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편 -이동하
죽음이란 어차피 그런 것이라고는 해도 숙부(叔父)의 경우는 너무나 갑작스러웠다. 부음(訃音)에 접한 것은 저녁상을 막 물리고 난 때였다. 오토바이를 부르릉거리며 온 사내가 종이쪽지 하나를 훌쩍 던져주고 사라졌는데, 그것이 바로 숙부의 죽음을 알리는 부음이었던 것이다.
막 배달된 석간신문을 대하듯 나는 그 쪽지를 열어 보았다.
――부 친 별 세 종 수
가로로 부지런히 늘어 놓인 낱자들은 그렇게 여섯 글자로 쉽게 조립되었다. 밖은 춥고 어두웠다. 크고 찬 손이 갑자기 가슴에 와 닿는 것을 느끼고 나는 잠시 몸을 떨었다. 아내가 현관 불을 꼈다.
「무슨 전보예요?」
불안한 얼굴로 아내가 물었다. 거실의 밝은 불빛 아래서 나는 다시 내용을 확인했다. 부친별세 종수――그밖에 달리 해독될 여지란 없었다. 열 다섯 개의 자모들은 오직 그 한가지 사실만을 간명하게 드러내고 있을 뿐이었다.
「숙부께서 돌아가셨다는군……」
아내에게 쪽지를 넘긴 다음 나는 욕실로 갔다. 입안이 군시러웠다. 식사 후에 곧바로 이빨을 닦아야 한다. 그것은 나의 오랜 버릇이었다. 나는 평소보다 오래 양치질을 했다. 그리고는 입안을 쿨렁쿨렁 헹궈내면서 중얼댔다.
――자, 어떻게 한다?
도무지 작정은 서지 않았고, 치약 냄새는 끈질기게 남았다.
「삼우제는 보고 와야겠지요?」
아내는 벌써 가방을 챙기고 있었다.
「글쎄……」
나는 대답을 흐렸다.
「장례만 치르고 훌쩍 와버릴 수야 없잖아요?」
딴은 그렇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겐 단 한 분뿐인 숙부이시다. 게다가 굳이 따지자면 나는 또 장손이지 않은가. 남의 집 문상객처럼 얼굴만 비쭉 내밀었다가 금방 돌아서 나올 수도 없는 처지긴 하다. 나는 이번에도 대답을 흐렸다.
「적어도 너댓새는 걸릴 거라구요……」
그러면서 아내는 전화통을 끌어당겼다.
「무슨 전화요?」
「애들 이모라도 와 있으라고 해야죠. 아이들만 달랑 남겨 놓고 가버릴 수야 없잖아요?」
그때까지도 아무런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던 나는 그제서야 펀뜻 정신이 들었다.
「당신도 같이 나서려는 거요?」
「그렇지 않구? 그럼 난 안 가도 된단 말예요?」
아내는 부음을 받았을 때보다도 더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남들이 뭐라게요? 명색이 큰 조카며느리란 여자가 초상에 두 얼굴 한 번 내밀지 않더란 소리 듣게요?」
나는 대꾸하지 못했다. 그녀의 말이 정작 숙부의 죽음보다도 나를 더 혼란에 빠뜨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리를 따지자면 그런 것이다. 건전한 양식이 아내를 당당하게 만든 대신 나를 형편없이 위축시켰다. 무력하게 나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치약 냄새가 다시 느껴졌다.
이모들 중의 하나와 아내는 통화를 했다. 여전히 아내는 당당했다. 저쪽의 사정 같은 것은 귀담아 듣지 않는 태도였다. 상을 당했다는데 무슨 자질구레한 핑계냐는 투였고 따라서 통화는 지극히 일방적인 지시와 통고로 끝났다.
「막내이모가 와 있겠다고 했어요.」
태연히 아내는 말했다.
「마침 방학때라 잘됐어요. 곧장 택시 타고 오랬으니까 한 시간도 더 안 걸릴 거예요. 뭘 챙겨야 되지요? 난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네요……」 더 이상 입을 봉하고만 있을 계제가 못되었다. 아내와 동행 할 수는 없다고 나는 생각을 굳혔다. 그녀의 지적처럼 설사 어떤 비난을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숙부의 갑작스런 죽음이 무엇을 뜻하는가를 나는 비로소 깨달았던 것이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그의 죽음은 일찍이 내가 속해 있었던 한 세계의 완전한 종언(終焉)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제 내가 장사치를 것은 한 사내의 시신이 아니라 그것과 연루된 나의 어둡고 치욕스러운 과거였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한사코 담을 쌓고 은폐해 왔던 그 세계를 마지막 순간에 내 아내에게 열어 보일 수는 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뭘 챙긴다구 그래? 내 양말이나 몇 켤레 내주구려. 돈 좀 하구……」
불쑥 나는 말했다.
예상했던 일이다. 가방을 챙기던 아내의 동작이 딱 멎었다. 아무 말 없이 그녀는 한동안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당신이란 사람은 정말 이해할 수가 없노라는 그런 눈빛이었다. 처가는 월남가족이었다. 고향도 친지도 다 버리고 온 실향민이란 의식이 언제나 강한 사람들이었고, 그래서 그런 것에 대한 관심과 집착도 별난 데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고향이나 친지, 심지어는 나의 가계(家系)에 이르기까지 거의 한번도 속을 털어놓고 이야기한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 세계는 이를테면 내 아내에게 있어서는 철저하게 닫혀져 있는 세게였는데, 그 앞에서 그녀는 종종 그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곤 했던 것이다.
숙부는 그 세계에 속해 있는 마지막 한 사람인 셈이었다. 아내로서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상면해 본 적이 없는 그런 인물이었다. 그녀가 간직하고 있는 결혼 사진첩에도 그의 얼굴은 없다. 어머니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결혼을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장례때도 그는 역시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었다. 이번에는 그쪽에서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와서 새삼스레, 그것도 사자(死者)의 얼굴을 내 아내에게 보여줄 수는 없다고 나는 거듭 생각을 다졌다.
「나 혼자 다녀오는 것이 좋겠소. 당신까지 무리할 건 없어. 내가 그쪽에 발길을 들여놓는 일도 어차피 이번으로 마지막이 될 테니깐……」
나는 아내 앞에 놓여져 있는 전화통을 끌어당겨 부장댁으로 전화를 걸었다. 사정을 설명하고 이틀간의 휴가를 청했다. 회사 일을 걱정하면서도 부장은 이틀 가지고는 너무 빠듯한 일정이 되지 않겠느냐고 되물었지만 나는 족하다고 대답했다. 말하자면 나의 답변은 상사에게 한 것이라기보다 내 아내 쪽을 더 많이 의식하고서 한 소리였다.
정작 집을 나선 것은 밤이 꽤나 깊어서였다.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밤차를 타고 다음날 아침 일찍 K시에 떨어지면 될 것이었다. 거기서 다시 시외버스를 타고 고향읍까지 가는 데엔 한 시간 정도면 족할 것이었다. 발인 전에 닿기만 하면 되리라고 나는 생각했다. 굳이 혼자 나서는 나를, 아내는 마루에 선 채로 말없이 지켜보기만 했다. 하지만 나로서는 그녀의 의중을 헤아리고도 남았다. 아내가 그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볼 때면 으레 서슴없이 내뱉곤 하던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신은 참 이상한 사람이야. 자식을 몇씩이나 낳아 기르면서 십 년 이상 한 지붕 밑에서 살아와도 꼭 남남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하는 때가 많은 사람이라구요……」
그러나 이날만은 끝내 입을 다물고 있었다.
차가 서울역 구내를 빠져 나왔을 때는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또 한강을 넘어서면서부터는 차창에 눈발이 희끗희끗 날리기 시작했다. 이후 K시에 닿기까지 무려 여섯 시간 동안 나는 신물이 나게 지겹고 외로왔다. 밤이 깨어 있는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무겁고 이롭게 짓누르는가를 비로소 실감했을 정도였다.
차내는 썰렁하게 냉기가 돌았다. 밤차를 탄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이 승객들은 출발서부터 저마다 옹색한 자세로 잠을 청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로서는 도무지 기대할 바가 못되었다. 아무데나 쓰러져서 잠들 수 있는 능력이란 분명 타고난 행운일 수밖에 없다고 나는 생각했고,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은 또, 결코 절망하는 법이 없으리라고도 생각했다. 창가에 웅크리고 앉은 채 나는 국산 양주를 찔끔찔끔 들이켰다. 잊었던 치약 냄새가 되살아났고 그때마다 아내의 눈빛이 떠올랐다.
그러나 차가 수원을 지나고 오산을 지나고 또 천안을 넘어서면서부터는 비로소 숙부의 죽음이 조금씩 조금씩 내 오관의 어느 선엔가 닿아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내 입안의 어느 구석엔가 여전히 남아있는 꼭 치약 냄새만큼의 실감으로서였다. 그 냄새를 죽이기 위해, 그리고 이제야말로 영원히 묻어버릴 어둡고 치욕스러운 한 세계를 마지막으로 되돌아보기 위해 나는 거푸 병을 기울였다. 양주란 참 편리한 물건이다 라고 나는 객쩍은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 안주 없이도 태연히 마실 수 있는 구실이 되기 때문에……
숙부는 나보다 단지 십 년 정도 연상이므로 이제 겨우 오십 줄의 문턱에 들어선 연세일 뿐이다. 그러나 그의 죽음이 갑작스러운 느낌을 주는 것은 단지 그 연치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에게 있어서 오십 년이란 세월은 어쩌면 가혹하리만큼 긴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줄잡아 그 세월의 반을 그어(囹圄)의 생활을 해 왔기 때문이었다. 숙부가 고향 N음에서 엉뚱하게도 침구사(鍼灸師)로서의 안정된 생활을 꾸려나가고 있다는 소식을 내가 들은 것은 불과 서너해 전의 일이었다. 그렇다면 진정한 그의 생애는 그때부터였던 셈인데 내가 그 뒷 소식을 들을 새도 없이 그는 자신의 생애를 서둘러 마감해 버린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의 죽음이 내게 갑작스러운 느낌을 준 것은 무엇보다 그 생애의 내용 때문이었다고 나는 생각했다.
친일(親日)을 한 조부――물론 나로서는 그 구체적인 사례들을 알고 있지도, 또 알고 있지도, 또 알고 싶지도 않는 것이지만――의 덕택으로 내 아버지는 고향 N읍에서 유일하게 일본 유학을 할만큼 신식교육을 받은 인물이었지만 숙부는 그렇질 못했다. 그는 서출(庶出)이었기 때문이다. 조부의 엄한 회초리 아래 간신히 천자문을 뗐을 뿐 그는 진작부터 머슴방으로 내몰린 천덕꾸러기였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누구보다 그 삼촌을 따랐고, 내 어머니는 또 그가 의지할 수 있었던 유일한 그늘이었다. 벅찬 노동과 가혹한 편견 속에서도, 그러나 그는 그다지 불행하지는 않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천성이 밝고 착했던 그는 자신을 결코 불행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에게 진짜 불행을 가져다 준 것은 어쩌면 8․15 해방이라고나 해야 할는지도 모른다. 조국의 광복은 우선 내 조부를 몰락시켰다. 그의 위엄은 하루아침에 땅에 떨어져서 헌짚신짝처럼 짓밟혔고, 근동 세 마을을 먹여 살린다면 그 많은 가산들도 온통 거덜이 나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까지는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세상 탓으로 돌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에는 비록 면종복배이기는 할지언정 그의 앞에선 감히 얼굴조차 바로 쳐들지 못하던 소작인이며 하인배들에게 급기야는 가혹한 조리돌림까지 당해야 했던 그는 마지막 임종의 순간까지도 그날의 수모를 삭이지 못한 채 그들이 자신의 상여 메는 것조차 유언으로 거부했던 터였다.
N읍의 선각자이던 내 아버지의 경우에도 해방이 불행한 사건이었던 점은 다를 바가 없었다. 당신은 그것이 불행의 시작이었음을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점만 달랐을 뿐이었다. 어쩌면 그는 선대의 뒤를 이어 그와는 다른 또 한 시대를 연출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해방과 더불어 소위 사상운동을 시작했던 그는 정부 수립을 전후하여 지하로 잠적했다가 6․25 발발 한해 전서부터는 영영 종적을 감추어 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그 일은 당사자인 아버지에게보다도 뒤에 남은 우리 가족에게 더 큰 불행이 되었다. 그 무렵부터 부쩍 심해진 공비들의 준동으로 면 주재소가 불타고 인근 마을들이 피해를 없었는데 그것이 모두 종적을 감춘 내 아버지의 소행이란 소문이 나돌았기 때문이었다. 우리 가족들은 또 한차례의 시련을 모면할 길이 없었고, 그 중에서도 가장 가혹한 수모를 당한 것은 내 어머니였다.
죽음보다 더한 치욕으로부터 내 어머니를 구한 사람은 삼촌이었다. 걷잡을 수 없이 몰락해 가는 집안에서 머슴방이나마 설자리를 잃어버렸던 그는 진작 국방군에 자원 입대를 했었다. 때마침 휴가를 나왔던 그는 자기 키보다 그닥 짧을 것이 없는 엠원 소총을 휘두르며 난폭한 무리들로부터 내 어머니를 구해냈던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이미 초주검이 되어 있었다. 그때의 일을 나는 결코 잊을 수가 없다. 마을의 여러 가닥 고샅길을 질질 끌려 다닌 끝에 동구의 두엄자리에다 내평개쳐진 어머니의 모습은 빈사의 광견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넝마처럼 해지고 찢긴 옷은 여인의 가장 수치스러운 곳마저도 가려 주지를 못했다. 두엄자리마다 새까맣게 진을 치고 있던 여름 쇠파리떼들이 치모(恥毛)의 언저리로 끈질기게 달라붙던 광경을 한사코 울음을 삼키며 바라보아야만 했던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을 나는 저주한다. 담을 쌓고 은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가능만 하다면 내 뇌수의 일부를 들어내면서라도 그 기억의 뿌리를 뽑아버리고 싶은 것이다.
삼촌이 제대를 하고 집으로 돌아온 것은 전쟁 막바지 때였다. 여름 장마의 한 끝을 밟고 후줄근한 모습으로 그는 돌아왔는데, 사지는 멀쩡했지만 상이 제대였다. 오른쪽 가슴에 부상을 입었다고 그는 말했다. 내 어머니 앞에서 그가 광목천으로 만들어진 군용내의를 훌렁 벗어 보였을 때 나는 흡사 군화발에 내질린 깡통처럼 흉칙하게 자부라져 있는 상혼을 정말 볼 수가 있었다. 나는 질겁을 하리만큼 몹시 충격을 받았지만 어머니는 그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사지 중의 하나를 전쟁터에다 내버리고 온 것에 비하면 천만번 감사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하지만 삼촌은 그 날로 곧장 골방에 드러누운 채 긴 장마가 걷힐 때까지 거의 한번도 사립문 밖 출입을 하지 않았다. 마을 청년들이 찾아와도 그는 도무지 어울리려 하지 않았고, 때로는 얼굴마저도 내밀지 않았던 것이다. 흡사 중환자 같은 안색이며 눈빛이었다. 그 얼굴에서 나는 언뜻언뜻 어디론가로 종적을 감추어버린 내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하곤 했다. 내게 남아 있던 당신의 마지막 모습이 대체로 그러했기 때문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오기만 하면 나는 으레껏 삼촌방으로 달려가곤 했다. 눅눅한 이부자리 위에 길게 드러누운 채 그는 많은 전쟁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었다. 최초의 지리산 공비토벌에서부터 전쟁의 막바지 격전에 이르기까지 그의 무용담은 계속되었다. 그는 이따금씩 가슴의 상처 자리를 손으로 누르며 한참씩 기침을 토하곤 했는데, 어린 나에게도 그 기침의 뿌리가 몹시 깊은 데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래도 이 안에 무언가 들어 있는 것 같다고 기침 끝에 그는 헐떡이면서 투덜대곤 했다.
그 여름이 지나고 가을에 삼촌은 재 검진을 받았다. 이웃한 K시의 당시만 해도 단 한 곳 뿐이던 종합병원에서였다. 결과는 흉곽 안쪽에 작고 단단한 이물질이 들어 있다는 진단이었다. 아마도 군 병원에서 미처 골라내지 못한 파편조각 같다는 의사의 소견이었는데 삼촌도 그 점을 수긍했다. 당장 생명에 지장을 주는 것은 아니라 그것이 장차 체내에서 어떤 병리 현상을 일으킬지는 예측할 수 없으므로 계제에 외과수술로 아예 적출(摘出)해 버리는 쪽이 현명하다고 의사는 권유했다.
수술을 받던 날 삼촌은 어린 나를 보호자로 동반했다. 자기 시대를 잃어버린 채 비참한 심정으로 만년(晩年)을 살아가고 있던 조부나 여자인 내 어머니쪽보다는 어린 조카인 내가 더 만만했는지도 모른다. 두 시간 예정이던 수술은 자그만치 다섯 시간이나 끌었다. 환자는 진작 마취에서 깨어나 버렸는데도 의사의 집도는 계속되었다. 소독냄새 나는 복도에서 나는 기다리고 있었다. 커다란 나무걸상 한 귀퉁이에 조그맣게 웅크리고 앉아 있는 나의 귀에 그의 신음소리가 내내 들려왔다. 전쟁보다 더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살을 저며내듯 지긋지긋한 소리였다.
마침내 삼촌이 나타났다. 두 팔로 가슴을 잔득 싸안은 그는 묵묵히 병원 문을 나섰다. 나는 잠자코 뒤를 따랐다. 허리를 꺼부정하게 구부린 채 그는 걸음마를 하듯 조심조심 걸었다. 한 발자국을 내딛는 데에도 무진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그런 상태로 우리는 털털거리는 시외버스를 타야만 했다. 수술만큼이나 길고 조마조마한 귀로였다. 어쩌면 삼촌은 가슴팍을 짜개고 작은 파편조각을 뽑아낸 대신 의사들로 하여금 보다 크고 위험한 폭탄 같은 것을 거기가 숨겨두게 한 건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수술은 실패였다. 무려 다섯 시간에 걸친 집도에도 불구하고 끝내 파편조각을 찾아내지 못했던 것이다. 삼촌은 간신히 골방으로 돌아와 드러눕고 나서야 내 어머니께 씹어 뱉듯 말했었다.
「백죄 몸뚱이만 생으로 난도질해놨다 아입니꺼. 두 번 다시 할 짓 못됩디더. 고무다리에 외팔인 생도 쌔비린 판국에 그까짓 쇳쪼가리 하나 들었으마 어떻게 안들었으마 어떻겠임니더. 의사들은 다시 해보자 캅니다만 나는 싫다 아입니꺼. 거죽만 멀쩡하지 난들 성한 사람입니꺼? 불구인생이기는 피장파장인기라요……」
삼촌은 두 번 다시 수술을 받지 않았다. 궂은 날이면 몸의 어딘가가 아프다고 일쑤 끙끙 않으면서도 병원은 찾지 않았다. 밝고 낙천적이던 원래의 성품은 거의 찾아볼 길이 없었다. 수술자리가 아문 뒤에도 그는 여전히 골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는데, 내게 자주 들려주던 그 전쟁 이야기도 더는 꺼내지 않았다. 점점 더 말수가 줄어들고 얼굴을 뒤덮은 그늘도 갈수록 더 짙어지기만 하는 그를 두고 내 어머니는, 그것이 모두 삼촌의 가슴팍에 박혀 있는 쇳독(毒) 대문이라며 얼마나 자주 한숨짓곤 했던가…… 진저리나게 나는 그때의 일들을 회상했고, 내가 탄 열차는 밤의, 그리고 겨울의 한복판을 줄기차게 관통하고 있었다. 술기를 빌어 눈을 붙이려 애썼지만 역시 실패였다. 바닥에 버려진 양주병이 밤새 나와 함께 흔들리고 있었다.
K시에 닿은 것은 여섯 시가 조금 지나서였다. 일출가지는 아직 한 시간여를 남긴 시각이었다. 역구내를 빠져 나오자 널따란 광장과 빈 거리엔 차가운 어둠이 가득가득 괴어 있었다. 나는 몸을 떨었다. 거리들은 낯설었고 방향마저 가늠되지 않았다. 우선 언 몸을 덥혀야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분지의 겨울답게 추위는 매웠다. 바람 한 점 없으면서도 피부를 갈라터지게 하는 매마른 추위였다. 이놈의 깡추위는 변함이 없군, 하고 나는 중얼댔다.
톱밥난로가 시뻘겋게 타고 있는 식당을 찾아냈다. 그 난로 앞에서 공사판 잡역부로 보이는 사내 둘이 마주앉아 국밥을 퍼먹고 있었다. 서둘 이유는 없었다. 해장국과 또 한 병의 소주를 청한 나는 그것들을 천천히 비워내며 언 몸을 녹였다. 가슴을 죄던 겨울이 저만큼 물러나면서 불현듯 잊었던 치약 냄새가 의식되었다. 이제 그 냄새는 나의 혀끝이 아니라 머릿속에 달라붙어 있는 것 같았다. 아내의 모습을 나는 떠올렸고, 역시 그녀와 동행하지 않은 것을 거듭 다행으로 생각했다. 아마도 이번 걸음이 그나마 드문 내 귀향길의 마지막이 될 것이었다.
국밥그릇을 말끔히 비워낸 사내들은 새마을 한 개비씩을 나눠 피우면서 그들 고장의 장래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랑재 쪽은 어떻다카더노? 거게도 고속도로가 확 뚫린 닥하던데……」
쉰 줄은 실히 들어서 보이는, 낡은 방한모로 푹 눌러쓴 사내가 던지는 말이었다. 맞은편 쪽은 그보다 한참 아래로 보였다. 그러나 거친 노동과 그 삶의 풍속이 십 년 이쪽저쪽은 아무렇게나 접어두게 한 모양이었다. 스스럼없이 그는 대꾸하고 있었다.
「마, 소문이사 짜들이 그렇닥하이. 어랑재만도 아이재. 동면, 서곡, 조야 그쪽으로도 공사판이 크게 벌어진닥고 말들이사 해쌓지. 그라지마는, 이런 놈은 엄동설한에 당장 무신일을 시작하겠더노? 해토나 해야 첫삽을 안 뜨겠나, 대강 그럴꺼로 싶다 마……」
「하모……」
식후의 포만감 때문이리라. 담배 한입을 맛있게 토해낸 상대는 진무른 눈초리를 게슴츠레하게 내려뜨면서 아주 흡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 하는 말매로 요새 세상은 참말로 무섭게 변하는기라. 특히나 도회지가 그렇다 아이가.」
「당연지사재. 아, 사둔 남 말할 꺼 있나? 내남없이 도시서만 살겠닥고 모지리 꽁지리 몰려드이 안 그렇나. 머잖아 직할시가 된다카이, 그라마 공사판도 자꼬자꼬 생길 끼고……가진 눔은 가진 눔대로, 없는 눔은 없는 눔대로 이래저래 도시는 살만하다카이.」
「하모……」
또 한번 흡족한 표정을 지은 다음, 마지막 한 모금까지. 빨아 당긴 꽁초를 국밥그릇에 던져 넣으며 연장자 쪽이 말했다.
「그마 슬슬 나서야재. 얼추 그래 됐을꺼로?」
사내들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목장갑을 겹으로 낀 손들이 낡고 찢어진 비닐백을 하나씩 집어들었다. 밖의 어둠, 밖의 추위는 여전한 듯했다. 두 사내는 어깨를 움츠린 채, 그러나 주저 없이 그 어두운 추위 속으로 사라졌다.
참으로 오랜만에 내가 태어난 고장의 사투리를 제대로 들었다고 나는 생각했다. 어둡고 치욕스러운 기억 외에는 서푼어치도 추억할 것이 내게는 없는 이 땅이 그런, 고향이라는 새삼스런 자각 때문에 나는 잠시 고개를 떨어뜨렸다. 하지만 그 때문에 우울해 할 것은 없었다. 내가 과거를 묻어버리기 위해 왔듯이 이 도시도 머잖아 아주 낯선 모습으로 변신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내가 일어섰을 때 거기 남겨진 빈 술병이 나를 보고 있었다.
상가(喪家)에 닿기까지는 반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K시에서 N읍까지 전에는 털털거리는 시골버스를 타야만 했지만 이제는 시내버스가 십분 간격으로 운행되고 있었다. 식당 주인은 머잖아 그곳까지 K시로 편입될 것이라고 내게 알려주었다. 그러면 N읍의 이름은 이 땅에서 영원히 사라질 것이었다.
상가는 예상했던 대로 을씨년스러웠다. 조등 하나가 골목어귀에 내 걸린 채 차디찬 새벽빛에 푸르게 바래고 있었고, 옹색한 차일 하나가 마당 한 귀를 가린 채 펄럭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나마 상청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마저도 내게는 거의가 낯설었다. 장성한 사촌들의 얼굴까지도 알아보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시신은 이미 입관되어 있어서 내가 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칠성판을 떠메고 누운 투박한 관뿐이었다. 이승을 마지막 떠나가는 모습은 어차피 그런 것일 수밖에 없다. 삭막한 마음으로 나는 돌아섰고, 내가 타고 온 밤차를 문득 떠올렸다. 악몽처럼 그것은 내 가슴을 두들기며 지나갔다.
고인은 전날 영시에서 네 시 사이에 운명했고 사인은 아마도 심장마비인 듯하다고 숙모는 말했다. 식구들과 함께 자정까지 TV를 보고 난 그는 새벽 네 시에 깨워달라는 부탁을 남기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정작 그 시간에는 이미 고인이 되어 있더라는 얘기였다. 따라서 임종을 지켜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셈이었다. 온통 넋 나간 표정을 하고 숙모가 간신히 얘기를 끝내고 나자 맏상주인 종수가 이렇게 덧붙였다.
「그 말을 누가 믿겠임니꺼? 어제까지도 시퍼렇게 살아 계시던 아부지가 우예 그렇게 허무하이 쓰러질 수가 있더란 말입니껴? 형님, 내사 암만해도 못 믿겠다 아입니꺼. 하모, 남들은 우예 생각하겠임니꺼? 필경 무슨 내막이 있을끼다 이래 생각할란지도 모른단 말입니더. 암만 초상집이락 해도, 그라고 암만 몰락한 집안이라 해도 이래 썰렁할 수가 있겠임니꺼? 다 까닭이 있는기라요……」
나는 머리를 무겁게 떨어뜨렸다. 그를 위로할 수 있는 말 한마디도 나로선 변변히 찾아낼 수가 없었다. 종수는 핏발이 선 눈을 들어 멍하니 관이 놓인 쪽을 보고 있었고, 나이보다 십 년은 더 늙어뵈는 숙모는 매마르고 기진한 울음을 시작하고 있었다.
사실이 그러하다면 고인의 죽음이야말로 그의 생애처럼 불가해한 것이기도 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스스로 죽음을 예비허가나 인지한 흔적 같은 것은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식구들과 함께 자정까지 TV프로를 즐겼고 또 새벽 네 시에 깨워 달라던 사람이다. 따라서 유서 같은 것도 나왔을 리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인으로서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든 잠으로부터 영영 깨어나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얼마나 기이한 잠인가, 설사 심장마비가 진정한 사인(死因)이라고 할지라도 그의 죽음은 역시 오래도록 불가해한 느낌을 남길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종수의 우려는 결코 근거 없는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무슨 말을 흘린 듯 관할 파출소의 순경 한 사람이 전날 이미 다녀간 바 있노라고 종수는 말했는데, 그가 또 다른 한 사람을 달고 나타난 것은 그로부터 두어 시간 남짓한 때였다.
「유감입니다만 일단 검시를 해야겠습니다. 나로서도 웬만하면 피해보려고 노력했습니다만, 본서로부터 직접 하달 받은 사안이기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군요……」
순경의 말에 나는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기왕에 뚜껑을 덮어버린 관이라면 두 번 다시 열어 젖힐 일이 못된다. 사자가 새삼스레 무엇을 증언할 수 있단 말인가. 부패한 시신과 악취 외에 다른 아무 것도 얻어낼 수 없으리라고 나는 생각했다. 게다가 고인의 생애는 어차피 불가해한 것 투성이가 아니던가. 오십여 그의 생애는 결코 쉽게 이해할 수도 설명 될 수도 없는 그런 것이었다. 따라서 그의 죽음인들 우리가 어찌 쉽게 이해할 수가 있으랴.
순경을 따라온 쪽은 체구가 작고 마르고 나이가 꽤나 많아 보이는 사내였다. 흰 가운에 검은 가방을 든 그의 외양은 의사차림이 분명했지만, 표정은 장의사처럼 굳고 차가웠다. 그의 지시에 따라 관을 열고 시신을 들어냈을 때 방에 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자리를 피해버렸다. 상주인 종수까지도 감히 시선을 바로 들지 못했다. 염습한 것들을 모두 풀어헤치자 이미 부패하기 시작한 시신이 드러났다. 예상했던 대로 악취가 코를 찔렀다.
생각보다 작업은 오래 끌지 않았다. 수술용 장갑을 낀 손이 시신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한차례 훑고 지나갔고, 다음에 그것을 뒤집어놓고서 똑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시신은 바람이 들어 띵띵하고 진물렀다. 얼굴을 짙게 뒤덮은 검은빛이 목덜미를 지나 가슴께까지 잠식해가고 있는 중이었다. 오른쪽 젖가슴 위에 남아있는 저 흉터 자국을 나는 다시 보았다. 삼십 년 가까운 건 세월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여전히 흉칙한 몰골로 거기에 남아있었다. 구둣발에 모질게 쥐어 질린 깡통처럼 온통 짜부라져 버린 그 가슴에서 나는 그때 실패했던 수술자국까지도 또렷이 찾아볼 수 있었다.
나는 비로소 진저리를 쳤다. 무엇 하나 가린 것 없이 우리 앞에 내던져 있는 그 주검 때문이 아니라, 여전히 끈질기게 남아 있는 그 흉터 때문이었다. 내가 그리고 우리 모두가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동안에도 고인은 내내 그것을 각인처럼 가슴에 지닌 채 살아왔으리란 생각이 세찬 전율을 일으키게 했던 것이다. 등골로 타고 내리는 어떤 충격 때문에 나는 한동안 몸을 떨었다.
「별 이상이 없는데 그래……」
장갑을 뽑으며 사내가 말했다. 차고 딱딱한 인상과는 달리 그 목소리는 부드럽고 지쳐 있었다.
「외상도 없고, 극독물로 오는 피부 이상도 전혀 없고…… 부검(副檢)을 한다면 또 모를 일이긴 하나 어쨌든 지금 단계로선 별 이상이 없습니다. 심장마비로 인한 사망같군요.」
종수가 후유 하고 한숨을 토해냈다. 그때까지 코를 싸쥔 채 멀찍이 물러서 있던 순경이 말했다.
「또 한 가지 확인해 둘 것이 있습니다. 적어도 유족들 중에는 고인의 사인에 대해 딴 생각을 품고 계신 분이 없을 테지요?」
그는 일단 질문을 던지긴 했지만 대답을 기다리고 있진 않았다. 그는 곧 계속해서 말했다.
「좋습니다. 그럼 이대로 보고해서 결과를 통보해 드리겠습니다 .그런 일이야 없겠습니다만, 혹 부검지시가 떨어질 수도 있으니까 결론이 날 때까지 장례는 일단 중지해야 합니다. 가급적 빨리 결과를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들이 가버린 후에 시신은 다시 염습과정을 거쳐 이관되었다. 남은 것은 짙은 악취와 엄청난 낭패감뿐이었다. 종수는 상주인 주제에 술만 벌컥벌컥 들이켰고, 그 옆에서 나는 짙은 피로감에 빠져들었다. 암울하고 삭막한 가슴을 두들기며 예의 밤차가 질주해 가는 환상을 나는 다시 보았다. 그 어두움․추위․국산 양주․치약냄새․아내의 눈빛……이런 것들이 먼지처럼 자욱히 떠올라 내 의식을 몽롱하게 뒤덮었다.
아침 열 시로 예정돼 있던 출상이 정오를 훨씬 지나서야 가능했다. 그나마 큰 무리 없이 장사를 치를 수 있게 된 것을 다들 다행으로 여겼다. 시신은 하룻밤 사이에도 걷잡을 수 없이 부패하여 관을 놓았던 자리가 젖어 있었다. 운구하던 사람들이 코를 돌릴 만큼 악취도 심하였다. 여름철도 아닌 겨울에――하고 나는 생각했다――시신이 저 지경이라면, 그 부패의 원인은 밖에 있는 게 아니라 안에 있음이 분명하리라. 그렇다면 사자의 체내에 남아서 그것을 급속히 부패시키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고인의 불가해한 생애와도 깊은 관계가 있는 어떤 것인지도 모를 일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영구차 한 대로 우리는 화장장으로 향했다. 고인의 평소 뜻에 따라 화장을 택했노라고 종수는 말했다. 나로서는 이의를 제기할 이유가 없었다. 차라리 그 편이 가장 완벽한 방법이기도 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내가 밤차를 타고 오던 때처럼 눈발이 조금씩 내비치고 있었다. 영구차는 눈 덮인 산자락을 끼고 터덜터덜 굴러갔다. 입을 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자와 더불어 묵묵히 흔들리기 한시간 남짓 우리가 탄 영구차는 화장장에 닿았다. 낮게 가라앉아 있는 잿빛 하늘아래 작고 흰 건물이 보였다. 그것은 개게 주검보다 더 차고 견고하고 황량한 느낌을 주었다. 현장 인부들에 의해 관이 들리워 나갔고, 그것이 전기로를 거쳐 한 줌의 재로 다시 우리에게 돌아오기까지, 우리는 시골 역 대합실 같은 방에서 장시간 기다려야만 되었다. 그것은 살아있는 자들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삭막하고 허무한 기다림이었다.
창 밖에서는 눈발이 내내 조금씩 날리다 멎고 또 다시 날리다 멎곤 하였다. 눈 덮인 구릉의 얼어붙은 골짜기가 우리들의 마음처럼 춥고 쓸쓸하게 내려다보였다. 가져간 술을 나누어 마시면서 우리는 마지막으로 고인을 추억했다. 그나마 최근 몇 해 동안에는 침구사로서의 새 생활에 무척 열심이셨다면서 종수는 그제서야 내 앞에서 눈물을 보였다.
「생각하마 그기 억울하다 아입니꺼. 세상 사는 일에 도통 뜻이 없어 하던 분이 가로 늦게 한 일을 잡았능가 해 싶었는데 그마 덜컥 쓰러질기 뭡니꺼. 그 날도 가 봐야 할 환자가 있다고 새벽같이 깨워 달락고 했다는 얘기라요……」
종수의 말이 어쩌면 사실에 가까울는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다. 살아 생전에 내가 고인을 마지막 본 것은 칠팔 년 전의 일이 된다. 내 어머니의 장례 때 참석치 못했던 그는 어느 날 불쑥, 그것도 내 직장으로 찾아왔던 것이다. 첫 모습에서 나는 그가 이제 막 출감(出監)하는 길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내가 들은 바로는 그때가 네 번째의 출감에 해당했다. 철지난 옷을 후줄근하게 걸친 그는 꼭 그 차림에 어울리는 표정을 하고 내게 말했다.
「형수님께서 운명하셨단 소식은 저 안에서 들었네. 지금이라도 무덤이나마 찾아봤으마 하는데, 자네 그럴만한 짬을 낼 수 있겠능가?」
두말없이 나는 앞장섰다. 서둘면 퇴근시간 전에 돌아올 수 있겠다고 어림했지만 물론 그렇게는 되지 않았다. 근교라고는 해도 우리가 묘소에 닿은 것은 해가 설핏한 때였다. 내 어머니의 봉분에는 잔디가 제법 깊고 넓게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그는 지석 앞에다 이홉들이 소주 한 병과 쥐치포 몇 쪽을 호주머니에서 꺼내 놓았다. 그리고는 허리를 꺾고 무릎을 굻은 채 오래도록 일어나지 않았다. 혼신의 힘을 다해 오열을 참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러나 끝내는 땅바닥에 얼굴을 박은 채 그는 신음 같은 울음소리를 냈다.
「자네 아버님 제살랑 오월 중 적당한 날을 택해 모시도록 하소. 가급적이면 중순 이전이 좋겠네.」
돌아오는 차 중에서 그는 불쑥 말했다. 나는 멍하니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때까지도 나는 아버지의 제사를 모시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애 어머니의 줄기찬 희망 때문이었다. 6․25 한 해 전에 영영 행방을 감추어 버린 아버지가 세상 어딘가에 아직도 살아 계시리란 희망을 내 어머니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포기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해마다 주인 없는 생일상만을 차려왔던 일을 생각하고 나는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는 어둠이 엷게 깔리기 시작한 창 밖 거리만을 내다볼 뿐 더 이상 말이 없었다. 버스에서 내리는 길로 그는 고장 서울역으로 가 버렸다. 내 집으로 모시마고 나는 물론 말했지만 그는 단지 이렇게 대꾸했을 따름이었다.
「도리가 아닌 줄은 알지마는 어쩌겠노. 나야 워낙 그런 사람 아닝가? 빈 껍데기만 남아서 넝마매로 굴러댕긴다 뿐이지, 진짜 모습은 진작에 끝난 거네. 인제사 생각하마, 기왕 한 구덩이 묻히지 못한 것만 원통할 다름이제……자네 집사람한테는 날 만났단 얘기도 하지 마소.」
나는 더 이상 그를 잡지 않았고, 그런다고 돌아설 사람도 아니었다. 그날 밤 내내 잠을 설치면서 나는 그가 남긴 말을 곰곰 되씹었었다. 적어도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했다. 그는, 삼촌은 내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했던 것이다……어쩌면 그의 가슴에 남아있는 상혼과도 관계가 있는 건지 모른다고까지 나는 생각했다. 비로소 나는 그를 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제대를 하고 돌아온 삼촌의 모습, 눅눅한 골방에 드러누워 누에처럼 보내던 생활. 재수술을 거부하며 그가 내뱉았던 말들, 궂은 날이면 육신의 어딘가가 아프다며 오밤중에도 곧잘 끙끙 앓던 일, 그리고 또 갈수록 말수가 줄어든 대신 뿌리가 점점 더 깊이 느껴지던 기침소리 등등……그랬다. 옛날과는 생판 모습이 달라져버린 그 삼촌에게서 나는 문득문득 어딘가로 종적을 감추어 버린 내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하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는 해도 그의 기이한 행적들을 죄다 이해 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아니었다. 귀가 한 해가 가까와 오던 이듬해 초여름에 삼촌은 최초의 범법행위를 저질렀었다. 구닥다리 엠원 소총을 몰래 꺼내들고 사냥을 나갔던 그는 멧돼지 대신에 사람을 쏘았던 것이다. 공판정에 서 있던 삼촌의 모습을 나는 잘 기억해낼 수 있었다. 표적물을 착각한 것은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그는 단호히 대답했었다.
「천만에, 사람인지 짐승이지쯤은 충분히 식별할 수 있는 상황이었임더.」
「그렇다면 상대의 얼굴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는가?」
「물론임더. 낯선 얼굴이었임더.」
「낯선 사람을 쏜 이유가 무엇인가?」
「……」
「그럼 다시 묻겠는데 자기방어가 목적이었는가 아니면, 살해가 목적이었는가?」
「처음엔 산짐승이 움직이고 있거니 생각했임더. 잔뜩 긴장하고 있는데 표적이 불쑥 노출됐습니더. 가늠쇠 위에 떠 오른 것은 분명 사람의 얼굴이었임더. 그것도 낯선……갑자기 살의(殺意)의 충동이 나를 사로잡았고 그러자 상대가 쓰러졌임더.」
「최초의 일발을 발사한 후 상대가 쓰러진 뒤에도 다시 두발을 더 발사한 이유는?」
「상대가 픽 쓰러지는 것을 보았을 뿐 나 자신은 방아쇠를 당긴 기억도 또 총성을 들은 기억도 없었기 때문입니더.」
일테면 그것이 삼촌의 기이한 생애의 시작이었던 셈인데, 그 이후의 거듭된 행적에 대해서는 여전히 나로선 이해할 길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불법무기소지와 살인미수로 육 년 형을 살았었다. 출감 후 내 어머니는 서둘러 그를 장가 들였지만 결혼 두 해 뒤에 그는 다시 재범을 했고, 재출감 일년도 못되어 삼 범을 기록했다. 두 번째는 강도미수, 세 번째는 강도 상해였다. 전과가 거듭될수록 적어도 외형상으로는 동기가 단순해져 갔고 그에 비례하여 죄질도 저열해졌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의 기이한 행적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던 까닭은 그가 결코 경제적인 동기에서 범법을 거듭하고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몰락한 가계라고는 해도 그에게는 상속받은 유산이 있었을 뿐더러 그나마 경영하는 일에도 그는 도무지 뜻이 없어 했던 것이다.
사자는 이제 말이 없다. 아무도 예기치 않았던 순간에 그는 갑작스럽게 자신의 생애를 마감해 버린 것이다. 생애의 태반이 그러하듯 그 죽음까지도 우리가 쉽사리 이해할 수 없는 그런 것으로 남겨둔 채 그는 영영 함구해 버린 것이다. 또 한번 관 뚜껑을 열어 젖힌다고 한들 우리가 어떻게 그의 죽음, 그의 생애를 납득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면 그의 침묵을 보다 영원한 것으로 만들어 놓는 것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고 나는 생각했고, 따라서 이 지긋지긋한 장례가 빨리 끝나주기만을 열렬히 소망했다.
고인을 다시 대한 것은 일몰이 가까운 시작이었다. 유해를 받아 안았을 때 상주인 종수가 보인 반응은 무슨 말로도 표현할 재간이 없다 그의 표정은 차라리 백치의 그것에 가까웠다고나 해야 할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보다 더 나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한지에 쌓인 한 줌의 재도, 그것을 받아든 종수의 표정도 아니었다. 나를 사로잡은 것은 아주 작고 단단한 파편 한 조각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쇄골(碎骨) 과정에서 발견했다면서 작업장 인부가 그것을 내 손바닥 위에 장난스럽게 올려놓았을 때 나는 흡사 쇠공이 같은 것으로 정문(頂門)을 강타 당한 듯한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그것은 의심할 나위 없이 고인의 오른쪽 가슴 어딘가에 깊숙이 박혀 있던 바로 그 파편조각이었다. 외과수술로도 적출해 낼 수 없었던 그 작고 단단한 쇳조각은 암처럼 체내에 뿌리를 내린 채 마지막 순간까지도 고인의 생명을 지배해 왔음이 분명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어둠이 서서히 묻어오는 하늘에 눈발은 여전히 엷게 날리고 있었다. 매운 바람 속을 묵묵히 걸어 내려오면서 나는 문득 심한 자괴(自愧)를 의식했다.
이동하(李東河: 1942- )
일본 오사카 출생. 서라벌 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전쟁과 다람쥐>가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 현 목포대 교수. 그는 자전적인 요소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작품 활동을 하고 있으며, 간결하고 명확한 문장을 가진 작가이다.
주요 작품으로는 <우울한 귀향>, <모래>, <파편>, <폭력 연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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