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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단편소설2

1. 높새의 집

by 자한형 2022.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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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새의 집 윤후명

 

1

 

병이 다 낫지는 않았지만 이제 나가 놀아도 괜찮다는 말을 들은 나는 기웃거리며 세화네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열병을 앓는 동안 세상은 너무나 달라져 있었다. 대낮인데도 조용하다 못해 괴괴했다. 회복기에 들어서면서 어느 정도 낌새를 느끼고는 있었으나 그토록 괴괴한 정적이 마을을 온통 짓누르고 있으리라고는 미처 생각할 수 없었었다. 게다가 그 정적은 평화로운 것이라기보다 무엇인가 은밀히 숨기고 있는 그런 정적이었다. 며칠 누워 있다가 나와서인지 다리가 허청거렸다. 현란한 날빛에 현기증이 났다.

나는 세화네 집으로 통하는 판장의 개구멍까지 가서 그 사이로 세화네 집을 바라보았다. 내가 열병을 앓기 전부터 항상 정적에 싸여 있던 그 집은 더 한층 짙은 정적에 싸여 있었다. 거뭇거뭇 썩어 가는 합각머리 부분에서는 금방이라도 시퍼런 얼굴을 한 무시무시한 나티란 놈이 뛰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 집에 어린 세화가 살고 있다고, 살아 숨쉬고 있다고 믿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어디 가믄 안 돼. 무서운 사람들이 있다가 냉큼 잡아가."

어머니는 항아리를 수채에 기울여 감자 썩힌 웃물을 따라 내버리면서 말했다. 아마 감잣가루를 앙금을 밭여 떡이라도 할 모양이었다.

나는 혹시 세화 할머니가 나타나면 어쩌나 하고 가슴을 죄면서 개구멍을 빠져나갔다. 판장을 뜯어 내놓은 개구멍이라고는 하지만 어른들도 드나드는 곳이니만큼 문짝이 없달 뿐 정식 쪽문과 다를 것이 없었다. 세화 할머니는 나타나지 않는 것이 어쩌면 당연했다. 그 날도 하염없이 바느질을 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귀가 먹은 세화 할머니는 눈곱이 잔뜩 낀 눈을 하고 언제나 바느질감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내가 태어날 때만 해도 삼할미 노릇을 잘 해낼 정도로 정정했다는 노친네가 어느새 노망이 들어 젊어서의 습관대로 그렇게 한다는

것이었다. 세화 할머니가 바깥에 나타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바느질감이 떨어졌을 때를 제외하고는 아예 없다는 편이 옳았다. 세화 할머니가 머리를 주억거리며 모습을 나타내면 어머니는 말없이 헌옷가지를 꺼내 그 마른 나뭇가지 같은 손에 들려주었다. 귀가 먹었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할 필요가 없었다. 떨어진 헌옷가지를 받아든 세화 할머니는 히쭉 웃으며 다시 집 속으로 몸을 숨겼다. 그런 때의 세화 할머니는 마귀할멈이었다. 이러한 연유로 해서 세화는 바늘귀에 실을 꿰는 데는 명수였다. 어머니도 그 일은 세화를 시켰다. 세화 할머니는 그것이 해어진 데건 단춧구멍이건 벌어진 곳이라 하면 모두 꿰맸으므로 바느질이 끝났을 때는 어디에 쓰이는 것인지 도저히 알 수 없게끔 되어 버렸다.

"세화야! 세화야! "

나는 깨어진 유리문에 입을 올려붙이고 소리쳐 불렀다. 소리 때문에 세화 할머니가 나타날 염려는 없었다. 미닫이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곧 뿌옇게 먼지로 더덕이가 진 유리문에 세화의 모습이 서렸다.

"이제 다 나았니?"

"."

내 대답에 세화는 작은 토기새끼처럼 코를 중긋하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모처럼 만에 만난 우리는 집 바깥으로 나가 보기 위해 다시 판장의 개구멍을 지나왔다. 세화네 집의 대문은 이미 오래 전에 열리지 않게 굳게 못질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어머니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삐걱 하는 대문 소리가 의외로 커서 우리는 함께 놀랐다. 오랜만에 듣는 토리였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대문을 닫고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신작로 쪽으로 향했다.

신작로에는 개미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았다. 여느 때 같으면 산지(山地)로부터 아낙네들이 어른의 팔뚝만한 찰옥수수를 함지 가득 이고 내려와 줄을 지어야 할 무렵이었다. 예전에는 누구나 그 찰옥수수를 뜯으며 계절을 확인하곤 했기 때문에, 아무도 없이 빨래처럼 하얗게 바래 가고 있는 그 길에는 계절조차 오래 전부터 정지되어 있는 것 같았다.

"딴 애들은 다들 어딜 갔을까?"

"다들 시골에 가서 숨어 있대. 난리가 끝나면 올 거래."

나는 어른스럽게 대답해 주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득실거린다 해도 별반 달라질 것은 없었다. 우리들과 친한 또래는 예전에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들은 항상 둘이서만 어울려 놀았다. 아이들이 우우 몰려 바닷가로 거북손이나 따개비나 홍합 따위를 긁으러 갈 때도 우리는 이끼 낀 집 뒤꼍에서 둘이서만 놀기를 더 즐겼다.

", 아프니깐 참 심심하더라, "

나는 때아닌 홍역을 앓게 되어 솜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으면서, 세화가 나를 찾는 소리를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었었다. 세화는 우리 집의 툇마루에 바짝 붙어서 행여나 나를 볼 수 있을세라 갸웃거리곤 했었다. 아무리 발진(發疹)으로 온몸에 열꽃이 덮여 있다 해도 대답은 충

분히 할 수 있었건만, 나는 웬일인지 더욱 숨을 죽이고 아무도 보아주는 사람도 없는데 처량한 시늉을 하곤 했었다. 그럴 때면 어머니가 부엌이나 버디에 있다가 세화를 돌려보냈다.

아직 며칠 더 있어야 나을 것 같다. 왕새우를 구해 먹였어야 꽃이 빨리 돋았을 텐데, 지금 왕새우가 어딨니? 세화는 혼자 놀기에 지쳤구나. 할머니는 늘 여전하시지?"

나는 세화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안 보고도 알 수 있었다. 그런 다음 어머니는 '' 하고 주먹밥을 주어 돌려보내는 것이 예사다. 세화는 주로 우리 집에서 밥을 먹었으므로 감자가 듬성듬성한 그 주먹밥은 세화 할머니를 위한 것이었다. '' 하고 주는 것이 주먹밥이 아 니라면 그것은 물에 적신 무명 따위였다. 세화 어머니가 세화 아버지와 어린 세화를 놔둔 채 어디론가 가 버리고 난 뒤 세화 아버지마저 홧김에 광산으로 가 버려서 아무도 세화네를 돌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 가서 할머니 눈곱 좀 닦아드려라. 세화가 착하기두 하지."

언젠가 들은 어른들의 말에 의하면 세화 아버지는 옥계나 예미,함백 등지를 떠돌면서 가끔 생각난 듯 우리 집으로 세화네 생활비를 부쳐온다고 했다.

세화는 항상 개구멍으로 해서 방공호의 지붕 격인 불룩한 흙더미를 넘어서 우리 집 뜰에 내려섰다. 세화네 집은 큰 산을 등지고 앉아 있었고 우리 집은 그와 반대로 큰 산을 바라보고 앉아 있는 형세여서, 세화가 판장을 지나 방공호 위를 지날 때 큰 산을 넘어 부는 높새바람이 일면 세화의 긴 머리카락이 얼굴을 가려 버렸다. 높새바람은 항상 세화를 괴롭히려고 불어 올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세화는 양미간을 찌부리며 머리를 뒤로 넘기려고 애썼다.

우리는 누가 먼저 말하지도 않았지만 시장으로 향했다. 전에 우리가 시장으로 갔던 것은 오로지 구운 꽁치를 사 먹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시장바닥에 풍로를 늘어놓고 석쇠 위에 꽁치나 양미리를 구워 파는 아줌마들과도 얼굴을 익히고 있었다. 한결같이 몸뻬를 입은 그 아줌마들은 또한 한결같이 눈썹들이 고르지를 못했다. 오랜 세월 동안 불티가 튀어와 붙었던 대가였다.

"꽁치 먹구 싶지?"

내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세화는 입맛부터 다셨다. 꽁치나 양미리는 일찍부터 산아랫지방의 간식으로 확고한 자리를 굳히고 있었다.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즐겨 먹었다. 한번은 뼈는 물론 대가리까지 깡그리 먹어 버리는 어른을 보고 우리는 그런 어른을 아버지로 두

지 않은 것이 참으로 다행이라고 여겼던 적도 있었다.

우리는 시장으로 가는 두 갈래의 길 중에 어느 쪽으로 갈 것인가를 망설였다. 두 길이 모두 우리에게는 고통스러운 길이었다. 왼쪽으로 난 길은 전봇대 위에서 감전돼 죽은 사람이 아직도 ', 뜨거. , 뜨거' 하면서 지나는 사람마다 노려본다던 길이었고, 오른쪽으로 난 길은 미친 여자가 항시 활개치며 휘젓고 오르내리던 길이었다. 보통 때도 우리는 그곳에 이르면 누군가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그 사람이 어느 쪽으로 가든 그 뒤를 졸랑졸랑 따라가곤 했었다. 그러나 길에는 우리들밖에 없었으므로 누군가가 지나가기를 기다린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어느 쪽으로 가지?"

"글쎄,"

세화는 ', 뜨거. , 뜨거' 하는 소리가 들려 올까봐서인지 왼 쪽으로 흘금흘금 눈길을 던졌다. 세화가 은연중 가리키고 있는 쪽은 귀신 쪽이 아니라 미친 여자 쪽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피난을 갔거나 집 속에 깊숙이 숨어 버린 터에 미친 여자라고 그곳을 지키고 있지는

않으리라는 기대가 작용한 때문인지도 몰랐다.

"이쪽으로 와. "

나는 나직하게 말했다. 우리는 손을 맞잡고 골목길을 더듬듯이 걸어갔다. 집들은 대문을 굳게 잠그고 있었는데, 거의가 밖으로부터 X자로 막아져 있었다. 세화는 나보다도 더 열심히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비어 있는 마을을 우리는 지나는 참이었다. 비어 있는 마을은 알 수 없는 암호와 같았다. 담벼락에 그려진 채 희미하게 지워져 가는 낙서도 암호였다. 분명히 아이의 얼굴이었다고 기억되는 것이 꼬마 요귀(妖鬼)의 얼굴로 보였다. 꼬마 요귀는 재미있다는 듯이 담벼락에 달라붙어 유희하고 있었다. 나는 세화마저 그런 환상을 가질까봐 입을 꼭 다물고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손에 땀이 배어 미끈미끈했다.

갑자기 꼬마 요귀가 슬픈 표정슬 지었다고 생각되었다. '너희들 어디 가는 거니? 우리 집은 여기야. 여기 담벼락에 나는 혼자 살고 있어. 언제까지나 여기서 살아야 한단다. 여기서 나가려면 나 대신 누군가를 여기서 살게 해야 돼, 너희들 중에 누가 좀 살아 줄래.' 어디서 들은 이야기였을까. 아이들을 잔뜩 모아 놓고 요지경이나 환등 따위를 보여 주며 돈을 받는 그 곰보 아저씨에게 들은 이야기였을까. 나는 요귀를 향해 안 된다는 뜻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걸음을 빨리 했다. 미친 여자가 오르내리던 그 길을 다 벗어났을 때

세화가 안심한 듯이 입을 열었다.

"없어."

나는 그때까지 요귀의 환상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세화가 무슨 말을 하는지 채 알 수 없었다.

"뭐가?"

"미친 여자 말야."

우리는 서로 다른 환상을 붙안고 손에 땀을 쥐었던 것이다. 미친 여자가 그 길 밖으로 벗어나는 익은 평소에는 없었으므로 우리는 미친 여자도 난리라는 것에는 별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으응, 정말 그렇구나. "

우리가 비록 소리 죽여서나마 견딜 수 있는 것이 무서워 도망을 쳤을진댄 난리가 끝나고 다시 어슬렁거린다고 해도 무서워할 필요는 없을 것이었다.

우리는 길 한쪽으로 붙어서 걸어갔다. 술래잡기를 할 때처럼 도사린 채였다.

"왜 이렇게 아무도 없을까?

세화가 정적을 깨며 물었다.

"글쎄, 다들 멀리 가서 숨어 버렸다니깐. 엄마 말이, 혹시 사람이 있음 우리가 숨어야 된대."

"?"

"잡아간대. 그러니까 미친 여자도 숨어 버렸잖어."

"참 그렇구나. "

세화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나는 세화가 고즈너기 눈을 내리깔며 생각에 잠기는 것을 보았다. 큰 산의 한 봉우리 능선을 닮은 세화의 오똑한 콧마루에 외로운 기색이 어리는 것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내가 홍역으로 꼼짝을 못해 피난을 갈 수 업었던 것 과는 달리 세화는 그 아버지가 데리러 오지 않아 피난을 갈 수 없었음을 우리는 서로 잘 알고 있었다. 우리는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바닥에서 모래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바스락, 바스락, 바스락. 그 또한 빈 마을에 있는 꼬마 요귀의 장난이었다.

소방서의 망루 밑을 지나자 상가(商街)가 나타났다. 상가라야 잡화점 몇 개와 철물점 하나, 운동구점 하나, 그리고 문방구점 하나가 전부였다. 세화는 늘 잡화점의 진열장에 놓여 주인을 기다리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인형을 탐내었다. 나는 그것이 아직도 그 속에 놓인 채 주인을 기다리고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만약 굳게 잠긴 덧문 안에 그것이 있다면 모두가 떠난 다음 아무도 데려가 줄 주인이 없다는 사실에 몹시 마음이 상해 있을 게 분명했다.

"아직도 인형이 있을까? "

내가 물었을 때 세화는 깜짝 놀라는 시늉을 했다. 세화 역시 그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인형은 우리처럼 걷지는 못하니깐 그냥 있겠지 뭐."

없다는 결론이 나올까봐 지레 겁을 집어먹고 있는 말투였다.

"가게 주인이 모두 싣구 갔을 거야."

"아냐!"

강력하고 단호한 말에 나는 놀랐다, 그렇다고 해서 쉽게 세화의 말에 동조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니가 어떻게 아니 ? 그게 얼마나 비싼 건데. 눕히면 눈을 감는 걸 너두 봤지?"

언제든지 눕히기만 하면 고이 눈을 감고 잠이 들며, 일으켜 세우면 눈을 반짝반짝 뜨고 쳐다보는 신기한 아이. 세화는 비싸다는 말에 기가 죽었는지 잡화점의 덧문만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한참 만에야 세화는 나를 향해서 고개를 돌렸다.

"아빠가 사다 준다구 약속했어. 아무리 비싸두 우리 아빤 돈을 아주 많이 벌어온댔으니까 뭐, 우리 아빤 금 덩어리를 땅에서 캐낸다. 정말이야. 그리구 우리 아빤 나랑 약속한 건 뭐든지 다 지켜."

세화는 빠르게 주워섬겼다. 세화의 아버지가 땅에서 금 덩어리를 캔다는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들어 알고 있었다. 세화의 아버지가 금 덩어리를 산더미같이 가지고 와서 세화에게 갖가지 장난감을 다 사주면 나와는 놀려고 하지 않을까봐 나는 오래 전부터 걱정이었던 것이다.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던 무렵, 나는 세화 할머니를 꿈에 보았던 것을 잊을 수 없었다. 세화 할머니는 번쩍번쩍하는 금 옷을 입고 금 누더기를 무릎에 올려놓은 채 금실을 꿴 금 바늘로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그와 같이 꿈속에서의 세화네 집은 모든 것이 온통 금 투성이였다. 곰보아저씨가 들려 준 이야기에 나오는 어느 임금처럼 손만 닿으면 모든 게 금으로 화하는 모양이었다. 세화 할머니는 눈꼽도 금 눈꼽이 끼어 있었다.

"느이 아빠가 금 덩어리를 많이 가져와도 나랑 놀 거지?"

나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세화가 나를 빤히 쳐다본다고 느꼈으나 나는 길바닥에 눈길을 준 채 대답만 기다렸다.

"왜 그러니 ?"

갑자기 이상한 걸 다 묻는다는 투였다.

"금 덩어리가 많아져두 나랑 놀 거냐니깐!"

나는 볼이 부어 말했다.

"그게 무슨 상관이야. 그럼 내가 금 덩어리랑 논단 말야?"

"그럼 안 논단 말야?"

"사람이 어떻게 금 덩어리랑 노니? 바보 같으니라구."

세화도 볼이 부어 말했다. 바보라는 말에 화가 난 나는 세화를 밀쳐 버리며 내쏘았다.

"내가 바보라면 넌 병신이다, 병신!"

"바보!"

"벼엉신!"

"바보! 천치!"

우리는 무엇 때문인지도 자세히 모른 채 상대방을 향해 열심히 소리쳤다, 그러면서 나는 세화를 결정적으로 약올려 줄 수 있는 말이 무엇인지 궁리를 거듭했다. 나는 씩씩거리며 세화를 노려보았다.

"병신아, 느이 엄마는 도망쳤대!"

세화는 잠시 멍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 잠시라는 시간은 내 말이 상당한 효과를 거두었음을 뜻하고 있었다. 나는 의기양양했다. 그러나 세화도 곧 정신을 가다듬은 모양이었다.

"우리 엄마가 왜 도망을 쳐? 아파서 어디 가 있는 거야."

"거짓뿌렁 마, 니가 보기 싫어서 도망쳤대!"

"아냐!"

"아주 멀리 가서 다시는 안 올 거래."

"니가 어떻게 알아. 울 엄만 아프단 말야."

세화의 눈에서 반짝하고 무엇인가 빛났다.

"나도 다 알어. 도망쳤다구."

"아니란 말야! 아니란 말야! "

세화의 항변에는 울음기가 잔뜩 묻어 있었다. 그것은 마치 옥수숫대를 씹으면 약간 지리긴 하지만 달콤한 즙이 우러나는 것과 같이 나를 안심시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세화도 모든 걸 알고 있었단 말인가. 내가 가만히 있는 것을 본 세화는 훌쩍훌쩍 소리까지 내며 울었다

"아니란 말이야,,,,,,"

세화가 내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한 금 덩어리 따위와 놀 리는 없으리라는 점은 확인된 셈이었다. 나는 눈물로 얼룩이 진 세화의 얼굴을 향해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여긴 시장이잖아? "

그러는 사이에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시장에 도착해 있었다.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돈이 한푼도 없었으므로 꽁치 파는 아줌마가 있어도 난처한 일이긴 했다. 그러나 아무도 없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섭섭한 느낌을 강하게 전달해 주었다, 세화는 눈이 껍적거리는지 쉴 새 없이 눈을 비비며 주위를 살폈다. 어질러진 좌판 몇 개가 이리저리 뒹굴고 있을 뿐이었다.

"아무도 없구나."

휘장의 끈을 짓눌러 놓은 큼직한 돌멩이 위에 쪼그리고 앉으며 세화가 말했다.

"증말, 아무두 없어. "

나는 세화를 따라서 쪼그리고 앉으며 확인하듯 말했다.

"다들 피난 갔다구 지가 그래놓구선."

"그래두 쥐새끼 한 마리 없어."

아냐, 쥐새낀 있어. 아까 오는데 날 빤히 쳐다보다가 달아나던 걸."

"증말?"

그래, 그러니깐 괭이가 있지. 쥐가 있으니까 쥐를 잡을라구 괭이가 있지,

"그건 도둑괭이래. "

"도둑괭이두 마찬가지야, 쥐새낄 잡는 걸."

세화의 말은 모든 것이 옳았다. 도둑고양이는 어두울 녘에 집과 집의 추녀를 건너뛰며 살고 있었다. 꼽추처럼 등을 꼬부장하게 했다가 펴면 저쪽 처마에 발을 딛고 있었다.

"어디로 가볼까?"

나는 곰곰 생각하면서 세화의 의견들 물었다.

"글쎄, 아무데나 다 마찬가지지 뭐."

세화는 맥이 빠진 듯 말했다. 기운이 없어 보였다. 핼쓱한 그 얼굴은 백설공주의 얼굴처럼 하얬다. 그 얼굴은 오도카니 쪼그리고 앉은 몸에 동그랗게 얹혀 있어서, 큰 산에서 호랑이에게 물려갔다는 부잣집 처녀의 이야기를 연상시켰다. 어둑어둑한 - 저녘 무렵 어머니에게 그 이야기를 들으며 세화와 나는 방안이어서 큰 산이 보일 리도 없었건만 자꾸만 큰 산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젖히곤 했었다. 큰 산 기슭에 있는 그 부잣집의 처녀는 저녁에 뒤란에서 머리를 감다가 그만 호랑이에게 물려갔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찾았으나 아무데서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외동딸이어서 그 슬픔은 더욱 컸다. 그러던 어느 날 달구지를 몰고 가던 그 집 머슴이 산 속 바위 위에 올라앉아 있는 처녀의 모습을 발견하고 달려가 본즉 처녀는 머리통만 당그랗게 바위 위에 얹혀 있었다. 이 일이 있고 부터 해마다 처녀가 물려간 날이면 호랑이들이 나무로 변신해서 처녀의 집으로 물려들었다. 우줄우줄 산을 타고 내려온 수많은 나무둥치들은 그 집에 들어서자마자 다시 호랑이로 돌아가 처가 집에 온 행세를 했다. 호랑이들은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얼시구 절시구 좋을시고. 우리 마누라님네 좋을시고. 이렇게 밤새도록 놀며 갖은 먹을 것을 대접받은 호랑이들은 아침이 되어서야 산 속으로 되돌아간다고 했다.

나는 이야기에서처럼 세화가 호랑이에게 물려간다는 환상을 지우기 위해 빨리 어디로든가 가자고 재촉했다.

"성당에 한번 가볼까?"

"성당? "

", 거기엔 누군가 있을지도 몰라. 어른들이 노래도 부르고."

"그랬음 좋겠다."

우리들은 성당으로 향했다. 성당의 뜰에 서 있는 횐 석고상 앞에서 기도를 하면 바라는 일이 이루어진다는 말에 따라 언젠가 세화와 나는 나란히 그 앞에 서서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숙인 적이 있었다. 그래 나는 세화와 더 친하게 해달라고 빌었고, 세화 역시 똑같은 기도

를 했으리라 기대했었다. 그러나 내 기대는 빗나갔다.

"넌 뭐라고 빌었어?"

내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은밀하게 물었을 때 세화는 나를 말끔히 쳐다보기만 했다. 하마터면 그것으로 나는 내 기대를 충족시킬 뻔했다.

"난 너랑 더 친하게 해 달라구 했어. 넌 뭐랬어?"

내가 다그치자 세화는 할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난 말야, 우리 엄마가 빨리 낫게 해 달라구 빌었어. 그럼 아빠두 오실 거구."

그때 나는 차디찬 물 속에 몸을 담갔을 때와 같은 기분을 맛보아야 했다.

우리는 시장으로 갈 때보다 한결 빠르게 걸었다. 무엇이 우리의 발걸음을 빠르게 했는지 알 수는 없는 일이었다. 우리는 여전히 굳게 잠겨 있는 집들 앞을 빠르게 지나쳤다. 이번에도 그 석고상 앞에서 예전처럼 그렇게 빌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화는 역시 엄마가 빨리 낫기를 빌 거야. 세화 엄마가 어른들이 말한 것처럼 어떤 남자와 도망을 친 것이 아니라고 아까 그랬으니까. 그러자 세화의 말에 머리를 끄덕여 주었던 것이 후회되었다. 만약 그 어머니가 도망친 것을 안다면 세화도 할 수 없이 나와 친하게 되는 것이 유일한 소원이라고 빌지도 모르지 않은가.

성당은 언덕 위에 있었다. 우리는 숨을 헉헉 몰아쉬면서 언덕길을 올라갔다, 길가의 플라타너스나무들도 정적에 지친 듯했다. 그 지친 나뭇잎 뒤에는 또 나무의 작은 요귀가 춤을 추고 있었다. 내가 걸음을 더 빨리 했기 때문에 세화는 따라오기에 힘이 겨운 모양이었다

"좀 천천히 가. 힘들어 죽겠어."

"뭐가 빠르다구 그래."

내 말투는 내가 생각하기에도 퉁명스러웠다

"그렇게 빨리 갔다가 아무도 없음 어쩌니 ?"

세화가 걱정스럽게 말을 던졌다. 이미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태도였다. 여느 때 같으면 사람들이 수없이 오르내릴 길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도 충분히 예측하코 있었다. 성당엘 가더라도 아무도 없으리라는 사실을.

"신부님은 늘 우리 곁에 있는다구 했으니까,,,,,,"

나는 애써 밝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사실 내가 관심이 있는 것은 석고상 앞에서 어떤 기도를 할 것인가에 대해서였다. 세화가 아직도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소원으로 자기 어머니가 빨리 낫기를 빈다면, 세화 어머니는 어디에 있든지 분명히 큰 병에 걸려 있음에 틀림없을 것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모든 소원을 들어 준다는 석고상이 세화로 하여금 자꾸만 그것을 빌게 시킬 리는 만무할 것이었다.

그러나 성당에 도착한 우리는 놀랐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기도 전에 우리는 석고상이 쓰러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성당 앞 마당에 쓰러진 채 빗물에 얼룩이 져 있었다. 우리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가까이 다가가서 예전에는 고개를 쳐들고 우러러보았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그 얼굴은 울음으로 땟국이 흐르던 세화의 얼굴처럼 되어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됐을까?"

"어쩜!"

세화는 안절부절을 못했다. 그 점에 있어서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버리구 도망쳐서 이렇게 됐나?"

"어쩌지?"

"글쎄, 신부님도 안 계시나 보니깐."

"일으켜 세울까?"

세화가 제안했지만 나는 망설였다. 일으켜 세우려고 해도 우리의 힘으로는 불가능해 보였다.

"안 돼. 신부님도 이렇게 해 놓구 가셨으니까, 아무도 없을 땐 이렇게 놓아두는 건지두 몰라."

"빗물이 튀겨서 흙이 귓속에까지 들어갔는데?"

"그래두."

"어쩜 좋지?"

"글쎄"

우리는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나는 일으켜 세우다가 혹시 어디든지 깨어져 다치면 다시는 우리의 소원을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성당의 돌층계에 앉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휑뎅그레 빈 성당의 뜰에 자빠져 있는 석고상은 아무도 소원을 들어

달라고 빌지 않아 슬퍼하는 것 같았다.

"증말 아무도 없구나. "

이윽고 세화가 투정하듯 입을 열었다

"사람들은 언제쯤 돌아올까?"

"빨리들 왔음 좋겠다, 그치?"

",,,, "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으면서도 나의 뇌리에서는 석고상의 모습이 떠나지를 않았다. 세화 역시 걱정하고 있는 눈치가 역력했다. 우리가 잠시라도 이야기를 멈추고 있을라치면 빈 마을의 정적이 우리 귀에 들리기 위해 석고상 위를 지나쳐 오다가는 슬픔의 물이 들곤 했다.

갑자기 무서워졌다. 세화의 팔뚝에도 어느 결에 소름이 끼쳐 있었다. 그 소름은 무서움의 맛을 보겠다는 것인지 혓바닥의 맛봉오리처럼 도돌도돌했다.

"무섭니?"

나는 세화의 손을 잡고 말했다.

", 무서워,,,,집으로 가아."

"그래."

"그렇지만 소원을 빌구 나서."

세화가 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어따가 비니?"

나는 세화의 뜻이 무엇인지를 살폈다. 세화가 내 손을 잡아끌었다. 나는 의아했으나 순순히 따라갔다, 우리는 자빠져 있는 석고상 앞에 가서 섰다. 내가 세화를 바라보았을 때 세화는 눈을 꿈벅했다. 알았느냐는 뜻이었다. 나는 따라서 눈을 꿈벅했다. 우리는 고개를 숙이고 마음속의 소원을 빌었다. 그때 세화가 무엇을 빌었는지 나는 결코 묻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세화의 그 훌쩍거리는 울음소리를 기억해 내고 나도 모르게 세화의 소원대로 빌어 주었던 것이다. 기구를 끝내고 서둘러 성당을 벗어나을 때 나는 뒤로 고개를 돌려 언제까지나 자빠져 있는 석고상을 보았고, 어서 일어나 우리의 소원을 들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다시 열이 올라 자리에 눕고 말았다. 다음날이 되자 헛소리가지 지를 정도로 병세가 더쳤으나 나는 마을에 한결같이 정적만이 감돌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세상이 거꾸로 돌기나 하듯 모든 것이 정적 속에 파묻힌 것이다. 나는 지루하고 답답한 날이 언제 끝나게 될지 모르며, 그렇게 되면 세화는 늘 귀머거리 할머니와 살다가 늙어 죽어 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도 펄펄 끓는 신열(身熱)에 의해 용광로에 들어간 파쇠처럼 녹아 자취를 감춰 버리곤 했다. 어머니는 연기가 날까봐 방에 불을 못 지펴서 야단이라고 연신 되뇌었다.

"큰일이다. 낫는가 했더니만 어딜 그렇게 쏘다녀서 쯧쯧, 새끼도.”

어머니는 혀를 끌끌 차면서도 내가 실종되지 않고 돌가와 준 것에 감사하는 기색이 뚜렷했다.

"바깥에 나가믄 큰일난다고 했는데두. 큰일날 뻔했다, 큰일."

도둑 고양이나 쥐새끼밖에 없는 마을에서 어떤 큰일이 일어날 뻔했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방에 불을 못 지펴서 안달을 한 것도 잠시였다. 그 다음날 아침이 되자 드디어 먼 데서 포성(砲聲)이 은은히 들려 마을 정적을 깨더니 오후에 더욱 크게 들렸으며, 이와 함께 우리는 거처를 아예 방공호 속으로 옮겼던 것이다. 방공호에는 불을 때는 시설이 없었으니, 어머니는 다른 것은 몰라도 불 때는 일에 대해서는 걱정을 덜은 셈이었다. 나는 마을의 정적이 드디어 깨졌다는 사실에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것을 이야기할 상대가 없었다. 포성이 아주 가까이서 들려 오는데도 세화 할머니와 세화는 아직도 유령이 나올 듯한 집에 아무런 두려움 없이 살고 있었다. 어머니가 그네들을 방공호론 끌고 오려고 했지만 허사였다, 손짓 발짓으로 의사를 통한 결과 세화 할머니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기 때문에 예나 제나 태연히 바느질감을 들고 앉아서 아들을 기다리겠다고 한다는 것이었고, 세화는 낮이면 몰라도 밤에는 할머니 곁을 떠날 수 없다고 버틴다는 것이었다.

"세화 아빠가 와 줬으믄 좋겠는데. 쉬 들른다구 하더니, 워낙 험한 시국이라."

방공호 바닥에 퍼져 앉은 어머니는 혼잣말을 했다. 방공호 안은 습기에 차 있었고 매캐한 흙 냄새로 속이 뒤집혔다. 대포 소리는 놀랄 만큼 커지고 있었다. , , , . 그것은 법원의 뜰에 놓여 있는 돌에 그 큰 발자국을 찍어놓은 옛날의 어떤 장수가 걷는 소리 같았다.

그 장수 발자국은 언제부턴가 수호석으로 법원 뜰에 놓여 있었는데, 일본 사람들이 장수가 나는 것을 막기 위해 산줄기마다 쇠꼬챙이를 꽂기 바로 직전에 큰 산에서 나와 밟고 간 자국이라고 했다. 길이로 따지자면 세화의 키보다 더 긴 발자국이었다. , , , , . 지축을 뒤흔드는 그 소리는 자꾸만 크게 다가왔다.

어두워지고 부터는 대포소리에 섞여 총소리도 들리게끔 되었다. 콩튀듯 하는 총소리였다. 달도 없는지 캄캄한 밤이었다. 방공호 안은 더 캄캄했다. 대포소리에 놀란 흙이 부스러져 방공호 밑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도 들렸다. 나는 어머니가 어둠 속에서 위쪽을 우러르며 성호를 긋는 것을 보았다. 나는 이제 석고상은 자빠져 있기 때문에 아래쪽으로 향해 그렇게 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구 어지럽게 어둠을 쪼개 대던 소리가 잠시 멎었는가 했더니 아주 가까운 곳에서 다시 더 크고 격렬하게 들려왔다. 집들의 유리창이 쨍그렁 하고 깨어지고 있었다. 어디선가 비명소리도 들린 것 같았다. 쾅쾅, 탕탕, 따르륵. 유탄이 피융하고 공중을 비껴 가는 소리도 들렸다. 캄캄한 하늘이 순간 순간 밝아지며 총소리가 우박처럼 쏟아지곤 했다. 그런 속으로 무슨 신음소리도 들려왔다. 그 무렵 나는 의식이 가물가물해졌기 때문에 그것이 내 신음소리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 긴 밤이 얼마나 그렇게 길 것인지 나는 잘 알 수 없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어렴풋이 들은 소리는 탕탕, 딱콩 딱콩 쏘아 대는 총소리를 뚫고 어지럽게 뛰는 구둣발 소리였다. 그리고 어머니가 또 한 번 성호를 긋는 것을 보았다. 이와 함께 나는 그만 열띤 몸을 견디지 못해 혼미한 의식의 미로(迷路) 속으로 빠져 들어가 버렸다. 다행히 그 미로에는 어쩌다 어두운 창문이 나 있어서, 그것이 꿈속의 일인지 어쩐지는 알 수 없었지만, 바깥에서는 아직도 요란히들 싸우고 있구나 하고 순간적이고 어렴풋이 느낄 수가 있었다. 나는 밤새도록 깨어있고 싶었기 때문에 그 정도나마 느낄 수 있었던 것이 고맙다면 고마운 일이었다.

새벽에 눈을 뜬 나는 방공호 안에 혼자 있다는 것을 알고 몸을 일으켰다. 온몸이 쑤셨다. 아직도 열은 내리지 않았다, 바깥이 다시 조용해져 있어서 겁이 났다. 세상은 거꾸로 돌아가 전처럼 되어 있는지도 몰랐다. 나는 방공호의 흙으로 다져 놓은 층계를 거의 엉금엉금 기다시피 해서 마당으로 올라갔다. 세화가 잘 지냈는지 궁금했다. 그런 북새통 속에서도 세화네 집은 세화 할머니의 귀청처럼 끄떡이 없었다. 하늘은 맑게 개었고, 그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대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세상은 거꾸로 돌아가 있지는 않았던 것이다. 나는 세화네 집으로 가리라 마음먹었다. 그러나 세화네 집으로 가기 위해 쑤시는 몸을 돌린 순간 이상한 것을 보았다. 뒤꼍에서 빈 감자 가마니를 들고 나온 어머니가 그것을 대문께로 가져가 시커먼 물체에다 덮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보았다. 분명히 보았다.

그것은 세화의 아버지였다. 세화 아버지는 반듯이 누운 채 대문의 턱에 목 뒤를 받치고 있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거꾸로 된 얼굴이 보였지만 나는 잘 알 수 있었다. 언젠가 비행기를 태워 준다고 하면서 공중에 들어올려 빙빙 돌릴 때 거꾸로 보았던 그 얼굴이었던 것이다.

어머니가 가마니를 얼굴 쪽으로 덮어서 그 이후 세화마저도 그 죽은 사람의 얼굴을 볼 기회가 없었다. 세화 아버지는 그렇게 우리 집 대문의 턱에 목을 걸친 채 한나절 동안이나 있어야 했다.

"사람이 죽었니?"

어느 결에 눈을 휘둥그렇게 한 세화가 곁에 서 있었다. 세화의 온몸은 온통 먼지에 뒤덮여 있었고 낡든 스웨터에는 쥐똥까지 매달려 있었다. 대포소리 울릴 때마다 천장에서 떨어진 모양이었다. 세화는 잔뜩 긴장하고 있어서 입술이 파랬다. 목을 타게 하는 높새바람이 불어왔다. 바람결에 세화의 긴 머리카락이 날리자 까만 쥐똥이 떨어졌다

"그래 병신아, 사람이 죽었다."

나는 쏘아 주었다. 머리가 몹시 어지러웠다.

"내가 왜 병신이니?"

세화는 가마니가 덮여 있는 물체에서 눈을 돌리지 못하면서도 대들었다.

"왜 병신이긴? 병신이니까 병신이지."

"그럼 넌 뭐야?"

세화는 본격적으로 악을 썼다, 나는 사실을 말할까 보다 싶었다. 늬 아버지가 죽었다. 그러나 목이 콱 막혀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어머니가 와서 우리를 방안으로 쫓지만 않았더라면 어떤 일이 생겼을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세화야, 같이 방안으로 들어가거라. 너도 더 아픔 큰일이니까 방안에 들어가 누워 있어. 엄마가 들어갈 때까지 꼼짝 말고 그러고 있어야 해."

우리는 똑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방으로 들어온 우리는 더 이상 다투지 않았다. 내가 아파서 누워 있는데 세화와 함께 있도록 허락한 일이 처음이기도 한 때문이었다. 나는 벽장에서 이불을 내려 깔고 쓰러지듯 누웠다. 아픔으로 몸이 부들부들 떨리기까지 했으나 세화 아버지의 얼굴이 머리에서 사라지지를 않았다.

"많이 아프니?"

세화의 말에 나는 그렇다고 눈을 꿈벅거렸다.

"사람들이 인젠 돌아왔나봐."

나는 역시 세화를 향해 눈을 꿈벅거려 주었다. 나는 옆자리를 가리키며 세화에게 누우라고 했다,

"피난 갔던 사람들이 돌아왔나봐. "

세화가 몸을 비스듬히 눕히며 말했다.

"그래."

"근데 왜 저 사람은 죽어 있니?"

"간밤에 죽은 거지. 너무 빨리 오려다 죽은 거지."

나는 될 수 있는 대로 아는 체를 했다. 아니, 모르는 체를 했다. 세화도 간밤의 콩볶듯 하던 총소리를 알고 있었다.

"불쌍하다, 그치?"

세화는 내 손을 잡고 말했다. 내 손이 열 때문에 불처럼 뜨거워져 있음을 반증하듯이 세화의 손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빨리 나아서 너랑 다닐께."

나는 세화의 귀에 입을 들이대고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그래, 그리구 우리 아빠두 오실 거니까, 그러면 너한테두 금 덩어리를 주라구 그럴께."

세화는 천정을 응시하며 꿈에 부풀은 얼굴로 말했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다시 의식이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싫어. 난 금 덩어린 소용없어."

"그럼 뭐가 좋으니? 금 덩어릴 팔아서 사믄 되잖아."

"그냥 너랑 놀러 다니기만 해두 좋아."

이렇게 말하면서 나는 바깥의 웅성거리는 소리에 귀를 힘껏 기울이고 있었다. 별다른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눈을 감았다. 세화는 무슨 생각에 잠겼는지 아무 말도 없었다. 그러는 가운데 나는 열에 지쳐 슬그머니 혼수 상태로 빠져 들어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방문이 열리는 기척에 눈을 떴다. 옆에서 아무 소리도 없는 것으로 보아 세화는 잠들어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방안에 들어서는 어머니를 뿌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세화는 자는구나."

",,,,,,"

나는 흐릿한 의식으로 대답했다. 정신이 빙빙 돌았다. 빈 마을에 사람들이 돌아오는 것과 때를 맞춰 세화 아버지는 돌아왔으나, 그러나 세화는 결코 그런 모습의 아버지를 기다린 것은 아닐 것이었다.

"참 세월도 무신 놈의 세월인지, 휴우! "

어머니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어머니는 내 머리맡에 앉으며 내 이마에 얹기 위해 손을 뻗쳤다. 멍한 눈으로 천장을 응시하고 있던 내 시선으로 어머니의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옮겨지는 것이 얼핏 들어와 박혔다.

나는 벌떡 일어날 뻔했다. 그 인형이었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똑똑히 보았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던 그 인형이 어머니의 무릎께에서 눕혀졌을 때 마치 내 옆에 잠들어 있는 세화처럼 두 눈을 꼭 내려 감는 것을.

 

2

 

내게는 어린애 주먹만한 유리 인형이 하나 있다. 이사를 꽤 여러 번 다녔지만 그 유리 인형은 용케도 어디엔가 쑤셔 박혀 있다가 전혀 생각지도 않은 기회에 나타나 나로 하여금 야릇한 감회에 사로잡히게 하곤 하는 것이다. 어디에 뭐가 있더라 하고 무슨 연장이라도 찾기 위해 묵은 상자나 잡동사니 가방을 뒤질라치면 문득 먼지를 뒤집어쓴 채로 모습을 드러내기 일쑤였다. 그러면 나는 아 이게 여기 있었군 하면서 걸레로 닦게 마련이었다. 그렇다고 그걸 몇 분 동안이라도 어루만져 본다거나 어디 보이는 자리에 놓아둔다거나 하지도 않았다. 다시 어디엔가 쑤셔 박히는 것이다.

유리 인형이라고 했다. 그러나 말이 인형일 뿐이지 그것은 유리 조각 따위가 불에 녹아 뭉쳐진 유리덩어리임을 보는 이는 누구나 알 수 있다. 따라서 일그러진 형상에 연한 녹색으로 얼룩져 있고 한두 군데 검은 티끌이 박혀 있는데, 그렇게 보는 사람에 한해서만 어딘지 모르게 모양이 낯이 익다는 정도이다. 이 낯이 익다는 것도 온전한 사람을 연상시키기보다는 불구자 쪽으로서, 이것이 왠지 내 마음을 서글프게 한다,,,

작년에 다시 아파트로 이사를 하여 자리를 잡고 난 뒤 거의 반 년이나 흐른 오늘 나는 전혀 잊어먹고 있었던 그 유리 인형을 예전과 같은 경로를 거쳐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이번에는 엉뚱하게도 거의 쓸모가 없는 개 목줄이나 새 모이통 따위와 같이 들어 있었다. 아마 집 안을 정돈하면서 버릴 것들과 한군데 모아 놓은 채로 그냥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 속에서 유리 인형을 발견하는 순간 나는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는 마음이 들어 재빨리 집어들었다. 그게 아무리 쓰잘 것 없는 물건이라 해도, 우리와 같이 전쟁과 혁명의 엄청난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 온 연배에게는 거의 20년 가깝게 꾸준히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중요한 가치가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나는 그 유리 인형을 보존하는 데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지도 않았고, 어끼에선가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스스로도 감탄하는 바이지만 하여튼 그토록 오래 내게 붙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한 것이었다.

나는 유리 인형을 화장실로 가지고 가서 세면기의 수도 물을 틀어 깨끗이 씻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았다.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얼룩얼룩한 연한 녹색, 그리고 불에 데어 쪼그라진 것이 여실한, 한 쪽 뿐인 조막손이.

나는 그 유리 인형을 이번에는 나 혼자만이 사용하는 서류 상자 속 깊숙이 넣었다. 잘 자라, 유리 인형, 마침 저녁 무렵이라 어둠이 창가로 밀려오고 있었으나 나는 전등도 켜지 않은 채 멍하니 바깥을 내다보고 있었다. 어둠이 밀려드는 저 뒤쪽으로부터 말못할 그리움이, 가슴을 뭉긋거리게 하고 안스럽게 하면서 죄어 들었다. 알 수 없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귀가 멍하면서 눈시울에 작은 경련이 일었다. 비록 나 혼자 창 밖을 바라보고 있을지라도, 그 유리 인형에 대해서, 그 유리 인형을 내가 갖게 된 데 대해서 웃음을 띠어 보려고 했으나 도저히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내게 유리 인형을 주었던 그 얼굴도 오랜 세월의 저편에서 안개에 가린 마애불(磨崖佛)처럼 아른거릴 뿐 전혀 윤곽이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그 애의 가늘고 기다란 손가락과 양귀비 꽃잎같이 얇은 입술.

나는 세화가 내게 그 유리 인형을 주고 우리 집을 떠난 후 그 애가 잠시 머물러 있게 되었다는 보육원으로 갔던 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날은 이른바 꽃샘 바람이 차갑게 겨드랑지로 사정없이 기어들던 날이었다. 나는 몸을 잔뜩 움츠리고 정처 없이 발길을 옳기는 나그네처럼 그 집으로 향했었다. 어린 나이인데도 나는 그때 내 일생에 이런 날이 다시 없었으면 좋겠다는 투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집 가가이 가서야 내가 정문으로 들어갈 만한 용기가 없음을 알았고, 실상 빌미로나마 내세을 카무런 용건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나는 돌을 괴고 올라서서 까치발을 하면 겨우 마당을 기웃거릴 수 있는 곳에 자리잡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세화는 이미 그곳을 떠났는지도 몰랐다. 초조하고 지루했다. 그러나 세화가 막상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할 말이 없었다. 무슨 말인가 해야 된다고 골똘히 짜냈지만 그럴수록 머릿속은 텅 비어만 갔다. 몸은 으슬으슬 추운데 오줌은 또 쉴새 없이 마려웠다.

얼마나 지났을까. 보육원 안에서는 여전히 아무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혹시 잘못 알고 찾아온 것은 아닐까. 나는 시간이 갈수록 한없이 초라해져 가는 내가 불쌍했다. 그래도 나는 기다려야 했다. 그것은 내가 그 애에게 바치는 마지막 성의임을 나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였다. 땡땡땡땡 땡땡땡땡, 빠른 종소리가 울렸다. 나는 재빨리 까치발을 하고 담장 안으로 눈길을 던졌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집안으로부터 한 떼의 아이들이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앞마당으로 나오고 있었다. 가슴이 몹시 두근거렸다. 그 애가 나를 본 순간 오히려 의아한 눈초리를 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도 되었다.

나는 시무룩하게 대꾸했지만 내가 새를 잡을 수 있다는 데 대해서 는 사실 자신이 서지 않았다. 나는 새를 무서워하고 있기조차 했었으나 삼촌이 그렇게 얕잡아 보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나는 갈가마귀 따위의 새가 갑자기 날아 내려와 날카롭게 꼬부라진 부리로 내 눈을 뺀다는 공상을 했고 종종 그런 꿈까지 꾸었다. 삼촌에게 그런 얘기를 했을 때 삼촌도 쓸데없는 생각이라고 부인하지만은 않았었다.

"다른 나라엔 그런 무서운 새가 있는 모양이더라."

"딴 나라? 저 새들은 그럼 어디서 온 거야?"

"딴 나라에서 온 거도 있지, 우리나라에서 내처 사는 것도 있고."

삼촌은 그렇게만 말하며 빙긋이 웃었을 뿐 새가 눈을 뺀다거나 그러지 못한다거나 하는 말은 하지 않았었다. 나중에 을는 앨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만든 ()라는 영화에서 새가 사람을 공격하는 걸 보면서 당시 내가 가졌던 얼마쯤의 공포가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었음

을 되새겨 보기도 했다.

삼촌과 그런 얘기를 한 지 며칠도 안 돼 나는 나무에서 떨어졌던 것이다.

"그래, 샌 잡아서 어쩌자는 거냐?"

삼촌은 비아냥거리면서도 꾸짖는 것을 잊지 않았다. 처음에 나는 입을 꾹 다물고만 있었다. 새를 잡아 달라고 한 건 세화였고 그 애가 새를 어떻게 할지 나로서는 도저히 짐작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애는 정말 새를 타고 날아가려고 마음먹고 있었을까.

"샐 잡아서 어쩔 거였냐니까?"

삼촌은 몇 번이고 윽박질렀다. 기어코 알아내야만 직성이 풀릴 모양이었다. 하기야 언젠가 콩에 바늘 구멍을 뚫고 약을 넣어 숲 속에 뿌려놓고 몰래 꿩을 잡던 사람들을 붙잡아 경찰서까지 끌고 간 적도 있는 삼촌이고 보면 호락호락 물러설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정말 무엇을 하려 했는지에 대해서 대답할 마음이 아니었다.

"타고 날아갈려구."

그것이 가능한지 어떤지는 내사 알 바가 아니었다. 나는 어쨌든 그렇게 밖에 대답할 말이 없었다. 나는 삼촌의 눈치를 살폈다. 아니나다를까 삼촌은 눈이 휘둥그래졌다.

", 뭣이라고?"

"타고 날아간다니까."

나는 공연히 심통이 나서 다시 한번 말해 주었다.

"정말이야, 너 그거?"

"."

나는 천연덕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삼촌은 기가 막히는지 혀를 끌끌 차면서 새를 잡기나 했더라면 더 큰일이 날 뻔했다는 투로 머리를 흔들었다. 새를 잡았으면 정말 타고 날아가기라도 했을 녀석이라는 눈초리였다. 내 대답은 의외로 심각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갑자

기 집안 분위기가 달라졌음을 나는 느꼈다. 집안 식구들은 내가 어떻게 되지나 않았는가 조심스럽게 살피는 눈치였다. 나는 괜한 말을 했다 싶었다. 내 말을 듣고 그것으로 그만일 게라고 여겼던 것이 잘못이었다, 결국 나는 새를 타고 날아가겠다고 한 것은 내가 아니라 그 애였음을 실토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세화네 집이 불타서 할머니까지 잃은 다음 우리를 따라 총소리 한번 못 들었다는 시골 삼촌 집으로 왔을 무렵 어른들이 그 애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새들이 날아오는 먼 곳에 있다고 말한 것이 잘못이라고 느꼈다. 그 애는 모든 점에서 나보다 아는 게 많았으나 새에 대해서만은 그렇지를 못했다. 그 애는 새를 타고 날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사람이 새를 어떻게 타고 날아가니 ?"

나는 그 애가 왜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지 답답하기만 했다.

"왜 못 타고 날아가? 큰 새 등에 꼭 붙어 있음 되지."

"떨어져 죽어."

"난 안 떨어져."

"등이 미끄럽잖아."

"바보, 소나 말도 등이 미끄럽긴 마찬가지야."

세화는 우겼다. 나는 그 애의 말을 어떻게 공박해야 좋을지 도통 알 길이 없었다. 그 애는 내가 새를 타고 날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할 때마다 나를 바보로 몰아세웠다. 내가 더 이상 공박하지 못하는 데는 나름대로의 어려움이 있기도 했다. 언젠가 마을 어른들이, 솔개가 갓난애를 채갔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솔개가 갓난애를 채 갔다는 따위의 얘기는 입 밖에도 내지 못하고 언제나 새를 타고 날아가려다 가는 떨어져 죽는다는 말만 뇌까릴 뿐이었다.

그 무렵 새들은 더욱 극성이었다. 수십 마리씩 떼를 지어 몰려든 새들은 안 버덩과 바깥 버덩 사치 는실 들판에서 점점 삼촌 집 숲을 점령해 오고 있었다. 새떼가 몰려들기 시작할 때 벌써 어른들은 그 놈들의 등쌀에 견뎌나지 못할 것을 예견하고 있었다.

"난리가 물러가니까 이번엔 새가 몰려오는군. , 나무를 죄 망치지, 망쳐."

일찌기 없던 일이라고 했다. 이웃 마을에서는 벌써 지난해에 새똥에 견디다 못한 늙은 소나무들이 누렇게 타들어 가는 사태까지 일어나고 말았다고 했다. 적당한 새똥은 그지없이 좋은 비료가 되지만 커다란 새들이 수백 마리씩 한꺼번에 몰려와 깔려 대는 데는 당할 재간

이 없다는 것이다. 똥독이 오른 나무들은 잎사귀가 진초록으로 변했다가는 마침내는 말라 비틀어졌다.

"이변일세 그려. 새똥에 나무가 죽다니.”

어른들은 한마디씩 했다.

어쨌든 그 이변은 엉뚱하게 내게 불똥이 떨어지게 했다. 심심할 때면 숲에 가서 새똥을 긁어모아 두엄더미에 쌓으라는 명령이었다. 안 그래도 거름 똥이 모자란데 안성마춤이라는 말이었지만 나로서는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을 떠맡게 된 것이었다.

그때로부터 내가 새에 대해서 이상하게 여기에 된 것은 똥의 일부가 뼁끼처럼 새하얗다는 점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하얀 똥을 누는 다른 동물은 알지를 못하며 또 새가 어떻게 그런 똥을 누는지도 알지를 못한다.

바위 위에 갈겨 놓은 작은 새의 똥은 팔레트 위에 짜 놓은 흰색과 흑갈색의 수채 물감 같다. 새는 왜 하얀 똥을 누는 것일까. 나는 이 점이 바로 새가 가장 새다운 점이라고 생각한다. 염소나 토끼는 유난히 반짝거리는 새까만 똥을 눈다. 그러나 사람도 때로는 그런 똥을 누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리 설사나 곱똥을 싸봐도 새똥의 새하얀 색을 만들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싫든 좋든 나는 매일 한 번씩은 숲 속으로 삼태기를 들고 가서 새똥을 긁어 담아 두엄 구덩이에 갖다 붓는 일을 해야 했다. 측백나무와 오엽송이 칙칙하게 우거진 가운데 가끔 상수리나무가 바싹 마른 잎을 단 채 으석거리고 있었다. 그 숲의 넓이는 얼마나 될까. 나이를 먹어 가면서 문득 떠오를 때마다, 지금에 와서 본다면 아마 초라하기 짝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나는 떨쳐 버리려고 애써 왔다. 그 숲은 실제로 작은 규모의 숲인지는 몰라도 내 기억에는 늘 끝없이 넓고 깊고 그윽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 숲 속의 나뭇가지 위에서 새들은 무거운 상념에 젖은 듯 아래쪽을 내려다보고 있기도 했고 때로는 위협하듯 깍깍거리며 한 틈입자를 경계하기도 했다.

나는 그런 숲 속을 돌아다닐 때면 가면같이 핼쑥한 얼굴로 집안에 틀어박혀 있는 세화에 대해 더 마음이 쏠렸다. 어린 내게 이별이란 죽음보다도 더 큰 시련으로 닥쳐오고 있었다고 한다면 누가 믿어 줄 것인가. 새를 타고 날아가지 않더라도 그 애는 곧 어디론지 가고 말 것이었다. 언젠가 집안에서 그 애를 결국은 미국 사람 집에 양딸로 보내는 게 가장 좋겠다고 결론을 냈을 때 나는 이불 속에 누워 숨죽이고 그 말을 듣고만 있었다. 그리고 나 자신에 닥친 것보다 한결 쓰라린 운명으로 받아들여져서 나는 남몰래 눈물을 찔끔거렸다. 그 애의 아버지는 왜 죽었으며, 어머니는 어디로 갔을까. 그 애를 우리 집에 함께 살게 해 달라고 조를 만한 숫기도 없었던 나는 숲 속을 돌아다니면서 차라리 나도 고아가 되어 어디론가 떠났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넌 새똥 치는 게 재밌니?"

세화는 모를 일이라는 듯 묻곤 했었다. 그럴 때면 나는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그 애를 피했다. 그토록 열심히 새똥을 치우고 있었으면서도 세화가 떠나기 전에 어떤 비극이, 이를테면 숲의 나무가 죄다 새똥에 뒤덮인 끝에 형편 없는 꼴로 망쳐 버린다는 투의 증말이 다가오기를 내가 얼마나 바라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었다. 우리 집 안의 모든 것이 지극히 온전한 채 세화를 떠나보내는 것은 그 애의 불행에 웃음을 보내는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 애의 불행을 조금이라도 보상하기 위해서는 나에게도 그와 맞먹는 불행이 닥치는 길밖에는 없다는 생각이 나를 더욱 괴롭혔다.

세화가 내게 새를 잡아 달라고 한 것은 바로 그 무렵이었다. 그 애는 은밀히 내게 다가와서 물었다.

"너 새 잡을 수 있니?"

세화는 눈을 빛내며 새처럼 두리번거렸다. 그 눈빛은 벌써 나로 하여금 그럴 수 없다는 말이 못 나오게끔 강요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 대답은 쉽게 나오지를 않았다. 세화는 새를 타고 날아가려고 마음먹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나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말해 봐. 잡을 수 있어, 없어?"

세화는 다시 한번 물었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얼굴만 붉으락 푸르락하면서 붙박힌 듯 서 있었다. 세화는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밤중에 새집에다 불을 확 비추면 된단 말야. 그럼 새가 꼼짝을 못 해."

그래도 내가 우물쭈물하자 그런 방법까지 가르쳐 주었다. 나는 그 애가 던진 올가미에 영락없이 옭히는 몸이 되고 말았다. 새를 잡은 다음에는 어떻게 파겠다는 것일까. 나는 물어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물론 세화는 타고 날아가겠다고 대답하리라. 내가 두려움을 무릅쓰고 세화의 부탁을 듣기로 작정한 것은 새를 타고 날아갈 수 없음을 분명히 알게 할 욕심도 있었고, 그렇게 된다면 쇤지 세화의 불행도 얼마쯤 덜어질 것 같은 생각이 든 때문이었다.

그 날 밤 나는 세화와 함께 새가 높이 등지를 틀고 있는 나무 밑으로 갔다.

"문제없지?"

세화는 누가 듣기라도 할세라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 "

나는 숨을 몰아 쉬었다. 어둠 속에서는 잠든 새들이 가끔 꾸룩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나는 플래시 끈을 목에 걸고 조심스럽게 나무에 붙었다. 새를 타고 날아가다니. 차라리 옛날 기왓장에 새겨진, 그 사람 머리에 새 몸을 한 이상한 짐승을 타고 거울 속 나라로 들어가는 것이 편할 것이었다. 그러나 그 애는 입을 꼭 다물고 숨소리조차 죽인 채였다. 그때의 내 모습은 마치 호주(濠洲)의 삼림에 산다는 나무늘보와 같았을 것이다. 나는 나무가 흔들리지 않도록 나무늘보처럼 느린 속도로 올라갔다, 샅에 바짝 힘을 주고 발바닥으로 무게를 받칠 만한 곳을 더듬어 짚고 있었으나, 금방이라도 미끄러질 듯 다리가 후들거렸다.

"다 돼가, 쫌만 더 올라가."

아래쪽에서 세화의 목소리가 소근거리듯 들려 왔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오를수록 나무가 조그만 요동에도 흔들려 더욱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했다. 한 발, 또 한 발, 둥지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마에 땀이 맺혔다. 갑자기 나무가 뚝 부러질 것싼 같았다. 겁이 와락 났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지 않으면 안 된다. 손을 조금 위로 올려 뻗어 나뭇가지를 붙들고 몸을 잡아당겼다.

"쫌만 더, 다 됐어."

세화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려 왔다. 고개를 젖히면 등지가 바로 머리 위에 얹혀 있었지만 팔이며 다리는 더한층 후들후들 떨리고 있었다. 흐음, 신음 소리가 저절로 새어나왔다. 나는 고개를 젖혀 머리 위의 등지를 쳐다보았다. 바로 그때였다. 시커먼 물체가 내 눈을 획 후리는가 하더니 후다다닥 하고 요란한 소리가 귀를 때렸다. 눈에 불이 나면서, 오래 전에 삼촌이 집에 들고 온 그 기왓장 속의 사람머리를 한 검은 새의 모습이 나를 덮쳤다.

'!'

머리가 핑 돈 것과 함에 나는 가늠할 수 없는 어둠의 심연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리고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내가 깨어난 것은 심한 된장 냄새 때문이었다. 휘둘러보니 방안이었고 전등불 아래 어머니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내가 일어나려고 몸을 움직이자 어머니가 어깨를 내리눌렀다.

"그러고 낼까지 있어야 해. 낼 병원에 갈 때까지."

그제서야 머리가 무지근하고 화끈거리는 걸 느꼈다.

"어디서 무슨 냄새가 나."

나는 더듬더듬 말했다.

"인석아, 머리 깨진 데 된장을 발랐으니 그렇지. 밤중에 나무에 겨 올라가긴 왜 겨 올라간단 말이냐. 그만하길 다행이지."

머리에 손을 갖다 대 보니 나는 붕대를 처매고 있었다. 그렇지, 난 나무에서 떨어진 거야. 비로소 그 순간의 일이 선명히 되살아났다.

새를 잡지도 못하고 떨어진 것이 분하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했다. 그와 함께 무엇보다도 세화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이러한 걱정은 이튿날 병원에 다녀와서 그애를 보았을 때 확연한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다, 드디어 그 애는 그 이튿날로 어디론가 떠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던 것이다.

세화는 붕대를 동여맨 나를 한번 흘낏 쳐다보았을 뿐 하루 종일 방에 처박혀 나올 줄을 몰랐다. 나는 자리에 누웠다가 밖으로 나갔다가 하면서 안절부절을 못했다. 나는 다친 사실보다도 세화의 부탁을 제대로 들어 주지 못한 못난 내 꼬락서니를 세화가 비웃을 것이 무엇보다도 견디기 힘들었다. 그 애는 비웃으면서 나를 떠나갈 것이었다.

나는 내가 한없이 비굴하게 느껴졌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닥친 일들이었다. 내가 숲 속을 돌아다니며 제 아무리 이 언젠가는 닥쳐올 일을 마음속에 삭여 놓으려고 애썼다 한들 도무지 소용없는 노릇이었다. , 새 한 마리도 못 잡는 병신.

그 날 밤이었다.

변소에 가는 척하고 밖으로 나온 나는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흠칫 놀랐다.

", 나야."

어둠 속에서 나직하게 나를 부르는 소리는 분명 세화의 목소리였다. 나는 소리가 난 쪽으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세화는 헛간 옆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나는 무슨 엄청난 죄를 지으려는 사람처럼 몸이 덜덜 떨렸다. 새를 잡으러 나무에 오를 때보다 더 긴장되었다. 오금까지 저렸다. 구름에 가린 엷은 달빛에 그 애의 얼굴이 횐 납석(蠟石)처럼 보였다. 그 불투명하고 창백한 횐 얼굴 때문에 세화른 마치 소무(小巫) 같았다. 그러나 내가 떨리는 것은 세화의 그런 모습 때문이 아니었다. 나는 입이 떨어지지 않아 말없이 세화 앞에 가서 섰다.

"많이 다쳤니?"

세화가 물었다.

"아니."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의사 말에 따르면 외상이기에 망정이지 상처가 깊은 편이라 위험할 뻔했다고 하였다. 물론 흉터도 남으리라는 것이었다.

"많이 아프니?"

세화가 다시 똑같은 말투로 물었다.

"아니."

가끔 욱씬거릴 뿐이었으므로 이것은 사실이었다. 겨우 이렇게 밖에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는데 몹시 숨이 가빴다. 세화가 예전의 세화처럼 느껴지지가 않았다. 나는 가끔 세화의 눈이 엷은 달빛에 반사되어 섬광처럼 반짝 하고 내게 비치는 것을 보았다,

"난 내일 가야 된대."

세화의 말은 그 애의 머리 뒤쪽 어디서 울리는 메아리처럼 들렸다. 그러자 이미 알고 있었던 그 사실이 마치 아주 생소한 듯이 여겨졌다, 어디선가 짚이 썩는 듯한 방향(芳香)이 우울하게 풍겨 왔다.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하루거리를 앓는 아이가 멀쩡했다가도 고열에 시달리듯이 갑자기 온몸이 열에 뜨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세화가 가게 된다는 사실에 대해서 물론 잘 알고 있었다.

"어디루?"

나는 숨을 한번 들이마셨다가 다시 한번 반복해 물었다.

"어디루 데려간다구 그러디?"

세화의 대답을 듣고 싶어 물은 말은 아니었다. 그것도 이미 나는 알고 있었다.

"몰라, . "

세화는 고개를 숙였다. 나는 어른들이 하던 말을 옮겨 줄까 하고 망설였다. 미국 사람 집에 양딸로 가게 됐애. 그러나 입이 떨어지지를 않았다.

"아까부터 기다렸는데 말야."

그러자 세화가 무슨 용건이 있다는 듯 입을 열었다. 세화는 말을 꺼내고 나서 한참 동안 나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조바심이 났다. 혀로 마른 입술을 축이려고 했으나 혀마저 바싹 말라 있었다.

"말해 봐, "

나는 간신히 재촉했다.

"난 너한테 줄 게 암것두 없어서 말야."

"뭘 말이지?"

그러자 세화는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내게로 불쑥 내밀었다. 무엇인가 그 애의 눈처럼 빛났다고 생각되었다. 나는 그 애의 손에 놓여 있는 것을 조심스럽게 들여다보았다. 그것은 달빛을 받아 기묘하게 번득이며 어른거렸다.

", 받아, 이거야."

세화의 그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내 손에 와 닿았다. 나는 자철광에 닿은 고슴도치처럼 움찔 놀라서 어쩔 줄을 모르고 가만히 있었다. 순간 나는 내 입술을 스치는 이상한 감촉을 느꼈다. 참으로 짧은 순간이었다. 세화의 입술은 내 입술보다도 따뜻하고, 매끄럽고, 젖어 있었다, 내가 놀란 것은 세화의 손이 내 손에 닿을 때뿐이었지 결코 그때는 아니었다. 어느새 세화는 나를 남겨 놓고 쏜살같이 마당을 질러갔다. 나른 얼이 빠져 한동안 그 자리에 말뚝처럼 서 있었다. 문득 머리에 붕대가 그대로 감겨 있나 하고 손을 올리려 했을 때 나는 내 손아귀에 무엇인가 쥐어져 있음을 알았다. 바로 그 유리 덩어리였다. 불탄 자리를 뒤져 그 눈감는 인형을 놓아두었던 곳에서 주워온 것이었다.

다음날 세화는 떠났다. 간밤의 일은 아예 없었던 것처럼 세화는 내게 찡끗하면서 웃음까지 띠었다.

"잘 있어."

세화는 삼촌과 나란히 서서 내게 인사하더니 어느새 뒤돌아 서서 타박타박 걸어가 버렸다.

처음에 나는 세화가 잠시 머물리라는 보육원으로 찾아간다는 건 생각조차 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하루 이틀이 지나고 내 상처가 점차 아물어 갔던 것에 발맞추어 세화를 만나 보고 싶다는 충동도 점차 여물어 갔던 것이다.

땡땡땡땡. 나는 지금도 그 보육원의 투박한 종소리가 귀에 들려오는 듯하다. 내가 세화를 본 것은 한참 뒤 두 번째의 종소리가 들리고 서였다. 잔뜩 실망한 내가 집으로 돌아갈까 망설이던 찰나였다. 머리를 양쪽으로 묶고 멜빵이 달린 스커트 차림이었으나 나는 한눈에 세화를 알아보았다. 얼핏 이쪽으로 눈이 쏠렸던 세화도 담 위로 머리를 한껏 들어올리고 있는 것이 나인 줄 직감한 모양이었다. 세화는 깡총깡총 뛰어 담 옆으로 왔다.

"어떻게 왔니 ?"

세화는 상기된 어조로 물었다. 몹시 반가워하고 있는 투가 역력했다. 나는 그 말에 대답할 말이 없었으므로 한동안 겸연쩍은 웃음만 띠고 있다가 마치 벼르고 있던 말인 양 느닷없이 되물었다.

"넌 아직두 샐 타고 날아가겠니?"

세화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리고 내가 웃고 있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안심하는 듯했다. 그러나 세화의 얼굴에 잠시 어렸다가 지나가는 어두운 그림자를 나는 놓치지 않았다. 나는 좀 의아했다. 세화는 새를 타고 날아간다는 데 대해서는 한번도 양보하지 않았었고, 내가 그렇게 물은 젓은, 응당 예전과 같은 태도로 나오리라 굳게 믿었기 때문이었다.

"미안했어, 그때는."

세화는 내 이마 쪽을 보고 있었다

"괜찮어, 다 나았으니까, ."

나는 세화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언짢아지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그러나 허사였다. 그 애의 얼굴에는 짙은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새를 잡아 달래서 미안해. 나두 다 알구 있었어. 샐 어떻게 타고 날아가니, 사람이?"

나는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이제 와서 그 애는 왜 그런 말을 하는 것일까. 게다가 그 애의 말은 아예 누구에겐지도 모를 항변조였다.

나로서는 그 변화를 받아들이기란 여간 힘들지 않았다, 그 애의 그런 말을 듣고 보니 맥이 쪽 빠졌다.

"난 다 알구 있었단 말야. 사람이 새를 타고 날아갈 순 얼어. 그리구 우리 아빤 죽었구 그리구 우리 엄만,,,,,”

갑자기 세화의 목소리가 격앙되는 듯하더니 말을 다 맺지도 못했다. 세화의 어깨는 감정의 고조로 말미암아 아래위로 들먹거렸다. 나는 한마디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거의 아문 상처가 더치는 것처럼 이마가 화끈거렸다. 그 애로부터 그런 말을 들으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내 머릿속에서 무엇인가 와그르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세화는 여전히 어깨를 들먹이고 있었다.

"넌 바보야. 암것두 몰르는 바보."

세화는 거의 울먹이면서 말했다. 세화에게는 나는 항상 바보였다. 내가 새를 타고 날아갈 수 없다고 했을 때도 나는 바보였고, 그 애가 새를 타고 날아갈 수 없다고 말할 때도 역시 나는 바보였다.

그때 집안으로부터 나온 중년의 남자가 우리를 발견하고 꽥 소리를 쳤다.

", 거기 뭣하는 거야?"

그 서슬에 놀라 나는 디딤돌 위에서 내려서 비실비실 뒷걸음질을 쳤다. 남자의 빠른 발자국소리가 저벅저벅 들렸으므로 나는 지레 겁을 먹고 뛰다시피 담장에서 멀어져 갔다, 등뒤에서 세화에게 호통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요게 벌써부터 사내 녀석을 호려?”

나는 뛰었다.

목이 꽉 막히고 몸이 나무 위에 올라갔을 때보다도 더 후들후들 떨렸다. 나는 무엇 때문에 세화를 다시 한번만 보고자 했던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머리가 빙빙 돌고 다리가 허청거렸다. 나무에서 떨어질 때 보았던 그 새의 검은 얼굴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도 했다.

나는 막다른 골목에서 쫓기는 사람이었다. 진땀이 났다. 나는 쉬지 않고 달렸다. 만약 멈춘다면 금방 땅 속으로라도 꺼져 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세화로 하여금 그와 같은 말을 하게 하고자 갔던 것은 아니었다. 세화의 말이 귀에 울렸다. 목구멍이 가마 속의 토관처럼 바싹 말라 타올랐다. ,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내 몸은 온통 땀 투성이였고 극도의 피로감이 엄습해 왔다. 그래도 나는 멈추지를 않았다. 눈이 아리고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러면서 구역질이 솟구쳤다.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웨엑, , 신물이 울컥 솟으면서 밥이며 김치 따위가 버무려져 암죽이 된 토사물이 쏟아져 나왔다.

웨엑, 웨엑. 나는 죽어 가는 왜가리처럼 울부짖으며 뱃속에 든 모든 것을 있는 대로 토악질해 냈다, 오한과 신열이 동시에 났다. 마지막까지 토해 낸 나는 엉거주춤 일어났다. 사방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나는 제정신이 아닌 채 다시 걸음을 옮겨 놓았다.

이윽고 내가 도달한 곳은 숲 속이었다. 내가 왜 그곳으로 갔는지는 나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무 위를 쳐다보았다. 아무것도 제대로 분간이 되지 않았다. 정신이 자꾸만 아물거렸다. 뭐라고 외치려 했지만 목소리는 혀끝에서만 맴돌았다. 나는 마지막 남은 힘을 모아 악을 썼다

"이놈으 새야, 내려오지 못해!"

그러면서 나는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갑자기 커다란 빛의 무리가 내게로 밀려온다고 생각되었다. 눈부시고 거대한 빛. 혹은 빛이 아닌지도 몰랐다. 하늘의 일각이 내려앉는 듯했다. 나는 엉겁결에 눈을 크게 떠 바라보았다. 그것은 한 마리의 새였다. 그토록 눈부시고 거대한 새가 사뿐히 내려와 앉는 것이었다.

나는 쓰러져 있던 곳에서 일어나 새에게로 걸어갔다. 새는 다소곳이 깃을 모으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자세였다. 나는 이제는 터럭만한 두려움도 없었다. 새는 눈가에 선명한 테두리를 두르고 눈알에서는 부드럽고도 강렬한 광채를 뿜었다.

나는 스스럼없이 새의 목덜미를 붙잡고 새의 위로 올라갔다. 미끄러지기는커녕 그 위는 끝 모를 풀밭처럼 넓고 아늑했다. 내가 새의 목덜미를 그러안자 그 거대한 것이 내 두 팔 안에 꼭 안겨 왔다. 나는 두 다리를 목덜미 아래로 내려 새의 가슴을 꼭 끼었다. 그러기까지 새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내가 새의 따뜻한 체온을 느끼며 막 잠이 들려 하였을 때 어디선가 서늘한 바람이 섬뜩 와 닿았다. 나는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어느새 새는 하늘 높이 솟아 있었다. 산맥처럼 융기가 용골돌기가 부풀었다 가라앉았다 할 때마다 산자락 같은 날갯죽지가 하늘을 갈랐다. 아래쪽을 내려다보면 작은 물뱀 같은 강들이 꼬불거리며 땅을 헤엄쳐 가는 것만 보일 뿐이었다. , 이게 어찌된 일일까. 그러나 다음 순간 새는 한 마리 가마우지로 작아져서 어디론가 날아가고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여전히 새의 어깨 위에 올라타고 있었는데 나는 바로 그 유리 인형이었다.

다음날 나는 숲 속에 쓰러진 채로 발견되었고 그런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다음해 학교에도 못 들어가고 멀쩡한 몸으로 집에서 쉬어야 했다. 그러나 그 날 내가 왜 숲 속에 가서 쓰러졌는지는 끝까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말할 수도 없었다. 세화가 있던 보육원이 난데없이 폭격을 당한 것은 내가 갔던 바로 뒤였다. 세화의 죽음을 알고서도 나는 아무 내색을 안 했다.

그 새의 존재 역시 늘 내 뇌리에 남아 있었지만 거기에 대해서도 나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또 말할 수도 없었다.

그 뒤 내가 연세 대학교에 입학해서 구 본명 선생으로부터 <장자>를 배울 때였다. 작은 키에 동안(童顔)의 노 교수는 느릿느릿 교단 위로 올라와 교탁 위에 책을 올려놓고 소요유편을 펼쳤다.

북명(北溟)유어 기명위곤 곤지대 부지기기천리야 화이위조 기명위붕 붕지배 부지기기천리야 노이비 기 익약수천지운

구 선생은 봄이 오고 있는 창 밖을 바라보고 나서 입을 열었다.

"북쪽 바다에 고기가 찬 마리 있는데 말이지. 그 이름이 곤이란 말이야. 헌데 이 곤의 크기가 몇천 리나 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읎어. 이눔이 변해서 새가 되는데 그 이름을 붕이라고 헌단 말이야. 붕의 등때기는 또 몇 천 리나 되는지 알 수 읎이 커. 이눔이 노해서 디리 날아올르믄, , 날개가 하늘에 구름이 드리운 거 같단 말이지. 허허허 허허."

그 말을 듣고 있던 난는 퍼뜩 하고 무엇인가 머리에 와 닿는 것을 느꼈다. 그렇다, 한 마리의 붕, 일찌기 그 새는 붕이었고, 우리가 비록 실제의 새를 타고 날아갈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현실과 이상의 괴리 사이에서 붕은 얼마든지 우리를 태우고 날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실의 차꼬에 얽매이고 칼을 쓴 자만이 새를 타고 날아갈 수 없다.

", 그럼 차근차근 읽어 보두룩 허지 그래."

다시 구 선생의 말이 들렸다. 나는 가슴이 벅차 올라 책을 들여다 볼 수가 없었다. 저 속 깊은 곳에서 울컥 하고 감정이 북받치면서 눈시울이 뜨뜻해지는 것을 나는 느꼈다.

 

2부 글은 1981년에 써서 동인지 (작가) 2집에 실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뒤 2년이 지나 이번 여름에 이 책을 펴낼 계획을 세웠을 때 우연히 지구의 북반구(北半球)를 일주하는 세계 여행길에 오르게 되었다, 아니, 북반구라고 잘라 말할 수는 없다. 적도(赤道)의 밑, 남반구(南半球)에 해당하는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도 여행 길에 속해 있었다. 대한 항공으로 홍콩까지 간 다음, 자카브타로 가기 위해 탄 비행기는 가루다(GARUDA)였다. 가루다는 인도네시아 항공 회사의 명칭이며, 그것은 인도네시아 말로 독수리를 뜻하는 것이었다. 홍콩에서 자카르타까지 가루다, 자카르타에서 그 북쪽 섬 수마트라의 중심지 페칸바루까지 가루다, 그리고 인도네시아를 떠나 싱가포르까지 가루다, 모두 세 번 가루다를 탔다.

"나시?"

여승무원이 음식을 나누어 줄 때 물었다. 나는 얼떨떨해서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러자 그녀는

"라이스?"

하고 고쳐 말했다.

'나시'는 인도네시아 표준어로 쌀밥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나시'의 길쭉한 밥알을 씹으면서 무슨 생각엔가 깊이 빠져 들어갔다.

가루다, 독수리.

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 나는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한 마리의 새를 타고 날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가루다는 현대 문명의 기막힌 산물인 비행기라는 기계가 아니라 한 마리의 살아 있는 독수리, 새였다. 구름 속에서 가루다가 흔들렸기 때문인지, 세화에게 무슨 이야기인가 들려 주고 싶은 내 충동 때문인지, 숟가락에 퍼 담은 '나시'가 자꾸만 무릎 위에 흩어졌다.

 

3

 

며칠 전 일간 신문에서 나는 모기가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순간을 포착한 현미경 사진을 주의 깊게 보았다. 신문 기사에 의하면 그 사진은, 스웨덴의 한 과학 사진사가 모기란 놈이 흡혈침을 박은 순간 살충제를 뿌려 죽이고 모기 발을 사람의 피부에 풀로 고정시킨 뒤 피부를 잘라서 액체 질소인지 뭔지로 동결시키고 현미경에 넣어 찍은 것이라고 했다. 사진의 모기는 공상 만화 따위에 나오는 외계인처럼 긴 다리를 버티고 서서 카메라의 집광기(集光器) 같은 겹눈이 촘촘한 대가리에서 뻗친 뾰족한 주등이를 콕 처박고 있었다.

그걸 보고 있는 순간 나는 얼마 전의 일이 머리에 떠올랐다. 근래 나는 현실과 비현실이 혼동되는 착각에 빠지곤 하는데 그것이 지나쳐서 때로는 장자가 제물론(齊物論) 편에서 한 말이 나를 두고 한 게 아닌가 여겨지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하기야 성현들의 말이란 모두 지극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장자가 꿈에 나비가 되었는데 그는 자기가 영락없는 나비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깨어보니 나비가 아니라 인간 장자였다. 장자는 사람으로서 나비의 꿈을 꾸었는지 나비로서 사람의 꿈을 꾸었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이런 상념을 하릴없이 계속하던 끝에 한 마리 모기에 대해서만은 명확히 현실에 바탕을 두고 얘기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가졌다. 나는 그 날 아침의 일이 눈에 선하게 보이는 듯하다. 사진이라도 찍어 올 수 있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단지 시간만 조금 뒤로 돌려놓으면 될 것이다. 내가 유난히 모기를 피하고 무서워한다는 것은 몇몇 친구들 사이에서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언젠가 포항으로 해수욕을 갔을 때 나는 한여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럿의 이부자리를 독차지하여 뒤집어쓰고 밤을 새운 적도 있었다. 포항 모기는 특히 극성스러워서 몇 겹의 모포라도 꿰뚫고 마구 피를 빨아댔다. 어쨌든 초기는 텔리비전에서 본 일본군의 가미카제 전폭기와 흡사한 소리를 냈다. 왜앵 하는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오싹 소름이 끼쳐서 나도 모르게 비명이라도 지를 것만 같았다. 그런 저런 이유로 나는 신문에 난 죽은 모기를 향해서도 경계의 눈초리를 던졌으며 드디어 어떤 한 마리 모기에 대해서 글을 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헤어진 아내와의 사이에 딸 둘을 두었는데, 그 중 작은애는 여름만 되면 모기에 물려 몸이 만신창이가 되곤 했다. 모기야 어디에든 쌔고 쌨고 또 그 애만을 물으라는 법도 없지만, 유독 물것들이 많이 꾀는 체질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작은애는 시샘이 많고 직선적인 성격이었다.

", , 모기가 널 제일 싫어하나봐,"

이런 말을 하면 금방 뾰로통해서 입술이 비죽 튀어나왔다.

"그래, 아냐, 아냐, 널 제 일 좋아하나봐."

이렇게 우스개로 말해 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모기가 싫어하든 좋아하든 그 애의 고통은 심했고 보는 사람도 고통스러웠다. 짜증을 내면서도 고통을 이겨나가는 그 애는, 밖으로는 분노를 나타내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아지 못할 애욕으로 불타는 애염명왕을 연상케 했다. 애염명왕처럼 눈이 셋에다 팔이 여섯일 리는 물론 없었지만, 몸은 군데군데 그렇게 붉었다.

어느 날 아침 내가 그 애들을 봐야겠다는 충동에 사로잡힌 것은 여름이 왔기 때문이었다. 아울러 나는 그 애들에게 지키지 못했던 약속들을 기억했으며 이미 시효가 지난 약속들일지언정 성의를 가져야겠다고 느꼈다. 그것은 그 애들보다도 나 자신에 관한 문제였다. 나는 먼저 눈에 띄는 완구점을 찾아가서 학생용 연필 깎기를 찾았다.

"문방구로 가셔 야죠."

점원은, 북을 치고 있는 곰과 눈사람 같은 오뚜기, 리볼버 권총이 가지런히 놓여 있는 진열대 밑에 서서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나는 무의미한 웃음을 띠고 고개를 까딱해 보였다.

"문방구는 어디에 있죠?"

문방구가 어디에 있더라도 글쎄 이제 새삼스럽게 연필 깎기 따위의 하찮은 것을 사다줘야 할까 하는 물음이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갔다.

"저쪽 어디로 가 보세요."

점원은 길 건너편을 손으로 가리켰다. 길 건너로는 도저히 문방구라곤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길가에는 돌덩이같이 커다란 굴을 실어 놓고 까서 팔고 있는 리어카를 뒤로 하여 생맥주집과 약방이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그것은 벌써 2년 전의 약속이었다. 그때 아이들은 그걸 갖고 싶어했었다. 나도 어릴 때 그걸 갖고 싶어했었다. 연필을 구멍에 집어넣고 손으로 돌리면 얇게 깎여진 나무가 플레어스커트 자락 같이 펼쳐져 나왔다. 한 세대 다음에 내 아이들도 그걸 갖기를 바랐다. 나는 그건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거야 하고 말하려 했지만 예전의 내가 떠올라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사주마고 약속을 했다. 내가 연필을 깎던 무렵은 전쟁의 잔해가 들녘에 널려 있던 시절이었다. 전쟁은 지나갔지만 그 지나간 길은 풀숲 사이에 이리저리 뚜렷하게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그래서 그 길을 헤쳐 가자면 숨죽이고 누워 있는 사람의 몸뚱이 위를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억새 풀숲 사이로, 고비 풀숲 사이로 들여다보이는 눅눅한 응달에서는 어떤 사람이 한없이 멀어져 가며 그 가물거리는 얼굴을 숨기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죽은 사람들이 남겨놓은 많은 구덩이, 산허리의 동굴들. 어떤 동굴은 말굴 모양으로 되어 양쪽이 출입구로 뚫려 있었다. 사람들 모두가 목숨이 단 두 개만이라도 있어 주었으면 하고 얼마나 간절하게 원했던 것일까.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육교를 올라가 길 건너편으로 향했다. 너무 일찍 조퇴를 했나 보았다, 나는 육교 한가운데서 지나가는 행인에게 몇 시쯤 되었느냐고 물었다. 그는 발걸음을 멈추고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열 두 시 이십 분 전인데요."

그가 채 시간을 말하기 전에 나는 내 손목에 시계가 차여 있음을 알았다. 어제부터 나는 시계를 차고 있었다. 나는 회사에서 가불을 했고 그 돈의 반으로 손목시계를 샀던 것이다. 평소에 시간 관념이 투철하지 못한 나로서는, 역설적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여태껏 시계라고는 차지 않고 지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결혼 시계를 제외하고 말이다. 결혼 시계를 어이없이 버스에서 네다바이당한 이후로 시계와는 인연이 없었다. 차고 싶지도 않았고 필요성을 느끼지도 않았다. 그런데 아이들이 12시면 교문 밖으로 나온다는 사실이 상기되자, 시계가 없으면 그 사실 자체를 잊어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조바심으로 시계포로 달려갔던 것이다. 나는 내가 시계를 차고 있음을 알았더라도 시간을 물어 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는 시간보다도 현실성을 깨닫기를 원하고 있었다.

아직 15분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동안 무슨 일을 해야 할 것인가. 그렇지 연필 깎기를 사야지. 그래서 가불가지 한 게 아닌가. 나는 문방구를 찾으려고 간판들에 눈길을 던지면서 느리게 거리를 걸어갔다. 15분쯤 거리를 걷다가 5분이 남으면 그때 다시 길을 건너가면 되리라 짐작했다. 학교 옆으로 가면 어련히 문방구가 있으련만 나는 마지막 순간에 맞춰 발길을 돌리고 싶었다. 문방구를 찾는다는 일은 구실에 불과했다. 그것은 2년 전의 약속이었다. 2년 동안이라면 한창 자라는 아이들은 전혀 다른 모습이 되어 버린다. 아이들은 자기들의 지나간 소유욕의 냄새에 오히려 고개를 돌려버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과거에 내가 지키지 못한 하찮은 약속을 환기시키고, 이왕 퇴색한 아빠의 의미는 더욱 퇴색하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의미가 어찌 되었건 간에 약속은 약속이었다. 이번에 지키지 못한다 할지라도 나는 언젠가는 그 약속을 이행해야 한다는 마음의 압박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었다, 그까짓 연필 깎기 때문에 내가 고통을 받아야 한다니 좀 엉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속에 대해서라면 나는 셀 수도 없이 많이 어겨 왔다. 약속이란 어겨지기 위해서 있는 것이라는 익살도 있지만 너무도 많이 어겨 왔다. 조그만 시간 약속에서부터, 그대는 평생토록--- 사랑하겠는가 하는 물음에 대한 자신 있는 대답에 이르기까지. 그런데 이미 시효가 지난 하찮은 약속 때문에 마음을 쓰다니. 그러나 그것은 내가 아이들과 했던 마지막 약속이었다. 그 뒤로 나는 아이들과 아무 약속을 하지 못했다. 내가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들이 다시는 기대를 걸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2년이 흘렀다. 나는 문방구가 보이지 않는 것이 마치 2년 전의 시간에 지금의 거리가 한데 어울려 있기 때문이 아닌가 여겨졌다. 나는 과거의 시간에 현재의 장소를 걷고 있는 것이었다.

"실례지만 몇 시 됐습니까?"

나는 철물상 앞에서 누구를 기다리는 듯한 청년에게 물었다. 청년은 시계가 없다는 시늉으로 왼손의 소매를 걷어 보이고는 내 손목을 바라보았다. 나는 계면쩍게 웃었다. 나는 내가 차고 있는 손목시계는 마침 고장이 나서 물어 보았다고 알게끔 갸우뚱거리며 손목을 들어 시계의 문자판을 들여다보았다. 1210분 전이었다. 보통 때 같으면 회사 책상에 머리를 잔뜩 조아리고 점심 시간이나 기다릴 무렵이었다. 며칠 전 그 무렵에는 누군가 옆자리에서들 허무승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중국의 보화로부터 일어났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도 있었던가요?"

"글쎄."

"일본엔 그런 게 있었다고 하던데요."

"거 뭐 그런 게 있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구먼. 죄수가 쓰는 용구 같은 걸 뒤집어 쓰고 방랑했다던가. 피리를 불었다고들 하지."

"그거죠. 일정한 거처도 없이---”

그런 대화가 오갔던 걸로 기억된다. 나는 길가의 구멍가게 앞에 놓여진 의자에 가 앉았다. 이렇게 시간이 남는데도 불구하고 아침부터 바쁜 마음에, 회사에서는 예상 시간보다 일쩍 조퇴를 하였고 또 부랴부랴 택시를 탔던 이유는 무엇일까, 주인이 사이다 한 병을 가져왔다.

"근방에 어디 문방구 없습니까? "

가게 주인은 내 말이 암호처럼 들리는지 한참 동안 나를 응시했다. 나는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127분 전. 이제 몇 분만 견디면 된다.

"잘 모르겠군요."

가게 주인은 사이다 병을 나에게 건네고는 가 버렸다. 몇 분만 있으면 시작이다. 나는 기포가 솟아오르는 사이다를 병째 들이켰다. 목구멍이 확 막히는 듯하더니 한참만에 쿠르룩 쏟아져 들어갔다. 사이다란 유쾌한 액체인지 불쾌한 액체인지 알 수 없는 액체야, 나는 이제 연필 깎기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나는 왜 한낮에 여기서 서성거리고 있는 것일까. 어떤 열망이, 갑자기 새벽 잠 속에 빠져 있는 나에게 몰아닥쳐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을 몽롱하게 하고, 그래서 하나의 실상(實像)을 붙들려면 이 거리로 가서 네가 낳은 아이들을 만나라고 했던가. 아이들과 헤어진 지는 벌써 1년이 넘어 있었다. 아이들은 헤어지면서 말했다.

"아빠, 사진 있으면 한 장 줘."

나는 그때까지 아이들이 그렇게까지 우리들의 헤어짐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사진은 왜?"

나는 아이들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며 물었다. 작은애가 배식배식 웃었다.

"아빠 보구 싶을 때 꺼내 보게,"

대답은 또렷했다. 나는 이것이 바로 계집애들이구나 하고 애정을 느꼈지만 일련의 대화와 느낌은 이제 헤어진다는 게 실제로 다가왔구나 하는 묘한 체념 상태로 나를 몰아넣었다. 만남과 헤어짐에 대해서 나는 꽤 여러 가지로 생각을 했었다. 우리는 왜 만나고 만나져야만 하는가. 만나지 않으면 인생은 헛되다고 하는 말은 진정일까.

만남이 인생을 살찌게 하고 우리들의 삶에 의미를 부여해 준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했다. 그렇다면 헤어짐은 만남의 마무리로서, 만남을 완성시켜 주는 게 아닐까. 아무튼 나는 사진을 주지 않았다. 이야말로 주지 못했는지 안 했는지 모를 일이었다. 같은 서울에 살면서 사진

은 무슨 사진이야 하는 심정도 없지는 않았지만, 그보다도 이 녀석들이 벌써 이렇게 컸나 하는 느낌이었다. 아이들은 데리러 온 엄마의 손을 잡고 언덕길을 내려갔다. 엄마가

"아빠께 인사드려야지."

했을 때야 둘은 나란히 돌아서서 꾸벅하고들 인사를 했다. 나는 산동네의 언덕 위에서 잠시 그들의 뒤를 바라보았다. 아이들은 내가 그들의 뒤를 바라보는 걸 의식하는 발걸음으로 겅중겅중 내려갔는데, 뒤를 돌아다보지는 않았다. 이것도 물론 내가 그들을 보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고 해석된다. 언덕은 겨울에 눈이 오면 미끄러워서 어쩌나 할 정도로 가팔랐다. 언젠가도 나는 높은 곳에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애들이 아직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때였다.

"꽃을 따 올께."

나는 잠자고 있는 아내의 귀에 대고 말했던 때를 회상했다. 그러나 실은 곤히 잠들어 있는 아내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살며시 호텔 방을 빠져나와 새벽 공기를 마시며 걸어갔다. 이제야 행복이 내가 가진 그물 속에 들어왔다는 것이 참을 수가 없었음을 나는 알았다. 그래서 나는 새벽 공기라도 마셔야 되었다. 나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숲 속의 산 위로 올라갔다. 그 시절에는 꽃이 없었다. 10월 하순이었다. 나는 서리에 가까운 이슬을 밟으며 아무 목적 없이 올라갔다. 잠이 깰 시간에 대어서 내려갈 자신이 있었다. 그곳은 얼마나 높은 곳일까. 갑자기 사방은 숲의 바다였다. 얼마 동안 그 숲 속을 헤매면서 나는 미래의 아이들을 보았다.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은 태어난 아이들보다 뚜렷한 윤곽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들은 단풍잎 같은 손을 흔들었다.

그 뒤 나는 가끔 아이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그 얼굴을 오래도록 들여다보곤 하였다. 내가 조각가라면 그 얼굴을 볼 수 없는 상황에 이르러서도 똑같이 새겨 놓을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나는 그 아이들보다는 먼저 죽을 것이고, 먼저 죽는 사람은 나중 죽는 사람들의 모습을 마지막 순간에 제대로 기억하면서 숨을 거두어야 한다, 그것이 의무다라고도 느꼈다. 산 사람에게는 죽은 사람의 사진이라도 있지만 죽은 사람에게는 그것마저도 없을 것이었다,

사이다가 흘러서 옷 앞섶을 적셨다. 나는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아침에는 구두도 모처럼 닦아 신었던 참이었다. 헤어짐의 의미를 초라한 것에서부터 간직하게 해서는 안 되었다. 하나의 의미없는 얼굴이 의미를 던지게 해서는 안 되었다. 햇빛은 머리 위에서 내리비 췄다. 이제는 아이들을 맞으러 가야 할 시간이었다. 내가 아이들을 보려 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내 사진을 주지 못해서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아이들이 나에게 사진을 달라더라는 이야기를, 이제는 남이 되었다는 아내에게 천연덕스럽게 했을 때, 아내는 우리가 부부였을 때처럼 문득 웃었다. 그러고 나서 덧붙였다.

"그건--- 괜찮다구 해두 좋았을 껄. 집에 있으니까."

이때는 말을 마치고도 웃음의 여운을 지니고 있었다. 아내의 웃음에는 상대방을 의식하지 않는 소탈함이 있어서, 갑자기 찬 마리 밀화부리나 도요새가 화드득 날개짓하여 날아오르는 듯한 감이 있도록 목청을 열고 소리내어 웃는 것이었는데, 그때마다 나는 그 웃음에 넋을 잃곤 했었다. 그러니까, 어느 편이냐 하면, 바로 옆에서 예기치 못했던 작은 새가 날아오른다는 느낌을 즐기기 위해 나는 평소에도 그런 순간들을 기대하고 또 은근히 유발시키면서 지내왔다고 볼 수 있다. 남이라는 관념에 부딪치고 보니 이상스럽게도 언젠가 외박을 하고 기어 들어가던 아침, 어색한 허세를 부리던 내가 외롭게 떠올랐다. 그러나 그건 어쨌다 하더라도 새삼스럽게 이야기할 성질의 것은 아니다.

나는 바삐 학교 정문 앞으로 갔다. 지금까지 어정거린 데 비하면 딴판으로 서두르고 있었다. 오랫동안 실직했다가 새로 취직이 되어 첫 출근을 하는 사람처럼 공연히 걸음을 빨리했다. 더 많이 서두를 충분한 공간이 있었으면 싶었다. 곧 학교가 나타났다. 학생수가 늘어 날 때마다 증축에 증축을 거듭한 교사(校舍)가 창고처럼 우중충하게 앞에 다가섰다. 그 교사에서 일찌기 나를 비롯하여, 나와 10년 동안 결혼 생활을 한 여자와, 그리고 나와 그녀의 형제자매들이 똑같은 과정을 밟았다. 한 세대가 흘러갔던 것이다. 이제는 내 딸들이 역시 똑같은 과정을 밟기 위하여 그 안에 들어가 있었다. 내가 지나온 과정을 되밟고 있다고 생각하니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아이들이 무슨 건어물같이 생각되었다. 학교를 창고나 수용소처럼 보는 것은 전쟁을 겪은 사람들에게는 조금도 이상한 시선이 아닐 것이다. 전쟁 때는 당연히 그렇게 되기 때문이다. 갑자기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왔다. 드디어 2,3학년들의 하학 시간이 시작되고 있었다. 왁자지껄한 소리는 멀리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구름덩어리 같았다. 폭격에 의하여 창고가 폭삭 무너지면서 거기서 먼지가 솟아오르는 오리 같기도 했다. 그러자 아이들이 새까맣게 몰려나왔다. 공습 경보에 놀라 대피하는 시민들처럼 이리 몰리고 저리 몰렸다. 나는 그들 가운데서 헤어진 내 딸들을 만날 수 있다고 믿는 내가 어리석기 짝이 없다고 느꼈다. 더군다나 내 시력은 형편없었다. 그래서 아이들 쪽에서 먼저 나를 발견하고 달려와 주었으면 하고 바랐다. 이러한 수동의 자세 때문에 나는 죄를 짓고 피해 다니면서 도움을 청하러 온 사람처럼 기대와 의혹의 무력한 치욕감 사이에서 서성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보기엔 아이들은 하나같이 분노하고 있었다. 그들 자신도 모르고 있는 바겠지만 그들은 무슨 일인가 좀더 엄청나고 좀더 후련한 일이 밀어닥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음이 문명해 보였다.

", 지금 나오는 게 몇 학년이지?"

내 물음에 한 아이가 얼굇 유괴범 아닐까 하는 눈초리를 보냈다.

“3학년이요."

퉁명스런 대답이 왔다, 내 큰애와 같은 학년이었으나 나는 몇 반이냐고 묻지는 않았다. 나는 교문에 바짝 다가가서 아이들이 어느 쪽 길을 택하건 보이기 쉽도록 했다. 3학년과 2학년, 연년생인데도 둘은 항상 함께 다녔다. 일주일에 두 번은 3학년이 2학년보다 한 시간씩 수업이 더 있었는데, 그런 요일은 동생이 언니의 수업이 끝나기까지 창 밖에서 기다렸다. 그래서 겨울의 아주 추운 날은 거의 울면서도 끝내 기다리곤 했다. 그때 나는 이들 자매가 앞으로의 긴 인생의 여로에서 그들이 겪어야 할 기쁨과 슬픔을 어쩔 수 없이 함께 나누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 핏줄, 하고 중얼거리자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그렇게 늦게 깨달은 데 대해 나 자신에게 실망이 솟았다. 그때였다,

"아빠!"

역시 그들이 나를 먼저 보았다. 큰애는 머리를 뒤로 동여매어 제법 처녀티를 냈고 작은애는 긴 머리를 목덜미께로 내리고 있었다. 원피스와 긴 양말 차림에 분홍색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잘 있었니, 너희들?"

나는 가슴에 솟구쳐 오르는 걷잡을 수 업는 어떤 융기(隆起)를 느끼며 그것을 짓누르려는 듯 가슴에 손을 가져갔다. 아이들은 내 물음에 단지 고개만 몇 번씩 끄덕거렸다. 둘 다 생각보다는 여윈 편이었는데, 앵두 같은 입술은 여전했다. 앵두 같은 입술, 그것은 묘령(妙齡)의 여자를 묘사할 때 사용하는 용어는 아니었다. 언젠가 봄에 아이들은 뜰에 앵두나무를 심자고 성화였다. 나는 그 말을 들은 체도 않고 묵살해 버렸었다. 심을 장소도 없었으려니와 앵두나무의 그 다닥다닥한 자잘한 잎사귀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의 입술이 앵두처럼 느껴진 것은 그런 뒤였다. 봄철이 지나고 나서도 아이들은 여전히 앵두나무를 기억하고 있었다.

"내년에는 앵두나무 꼭 심자, 아빠,"

작은놈은 열심히 보챘다. 그러면서 그들은 사람들이 희망에 찬 미래를 갖고 싶어하듯이 그들의 마음속에 한 그루 희망의 앵두나무를 심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나는 그들의 입술이 앵두 같다는 데 대해 이와 같은 나 나름대로의 유추 근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은 누구나 자기 자신의 밭에 자기가 경작하여 수확한 인간상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상, 그들의 입술이 앵두 같다는 것은 나에게는 열망과 동경의 상징 같아 보였다. 나는 그 사실을 나만이 유추할 수 있다는 것이 무한히 기뻤다.

", 저쪽으로 가 볼까? 느네들 배고프지?"

"어디루?"

둘 다 눈을 두리번거렸다.

"짜장면 먹기루 할까?"

둘은 손을 맞잡은 채 잠시 곁눈질로 서로 쳐다보더니 그러자는 시늉을 했다. 나는 아이들을 만나기 전에 이미 보아 두었던 중국 음식점으로 향했다. 아이들과 함께 길을 걷는다는 사실이 꿈꾸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오랫동안 생활했던 거리도, 나도, 아이들도, 나아가서는 이 세상 자체도 꿈속에 있었다. 우리들은 신기루 속으로 한없이 걸어 들어가는 사람들 같았다. 나는 걸음걸이를 어느 먼 외계(外界)에서 익혀 가지고 온 것은 아닐까. 북극성(北極星)은 지구로부터 1090 광년(光年)이 떨어져 있다고 했다. 우리가 보는 그 별빛은 고려 시대의 별빛이라는 사실처럼, 현실은 천 년 이상이나 나와 격해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하기야 그렇게 되기를 원하고도 있었다. 피할 수 없으며 또 피해서는 찬 될 현실이 정면으로 다가오는 걸 두려워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나는 늘 우리들 모두가 어떤

별들을 고향으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여겨 왔던 것이다. 지구라는 별은 터무니없는 고도(孤島)에 불과했다.

갑자기 나는 아이들이 가련하게 보였다. 그들은 내가 죽은 훨씬 뒤에도 이 고도에 남아야 한다, 무서운 형벌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아이들은 나와 함께 중국 음식

점으로 올라가는 층계를 밟고 .있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보고 싶었냐는 둥 보고 싶었다는 둥 하는 말은 현실에 대한 확인이라기보다 부정에 가까웠다. 아이들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 계단은 지저분하고 침침했다.

흔히들 전생(前生)에 무슨 인연이 있으리라는 말들을 하는데, 나는 이때야말로 아이들과 내가 전생에 어떤 관계에 있었음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전생에서도 어느 지저분하고 침침한 골목을 걸어가지 않았을까. 그랬었다, 그랬었다. 문을 밀치고 들어가자 기름 냄새와 짜장 냄새가 한꺼번에 훅 끼쳤다.

"저쪽 창문 옆에 앉자."

아직 이른 편으로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아이들은 창문 옆자리로 가서, 등에 울러맨 책가방을 내려놓고 나란히 나를 마주 보고 앉았다. 나는 그 애들이 무엇보다도 짜장면을 즐겨 먹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 애들뿐만이 아니었다. 그 애들 또래의 아이가 중국집에서

혼자 무슨 비밀한 짓을 하는 시늉으로 짜장면을 먹는 것을 보게 될 때도 많았다.

"짜장면하구 군만두 시킬까?"

나는 아이들의 의사를 물었으나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아이들은 무엇이 어색한지 민물고기처럼 입을 쩍 벌려 보이면서 공연히 다른 자리로 눈길을 보냈다.

"아빠 맘대루. "

"어떻게 느네들 먹을 걸 아빠 맘대루 하니?"

"그래두."

"간짜장 할까?"

"아니."

결국 짜장면으로 통일이 되었다. 우리들 각자에게마다 물컵이 하나씩 놓였다. 나는 나무젓가락을 꺼내 두 쪽으로 쪼개어 아이들 앞에 한 벌씩 놓아주었다. 유리창을 통해 사선으로 비쳐오는 날빛이 아이들의 얼굴을 나이보다 숙성해 보이게 했다. 아이들은 시종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기묘한 인과(因果)라거나 왜 우리는 이렇게 만나야 하는가 하는 따위를 음미해 보고 있는 모습이다고 나는 생각했다.

"공부는 잘하니?"

이런 물음이야말로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다. 나는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기를 바란 적은 한번도 없었다. 아이들이 자신의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고 그 삶의 테두리 안에서 가식 없이 살아가기만 한다면야 무엇이 문제가 될 것인가.

"얘는요, 상장을 받았어요."

작은애가 언니를 가리키며 과장된 어조로 말했다. 갑자기 존대말을 하는 것이 우스웠다. 그런 언니에 대한 자랑스러움과 자기 성적이 언니만 못하다는 데 대한 자책감이 함께 어린 태도였다.

"그래? 잘했구나. 근데 언닐보구 얘가 뭐니?"

"아참, 언니, 언니, 언니."

순간 나는 연필 깎기를 사지 못했다는 것을 미안스럽게 여겼다. 지나간 약속 때문에 마음이 편치 못한 것은 나만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들이 잊어버렸다 하더라도 결코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니었다. 에너지 불변의 법칙에서와 같이, 약속과 기대는 모양을 바꾸어 우리들의 세상 어디엔가 깃들어 있을 것이다.

"그럼 넌 상장 못 받았구나?"

나는 작은애에게 물으면서 큰애를 바라보고 웃음을 띠었다. 큰애가 고개를 까딱한 것과 작은애가

"."

하고 모깃소리만하게 대답한 것은 거의 동시였다.

"얘는 음악 시험을 잘 못 봤대."

큰애가 말했다. 작은애는 안 그래도 좁은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혓바닥을 낼름 빼물었다. 내가 재빨리 손가락을 그 혓바닥에 갖다대자 그제서야 움찔하면서 혓바닥은 입 안으로 들어갔다.

", 바이엘까지 쳐 놓구선."

"난 있잖아요, 박자를 몰르겠어."

작은애는 시무룩하게 말했다, 나는 큰애와는 달리 작은애가 늘 초급 피아노 교본을 가지고 씨름하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얼마 열중하다가는 손을 놓아 버리고, 다시 뒤로 돌아가서 시작해서 몇 번 나아가다가는 팽개쳐 버리고,,,,,,전진과 후퇴를 거듭했다. 큰애는 바하 2성을 치고 있었다. 물론 같이 살 무렵의 일이지만.

"언니한테 배우면 되잖아. 언니한테 배워서 담번엔 잘 봐야겠다."

."

각오가 되어 있다는 듯 또렷하게 대답을 하고 난 작은애는 눈을 깜박거리며, 웃음을 띠고 있는 언니를 돌아보았다.

"언니, 배워 주지, 그치 응?"

"에에, 얘좀 봐, 내가 언제 안 가르쳐 줬니?"

작은애는 잠시 머쓱해져서 내 눈치를 살폈다.

"한번만 더 가르쳐 주믄 되잖아. "

나는 작은애의 편을 들어 주었다. 그러자 작은애는 금방 생기를 되찾았다.

그래. 한번만 더 갈켜 줘, ? 한번만."

작은애는 큰애 쪽으로 바싹 몸을 기울이고 사정했다. 큰애는 그러마는 시늉으로 눈을 꿈벅거리며 작게 턱짓을 해 보였다.

"고마워, 우리 언니."

작은애가 손을 큰애의 뺨에가 갖다 대고 비비자 큰애는 피하면서도 싫지는 않다는 표정이었다. 고마운 것은 나였다. 그들을 낳은 우리 부부는 헤어졌으며, 그 와중에서 그들이 감당해야 했던 고통이 어떠했을까 하는 것은 줄곧 내 마음을 무겁게 짓눌러 왔다. 그런데 그들의 모습에서는 의외로 고통의 그림자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웬일인지 어두운 밤에 그들이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세상을 원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빤 요새 뭐 해?"

갑자기 큰애가 물었다.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무엇에 대해 묻는 것일까. 단순한 근황을 묻는 말이 아니라 그들의 불행에 대한 힐책까지 포함된 말이라고 받아들여졌다.

"아빠두,,,,,,열심히 살고 있다. 회사를 다니고,,,,,,글도,,,,쓰면서 말야."

나는 더듬거리며 간신히 말했다. 열심히 살고 있다는, 추상적이고 공허한 표현을 할 수 있을 뿐인 내가 심히 못마땅했다. 아이들은 생각에 잠긴 듯한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글을 쓴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설명할 길은 도저히 없는 일이었다, 글을 안 쓸 수 있다면 아마 더 행복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아울러 이렇다할 글을 쓴 적이 있었던가 하는 자괴감 때문에 괴로워하면서도 나는 일종의 조건 반사처럼 몇 줄의 글을 n적이는 것이었다. 아닌게아니라 언젠가 그들은 그렇게 물은 적이 있었다.

"아빠, 글은 왜 쓰는 거야?"

나는 가슴에 베개를 받치고 엎드려 있던 자세로 고개를 돌렸다.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나는 세월이 좀더 흐르면 거기에 대해 서로가 토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돈을 벌기 위해서야."

나는 내가 글을 써서 돈을 벌 전망은 전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에게

"사람은 뭔가 해야 하고, 아빠는 다른 건 아무것도 할 게 없기 때문이란다."

어쩌구 넋두리를 늘어놓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종업원이 짜장면 세 그릇과 군만두 하나를 한꺼번에 가져와서 대화는 중단되었다. 아이들은 내가 하는 대로 나무젓가락을 들고 면을 뒤섞기 시작했다. 체형이나 얼굴이 둥근 큰애는 마치 집게발을 쳐든 게처럼, 갸름한 작은애는 마치 집게발을 쳐든 가재처럼 젓가락질을 하고 있었다.

", 먹자."

우리는 일제히 먹기 시작했다. 매우 감상적인 감회가 밀려왔다. 이렇게 한 끼를 먹고 도 각자의 삶의 터전으로 헤어져 가야 한다는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이빨이 흔들려서 잘 못 먹겠어."

큰애가 입을 벌려 보이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큰애는 이빨이 하나 빠져 있었다.

"이빨을 가는구나, 옆으로 살살 먹으렴."

"밥을 먹다가 뭐가 딱딱한 게 있어서, 봤더니 글쎄 이빨이었대."

작은애가 대신 설명했다. 나는 이빨이 흔들리면 빨리 뽑아야 고르게 난다고 말해 주었다. 그러자 작은애가 말을 가로막았다.

"아빠 이빨두 삐뚤빼뚤해. "

둘은 히히 하고 웃었다. 다시 먹기 시작했다. 우리는 정작 나누어야 할 말이 따로 있음을 의식하면서 먹는 데 열중했다. 해결할 길 없는 비리(非理)는 영원한 금기(禁忌)로 남겨 두어야 하는가. 거의 다 먹어갈 무렵 나는 작은애가 눈께 띄게 몸을 비틀며 불편해하는 것을 발견했다.

"왜 그러지, 어디가 가렵니?"

이렇게 묻는 순간 나는 그애가 물것을 잘 탄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 갈그러워. "

작은애가 얼굴을 찡그렸다.

"얘는 가렵다는 걸 갈그럽대. 우습다."

큰애가 손가락질을 했다.

"어디 보자, 모기한테 물렸구나. 봐 어디야? "

나는 테이블 옆으로 돌아가 무릎을 굽히고 아이가 긁고 있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원피스 자락을 걷어올리자 긴 양말과 팬티 사이의 허벅지에 생각보다 커다란 물린 자국이 여럿 있었다. 부조(浮彫)처럼 도드라진 부위는 빨간 과육(果肉) 같았다.

"모기향을 피우고 자렴. 모기장도 치고."

나는 자리에 돌아와 앉으며 말했다. 전에도 늘 그랬다. 모기향을 피운다거나 모기장을 친다거나 했지만 언제 어디선가 물리기 시작하여 심한 해는 온몸이 부스럼 투성이가 되곤 했다. 딱딱한 부스럼 딱지는 작은 거북새끼들처럼 달라붙어 있었다. 여름을 탓할 수밖에 없었 다. 이제 고통스러운 여름이 그 애의 허벅지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긴 여름 동안 그 애가 모기에게 일방적으로 물어뜯기면서 긁어서 진물이 나고 부스럼 딱지가 앉은 험집과 함께 지내야 한다는 사실 앞에 분노가 끓어올랐다. 물론 나는 그 분노가 모기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나 자신에 대한 막연한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분노는 썩은 웅덩이가 부글부글 끓듯이 내 몸 속에서 악취를 풍기며 끈끈하고 답답하게 끓고 있었다. 썩은 물고기들, 썩은 개구리들, 썩은 지렁이들로 걸쭉하게 뒤엉켜 부패한 물 그 속에서 장구벌레들은 수없이 팽글팽글 맴돌며 살고 있었다,

휴지로 입가를 닦자 헤어질 순간은 성큼 다가왔다. 나는 아이들에게 미래에 대한 어떤 희망과 긍정적인 삶에의 매진 따위를 이야기해야 한다고 느꼈으나 입을 뗄 수가 없었다. 내일부터 다시 직장에 나가 일에 매달릴 일이 위선같이 느껴졌다. 나는 울적한 심사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한낮에 헤어져야 하는 일은 이상한 결말이었다. 나는 혼란에 가득 찬 머리를 가누기가 힘들었다. 나는 결국 아이들에게 한없이 무력하고 또 한없이 조야(粗野)한 인간상만 보여 주었을 뿐이었다. 이제 그들은 나에게 앵두나무를 심자고 말할 권리를 빼앗겼다.

모기에게 물리며

"아빠 모기 좀 잡아 줘."

하고 외칠 기회도 빼앗겼다. 대신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수많은 불가해한 이별이었다. 나는 어서 아이들과 헤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썩어 가는 모순의 늪에서 몸을 빼야 하는 것이었다. 문제의 해결이라기보다는 도피였다. 나는 계단을 걸어 내려오며 내가 휘청거린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어디까지 도피해야만 한단 말인가. 환한 길로 나서자 머릿속이 희석된 듯이 흐리멍덩해졌다. 사물들이 어른거렸다.

"아빠는 일을 보러 가야 해."

나는 침통하게 중얼거렸다. 아이들이 마네킹같이 서 있었다.

"몸 건강하게들 있어야 한다. 건강하게,,,,,,알았지 ? "

숨이 막혀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

둘이 똑같이 대답했다. 나는 죄를 지은 사람처럼 쫓기는 몸짓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끝없는 공백 상태 속으로 피로와 권태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몸을 돌려 몇 걸음 걸어가다 뒤를 돌아다보았을 때 아이들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나는 가슴이 뛰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허덕거리며 발걸음을 옮겨놓았다. 세상 끝까지 도피해야 한다. 나를 모욕하고 비난하고 학대하고 비웃지 않으면 안 쬐리라. 나는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술집이었다. 그러나 나는 술이 나를 구원하지도, 철저히 매도하지도 못하리라는 것을 또한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 무엇 때문에? 모기 때문이라고 해두자.

내가 나에게 가해야 되는 아픔의 양이 어느 정도인지 측정할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나는 구원받은 느낌일 것이었다. 나는 무작정 걸어갔다. 세계를 이루고 있는 질서라든가, 이를테면 아르케, 이데아, ()와 기() 따위의 아슴푸레한 개념들이 획획 머리를 스쳐갔다. 그것들은 도대체 무엇이었던가. 한 걸음, 한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옛날에 세화라는 계집애가 있었다. 그 애는 지금의 내 딸들과 마찬가지로 어리디 어렸다. 그런데 그 애는 그만 죽고 말았다. 아이들이 우우 몰려 바닷가로 갈 때도 우리는 둘이서만 놀았다. 우리는 둘이서 의사 놀이도 했다. 서로가 옷을 벗고 서로를 진찰하는 놀이였다. 건강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그 애는 자기의 사타구니를 벌리고 모래를 뿌렸다. 낄낄낄낄, 우리들은 제법 농후하게 웃음을 흘렸다. 그런데 그 뒤에, 새도 못 타 보고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 버렸다. 영원히 죽어 버린 것이었다. 전쟁도 끝날 무렵이었다.

나는 어느 집에서 얼마나 술을 마셨는지 기억할 길이 없었다. 다만 나는 술집 주인 여자가

"세화를 아세요? 그앤 곰보였지요"

하고 말했다고 생각되었다.

"그 애가 곰보였다구요?"

나는 물었다.

", 그 앤 곰보였어요. 시집가서 애를 낳다가 죽었지요."

그 여자는 혀를 찼다.

"맞아요, 그 앤 죽었어요. 왜냐하면 우린 살았으니까요."

나는 중얼거리며 연거푸 들이마셨다. 낮부터 퍼마신 술이라 겨우 초저녁인데도 엉망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도피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는 알 수 없는 거리로 다시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내가 비틀거린다기보다 땅이, 지구가 비틀거리는 것이었다.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같이 똑같아졌다.

옛날에 세화라는 계집애가 있었습니다. 그 애는 겨우 소꼽장난을 하다가 죽었습니다. ,,,,,,나는 그 애의 얼굴을 기억해 보려고 애썼다. 결코 떠오르지 않았다. 아득한 시간과도 같이 망각 속에 파묻혀 버린 일들이었다. 나는 걸어가면서 시간은 무덤이라고 생각했다. 딸들도, 아내도 가뭇없이 모습을 감춰 버리고, 그리고 시간의 고분(古墳) 속에서 묘연히 걸어나온 죽은 소꼽친구. 헤어짐의 의미에 현혹된 것일까. 삶 전체가 결국은 소꿉장난의 연장에 불과하다는 것일까. 나는 제멋대로 가사와 곡을 붙여 노래를 불렀다.

옛날에 우리는 살았답니다. 지금이 옛날이지요. 무덤 속에서 정답게 살았답니다.,,,,,, 유령처점 허위적거리며 걷노라니 눈물도 나지 않았다. 이윽고 나는 묘지에 이르렀다. 시간의 공동묘지였다. 한 여자가 내 앞을 막아섰다.

"어디로 가시나요, 손님?"

"난 무섭습니다. 무서워요. 그래서 세화라는 여자를 찾습니다."

잠시 말이 없었다. 그 여자는 내 눈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내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릴 길이 없을까 초조했다. 시간의 무덤 속으로 기어 들어가, 죽은 소꼽동무의 말랑말랑한 해골을 베고 잠들고 싶었다. 나는 주머니에서 가불한 돈을 꺼내 여자의 코앞에 들이댔다. 이만하면 진실을 이해해 주겠냐.

"오세요. "

여자는 해골처럼 웃었다. 어떤 무덤 속으로 안내된 나는 이제 더 이상 도피할 수 없다는 절망과 안도감 속에서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난 세화를 찾습니다. "

나는 간신히 말했다.

"염려 놓으시라니까요. "

나는 어두운 연도를 더듬거리며 걸어가고 있었다. 어디선가 희끄무레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나는 염()을 할 때 입에 넣어 준 생쌀을 씹으며 그 빛을 따라 한없이 걸어 들어갔다. 어둠 속에서 갑자기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내더니 제지했다. 그는 내게 누구인지를 물었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히쭉 웃었지만 여전히 화가 잔뜩 나 있었다.

"당신이 누군지 모른다면 알 때까지 죽을 수 없소."

그는 선언했다. 나는 죽을 수도 언다는 말에 슬픔이 북받쳤다. 아득한, 막막한 정체 불명의 두려움이 전신을 감쌌다. 세화 계집애를 올라타고 복상사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한 마리 모기를 발견한 것은 다음날 아침이었다. 나는 벌거벗은 몸으로 일어나 옷을 입을 염도 하지 않고 서성거렸다. 빈 방은 정말 무덤 같았다. 나는 몽유병 환자처럼 방안을 왔다갔다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어제 그리고 내 삶 전체에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몽롱하게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내가 있는 낯선 별은 수백 년이나 지난 뒤에 비춰질 빛을 희미하게 뿜으면서 사위어 가고 있었다.

모기 한 마리가 구석 벽에 붙어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들여다보았다. 못을 박다가 망치로 잘못 때린 손가락의 피멍처럼 피를 채우고 있는 모기. 검지손가락으로 꼭 누르자 모기는 본래부터 그랬던 듯이 납작하게 벽에 달라붙었다. 어둠 속에서 그토록 앵앵거리며 피를 빨기에 여념이 없는 모기가 또한 그토록 맥없이 죽어 버린다는 일이 어이가 없어서 나는 피식 운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벌거벗은 것도 잊고 한동안 서 있었다.

 

 

 

 

 

 

 

 

 

 

 

 

 

 

 

 

 

 

 

 

 

 

 

 

 

 

 

새의 초상(肖像) 윤후명

 

 

내가 그녀를 만난 것은 팔색조와 아마도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나는 분명히 팔색조를 찾아 그 작은 섬에 갔다가 그녀를 만났다. 그러나 그녀를 만나리라는 어떤 예감 같은 것은 없었다. 하기야 예감이란 한낱 쓰잘데 없는 기대나 우려에서 오는 나약한 정신의 소산이라고 볼 때, 나는 분명히 어떤 예감이나마 가졌어야 했다.

나는 그만큼 지쳐 있었고 또 허물어져 있었다. 내가 팔색조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것은 처음 뭍을 떠나 낯선 섬에 발을 들여놓았을 무렵이었다. 팔색조. 이름 그대로 몸 빛깔이 여덟 가지로 알록달록한 새라고 했다. 그러나 그 새가 이름난 것은 알록달록한 아름다움도 아름다움이지만, 워낙 희귀조라는 데 더 큰 이유가 있는 듯했다. 새에 대해서 조예도 없을 뿐만 아니라 별다른 관심도 없는 내가 처음에 건성으로 들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여름을 꼬박 그 섬에서 나기로 하고 갔던 나는 하루하루 가면 갈수록 지루해져서 무엇엔가 관심을 기울일 대상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마침내 ', 그런 게 있었지' 하는 심정으로 팔색조를 찾게 되었다.

그 섬은 우리나라 섬 가운데서 몇째쯤 가는 큰 섬으로서 조금만 안으로 들어가면 산협이 왜 깊었다. 그것은 그 점이 화산도가 아님을 알려 주는 한 특징이기도 했다. 화산도라면 커다란 분화구를 정점으로 능선이 기슭가지 길게 늘어뜨려진다. 그 기슭에 바닷물이 찰랑거린다. 그래서, 알기 쉽게 말하자면, 화산도는 커다란 따개비 모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섬은, 어렵게 말하자면, 습곡인지 융기인지 하여튼 그런 종류의 지각 운동으로 생긴 섬인 것이다. 섬 안쪽에서는 상당히 높은 곳일지라도 바다를 볼 수 없다. 따라서 섬 안쪽은 깊은 내륙의 한 부분으로 여겨질 만한 곳이 많다.

그러나 나는 그 섬의 이름을 굳이 밝히지 않기로 한다. 밝히지 않아도 알 만한 사람은 알 수 있을 것이며 또 모른다고 해서 지금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아무런 지장도 주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섬에 의외로 깊은 내륙 같은 곳이 많다고 했다. 그렇다면 태고의 모습을 간직하여 이른바 자연 보호가 잘 된 곳이라는 뜻이 된다. 물론 섬 안쪽은 이미 말한 대로 내륙의 오지 같아서 자연은 글자 그대로 자연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섬의 바깥쪽에 있는 한 포구야말로 섬의 안쪽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 포구, 얼토당토않게 들떠 있으며 섣부른 도시화로 얼룩진 이 포구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때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내가 상상했던 그런 포구와는 거리가 멀었다, 갈매기가 끼룩끼룩 날며 섬 아낙네가 조개를 줍는, 그리고 작고 아늑한 백사장에 고깃배가 와 닿는 그런 포구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것은 내 상상력의 허구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 포구에는 갈매기도, 조개도, 그리고 고깃배도, 내가 생각했던 포구대로 있을 것은 다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내가 상상했던 포구가 아니었다. 왜 그랬던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선창 앞에서부터 줄지어 늘어서 있는 이른바 요상한 술집들 탓이었을 것이다. 그 술집들은 야단스러운 그 이름에서부터 '이곳은 예사 동네가 아닙니다'라고 말해 주고 있었다. 낮에 술집 앞을 지나노라면 하늘하늘한 얇은 천으로 된 긴 잠옷을 걸친 호스티스들이 아무 거리낌없이 문밖까지 들락거렸다. 그저 걸쳤다는 의미 뿐으로, 속살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그 잠옷 속에서 여자는 작고 까만 브래이저와 역시 작고 까만 팬티차림이었다. 포구에 대한 내 상상력은 여지없이 깨어져 버렸다. 이를테면 바닷가 모퉁이 백사장을 홀로 거닐며 알지 못할 어떤 그리움으로 눈물짓는 국민학교 분교 여선생 대신에 까만 팬티 차림의 접대부!

그리고 아예 영문자로만 씌어진 간판에서부터 은좌, 황태자, 귀빈, 성좌, 목좌, 러브, 파인트리, , 돌고래, 모두랑, 무랑루즈, 석등, 천궁회관 등등 요란한 이름의 술집들.

그러니까 그 포구를 찾아간 것부터가 잘못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나는 그곳에서 여름을 지나며 그곳에 관한 어떤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되어 있었다. 먹고살기 위해서 맡은 일인만큼 좋으나 싫으나 여름 동안 그 포구는 내 일터였다.

포구에서 얼마를 보낸 어느 날 바는 그 섬에 딸린 한 작은 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미 진력이 왜 나기 시작한 때였다.

"거길 가 보셨습니까?"

작은 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사람은 내가 그 섬에서 나쁜 인상만을 가지고 있다가 떠날까봐 걱정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그곳의 동백나무를 이야기했고, 그러나 지금은 동백꽃을 볼 수 있는 계절이 아니어서 유감이라고 덧붙였다.

"동백꽃이 필 때 다시 한번 와야겠군요."

나 역시 그의 뜻에 동조한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나 실은 나는 내가 동백꽃을 보러 일부러 어디로 찾아갈 만큼 동백꽃에 대하여 성의를 가지고 있지는 못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동백나무의 잎과 꽃은 내게는 색깔이 너무 짙은 것이다. 그러자 그가 이야기한 것이 팔색조였다. 여름철 철새이므로 벌써 날아와 등지를 틀었을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하긴 팔색조가 그 섬에까지 오느냐 안 오느냐 하는 문제는 여러 사람들이 왈가왈부하고 있지만요."

더 남쪽으로 가면 팔색조가 날아와 '호오이 호오이' 하고 우는 소리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으나 그 섬에서는 들었다는 사람과 들을 수 없었다는 사람이 반반이라는 것이었다.

"호오이 호오이 우는 것은 암놈이고 수컷은 꿔어이 꿔어이 울지만요, 암놈 소리는 꼭 숲 속에서 사람이 부르는 것 같아요. 호오이 호오이."

"새가 큰 모양이지요? "

"아뇨. 참새만 해요. "

처음에 섬에 갔을 때도 누군가가 그 새를 이야기해 준 적이 있었다. 나는 건성으로 들어 넘겼었다. 그런 것에 관심을 기울일 만큼 여유가 있지를 못했다. 그러나 그 포구의 정떨어지는 한심한 분위기가 어쩔 수 없이 내게 새로운 무엇에의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게 했다.

팔색조가 아니어도 그만이었다. 그때 팔색조가 나타난 셈이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팔색조를 어텅게 해 보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은 쉽사리 세울 수가 없었다. 회귀조이므로 잡아서는 안 될 것이며, 또 내 솜씨로 잡을 방법도 없었다. 물론 내가 사진 작가쯤 된다면 흔히 신

문에 나듯이 '팔색조 사진 촬영에 성공' 따위로 소개하기 위해 카메라에 담기를 시도해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어느 편이냐 하면 카메라와도 거리가 멀었다. 찍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찍히는 것조차 젬병이었다. 어쨌든 나는 심심풀이 삼아서라도 그 새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고 비로소 사전을 펼쳤다.

 

팔색조과에 속하는 새. 개똥지빠귀와 비슷한데 날개 길이 12-13센티 미터, 꽁지 3.5-4.3센티미터, 부리 2-3센티미터이고 배면은 녹색이고 머리는 흑다색이며 중앙에 흑색 세로줄이 있음. 꽁지 무늬는 황백색, 얼굴은 흑색, 소우복과 상미통은 청색, 가슴은 담황갈색이고 목과 복부는 백색, 하복부 이하 하미층은 선홍색임. 깊은 숲 속에 한 마리씩 살며, 곤충, 지렁이, 새우 등을 포식함. 5-7월에 4-6개의 알을 낳음. 여러 가지 빛이 잘 조화된 아름다운 철새로 남부 중국 및 대만 등지에서 여름에 한국과 일본 특히 제주도의 한라산 산림 속으로 와서 번식하고 가을에는 돌아감,

 

내가 팔색조를 찾아 그 작은 섬으로 떠난 것은 그런 지 며칠이 지나서였다. 팔색조를 록 찾겠다는 결심은 아니었다고 해야 옳다. 그 작은 섬에 팔색조가 날아와 깃든다는 데 대해서는 여러 사람들이 '왈가왈부하고' 있는 문제라고 했었다. 그러니까 팔색조를 볼 수 있다거나 아니면 울음소리라도 들을 수 있다거나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굳이 팔색조를 찾아서 가는 것이라고 명분을 내세우고 싶었다. 그 섬에 팔색조가 오든 안 오든 상관이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내가 그 섬으로 팔색조를 찾아간다는 것이다. 그것만으로 족했다.

좁은 해안통 길을 걸어가면 어협 공판장 옆으로 도선 선착장이 있었다. 그곳에서는 그 작은 섬이 먼 바다 위에 흐릿하게 떠 있는 것을 볼 수 있기도 했다.

"배가 언제쯤 있을까요? "

배표를 판다는 곳은 구멍가게의 한쪽을 빌어 작은 철제 책상 하나를 놓은 곳이었다. 나는 '수시로 떠남'이라고 적힌 안내판을 쳐다보며 공허한 느낌이 들었다. 수시로 떠난다는 말은 경우에 따라서는 안 떠날 수도 있다는 말과 같았다

"기다려 보십시오. 인원이 차면 떠납니다, "

"인원이 차면요?"

."

"언제쯤 찰까요?"

"글쎄요. 기다려 보십시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중년 사내는 자기로서도 도저히 잘라 말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듯 시종 어중간한 표정을 지었다.

"기다리다가 사람들이 없으면 어쩐답니까?"

"할 수 없지요. 그러니까 기다려 보라는 것 아닙니까?"

기다려 보라는 것만이 그가 할 수 있는 말의 전부였다. 기다리다가 허탕을 치더라도 그것은 엄연히 내 탓이지 그의 탓은 아니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어이가 없었으나 나는 뭍을 떠나온 지 여러 날이 지나면서 그것이 뱃사람들에게는 극히 보편화된 논조임을 얼마쯤 터득

하고는 있었다. 바다의 기상 변화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었다. 봄철에서 여름철로 넘어오는 동안의 날씨는 특히 변덕이 심해서 걸핏하면 무슨 주의보로 뱃길을 가로막았다. 때마침 해마다 그때쯤이면 찾아드는 농무기의 안개. 여객선 앞머리마다 길게 두른 '농무기 안개 사고 예방'의 플래카드. 안개란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멀리 까지 시야가 훤히 의어 있어도 안개만 어느 정도 끼었다 하면 배들은 꼼짝을 못했다. 게다가 그 안개가 언제 걷힐지는 아무도 모르는 그야말로 오리무중의 일이었다. 그 안개를 필두로 파랑과 호우와 폭풍들.뱃사람들은 이런 것들에 늘상 부대끼며 살고 있는 것이었다. 뱃길이 막혔을 때의 섬 사람들은 마치 수인처럼 보였다. 뱃사람뿐만이 아니라 전혀 바깥으로 나갈 일이 없는 사람마저 안절부절을 못했다. 그 눈에 어린 빛은 절망의 빛에 가까웠다. 그럴 때면, 술타령하는 남정네들의 발걸음에 못지 않게 여인네들의 발걸음도 심하게 뒤뚱거리는 것만 같았다.

그 날 꼭 배를 타고 가지 않으면 안 될 무슨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이왕에 길을 나섰고 또 달리 할 일도 없었던 나는 선창가를 오락가락하며 기다려 보기로 했다. 말이 기다린다는 것이지 이제는 나중에 배가 없다고 하더라도 탓할 생각은 없었다. 내가 그 섬에 가려는 것은 팔색조와는 아무 상관도 업음을 나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팔색조가 있다고 해도 알아 볼 능력이 없을 뿐만이 아니라 '호오이' 소리나 '꿔어이' 소리를 듣는다고 해도 그것은 내게는 아무런 값어치가 없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뱃사람이 그곳에는 왜 굳이 가려고 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팔색조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으리라. 팔색조를 내세우지 않고 그 상황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사물과 인간을 향한 내 끝없는 갈증, 항상 막막하여 근원을 알 수 없는 그리움 따위부터 이야기해야만 했다. 도저히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다행히 배편이 마련되어서 막상 배에 올라탔을 때 나는 팔색조에 대해 조그만 관심도, 흥미도 느끼지 못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저 섬에 가는가. 그것은 하나의 탈출의 시도가 아닐까 하고 나는 문득 생각했다. 모든 여행은 하나의 탈출을 꿈꾸는 뜻을 지녔다. 그러나 그 꿈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꿈에 불과하다. 마침내는 보금자리를 찾아 되돌아가는 것을 전제로 한 탈출이기 때문이다. 나는 공연히 우울해진 심정으로 이런저런 생각에 가져 들어갔다. 배에는 밤낚시를 하러 가는 것으로 보이는 중년 사내 일행 세 사람과 젊은 남녀 두 쌍과 나 이렇게 모두 여덟 명의 승객이 타고 있었다. 섬에는 몇 가구의 집이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민박도 가능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때까지도 하룻밤을 묵어 올지 어쩔지를 결정짓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탈출을 꿈꾸고 배를 탔다면 그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은 그것으로써 이미 목적성을 잃은 것이었다

"이 정도면 파고가 몇 미터쯤 되나요?"

나는 무엇엔가 흥미를 나타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 일 미터쯤 되죠."

배의 조수라고 짐작되는 청년이 좌우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일 미터의 파도 높이에도 배는 상당한 경사를 이루며 기울어지곤 했다. 멀리서 보면 마치 환초(環礁) 같던 섬은 가까이 갈수록 험한 바위섬의 모습을 확연히 드러냈다. 섬의 바위덩어리들은 미증유의 거대한 짐승 의 머리뼈 같았다. 군데군데 음영이 드리워진 채 바닷물에 해맑게 씻겨진 머리뼈. 그리고 그 정수리에는 주검의 머리에서도 얼마 동안 자란다고 하는 머리털처럼 쭈볏쭈볏 자라고 있는 짙은 녹색의 나무들. 어느덧 배가 엔진을 멈추는가 하더니 다시 ', , , ' 역스크루를 돌렸다. 속력을 줄여 접안하려는 것이었다.

섬은 예전에 일본군의 중대가 주둔했다고 하듯이 천연의 요새였다. 턱뼈처럼 돌출된 바위벽의 옆을 타고 섬의 위쪽으로 오르는 길은 몹시 가팔랐고, 마치 부서진 머리뼈의 일부를 복원해 놓은 듯 시멘트로 덮여 잇었다. 같이 타고 온 승객들이 서둘러 사라진 뒤 나는 어슬렁거리며 그 길을 따라 올라갔다. 벼랑 아래로 햇빛이 바닷물에 부딪쳐 눈부시게 반사되었다. 벼랑에 붙어서 산나리 꽃이 피어 있었다. '경고. 이 지역은 풍치 지구이므로 어로 행위 및 해산물 채취 행위를 금함.' 빛 바랜 경고판으로부터 갑자기 숲이 우거지면서 하늘까지 가리워진 길이 굴 속같이 뚫려 나갔다, 섬에 도착하기 전 배에서 바라다본 느낌과는 달리 숲은 울창했다. '이런 숲이라면 팔색조가 깃들만도 하군.' 나는 팔색조가 깊은 숲 속에 산다고 한 사실을 상기했다. 한참을 올라가자 대나무 숲을 지나고 드디어 동백나무 숲이 나타났다. 어느새 기울어 가는 오후의 햇빛에 그 잎사귀들은 무디게 반짝이고 있었다. 어떤 동백나무는 바오밥나무처럼 꾸불꾸불 가지를 벌리고 아름드리로 자랄 수도 있음을 나는 처음 알았다. 나는 그 나무 아래 앉아서 담배를 피워 물었다.

동백나무는 섬의 뒤쪽에도 우거져 있었다. 청동 빛을 떤 풍뎅이들이 둔중하게 날고 있는 나무와 나무 사이로 넓게 트인 바다가 내다보였다. 나는 빠끔히 뚫려 있는 샛길을 미끄러지면서 아래로 내려가 보았다. 파도가 부딪치는 곳은 바위투성이였다. 그 바위를 조심스럽게 돌아 내려가자 문득 낚시꾼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같은 배를 타고 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이제 막 낚시바늘에 갯지렁이를 꿰어 바다에 던지고 있는 참이었다.

"여기선 고기가 많이 잡힙니까? "

나는 아는 체를 하면서 다가갔다.

"전에 왔을 땐 많이 낚았는데 두고 봐야지요."

한 사람이 이빨을 드러내며 웃음 띤 얼굴로 대답해 주었다. 나는 그들과 적당히 통성명을 하고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

"빨리 깜싱이 한 마리 낚아서 서울 분 잡숫게 해야 할 텐데."

장사를 하고 있다고 한 사내가 역시 웃으며 말했다. '깜싱이''감성돔'의 사투리였다. 그는 첫눈에 보아도 낚시에는 꽤나 이골이 나 있는 사람 같았다. 그에 따르면 낚시터에 도착해서 몇몇 곳에 종이쪽지를 구겨 던져 물이 빙빙 도는 곳을 찾는다고 했다. 그 한가운데에 낚시를 넣으면 이제는 그저 연신 건져 올리는 것만이 일이라고 했다.

"나중엔 팔이 아파서 못 건져 올립니다."

그는 그런 경험이 있음을 자랑하듯 으쓱거렸다. 그때 '' 하는 소리와 함께 앞자리의 사내가 낚싯대를 채어 올렸다. 과연 한 마리가 파닥거리며 달려 올라왔다.

"뭐꼬?"

"술비이, 술비이."

고기는 낚시바늘을 의외로 깊이 삼키고 있었다. 아가리를 벌리고 낚싯줄을 세게 잡아당겼는데도 쉽사리 빠지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가차없이 칼을 집어 아가리로부터 몸통을 가르고 낚시를 꺼냈다. '술비이'의 정확한 발음은 '술뱅이'였다. 비단고기라고도 하고 용치라고도 한다고 했다. 갓 잡아 올렸을 때의 비단고기는 이름대로 빛깔이 고왔다. 거의 말짱한 채로 두어도 일단 잡힌 놈은 금방 죽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맛도 훨씬 떨어진다고 했다. 첫 고기를 잡은 뒤 불과 몇 분이 지나지 않아 세 마리의 비단고기가 잇달아 올라왔다. 그와 함께 장사꾼 사내가 돌아앉아 익숙한 솜씨로 회를 뜨기 시작했다. 나는 만약에 기회가 오면 나도 저렇게 해 보리라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바라보았다. 이곳에 생선회 뜨는 방법을 배우러 왔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느새 시간이 상당히 흘러 있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선 것은 비단고기를 비롯해서 노래미, 볼락 같은 생선을 맛보고 나서였다. 그때 마침 베도라치라는 물고기가 올라왔는데 단검만한 길이의 뱀장어를 닮은 이 거무튀튀한 물고기는 남의 것을 빌린 것처럼 쭈글쭈글하고 헐렁한 껍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나는 그 흉측한 몰골이 끔찍해서 급히 일어났다,

"뱃시간이 급하군요. 먹다 보니 너무 늦었어요. "

나는 감사하다는 표시로 허리를 약간 굽혔다. 사실 뱃시간은 아직 조금은 여유가 있는 듯했으나, 앉아 있다가 저 흉측한 물고기의 살을 먹게 되는 변을 당해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서둘러 왔던 길을 되돌아왔다. 섬을 떠날 것인가, 하루를 묵어 갈 것인 가에 대해 나는 여전히 결정하지 못한 채 무심코 선착장까지 걸음을 옮겨 놓았다. 낚시꾼들에게서 회에 곁들여 얻어먹은 술이 적당히 올라 있었다. 선착장에 이른 나는 간단한 음료수와 술을 파는 가게의 노인에게 배가 언제쯤 오느냐고 물었다.

오늘은 없습니다. 저기,,,,,,갔입니다. "

노인이 턱으로 바다를 가리켰다. 저쪽 히끗히끗 이는 물결을 헤쳐 나가는 작은 배가 있었다.

"틀렸군요. 빨리 온다고 왔는데."

나는 낙망한 듯 말했다. 그러나 노인의 말을 들어 본즉, 비록 내가 섬을 떠날 의지를 가지고 선착장으로 왔다고 하더라도, 내 쪽에서 늦은 것은 아니었다. 갑자기 파도가 높아지기 시작하여 배가 예정보다 좀 빠르게 떠나가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하 참 낭패로군요."

나는 멀어져 가는 배를 바라보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물론 나는 조금도 낭패를 했다거나 어이없는 심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내 의지로 그렇게 결정하지 않아도 좋게 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었다.

"민박을 하셔야 하겠네요."

우두커니 서 있는 나를 위로하듯 노인이 말했다.

"민박을요? "

"쭉 올라가다가 첫 번째 집에 들르십시오. 제 집입니다요."

노인은 돌멩이로 굴과 소라 껍데기를 깨어 살을 꺼내면서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일은 이미 그렇게 되도록 되어 있는 것이었다.

"그러지요."

나는 허망한 꼴이 되었다는 투로 긴 나무걸상에 걸터앉아 소주 한 병과 안주 한 접시를 시켰다, 노인이 소라를 깨는 동안 멀리 보이던 도선은 어느덧 시야에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내가 그 여자를 만난 것은 처음 섬에 와서 담배를 피워 물었던 그 동백나무 아래에서였다. 나는 어둠이 깔린 무렵에야 길을 다시 올라갔고, 민박할 집도 정하지 않은 채 동백나무 아래 멍하니 앉아 숨을 돌리고 있었다. 바로 그때 그녀가 내게로 다가왔던 것이다. 내게로 다가왔다기보다는 그 동백나무 아래로 다가왔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었다. 그 동백나무의 위용에 비추어 내 인간의 몰골은 내가 생각해도 초췌했다. 모든 인간은 자연 앞에서는 남루한 것이겠지만, 그때의 나는 더 한층 그랬다고 하는 표현이 가능하리라. 게다가 날은 이미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나는 그 섬에 내가 문득 와 있다는 것이 공연히 서글퍼져서 유배지에 온 죄수라도 되는 양 고개를 숙이고 무슨 생각엔가 젖어 있었다. 팔색조의 울음소리라도 생각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여기 사시는 분인가요? "

어느 틈에 다가왔는지 몰랐다. 저녁 어스름 속에서는 지나치게 맑은 목소리에 퍼뜩 고개를 들었다. 순간 그것이 왜 팔색조의 울음소리를 연상시켰을까.

"아뇨. 배를 놓쳤지요."

나는 아까처럼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 ."

그녀는 말하면서 알겠다는 듯이 약간 고개를 숙였다. 여기 사는 사람이냐는 물음은 그녀가 그 섬사람이 아니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녀 역시 배를 놓친 사람이라고 짐작되었다.

"댁은?"

나는 던지듯 물었다.

"글쎄요."

그녀는 잠시 말꼬리를 흐리면서 모호한 웃음을 지어 보이다가 수월하게 털어놓았다.

"이 섬엘 자주 오는 편인데 저도 오늘은 실수를 했군요. 파도가 늘 말썽이에요. 배가 없으면 꼼짝없이 사로잡히니까요."

"사로잡힌다---"

나는 그 말에 언뜻 놀랐다. 섬에서 뱃길이 막히면 언제나 갇힌다고만 생각해 왔던 나였다. 갇힘과 사로잡힘은 본원적으로 다른 것이다. 짐승이 함정에 빠질 때 그것은 갇힘이 아니라 사로잡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가까운 섬에 오는 것도 모험이에요. 어쩌면 이렇게 사로잡힐 기회들 스스로 엿보는 거니까요. 이렇게 한번쯤 사로잡혔다 풀려나면 오랜 동안--- 오랜 동안--- 괜찮아요."

그녀의 말뜻을 나는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았다.

"괜찮다니요?"

나는 뭔가 홀린 느낌으로 어리숙하게 물었다. 나는 내 정신이 왜 이렇게 갑자기 혼미한 지경에 빠지고 있는지 안타까웠다.

"말하자면 정신 건강 같은 거라고나 할까요. 삶의 의욕이 생겨요. 물론 자기로서는 최선을 다해야지요. 그리고 나서 돌아갈 수 없게 되어 사로잡히는 꼴이 되면,,,-, 그렇지만 이런 기회가 좀처럼 없어요. 안 그렇겠어요?"

나는, 그녀가 나 역시 그녀처럼 '사로잡히는 꼴'이 되었음을 즐거워하고 있다고 느꼈다. 즐거워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위로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렇지 않고서야 처음 보는 남자에게 그토록 술술 이야기를 꺼낼 까닭이 없었다. 어쨌든 그녀의 말대로 나도 사로잡힌 몸이었다. 비록 묵어 갈 것인지 그냥 갈 것인지 망설였다고는 할지라도 나도 최선을 다했다고 여겨졌다. 나는 비로소 그녀의 모습을 자세히 훑어보았다. 이십대의 후반쯤 되어 보였다. 여자 나이를 가늠하는 데 서툴렀지만 따는 그렇게 어림했다. 아직은 완전히 어두워지지 않은 동백나무 그늘 아래 마치 옛 구리 거울 속에서처럼 떠올라 있는 그 흐린 얼굴.

"그런데 왜 여기 앉아 계셨던 거예요?"

그녀가 낮은 바위에 걸터앉으면서 물었다. 그녀가 핸드백에서 담배를 꺼낸 것은 그때였다. 그와 함께 나는 '당신 기다리고 있었소' 하는 투로 농담을 던지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팔색조를 아십니까?"

도대체 터무니없는 되물음이었다. 그녀 역시 무슨 뚱딴지 같은 말이냐는 듯 어리둥절해서 나를 바라보았다.

"팔색조라뇨?"

"전 그 새가 이 섬에 있는지 확인하려고 왔거든요. 아십니까?"

나는 한없이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팔색조를 모르는 듯 해서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몰라요. 전 새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어요. 그 새를 찾아서 어떻게 하려는 건가요? 말려서 박제를 만들 건가요?"

", 박제,,,"

나는 뜻밖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그런 방법이 있었다. 그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나는 생각 속에서 떨쳐 버리려고 했었다, 왜였을까. 만약에 그 새를 어떻게든 잡을 수만 있다면 박제를 해서 내 방에 놓아두고자 한 욕망이 있던 때문이 아니었을까. 나는 정신이 거듭 혼미해짐을 느꼈다.

"그래서 그 새를 찾으셨어요?"

그녀가 자신의 말이 좀 지나쳤다 싶었는지 부드럽게 물었다.

"아뇨. 아직은,,,,, "

나는 얼버무렸다.

"그렇담 왜 돌아가실라고 하셨어요?"

"어쩐지 틀렸다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이곳에는 그런 새가 오질 않는다,,,,,,"

꾸며낸 말이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나는 팔색조는 아예 생각조차 없었었다.

"좀 성급한 판단은 아닌가요?"

"그렇진 않은 것 같습니다. 여긴 환경이 그 새가 오기에 적당치 않습니다."

나는 새의 생태에 대해 많은 연구를 했고 또 조예가 깊은 사람이기라도 한 양 단호하게 말했다. 어떻게 되어서 그런 상황에 이르렀는지 나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자 나야말로 꼼짝없이 사로잡혀 버린 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가슴이 답답하여 공연히 목을 빼고 머리를 좌우로 휘둘러보기도 했지만 답답함은 시간이 갈수록 급격히 가중되어 왔다.

"아무래도 뭘 좀 마셔야겠군요. "

나는 그녀에게 기다리라는 시늉을 하고 가게를 찾아 나섰다. 그녀는 도대체 어떤 여자일까. 가늠할 수가 없었다. 단지 파도 때문에 배를 놓친 여자로서 무료한 시간을 때우기 위해 내 옆으로 온 여자? 그런 것만은 아닐 것이라고 여겨졌다. 그렇다면? 수수께끼였다. 나는 내

생각의 공간이 허공과 같이 팅 비어 가고 있음을 느꼈다. 이것이 현실인 것마저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녀의 존재뿐만이 아니라 내가 그 섬에 와 있다는 사실조차도 가공의 사실처럼 느껴졌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나는 머리를 갸우뚱거리면서 몇 병의 음료수와 술과 비닐봉지에 든 대구포 등을 사들고 동백나무 아래로 돌아갔다.

그로부터 그 날 밤 일어난 일을 곧이곧대로 옮겨 적을 용기도 없으려니와 기억 자체도 도통 흐릿하기만 하다. 우선 구리 거울 속에 떠오른 얼굴처럼 희미한 그녀의 얼굴부터가 머리에 또렷이 떠오르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쓰잘데 없이 팔색조 이야기를 꺼냈고 박제이야기를 한 뒤부터는 그녀와 나 사이에 이렇다하게 뚜렷이 오간 이야기조차 없었다. 다만 서로 권하며 술을 마신 것밖에는. 나는 나무들을 스쳐 가는 바람소리를 간간히 들었고 그 바람소리가 그녀와 나의 속삭이는 소리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그리고 모든 일이 희미하고, 희미하고, 끝없이 희미했다. 그녀가 동백나무 아래 나타났을 때, 그때부터 섬 전체가, 아니, 세상 전체가 몽혼된 것이나 아니었는지.

나는 그 날 밤 어느 순간 속에서 박제의 새와 인간의 말로 사랑을 속삭이고 있었다. 개가 널 잡아 박제로 만들었지. 넌 썩지 않고 영원히 그 모습으로 날 사랑하게 될 거야.' ', , 당신은 어리석어요. 당신은 내게 사로잡힌 몸이에요.' 나는 새의 딱딱한 부리에 입을 맞추었다. '새도 혓바닥이 있던가? '남잔 다 바보예요. 혓바닥 없는 새가 어디 있겠어요. , 보세요 밀렵꾼 선생님.' 박제의 새가 차고 딱딱한 부리를 들이밀었다. '당신은 날 박제로라도 해서 갖고 싶으신가요? 그건 안 될 말이에요. 오늘밤만 우리는 서로의 것이에요.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도 이 섬을 빠져나가지 못한 거예요. 사로잡힌 꼴이지요. 파도가 늘 말썽이에요. 하지만 내일이면 우린 모두 자유로운 몸이 될 거예요.' 꿈이었던가, 생시였던가, 내가 껴안았던 그 뜨거운 몸이 박제된 새의 몸뚱이였던가---

다음날 그녀는 굳이 같은 배를 타고 나가지 않겠다고 고집했다. 나 역시 무엇엔가 고즈넉해져서, 아침이건만 그 노인에게 다시 안주 한 접시와 소주 한 병을 시켜 놓고 그녀를 먼저 보냈다. 노인이 돌멩이로 소라를 가는 동안 떠나가는 도선 위에서 그녀가 한번인가 손을 흔들었다.

나는 포구로 돌아와서야 그녀의 신상에 대해서 아무것도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에 새삼스럽게 놀랐다. 그럴 만한 시간은 충분히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아둘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니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날 밤의 일만으로 그녀와의 관계를 단절할 특별한 까닭도 없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담담히 그녀를 보냈었다.

돌이켜볼수록 안타까운 노릇이었다. 아마 그렇게 만났듯이 손쉽게, 필연적으로 다시 만나게 되리라고 여겼음에 틀림없었던 듯했다. 그뒤 나는 그 섬에 대한 보고서고 뭐고 다 뒷전으로 밀어둔 채 혹시 어디선가 그녀를 만날 수 있을까 하여 거의 매일같이 돌아다녔다. 그 작은 섬에도 몇 번 갔었다. 그러나 그녀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런 채 여름은 지나가고 있었다. 여름이 가고 떠날 날이 성큼 다가오고 있었으나 나는 그녀를 찾는 일을 그만둘 수가 없었다. 날이 가면 갈수록 그녀의 모습은 희미해져 갔고, 그에 따라 나는

거의 미칠 지경이 되어 그녀를 찾아다녔다. '여자 때문에 미치다니, 세상에 별 녀석이 다 있군' 하고 스스로를 매도하면서도 실제로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마침 며칠 전에 돈이 바닥이 나서 집에서 부친 우편환을 환금하기 위해 우체국에 들른 나는 그만 그 자리에 얼어붙듯 서 버리고 말았다. 그녀가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창구에 붙어서서 마악 일을 마친 다음인 듯했다, 나는 피가 거꾸로 흐르는 느낌이었다. 숨이 꽉 막히고 온몸에 경련이 일었다. 섬에서와 달리 옷차림이 집에서 입는 그대로 수수한 것이었을 뿐 그녀가 확실했다.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돌아서 나오는 그녀에게로 가까이 갔다.

"---, 안텅하십니까?"

내가 앞에 멈춰 서자 그제서야 그녀도 나를 쳐다보았다, 구리 거울 속에 떠오른 것 같은 얼굴--- 시선이 잠시 당황하듯 비껴갔는가--- 그러나 내가 앞에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얼굴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 얼굴은 오히려 무슨 영문인지 빨리 말해 보라는 지극히 사무적인 얼굴이었다.

", 절 모르시겠습니까?"

당황한 것은 나였다. 그녀가 나를 몰라볼 리가 만무했다. 혹시 내가 잘못 본 것인지도 모르지만 그럴 리도 만무했다.

"누구시죠?"

그녀는 차갑게 잘라 말했다.

"--- 팔색조,,,,"

"?"

그녀의 차가운 눈길이 내 얼굴을 스쳐갔다.

"저는,,,,,, ,,,,,, 섬에서,,,,,"

나는 더듬거렸다.

"무슨 말씀이신지 도대체 모를 말씀이네요."

"섬에서,,,,,, 파도가--- 배를 놓쳐서---"

등줄기에 진땀이 흘렀다.

"사람을 잘못 보신 모양이군요. "

"아닙니다.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틀림없습니다. "

나는 단호히 말하면서도 허둥대고 있었다. 그녀가 과연 섬에서의 그 여자가 틀림없다면 이토록 시치미를 뗄 수 없으리라 싶기도 했다. 나는 머리를 흔들었다. 그와 함께 그녀는 경멸하는 투로 내게 마지막 시선을 던지고 옆으로 움직여 나갔다.

"틀림없습니다. 당신이 틀림없습니다. 그 뒤 나는 그 섬에서 팔색조를 찾았습니다!"

나는 그때처럼 팔색조 운운의 거짓말을 꾸며대 소리쳤다. 그 말에는 그녀도 동요의 빛을 나타냈다. 아주 미세한 동요였다. 그러나 나는 결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틀림없는 그녀였다. 순간, 그렇다면 그녀가 나를 모르는 체하는 것에는 어떤 까닭이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아무큰 건 제가 모르는 일이에요."

그녀는 여전히 시치미를 떼고 말했다.

", 그렇군요."

나는 더 이상 무슨 말을 하더라도 그녀로 하여금 나를 아는 사람이라고 말하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가벼운 목례를 그녀에게 던졌다. 그러나 그 목례조차고 그녀는 휙 뿌리치다시피 하고 바깥으로 나가 버렸다. 나는 아연한 채 그런 그녀의 뒷모습만 우두커니 쳐다보았다. 그런 일을 마지막으로 섬에서 지난 여름은 막을 내렸다.

그렇다, 혹시 내 눈이 틀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우체국에서의 그녀와 섬에서의 그녀가 동일인임을 믿는다. 그녀는, 섬에서의 암시처럼 그 날 하룻밤만 우리들의 것으로 남겨 놓았던 것이다. 그녀가 나를 몰라 본 체한 것이 아니라 진실로 몰라보았다고 하더라도 그녀를 탓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녀의 섬에서의 행동은 결코 일상의 행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로잡힌 몸으로서 새로이 자유롭고 자 하는 몸부림이었다. 그것을 모르고 나는 일상의 그녀를 찾아 헤맸던 것이다. 내가 그녀를 찾아 헤맨 것은 그녀를 내 박제로 하려던 데 지나지 않았다. 사랑 가운데는 한 순간에 스쳐 지나감으로써 더 영원한 사랑도 있을 것이었다. 그녀가 택한 그런 방법을 나는 어리석게 모르고 있었다. 그리하여 내 귓전에 영원히 '호오이 호오이' 부르고 있을 그 소리를 없애 버린 것이었다. ,,,,,,그래서 이제 누군가 내게 그 섬에 팔색조가 오는가 안 오는가 묻는다면 다음과 같이 되물을 수밖에 없음을 밝혀두고자 한다.

그 섬에 팔색조가 깃드는가, 안 깃드는가.

그대의 마음이 영원히 그 새가 우는 소리를 듣고자 원하는가,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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