죠. 그랬더니 소양이가 그것이 그토록 너에게 절실하냐, 겉멋 들은 엘리트 의식이다, 자기 자신도 잘 모르면서 어떻게 남을 깨우치고 민중운동을 한다고 나서느냐 해요. 또 운동하는 건 좋은데 다른 고통, 갈등도 포용하고 인정해야 한다, 너희들만 의식 있는 인간이고 진실하다고 생각하는 건 오만이고 너희들이 대항하려는 체제만큼 비인간적이라고 공박했어요."
그 정도로 그날의 상황을 알 듯했다. 데모하다 잘려서 휴학한 건 아니냐 물었던 어머니에게 그런 뚜렷한 명분이 있으면 행복하겠다고 답했다는 소양이다. 나는 순간 소양의 휴학보다 명주의 변모에 더 호기심을 느꼈다. .힐 년 사이에 이토록 변한 너와 마주앉아 있으니 격
세지감을 느낀다고 농담조로 말하려다 자기 가치관이 그토록 빨리 확립됐다면 넌 행운아구나, 했다. 명주는 남은 고기를 썰다 말고 정색을 했다.
"복권같이 굴러 떨어진 행운이 아니라 내가 절실히 찾았기 때문에 길이 나타난 거예요."
그러면서 한순간 침묵을 지키더니, 재수생 때 좌절감, 소외감이 커서 피 흘리는 방황을 많이 했고 그런 과정을 극복하고 대학에 들어오니까 자의식 같은 문제에서 떠나 큰 사회 현상에 눈뜨게 됐다고 나름대로 조리 있게 말했다.
나는 대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제야 소양이 휴학한 거 알지? 말을 꺼냈다.
"그럼요. 나한테 휴학하겠다고 얘기하고 바로 그 다음날 휴학계 냈다던대요."
"그때가 언제야."
"목련이 질 때니까 사월 중순이데. 그날 꽃샘추위로 바람이 몹시 불었는데 이틀간 연이어 데모를 한 뒤라 어수선했어요. 소양인 추운 지 파리한 얼굴로 목련나무 밑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조그만 아이가 - 물론 꽃송이보다야 크지만 그날 따라 작아 보였어요 - 크고 누렇게 시든 목련꽃 아래 앉아 있는 걸 보니까 왠지 측은한 생각이 들었어요. 바로 그 날이예요. 휴학하겠다는 얘기를 한 게."
소양이가 명주에게 한 얘기도 우리에게 했던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자기가 가짜로 살고 있는 것 같다고. 학교도 껍데기고 자기도 껍데기라는 것. 또 아무 것도 잡을 것이 언다고 했다.
그 말은 내게 여전히 추상적으로 들려서 선명하게 닿아 오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무엇을 잡으려고? 물었다.
"진실 같은 거겠죠."
그 말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명주는 처음에도 우리들의 진실 운운했다. 그것이 저희들끼리의 공통분모격인 낱말인지는 모르지만 진실이라니, 얼마나 애매 모호한 관념어인가. 진실을 잡겠다는 것은 공기를 잡겠다는 말과 같지 않은가.
나는 가만 한 숨을 내쉬었다. 명주 앞에 놓인 접시도 비어 있어서 종업원을 불러 커피를 시켰다. 종업원은 무슨 커피를 시키겠느냐 되물으면서 비엔나, 모카 등의 이름을 댔다. 커피 전문집인 모양이었다.
나는 비엔나를 주문했다, 명주는 난 서구적인 건 싫은 데--- 하더니 모카를 시켰다. 그런 명주를 물끄러미 바라보노라니 문득 소양이가 왜 캄캄한 새벽에 명주 집에서 나섰는지 알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크림이 얹어진 비엔나 커피가 앞에 놓이자 나는 크림을 삼키며 그 뒤론 소양이 못 봤지 ? 확인했다. 명주는 덤덤하게 녜, 대답했으나 잠시 후 망설이듯 뜻밖의 말을 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난 이번 여름방학 때 공단에서 일했어요. 그날 소양에게 그 계획을 말했더니 그 앤 시큰둥하게 웃으면서 자기는 술집에 나갈 생각이라고 했어요."
뭐라고? 나는 커피 잔에 얼굴을 박고 있다가 고개를 쳐들었다. 호스테스를 하겠대요. 명주는 되풀이하고 눈을 식탁에 떨구었다.
"아마 걘 했을 거예요. 재수할 때도 한 달간 분식집 종업원 노릇을 한 적이 있어요."
"그건 또 왜 ?"
나는 서글픈 표정을 했고 명주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방황이겠죠, 나도 심하게 겪었지만, 하고 말끝을 흐렸다.
그날 내가 받은 충격은 컸다. 분식집 종업원. 그것까지도 좋지만 호스테스인 소양을 상상할 수 없었다. 그것도 방황이라고 할 텐가?
부잣집 딸의 객기가 아니냐고 빈정댔으나 그릴게 말할 수 없을 만큼 절실한 무엇이 있는 것 같았다고 명주는 덧붙였지만 그 말은 걱정을 덜어 주기는커녕 나를 더욱 혼란에 빠뜨렸다.
그날 불문과에 들러 볼까, 하는 생각도 막연히 했지만 그만두었다.
"교수들요? 평생이 보장된 직업인일 뿐이에요 소양이 이름자나 기억할까."
명주의 냉소는 극단적이었지만 나도 사실 학교로 찾아가는 것이 선뜻 내키지 않았다. 내 음대 시절을 생각해도 존경했던 교수는 한둘이고 인간적인 교류를 가진 교수도 뚜렷이 기억에 남지 않았다
명주는 무작정 교수를 만나느니 소양이와 친했던 과 친구를 만나 보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 그것은 적절한 조언이었다. 나는 명주 전화 번호와 들은 기억이 있는 신 경옥이란 이름을 수첩에 적고 학교엔 다시 들어가지 않았다. 나와 교문 앞에서 헤어지면서 명주는 마지막 카드를 던지듯 한 마디 더 했다.
"소양이을 이해해 보도록 하세요. 소양인 집을 좋아하지 않지만 식구들이 따뜻하게 관심을 가져준다면 외로운 일기는 쓰지 않을 거예요."
외로운 일기? 더 말할 틈도 없이 명주는 단발머리를 젖히며 내게서 등을 돌렸다.
내가 집에 들어왔을 때 소양은 벌써 나가고 없었다. 방문도 잠겨 있었다. 할머니도 외출했는지 이층은 고요했고 초가을 햇살만 소리 없이 끓어오르고 있었다.
소양의 방문 도어를 몇 번 돌리다가 나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어머니가 부엌에서 밑반찬을 만들고 있었지만 나는 아무 말 않고 거실의 서랍들을 뒤적거렸다.
열쇠 뭉치는 보이지 않았다. 무얼 찾는데? 어머니가 물어서 할 수 없이 나는 방 열쇠들을 찾는다고 말하고 소양이 방에서 레코드 하나 꺼내려구요, 지레 밝혔다.
쓰지 않아 부분적으로 녹이 슨 방 열쇠 뭉치는 부엌 싱크대 서랍에 있었다. 방마다 두 개씩의 여벌 열쇠가 있지만 소양의 방 열쇠는 없었다
"걔가 둘 다 가져갔나? 그렇진 않을 텐데."
어머니는 고개를 갸웃했으나 나는 그럴 것이라고 단정했다. 두 개의 열쇠를 가지고 있을 만큼 소양은 비밀이 많은 것이다.
나는 어머니에게 말도 않고 동네 시장에 나가 열쇠장이를 데리고 왔다. 방문은 어렵지 않게 열렸으나 열쇠까지 만들려면 도어를 뜯어야 했다. 나는 그것을 부탁하고 재빨리 방에 들어가 책상 서랍부터 뒤졌다. 다행히 서랍은 잠겨져 있지 않았지만 일기장은 보이지 않았다, 메모지 뭉치, 옛날 수첩, 사진, 엽서들이 뒤죽박죽 섞여 있었는데 가요집도 끼여 있었다.
열쇠장이가 두 시간 뒤 다시 오겠다며 뜯은 도어를 가지고 돌아간 뒤 나는 일기장을 발견했다. 그것은 책꽂이에 꽂힌 대학노트들 속에 끼여 있었다. 주황 녹색 파랑 갈색 노트들은 모두 크기가 같은 것이어서 나는 그 속에 일기장이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소양을 그 중에서도 가장 수수한 갈색 보트에 일기를 썼다. 그것도 앞의 몇 장은 윤리학 필기가 돼 있어서 뒤까지 들쳐보지 않았다면 제 자리에 도로 꽃아 놓았을 거다
첫장에 6월 2일로 날짜가 적혀 있었지만 읽어보면 일기를 전부터 써 왔음을 알 수 있다.
옛날 일기를 다 태워 버렸다. 나는 완전범죄 완전연기를 좋아하며 문서상으로도 유치해지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그러나 고전적인 정신으로 다시 일기를 쓰기로 하자. 소아병적인 자기 발견 같은 건 집어치우고 내 영혼의 사냥터가 되도록 스쳐 가는 진실에 과녁을 맞출 것.
오늘도 머리가 터질 듯 해서 열두 시가 채 못 되어 불을 끄고 누웠으나 잠 마취가 되지 않는다. 한참 있다가 베개 밑에 손을 넣어 하모니카를 꺼내 불어 본다, 옛날에 영어로 가사를 지어서 부르던 노래 한 소절이 생각난다. 캐슬 castle 어쩌구 하는 노래. 성안에 사는 소녀의 노래였다.
이제 나는 성이다. 나와 객체와의 단절감 때문에. 한전 타인에게 결코 이해 받을 수 없다는 것 때문에 고통스러웠지만 이젠 제법 세련된 주석을 붙일 수 있다. 나는 common people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나와 타인들을 다르게 하는 건 나에게 나라고 불리어지는 이유뿐일까.
6월 4일
희중은 만날 때부터 내내 양미간을 세운 채 전혀 웃지 않았다. 비정한 그런 표정이 싫어서 혼자 떠들다가 희중의 손등을 문지르며 문제점이 뭐야? 물었다.
---너랑 관계 없는 일이야. 내 문제야. 네가 여자라서 말 안 해. 무엇보다도 유치해서 흐흥 웃음이 나왔다. 내가 웃는 의미를 재빨리 알아차리고 보호책을 피우는 희중.
---넌 날 잘 몰라. 난 무서운 사람이야. 여자는 사랑을 하면 봉사가 되잖아.
---네 아프고 쓰린 데를 현미경처럼 들여다보고 싶어. 그게 사랑이야.
그렇게 말하는 순간 희중의 입술 위에 있는 가는 흉터가 갈매기 똥처럼 보여 부질없는 말장난에 외로웠다.
6월 9일
할머니 생신 일을 도우러 왔던 사십대 여자들이 내 마음을 무겁게 하여 아침을 먹다 말고 나와 버렸다. 박복해 보이는 얼굴에 표정도 비굴하다. 빈대떡을 부치면서 "우리애들 아빠가 평양 사람이어서 나도 빈대떡 하나는 잘 얻어먹었는데------"
지금은 남의 집에서 빈대떡이나 굽고 있지만 예전엔 행복했다는 것을 과시. 밥상에 앉아서는 조그만 목소리로
"수저가 없,,,---"
했다.
오후에 할머니는 찾아온 교회친구들에게
"나도 연못 없는 집에 살아 봤으면 좋겠어. 고기 모이 주기가 여간 귀찮아야지"
했다.
퇴물 유한 계급. 자기 도취로 생의 고독에서 도피하려 한다. 그 나이에 콜셋은 무어며 분홍색 레이스 양산은 뭐냐. 하긴 진실에 직면해도 그 나이에 자살은 못 하겠지.
첫장을 단숨에 읽고 나는 흥미와 긴장을 느꼈다. 일기를 계속 본다면 토양에 대해 무언가 잡힐 듯했다. 일기는 노트의 절반 가량 씌어져 있었고 열쇠 집에서 올 때가지 나는 그것을 꼼꼼하게 훑어보았다.
일기를 읽은 것은 큰 수확이었다. 소양의 다양한 면을 관찰하게 됐고 희중이란 남자 친구를 비롯해 그 아이가 주변 사람과 가족들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게 됐다. 집에 대한 묘사는 두어 군데 더 나오는데 표현이 신랄했다.
'산천이 의구하듯 아니 갈수록 생생해지는 우리 집의 속물끼' 내 방의 땅 이외에는 복도마루도 맨발로 밟고 싶지 않아'라는 구절도 있고 인간은 어차피 동물이라지만 어머니와 아버지는 동물적인 결합이라고 쓴 것도 있었다. 언젠가 아버지가 데모하는 것들은 모조리 사형시켜야 한다고 극언한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런 아버지 옆에서 태연하게 당근 즙을 따르고 있는 어머니에게도 소양은 반감을 보였다.
보세 스웨터 수출 부진이 원인이겠지만 그래도 어머니는 눈살 한번 찌푸리지 않고 당근 즙을 갈아 줄 텐데. 언젠가 집에 놀러온 경옥이가 니네 엄마 아버지는 아주 사이가 좋구나, 하면서도 우리와의 괴리감을 느낀 듯 집이 너무 큰가? 돌려서 말했다. 키 큰 맹자님이 나타나서 나를 이 울타리 밖으로 선뜻 올려 안아 갔으면.
이어 소양은 줄을 바꾸어 요즘 대학생들의 의식화된 눈으로 아버지의 스웨터 공장에 대한 단상을 적은 자기 갈등을 보였다.
하긴 내가 그 동안 물질적 불편 없이 살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 덕이고 명주 식의 시선으로 보자면 근로자의 피와 땀 덕분이다. 그건 사실일 거다. 아메리카의 부가 흑인 착취에서부터 얻어진 것처럼 번영 뒤에는 희생자가 반드시 있다.
그러나 내가 유도상사 덕분에 쁘띠 부르조아처럼 살고 있으면서 유도상사 기숙사를 점검할 수는 없다. 그 문제는 당분간 덮어두고 싶다. 내 생각만으로도 너무 버거워.
소양이 그토록 집을 싫어한다는 것은 매게 충격이었다. 할아버지가 젊은 기생에게서 낳아 온 막내아들 혁이가 우리 집의 반 지하 방에서 살고 있다는 것, 내게 삼촌이 되겠지만 소양이보다 나이가 어린 재수생 혁이의 방에선 괴성 같은 드럼소리가 울리고 몸에선 늘 쿰쿰한 냄새가 나서 우리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 외엔 특별히 문제점이 없다고 생각해 왔다. 즉 그 아이의 존재가 우리 집의 그늘이라는 것 외엔.
어머니와 아버지의 돈독한 사이를 나 역시 성적인 것으로 느껴 왔지만 소양이가 동물적인 결합이라고 단정하는 데는 질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명주가 말한 '외로운 일기'는 내게 놀람의 일기였다. 그 속에는 로빙이란 술집에 나간 두 번의 기록도 끼여 있어서 명주의 말이 사실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로빙이란 상호가 소양의 눈을 끌었나 보다. 주인 마담이 몸에 열이 많은 사람이어서 작명소에서 얼음 빙자를 넣어 지어 준 이름이라고 써놓고,
나야말로 열이 많은 사람이다. 언제나 피가 더워. 그것도 머리에만 피가 몰려서 터질 듯 고통스럽다. 얼음 빙자를 넣어 머리의 피가 식는다면 내 이름을 빙양이라 해로 좋다. 얼은 양, 얼어죽은 양
그날이 소양이가 로빙에 나간 첫날이었다. 손님이 없어서 자리에 들어가지도 못한 모양인데 소양은 술집 관례대로 치른 이상한 의식에 대해 상세히 적어 놓았다.
열 시가 지나자 한 아가씨가 내게 아무 것도 묻지 말고 시키는 대로 따라 하라며 여자들이 몰려 있는 곳으로 데려갔다. 한 여자가 소금을 손에 놓고 먼저 집어먹자 둘러선 여자들이 모두 차례대로 집어 먹는다, 그 이상한 의식에 나도 끼었다.
바로 뒤에 말을 들으니 업소에 처음 나오는 여자가 있으면 그날은 약속이나 한 듯 손님이 없단다. 그래서 소금을 먹는 것이라고, 생선처럼 썩지 말라고 소금을 먹는 것일까.
다음날엔 '우울해서 술만 잔뜩 마셨다'고 휘갈겨 쓰고 사흘 건너뛰어 쓴 일기엔 책에서 읽은 듯한 매춘에 관한 구절도 적혀 있었다.
인간의 천성에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또 탄생의 장난에 의해서 매춘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는 변태자가 있으므로 매춘은 근절될 수 없다지만 그것은 자연에 의해 부여된 제도인 것만은 아니고 사회적 제도이다. 전쟁이나 경제공황 등에 의해 촉진되며 여자는 그 희생자가 된다.
아무튼 성을 도구로 여자가 물질화, 비인격화된다는 건 너무 끔찍하다. 비루하게 생긴 한 녀석이 팁을 준답시고 가슴에 손을 넣어서 그 자리서 빼내 찢어 버렸다.
명주 말같이 부잣집 딸의 객기는 결코 아니었지만 나는 방종하기 위해 호스테스가 되려 한 것도 아니다. 쇠사슬같이 무거운 청춘을 탕진하기 위해, 그냥 바닥으로 내려갈 대로 내려가 보라고. 무엇보다 나는 내 속의 헛된 계급 -부르조아적 속성-을 부수고 싶었을 뿐.
여기까지 보았을 때 나는 일기를 덮어 버리고 싶었다. 왜 소양이 이토록 어처구니없는 짓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면서 그런 사실을 알게 된 것이 내겐 오히려 곤혹스러웠다. 일기를 참고하여 소양에게 접근하려던 것이 목적이었으나 이제는 우리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깊은 강이 가로질러 있는 듯했다. 소양은 급류에 휩쓸려 저만치 흘러가고 나는 강 앞에 서서 발만 구를 뿐 바라볼 수밖에 없는 기분이었다.
소양의 방에서 두어 시간을 보냈나 보다. 소양의 책상 속에 있는 담배를 한 가치 꺼내 피우며 생각에 잠겨 있는데 열쇠 집에서 열쇠를 만들어 가지고 왔다. 다시 도어를 달 동안 나는 일기를 제자리에 꽂아 놓고 창을 열어 환기시킨 뒤 내가 들어온 흔적을 없앴다. 열쇠는 내 손에 쥐어졌으므로 앞으론 얼마든지 소양의 방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은행을 그만두었지만 생각만큼 한가하지 않았다. 그 동안 통 손대지 않았던 피아노를 매일 연습했고 은행 여직원들에게 일 주일에 한번씩 가르쳤던 가야금도 전처럼 계속했다. 피아노에 다시 손댄 것은 결혼 뒤부터 동네 아이들을 가르칠 생각에서인데 사실은 대학원 진학을 고려하고 있었다. 피아노에 대한 의욕도 일어나고 배울 것도 많지만 이런 실력 사회에서 증을 하나 더 따놓는다면 언젠가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밖에도 혼수 장만을 위해 시간 나는 대로 어머니와 장을 보러 다녔다. 최 대리도 이틀에 한번은 만났다. 이런 가운데서도 소양의 일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는데 그 즈음 운 좋게도 경옥의 전화를 받고 일을 추진시킬 수 있었다.
경옥의 전화는 내가 받았고 그때 마침 소양이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소양에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을 때여서 나는 누구냐, 물었고 경옥이란 이름을 듣곤 반가워하기까지 했다.
나는 경옥에게 소양의 큰언니라고 밝히고 진작 만나고 싶어했다, 시간을 내줄 수 있는지 서슴없이 물었다. 그러세요. 경옥은 내 용건에 대해 별다른 생각을 하는 것 같지 않았다. 패뜸 승낙하면서 자기가 시간제로 일하는 학교 부근의 찻집으로 왔으면 좋겠다고 장소부터 얘기했다.
경옥이 일한다는 찻집 목마에 들어선 것은 여섯 시가 채 못 되어서였다. 일곱 시가지 일한다고 해서 일부러 그 시간을 택했다. 얘기가 길어지면 함께 나와서 저녁을 먹을 생각이었다.
목마는 대학가의 업소답게 편안하면서도 테크 무늬 식탁보 등으로 산뜻한 분위기를 내는 찻집이었다, 서른 평 됨직한 실내는 왜 넓었으나 빈 자리는 세 군데밖에 없었다. 나는 주방이 마주 보이는 자리에 앉아 종업원들을 살폈다. 초록색 앞치마를 두른 종업원들은 모두 여
대생인 듯 인상이 깔끔했다.
주문을 받으러 온 종업원에게 나는 맥주를 한 병 시키고 신 경옥을 불러 달라고 부탁했다. 짧은 머리의 종업원은 친절하게 웃곤 주방 안으로 들어가 부룩 실밥 면회야, 내게 들릴 정도로 소리쳤다.
주방 안쪽에서 토스트를 만들던 긴 머리의 종업원이 고개를 돌렸다. 뾰족한 턱과 계집아이다운 화사한 얼굴이 부룩 실즈와 어딘지 비슷했다. 경옥은 눈썹을 모으고 내 쪽을 한참 보고서야 아는 체를 했다.
나와 흔쾌히 약속했으나 경옥은 일이 끝날 시간이 되어서야 내 자리에 앉았다. 그 사이 새로운 손님들도 손에 꼽을 정도였지만 경옥은 달걀을 굽고 커피를 끓이며 계속 주방에 머물러 있었다. 그 동안 나는 다른 종업원들이 한가하게 그릇을 닦고 있는 것을 지켜보기도 하고 벽에 늘어져 있는 말린 꽈리 숫자를 헤어 보기도 했다. 내 자리서 마주 보이는 구석 자리엔 젊은 쌍이 나란히 앉아 있었는데 퍼머 머리의 남자는 여자 어깨 위에 한 팔을 두르고 입술을 연신 여자의 뺨에 갖다댔다
보기 민망해서 내가 애써 고개를 돌리고 있을 때 경옥이 내 자리로 왔다. 언니 미안해요. 경옥은 애교스럽게 콧등을 찡그렸으나 나는 근 한 시간이나 기다린 터여서 지쳐 있었다. 젊은 애들 속에 끼여 있으려니 쑥스럽다며, 껴안고 있다시피한 젊은 쌍을 눈으로 가리켰다.
"정말 세대 차이네. 저걸 나쁘게 생각하시면 안 돼요. 둘이 사랑하는데 왜 남을 의식해야 돼요."
경옥은 오히려 내가 이상하다는 듯 눈을 깜박였고 나는 세대 차이에 은근히 놀라면서 그제서야 용건을 꺼냈다.
"바쁜 때에 내가 와서 어쩌지."
나를 피하는 게 아닐까, 생각되기도 해서 나는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내 경옥은 잠깐 얘기하죠 뭐, 하곤 일곱 시 반에 약속이 있노라 서두르듯 시계를 보았다. 나는 김이 빠졌지만 짧은 시간이나마 놓칠 수는 없었다.
내가 소양이 말을 꺼내자 경옥은 예상했다는 듯 덤덤히 답했다. 소양이가 휴학할 때 처음부터 알고 있었느냐는 내 물음에 물론이라고 대꾸하고 휴학계를 내러 갈 때 동행했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왜 소양이가 휴학을 해야 했는지,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느냐는 물음엔 적응을 못해서 그런 것 아녜요? 하고 반문했다.
"내 경우는 애들이 데모하든 말든 관계치 않아요. 소양인 처음엔 함께 데모하다가 나중엔 빠졌는데 데모할 때도 갈등했고 빠질 땐 빠져서 괴로워했어요."
"데모가 그렇게 중요했을까? 투사도 못 되면서."
"매사가 그렇단 얘기예요."
"소외감 때문일가?"
소외감이라는 말을 불쑥 내뱉고 나니 가슴에 그늘이 스치는 듯했다. 교정에서 통기타를 치며 웃어대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느낀 고립감, 그것에 대한 생생한 기억을 나도 갖고 있었다. 내가 남다르다고 느낄 때의 아픔을.
나는 경옥과 소양이 얼마나 자주 만나는지 알고 싶어했다. 경옥은 방학 때만 해도 소양이 이틀에 한번 정도 목마에 왔으나 요즘은 발걸음이 뜸해 못 본지 보름이 넘는다고 일러주었다.
"걔, 요새 재미있나 보죠?"
나는 잠자코 있다가 희중이란 남자친구 이름을 아느냐, 떠보았다. 소양의 사생활이었으나 언니로서 그만한 정보는 알아도 될 듯했다.
"희중이 얘기를 해요?"
경옥은 뜻밖이란 표정을 지었지만 소양이 희중을 처음 만난 장소가 썸싱이란 작은 경양식 집이고 그때 경옥도 함께 있었노라, 묻지도 않은 것까지 들려주었다.
"걔들 둘이는 꽤 오래 가네."
"그때가 언제야? "
"휴학한 바로 뒤니까 지난 봄요."
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이제 가을이었다. 경옥은 그런 데서 반나서 지금까지 가면 오래 가는 셈이죠, 하고 오히려 신기해하는 눈치였다. 나는 당연히 희중에 관해 듣고 싶어했으나 경옥은 화학과 3학년생이라고만 일러주었다.
썸싱 장소를 묻다가 소양이가 종로에 자주 나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경옥의 말에 의하면 소양이도 여느 젊은 아이들처럼 재수할 때부터 종로 통이었고, 자리마다 인터폰이 있어서 졸팅하는 재미로 젊은 애들이 많이 가는 썸싱에서 희중을 만나게 되었다.
졸팅이니, 하는 은어가 흥미 있었지만 경옥이 시계를 들여다보아서 더 이상 시간을 연장할 수 없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소양에게 내가 찾아왔다는 말은 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소양이가 요새 방황하는 것 같아서 도와주고 싶어서 그래. "
앞치마에서 손거울을 꺼내 들여다보던 경옥이 한 마디 거들었다.
"방황은 청춘의 특권 아녜요? "
나는 곧장 집으로 가지 않고 최 대리에게 전화했다. 경옥을 만나고 일단 은행에 연락하기로 돼 있었다, 내가 볼일이 끝났노라 보고하자 우리가 늘 만나는 양지다방에 이십 분 뒤 나가겠노라 했다. 나 일부러 저녁 안 먹었어, 최 대리의 어눌한 말투가 울려오자 곤두선 신경이 누그러지는 듯했다. 그를 빨리 보고 싶었다.
나는 신촌에서 택시를 잡아 타고 광화문으로 갔다. 명주를 만났을 땐 투사적인 명주의 변모에 놀랐지만, 경쾌하나 이기적인 듯한 경옥을 만나고 나자 소양의 외로움이 피부로 느껴졌다. 일기에도 거리는 명주, 재형에게 두면서 발은 경옥, 희중 쪽에 두려 하고 있다. 이성을 존중하되 감각이 편해서인가' 씌어져 있지만 마음엔 아무도 두지 못한 듯했다.
'이런 나의 다양성을 전엔 인간의 폭이라 자부했지만 이젠 이것이 나를 비틀거리게 한다.'
확신하건대 희중이란 남자친구도 속마음을 나누는 상대는 아니었다. 썸싱에서 만나? 나는 속으로 씁쓸히 웃곤 스무 살이란 소양의 나이에 연민을 느꼈다. 방황은 청춘의 특권이 아니라 형벌인 것이다.
3
스무 살 때의 나를 생각해 본다. 그때 나는 미개지였다. 어머니는 내게 수놓인 블라우스나 중국식 옷을 만들어 입히고 윤나는 머리를 땋아 성처녀처럼 꾸미길 좋아했지만 나는 몇 개피의 담배를 몰래 피우면 이내 체리 한 알 꺼내 먹고 순백한 얼굴로 휘파람들 부는 종마
같은 처녀였다.
문화적인 것에 열등감이 있는 아버지는 명문여대 음악도인 나를 어머니 다음 가는 동산으로 대우했지만 나는 그 기대를 과히 저버리지 않았다. 수학처럼 딱딱하지만 터득하면 음과 대화하는 듯한 바하의 묘미를 어릴 때도 어렴풋이 알아서 피아노 선생으로부터 머리가 좋다
는 말을 들었는데, 피아노 연습 후엔 아메바처럼 누워 있어야 할 정도로 학생 때도 열심히 했으므로 해마다 음대 내의 오디션에 뽑혀 신인 음악회에 나갔다. '정확하고 강인한 터치'가 무기인 나는 은근한 서정성만 보강하면 나무랄 데 없다는 평을 들은 유망주였다.
그러나 피아니스트로 성공하리라는 야심은 크게 갖고 있지 않았다. 상식적인 면이 있는 나는 그보다 대학을 졸업하고 유월의 장미 같은 신부가 되는 구체적인 꿈을 꾸었다. 그것이 여자의 길이 아닌가. 목욕탕의 몸 닦아주는 여자도 나를 소녀 취급하여 남과 조금 다르게, 부드럽게 다루지만 여태 순결하게 키워 온 젊음과 아름다움은 결코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피아노와 귤빛 스탠드가 있는 방에서 유리 구두 한 짝 같은 꿈을 간직하며 그 꿈을 완전하게 맞추어 줄 왕자를 기다렸다. '
그 동안 누구에게서도 내가 기다리는 황자의 모습을 볼 수 없었지만 그 남자에겐 처음부터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아예 의식밖에 있었다. 동양화를 그리는 친구의 소개로 찾은 서예실에서 그를 처음 보았을 때도 나는 물건을 대하듯 무관심했다.
그가 서예실에서 누구와 말하는 것을 보지 못했으므로 나도 그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다. 일정한 시간 없이 서예실에 오는 걸 보면 직장인 같지는 않았고, 방학 때였으나 대학생 같지도 않았다. 번듯한 외모에도 불구하고 힘없이 늘어진 머리카락과 안경 속의 표정 없는 눈이 젊음을 상실하고 있었다.
그가 내 눈에 뜨인 것은 그 못난 글씨 때문이었다. 서예실에 나간 지 보름쯤 된 날 내가 늘 글씨를 쓰는 창가 자리에 빨간 공책 한 권이 놓여 있었다.
대학노트 절반 정도의 크기였는데 그것을 치우려다가 나는 무심히 펼쳐 보았다. 한눈으로 훑기만 했지만 작고 고르지 못한 글씨가 조잡하기 짝이 없었다. 악필이 아니라 추필이었다.
나는 서예실에서 일하는 야간 여중생에게 누구 것이냐고 물었다. 그 아이의 글씨라면 놀라지도 않았겠지만 내용으로 보아 어른이 쓴 것이었다. 여중생은 내 옆에 와서 공책을 들여다보곤 미국 가시는 분 거예요, 했다.
그때 입구의 문이 열리면서 안경을 쓴 젊은 남자가 들어섰다. 호랑이 제 말 하면 오네요. 여중생이 깔깔 웃어대자 남자는 멀뚱이 우리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를 의식치 않고 이건 저능아 글씨라고 정직한 아이처럼 말했다.
아주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으나 순간 그의 안경알 속에서 눈이 희번뜩였던 것을 나는 선명히 기억한다. 실수했다는 생각보다 먼저 그 반응에 놀라 움쩍도 않고 서 있는데 남자가 갑자기 표정을 바꾸어 히죽 웃었다.
"글씨를 못 쓰니까 서예실에 나오죠."
그 뒤 남자는 내가 있는 창가 자리에서 멀리 떨어진 입구 쪽에서 글씨를 쓰는 등 나를 의식했지만 천성적으로 무심한 면이 있는 나는 얼마 뒤엔 더 이상 그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연말이 되면서 남자도 서예실에 잘 나타나지 않아서 중국집에선 짜장면 외상값을 세 번이나
받으러 왔다.
배달원의 말에 의하면 남자는 짜장면을 먹고도 수표만 냈다는데, 크리스마스 전날 세 번째로 서예실에 들러 역시 헛걸음을 치게 되자 배달원은 몹시 투덜댔다. 나는 외상값을 물어보았다. 짜장면 몇 그릇 값이어서 그것을 대신 주었다. 연말인데다가 서예실로 외상값을 받으러 외부 사람이 드나드는 것이 보기 좋지 않았다.
그가 집으로 전화한 것은 뜻밖이었다. 크리스마스부터 사흘간 서예실에 나가지 않았는데 사흘째 되는 날 전화를 받았다. 남자는 대뜸 제 외상값 갚으셨다죠, 미안합니다, 했다. 딴 인사말부터 해도 될 터인데 미련하다면 미련하고 순진하기도 했다.
남자는 이어 돈을 갚을 일도 있고 좀 만났으면 하는데 모레 저녁을 사겠노라 했다. 나는 내일부터 서예실에 나가니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잘라서 말했다.
"아니요. 잘하면 정월에 미국으로 떠날 것 같고 서예실도 그만 나오게 될 듯해서요."
남자는 주저하면서 꼭 저녁을 사고 싶다고 덧붙였다. 곧 떠난다는 말에 마음이 움직여서 나는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로 승락했다.
나는 그날 정도에 넘치게 술을 많이 마셨다. 떠들썩한 연말 분위기가 나를 울적하게 했고 집을 나설 때부터 어머니와 말다툼을 해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사업거래가 있는 무역회사 사장 아들과 선을 보라고 했다. 미국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경영학도인데 방학 동안 신부감을 고르러 잠깐 나왔다는 것이다.
나는 한 마디로 거절했다. 연인 없는 겨울방학이 쓸쓸하긴 했지만 막연하나마 기다림이 있기에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졸업 때까진 저울질하는 것 같은 선을 보고 싶지 않았다.
어머니는 나를 자꾸 설득하려 했고 나는 귀찮아서 이제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소리치고 나왔다. 그것도 마음에 걸렸다. 여고 때부터 나는 학교서 늦으면 꼭 집으로 전화하도록 길이 들여졌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밤 열 시까지는 반드시 집에 들어와야 했다. 혜양이와 소양에겐 그다지 엄격하지 않은 걸 보면 내가 맏딸이어서 과보호를 한 듯하지만 그 과보호가 신물나기 시작했다.
내 기억으로 그날 나는 와인 한 병을 거의 다 비웠다. 그는 맥주를 두 병인가 마시고 와인엔 입을 대지 않았다. 그가 약속 장소로 정한 호텔의 특별 식당에선 음대 출신 가수의 신곡발표회를 겸한 불우이웃 돕기 자선쇼가 열렸다. 샹들리에가 눈부시게 빛나고 빈 자리가 없이 손님이 많았지만 호화로운 분위기가 나를 숨막히게 했다.
그는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빨간 포장지로 싼 물건을 내밀었다. 내가 주춤하자 겨우 스타킹이에요, 더 좋은 걸 하고 싶었지만 안 받으실 것 같아서, 하곤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내키지 않았지만 남자가 무안하지 않도록 나는 그것을 펴보았다. 꽃무늬가 있는 스타킹 일곱 켤레였다. 고맙다는 표시라고 남자는 계속 멋적은 표정을 지었고 나는 누나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그날 어떻게 낯선 곳으로 끌려갔는지 말하려니 가슴에 구멍이 뚫리는 듯하다. 스타킹 일곱 켤레가 내 긴장을 풀어놓아 나는 가수의 노래가 끝날 때까지 술을 마시며 자리에 앉아있었다. 열한 시 가까이 되어서 일어섰지만 그날은 집에 전화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차
를 가지고 나온 남자가 집까지 바래다주겠다고 했을 때도 고맙다 인사말까지 했다. 호텔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으므로 차를 잡을 수도 없었다.
이 모든 것은 계획적인 것이었다. 차는 내가 일러준 대로 불광동쪽으로 달렸으나 동네를 스쳐 지나갔다. 잠시 뒤에야 상황을 알았지만 남자는 끝까지 입을 다물고 운전만 했다. 통금을 앞둔 시간이라 차들이 빠른 속도로 스쳐갔고 나는 유리를 치며 소리쳤으나 아무도
주의해 보지 않았다.
교외로 달리다가 숲 속의 외딴집으로 들어섰을 때 나는 거의 포기했다. 경적이 울리자 관리인인 듯한 늙은 남자가 나와 대문을 열어 주었다. 그는 끄덕이며 인사하고 이내 안으로 들어갔다. 범죄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대문에서 과수나무가 늘어선 별장 앞까지도 차로 들어 갔으니 소리쳐야 아무도 들을 수 없었다.
남자가 차에서 내리려는 순간 나는 다시 뛰쳐나가려 했지만 이내 손목을 붙들렸다. 창으로 불이 훤하게 켜져 있었다. 텅 빈 거실을 지나 이층 복도 맨 끝에 있는 방으로 들어서자 남자는 문부터 잠갔다.
나를 안쪽으로 밀듯하여 의자에 앉으라고 말하곤 표정 없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여기가 어디야,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야. 나는 소리치며 방을 휘둘러 보았다. 호랑이 무늬의 침대덮개, 요란한 로코코풍 소파, 거기다 백동 장식 옷장까지 있는 방은 벼락부자의 취향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었다. 침대 앞엔 마란츠 오디오와 수십 송이의 장미가 꽂힌 백자까지 놓여 있었지만 나는 경멸하듯 그 모든 것들을 둘러보고 창가로 다가갔다.
"넌 도망갈 수 없어. 그런 생각은 포기하는 게 좋아."
나는 커튼을 젖혔다. 창은 잠겨 있었고 어두운 창밖에도 쇠막이가 쳐져 있었다. 유리에 손을 대니 감촉은 차가웠으나 창엔 수증기가 끼여 있었다. 진작 난방을 해놓은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남자를 쏘아보았다. 포기하고 나자 오히려 담대해졌다.
"내게 손을 대면 유리로 찌르겠어."
남자가 입술을 이죽이며 웃더니 혁대를 풀었다.
"약속해. 널 안 건드릴 거야. 네가 내게 무릎 꿇을 때까지 손끝 하나 안 댈 거야. 대신 넌 지금 내 앞에서 발가벗어야 해. 자존심이 강하니까 그것만으로도 너는 충분히 모욕을 느낄 테니까,"
내가 그를 무시했다고 했다. 나는 관심도 없었다고 냉담하게 대꾸했으나 남자는 그것도 무시의 일종이라고 못박았다. 하긴 난 저능아 같은 인간이니까. 남자의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자 온몸에 맥이 풀리는 듯했다. 그 하찮은 한 마디가 가져온 결과가 나를 어이없게 만들었다.
남자가 겉옷부터 차례로 벗었다. 옷들이 허물처럼 벗겨지자 알몸이 이내 드러났다. 음모 사이로 검붉은 성기가 솟아 있었고 나는 공포와 함께 현기증을 느꼈다.
남자에게도 음모가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것은 바로 동물이었고 미켈란젤로의 조각만 상상해 온 내게 충격을 주었다.
남자는 알몸으로 서서 내게 벗으라고 명령했다, 나는 싸늘하게 굳은 얼굴로 남자를 정시했다.
"넌 개보다 못해. 난 수캐가 암캐에게 폭력을 쓰는 것을 본 적이 없어."
나는 우리 집의 으젓한 세퍼드를 떠올리며 말했으나 남자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인간적인 것은 철저히 배제된 모습이었다. 남자가 다가오듯 한 발을 움직이는 순간 나는 외투 단추 하나를 끌렀다. 막다른 골목이었고 더 이상 공포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다. 눈썹 끝이 파르르 떨렸으나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수의사가 쓴 동물기였는데 동물에게 인간도 동물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라는 구절이 있었다.
그렇다, 옷을 벗음으로써 저 동물에게 나도 동물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는 거다. 내 처녀지가 백치 같은 동물 앞에서 그토록 적나라하게 드러난다는 것은 무참한 일이었으나 나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용사로 돌변했다.
그는 순간 얼굴에 경련을 일으키며 넋을 잃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 얼굴에 야비함은 전혀 없었지만 바보스럽기까지 했고 나는 혐오스런 물건을 보듯 남자를 마주 바라보았다.
잠시 후 남자는 제정신으로 돌아온 듯 무표정한 얼굴로 침대 쪽으로 뒷걸음쳤다. 그리고 로보트처럼 침대에 누워 수음을 시작했다.
전에 어떤 여자를 사랑했는데 내가 군에 간 사이에 마음이 변했어. 애걸하다시피 하여 단 한번 만났는데 자기는 곧, 결혼할 거라는 말만 하고 나가 버려. 나중에 차 값을 내려고 보니 자기 차 값은 치렀어. 돌아서면 여자가 얼마나 냉정한가를 그때 알았지. 그 뒤 나는 그 여자
의 친구 셋을 차례로 유혹해 내 것으로 굴복시키고 어느 날 한자리에 모이도록 일을 꾸며선 웃으면서 얘기했지. 여자에 대한 복수를 한 거라고."
남자는 수면에 빨려들듯 과거에 잠기고 있었다. 고통이 되살아난 듯 얼굴을 일그러뜨렸으나 이내 신음소리를 내며 한 마리 짐승으로 헐떡였다. 성기는 악의처럼 팽창했고 남자는 과거에 시달리다 배설물을 쏟고 지쳐 쓰러졌다.
이따금씩 눈썹이 꿈틀거렸으나 벌거벗은 육신은 이미 고통으로부터 달아났다. 혼이 없는 그의 얼굴을 보자 미움도 가질 수 없었다. 약한 인간이었다. 사랑을 잃으면서 자신을 잃었고 여자에 대한 배신감이 석고처럼 그를 고착시켰다. 그는 과거를 현재 속에 옮겨 놓고 현실을 도피하는 편집광이었다. 윤리며 의지며 그 모든 현실에 눈 가리고 더 이상 성장을 멈춘 정신의 기형아였다.
그날 새벽 나는 파산자처럼 어둠 속을 헤쳐 그 악몽의 집으로부터 벗어났다. 별장은 민가에서도 떨어져 있어서 한참 숲길을 걸어서야 들판으로 나을 수 있었다.
불빛은 보이지 않았다. 집들도 어둠에 묻혀 있었고 차가운 겨울 바람만 뺨을 베이듯 스쳐갔다. 급히 빠져나오느라 목도리를 두고 왔지만 맨발이라도 뒤돌아보지 않았을 거다. 구름에 묻혀 있던 초생달이 이따금씩 얼굴을 내밀어 길을 비추어 주었으나 나는 더 이상 두려움 없이 앞만 향해 나아갔다.
외상은 없었으나 이 일은 내 인생을 뒤흔들어 놓았다. 먼저 나는 음악에 대한 정열을 잃었다. 전엔 음악이, 예술이 영혼을 구원한다고 믿었으나 음악의 한계를 깨달았다. 위대한 바하도 당시의 나를 구원하진 못했다. 물론 그것이 바하의 잘못은 아니지만.
언젠가 아폴로 우주선이 달나라에 착륙했을 때 신문에 난 사진이 생각난다. 어렸을 때지만 몹시 신기했다. 그것은 무슨 에너지로 식지도 않고 이글이글 타는 것일까. 그 신비는 종교도 예술도 초월하는 실체였다, 종교도 우주에 못 미친다. 예술이 위대하다 해도 인간에 국한된 것이다.
모든 것에 흥미를 잃고 있던 그 즈음 남자 친구가 국회 의원 딸과의 약혼을 알려왔다. 나는 그를 유혹하여 인천 바닷가에서 처녀를 던졌다. 축구 시합을 보면서도 프로이트 운운하는 그 의대생은 한때 내 데이트 상대자였다. 학구파이면서도 사람을 감동시킬 정도로 노래를 잘 불렀지만 집이 가난한 탓으로 부잣집 데릴사위가 되리라는 굳건한 소망을 갖고 있었으므로 나는 그를 친구로서 한계 짓고 있었다.
그 의대생은 나의 돌연한 제의에 순수하게 행복해 했으나 나는 그날 새벽 호텔 화장실에서 휜 손수건에 묻은 핏자욱을 무감각하게 들여다보았다. 그것은 내게 더 이상 의미가 없었고 휴지처럼 내던짐으로써 유리 구두 한 짝 같은 꿈도 내버렸다,
전에 한 친구가 내게 불행의 치외법권 지대에 사는 사람이라고 했던 적이 있다. 만날 때마다 집까지 바래다주고 도망치듯 긴 다리로 뛰어가던 남자 친구도 있었다. 그는 내게 유리 저편에 사는 사람 같다고 말하고 군에 입대했다.
어떤 면에선 맞는 말이었다. 나는 환경적으로 누릴 수 있는 것은 다 누린 셈이다, 지적인 어머니에 의해 건전한 중산층집 딸로 교육받았고 부족함도 별다른 괴로움도 없이 성장했다. 세상에 깔린 숱한 고통을 생각하면 나는 분명 혜택받은 사람이고 분배의 법칙에 따르자면 그만큼 세상에 빚진 사람이기도 했다.
내가 이런 것을 몰랐다 하더라도 나를 깨우치기 위해 그 끔찍한 일로 고통의 분배를 했다면 인생은 너무 자비롭지 못하다. 내가 빚을 갚을 수 있는 적절한 기회를 먼저 주어야 했을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 겨울에 우연히 영국 작가의 수상집을 읽고 눈물을 훔쳤던 기억이 난다. 작가는 어느 날 마을 어구의 외진 곳에서 열 살쯤 되는 소년이 나무등치에 기대서서 울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아이는 부모의 심부름으로 육 페니의 빛을 갚으러 심부름 가다가 돈을 잃어버렸던 것이다.
찬란한 봄날 아이다운 기쁨에 젖어 있어야 할 소년이 육 페니 때문에 심장이 마르도록 울고 있다니. 연민을 느낀 작가가 가난한 자기 호주머니를 털어 육 페니를 마련해 아이를 보낸다는 얘기였다.
육 페니를 잃어버리고 울고 있는 소년은 바로 나였다. 나는 갚아야 할 돈을 엉뚱한 곳에서 잃어버렸다. 신이 있다면 그 역시 가슴 아파 했겠지만 힘없는 자가 인생에 맞서 할 수 있는 것은 우는 것뿐이었다.
최 대리와 약혼한 날 나는 그에게도 이 얘기를 해주었다. 당신이 바로 소년에게 육 페니를 준 사람이라고. 최 대리는 왜 그렇게 엉뚱해, 한 마디 했을 뿐 더 이상 묻지도 않았다. 나는 그 점이 좋았다. 약혼식 날에도 나를 미스 리라고 부른 사람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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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을 그만두고서도 소양과 얘기할 기회를 좀체 잡을 수 없었다. 일부러 피하는 것 같기도 했지만 내가 집에 있는 날은 소양이 거의 나갔고 또 늦게 들어왔다. 얘기하기는 밤 시간이 좋으리라 생각하고 간식까지 준비해 놓고 기다린 적도 있지만 소양은 매번 아래층에서부터 야단을 맞고 올라왔으므로 제 방문을 두드리는 것조차 귀찮아했다.
그 동안 나는 한번 소양의 방에 들어가 일기를 보았다.
9월 X일
희중을 만나기로 한 학교 앞 다방으로 가는데 숨구멍이 막힐 듯 얼굴이 따가웠다. 충혈된 눈을 보고 '넌 데모 안 했으니 많이 울어라.' 강의 시간에도 탈출을 잘하지만 데모대에서도 잘 빠져나가 빠삐용이란 별명을 얻은 희중이.
-그래도 최루탄은 피하고 싶지 않아. 주민들이 피해가 심하다고 툴툴대면 한 대 쥐어박아 주고 싶어. 그게 양심일가.
-아웃사이더의 이중구조구나.
-야, 우리 삼 초만 웃자. 분석하기 좋아하는 너라는 애의 비애에 대해
오늘도 우리의 스포츠는 이십 분만에 끝났다. 같은 장소 같은 시간으로 탁구치듯이. 너를 생각하면 어떤 향취가 없다. 여운이 없어.
이제 알았어. 넌 수컷이야. 동물일 뿐이니까.
그래도 그 아이가 나를 노루라고 했던 것, 단도라고 했던 것은 잊지 않을 거다.
9월 X일
오늘도 쑥탕에 들어가 나치 가스실 놀이를 했다. 수증기 속에서 숨을 멈추고 있다가 정말 죽을 것 같아 뛰쳐나왔다. 대신 옆자리의 갓난아기와 눈맞추기 놀이를 했는데 천진한 아이 눈을 들여다보노라니 공연히 눈물이 쏟아졌다. 순수한 생명체는 경건하기까지 한데,,,,
9월 X일
희중을 따라 침술강의를 들으러 갔는데 역학 선생이 음양오행으로 사주를 봐주었다. 희중은 수성 둘 금성 둘 화성이 하나인데 나는 금성이 넷 목성이 하나다. 선생이 어휴, 하고 고개를 흔들었다. 너무 강해!
금성은 심판하고 단죄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는데 칼자루를 쥐고 있어. 내가 법관이나 의사가 되면 대성할 거라나.
희중이 밖으로 나서며, 맞아 어린애가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것 같아 위태롭긴 하지만, 하며 혼잣말을 했다. 어린애는 아무 의식 없이 자기에게 상처 내지만 나는 누구보다 나 자신을 단죄하고 심판할 걸.
9월 X일
나는 어디에도 없다. 골치 아프다는 것만이 살아 있음의 증거일 뿐
희중이란 남자친구 이름이 두 번이나 나오는 것을 보면 가까운 사이인 것은 틀림없다. '우리의 스포츠' 같은 표현은 나를 놀라게 했는데 추측대로 그것이 섹스라면 섹스를 탁구치듯 치르다니. 쑥탕에서의 나치 가스실 놀이는 소양의 정신건강을 염려하도록 했다.
구월 중순도 지나 추석 전날이었다. 소양은 밤 열 두 시가 지나 집에 들어왔다. 내가 문을 열어 주었는데 술 냄새가 확 끼쳤다. 술을 많이 마셨는지 이층에 올라오자마자 욕실로 들어갔다. 토하는 소리가 들렸고 잠시 후 핼쑥한 얼굴로 나왔다. 나는 볼 일이 있는 것처럼 밖에 처 있다가 속이 안 좋으냐고 물었다. 소양은 대답할 힘도 없는지 고개만 끄덕이고 제 방으로 들어갔다.
그날 밤 소양은 욕실을 두번 더 들락거렸다. 속이 좋지 않은지 아침에도 일어나지 못했다. 추석이어서 어머니는 온 식구가 함께 아침 먹기를 권했지만 소양은 자리에 누운 채 머리를 저었다.
나는 소양이 아프다고 전하고 아침을 떡은 뒤 쌀을 불려 죽을 끓였다, 죽과 전부침과 송편 몇 조각을 담아 소양의 방으로 들고 갔다. 소양은 누워 있기가 미안한지 일어나선 고맙다고 말했다. 입에선 술 냄새가 아직도 풍겼다. 나는 이제 은행에 나가지 않으니 죽 아니라
송편도 매일 만들 수 있다고 농담을 했다. 오랜만에 소양과 마주앉아 웃으려니 옛날로 돌아간 듯했다.
나는 송편 하나를 집어먹으며 소양에게 먹으라고 권했다. 물 김치까지 마시곤 요새 어딜 그렇게 다녀 ? 천연덕스레 물었다. 응? 소양도 무심히 대꾸했다.
"집에 있으면 갑갑해. 밖에서 나를 찾는 거야."
"자기 안에서 자기를 찾아야 하는 거 아냐?"
"꼭 공자님 말씀 같네."
미안해, 하고 내가 웃자 소양도 따라 피식 웃었다. 나는 이번 학기 등록 안 한 것 후회하지 않느냐, 학교에 가고싶지 않느냐, 친구들은 자주 만나느냐, 연이어 물었다. 소양은 세 번 다 별루, 하고 짤막하게 대답했다.
말문이 막혔지만 잠시 후 나는 진솔하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나는 너를 이해하고 싶다, 여태 무관심했던 건 미안하게 생각한다, 결혼을 앞두어선지 식구들이 소중하게 생각되고 누구보다 네가 마음에 걸린다고.
"휴학은 왜 몰래 했을까. 그걸 비밀로 할만큼 식구 누구와도 말이 안 통했어?"
"비밀도 아니고 굳이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을 뿐이야."
소양은 식은 죽을 떠 넣으며 덤덤히 대꾸했으나 나는 열의 없는 상대와 탁구를 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끈기 있게 할 말을 계속했다.
"대학 들어가 보니 별것 아니지? 나도 그랬어. 더구나 너같이 재수까지 하고 대학가면 그 노력과 기대만큼 더 공허감을 느낄 거야. 그래서 학교가 껍데기처럼 생각되고 가치관이 흔들리니까 고통스럽기까지 할 거야."
고통? 소양이 중얼거리며 양미간을 세웠다.
"어제 친구와 함께 지하도를 가는데 라이터 장사가 학생, 하나 사요 라고 불러. 휴학생이긴 하지만 학생이라고 불리니 이상하데. 긴 머리의 늙은 여자가 뒤에서 아가씨, 하고 부르는 소리를 들었을 때처럼. 그런데 그 라이터 장사는 지나가는 젊은 사람을 모두 학생이라고 불러. 친구 말이 학생이라고 부르면 모두 좋아한다는 거야. 사람들이 좋아하는 학생 호칭을 왜 나는 보류했을까. 그럼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 내가 무얼 원하는지 모른다는 게 고통이야."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무얼 원하는지 모른다고? 살아가면서 절실한 것을 발견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것은 이루어지기만 하면 또 다른 원을 갖게 되는 가변적인 것이고 절대는 아니지 않은가.
소양이 말하는 원이란 이상을 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상을, 원을 발견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깨질 때의 고통에 비하면 '아직 없음'으로 해서 가지는 불안이 더 미래적이다. 왜냐하면 없음은 인간에게 새 것을 창출하려는 욕구와 충동을 주기 때문이라고 언젠가 책에서 읽은 것까지 상기하며 궁색한 조언을 했다.
그 사이 죽 그릇을 비운 소양은 송편을 입에 넣으며 쟁반을 방바닥에 밀어 놓았다.
"마음에 비하면 말이란 얼마나 공허한 거야. 식욕이란 건 동물적인 거고."
"밥 먹을 때의 네가 안정돼 보이는데?"
소양이 웃는 틈을 타서 너 정말, 술집에 나간다고 했다면서? 하고 눈을 치떴다, 소양은 송편을 먹다 말고 나를 흘끗 보았다. 나는 얼마 전 우연히 명주를 만났다고 꾸며 말했다.
"내가 네 걱정을 했더니 그런 이야기도 하더라. 왜 하필이면 술집이야."
"나흘밖에 안 나갔어. 별것도 아냐. "
의외로 소양은 순순히 답했다. 그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돈이 필요했느냐, 떠보았다.
"어떤 자식이 팁을 브라자 속에 넣어 주잖아. 그래서 그 자리서 찢어 버렸어. 그게 끝이야."
소양은 더운지 흘러내린 앞머리를 손으로 넘겼다. 이마엔 아직 아이들처럼 잔털이 덮여 있었다. 그것을 보자 문득 소양이 어릴 때 일이 떠올랐다.
무용소에서 나와 함께 집에 가던 길이었다. 보도를 걸어가는데 자전거가 소양이 옆으로 미끄러져 가로수에 부딪쳐 쓰러졌다. 다치진 않았지만 소양은 길 안쪽으로 자리를 옮기며, 아이를 보호하려면 길 안쪽에 세워야 되잖아, 하고 짜증을 냈다.
"네가 그랬던 것 기억 안 나? 네 머리에 맨 노란 리본도 생각나는데."
"내가 그랬어?"
아무런 감정도 섞이지 않은 어조였다. 총명하게 눈을 반짝이던 어릴 때의 소양이 지금의 소양이라곤 나도 실감나지 않았다. 마침 할머니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서 나는 쟁반을 들고 일어섰다
"오늘 성묘 가야지, 준비 안 할래 ?"
"나 안 가."
소양은 더 이상 말붙일 수도 없게 한 마디로 잘랐고 나는 잠시 서 있다가 미끼를 던지듯 물었다.
"요새 돈 없지. 내가 용돈 줄까?"
돈? 소양은 내 속뜻을 알고 싶다는 듯 빤히 올려다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있으면 좋지 뭐."
그 주일에 소양은 두 번이나 외박을 했다. 추석 이틀 뒤엔 최 대리가 저녁 초대를 받아 집에 왔으므로 소양의 외박은 그냥 넘어갔다.
그 나흘 뒤 소양은 또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날 나는 어머니와 점심 때 집을 나서서 가구를 보러 다녔고 저녁에 최 대리와 만나 늦게 집에 들어왔다.
할머니 말에 의하면 소양은 오후 세 시쯤 남자친구의 전화를 받고 나갔다. 밤늦게까지 전화도 하지 않았거니와 아침까지 돌아오지 않은 것을 알자 할머니는 집안의 연장자로서 설교할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요즘 젊은애들은 계집애건 머시매건 똑같이 머리 볶고 푸대자루 같은 바지를 입고 다니든가 툭하면 데모를 한다, 뿐 아니라 대학 부근에서 약방을 하는 교인 말에 의하면 계집애들이 담배 피우는 건 예사고 젊은것들이 대낮부터 콘돔인지 콘도미니움인지 사러 온다더라, 하며 이보다 더한 말세는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소양의 외박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던 어머니는 콘돔 말이 나오자 숟가락을 소리나게 놓았다. 그리고 의자에서 일어나 좀 전에 올려놓은 파전을 주걱도 없이 뒤집느라 프라이팬을 한껏 들어 올렸다. 어머니가 하지 않던 짓이어서 채 데워지지도 않은 파전은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할머니는 그것을 못 본 체하며 연극 대사 같은 안 마디를 했다.
"젊음의 날개는 상하기 쉬워요. 그렇고 말고."
아침 설겆이를 마치고 이날도 나는 소양의 방문을 열었다. 할머니가 나올세라 소리 죽여 문을 닫고 일기장을 꺼냈다. 탐구하듯 한 영혼의 기록을 들여다보지만 셜록 홈즈 같은 재미를 느끼기도 했다. 일주일만에 보는 것인데 그간 세 번 일기를 썼다.
9월 X일
심방 온 교회 할머니들의 궁상맞은 찬송가 목소리를 흉내내다가 정말로 찬송가를 부르게 됐다. 세뇌 받은 소녀처럼.
마음이 당겨서 모처럼 성경을 봤는데 창세기 47장의 야곱 말이 가슴을 파고든다. 나이를 묻는 파라오에게 '이 세상을 떠돌기 벌써 백 삼십 년이 됩니다.'
이 세상을 떠돌기 나는 이제 이십 년. 그러나 백 삼십 년이나 된 듯 몸이 천근 만근 무겁다. 유태인 전 민족이 사막에서 사십 년간 떠돌아다녔지만 그들은 신으로부터 약속 받았기에 고통을 견딜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신의 존재를 믿지도 않지만 신이 있다 하더라도 그의 어린 양이 될 마음은 없다. 그것도 가짜 화해 같아서
10월 X일
한밤중에 문득 깨면 모든 것이 그렇게 아득할 수 없다. 나 혼자 어둠 속에 내던져져 있고 아득히 먼 곳에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등을 돌리고 누워 있는 환영을 본다.
오늘도 쓸데없이 종로를 헤매 다녔다. 파랑새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데 누가 내 옆을 스쳐가다가 힐끗 보고 자꾸 돌아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낯익은 얼굴 같아서요, 했다.
서투른 수작일 수도 있지만 그럴 때가 있다. 아니 우리들은 늘 낯익은 한 얼굴을 발견하기를 원한다. 낮선 백의 얼굴은 가면 같아서 나를 외롭게 하기에. 낯익은 한 얼굴이란 비가 올 때 한 우산을 쓸 수 있는 정도의 사람일 텐데,
10월 X일
사랑에 대한 정의가 많지만 '그들이 기대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으로 얻고자 하는 두 남녀 사이의 유리한 교환'이라는 정의가 무엇보다 정직해서 마음에 든다.
희중이 내게 얻고자 하는 벗은 섹스? 내가 얻고자 하는 건 킬링타임인가? '멀'씨는 보다 포용력이 있고 지적이지만 어딘지 성불구자 같은 느낌을 주고 지루하다.
아무도 그리운 사람이 없어,,,,,,
아침 나절 웃음 없는 얼굴로 부엌을 드나들던 어머니는 오후엔 재봉틀을 돌렸다. 근래엔 쓰지 않더니 일거리를 찾아내 혼수용 방석을 만들었다.
나는 쇼팽의 곡을 연습했으나 집중이 되지 않아 힘만 빼고 그만두었다. 할머니 친구들이 놀러와선 찬송가를 쳐 보라고 내 방을 기웃거렸고 책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아서 목욕을 갔다.
평일이어서 목욕탕은 한산했다. 다른 날처럼 달걀 노른자를 두피에 바르는 등 야단을 떨지 않았으나 오랜만에 몸 닦아주는 종업원을 찾았다. 은행에 들어간 뒤로 이런 다치는 하지 않아서 목욕탕의 파란 비닐 침상에 누워 보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여자는 내 몸에 부드럽게 비누칠을 해주고 머리를 감겨 주었다. 소녀처럼 내 전체를 맡기고 침상에 누워 있으면 그 사이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되고 단지 괴롭고 답답한 공간 속에 있었다는 것만 기억할 뿐이다.
예전에 나는 이런 의식잃기를 좋아했다. 또한 그것은 절망놀이였다. 내 몸을 닦아주는 젊은 여자의 출렁거리는 가슴이 시야에 닿아와 뿌우연 수증기 속에서 눈을 뜨면 목욕탕의 천정은 거대한 신전처럼 높아 보였다. 다시 내 몸을 내려다보면 그것은 비누 같은 육체가 아니라 납의 육체였다. 무거워서 자꾸 가라앉는 것 같은.
투사같이 건장한 여자가 내 머리를 침상 밖으로 늘어뜨려 삼푸를 했다. 누운 채 목을 젖히니 침상 앞쪽에 있는 쑥탕 유리가 눈에 들어왔다.
뿌우연 증기 속에서 짧은 머리의 한 여자가 수건으로 입을 막고 서 있었다, 내 불편한 자세 때문인지 순간 여자가 입을 틀어막은 채 증기 속에 갇혀 괴로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쑥탕에서 나치 가스실 놀이를 했다는 소양을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몸에 뜨뜻한 물이 끼얹어지자 다시 가슴이 답답해졌다. 아무도 그리운 사람이 없다고 하면서 소양은 늘 사람에게서 무언가를 찾으려 한다. 명주는 그것을 진실이라고 했지만 소양이 찾는 것은 구체적인, 낯익은 한 얼굴이 아닐까. 인간에게서 받은 상처도 인간을 통해 치유되지만 소양의 방황은 내게 무모한 낭비로 보였다.
이날 저녁때까지도 소양은 돌아오지 않았다. 일곱 시엔 약속이 있어서 나갈 준비를 하는데 전화가 왔다. 만나기로 한 잡지사 여기자 친구였다. 오늘 취재가 갑자기 걸렸으니 약속을 뒤로 미루자고 했다.
이날 혜양이와 아버지가 발리 들어와서 소양이를 뺀 식구 모두가 함께 저녁을 먹었다. 아버지는 식탁에 앉자마자 소양이가 아직 들어오지 않은 것을 알고 화를 냈다, 완전히 고삐 풀린 망아지구나, 자식 넷 키우려니 별걸 다 보네, 하며 연신 혀를 찼다.
소양이 문제로 아침에 어머니 비위를 긁어 놓았던 할머니는 어색할 정도로 침묵을 지켰다. 어머니는 공연히 조리대 앞에 서서 반찬을 뒤적거리다가 혜양에게 전화가 왔었노라 일러주었다. 남자친구더구나. 어머니가 화제를 바꾸려고 한 얘기 같았지만 혜양은 그래요? 하곤 밥만 먹었다.
"남자친구가 있으면 집에 데리고 와서 인사도 시켜. 인간이 됐는지 안 됐는지 너희들이 뭘 알아. 소양이 그것두 사내자식 때문에 이상해진 것 같은데 말야."
아버지는 소양의 휴학부터 남자와 연관시켜야 직성이 풀리는 듯했다. 나는 요즘 태들이 남자 때문에 이상해질 만큼 어리석지 않다고 말머리를 꺼낸 뒤 소양이는 아버지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똑똑하고 비판적이며 그래서 오히려 문제점을 갖고 있는 아이라고 말했다.
"똑똑해서 문제야? 덜 똑똑하니 문제지. 정말 똑똑하다면 경쟁 대열에서 혼자 뒤처지는 짓은 절대 하지 않을 거다."
나는 경쟁 대열이라는 말이 귀에 거슬려서 대학이 무슨 산업양성소냐 반박했다가 철벽 같은 아버지 표정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대학이 경쟁대열이지 그럼 취미양성소야. 내가 왜 자식들을 대학 보내는데. 남들보다 더 좋은 데 시집가고 남들보다 더 좋은 직장 얻게 하려고 보내는 거지,"
아버지로서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원래 약속이 있었던 데다가 소양이까지 들어오지 않자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소양이 들어오면 아마도 집이 시끄러울 것이다. 아버지는 거실에서 텔리비젼을 보며 소양이 들어오기를 벼르고 있었다
나는 오랜만에 혜양이 방에 갔다. 방에 걸린 해부도며 철제 책꽂이에 꽂힌 의학원서들, 장식이라곤 풍경화가 있는 달력뿐인 방 모습이 전과 다를 바 없었다.
혜양은 책을 보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보바리 부인-이었다. 웬일이냐, 소설책을 다 읽고. 내 말에 혜양은 가을이잖아, 하며 혀를 내밀었다.
나는 혜양에게, 함께 시내에 나가 바람을 쏘이고 오지 않겠느냐고 생각을 물었다. 여덟 시가 넘었는데? 혜양은 나의 갑작스런 제안에 어리둥절해 했다. 나는 답답해서 그러니 택시를 타고 종로에 나가 진토닉 한 잔씩만 마시자고 재촉했다. 앞으로 이러고 싶어도 못 그래. 이 말이 간곡하게 들렸는지 혜양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옷을 갈아 입었다.
종로에 발을 디디면서부터 나는 낯선 곳에 온 것처럼 거리를 기웃거렸다. 그 시간에 종로에 나온 것도 오랜만이었지만 독특한 옷차림의 젊은 아이들이 밀집해 있는 풍경은 나를 이방인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들은 시계 방 앞에서, 문이 닫힌 건물 층계에 또 생맥주집 입구에 앉아 있기도 하고 길에 서서 핫도그를 먹기도 하고 무리 지어 다니기도 하면서 거리 전체를 장악하고 있었다. 그것은 군중이었고 치외법권의 숲이었으며 거부였다.
큰 골목 어구엔 전경차 두 대가 지키고 있었으나 아무도 개의치 않았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고교동창인 듯한 한 무리들이 둘러서서 고교 교가를 외쳤다.
우리는 숲을 헤쳐가듯 젊은 무리들과 어깨를 스치며 골목을 걸어나갔다. 통나무를 가운데 놓고 생맥주를 마시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수족관 같은 유리를 통해 보였고 전자오락실에선 기계에서 울리는 수십 종의 소리들이 뒤섞여 울렸다. 눈이 부셔서 고개를 쳐드니 철망이 쳐
진 야구장이 눈에 들어왔다. 짐승 우리 같은 철망 속에도 줄을 선 무리들이 팔을 한껏 휘둘러 공을 난타했다.
골목 위로 계속 걸어가자 불을 밝힌 포장마차들이 밤배처럼 늘어서 있었다. 혜양은 호기심이 생기는지 포장마차에 들어가자고 했다. 나는 갈 데가 있다고 일러주고 앞으로 계속 나아갔다.
우리가 썸싱에 들어선 것은 아홉 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특이한 까만 유리 건물의 간이음식점이었다. 실내가 어둡고 자리를 구획하는 칸이 높아서 앉은 사람들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으나 음악 때문에 조용하지 않았다.
내가 빈자리를 찾아 앉는데 벽면에 걸린 빨간 인터폰이 한눈에 띄었다, CC번호가 박혀 있었다. 경옥이 말한 대로였다.
나는 종업원을 불러 진토닉 두 잔을 시키고 인터폰을 어떻게 쓰는 지 물었다. 종업원은 수화기를 들면 곧 DJ실로 이어지고 신청곡을 부탁하거나 다른 자리와 통화해도 된다고 친절하게 일러주었다. 종업원이 가고 나자 혜양은 이런 델 어떻게 알았지? 하고 의아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넌 대학생이면서 이런 데도 안 와 봤어?"
우리가 함께 술을 마신 것은 근래에 거의 없었던 일이었다. 약혼 전 최 대리가 소양과 혜양을 특별히 초대해 함께 저녁을 먹은 일이 있을 뿐이다. 나는 좋아하는 남자 친구가 있느냐, 고민은 없느냐, 식구들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생각나는 대로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혜양의 대답은 간단 명확했다.
가까운 남자 친구가 있긴 하지만 홀어머니에 외아들인 독문학도이고 서로의 환경이 너무나 달라서 결혼할 마음은 없다, 그래서 데이트 비용도 혜양이 꼭 절반 부담하면서 거리를 두고 사귀는데 의학에 도움이 되는 자연과학계의 남자와 결혼할 생각이다, 장래에 대한 계획이 뚜렷하므로 큰 고민은 없고 어머니 아버지에게도 더 큰 기대를 하지 않으므로 불만은 없노라 했다.
"넌 어쩜 그렇게 철저하냐. 인생을 업무 처리하듯 해."
나는 혜양의 얘기를 다 듣고 법대 애들은 좋은 환경에서 머리 싸매고 육법전서만 외지만 좋은 법관이 되려면 인생의 고통을 많이 겪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의사 경우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느냐, 반문했다. 포도 알을 입안으로 굴리던 혜양은 씨를 뱉고 정색을 했다.
"언니는 내가 고통을 가진 적이 없다고 생각해? 내가 보기에 언니야말로 화초같이 살아온 것 같애. 지금 결과도 그렇잖아. 한 남자의 아내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거야, 언니는."
이어 혜양은 언니에게 자기 갈등을 얘기해 봐야 공감할 수 없을 터이니 가졌던 꿈이나 얘기하겠다며 의대에 들어간 동기를 들려주었다.
혜양의 말에 의하면 그 동기는 유르스나르라는 벨기에 태생 여성 작가의 소설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을 보고서였다. 뛰어난 장군이었고 치세 동안 자유와 평화를 누리게 했던 로마제국의 비범한 황제가 죽음을 눈앞에 두고 편지형식으로 쓴 소설이다. 그 속에 병고에 시달리는 황제가 이올라스라는 젊은 의사에에 독약을 조제해 줄 것을 호소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올라스는 황제를 동정하면서도 히포크라테스 선서 때문에 거절한다. 황제는 거듭 애원했고 마침내 이올라스는 설복되지만 그날 밤 그는 실험실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그는 황제에게 아무 것도 거절하지 않으면서 자기 선서를 충실히 지킬 수 있는 방법으로 죽음을 택했던 것이다.
혜양은 이 얘기를 마치고 언닌 내가 공부벌레니까 의대 갔으려니 했지? 빤히 쳐다보았다. 혜양이가 소설 속의 인물에 매료되어 의사가 될 생각을 했다는 것은 내가 전혀 모르는 부분이었다.
정말 뜻밖이었다. 혜양이가 내 고통을 모르듯 나도 혜양의 꿈을 몰랐다. 그런 것들은 보여지지 않는 것이어서 혼자 품고 있을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나도 소양의 고통을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 일기까지 훔쳐보며 소양을 도우려 하지만 그것은 혼자 앓고 스스로 치유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열 시가 넘어서자 쌍쌍이 온 손님들도 거의 나가고 자리가 많이 비었다. 여고 때부터 아버지와 반주를 했을 정도로 술을 즐기는 혜양이 세 잔 째의 진토닉을 마시는데 우리 자리의 인터폰이 울렸다. 생각지도 않은 일이어서 의아해 하며 수화기를 들자 남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CC냐고 번호를 확인하고, 여자 두 분이 조용히 앉아 진토닉 마시는 풍경이 보기 좋다고 운을 뗐다.
"얘기 좀 해도 되죠?"
소양도 이런 전화를 받았으려니 생각하자 좋은 기회가 온 듯했다 그렇지 않아도 호기심에서 실내전화를 쓰고 싶어했던 차였다. 내가 대학생이냐고 묻자 그쪽에서 말을 늘어놓았다.
"민주대학 다녀요. 산수 자연 반공도 배우지요. 간첩 신고하는 것도 알아요. H2O는 물이에요. 소주 마시면서 화학 배워요. 당구치면서 삼각함수 배우고, 고고 가서 체육 해요."
수수께끼 같은 말장난이었다. 나도 나오는 대로 오늘 무엇을 했느냐, 물었다.
"세수하고 라면 먹고 돌아다니다가 썸싱 왔어요. 나와서 살거든요. 어젠 친구들하고 올나잇하구요."
"왜 그렇게 나와 있어요. 외박할 때 집에 말해요?"
그것은 내게 정말 궁금한 일이었다.
"말해요. 거짓말해요. 친구 집에 간다고."
"종로엔 일주일에 몇 번이나 나와요?"
"일주일에 여덟 번요. 하루에 두 번도 나와요."
나는 웃음을 터뜨리며 함께 합석하자고 했다. 세련된 재치가 고교생 같지는 않고 대학생일 거라고 짐작했다. 못난 얼굴 보이기 싫다고 능청을 떨더니 잠시 후 키가 크고 매끈하게 생긴 젊은 남자가 우리 자리로 왔다. 머리도 길렀고 옷차림도 깔끔했으나 얼굴엔 아직 앳된 티가 있었다.
짐작대로 대학생이었다. 전자공학과 사 학년생이라고 자기 소개를 하면서 친구 두 명과 함께 있다고 입구 쪽 자리를 돌아보았다. 나는 결혼을 앞두고 동생과 함께 바람을 쐬러 나왔다고 내 소개를 한 뒤 누나 나이여서 실망했겠지만 부담이 없다면 생맥주를 사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모두 함께 썸싱에서 나섰다. 어리둥절해서 내가 하는 짓을 바라보던 혜양도 같은 또래들과 술 마시는 일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잠자코 따라나섰다.
이미 늦은 시각이라 골목엔 휴지와 쓰레기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일행 중 가무스름한 얼굴이 다부져 보이는 남학생은 길을 가면서 연신 휴지를 발로 찼다.
왜 이렇게 쓰레기를 함부로 버릴까. 내가 혼잣말 한 것을 듣고 쓰레기를 차던 남학생이 불만이 많아서 그래요, 불쑥 말했다. 불만이 있다고 쓰레기를 던져? 그는 이번엔 빈 소주병을 발로 찼다.
"자제 능력이 없어서 그래요. 젊으니까요."
우리는 부근에 있는 생맥주집에 자리잡았다. 나만 오백 씨씨를 시키고 모두에게 천 씨씨 생맥주를 돌렸다. 처음 나와 통화했던 전자공학과 학생이 안주봉지를 뜯으며 친구를 소개했다. 먼저 쓰레기를 차던 남학생을 가리켰다.
"불만의 창구 25시예요. 경영학을 전공하는데 공부하랴, 데모하랴, 여자 만나랴, 홀어머니께 효도하느라 외박하고도 새벽에 집에 들어가랴, 스물 네 시간으로 모자라서 25시예요."
내 맞은편에 앉은 눈이 큰 남학생은 땡부장이었다. 교수님이 시답잖은 강의를 수업 시간이 지나도록 하면 땡 쳤는데요, 알리는 역할을 하노라 설명했다. 땡부장이 전자공학과 학생을 턱으로 가리켰다.
"별명의 꽃은 역시 하르노지. 쟤 성이 하씬데 포르노를 하두 밝혀서 하르노예요."
혜양은 킥 웃으며 의대 본과 사 학년이라고 두 학년이나 올려 제 소개를 했다. 나는 곧 그들의 대학 생활에 대해 화제를 돌렸다. 25시가 먼저 열띤 어조로 말했다.
"대학 들어가기 전엔 대학이 별세계인 줄 알았어요. 순수 그 자체인 줄 알았다구요. 내가 삼 년간 다니면서 깨달은 건 그게 말짱 거짓이라는 거예요. 성실만으로는 되지 않아요. 죽도록 공부해도 컨닝한 애가 A받아요. 또 힘이 있어야 해요. 분교 반대 데모를 하는데 학교에선 체육과 선배들을 시켜 학생들을 무자비하게 진압시켰어요. 상아탑이라는 대학에서도 힘이 없으면 살아남지 못해요. "
25시는 이어 요즘 베스트셀러인 어느 책 주인공도 당수에 온갖 기술을 갖고 있다, 권력과 돈과 명예가 있어야 자기를 발휘할 수 있다, 세상이 그러니 그런 식으로밖에 살 수 없다, 나는 그 중 돈을 택했는데 돈으로 권력을 쥔 뒤 모든 사람들에게 잘 살도록 해주겠노라 단언했다.
"대학에 왜 오느냐? 먹고살기 위해서죠. 진리 탐구, 학문 탐구는 말짱 거짓말이에요."
25시는 입술을 이죽거리며 극단적으로 내뱉았다. 모든 것에 무관심한 공부벌레지만 혜양도 수긍되는 바가 있는지 귀를 기울였다. 소양의 휴학에도 그러한 실망, 울분이 작용했을까. 아무 것도 잡을 것이 없다고 했던 소양이었다.
"종로에 왜 젊은애들이 많은지 아세요. 배출구가 필요하니까요. 여긴 기존이라는 게 없어요. 혼돈이지만 또한 숨통이에요. 젊음의 자위행위예요."
25시의 독설은 나를 매료시켰다. 나는 그들이 여자친구는 어떻게 얼마나 깊이 사귀는지 궁금하다고 털어놓았다.
"솔직이 말하면 우리 그거 밝혀요. 여기 나오면 술도 마시지만 주로 여자 헌팅해요. 밤늦게 다니는 여자들 뻔하잖아요."
상상하기 힘들지만 하루치기 섹스를 말하는 듯했다. 나는 그런 경우 여자에게 전혀 인간적인 감정을 못 느끼느냐, 여동생이나 누나를 생각하면 연민이 가지 않느냐, 물었다. 쑥맥 같은 말이었지만 소양을 생각했던 거다.
"자기가 자기를 안 지키는데 누가 지켜 줘요."
25시는 냉혹할이만큼 잘라 말했고 하르노는 내가 답답하게 여겨지는지 노골적으로 내뱉았다.
"남녀가 둘 이상 만나면 머리 싸움이에요. 순수가 어디 있어요. 애인요? 그런 것 생각할 때가 아니예요. 곧 군대 가야죠."
5
소양은 그날 우리보다 조금 빨리 들어온 듯했다. 열 두 시가 넘어 집에 들어갔으나 어머니는 말없이 문만 열어 주고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엔 불이 환히 켜져 있었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높게 울렸고 소양은 주방 창에 기대 서 있었다. 부리가 들어왔는데도 꼼짝 않고 거실 벽만 바라보았다.
"다 큰 계집애가 말도 없이 외박을 해? 네가 부모를 뭘로 아는 거야. 네 어머니는 부끄러워서 말도 안 하려 들어."
혜양은 소양을 흘끗 보고 그냥 이층으로 올라갔으나 나는 층계 벽에 몸을 숨기고 가만 서 있었다. 아버지는 계속 어디서 외박을 했느냐, 친구 집에서 잤으면 친구 이름을 대보라고 공연한 닥달을 했다. 아버지가 되풀이하려 하자 소양이 가로막듯 내뱉았다.
"그게 뭐가 어쨌단 말예요. 내 일은 내가 알아 하겠어요."
"알아 한다는 게 그 모양인데 부모가 그걸 보고 있으란 말야?"
"다 큰 자식에게 부모가 할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잖아요. 그만 자러 가겠어요."
"다 컸어? 다 커서 그 모양이야?"
소양의 발소리와 아버지가 몸을 일으키는 소리가 동시에 들렸다. 내가 거실 쪽으로 고개를 내미는 순간 아버지가 소양 앞으로 다가가서 뺨을 후려쳤다. 소양은 비틀거리다가 이내 몸을 꼿꼿이 세웠다. 아버지는 흥분해서 주먹을 앞으로 내밀었으나 소양은 잽싸게 비켜서 층계로 걸어왔다. 아버지는 코를 벌름거리며 소리쳤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 외박하고 와서 부모한테 대놓고 말대꾸야 말대꾸가."
나는 곧장 뒤따라 갔으나 소양은 방문을 잠그고 문을 열지 않았다. 몇 번 두드려도 반응이 없었다. 세수를 하고 나온 혜양이도 함께 소양을 불렀다. 그것이 소란스러웠는지 잠시 뒤에야 방문이 열렸다. 소양은 어느새 횐 잠옷을 입고 있었고 솔빗을 들고 머리를 빗질했다.
"무슨 일이야. 두 자매가 왜 그래."
소양은 천연덕스러울 정도로 태연했다. 위로하러 왔던 나는 되려 벙벙해서 서 있기만 했지만 혜양은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좀 조용히 살자고. 네가 내 방을 방문하는 건 언제든지 환영이야."
"가장 좋은 방법은 날 가만 내버려두는 거야."
소양은 대단히 귀찮다는 듯 착 가라앉은 소리로 맞받았고 우리는 바로 코앞에서 문이 닫히는 것을 바라보기만 했다.
선전포고나 하듯 소양은 그 일주일 뒤 또 외박을 했다. 이번엔 이틀간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예 혐오스런 표정을 지었고 나는 식탁에서 아버지와 부딪치지 않도록 밥 먹는 시간을 늦추었다.
소양이 집에 들어오지 않은 첫날은 시댁에 가서 최 대리가 퇴근하고 올 때까지 시간을 보냈고 소양이 외박한 이튿날 아침에야 어머니와 단둘이서 식탁에 앉게 됐다. 어머니는 소양이 사귀는 남학생이 있는지 내게 물었다.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일기에서 본 대로 희중이란 남학생 얘기를 할 수도 없었다. 그것을 어머니가 이해하길 바랄 것인가, 나부터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는 이렇게 둘러서 말했다
나이가 나이니만큼 소양이도 남자 친구가 있다, 가끔 만나는 것 같지만 심각한 사이는 아닌 듯하다, 소양의 외박을 남자친구와 연관시키기보다 요즘 젊은애들의 생태로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며 디스코 장과 비디오를 돌리는 심야다방엔 젊은애들이 들끓는다고 설명했다.
"그런 데서 왜 밤을 세운대? 피곤하지도 않남."
"집보다 좋은가 봐요."
"가정에 문제가 있겠지."
어머니는 무심코 말을 해놓고 우리 집엔 문제가 없음을 확인하듯 소양인 무엇 땜에 자꾸 삐뚤어져 가는 것 같애 ? 물었다. 나는 어머니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단순치 않은 애여서 모르겠어요. 그런 애를 때려서 다룰 생각하면 안 돼요."
나는 아버지를 비난하듯 얼굴을 찌푸렸다. 성질이 급하시기도 하지만 아버지만 해도 옛날 사람 아니냐, 어머니는 아버지를 반은 두둔하면서 내 말을 수긍했다.
"니네들 방에 가면 이따금 담배냄새가 나서 언젠가 아버지에게 얘기했더니, 요새 애들이 다 그렇지 하면서 속이 답답하면 나보고도 피우라고 권하시더라. 그런 때 보면 신식 같은데 말야."
기분파인 아버지에겐 그런 멋진 면도 있었다. 나는 그 점을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난 아버지 싫어하지 않아요."
나는 아침을 먹은 후 곧장 이층으로 올라가 소양의 방문을 열었다 담배를 많이 피웠는지 담배냄새가 배어 있었다. 꽁초가 수북이 쌓인 재떨이를 이내 발견하고 창부터 열어젖혔다. 보료 위엔 이불도 개켜지지 않은 채 옷이 던져져 있고 보들레르 시집과 종의 기원, 두 권의
책이 방바닥에 놓여 있었다, 소양의 일기는 아버지에게 뺨을 맞은 날부터 씌어 있었다.
한바탕의 소요가 지나가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고요하다. 그러나 정적 속에서도 손끝으로 날카롭게 쑤시고 들어오는 어떤 것, 이 방은 방이 아니야. 피 흘리는 작은 양을 잠재우고 놀라 뛰는 노루 가슴을 쉬게 하고 내 푸른 단도날까지 어루만져 주는 방이 필요해.
아니 그러한 방은 내게 영원히 존재하지 않을지 모른다. 단순한 구도로 명료하게 묘사된 듯한 고호의 아를르의 침실도 휴식보다 불안을 느끼게 한다. 퇴색한 듯한 거친 적갈색 마룻바닥과 하얗게 반짝이고 있을 뿐 아무 것도 비치지 않는 거울, 빨간 담요,,,,,,
그날 소양의 기분이 암울했으리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지만 방에 대한 표현은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이것에 비해 그 며칠 뒤 쓴 것은 비누방울같이 가벼웠다.
머리를 감고 그냥 젖은 머리로 누워서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아주 본능적이고 어린애 같은 편안함이다. 아까 화장품 통에서 vanity bag이란 단어를 발견했다. 헛되다는 뜻의 베니티란 단어가 좋다. 헛된 것 그것은 감각이다. 아스트린젠트의 향내 같은 감각일 뿐이다.
소양은 여기서 한 줄 띠우고 만화를 본 장면을 짤막하게 써놓았다. 한밤에 라면을 끓여 먹으면서 어린이 잡지에 있는 만화를 본 모양인데 연탄배달을 하여 병든 어머니를 부양하는 십일세 소년의 실화를 보고 눈물이 났다고 씌어 있었다
소양의 의식은 일관성 없이 시계추처럼 오간다. 아이가 인생을 헤쳐나가는 모습이 눈물겨웠는지도 모르지만 만화를 보고 그 나이에 울다니. 나는 소양의 방에서 잠시 멍하니 앉아 있다가 곧 나와서 명주에게 전화했다. 명주는 오전에 수업이 없는지 마침 집에 있었다. 나는 대뜸 소양을 근래에 만난 적이 있느냐 물었다. 아뇨, 그 때 보고 못 봤어요. 명주는 더 이상 말이 없었고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소양이에게 무슨 일이 있어요?"
잠시 후 명주가 물어서 나는 솔직이 얘기했다. 말도 없이 이틀째나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며 너를 다시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명주는 이내 대답하지 않았다. 얘기라도 하면 좀 풀릴가 하구. 내가 혼잣말을 하자 두 시에 수업이 없으니 그때 만나자며 승낙을 표시했다.
명주가 일러준 대로 학교 앞 찻집 희나리에 들어서자 장단이 느린 서도민요가 울리고 있었다. 돌사자가 놓여 있는 입구에서 안으로 들어서자 벽 한 면에 부착돼 있는 옛날 혼례의상이 한눈에 띄고 천장에 고정시켜 놓은 연도 장식으로선 색달랐다. 탁자로 쓰는 궤짝이며 여기저기 놓인 나비장식 촛대, 민화 액자 등으로 찻집은 고풍스럽고 아늑했다. 자리를 잡고 식혜를 주문하는데 명주가 막 앞자리에 앉았다.
"여기 좋네, 편안하구. 그야말로 한국적이야. "
내 말뜻을 알고 명주도 피식 웃었다. 이어 작년 이맘때 소양이랑 한창 여기서 만났는데 소양이가 오면 판소리를 틀어됐노라고 했다.
소양이가 판소리를 좋아했던가? 뜻밖의 말에 콜란 표정을 짓자 명주가 처음 듣는 얘기를 했다.
"지난 가을 학기에 소양이 판소리 반에 들었잖아요. 일주일에 한번씩 강습했는데 집에선 몰랐나 보죠."
종업원이 막 식혜와 작설차를 가져왔다. 나는 식혜로 목을 축이며 소양이 방에서 판소리가 울린 적이 있었던가 생각해 보았다. 언젠가 일요일에 들은 것이 그제야 기억났다. 마루 청소를 하는데 적벽가가 들려왔고 나는 별생각 없이 소양이 방문을 열어 보았다, 소양은 문
쪽으로 머리를 두고 방 안쪽에 누워 있었는데 자는 것 같았다.
소양이가 어떻게 판소리를 할 생각을 했을까. 뜨거운 물로 도자기 잔을 데워 차를 따르는 명주를 보며 묻자 어릴 때 무용을 해서 국악 가락이 친근하대요, 했다. 그건 사실일 거다.
"또 소리 같은 걸 하면 속이 후련할 것 같대요."
"뭐가 그리 답답해서, 지금은 관심 없대?"
언니가 한집에 사는 동생 일을 친구에게 묻고 있다니. 명주는 차를 마시고선 헛기침을 했다.
"소양인 판소리 강습을 한 학기도 끝내지 않고 그만뒀어요. 아이들이 전통 전통 떠드는 것이 역겹더래요. 감상적이어서 싫대요. 주체의식이 없으니까 판소리 하나 배우면서 주체의식 운운 떠드는 거래요."
무슨 소리인지 알 것 같았다. 요즘 음대에서도 국악과의 인기가 높았다. 자기 것에 대한 자긍심이 높아진 결과인데 동일화 현상이랄까. 그 과잉열을 소양은 빈정거렸지만 저도 처음엔 동일화되기 위해 판소리를 배우려 하지 않았을까.
혼자서 소양의 심리를 추적하는데 명주가 수라관에게 협조하는 진술자처럼 생각나는 대로 연이어 말해 주었다,
소양인 신학기에도 욕심 많게 연극반 방송반에 가입하더니 그것도 한 학기가 끝나기 전에 그만두었다. 명주가 보건대는 소양이가 부원들과 충돌하기 때문인데 신입생 환영회 날도 눈 하나 깜짝 않고 담배를 피워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는 것이다. 그 말엔 나도 놀랐다.
명주는 또 낮부터 소양이가 학교 앞 주점에서 남학생과 목소리를 높이며 싸우는 것도 봤노라 일러주었다. 여자가 대낮부터 술 마신다고 시비를 한 모양이었다.
"그럴 때 대개는 피식 웃어 버린다든가 대강 넘어가는데 소양인 못 견뎌 해요. 그런 꼴은 안 보고 자라서 여자가 어쩌구 하는 자식들을 보면 따귀를 갈기고 싶대요."
"걔는 그럴 꺼야."
나는 큰 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명주는 잠시 후 소양인 남녀공학에 잘못 온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여자대학에선 자기가 주인이지만 남녀공학에선 여간 똑똑하거나 무신경하지 않으면 여학생이 주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기 힘들다는 얘기였다. 서클 회장도 거의가 남자잖아요. 명주도 인정한다는 듯
덧붙였는데 나는 소양을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소양에게 여자 대학이 맞을까.
입시 때 어머니는 물론 아버지도 소양에게 여자 대학에 들어가길 권했다. 이젠 남녀가 싸우는 시대이므로 남녀 공학에 들어가면 경쟁자가 되어 미움을 받는다는 것이 아버지의 지론이었다. 그건 선견지명이었으나 소양은 제 의사를 분명히 했다. 언니가 다닌 화사한 여자대학 같은 덴 싫다고 했다. 나는 이렇게 결론짓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서 못 견디면 저기서도 못 견디는 거야."
명주를 다시 만난 것은 소양을 이해하는 데 보다 큰 도움을 주었다. 나는 소양의 학교생활은 전혀 몰랐다. 판소리를 배웠으면서 음대를 나온 내게 말도 않다니.
이날 명주는 수업을 한 시간 빼먹으면서까지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명주의 운동에도 관심이 많았으므로 이것저것 물었다. 명주는 사회의 주체인 생산 담당자들이 어떻게 사회로부터 소외되었는가에서부터 노동자들의 투쟁 조건으로 경제주의 개량주의 같은 용어를 써서 설명하다가, 미양 언니가 이론적으로 받아들여도 피부로 실감하진 못할 처라며 요술장이가 된다면 언닌 무엇을 하겠어요? 불쑥 물었다.
글쎄. 엉뚱한 질문이었으나 흥미 있었다. 아이 적엔 바다 위를 걷고 싶다든가 연기 같은 기체로 화해 잠자는 친구의 방 창 틈으로 스며들어 놀라게 하고 싶다는 등의 소원을 가졌었다. 지금은 지금은---
명주는 내 메마른 꿈을 바라보다, 난 정의를 위해 요술을 쓰겠어요, 흔쾌히 말했다. 자기의 어릴 때 꿈은 요술장이가 되는 것이었는데 약자를 짓밟는 나쁜 사람들을 벌주고 싶어서였다. 이건 만화 영향도 크지만 중학생 때의 제 별명이 유 관순인 점을 참작하면 기질과 무관하지 않다고 자기분석을 했다.
"정의라는 말이 잠재의식 속에 깊이 박혀 있었는지 우연히도 십 년 뒤 다시 그것과 만나게 돼대요. 대학에 들어올 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무엇일까, 그것을 위해 젊음을 바치겠다고 마음 먹었는데 얼마 뒤 내 속에서 발견했어요. 가장 아름다운 것은 정의라고."
명주의 말이 틀리지 않아서 그것은 이론보다 더 선명하게 가슴에 닿아 왔다. 명주에게 그런 예쁜 면이 있구나, 하고 넌지시 바라보자 명주는 다시 소양에게로 얘기 방향을 돌렸다.
"소양이가 여성운동 같은 것에 관심을 가지면 좋을 텐데. 자기가 직접 당하니까 그런 의식은 있거든요. 그런데 갠 지구력이 없어요. 환경 탓인가. 벼락부자 할머니를 우습게 여기고 부모에게 반항하며 부르조아적 이데올로기를 거부하지만 그것뿐이에요. 주어진 것을 쉽게 누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타성에 젖든 면이 있어요."
부르조아적 이데올로기라니, 처음 듣는 용어였으나 머리를 치는 것이 있었다. 일기에 적힌 대로 소양이가 집을 싫어하는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인가. 우리 집을 지배하고 있는 생활철학, 명주의 표현을 빌면 그것이 부르조아적 이데올로기였다. 명주가 말을 계속했다.
"소양인 현실을 보지 못하는 측면이 있지만 늘 갈등해요. 표출은 없지만 변화의 의지는 가졌어요. 그러나 과연 어떤 비전을 가졌는지, 육체가 정신에 기력을 줄 수 있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소양인 자기파괴로 나가고 있어요. 대안이 없으니까요. 난 늘 그 점을 비판하죠."
"너희들은 지나치게 똑똑하구나."
나는 명주의 말을 반박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하고 싶은 말도 있었다. 물질적으로 소외된 자는 중시하면서 정신적으로 소외된 자는 외면하느냐고.
명주는 내 속을 꿰뚫어보듯 소양인 아웃사이더예요,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어떤 관계에서도 늘 거리를 두고 바라봐요, 할 전 나도 인정했다. 희중과의 관계에서도 소양은 결코 뛰어들지 않았다. 나는 그제야 명주에게 희중이란 남자친구를 아느냐 물었다. 그것이 내가 명주를 만난 중요한 목적이었다,
명주는 소양에게 남자친구 얘기를 들은 적이 한번도 없었다면서 희중이를 안다면 어쩌실려구요? 반문까지 했다.
"글쎄, 답답하니까 그러지. 경옥이는 알던데---"
“그럴 거예요. 소양인 늘 걔랑 붙어 다니니까요. 내 체질엔 안 맞지만."
경멸이 담긴 어조였다. 그래, 알았어. 내가 머뭇거리며 얘기를 끝내려는데 명주가 다급히 말을 이었다.
“언니, 소양이가 탈선한 여고생도 아니고 주변사람들 만나면 뭘 해요. 소양이와 얘기가 되면 그걸로 충분해요."
명주는 친구 때문에 이상해질 만큼 소양이가 바보는 아니다, 사람 분석을 얼마나 잘 하는데요, 하고 덧붙였다.
그것은 나도 수긍하는 점이었다. 당돌하긴 했지만 명주 말도 틀리 진 않았다. 희중을 만난다 하더라도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소양이 이틀간 외박하고 집에 들어왔을 때도 아버지의 목청이 온 집안을 울렸으니 그 즈음은 소양이 때문에 늘 집안이 시끄러웠던 셈이다.
이날 아버지는 속이 끓는지 위스키를 마시며 소양을 기다렸다. 소양이도 술 냄새를 풍기며 열 한 시가 넘어 들어왔다. 가부장의 권위를 세우려는 아버지에게 소양은 여전히 묵비권으로 맞섰고 아버지를 더욱 화나게 만들었다.
“사람 말 못 알아들으면 짐승이지, 네까짓 것이 무슨 엘리트냐?"
"엘리트는 무슨 엘리트."
소양은 자조했으나 내가 보기에도 태도가 너무 불손했다. 드디어 욕이 나오고 다혈질인 아버지가 자리를 박차며 일어나 보조 의자가 쓰러졌다. 그것이 소양의 자리에 부딪쳐 소양이 풀썩 주저앉았고 보조의자가 구르는 것을 막으려고 한 발을 뻗치려던 아버지는 얼결에 소양의 다리를 걷어찼다. 내가 막을 사이도 없었다.
고의는 아니었지만 일이 이왕 벌어진지라 아버지는 기세 좋게 소리쳤다
"한번만 더 그 따위 짓 하면 집에 아예 들어오지 마라. 다리 몽뎅이 부러지기 전에."
술기운 때문인지 소양의 몸은 뜨겁고 무거웠다. 일으켜 세울 때도 내버려두라며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젓던 소양은 이층에 올라가자마자 내 손을 뿌리치고 제 방에 들어갔다.
이어 음악이 울렸다. 지하방에서 울려오던 것 같은 시끄러운 드럼 소리가 내가 차를 끓여 마실 동안 계속되더니 갑자기 모짜르트의 진혼곡이 들려왔다. 같은 레코드가 계속 돌아갔고 나도 잠을 이루지 못 했다. 무엇에 혼을 빼앗겼는지 화장실에 가면서 아래층까지 내려갔다.
소양의 방문은 아침 늦도록 까지 열리지 않았다. 열 한 시가 넘어서 내가 방문을 두드렸을 때도 아무 기척이 없었다. 밥 먹으라고 두세 번 소리치자 잠긴 목소리로 먹지 않겠다는 답만 짤막하게 했다.
그날 열 두 시경 소양을 찾은 전화가 걸려왔다. 마침 내가 받았는데 경옥의 목소리를 단번에 알아들었다. 나는 전화를 바꿔 줄 생각도 않고 소양이 언니라고 밝혔다. 경옥도 아는 체하며 인사해서 소양과 무슨 약속이 있느냐, 물었다.
"아뇨. 그저께 만났는걸요. 소양이가 수첩을 우리 찻집에 빠뜨리고 갔어요. 찾을 것 같아서 알려주려구요."
나는 전하겠다면서 쯔저께 재미있는 일 있었어? 태연히 떠보았다. 디스코 간 것 얘기해요? 경옥은 즉각 반응을 나타냈다.
"그런 것 같아서."
나는 더 이상 묻지 않고 소양이 아프다고 일러주며 전화를 끊었다. 샌드위치를 만들어 커피와 함께 들고 가서 나는 소양의 방문을 다시 두드렸다. 여전히 기척이 없었다. 나는 전화가 왔다고 말했다. 전화 안 받을 거지? 확인하려 하자 잠시 후 방문이 열렸다.
나는 쟁반을 든 채 소양을 밀다시피 하여 방으로 들어섰다. 경옥이 가 전화했다는 말부터 전하고 쟁반을 방바닥에 내려놓았다.
"언닌 왜 내 전속간호원처럼 그래."
소양은 입맛 쓴 표정으로 벽에 기대앉았다. 눈은 부었으나 표정엔 날이 서 있었다. 뜻밖에도 소양은 경옥을 만난 적이 있느냐, 왜 만났느냐 따지듯 물었다.
나는 당황했으나 커피 잔을 소양 앞으로 내밀었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니까. "
"경옥이가 내 생각을 알아?"
소양은 찻잔을 소리나게 놓고 코웃음을 쳤다. 나는 비위가 거슬려 어쨌든 너와 함께 다닌 친구니 무언가 비슷한 점이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경옥과 소양의 공통점이 있다면 감각적인 면일 것이자.
계속해서 나는 네가 요즘 너무 이상해졌다고 정색을 했다. 젊은애들이니까 친구들과 밤새 어울리고 싶을 거다, 그럴 전 좋은 말로 집에 연락하고 외박할 수도 있지 않느냐, 네 휴학을 알게 된 뒤부터 모두 네게 신경이 곤두서 있으니 아버지가 노여워하는 것도 이해해야 한다고 설득하려 했다.
소양은 어느새 일어서서 무엇을 찾는 것처럼 서성댔다. 내 말은 귓전으로 흘리고 있었다. 디스코장엘 갔어? 이틀씩이나? 나도 신경질적으로 불쑥 내뱉고 말았다.
방안을 왔다 갔다 하던 소양은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어딜 갔든 그게 무슨 문제냐고 소리쳤다. 그리고 전축 위에 놓인 레코드 알맹이를 책상 위에 연거푸 내리쳤다. 가만 레코드의 파편이 순식간에 바닥에 흩어졌고 나는 소양의 격렬한 반응에 얼이 빠져 서 있었다.
소양의 눈엔 푸른 불꽃이 튀고 있었다. 소양은 부르르 떨곤 두 손을 머리 속에 박고 훑어내렸다. 왼손에 묶여진 횐 손수건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손수건에 꽃잎 같은 검붉은 피가 배어 있었다. 나는 소양의 손을 잡으려 했으나 소양은 내게서 한 발 물러나 두 손을 재빨리 바지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손수건에 피가 묻어 있어."
나는 마치 소양이 모르고 있기나 한 듯 말했고 소양은 고집스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왜 그런 짓을 하지, 내 목소리가 떨렸다.
"나는 섬 같애. 쓸쓸한 파도만 부딪치는 섬 같애."
소양은 쓰러지듯 보료 위에 엎드려 얼굴을 파묻은 채 중얼거렸다. 창백한 맨발과 팔을 늘어뜨린 채 엎드려 있는 모습이 버림받은 여자 같았다. 나는 너를 돕고 싶다, 말하려 했으나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소양의 외로움이 전류처럼 닿아와 가슴이 아팠으나 내일 함께 시내에 나가 영화도 보고 초밥도 먹고 기분 전환하러 다니자고 어린애 달래듯 말했다. 소양이가 발 밑에 있는 하늘색 이불을 힘없이 밀어내는데 이불에 흩뿌려진 핏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소양과의 약속은 내가 어긴 셈이다. 다음날 뜻밖에도 영숙에게서 전화가 왔다. 음대 교학과에 조교로 근무하는 영숙은 내 대학원 진학을 적극 찬성한 대학 동창인데 이날이 기악과 과장 생일이니 함께 가서 인사하자고 했다.
대학 때 직접 배운 적도 없지만 그 동안 학교와 연락을 끊고 있었으므로 인사하기에는 좋은 기회였다. 내가 불청객이어서 주저하자 점심 초대를 받은 영숙은 각본까지 짜 주었다.
"네가 나를 만나러 학교에 들러서 우연히 함께 오게 된 것처럼 말하면 되잖아."
나는 영숙과 열한 시 사십 분에 신촌에 있는 대학 앞 다방에서 만나기로 했다. 교수 집이 그 부근이었다.
소양에겐 교수 집에서 나와서 전화할 작정이었다. 나는 이 말을 전해 달라고 어머니에게 부탁했다. 기다리라고 전하면서 함께 점심을 먹고 얘기를 나누어 보라고 권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소양이가 아버지에게 맞을 때도 방안에서 꼼짝하지 않았지만 어머니는 휴학 이후로 소양과 마주치기를 피해 온 터였다. 딸을 이해하려는 노력보다 자신의 지성이 딸 앞에서 하잘 것 없는 구세대의 상식으로 드러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더 컸다.
"오후에 시간 나면 소양이와 영화나 보러 가려구요,"
어머니는 배추를 다듬으며 덤덤하게 듣기만 했지만 소양의 방에 올라갈 수 있는 기회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을 싫어하진 않았다. 나는 소양의 손목 상처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 몹시 놀랐지만 아무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았다. 혼자 잊어버리면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모든 것이 스쳐 지나갈지도 모른다.
열 한 시가 채 못 되어 집을 나섰으므로 약속 장소엔 빨리 도착했다, 다방은 학교 앞 버스정류장에서 몇 걸음도 걷지 않는 행길에 위치했다. 학교 정문 맞은편 보도엔 방패들이 나란히 늘어서 있고 그 뒤에 복병처럼 전투 경찰들이 서 있었다. 학원가에선 데모가 연일 있었으므로 그것은 낯익은 풍경이었다.
찻집에 들어가 행길로 면한 창가 자리에 앉으려는데 갑자기 소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라디오나 텔레비젼 소리라고 생각하고 실내를 둘러보았으나 막 내 앞에 다가온 종업원이 엽차를 놓으며 혀를 찼다.
"또 최루탄, 지겨워."
창 밖을 내다보니 어깨동무를 한 학생들의 무리가 어느새 벌떼처럼 교문 앞에 밀려나와 있었다. 앞에 선 학생들은 교문 밖으로 뛰어나와 돌멩이를 던지고 복면을 한 학생들은 솜방망이를 한 팔로 휘둘러 전투 경찰을 향해 던지고 있었다.
물러가라 물러가라!
누군가의 선창으로 함성이 이어 들려왔다. 그것은 성난 물결이었고 숲의 아우성이었다. 돌멩이와 화염병이 계속 날다가고 대낮의 거리 여기저기 검붉은 불꽃이 타올랐다.
물러가라 물러가라 !
최루탄이 터지면서 희뿌연 연막 속에서 물결은 흩어졌으나 성난 목소리는 화염처럼 치솟았다. 돌멩이가 찻집 앞 보도에까지 굴러 떨어졌고 게시판이 거리 한가운데로 내물려 화형식을 당하고 있었다.
순간 피부가 조여지면서 불똥이 튀는 듯 따가웠다. 나는 손수건을 꺼내 눈을 가리고 울었다. 그것은 최루탄에 의해 쏟아지는 흰눈물만은 아니었다. 신념이라 할지라도 저들의 처절한 젊음이 가슴을 짓눌렀던 거다.
젊음들은 왜 외쳐야 하고 죄도 없이 한낮에 복면을 하고 무관심의 세계를 향해 불꽃을 던져야 하는가. 철벽 같은 체제의 문을 여린 주먹 뼈가 으스러지도록 두드리는가. 청춘의 술잔에 취하지 않고 왜 스스로 피 흘리려 하는가. 소양의 손에서 흩어지던 레코드의 파편들, 이불에 흩뿌려진 피, 피가 온 시야에 번져 내가 피눈물을 쏟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교수 집에 갔던 일은 내게 도움을 주었다. 교수는 나를 알아볼 뿐 아니라 청음이 뛰어났고 졸업 연주회 때 어려운 리스트의 헝가리안 광시곡을 친 것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대학원 진학에 필요한 준비 사항을 구체적으로 지시해 주면서 피아니스트가 되지 않더라도 음악을 버리지 않는다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나를 격려했다. 사실 나는 시간 강사나 하면서 여느 속물과 다를 바 없이 적당히 대우받으며 만족할 생각이었다. 교수를 만나고 나서 그런 자신에 매해 부끄러웠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이 다시 싹터 올랐다.
우리는 과장 집에서 두 시에 나왔다. 나는 영숙을 학교 앞까지 바래다주고 대학시절에 자주 갔던 이삭다방에 들렀다. 그때 미류나무가 보이는 이층 창가 자리를 좋아했는데 선실처럼 파랗게 칠해진 창도 그대로였다.
나는 소양을 이곳으로 불러내려 했다. 투명한 초록 공 같았던 내 이십 세와 한 인간에 의해 추악의 수렁을 본 그해 겨울 이야기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도 청춘이 고통스러웠다고, 어느 시인의 싯구처럼 모욕이 준비됐을 때 인생이 시작된다고.
내가 전화했을 때 소양은 이미 나가고 없었다. 내 말을 전했는지 확인하려 하자 어머니는 답할 필요도 없다는 듯, 소양이가 요새 누구 말 듣던? 한 마디만 했다. 떨떠름한 말투로 보아 소양과 얘기할 기회를 잡지 못한 듯했다. 나는 소양의 기분이 어떤 것같이 보였느냐고 물었다.
"할머니 교회 친구들이 와서 찬송가를 부르는데 옆에서 따라 부르고 아주 좋던데? 밥도 두 공기나 먹고, 다행이다 싶어 용돈도 줬다."
어머니의 말은 뜻밖이었다. 나는 의아해하며 전화를 끊었으나 순간 어머니가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밤에 제 손으로 손목을 벤 아이가 찬송가를 부르고 밥을 두 공기씩 먹다니. 아니 어제 거의 굶었으니 그럴 수도 있겠지. 아니면 소양의 극단적인 감정변화는 조울증세인가?
내가 희중과 만나기로 다시 마음먹은 것은 더 이상 방치해 둘 수 없을 정도로 소양이 위태로워 보였기 때문이다, 소양은 절벽 끝에 선 아이 같았고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할 듯했다. 지금 소양과 가장 자주 만나는 사람이 희중이라면 그것을 줄 수 있는 사람은 희중인지도 모
른다
희중의 집 전화번호는 학교를 통해 어렵지 않게 알아낼 수 있었다. 좀 이르다 싶었으나 나는 아홉 시가 넘은 시각에 희중에게 전화했다. 어떤 반응을 나타낼까 상상하려니 선뜻 전화할 용기'가 나지 않았지만 시도도 않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여자였다. 높고 낭낭한 목소리가 앳되었다, 희중을 찾자 누구냐고 물었고 나는 소양이네 집이라고 또박 말했다. 소양이요? 묻는 말투로 보아 소양이 이름을 처음 듣는 것 같았다. 곧 희중 오빠!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양이 같은 여동생이 있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다소 놓였다.
희중이 전화를 받자 먼저 나는 실례하겠다고 양해를 구한 뒤 소양이 집이라고 밝혔다. 집요? 희중은 목소리를 높였고 나는 소양의 큰 언니라고 알려주었다. 연이어, 소양이에게 희중씨 얘기를 들었다, 소양이와 가까운 친구 같아서 언제 한번 집에 초대해서 인사시키라는 말도 했노라 서두를 퍼낸 뒤 별일은 아니지만 소양이 문제로 조언을 좀 받았으면 해서 만나고 싶다, 군더더기 없이 용건을 말했다.
예상했던 대로 희중은 한동안 잠자코 있었다. 내가 왜 만나자고 하는지, 만날 필요가 있는 건지 궁리하는 것이 분명했다. 하긴 내가 그 입장이어도 궁금하고 의아할 것이다.
나는 회중을 안심시키느라 얼마 전 명주와 경옥씨란 친구들도 만났다, 소양이가 휴학한 것도 친구들만 알고 있었으니 친구들을 만나지 않을 수 없다고 그 필요성을 강조했다. 희중은 심리적 부담을 느꼈는지 그럼 약속을 정하라고 먼저 말했다.
내가 당장 만나기를 원했으므로 희중은 열 한 시로 시간을 정했다. 명주와 경옥을 만날 때완 달리 긴장이 되어서 집에서 나설 때까지 공연히 서성거렸다. 어제 밤늦게 들어온 소양은 제 방에서 기척도 내지 않았으나 나는 그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소양의 일기로 상상해서인지 나는 희중을 첫눈에 알아보았다. 희중이 정한 광화문 제과점에 들어섰을 때 왜소한 몸집의 안경 낀 젊은이가 앉아 있었다, 나는 그가 희중이 아닐 거라 단정하고 문을 향해 자리잡았는데 오 분 뒤 희중이 들어섰다.
팔꿈치와 어깨에 세므를 댄 스웨터에 짙은 회색 목도리를 어깨에 걸친 차림은 스케이트 타는 소년처럼 경쾌했다. 눈이 나쁜지 희중은 양미간을 모으고 실내를 휘둘러보았다. 눈매가 날카롭다, 생각하며 손을 들어올렸고 희중은 나를 바라보다 곧장 다가왔다.
"어떻게 절 알아보시네요."
희중은 웃을 듯 말 듯한 표정으로 말하고 자리에 앉아 종업원부터 불렀다. 목이 마르다며 사이다를 주문하길래 나도 같은 것으로 시켰다. 하나는 얼음 좀 넣어서, 희중은 돌아서려는 종업원에게 반말투로 했으나 그것이 자연스러웠다.
나는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까 생각하며 엽차만 홀짝 마셨다. 이 자리가 불편한 사람은 희중일 듯하지만 희중은 태가 소양이와 닮지 않았다는 등 허튼 소리 한 마디 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만만치 않았다.
먼저 나는, 내가 전화해서 놀라지 앉았느냐, 묻는 것으로 말문을 열었다. 대강 짐작했겠지만 소양이는 식구들과 상의도 없이 휴학했고 그 뒤로 우리들은 소양의 행동에 곤혹을 느끼고 있다, 이렇게 희중씨까지 만나는 것은 일종의 정보 수집이라고 요약해 말했다. 목도리를 두르고 얼음을 씹던 희중은 사실 저도 소양일 잘 모르겠어요, 침통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사귄 기간이 길지 않죠, 내가 아는 체하자 삼 년을 사귀었대도 마찬가질 거예요, 가만 머리를 내저었다.
희중은 잠시 후, 자기가 알고 있는 소양은 극단적이고 참을성이 없고 또 매사에 부정적이라는 것인데 데모하는 아이들 이상으로 과격해서 늘 혼자 데모하는 것 같다고 흥미 있게 표현했다.
희중은 그 예로 소양이가 길거리에서 담배 핀 얘기를 해주었다. 어느 날 다방에서 만나 담배를 피는데 남자 종업원이 와서 담배를 끄라고 시비를 한 모양이었다. 사장이 여자가 담배 피는 꼴을 못 본다고 그렇게 지시했다는 것이다.
"소양이는 사당을 부르라고 한참 실갱이를 하더니 지쳤는지 담배를 끄대요. 차는 돈주고 시킨 거니까 마시고 나왔죠. 그런데 나오자마자 다방 입구 층계에 앉아 담배를 꺼내 피우는 거예요. 바로 행길에서 노파같이."
소양은 다방 앞에서 희중과 다툰 듯했다. 종업원과 더 이상 싸우지 않은 것은 동행인 네가 동조나 하듯 가만있었기 때문이다, 같이 앉아 있는 남자도 설득시키지 못했다면 어떻게 종업원을 설득하겠느냐, 이렇게 자기에게 화풀이를 했다고 전말을 보고했다,
그래서요, 나는 다음 말을 재촉했다. 희중은 내가 무얼 듣고 싶어 하는지 알고 싶다는 듯 빤히 쳐다보았다.
"난 제발 길에선 피지 말라고 했지만 소양은 말을 듣지 않았어요. 오가는 사람들도 쳐다보고 난 소양의 고집을 꺾으려고 그냥 가버렸어요"
희중이 담배를 꺼내 피길래 나도 한 가치 뽑았다, 오랜만에 피워서 머리가 핑그르 도는 것 같았지만 표를 내지 않으려고 벽을 똑바로 보았다. 내가 못 마땅해 한다고 생각했는지 희중은 자기 입장을 말했다.
소양은 마치 여권주의자처럼 행동하지만 여기는 한국이고 유교 사회다, 요즘 여자들은 여성해방이니 우먼 리브니 떠들면서 남자들을 적으로 몰지만 남녀는 원초이며 모든 것의 종착점이라는 것이 희중의 지론이었다.
"이 지구는 황인종, 백인종, 흑인종이 어울려 이루는 것이 아니라 남자 여자가 이루어 가는 거예요.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소양인 그런 미명하에 여자들을 종속시키려 든다고 반박해요. 그게 자연이지 종속은 무슨 종속이에요."
희중은 또 언젠가 소양이가 술을 잔뜩 마시고 종로 길바닥에 드러누운 적도 있다고 일러주었다
"똑똑한 앤데 한번씩 걷잡을 수 없는 행동을 해요. 그것도 광기겠지만."
광기? 며칠 전 소양이가 레코드를 박살내던 것을 떠올리며 나는 무의식중 되뇌었고 희중은 생각에 잠긴 듯 눈길을 탁자에 떨구고 있었다. 소양을 잘 파악하고 있었으나 감싸줄 만큼 성숙하진 않았다. 그 점에선 소양이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우선 소양이 여권주의자처럼 행동한다는 희중의 말을 반박했다. 지금 세계는 공업화시대를 지나 정보화시대에 들어서고 있다. 노랫가사처럼 세계는 하나다, 이러한 때 여자가 담배를 피니 못 피니 하는 건 시대착오적이다, 여자를 자주적인 인격체로 생각한다면 그런 몰상식한 말은 할 수 없다, 종업원이 소양에게 담배를 끄라고 했을 때 희중씨가 가만있었던 것은 명백한 동조다, 나도 보수적이다 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소양이 말이 틀리진 않았다고 내 의견을 말했다.
또 아직 여자에게 비인격적인 많은 제재를 가하는 사회에 살면서 남녀가 세계를 이룬다 운운하는 것은 사탕발림에 지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나를 바라보기만 하던 희중은 별로 피우지도 않고 담배를 부벼 껐다. 물을 한 모금 마시곤, 처음 볼 전 소양이와 다르다 싶었는데 얘기하는 게 닮았네요, 하며 비죽 웃었다.
나는 희중에 대해서도 알고 싶었으므로 형제가 몇이냐, 대학생활에 갈등은 없느냐, 전공은 적성에 맞느냐, 무심한 듯 이것저것 물어 보았다.
희중의 집 형제는 우리 집과 반대로 아들 셋에 미대생 딸이 하나 있고 희중은 둘째였다. 학교생활에 대해선 내 필요에 의해 다니는 거니까 졸업 때까지 참는 거죠 뭐, 했다. 뚜렷한 목표가 있는 것 같아서 졸업 뒤엔 무엇을 하고 싶으냐 물었다. 희중은 대학 들어올 땐 교수가 될 생각이었으나 이젠 그럴 마음이 없고 보다 생산적으로 전공을 활용하겠노라 차분히 말했다.
"교수들 별거 아녜요. 죽은 학문 가지고 말 장사하는 거예요."
회중은 지난 여름 대학생 연수로 외국에 나간 얘기를 꺼내면서 대만 갔을 때 사온 향료로 인삼껌을 개발했노라, 의외의 말을 들려주었다. 모모한 큰 기업에 가져가서 사장과 직접 만났다는데 반응이 좋아서 곧 결정이 될 거라고 했다.
"뒤늦게 적성을 생각하면 뭘해요. 노력해야죠."
현실 감각이랄까, 희중에게서 그런 면을 보고 나는 속으로 놀랐다. 어딘지 비정한 -그것이 매력이 되는- 세련된 도련님 같았는데 자기 할 일을 다 하고 있다. 야무지구나 생각하면서 소양이를 떠올리니 이내 마음이 어두워졌다. 남들은 다 제 길을 찾고 닦고 있는데 소양은 언제까지 방황만 할 것인가, 명주는 제 이상을 위해 젊음을 바치지만 소양은 무엇을 위해 생피를 흘린단 말인가.
그제야 소양이가 대열에서 처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전에 아버지가 경쟁대열 운운했을 때 공박했었지만 나도 어느새 기성 세대가 되어 가고 있었다.
희중은 한 시간 가량 얘기하다가 점심을 먹자는 내 제의를 물리치고 학교로 갔다. 아침을 늦게 먹었다지만 나와 오래 앉아 있기를 피하는 듯했다.
이날 나는 소양이를 어떤 상대로 생각하느냐는 등의 불편한 질문은 하지 않았다. 소양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 주라는 노파심 섞인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희중씨도 여동생이 있으니 내 심정을 짐작할 거다, 반발하기 쉬우니 소양이에게 나와 만난 얘기만 하지 말아 달라 당부했을 뿐이다. 희중이 처음 만난 내게 그들의 '스포츠'에 대해 얘기할 리 없으니 보다 인간적인 대화는 뒷날 할 때가 있으리라.
어쨌든 내가 희중을 만난 것은 소양에게 해롭진 않은 듯했다. 희중은 수업을 끝내고 소양이와 만나기로 했노라 스스로 보고했는데 그날 밤 소양은 집에 빨리 들어왔다.
어머니는 이날 저녁 꽃게탕을 해놓고 사위 생각이 나는지 최 대리를 부르라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소양과 함께 만날 생각이었는데 집에서 막 저녁을 끝낼 때 환한 얼굴로 들어왔다.
소양은 최 대리에게 깍듯이 인사하고 우리가 거실에서 차를 마시는 동안 어머니와 함께 저녁을 먹고 설겆이까지 거들었다. 어머니와 제 몫의 차를 들고 와 최 대리와 아버지가 앉아 있는 소파에 함께 끼어 앉았다. 결혼을 일주일 앞두고 있으니 만큼 이날의 분위기는 화기에 넘쳤다.
최 대리 자신은 경영학을 전공하여 재미있는 은행원이 됐지만 결혼하면 마누라에게 하루 삼십 분이라도 피아노를 배우고 싶고, 예전부터 공부하자고 했던 불어도 시작해 볼까 한다고 건설적인 신혼생활을 설계했다.
불어 말이 나오자 최 대리는 영화 한 편을 보더라도 그렇고 국제화되는 시대에 외국어 하나만 해놓으면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다, 전공을 잘 택했으니 공부 열심히 하라고 소양에게 당부했다.
학교 얘기가 나오자 나는 뜨끔했다. 최 대리는 소양의 휴학을 모르고 있었다. 일부러 숨기려 한 것은 아니다. 소양에 대한 내 생각부터 정리하려다가 말할 시기를 놓쳤고 또 결혼을 앞두고 가족 문제를 노출시키고 싶지 않았다.
소양은 그것을 눈치채고 재치 있게 화제를 돌렸다. 책에서 받은 영향이지만 자신은 원래 현대의 최첨단기술인 유전공학을 하고 싶었다, 사막을 푸른 보리밭으로 만들 수 있으며 대장균으로 성장 호르몬을 만들 수 있게 된다면 기적의 현실화다, 윗부분은 보리요 뿌리는 콩과인 식물을 만들어 비료 없이 자라는 보리가 개발되면 식량 위기도 지구상에서 사라진다
자기로서는 이런 생산적인 것보다 떡갈나무에 아카시아 꽃이 피게 하여 산에 좋지 않다는 아카시아를 멸종시키되 그 등초롱 같은 꽃망울을 열리게 하고 싶다든가 한 나무에 철마다 다른 꽃이 피게 하는 등의 헛된 꿈을 갖고 있는데 양복을 고치듯 마음내키는 대로 생물의 유전자를 꿰어 맞추어 새로운 생물을 만든다는 것도 사실 무서운 일이다, 우수한 이상적 인간 창조의 영역을 넘어 인간개조에까지 치달릴 것이다, 복제 쥐와 인간과 쥐의 트기인 모자이크 동물까지도 만들어졌지만 그것은 자연에 대한 모독이다, 불손한 진보 사상, 그 과학의 오류가 눈에 보여서 자신은 인문계로 바꾸었다고 왜 논리적으로 설명했다.
"물론 오래 살고 싶고 병도 고치고 싶겠지만 사람은 의연하게 죽을 줄도 알아야 해요. 이것을 수긍하지 않으려는 과학에서 오히려 인간의 추한 면을 봐요. 더 극단적으로 말하면 자살할 줄도 알아야 해요"
총명한 여학생처럼 눈을 빛내며 자기 생각을 말하는 소양은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그저께 소양에게 발길질을 했던 아버지는 멀뚱히 소양을 바라보았고 최 대리는 낭만적인 과학도 지망생이었던 막내 처제에게 맥주 잔을 건네주었다.
소양은 또 과일을 보기 좋게 깎아 내어놓고 어머니를 흐뭇하게 했다. 깎은 사과를 붉은 껍질이 보이도록 담고 접시 한 옆에 야생 국화 두 송이를 꺾어 놓았다. 소양이가 아무 것도 못하는 줄 알았더니, 하고 어머니는 대견해 했지만 소양은 누구 딸인데요, 라고 맞받아 어머니를 숭배하는 아버지까지 행복하게 만들었다.
소양은 그 뒤 사흘간 집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설것이를 거들기도 했지만 밥 먹을 때 외엔 제 방에 틀어박혀 책을 보거나 음악을 들었다, 여느 때보다 평온하고 정상적이었다.
나는 밖에서 돌아오면 소양의 방문을 두드려 슈크림을 주거나, 사온 물건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걸 구실로 얘기할 기회를 잡으려 한 것인데 내가 옷을 사온 날 소양은 제 방에서 잡지책을 보고 있었다. 내 방에 굴러다니던 여성지였다.
"심심해서 이것 갖다 봐."
소양은 책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보고했다. 옆으로 다가가 들여다보니 세계의 대학이란 큰 활자가 눈에 들어왔다. 고풍스런 석조 건물을 배경으로 책을 한아름 든 젊은이들이 걸어나오고 길 옆의 잔디엔 몇 쌍의 남녀가 사랑을 나누고 있는 풍경이 담긴 화보 난이었다.
소양에게 다시 심적 변화가 온 것일까. 나는 문득 생각난 듯 오늘 우연히 친구 동생을 길에서 만났는데 내년 졸업 뒤에 유학 간다더라, 그 애도 불문과생이어서 네 생각을 했다고 즉흥적으로 말했다, 그렇게 말머리를 잡고 넌 가치관의 혼돈 때문에 휴학을 했지만 인생은 칼로 끊듯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물음은 끝없이 생긴다, 또 네가 휴학을 하건 안 하건 학교며 모든 것은 변함없다, 그럭 저적 일 년을 쉬었으니 이젠 복학할 준비를 해라, 다시 다니면 학교 생활이 역시 좋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고 그것이 아니면 졸업 뒤부터 정말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거다, 취직을 하든지 유학을 가든지 아니 히피가 되더라도 이런 사회에선 일단 대학졸업은 해야 된다고 설득전을 폈다.
실컷 듣고 나서 소양은 하긴 내게도 문제가 있겠지, 자조하는 투로 중얼거렸다. 그것이 내 말에 대한 답변인가. 복학을 못하겠다는 얘긴지 휴학을 한 자신을 빈정대는 말인지 알 수 없었다.
"자기에게 문제가 있는 걸 알면 문제를 풀 소지가 충분히 있는 데."
"남들이 그렇다니까 그런가 보다 하는 거야."
책장을 넘기며 소양은 내 농담을 덤덤히 받았다. 표정이 날카롭진 않아서 마음이 놓였다.
나는 이제 나 자신의 얘기를 했다.
"피아노 친답시고 공부와 담을 쌓아선지 내가 만약 지금 대학생이 된다면 온갖 지식을 흡수하는 데에 시간을 바치겠어. 도서관에 가봐, 저 많은 책들 속에 어떤 세계가 펼쳐질까. 그것들을 틴 읽기에도 우리 삶은 너무 짧아, 자기가 고통 속에 있을 전 그것이 생의 전부 같지만 눈을 크게 뜨면 무한한 세계가 있는 거야. 무한한 진실이. 그걸 알고 싶지 않니?"
나를 빤히 쳐다보던 소양은 무릎을 세워 두 팔로 감쌌다. 그 자세로 다소곳이 앉아 있다가 무표정하게 한 마디 던졌다.
"결국 그렇게 될 거야. 난 벌써 지쳤어."
나는 기쁨을 감추며 그제야 내가 사온 옷들을 펼쳐 보였다. 값이 싼 이태원에 가서 실내화까지 사왔는데 소양은 그 중 비행사복처럼 상의와 바지가 붙은 올리브색 작업복을 무척 마음에 들어했다. 나는 그것을 선뜻 주려 했으나 크기가 맞지 않다고 소양은 사양했다.
나는 다음날 똑같은 것을 까만 색으로 사다 주었다. 그것밖에 없어서 고를 수도 없었지만 다행히도 소양은 그 옷이 전사(戰士)복 같다고 몹시 흡족해 했다.
6
약혼 때도 실감하지 못했지만 결혼을 이틀 앞두고 함진아비가 오자 결혼이라는 것이 피부로 닿아 왔다.
이날 저녁 함진아비는 청사초롱을 앞세우고 탈을 쓰고 왔다. 한 걸음씩 뗄 때마다 돈 봉투로 실갱이를 하느라 법석을 떨었지만 대문 앞에서 이종 셋이 함진아비를 번쩍 올려들고 집으로 들어왔다.
현관에 놓인 떡시루 위에 함을 올려놓고 청색 홍색 천 하나를 꺼내야 할 차례가 되자 어머니는 최 대리부터 흘끗 보았다. 잡고 싶은 것 잡으세요. 최 대리는 상관없다는 듯 눈으로 재촉했다.
어머니라 잡은 것은 붉은 천이었다. 나는 조금도 서운하지 않았다. 딸보다 아들을 좋아할 이유가 없었다. 최 대리도 온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네 형제 중 차남인 최 대리는 약혼 뒤 내게 딸만 둘 낳으라고 했던 터였다. 함을 놓을 때도 두둑한 봉투를 받았던 함진아비는 격식대로 돈 봉투를 도로 내놓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기분 좋게 손을 내저었다. 옛날에 장모는 빨간 치마를 꺼내 놓고 곡이라도 할 듯했지만 나는 딸을 절대 싫어하지 않는다, 염려 마시라고 술까지 권하며 오히려 위로했다면서 사위 앞에서 서운한 내색조차 하지 않았다. 호박 단추가 달린 마고자를 차려입은 아버지가 이날처럼 듬직하게 느껴진 때가 없었다.
나는 이날 함을 펴볼 때에야 소양이가 집에 없는 것을 알았다. 할머니와 두 이모, 혜양이까지 화려한 옷감들을 구경하며 즐거워했는데 제 차례가 올 것을 염두에 둔 혜양은 노골적인 관심을 보이며 마음에 드는 천 이름까지 외었다.
소양은 내가 미장원에 간 사이에 나간 것이 틀림없다. 소란한 것이 싫었나 보다. 이모네와 최 대리 일행은 자정이 넘어 돌아가고 나는 내 방에 올라와서도 한 시가 넘도록 오두마니 앉아 있었다. 등나무 침대와 귤빛 스탠드, 금간 유리를 가리운 녹색 커튼, 바하와 가야금이 있는 내 방이 그 어느 때보다 정겨웠다. 안락했으며 세상으로부터 최대한 나를 지켜 준 쾌적한 공간이었다, 내가 가장 고통스러웠을 때도 상처를 잠재워 준 어머니 같은 품이었다.
소양은 밤새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며칠 집에 있더니 답답해서 나가 돌아다니나 보다. 이번엔 무심히 넘기려 했으나 다음날 나는 소양의 방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방은 어느 때보다 깨끗이 정리되어 있었으나 일기장을 서랍 맨 아래 칸에 넣어 두었다. 내가 하는 짓을 들킨 기분이 들었지만 결혼하면 더 이상 이런 기회도 없을 것이다. 날짜 기록이 없어서 지난번에 쓴 것 뒤부터 보았다.
나는 내가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 모른다. 특별히 갖고 싶은 것도 없다. 헛되고 부질없는 카드, 사틴 옷깃 같은 하얀 꽃양초, 체크무늬 순모 목도리, 거리의 상점을 기웃거리며 갖고 싶은 것들을 의무적으로 점찍어 보지만 영혼의 빈곤을 더 느낄 뿐.
사실은 시가 쓰고 싶은데 생각이 늘 머리에 맴돌다가 흩어진다. 산만하고 지속성이 없다. 정화되어야 한다. 그래서 선을 하듯 촛불을 지켜보기도 하고 어둠 속에 묻혀 있기도 하지만 내 속에서 나를 응시하는 또 하나의 '나'가 자꾸 반란을 일으킨다. 헛되다고, 무력하다고
이것은 아버지에게 맞은 날 쓴 것 같았다. 힘없이 날려 깼나하면 종이가 패이도록 또박또박 쓴 것도 있어서 그날 감 울리던 드럼소리처럼 불안정했다.
종이가 패일 듯 힘을 주어 쓴 곳은 시에 대한 말이 나오는 구절이다, 소양이 시를 쓰고 싶어한다는 것을 여태 몰랐지만 진작 알았더라면 어떤 방법으로든지 관심을 더 기울였을 텐데. 내가 무엇보다 보고 싶었던 것은 이틀간의 외박과 연관 있는 내용인데 다음에 쓴 일기로 그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편 같은 거리, 그러나 종로도 내겐 한정된 수족관처럼 권태롭다. 아이들은 그곳에다 묵은 울분과 비린내나는 감각의 찌꺼기를 열심히 토한다. 나는 그러는 척할 뿐이다.
어제 뜻밖에도 C를 만났다. 곱슬머리여서 못 알아봤는데 가발이었다. 그 가발을 벗겨 주려고, 아니 두 상처를 합쳐 보려고 함께 보냈다. 나중에야 '너, 내가 숨어 다니고 하니까 이러는 거지' 했지만 처음엔 경멸조였다
C : 넌 휴학하고 뭐해. 종로나 다니고.
나 : 넌 데모나 하지만 내가 뭘하겠어. (자신에 대한 비웃음)
C야, 나는 창녀도 마리아도 아니다. 단지 너를 품어 줌으로써 너희들에게 진 빛을 조금이나마 갚고 싶었을 뿐.
그러나 그것도 허튼 짓. 원초의 인간으로 돌아가 옷을 벗어 보아도 너의 벽, 나의 벽을 확인할 뿐.
그 뒤에 칸을 떼어 놓고 초록색 잉크로 쓴 일기는 절망에 가득 찬 단상으로 이어진 것이었다.
영혼의 절망을 확인해 주는 육체는 이렇게도 건너지 못할 강이야.
가장 헛되고 부질없고 썩어질 것이면서 나를 무겁게 하고 건너지 못하게 했으므로
그것이 내게 베풀고자 하는 작은 위안을 환각을 기만을 거부한다.
오늘은 모든 게 골치 아프고 메시꺼워
초 타는 냄새가 이상하게 메시꺼워
내가 비상할 수 없는 육체를 가진 때문이야
날개는 오히려 육체를 내려다보지 않았을 때 있었어
이것은 소양이 집에 있었던 나흘 동안 씌어진 일기였다. 소양의 얼굴이 지극히 평온해서 그날 손목에 상처를 낸 후 마음의 변화를 일으킨 줄 알았다.
일기를 보고 나자 가슴에 다시 먹구름이 끼는 듯했다. 어제의 외박이 심상치 않게 여겨졌고 불안했다.
우리가 저녁 식사를 끝낼 때까지도 소양은 돌아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이런 날 식구 하나라도 집에 없는 것이 언짢은 듯했지만 좋은 일을 앞두고 있었으니 만치 소양이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나는 여섯 시경에 목마로 전화해서 소양이가 그곳에 들르지 않았는지 물어 보았다. 경옥은 소양이가 수첩 가지러 오긴 올 거라고 하면서 오늘 여기 온다 그랬어요? 되물었다. 어제 소양이 외박한 것을 모르고 있음이 분명했다.
어머니는 손님 치를 일이며 신혼 여행 준비 등 이것저것 말했으나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공연히 시계만 보다가 아홉 시에 일단 내 방에 올라가서 살그머니 집을 나섰다.
종로는 여전히 젊은 무리들로 붐볐다. 온 거리에 진을 치고 있어서 지하도 입구를 나서면서부터 어깨를 부딪치며 걸어갔다. 거리 군데군데 늘어선 노점 앞에 둘러서서 젊은이들은 번데기와 고구마튀김을 먹기도 하고 솜사탕 장사 앞에 선 연인 한 쌍이 휜 솜사탕과 분홍 솜사탕을 각자 들고 꼬챙이를 돌리며 핥고 있었다.
골목으로 들어서자 나는 양편으로 늘어선 업소들을 기웃거렸다. 안이 다 들여다보이는 생맥주집 벽면엔 잠수기구들을 붙여 놓았다. 유리 속으로 실내를 살펴보는데 종업원이 다가와 들어가라고 권했다.
사장이 산호수중친목회 회장이니 스쿠버다이버에 관심이 많으면 안내하겠노라 친절하게 일러주었다. 나는 웃어 보이곤 걸음을 옮겼다.
저 잠수 기구들을 보면 소양이 좋아할텐데. 바다를 유난히 좋아하는 아이였다. 소양이 여고생이 되던 해 여름, 식구들 모두 한적한 동해 바닷가에 간 적이 있는데 그때 소양은 바다를 보며 영원한 젊음 같다고 했다. 선장이 되어 평생 바다에서 살아도 멋있을 거야, 꿈꾸기도 하며 해양 대학에 들어가서 수중 생물을 연구해도 좋겠다는 말을 했다. 그때만 해도 소양은 하고 싶은 것이 많은 꿈 많은 소녀였다. 꿈을 지 워 버릴 만큼 오 년이란 세월이 길었던가.
골목에 즐비한 업소들을 지나치며 무작정 걸어가다 보니 보신각까지 와 있었다. 보신각 철책 안의 어두운 잔디밭에 누군가 누워 있는 것이 얼핏 눈에 들어왔다. 술에 취해 쓰러져 있는 듯했다.
몇 발자국 옮기자 여자아이 둘이 철책에 기대 서서 가곡을 부르고 있었다. 이런 시각에 종로 한 모퉁이에 서서 노래를 부르다니. 앳띤 얼굴이 여고생 같아서 노래 잘 하는데요, 하고 한 마디 던졌다. 긴머리의 여자아이가 보조개를 지으며 웃었다.
"바람도 있고 노래를 할 수 있어서 이 거리가 좋아요. 솔직이 말해 종로 나오면 들뜨지만 기분이 우울할 전 풀어져요. 다 젊은 층만 있으니까 위안도 되고요."
나도 돌아보며 웃음 지었다. 하긴 노래 부를 곳이 없어서 여기까지 나오는 건 아니겠지, 젊음은 젊음끼리 모여 숲을 이루는 것이다. 숲 속에서 위안을 받고 혼란도 확인한다.
종로를 한 바퀴 휘돌고 나는 썸싱 앞으로 돌아왔다. 소양의 일기장에 적혀 있던 파랑새는 찾지 못했다. 파랑새나 썸싱에서 소양을 찾으리라는 기대는 전혀 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한 발자국이라도 가까이 가는 기분이 들었다.
썸싱으로 들어가려는데 화려한 상아빛 양복을 입은 젊은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누구를 기다리는지 양미간을 세우고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앞단추가 풀어진 와이셔츠 사이로 쇠코끼리 목걸이가 보였다. 나는 그것을 손으로 가리키며 앞으로 다가섰다.
"아, 언니."
"아프리카 추장같이 목걸이까지 걸고."
하르노가 먼저 아는 체를 했다, 미장원에 맛사지 하러? 미끈한 제 얼굴을 두들기는 시늉도 해서 나는 웃고 말았다. 누구를 기다리느냐고 별생각 없이 말했는데, 25시 못 봤어요? 내게 되물었다.
"지금 큰 건수가 있어서 빨리 나가야 하는데 데이트 자금이 없어서."
하르노는 초조한 얼굴로 골목 위쪽을 바라보았다. 얼마면 되는데? 내가 친구처럼 말하자 한 오천 원 하고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나는 지갑에서 오천 원 짜리 하나를 꺼내 주었다. 하르노가 돈을 주머니에 넣고 막 나서려는데 낯익은 얼굴이 다가왔다. 25시였다.
야 잠깐, 하르노는 내게 손을 올려든 25시를 몇 발자국 앞으로 데려가 무언가 잠시 설명했다. 25시가 고개를 끄덕이자 등을 밀곤 혼자 네거리 쪽으로 올라갔다.
"오늘 뭐 좋은 일 있나 보다. 다 빼입고 나왔네."
눈이 아프도록 선명한 빨간색 티셔츠를 눈으로 가리키자 25시가 팔을 걷어올렸다.
"오늘 금요일이잖아요. 일요일가지 풀로 건수 올려야죠. 하르노가 잘하면 오늘 우리 데이트 비용 벌 거예요. 여대생을 데려다 주면 십만 원 준대요."
썸싱 앞으로 디스코 바지를 입은 한 무리의 여자아이들이 지나갔다. 25시는 그들을 한눈으로 훑곤 하르노가 사라진 네거리를 목을 빼고 지켜보았다. 나는 호기심이 생겨서 무슨 일인지 캐물었다. 25시는 스스럼없이 상황을 설명했다.
썸싱에 어떤 나이 많은 사장이 와 있는데 젊은 여대생을 소개해 주면 소개비를 내겠다고 주인에게 제의했다, 주인이 그 일을 하르노에게 부탁했고 하르노는 십만 원을 받기로 하고 여자를 찾으러 나갔노라, 표정 한번 바꾸지 않고 또박또박 얘기했다.
“그런 애들 찾으면 있어요. 서로 돈 생기고 좋잖아요."
나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나는 하르노에게 늙은 남자에게 데려갈 여자 애를 낚으라고 돈을 대준 셈이었다.
25시는 어느새 고구마 튀김 리어카 앞으로 걸어가 그 앞에서 튀김을 먹는 한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정중하지 못한 반말로 한 시간 뒤 만나자고 되풀이했고 단발머리의 여자아이는 그 뻔뻔스러움이 싫지만은 않은 듯 빤히 쳐다보면서도 피식 웃었다.
여자아이와 내 눈치 마주쳤다. 나는 얼굴을 굳히고 고개를 가만 흔들었다. 여자아이는 내 뜻을 눈치채고 친구들과 다 같이 기다리겠노라 약빠르게 제안했다,
나는 일단 썸싱으로 들어갔다. 목이 말랐고 잠시 앉고 싶었다. 문을 밀고 들어서자 팝콘이 튀는 것 같은 전자음악이 머리를 어지럽게 했다. 지난번에 왔을 때보다 훨씬 소란했다.
아래층은 자리가 차서 이층으로 올라서는데 레코드실의 초록빛 불빛이 층계에 비쳤다. 퍼머 머리에 흰 터틀셔츠를 입은 남자가 막 층계 쪽을 향해 몸을 돌리더니 뺏뺏하게 팔을 뻗어 창가에 있는 레코드를 빼냈다. 매우 느린 기계적인 동작이 마치 로보트 같아서 나는 이 층에 올라갈 때까지 눈을 떼지 않았다.
이층은 그닥 번잡하지 않았다. 높지 않은 횐 레저의자가 놓여 있고 벽면 한쪽으로 스탠드 바까지 있어서 아늑해 보였다. 분위기가 달라서인지 젊은 회사원들도 있고 스탠드 바엔 이마를 올곧게 빗어 넘긴 사십대 남자가 앉아 있었다.
나는 레코드실이 마주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DJ는 판을 뽑고 갈아 끼우고 전화 받는 일 등 모든 것을 로보트 동작으로 하고 있었다. 목과 몸을 따로 놀리며 구십도 각도로 돌고, 팔을 직선으로 뻗어 판을 갈아 끼우는 단순 동작을 되풀이했다. 그 무표정은 내 감정까지 마비시켰는데 수족관 속의 로보트 같아서 기묘한 느낌을 주었다.
맥주 한 병을 시켜 놓고 정신없이 그것만 바라보고 있는데 횐 옷을 입은 하르노가 이층에 올라왔다. 하르노는 곧장 스탠드 바로 걸어가 머리를 이마 위로 빗어 넘긴 남자 앞으로 다가갔다. 나를 등지고 그 옆에 앉아 말을 주고받았고 손가락으로 바깥을 가리켰다.
중년 남자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무언가를 뺐다, 지갑이었고 하르노에게 돈을 주려는 것이 틀림없었다.
하르노가 자리를 뜨자 남자는 남은 맥주를 마시고 일어섰다. 나도 잔을 비우고 따라 일어났다. 초록색으로 물든 레코드실의 시계가 열 시 오십 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어쩌자는 생각은 없었다. 집에 갈 시간도 되었고 정말 그런 일이 이루어지는지 눈으로 보고 싶었다.
썸싱의 까만 유리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자 하르노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남자는 네거리 쪽으로 걸어 올라갔고 나는 그의 뒤를 따랐다. 남자는 주차장으로 가서 진주 빛 스텔라를 밖으로 운전했다.
넓은 길목으로 나서자 남자는 차 문을 열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주차장 맞은편 건물 입구에서 막 나온 하르노가 남자를 향해 손을 들었다. 스텔라가 그쪽으로 미끄러져 갔다.
하르노가 뒤에 선 여자를 돌아보곤 남자가 앉은 운전석 옆으로 걸어갔다, 나는 여자를 눈으로 찾았다. 여자는 두 사람이 속닥이는 동안 건물 입구에서 비켜서서 웃옷 주머니에 한 손을 찌른 채 스텔라를 쏘아보고 있었다.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붉은 루즈를 칠하고 회색 상의를 걸친 성장한 모습이었으나 짬은 머리의 여자는 소양이 분명했다. 눈앞이 아뜩하여 걸음을 떼지 못하고 서 있는데 하르노가 다시 소양에게 다가가 함께 차 앞으로 걸어갔다.
하르노가 차 문을 열었다. 소양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한번 젖히고 차 안으로 몸을 굽혔다. 나는 후들거리는 다리로 뛰어가 막 문을 닫으려는 하르노를 밀치고 소양의 팔을 잡아끌었다.
"너 왜 이러는 거야. 내려 어서."
소양은 몸을 옆으로 젖혀 저항하면서도 눈을 치뜬 채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목소리까지 떨렸으나 갑작스런 나의 출현에 현실감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빨리 내리라니깐 이 미친것아, 내가 옷이 미어질 정도로 팔을 잡아끌자 소양이 그제야 소리쳤다.
"내버려 둬. 빨리 가요, 차 문 닫아."
차가 움직였으나 나는 차 문을 놓지 않았다. 하르노는 내게 다가와 손으로 저지하려 했지만 나는 들고 있던 손 지갑으로 녀석의 얼굴을 후려쳤다. 나쁜 자식, 소리쳤고 길 가던 사람들이 차 주위로 모여들었다.
"내버려 두라니깐 바보야. "
소양은 울음 섞인 소리를 지르고 차에서 구르듯 밖으로 내렸다. 그리고 나와 하르노를 밀치고 행길 쪽으로 달아났다. 몸에 갑자기 맥이 풀리는 듯했으나 차 문을 힘껏 닫고 소양을 뒤따라 뛰어갔다. 소양은 상처 입은 새처럼 여기저기 부딪치며 필사적으로 내달렸다. 찢겨진 날개같이 펄럭이던 회색 옷은 인파 속에 묻혔고 큰 골목에서 행길로 나서려다가 나는 한 남자와 부딪쳤다. 미안하다고 말할 겨를도 없이 다시 행길로 나섰으나 새는 이미 날아가 찾을 수 없었다.
나는 인파에 부딪치며 실성한 사람처럼 거리를 헤맸다. 어디든 주저앉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전자오락실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늦은 시각이었으므로 오락실엔 자리가 많이 비어 있었다.
돌아온 이 소룡, 동물농장, 월남전쟁--,---나는 화면을 둘러보다 주춤했다. 화면의 원색과 총소리와 복잡한 여러 개의 조정단추들이 눈을 어지럽혔다. 나는 멀거니 서 있다가 초록의 밀림에서 줄타기를 하는 타잔 앞에 앉았다. 그것이 가장 단순해 보였다.
타잔을 조정하기도 쉽지 않았다. 화면을 지켜보며 타잔이 건너뛸 때마다 버튼을 눌렀으나 타잔은 번번이 줄을 놓쳐 떨어지고 말았다. 너무 집중하려고 신경 쓴 나머지 손을 너무 빨리 혹은 너무 늦게 움직였다. 내 옆에서 동물농장을 조정하는 젊은 아이는 평화로운 연두색
풀밭에서 번번이 동물들을 밧줄로 포획했다. 나의 타잔은 계속 숲 속의 낙오병이 되었고 나는 천 원 짜리로 바꾼 동전 열 개를 모두 기계에 바치고야 미련을 떨치고 일어섰다. 은행에 오 년간 근무했지만 나는 결코 컴퓨터 시대에 맞는 인간이 아니었다.
문을 닫은 업소도 많아서 골목은 아가처럼 번잡하지 않았다. 노점들은 거의 철폐했고 이층 야구장에선 아직 불빛이 훤하게 비쳤으나 두 사람만 번갈아 공을 치고 있을 뿐이었다. 공 부딪치는 소리가 공허하게 골목에 울렸고 여기저기서 성냥곽 같은 문을 밀고 나온 무리
들이 서둘러 발길을 돌리고 있었다.
전자오락실 옆에 세워져 있는 타이탄 트럭을 스쳐 가는데 시큼한 냄새가 났다. 차 안엔 드럼통이 몇 개 있고 청바지를 입은 젊은 남자 둘이서 통을 또 하나 트럭 뒤로 끌어올리고 있었다. 문 닫을 시간에 음식점에서 꿀꿀이죽을 수거해 가는 듯했다.
젊었을 때는 사랑도 했고 연애도 했지만 이제는 살림해야지,
몇 발자국 앞에서 대여섯 명의 젊은이들이 둘러서서 한 팔을 흔들며 노래부르고 셔터가 내려진 어둑한 건물 앞엔 두 젊은 아이가 각기 앉아 쓰레기가 널린 거리를 망연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누구를 기다리는 것 같진 않고 집에 갈 생각도 없는 듯했다. 저들도 소양이처럼 제 방을 갖지 못한 것일까.
나는 행길로 나서려다 다시 골목을 따라 올라갔다. 이제 소양을 찾기는 틀렸고 나는 내일 결혼할 신부지만 집으로 돌아갈 마음이 없었다. 중년남자의 차에 오르던 소양을 본 뒤 나를 받치고 있던 버팀목이 무너진 듯 의식이 휘청거렸고 가랑잎처럼 바람에 휩쓸려 가고 있었다. 충격 때문일까. 청춘의 짐을 덜기 위해 결혼을 택했지만 처녀 시절의 마지막 밤이라는 것이 이상하게 허탈감을 안겨 주었다.
어둡고 한산한 빌딩 골목을 지나자 갈림길이 나왔다. 광교 쪽으로 뻗은 골목엔 디스코장의 붉은 네온이 돌아가고 있었다. 디스코장 입구엔 짧든 치마를 입은 여자와 서너 명이 나방이처럼 불빛 아래 모여 있었고 어둑한 골목에서 바라보니 그 풍경이 다른 세계의 그림 같았다. 나는 그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음악소리가 가까이 울려왔다.
실내에 들어서자 귀청을 울리는 음악이 어둠 속에서 밀려왔다. 무대엔 춤추는 무리들로 가득 찼고 화장을 짙게 한 두 여자는 통로에서 춤을 추었다. 단발머리 여자는 더운지 스웨터를 엉덩이에 걸쳐 묶었다
안쪽에는 자리가 거의 차 있었고 열기로 숨이 막힐 지경이어서 나는 입구 쪽에 있는 긴 소파에 앉았다. 거의가 대학생 또래의 젊은 층이었다. 그들은 묵은 찌꺼기를 떨어내려는 듯 온몸을 흔들었고, 사이키가 번쩍일 때마다 일그러지고 황홀한 표정들이 데드마스크처럼 허공에 떠올랐다, 짧은 머리에 눈이 퀭한 남자아이는 십대로 보였는데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DJ의 반주에 함께 소리치며 지렛대 같은 몸을 떨었다,
시끄러운 음악이 블루스 곡으로 바뀌었다. 맥주를 한 잔 비우고 안주를 집어먹는데 보라 빛으로 물든 횐 와이셔츠차림의 남자가 다가와 춤을 추자고 했다. 나는 누구를 기다린다고 말하며 거절했다. 목적없이 여기에 왔지만 춤을 추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더구나 모르는 남자와.
무심히 내 옆자리로 고개를 돌리는데 어려 보이는 남자 아이가 혼자 앉아 있었다. 머리는 길렀으나 해군복 같은 형의 옷을 입었고 탁자엔 사이다가 놓여 있었다. 남자 아이는 무대를 바라보다가 그것이 지루하면 사이다를 찔끔 마시고 이것을 반복했다.
나는 호기심을 느꼈다. 둘 다 동행이 없었고 그가 나보다 어리다는 확신이 서서 용기를 내어 그 자리로 다가갔다.
"여기 좀 앉아도 돼?"
내 입에서 스스럼없이 반말이 나와서 나도 놀랐다, 넋을 잃고 무대를 바라보던 남자아이는 얼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내 자리의 맥주를 들고 와 마주앉았다. 맥주 줄까? 남자아이가 나를 빤히 보면서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맥주 잔을 건네 주었다.
"나도 혼자 왔어. 심심해서 얘기하고 싶어. 나이 알아맞혀 볼까?"
스무 살. 내 말에 남자아이가 고개를 저으며 스물 둘이에요, 했다.
"난 스물 일곱. "
"스물 다섯인 줄 알았는데."
남자아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틈을 주지 않고 언제 여기 왔어? 물었다.
"열 시 넘어서 집에서 몰래 빠져 나왔어요. 엄마는 지금 내가 집에서 자고 있는 줄 알 텐데,"
"왜 몰래 나왔어."
이번에는 호락 대답을 하지 않고 왜 그런 걸 물어요, 반문했다. 글쎄 그냥. 나도 할 말이 없었다. 남자아이가 다시 고슴도치처럼 경계심을 세웠다.
"나한테 원하는 게 뭐예요?"
"없어. 동생 생각이 나서 얘기하고 싶은 것뿐이야."
남자아이는 더 이상 경계하지 않고 여자를 사귀러 여기 왔다고 순진하게 털어놓았다.
소양이보다 나이는 많았으나 조숙한 소양에 비해 그는 소년 같았다. 꾸밈없이 여자 얘기를 하는 것이 흥미 있어서 너는 어떤 형을 좋아하느냐, 지적해 보라고 했다. 남자아이는 한참 무대를 바라보다가 자주색 스웨터를 입은 여자를 손으로 가리켰다. 짧은 머리에 체구도 그리 크지 않은 깜찍한 여자였다. 별로 움직임이 없는 춤이면서 교태가 넘쳐서 여간내기가 아닐 듯했다. 나는 고개를 설레 저었다.
"이런 데 와서 여자를 사귈 수 있을까?"
"YMCA같은 데 가면 여자 만날 수 있죠?"
남자아이가 생각을 바꾼 듯했다. 나는 그쪽에 여러 가지 모임도 많고 여자친구를 사귀어도 훨씬 바람직할 벗 같다고 맞장구쳤다. 내 말에 귀를 기울이다가 남자아이는 갑자기, 그것도 귀찮아요, 하며 머리를 흔들었다.
맥주를 겨우 한 병 비우고 우리는 한 시가 넘어 그곳에서 나왔다. 내가 시계를 보며 일어서자 남자아이도 약속이나 한 듯 함께 따라나섰다. 디스코의 네온만 돌아갈 뿐 골목은 어두웠고 토사물 같은 쓰레기만 여기저기 쌓여 있었다.
빌딩의 숲 사이로 가을바람이 불어와 휴지조각들이 쓸려 다녔다. 그것이 발길에 닿으면 남자아이는 공연히 툭툭 찼고 텅 빈 골목엔 두 사람의 긴 그림자만 막대기처럼 걸어갔다.
"종로엔 자주 와?"
내 목소리가 허공에 울린다고 생각하는데 깡통 굴러가는 소리가 연이어 울렸다.
"쓸쓸할 때는요. 그래도 디스코 장에 자꾸 가든 건 안 좋죠?"
"안 좋다기보다,,,,,,"
"보통 전 혼자 있어요. 조용한 게 좋아요."
그는 이번엔 휴지조각을 발로 찼다. 나는 동생이 있느냐고 물었다. 막내일 거라고 추측했는데 남동생이 하나 있었다.
"형은 군에 갔어요. 형이 가끔씩 그리워요. 그럴 전 편지를 쓰지만 돌아오면 잘해 주고 싶어요. "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결혼할 때가 되니까 나도 그래."
신호등을 건너는데 우리 앞으로 횐 옷을 입은 남자가 앞질러 갔다. 좀 전에 나온 디스코 장에서 본 남자였는데 직업 무용수였다. 끝내고 돌아가는지 큰 가방을 옆구리에 끼고 있었다. 남자아이는 무용수를 알아보고 행복하시겠어요, 말을 건넸다. 왜요? 무용수는 퍼머 머리를 손으로 젖히며 뒤돌아보았다.
"매일 춤을 추시잖아요."
우리는 목적 없이 3가 쪽으로 계속 걸어갔다. 파리한 수은등 아래 쓰레기만 널려진 거리는 버림받은 처녀지 같았다. 이따금씩 차들이 질주해 갔으나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어디선가 선들한 바람이 불어 왔다.
"쓰레기 아저씨가 고통스럽겠네. "
남자아이는 발에 닿이는 비닐 끈 뭉치를 발로 차면서 혼잣말을 했다. 응, 너무 더러워. 내가 동의하자 고향 얘기를 했다.
"청주는 깨끗해요. 그렇지만 법이 많아서 별루예요. 양반들은 따지잖아요. 배움이 많아요. 알면 좋죠 뭐."
"뭘 하고 싶어? 하고 싶은 게 있을 게 아냐."
"아무 생각도 없어요. 돈 벌고 싶은 마음도 없어요. 나는 목적이 없어요."
남자아이는 길을 가다 말고 벽보 앞에 멈춰 섰다. (꿀맛)이란 연극 포스터를 한참 들여다보았다.
종이 한 장이 바람에 날려 내 앞으로 굴러왔다. 카바레 선전 인쇄물이었다. 이번엔 그것을 주워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순수한 호기심이었다.
세운상가 아래에 포장마차 세 개가 늘어서 있었다. 저기 앉아볼까? 남자아이는 순순히 따라와 우리는 가운데 포장마차에 자리잡았다. 한 군데는 음식물을 거두어 철수할 차비를 하고 있었고 또 한 군데엔 술 취한 남자가 장사에게 시비를 걸고 있었다. 내용도 없는 횡설수설이었으나 욕설은 선명하게 들려왔다. 남자아이는 앞에 놓인 소주를 홀짝 마시곤 따분한 표정을 지었다
"난 마음이 약해서 저런 게 싫어요."
"싫지만 어디든 있는걸."
술 취한 남자를 외면하려고 고개를 숙이고 있더니 갑자기 화제를 바꾸었다.
"연애할 때 밤새 이렇게 다니고 좋았겠네요,"
"난 그렇게 못했어. 안 피곤해?"
시계를 보니 두 시 반이었다. 나는 피로가 몰려올 것 같아서 더 이상 술에 입을 대지 않았으나 남자아이는 조금도 지척보이지 않았다.
"사흘간 꼬박 잠을 안 자본 적도 있어요. 경험하고 싶어서요."
앞 주머니에 달린 뱃지가 그제야 눈에 띄었다, 쿠사 뱃지였다. 문득 서클 가입 권고문이 게시판에 빼곡이 붙었던 대학신입생 시절이 떠올랐고 그 신선함이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나는 불에 막 익힌 대합을 먹기 좋도록 떼어 그 앞으로 놓았다.
"온종일 어떻게 시간을 보내, 집에서 뭘 해 ?"
"라디오를 잘 들어요. 텔레비는 안 봐도 라디오는 재미있어요. 목소리의 주인공을 상상하는 게 재미있어요. 또 그날 있었던 일을 며칠간 생각하기도 해요. 어떤 건 꼭 꿈 같아요. 지금같이. 오늘 좋은 추억을 남겨야지."
묘한 아이였다. 세상을 유리 저편에서 바라보며 살아가는 동화 속의 소년 같았다. 결벽한 세계에 묻혀 미지의 꿈만 꾸는 듯했고 지식이나 관념에도 오염되지 않아서 그 또래의 대학생들과도 전혀 달랐다.
우리는 새벽까지 거리를 헤맸다. 비디오를 상영하는 다방에서 중국 무술영화도 보고 우주선 같은 DJ실이 있는 다방에서 커피를 마시고 발길 닿는 대로 쏘다녔다. 거리엔 가로등에 기대 잠자는 사람도 있었고 디스코 장에서 나온 무리들은 포장마차에 앉아 순두부를 먹기도 했다. 우리는 할 일 없이 다니며 이런 풍경들을 신기한 듯 관찰했다.
지하도엔 서너 무리가 진을 치고 있었는데 대학생 여섯 명이 한쪽 구석에서 포커를 치고 있었다. 나는 옆으로 스쳐가다 왜 집에 가지 않느냐, 뒤돌아 서서 물었다. 차비가 없어요. 그들 중 하나가 대답하면서 포커를 할 줄 알면 함께 하자고 오라는 손짓을 했다,
지하도를 나오니 버스가 드문드문 다니고 있었다. 거리는 아직 어두웠고 쥐가 쓰레기통에서 고개를 내밀다 하수구로 사라졌다. 버스정류장 앞으로 걸어가는데 내 앞에서 버스가 멎었다. 버스에서 책가방을 든 여학생과 소년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렸다. 정우가 이따금씩 새벽에 독서실에 가는 것이 생각났고 그러자 갑자기 꿈에서 깬 듯했다.
거리 맞은편 등이 켜진 골목에서 청소부가 빗질을 하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정우는 다른 아이들처럼 새벽부터 공부하러 나선다. 그 아이도 몇 년 뒤엔 지하도에서 포커를 할지 모른다. 소양은 십 년 뒤 저 청소부처럼 자식을 위해 빗질을 하지 않을까.
옆에서 라디오 소리가 들려 흘끗 보니 남자아이가 트랜지스터를 꺼내 귀에 대고 있었다. 막 다섯 시를 알리면서 음악이 울려나왔다.
"시작할 땐 언제나 밝은 음악이 나와요. "
그의 표정도 음악처럼 밝았다. 긴장이 풀리는지 갑자기 눈꺼풀이 무거워지면서 내 포근한 잠자리가 그리웠다. 이젠 집에 돌아가야 했다. 나는 눈을 부비곤 웃음 지었다.
"여태 같이 있어 주어서 고마워,"
"누나 같은 사람이 많으면 좋겠어요. 또 만날 수 있을까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없으리라. 순수는 꿈으로만 간직해야 한다. 내 침묵의 뜻을 헤아렸는지 남자아이는 라디오를 주머니에 넣었다
마침 택시 한 대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손을 들어 보이고 차도로 뛰어갔다. 허전한 눈길을 등으로 느꼈으나 뒤돌아 보지 않고 차에 올랐다. 차는 이내 떠났고 나는 시트에 몸을 기대곤 눈을 감았다. 꿈이 깨어진 얼굴로 어두운 새벽 거리에 서 있는 남자
아이의 모습이 선연히 떠올랐다. 그것은 다치지 않은 나의 원형이었다. 잃어버린 나의 한 부분이었다. 나는 혼잣말을 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너의 순수는 유력한가 무력한가.
7
신랑 최 베드로와 신부 이 미양은 누구의 강박도 없이 완전한 자유 의사로 서로 혼인하려는 것입니까?
녜, 그렇습니다.
두 분은 결혼 생활을 통해서 일생 서로 사랑하며 서로 존경하겠습니까?
녜, 그렇게 하겠습니다.
두 분은 하느님께서 맡겨 주실 자녀들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교회의 법을 따라 그들을 올바로 교육하겠습니까?
녜, 그렇게 하겠습니다.
두 분이 교회 안에서 고백한 이 합의를 주께서 친히 견고케 하시고 풍부히 강복하실 것입니다. 천주께서 맺으신 것을 사람이 풀지 못할 것입니다.
제단 위엔 여섯 개의 촛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주위로 은은한 백합 향기가 감돌고 나는 신부 앞에서 경건하게 선서했다. 아름답고 엄숙한 혼배 미사였다. 나는 신자가 아니었으나 남편이 믿는 카톨릭의 법을 따라 기꺼이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하느님이란 말은 늘 낯설지만 우주의 법칙, 질서인 어떤 절대는 믿고 있으므로 그 절대 앞에 선서한 것이다. 순리에 따르면서,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성하거나 병들거나 일생 그를 사랑하고 신의를 지키겠다고.
우리는 신부의 축성을 받은 반지를 서로 교환했다. 정말 그것은 성스러운 약속이었다. 사랑과 고통과 고독과 책임을 함께 나준다는 약속, 그 세월 속에서 한 가정을 창조한다는 약속,
밀떡과 포도주를 함께 들며 나는 피와 살로 그와 맺어질 것을 맹세했고 식이 끝나자 실크 넥타이와 드레스를 벗어 던진 우리는 꽃만 꽃은 채 청바지 차림으로 봉고 차에 올랐다. 내가 트럭을 좋아하는 것을 기억하는 최 대리가 트럭 대신 봉고를 빌어 신부의 여행을 즐겁게 해 주려 했다.
우리는 동해안 쪽으로 달렸다. 초보자가 서툴게 몰고 가는 승용차를 추월선이 아닌 데서 추월하기도 하고 백 킬로의 속도로 신나게 달렸으나 앞차가 경찰에 걸려서 우리 차는 운 좋게 지나갔다. 서울서 출발할 때도 신호등의 파란 불이 빨간 불로 바뀐 것을 모르고 지나가기도 했지만 이날 한번도 교통위반으로 걸리지 않았다.
아무런 장애 없이, 이어 청록의 투명한 바다가 시야에 펼쳐졌고 땅거미가 질 무렵에 설악산에 여장을 풀었다. 저녁을 먹은 뒤엔 나의 제안으로 왕복 한 시간 정도 걸리는 암자에까지 다녀왔다. 캄캄한 길을 전지로 비추며 갔지만 나는 몇 번이나 돌부리에 채여 넘어질 뻔했고 최 대리는 내일 아침이면 쉽게 올 수 있을 텐데, 하면서도 내 손을 잡아 주었다. 장려하게 우뚝 솟은 설악의 봉우리 아래 숨듯 자리잡고 있는 암자의 풍경은 신비한 여인네의 모습 같았다. 어둠 속에 버선코처럼 살짝 치켜진 기와건축이며 풍경소리가 나를 매혹했는데 젊은 스님은 하룻밤 쉬어 가도 좋다고 뜻밖의 제안을 했다.
신혼부부가 한밤에 절을 찾은 것이 대견했는지, 마침 혼자 절을 지키고 있어서 보시하려 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숙소를 정했노라 사양했다. 나도 아쉬워했지만 머물면 숙소죠, 하곤 젊은 승은 더 이상 권하지 않았다.
우리가 짐을 푼 호텔로 돌아오며 나는 최 대리에게 불쑥 말했다. 당신은 내 집이라고, 나그네는 아무 곳에나 머물지만 나는 집으로 돌아온다고. 최 대리는 말없이 으스러져라 한 팔로 내 어깨를 감쌌다.
여행 나홀 째 날에 폭우가 쏟아진 것을 빼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우리는 처음에 빗속의 여행을 오히려 낭만적으로 생각했으나 비는 창을 가릴 정도로 심하게 쏟아졌다. 바다도 보이지 않았고 거리를 기웃거릴 수도 없었다. 점심을 차 안에서 해결하고 삼척 쪽으로 내려가다가 우리는 오후 늦게 서울로 방향을 돌렸다.
최 대리는 돌아오는 길에 휴게소에서 신문부터 샀다. 두 사람 다 묵계나 맺은 듯 서울을 떠나면서 신문은 물론 라디오 뉴스 한번 듣지 않았는데 신문을 펼치니 연기가 치솟는 대학건물 사진이 한눈에 들어왔다.
(최루탄, 물세례,,,진압 작전 90분)이란 큰 제목 아래 -부상자 70여 명, 2명 분신 자살 기도 중태) 작은 활자가 박혀 있었다. 사진엔 옥상에서 농성중인 학생들 모습포 보였는데 11면에 (구호, 점거, 최루가스로 지샌 캠퍼스 3일)이란 제목으로 연합 시위 현장 일지가 실린 것으로도 큰 사건임을 알 수 있었다.
"이십이 개 대학의 이천여 명 학생이 참여했어. 우리가 떠난 사이에 서울에 큰 농성이 벌어졌구나."
최 대리가 양미간을 모으며 혼잣말을 했다. 나는 그제야 신혼의 꿈에서 깨어나 신문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우리가 서울을 떠난 시각에 전국 각 대학 좌경파 학생들이 국제 대학에 모여 (전국 반 외세 반 독재 학생 투쟁 연합 발대식)을 가졌다. 학생들은 친미 군사 독재 타도하고 민족 정부 수립하자, 미제국주의 몰아내자, 언론 출판 결사의 자유 쟁취하자, 노동3권 쟁취하자는 구호를 외치며 레이건과 나카소네 허수아비 화형식을 갖고 시위에 들어갔다.
삼천여 명의 경찰들이 교내로 진입하자 경찰에 밀린 학생들은 대학 건물을 점거, 바리케이드를 치고 밤을 새운 모양인데 다음날 저녁부터 완전 귀가를 보장하면 농성을 풀겠다고 협상을 요구했으나 경찰은 학교 안의 모든 전화와 공중 전화, 수도물을 끊고 강경히 맞섰다.
관할 경찰서장은 경찰 철수를 요청하는 학교측에게 시위 참가 학생들 가운데 중요 수배자들이 많고 구호나 주장들이 과격한 점이 많아 진압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는데 이날 아침 경찰은 헬기를 동원 최루탄을 터뜨리고 고가사다리를 동원 농성장소인 건물로 진입했다.
굶주리고 지친 학생들은 투신방지용 매트리스를 까는 전경대원들을 향해 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극렬히 저항했고 경찰에 수배중인 두 학생은 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투신하여 중태에 빠졌다.
기사로 사건 앞뒤를 대강 헤아리고 나는 가만 눈을 감았다. 시대의 극으로 달려가는 젊음들. 금요일 밤, 종로거리를 미친 듯 헤집고 다니던 아이들과, 구름처럼 몰려들어 구호를 외치며 허수아비 화형식을 하고 옥상이 점거되자 횐 천을 흔들며 나온 운동권 학생들. 두 학생의 분신자살 기도는 나를 전율시켰고 불타는 매트리스가 물결처럼 눈앞에 일렁였다.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최 대리도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모두가 점차 과격해지니 걱정스러워요."
"당국이 강경한 대처를 하지 않았더라면 그런 희생을 막을 수 있었을 걸. 사회의 모든 현상이 국가와 연관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편 타당한 논리지만 국가가 폭력 행위를 스스로 한다면 그 사회엔 난폭한 심성이 팽배하게 돼요. 이건 어느 사회심리학자의 사회 통계 분석인데 국가가 인명을 천시하면 사회 전체 분위기가 덩달아 인명을 천시하는 현상이 일어난다는 거죠. "
최 대리도 체제를 비판하면서 학생들의 과격시위엔 회의를 나타냈다. 이런 상황이 오게 된 데는 물론 위정자의 책임이 크지만 아직 배우는 입장에 있는 학생들이 극단적인 이데올로기를 설정해 혁명가가 되려는 건 위험한 생각이라고 기성세대면 누구나 하는 소리를 하곤
지난해 있었던 대학생들의 미문화원 점거 사건을 꺼냈다,
그때 학생들은 사흘을 당당히 단식투쟁하다가 일부 학생들이 탈진하자 설탕과 초콜렛을 사도록 주선해달라고 미문화원 측에 요청했는데 전쟁고아들처럼 초콜렛을 먹어야겠다니 무슨 철부지 짓이냐고 핀잔했다. 아무리 급진적인 이데올로기를 앞세워 행동해도 학생들은 그 연륜만큼 어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 최 대리의 결론이었다. 그 말을 수긍하면서도 지칠 줄 모르고 체제에 도전하는 용기 앞에 부끄러움을 느낀 나는 그들을 옹호했다.
"일단 기성세대 잘못이에요. 현실과 타협하는 기성인들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저들이 맨손으로 나서는 거예요. 전부 옳다고는 할 수 없지만 학생들 아니면 누가 데모하겠어요. 젊기 때문에 과격하지만 이상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도 있는 거예요."
"이상 때문에 분신자살까지 해야 되요? 그것이 과연 자기 완성의 끝인가?"
"그러면 우리 소시민들의 자기 완성이란 건 무어죠? 부장이 되고 전무이사로 승진하는 것? 자식을 낳아 대를 잇는 것? 나같이 편하게 살아온 사람이나 체제에 길들여져 살아가는 기성인들은 학생들에게 그런 말을 알 자격이 없어요."
나도 놀랄 정도로 목소리가 높아졌고 최 대리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신혼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이라 시국 문제로 신부와 신경을 곤두세우고 싶지 않은지도 모르지만 그 침묵은 동의이기도 했다. 내 의사를 존중하는 그의 마음을 느끼자 그가 좋은 반려자라는 것을 새삼 생각했다. 나는 운전대를 잡고 있는 최 대리의 오른손에 내 손을 얹으며
"당신은 누구를 사랑할 자격은 있어요"
격려하듯 말했다.
서울엔 아홉 시가 넘어 도착했다. 집중호우였는지 집에 들어설 땐 거의 비가 그쳤다. 연락을 미리 하지 않아서 어머니는 깜짝 놀랐다. 원래 우리는 내일 도착하기로 되어 있었다.
아무튼 어머니는 우리를 반기며 국을 새로 끓이고 반찬 준비를 뺐다. 어디를 다녔는지, 아버지와 번갈아 가며 얘기를 시키다가 내 피로한 낯을 보고 들어온 선물을 펴보라고 일러주었다.
리본으로 묶여진 상자들이 거실 한구석에 쌓여 있었다. 결혼식 날 사람들과 인사도 제대로 못했으므로 나는 선물을 펴보며 그날 온 친구들을 확인했다. 국민학교 동창에서부터 은행 동료까지 왜 많은 이름이 보였다. 근래엔 잘 만나지 못했지만 음대 동창으로 나와 가장 친한 현순은 제 손으로 뜬 피아노 덮개를 선물했다. 그 물거품 같은 횐 레이스 덮개는 나를 황홀하게 했는데 또 하나 나를 놀라게 한 선물은 소양이가 준 것이었다.
소양이가 내게 특별히 선물하리라곤 생각지도 않았지만 고호 화집을 준 것도 뜻밖이었다. 대학노트의 세 배는 되는 불란서판 대형 화집이었다. 앞장을 펼치니 빨간 매직펜으로 쓴 글씨가 선연히 들어왔다.
'언니의 안주를 기뻐하는 소양이가'
함께 들여다보던 어머니가 나무랐다.
"얘는 왜 방정맞게 빨간 글씨로 써."
화집엔 뺏뺏하고 뚝뚝 부러지는 선으로 소묘된 초기 작품에서부터 소용돌이와 같은 열에 들뜬 곡선이 화면을 지배하픈 말년 작품까지 수록돼 있었다. 하나하나 분할된 붓자국이 얼굴 주위에 방사돼 있는 자화상이나 초록색 천장에 붉은 램프 불이 매달려 있는 (밤 카페의 내부) 등 그림들을 보는 동안 공연히 가슴이 조였다. 적갈색 마룻바닥에 노란 침대가 놓여 있는 그림 아래엔 ‘내 영혼의 방'이란 글씨가 흘린 듯 씌어 있었는데 소양의 낙서였다. 일시에도 적혀 있었던 -아를르의 침실-이었다.
귀에 붕대를 두르고 파이프를 물고 있는 자화상이 나오자 최 대리는 아, 이 사람 자기 귀 짜른 화가 아니요, 했다. 나는 더 이상 보지 않고 화집을 덮었다,
"소양이 요즘도 나갔어요?"
대학생들의 연합 시위 기사도 보아서 물은 것인데 어머니는 최 대리가 있어서 머뭇거렸다. 이번 여행 때 그에게 소양이 얘기를 대강 했던 터여서 오늘도 나갔어요? 하고 나는 재차 물었다. 어머니도 덤덤히 말했다.
"어제 친구 집에 간다고 나가선 새벽에 들어왔어. 오늘 낮엔 무슨 생각에선지 영화를 보러 가재서 함께 보고 왔다."
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소양이가 어머니에게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다니. 함께 본 영화는 예전에 벌써 상영했던 -해바라기-란 영화로 나도 본 것이었다. 어머니는 소양이가 영화를 보면서 몹시 울었다고 최 대리를 보며 힘없이 웃었다. 울어요? 나는 큰소리로 되물었다
소피아 로렌이 전쟁터에서 실종된 남편 사진을 들고 소련 역 광장을 헤맬 때나 남편이 재혼하여 사는 집에 들어가 침실에 놓인 두 개의 베개를 보고 눈물을 쏟는 장면, 이태리로 다지 그녀를 찾아온 옛 남편에게 요람에 누워 있는 아이를 보여주며 이해하죠? 말하는 장면 등에서는 나도 콧등이 시큰했다. 사랑의 집념과 그것을 보상받지 못하는 삶, 혹은 운명을 보여준 영화인데 그런 애정물을 보고 소양이가 몹시 울었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어머니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렇게 울 영화도 아니던데 그러데, "
내 방에 올라갔을 때 마루 불도 켜 있지 않고 이층은 괴괴할 정도로 고요했다. 할머니가 기도원에 가서 방이 빈데다가 다른 날 같으면 새벽 두세 시까지 불이 켜 있는 혜양이 방에도 불이 꺼져 있었다
감기 기운이 있어서 일찍 자겠다고 올라갔다더니 소양이도 자나 보다. 소양의 방에서도 아무 소리 들리지 않았다.
소양이가 자지 않으면 선물을 잘 받았다고 말해야지, 생각하며 욕실로 들어서는데 빨래가 눈에 들어왔다. 소양의 횐 잠옷과 속옷이었다. 백기처럼 널려 있는 선명한 흰빛이 청결해 보였고 안도감을 주었다. 나는 그것을 눈여겨보다가 소양이 깰가봐 발소리를 죽이고 내 방으로 들어왔다.
내가 새벽 잠을 깬 것은 지옥 꿈 때문이다. 동굴 속 같은 낯선 곳을 헤매 다녔다. 큰 구덩이 같은 못에선 김이 오르고 이상한 사람들이 군데군데 앉아 제 상처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머리가 헐벗긴 사람 곁을 지나다가 안스러워서 얼굴을 들여다보려는데 그가 내 얼굴에 선인
장을 집어던졌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내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피가 흐른다고 생각했으나 끈적거리는 것은 없었다. 나는 그제야 꿈꾼 것을 알았지만 끔찍한 장면이 머릿속에서 이내 지워지지 않았다. 어둠 속에 누워 있는 남편 얼굴을 한참 응시하니 윤곽이 어슴푸레 보였고 나는 손을 뻗어 그의 뺨에 갖다대었다.
그제야 안도의 숨을 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 쪽으로 다가가 커튼을 들치니 하늘에 짙은 잉크 빛이 물들어 있었다. 별이 드문드문 빛났고 차 소리도 희미하게 들렸다,
화장실에 가려고 방을 나서는데 비릿한 내음이 끼쳐 왔다.
나는 마루의 창을 흘끗 보았다. 숲의 밤 공기가 밀려왔나 했으나 창은 닫혀 있었다. 수목 내음 같았으나 어지러움을 느낄 정도로 비릿했다,
화장실에서 나서는 순간 내 머릿속으로 번개 같은 것이 스쳐갔다. 나를 어지럽게 한 그것은 피 냄새였다. 얼굴 근육이 굳는 듯했으나 눈꺼풀이 떨렸다. 나는 소양의 방 앞으로 한 발 한 발걸음을 옮겼다.
소양아 소양아? 문을 두들겼으나 아무 기척이 없었다. 나는 몇 번 더 부르다가 내 방으로 가서 가방을 꺼내 왔다. 소양의 방 열쇠는 내 아파트 열쇠와 함께 묶여 있었다. 불을 켠 마루에서 그것을 찾아 소양의 방문을 떨리는 손으로 열었다.
끼쳐 오는 피비린내에 현기증을 느꼈으나 벽을 더듬어 스위치를 올렸다. 순간 방안이 렌즈 속처럼 확대되어 눈에 들어왔고 나는 휘청거렸다.
방바닥은 피로 온통 붉게 물들어 있었다. 검은 옷을 입은 소양이가 방바닥에 창백한 얼굴로 누워 있었다. 얼마 전 내가 사다준 검은 옷은 피로 온통 젖어 검붉었고 두 손은 펴져 있었다. 입도 약간 벌려 있었으나 피로 얼룩진 장판 위에 누워 있는 소양의 그 모습은 붉은 지도 위에 잠들어 있는 혁명가 같았다
입을 틀어막은 채 뒷걸음질을 치는데 발에 무언가 채였다, 돌아다보니 피가 배인 노트였다. 일기장이었다. 나는 그것을 집어들고 내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소양이를 살려 달라고 소리치며 남편 품에 얼굴을 묻고 울음을 터뜨렸다.
여기는 꿈이 아니야
날개는 없고 몸뚱이만 있는 더러운 땅이야
새가 아니고 나비가 아니고 땅을 전신으로 문지르고 다니는 뱀이
야 날개는 환각이야
깨어지면 아프고 괴롭고 추한 몸뚱이야
오늘은 본질적으로 가장 절망한 날이었어
모든 게 나랑은 관계없는 저들의 생명체였어
더 이상 세상에 소속되기를 거부해
그것만이 의지, 진정한 나의 의지야.
내 눈물이 일기장에 떨어져 피 배인 종이 위에 묽게 번졌다. 어머니가 소리 죽여 우는 소리가 뒷자리에서 간간이 들려왔다. 눈동자가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고 혜양은 벌써 체념의 빛을 띠었지만 고무줄로 묶은 소양의 왼팔을 쥐고 울음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여태 자식 잘 키우려고 말아왔는데 이건 무슨 일이야. 처음에 소리부터 쳤던 아버지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뒤돌아보곤 주먹으로 눈물을 훔쳤다. 어제 빗속의 여행길을 신나게 달렸던 봉고를 운전하며 최 대리도 무겁게 침묵했고 그들 사이에 끼어 앉은 나는 가슴이 터질 듯했다.
바보같이 세상 밖에서 자신을 찾으려 하다니, 네가 적당히 타협하기만 한다면 땅에 온몸을 문지르고 다니며 피 흘리지 않아도 좋을 텐데, 청춘은 쇠사슬이 아니라 날개일 텐데. 소양은 끝내 안식의 방을 찾지 못했다. 숲에도 방이 없었다. 숲에는 혼란과 미로가 있을 뿐. 하늘엔 어느새 희프스름한 여명이 드리워 있었다. 비 그친 뒤의 맑고 차가운 새벽 공기가 가슴을 찔렀고 문 닫힌 거리도 서서히 깨어나고 있었다. 언덕길에서 보니 멀리서 붉은 창 같은 것이 나무들 사이로 솟아 화톳불처럼 가물거리고 있었다. 얼핏 도깨비불처럼 보이기도 하고 새벽의 여명 속에 힘을 잃고 스러져 가는 악마의 흔 같기도 했다. 뚫어질 듯 허공을 바라보니 그것은 교회의 네온 십자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