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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단편소설2

53. 감정이 있는 심연

by 자한형 2022.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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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 있는 심연 -한무숙

 

무슨 까닭인지 유달리 돌이 많은 마당이었다. 그것도 모래땅에 구르는 동글동글한 자갈 돌 같으면 그렇지도 않으련만 시꺼먼 진흙땅에 반쯤 박혀 있는 뾰죽뾰죽한 돌이고 보니 걸핏 하면 발 끝이 걸릴 법도 한 일이다. 그러나 그다지 넓지도 않은 마당인데 두 번이나 같은 실수를 한 것을 보면 어지간히 마음이 바빴던 모양이다. 사실 이 침울한 곳을 그렇게 벅찬 마음으로 찾는다는 것부터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그런 만큼 희망이니 기대니 하는 심정보다 더욱 저락한 것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여느 때 같으면 그 앞에서 버릇같이 망설이게 되는 출입구를 한 달음으로 지나려 하는데 누구인지가 소맷자락을 붙들었다. 출입구래야 정면 현관이 아니고 북쪽으로 난 뒷문이다. 처음에는 별동이 있어서 본동과 별동 사이에 건너진 회랑(廻廊)이었던 모양인데 지금은 반 동강으로 끊어져 무슨 꽁지나처럼 무의미하게 본동에 곁붙어 있었다. 사람 하나 겨우 다닐 만한 넓이로 개찰구 같은 느낌을 준다. 그 개찰구 같은 입구에서 옷자락을 잡힌 것이다.

내일이 공판 날입니다, ? 내가 빨갱이가 아니라는 것을 증언해 줄 분은 선생 밖에 없다는 거야요.

삼십 전후의 창백한 청년이다. 눈이 들떠 있었다. 손톱으로 쥐어뜯었는지 뺨에 끔찍한 할퀸 자국이 있다. 턱 아래를 바칠듯이 바싹다가와서 어미(語尾)에 힘을 주며 노려보는 것이다. 몇 달을 드나드는 동안에 어지간히 익어버린 일이었지만, 웬지 이때 만큼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몸이 뒤로 젖혀질 정도로 당황해졌다.

『…….

내일이 공판날이란 말이예요.

어조가 속삭임으로 변한다. 그제서야 겨우 마음이 가누어지고 말이 나왔다.

, 나두 잘 알구 있습니다. 그럼 내일 재판소에서 뵈올까요.

청년은 안심한 듯이 히죽이 웃고 손을 내밀었다. 길다랗게 자란 손톱 밑에 새까만 때가 끔찍스럽게 끼어있었다.

청년이 억센 악수에서 놓여 별동 안으로 발을 옮기면 나는 마음이 자꾸만 안으로 기어 들어가기 시작하는 것을 어찌 할 수 없었다. 청년의 출현이 그때껏 내 내부에서 부풀어오르며 감정을 중단시켰던 것이다.

하여튼 환자와의 면회를 청할 양으로 종업원을 찾았으나 일요일인 까닭인지 진찰실 수부 처치실 할 것 없이 사람이라고는 보이질 않았다. 나는 남쪽으로 창이 난 진찰실 소파에 걸터앉아, 포켓 속에서 담배를 더듬어 꺼내어 물고 기다리기로 하였다.

여덟평 가량이나 될까, 꽤 큰 방이다.

북도켠 벽에 대여 침대가 놓여 있고 입구 가까이 새하얀 카바를 씌운 소파 벽을 도려 판 조그만 제물장 속에는 알 수 없는 기구들이 들어 있다. 남쪽 창 옆에 자리잡은 커다란 사무 책상 앞에 놓인 대소 두 개의 회전의자에도 깨끗한 카바가 씌워졌고 창으로부터 들어오는 햇살은 그 회전 의자에까지 뻗쳐 있었다. 밝고 깨끗한 방인테 어째서 여태껏 어둡고 구주주한 것으로만 생각하고 왔던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어디서부터인지 낮닭 우는 소리가 들리어 그것이 봄을 연상시켰다. 그러고 보니 창 너머 올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복사꽃이 노을처럼 퍼졌다. 갑자기 어깨에 걸친 봄 코트의 무게가 느껴져서 소매를 빼려고 일어서는데 그제서야 담배에 불을 붙이는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을 알았다. 나는 담배를 문 입으로 쓰게 웃었다. 이것이 환자의 한 사람이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빈 방에 우두커니 앉아 제딴으로는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양인데 불도 붙이지 않는 빈 담배를 넋을 잃고 빨고 있었다.――카르테에 올릴만한 병이란 환자에의 의혹(疑惑)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하던 말이 머리를 스쳤던 것이다. 그러나 이 상념은 곧 전의 충격으로 어두워 지려던 나의 마음을 얼만큼 누그려 주었다. 사실 이곳에서 간간이 느끼는 일이지만 정신이 평정상태에 있는 환자를 대할 때마다 석연치 않은 점이 없지 않았다. 물론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때로는 그 건전한 육체와 조용한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창살이 박힌 육중한 자물쇠로 채워져 있는 소라통 같은 병실에 갇히어 생활을 중절 당하고 있다는 것이 무슨 잘못 같이 여겨지는 것이다. 말하자면, 의사들의 망상적인 정신분석의 희생자들이라고도 할까. 좀 전의 그 청년만 하더라도 구내 사노가 허락될 정도로 회복기에 들어 있었기는 했지만, 며칠 전에 만났을 때에는 드레휴스 사건을 아주 이론 정연하고 타당하게 평했던 것이다

생각하면 모든 것은 해석하기 나름일지도 모르겠다. 국만학교 때 코 밑에 수염을 기른 늙은 교감이 있었는데, 엄격하고 완고한 이 교감은 천둥이 딱 실색이었다. 배를 내미는 것이 좀 더 위엄을 주는 것이라고 알았는지 그렇게 함으로써 더욱 앞 배가 나오도록 항상 뒤짐을 지는 것이 버릇이었는데, 천둥 소리만 들리면 뒤에서 굳게 깍지를 꼈던 손이 그만 머리 위로 올라가 머리통을 얼싸안고 일학년 코흘리개 앞에서 쩔쩔 매는 것이었다. 물론 남들의 놀림가마리가 되었지만, 거듭하는 동안에 그것이 오히려 그의 인간성에 친밀감을 갖게 하였고, 그러다가 남들이 모두 흥미를 잃어버렸다. 그리고 보면 죄악망상(罪惡妄想)아리는 병명으로 이 병동 어느 병실에 들어 있는 전아(典娥)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침대 같은 높은데서 잘 자격이 없다고 찬 마룻바닥에서 웅크리고 잔다 하여 그것이 절망적인 증세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 아닐까?

사유(思惟)가 이렇게 낙관적으로 흐르기 시작하자 나는 코트를 벗어 소파에 걸고 앉아 담배에 불을 당겨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일전에 이 방에서 헤어진 전아의 애련한 모습이 떠올랐다.

해가 바뀌고 부터는 아주 정상 상태에 돌아가 있었던 전아는 발작을 일으키고 있었을 때보다 야워 가슴을 아프게 하였다. 그 아픔을 사랑이라고 하여야 옮았을 것인지 모르겠다.

나는 무슨 결단이나 내리듯 두어 모금 담배를 세게 빤 후 몸을고쳐 앉았다. 가슴에 손을 대 보았다. 안 포켓속에 네절로 접은 엷은 크림 빛 종이가 들어 있는 것이다. 소위 비자라는 것. 시험지 반장 가량도 채 못 되는 종이에 깨알만한 영자가 몇 줄 들어 박히고 끝에 가서 멋드러진 서명이 갈겨져 있을 뿐, 늘상 하숙집 아주머니가 뒤지로 쓰기엔 좀 뻣뻣해서 탈이라고 하는 다른 외국의 휴지와 다를 것 없는 무표정한 종이 쪽지다. 허나 이것은 이 몇 달 동안 나의 영혼과 생활을 회오리 치게도 하였던 것이다. 허기야 한 때는 이것이 거운 내 인생의 목적이 되다시피 하고 있었다. 스물 일곱 살의 야심이 끓었다. 어쨌든 미국을 가야만 했다. 무엇이 되어야 했다. 그것은 나에게 있어서는 원대한 꿈이라기보다 차라리 잔인하고 집요한 복수 같은 것이었는지 모른다. 캐어보면 그렇게도 라이너어 대위――아니 예일대학 고고학 교수 라이너어 박사의 마음을 끌은 나의 악착 같은 면학태도도 순수한 학문의 탐구가 아니고 그러한 야심에의 한 수단이었었던 것 같다.

하여튼 미국 유학을 앞두었기 때문에 나는 전아에 대하여 얼마만큼 떳떳했고 모진 뿌리처럼 박혔던 굴욕감과 적개심 같은 것이 한결 가셔지며 있었던 것이다.

전아의 집은 우리 지방 굴지의 대 지주의 집이었다. 오릿골 큰 기와집이라면 오릿골을 모르는 사람들도아아하며 안다는 표정을 짓는 것이었으나, 소위 부재지주로 전아의 주모가 작고한 뒤에는, 사당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그 집안 어려운 일가가 안 채를 차지하고 아무도 받아 주지 않는 아니꼬운 거드림을 부리곤 하였다. 시형(時亨) 때나 한식, 추석 때 외에는 이 꾀죄죄한 일가 사람은 통 존재가 없었고 오릿골 실권은 마름을 맡아보는 내 당숙이 쥐고 있었다.

풍류를 좋아해서 무객 광대들이 떠날 새 없었다는 사랑채 방들은 구들이 빠진 채 그대로 광 대신 쓰여지고, 이까가 파랗게 낀 기와 고랑에는 잠초들이 멋대로 나서 제법 노오란 꽃까지 피웠다.

오릿골 만경이는 큰 기와집 업이라고 남들이 이를 만큼 오히려 가혹하게 토지를 거두던 내 당숙도 무슨 까닭인지 그 큰 집에 손을 대려 하지는 안 했던 것이다. 말은 하지 않았으나, 그도 주인집 가족들이 다시는 그 집에 돌아와 살지는 않으리라는 동리 사람들의 쑥덕공론을 무언 중에 시인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전아의 집에는 이상하게도 추문(醜聞)이 많았던 것이다.

두어 주일 전에 병원을 찾아왔을 때, 원장의 허락을 얻어 둘이서 병원 뒤 언덕을 거닐은 일이 있었는데, 울먹울먹한 얼굴이 자꾸만 숙여지는 것이 요즘의 버릇이 되어버린 전아는 가느다란 소리로 이런 말을 했었다. 이런데서 얼마를 지낸 이상 결혼을 할 자격은 영원히 잃은 것이 아니겠느냐고, 그것은 말이라기보다 차라리 저도 모르게 새어나온 탄식이었다. 나는 그만 그를 쓸어안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참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면서 머리에 떠오른 상념이 있었다. 그것은 전아의 발병 이래 몇 번이고 내 머리를 스쳤던 것이고, 전아의 발병이 나로 인한 것인 이상 나로서는 결코 가져서안 되는 생각이기도 하였다.

해방 직후의 일이다. 나는 처음으로 전아의 서울 집엘 가 보았다. 완고만 하던 당숙이 불쑥 중학교에 넣어주겠다고 데리고 상경했던 것인데, 그때의 인상은 무어라고 형용할 수 없이 기이한 것이었다.

계동에 있는 전아의 서울 집은 시골집 같이 웅장하지는 않았으나, 더욱 규모가 짜여지고 호화로웠다. 가구들도 시골뜨기 소년의 눈을 휘황하게 하는 것뿐이었고, 얼음장 같이 길든 장판하며 손톱 자국하나 없이 팽팽한 창호지라든가, 문갑 위에 정연히 놓인 검은 장정의 몇 권의 책들 (그것이 모두 종교 서적이라는 것을 안 것은 뒤의 일이었으나) 운치 있게 꾸민 정원에 핀 꽃들에 이르기까지 한가지로 이 집 사람이 부유할 뿐더러 알뜰히 꾸려져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두 주먹을 각각 두 무릎 위에 눌러 얹고 윗목에 끓어 앉았던 나는, 이마 너머로 아랫목쪽을 훔쳐보며 다리 아픈 것도 잊고 있었다. 아랫못에는 사십 전후의 늙은 누에를 연상시키는 해말간히 생긴 부인이 줄곧 혼자서 말없이 히죽히죽 웃는 낯으로 앉아 있는 옆에, 그녀보다는 두어 살 손 위로 보이는 건강한 부인이 내 당숙하고 말을 주고 받고 있었다. 내용은 몰랐으나 당숙의 말이 그녀에게는 흡족한 모양으로 소담한 군턱이 두툼한 가슴에 닿일 정도로 서너 번이나 고개를 끄덕이곤 하였다. 이것도 나중에 안 일이었으나 이 건장하고 거만한 부인이 전아의 큰 고모였고, 또한 이 집의 주동자이기도 하였다. 남자 같이 활동적인 동시에 결단성 역시 못지 않아 앞을 알아보기나 한 것처럼 일찌감치 친정 집의 토지 전부를 넣어 재단을 세웠던 것이고, 이날도 토지관리를 맡아보는 당숙과 무슨 용담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윽고 그 용담 속에 나의 진학문제가 들어 있을 법도 한 일이었다. 열 여섯이라면 중학 입학에는 연령이 넘는 데다가 나이보다도 멀쑥하게 큰 나는 그렇게 멀쑥하게 큰 것이 어쩐지 부끄러워 긴 다리를 주체스러워 하고 있는데 저녁이 되어 밥상이 들어왔다. 우선 첫눈에 섬찍할 정도로 아리따운 삼십 가량의 여인과 중년이 넘은 식모인 듯한 마누라가 맞들은 두레상이 아랫못에 놓이고 뒤이어 열 여섯 되어 보이는 처녀 아이가 아래채에 나가 들겠다고 한사코 사양하는 당숙 앞에 겸상으로 차린 밥상을 갖다 놓았다.

아름다운 부인은 눈도 들지 않고 밖으로 나가더니, 곧 이것은 또 꼭 자기를 빼어 닮은 열 두어 살의 소녀의 손을 끌고 되돌아와 상머리에 소녀가 자리잡는 것을 본 후에야 행주치마를 벗어서 개켜놓고 자기도 상앞에 앉았다. 그렇게 상 앞에 자리들을 잡았으니 곧 식사가 시작될 줄 알았던 나는 다음 순간 눈이 휘둥그래지고 말았다.

그녀들은 숟갈을 들기 전에 모두 기도를 시작했던 것이다. 그 기도가 어이없이 오래 계속되는 것이다. 두레상을 둘러앉은 네 사람 중에 정면으로 얼굴을 보이고 있는 것이 당숙하고 말을 주고 받던 그 건장한 부인이고, 해말간 중년부인과 소녀가 옆 얼굴을 보이며 마주 앉고, 그 아리따운 부인은 이쪽으로 등을 보이고 고개를 숙인채 깎아나 앉힌 것처럼 긴 기도가 끝날 때까지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 미동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그 부인뿐이 아니고, 옆에 앉은 소녀 역시 같은 모습을 지니고 있는데, 늙은 누에 같은 중년부인은 남들이 하는 대로 깍지를 낀 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 고개를 수그리고 있기는 하였으나, 옆에서 보기에도 그것은 기도의 자세가 아니었다. 내려 깔았던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밥상을 흝어 보다간 전아의 큰 고모 쪽을 이마 너머로 살금살금 할켜 보곤 하는 것이다. 전아의 큰 고모는 다른 사람들과는 자세부터가 다르다. 오히려 얼굴을 치켜 들었다. 무슨 격심한 고통을 참고나 있는 것처럼 잔뜩 미간에 주름을 잡고 두 눈을 꽉감았다. 무어라고 쉴새없이 입 속에서 뇌이는 모양인데 입술의 달삭임보다 턱이 더 까불었다. 간간이 격분에 못 이기기나 한 것같이 어깨가 움직일 정도로 고개를 흔들고 깍지를 낀 손에 힘을 주는 것이다. 그것은 단란한 식탁 앞에서의 감사의 기도라기보다 오히려 거기 다소곳이 고개를 조아리고 대죄(待罪)하고 있는 아리따운 여인과 어린 소녀의 죄상을 주워섬기고 있는 괄자의 모습이었다. 이 기이한 광경이 그대로 어린 전아의 환경이었던 것이다.

나는 어느 사립 중학교에 들어 왕십리에 있는 이모 집에서 통학을 하고 있었다. 워낙 집안이 모두 전아의 집에 붙어사는 형편이라 이모 역시 안잠을 자지 않았을 뿐 그 집 출입이 잦았다. 더구나 그녀는 전아의 유모이기도 하여서 그 집 사정에 밝았다. 그 늙은 누에 같이 해말간 부인이 전아의 어머니고, 전아를 난 후 산후발로 열이 시히 오르더니만 그 후부터는 병신이 되고 말았다는 것도 그녀에게서부터 들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시골에서 숙덕거리는 큰 기와집 최대의 추문――즉 행실이 부정해서 욕된 씨를 지으려다가 철창신세까지 졌다는 사건의 주인공이 그 아리따운 여인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적지 않게 놀랐다. 어쨌든 나는 집에 돌아와서까지 마님이니 애기니 하는 이모가 미웠다. 자유가 없으면서 자유라고 생각하는 것이야 말로 짜장 노예 근성이 아니겠는가. 동급생보다 훨씬 연장이라는 것이 기묘하게 열등감을 가지게 하여 제 나이대로 진학할 수 있는 횐경이 시새워, 나는 마음이 거세져 있었다. 당숙이나 이모가 전아의 집에 대하여 은고(恩顧)를 느끼는 점이 나에게는 그대로 착취로만 생각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녀의 집이 그렇게 남에게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사실이 나에게 등골에서부터 자작 새어 나오는 것 같은 쾌감을 주기도 하였다. 물론 그러한 반감과 증오감은 전아의 집이라는 특정한 대상에 대한 것이 아니고, 전아의 집이 대표하는 어느 계급에 향했던 것이라고 하는 것이 타당 할지 모른다.

이모는 곧잘 전아의 어머니가 병신이 된 것은 산후발보다는 시어머니와 큰 시누의 등쌀 때문일 것이라고 비치곤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전아의 어머니에 대한 동정이라기보다 그녀의 큰 고모에 대한 반감과, 그 아리따운 부인――즉 전아의 작은 고모와 전아에게 가는 안타까운 정을 나무둥치나 다름없는――그러니까 무해(無害)한 그녀에게서 일단 굴절시킨 따름이었던 모양이다. 뒤이어 그녀들의 처지를 못내 애닲아 했다.

, 과부 설움은 과부가 안다는데 동기간에…….

어쩌다가 이모가 이렇게 중얼거리는 날이면 그 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이 짐작되었다. 오릿골 큰 기와지은 대대 딸이 안 되는 집이라는 소문은 시골 있을 때부터 들은 말이지만 전아의 고모는 두 사람이 다 혼자 되어 친정살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전아가 난 지 이듬해에 그녀의 아버지는 무슨 교통 사고로 죽은 후, 전아의 집에는 사변 때 별세한 전아의 조모를 비롯하여 노소 네 과부가 남았다. 그 주동이 그녀의 큰 고모였는데, 이 광신적인 기독교인같이 잔인한 사람은 예가 드물었다.

사람은 남으로써 죄를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인생의 궁극의 목적인 영생에 이르기에는 속죄를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녀의 말을 들으면, 신은 지고의 사랑이 아니고 지고의 악의자(惡意者)라는 느낌이 더 커지는 것이었다. 전아는 이 고모 아래에서 항상 죄에 떨며 살아왔던 것이 아닐까?

어쩌면 어린 그녀는 사랑이란 말보다라는 말을 먼저 들었는지도 모른겠다. 무엇보다도 이모의 반감을 산 것은 전아의 큰 고모가 악에 관용하라는 것을 신에의 배덕이라는 명분 아래, 그 아우의 비밀을 발가낸 일인 모양인데 그보다도 더 소름이 끼치는 것은 죄의 끝을 보여야 된다고 열 한 살 난 어린 전아를 그 공판장에 끌고 나간 사실일 것이다.

언젠가 밤 늦게 전아의 집에서 돌아온 이모는 무슨 일이 있었던지 몹시 흥분해 있었는데, 쏟아 놓은 말 중에 그때의 광경이 끼어 있었다.

글쎄 하아얗게 핏기가 가시면서 내 팔 안에 이렇게 쓰러 넘어지지 않았겠니?

하고 그는 두 팔을 늘어 뜨리고 넘어지는 시늉을 하였다.

푸른 미결수의 수의를 입고, 용수 쓰고, 수갑 채워 끌려나오는 고모를 보자 어린 전아는 그만 연한 나비처럼 하늘하늘 힘없이 쓰러져 버렸다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정상이란다. 전아 마냥 자기 감정의 경사(傾斜)를 끝까지 타고 내려가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안타까운 심정――아무래도 내 품속에 그녀를 다시 품음으로써, 아니면 영원히 그녀를 잃음으로써 자신을 찾아야겠다. 나는 전아를 범한 것은 아니다. 사실 우리는 어느 쪽에서 먼저 쓸어 안았는지 몰랐던 것이다. 내 품 속에서 그녀는 불타는 여인의 목숨 그것이었다. 내가 범했던 것이라면 그녀는 피해감과 분노와 원한을 가졌을 때름 거기에 죄악감을 느끼지는 않앗으리라. 대체로 성()의 교합이란 서로 사랑하는 부부 사이에 있어서까지 어떤 처참한 감정이 따르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성은 생체(生體)의 내용의 하나가 아니겠는가? 구탸여 죄라면 그 죄를 거듭함으로써 구원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광란하는 전아를 이곳에 맡기고 그녀의 작은 고모와 더불어 돌아가며 나는 자꾸만 분노 같은 것이 치밀어 오는 것을 억제할 수 없었다. 무엇을 탓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탓하고 싶은 심정 갈피에서 노상 햇죽햇죽 웃고만 있던 그녀의 어머니의 해말간 얼굴이 뺑긋이 내다 보이고, 그녀의 큰 고모의 험한 얼굴이뉘우쳐라, 뉘우쳐라.하고 이를 악물었다.

전아의 작은 고모는 종시 말이 없었다. 음산한 겨울의 구름이 끼어 무슨 악의(惡意)를 품은 것 같은 하늘 아래서 그녀는 여느 때보다도 더 조용히 발을 옮기고 있었다. 격한 마음에도 무언지 운명보다도 더 조용히 발을 옮기고 있었다. 격한 마음에도 무언지 운명같은 것을 느끼게 하는 모습이었다. 어쨌든 하나의 삶을 살아가며 있는 모습이 영광되건 욕되건 간에 자신의 삶을 살고, 삶으로써 자신을 더럽히고, 자신의 죄를 지고 스스로 그것을 지으며 살아가는 모습이었다. 이모의 말을 들으면 한 때는 무던히도 괴로워 몸부림도 쳤다는데 촐옥 후에는 오히려 명랑해져서 그렇게도 이루지 못하던 잠도 곧 잘 자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그녀의 죄를 한정시켜 그의 인간적인 괴로움을 덜었던 것인가? 하여튼 그녀는 그런 평온한 태도로 어린 조카딸의 양육에 전부를 바쳐왔던 것이다.

전아의 집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고요했다. 그녀의 그 해말간 어머니는 이미 벌써 죽고 없었다. 높은 산에 눈이 내려 거기 쌓여 있거니 하여 오다가 어쩌다 눈을 들어보았을 때 그것은 어느덧 사라져 보린 것을 깨달을 때가 있는데 그녀는 그런 죽음을 하였다. 나는 이날 새삼스럽게 눈을 들어보았던 것이다.

둘이는 말없이 방으로 들어섰다. 언제나처럼 아담하고 정돈된방 벽에 박힌 못에는 전아의 옷이 걸린 채로 있는 것이다. 까마귀 날개처럼 까만 수트――전아는 여기다가 눈 같은 블라우스를 얼마나 표정적으로 받쳐입었던 것인가! 못 볼거나 본 것처럼 거기에서 시선을 거두려는데 문득 눈길이 깨끗하게 정돈된 책상위로 갔다. 깨끗하게 정돈된 책상 위에 영어 잡자가 두 서너 권――그 위에 영어로 된 서류인 듯한 엷은 크림빛 종이가 얹혀 있는 것이다. 비자――며칠 전에 나온 전아의 입국 허가증이었다. 무언지 모르게 섬찍해지는 데 전아의 작은 고모가 무슨 신호나 받은 것처럼 두 손으로 그 종이 쪽지를 받쳐들며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 눈물은 내 마음의 위치를 씻어내는 것이었다. 길가의 돌멩이가 비에 씻겨 드러나듯이.

전아의 비자가 나오던 날, 우리 사이에는 꽤 오래 말다툼이 계속 되었다. 말다툼이래야 전아는 그저 내 말에 동의를 하지 않았을 뿐, 나 혼자만이 뇌까려 대었던 것인데 그녀는 본시 말을 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여인이었다. 대체로 전아의 성격은 무슨 액체(液體)나처럼 윤곽이 없었다. 기이한 환경 속에서 엄청나게 상이된 사람들 틈에 끼어 자라는 동안에 아무하고나 어울릴 수 있는 양순하고 고분고분한 성격이 되어버린 것인지 모른다.

이것도 이모가 한 말이지만 애기 때 전아는 종일껏 버려두어도 칭얼거려 본 일 조차 없는 순한 애기였으나 어린 대로 고집이 세었다 한다. 머리통을 바로 굳히려고 뉘일 때 무던 애를 썼건만 잠시만 모아 주지 않으면 어느새 고개를 왼 쪽으로 돌리고 있었더란 것이다.

그래 얘 왼 쪽 뒤통수가 좀 삐뚤어지지 았았든?

하고 이모는 옥의 티라는 표정을 하는 것이었으나, 그런 결점을 의식해서 감추기 위해선지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인지는 몰라도 전아는 독특한 형으로 머리를 빗었다. 왼쪽으로 가르마를 타고 옆 머리를 위로 약간 걷어 올렸다가 거기서부터 가볍게 물결치게 빗어 내려 귀 뒤에서 새 가슴털마냥 호르를 부풀렸다. 그것이 그녀의 몽상적인 얼굴에 어울렸는데 그날 따라 나는 그녀의 옆 얼굴을 훔쳐보며, 그쪽으로만 고개를 돌려 눕더라는 이모의 말이 웬지 자꾸반 상기되는 것이었다. 그녀의 옆 얼굴을 훔쳐보는 눈초리가 실망으로 흐려졌다. 나는 그녀가 못마땅했던 것이다.

 

그녀의 꼭 다물은 아담한 입술이 시기스러웠다. 한 마디만――꼭 한마디만 해 준다면 나는 마음이 후련해질 것 같았다. 빈 말이라도 좋았다. 그녀는 그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자기 혼자는 떠나기 싫다고만 해 주었으면 좋았던 것이다. 그러면 나는 그런 희생과 순정을 끝내 사양하는 관용을 가질 수도 있었던 것이다.

스스로의 행동에 비통하게 취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전아는 빈 말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꼭 다물은 입술이, 발끝에만 집중시키고 있는 시선이, 기회를 놓치기 싫다고 끊어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 순간 오릿골에서 갓 올라온 팔다리가 멀쑥한 시골소년을 그대로 자기에게 느꼈다. 나에게 일별도 던지지 않던 어린나비처럼 애처롭고 아름다운 소녀가 거기 있었다. 거리가 느껴지는 것이다. 그것이 현실이었다. 스물 일곱 살의 이성(理性)이 좀더 일찍 알고 있어야 하는 현실이었다. 내게는 최대한(最大限)이 그녀에게는 평상인 것이다. 내가 획득하려 애쓰는 것을 그녀는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이다. 언제나 그러했다. 이번 경우만 하더라도 나는 필생의 비원(悲願)이나처럼 애쓰고 서둘고 있는 미국 유학이 그녀에게는 무슨 당연한 과정(課程)같이 이루어져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입국을 거부당할 정도로 험한 흉이 남도록 가슴이 나빴다면서 자신이나 남이나 모르고 지내왔다는 엄청난 사실이 새삼스러운 굴욕과 분노가 되어 서글픈 낙오감에 심각하게 와 감겼다.

전아가 떠날 생각으로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뒤에 남게 되는 마음에는 그것이 어떤 배신 같이만 느껴지는 것이다. 아니 배신이 아니고 농락이라는 쪽이 옳을지 모른다. 제 본심이 드디어 나타난 것에 불과한 것이다. 도대체 오릿골 큰 기와집 아가씨한테 일찍 어버이를 잃고 그 집 마름을 맡아보는 당숙손에서 겨우 자라난 거지나 진배없는 놈팡이가 당할 일인가? 어금니가 옥물려 진다. 눈에 힘을 주어 쏘아보았다. 약간 창백한 고상한 옆 얼굴――무엇인가가 가슴 한구석에서 피를 토했다. 농락한 것이라도 좋다. 그대로만 속여 다오――눈 속이 조금씩 어두워져갔다. 그 어두워져 가는 눈 앞에 지난 날이 얼룩거렸다.

휴전이 되던 해에야 나는 비로소 부산이란 곳을 가보았다. 거기 피난하고 있던 이모의 병이 심상치 않다는 소식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모는 전아의 집 사람들과 같이 기거를 하고 있었는데 피난살이고 보니 자연 사람을 여럿 둘 수도 없었던 것이다. 많지 않은 식구였으나 늙은 뼈에 힘이 겨웠던 모양이다. 그러나 이모는 무던히 명랑한 얼굴을 보여 주었다. 통조림이나 미국 과자 같는 것을 적지 않게 가지고 간 조카가 자랑스러웠던 까닭이리라. 나는 당시 UN군 통역으로 있었던 것이다. 사변 직후 당시 중학 육 학년이었던 나는 수복과 더불어 군에 들어 비교적 고생을 덜한 셈이었다. 대장이 앞에 말한 라이너어라는 대위였었는데, 이 사람은 직업 군인이 아니고 소집을 받아 나온 젊은 고고학자였다. 우연히 그의 종졸로 있게 되었던 나는 이 진지한 젊은 학자의 지도를 받게 되어 악착같이 영어를 배웠다. 이 년 후 부대가 대구 지방으로 이동이 되었을 때는 나는 제법 우수한 통역이라는 말을 듣게 되어 있었다.

 

라이너어대위는 틈만 있으면 나를 동반하여 가까운데 있는 경주를 찾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었다. 자연 안내역을 맞게 된 나는 그의 눈에 들기 위하여 고적이나 고대 예술품에 대한 팸풀릿 같은 것을 들치게 되었고, 어느 정도 전문적인 지식을 받아넘길 수도 있게 되어, 그것이 라이너어 대위를 무척 놀라게 한 모양이었다. 생각하면 내가 지금 고고학을 하게 된 것은 어디까지나 그런 우연들이 쌓여서 하나의 방향을 이룬 것이지, 털어 말하여 아예부터 무슨 포부라든가 신념 같은 것에서 출발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대로 하나의 길이 트인 것만은 사실이어서 제대하여 귀국한 라이너어 박사의 호의가 나로 하여금 미국 유학에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게끔 하였던 것이다.

피난 내려가던 이듬해에 등신이나마 어머니 되는 이를 잃은 전아는 몇 해 못 보는 동안에 올랄만큼 성장해 있었다. K여고 삼 학년인데 그림은 잘 그린다고 이모가 자랑하듯 일러주었다.

생각 이상으로 환대를 받고 돌아간 나는 그 후부터 부산길이 제법 잦아졌다. 어려서부터 거운 어머니 대신이 되어온 늙은 이모를 보살핀다는 이유에서였고, 또 사실 이모가 그대로 눌러 있기를 원함으로 달리 거처 주선을 하던 것을 중지는 하였으나, 그 집에서 어느 정도 대접을 받을 수 있을 만큼 물리적으로도 도움이 되어 주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 나는 어느덧 서울서 그 집으로 갈적마다 가졌던 열등감을 잊어버리게 되었다. 그것은 전아의 큰 고모까지 때로는 라이너어 대위를 대동하는 일도 있었던 나를, 전과는 달리 맞아 주었던 탓도 있었지만, 그런 외부적인 이유보다 고만쯤의 어학력으로 한껏 오만해 있었던 나의 하룻강아지 같은 철 없는 마음이 더 큰 이유가 되었다고 하는 쪽이 옳을 것이다. 그런 어줍잖은 나를 전아는 왜 사랑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환도한 지 이듬해 봄이었다. 우리는 안국동에 있는 어느 고물상엘 들렀다가 원남동으로 가는 길을 걷고 있었다. 전아는 예술 대학 이 학년이 되고 있었다. 환도 후에 이어 미국 기관에 있었던 나는 전아의 큰 고모가 교주가 되어 있는 R학원 복구사업에 힘을 합하는 격이 되어 환도와 전후하여 죽은 이모의 생존시보다 전아의 집 출입이 번거로웠다. 그러므로 전아의 대학입시 준비를 보아주게 된 것도 지극히 자연히 시작된 것이었고 그렇게 어깨를 나란히 하며 다니는 기회도 곧 많이 있었던 것이다. 미술전공을 하고 있던 전아는 그때부터 라이너어박사의 초빙을 받아 제딴으로는 준비를 할 양으로 박물관이니 고물상 같은 데를 훑다시피 하고 있던 나를 적지 않게 도와주었다. 물론 사진기를 준비하고 있었기는 하였지만 나를 위한 전아의 사생(寫生)은 이상하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그 날도 그런 일로 어느 고물상에를 들렀던 것이다.

돈화문에 이르렀을 때였다. 싹트기 시작한 가로수의 자줏빛이 도는 연두색 상수리를 쳐다보며, 전아가 낮은 소리로 이런 말을 했다.

아까 그 백제관음(百濟觀音)말야요. 난 그리면서 느꼈어요. 우린 지금 그것을 한 가지 유물으로만 취급허구 있지만 그걸 만든 사람은 하나의 의미(意味)를 그렇게 구상시킨게 아니겠어요?

무슨 말을 하려는 전제인지 몰라도 나는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그런데, 다아 지나가버리구 마는 거지요. 사람두, 의미까지두――.

그녀는 말을 끊고 한참 잠잠하다가 이번에는 딴 사람 같은 잠긴듯한 음성으로 다시 나직이 말을 이었다.

나두 어떤 의미가 되구 싶었는데――선생님한테――.

나한테? 그야말루 무슨 의미지?

나는 어떤 기개 같은 것으로 음성이 걷떴다.

글쎄, 사랑일 것이라구 생각해 봤어요.

오히려 무감동 할 정도로 조용한 어조였다. 단정하게 앞으로 향한 무표정한 옆 얼굴이 창백하게 고상했다. 지금 내 옆을 거닐고 있는 바로 이 옆 얼굴이다.

추억이 너무 아프게 생생하여 거기에서 벗어 나려기나 하려는 것처럼 나는 잎이 진 가로수의 엉성한 그림자가 깔린 보도를 마구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허니까 전아도 마치 나의 그림자기나 한 것처럼 말없이 내 옆을 따라 걷는 것이다. 서울시내가 어느 보지 못하던 고장인 것 같았다. 생각하면 이맘 때 쯤은 둘이서 정말 보지 못하던 이국 땅을 걷고 있어야 되었던 것이 아니었던가! 사실 계획 같아서는 이미 칠 팔개 월 전부터 떠날 수속을 밟고 있었던 나는 앞서 미국에 가 있어야 했고 지금쯤은 어지간한 그곳 풍토나 습관 같은 데도 익어있어 뒤이어 올 전아를 맞이하는 준비도 갖추어 있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은 나의 신체검사의 결과로 말미암아 허무러지고 말았고, 그보다도 더욱 안된 일로는 달포 전에 수속을 시작한 전아에게 먼저 비자가 나온 사실이었었다.

이제 나는 그저 슬프다. 전아를 잃을 것이라는 기우가 이 순간이 인생의 최우희 순간이라고 따지고있는 것이다.

나는 자꾸만 걸었다. 전아도 역시 자꾸만 따라 걸었다. 목적 없이 자꾸 걷고만 있는데 어떻게 어떻게 구부러졌다 다시 곧장 갔다가 하는 동안에 나는 그것이 내 하숙으로 이르는 길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면서 무엇에 씌우기나 한 것처럼 자꾸 그 길을 걸었다. 전아도 역시 한 번도 와 본 일이 없는 그 길을 무엇에 씌우기나 한 것처럼 자꾸만 나를 따라 걸었다. 그 길이 닿는 곳에서 우리는 천당과 지옥을 동시에 보았던 것이다.

몇 시간이나 지난 뒨지 거리는 저녁 시간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두들 어디로 가고 있었다. 우리는 길을 가고 있었다. 보도에는 넘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고 전차, 승용차, 트럭, 자전거 등이 꼬리를 물었다. 그러면서 웬지 부성영화 마냥 음향이 없는 풍경인 것이다. 사위(四圍)가 이렇게 자욱한 것은 날이 흐리기 시작한 까닭인가, 저물어 온 까닭인가? 저기 켜져 있는 저 붉은 불은 또 왜 이렇게 앓고 있단 말인가? 모든 것이 눈 설다. 세계가 변해버린 것인가, 내 자신이 변한 것인가? 마치 외부에서부터 조여들어 오는 것 같은 공포 같이 강렬한 관능의 환희――이윽고 있는 대로의 모공(毛孔)으로부터 자신이 새어 빠져버릴 것 같은 허탈감――그것일 것이다. 물론 나로선 처음이 아니다. 어째서 오늘따라 이렇게 갈피를 잡을 수 없단 말인가? 무서운 것이나 보는 것처럼 망설인 후에야 옆에 나란히 앉아 있는 전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흐리므레 한 광선 속에 단정한 얼굴이 창백하게 떠 있다. 미동도 하지 않는다.

 

커다란 눈이 텅 비었다. 그러면서 불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여태까지의 불안이 그녀의 것이었다는 것을 안 것 같았다. 그러나 말을 걸 수는 없었다. 건드리기만 하면 순간 와르르 해체(解體)되어버릴 것 같은 그런 절박한 자세였기 때문이다.

정신을 돌리고 보니, 타고 있는 차가 서 있는 것이다. 십자로다. 가운데 교통순경이 서 있는 장난감 같은 집――그 근처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교통사고가 난 모양이다. 둘레에는 차단 당한 차들이 모여서 홍수를 이루었다. 우두커니 기다리고 않았는데 바른 쪽 소매가 끌려지더니만 보드러운 허벅지가 다리에 와 닿았다. 전아가 바싹 옆으로 다가 온 것이다. 이윽고 떨리는 손이 내 허리를 감싸 않았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아 전아의 얼굴이 향한 창밖을 내다 보았다. 홍수를 이룬 차들 가운데 한층 높다란 GMC가 머물러 있다. 역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허리를 구부리고 좀더 자세히 보고야 그것이 여수(女囚)들을 호송하고 있는 차라는 것을 알았다. 푸른 수의를 입은 스무 명 가량의 여수들이 웅성거리며 앉아 있는 둘레에 장총을 겨눈 자세로 들은 간수가 두 명 지키는데 운전대가 열리더니 운전수가 뛰어 내려 차바퀴 밑을 들여다보기 시작하였다.

기다리는 동안에 이상한 곳을 보아 두려는 심산인 모양이다. 허니까 두 명의 간수가 한가지로 고개를 빼어 차 아래를 휘둘러 살폈다. 마치 무엇인가를 찾으려고나 하는 것처럼. 바로 그 순간이었다. 옆에 앉았던 전아가 괴이한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내 무릎 위에 쓰러져 왔다. 이윽고 사시나무처럼 파르르 거리며 딱딱 마치는 잇새에서 같은 말을 밀어 내듯이 되풀이 하는 것이었다.

숨겨 주세요. 놓쳐 주세요. 빨리 빨리――.

그러나 전아는 영영 거기서부터 놓여져 나오지를 못했다. 실신상태에서 깨어난 느녀가 처음으로 입에 올린 것이못 찾구 가버렸구먼요. 허지만 죄가 무서워.하는 속삭임이었다. 그는 푸른 수의를 입은 여수들의 모습에 죄의 실체(實體)를 본 모양이었다.

 

저좀 보시유. 선상님――.

충청도 사투리의 여인의 음성에 나는 언뜻 정신이 들었다.

어지간히 때가 묻은 흰 환자복에 수건을 내려쓴 오십가량의 부인이다. 그 쪽으로 돌아앉는 나를 보자 입을 오므리고 제법 수줍은 듯이 호호 웃었다.

아까서야 경무대에서 기별이 왔잖겠어유――호호, 기다린 보람이 있을게라구유――그야 뭐.

하고 손을 입에 대며 고개를 꼰다. 그 손을 그대로 가슴에 가지고 가서 매무새를 고치기나 하는 것처럼 다둑거렸다. 가슴은 환자복의앞 단추가 하나씩 엇끼어져 보기에 눈자욱이 꺼지기는 했으나 고운 눈매다.

네에――그러십니까. 감축합니다.

나도 이렇게 대꾸하며 시치미를 떼었다. 대통령 부인을 자칭하는이 과대망상증 환자와도 어느덧 나는 낯이 익어 있었다. 그녀는 또한 간드러지게 수줍어 하더니만 갑자기 미간에 주름을 잡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변했다.

근대 말씀이여유――글쎄 나라 일은 그렇게 모든 것이 까다로운게비유. 대접해드릴 준비를 하여야겠는데유, 그것이 또 어지간히 귀찮은 절차를 밟아야 된다는게비유――일은 내일루 다가왔는데유――.

나는 알아차리고 안 주머니에 손을 넣어 집히는 대로 십 환 몇 장을 꺼내었다.

걱정 되시겠군요. 우선 이것로――.

그녀의 얼굴이 사뭇 엄숙해졌다.

급허니깐 사양 않겠어유. 허나 치부해 두시유. 내 훗날 몇 백갑절 허리다이, . 영감을 만나거덩야이――.

나는 감사의 뜻으로 고개를 숙였고 그녀는 그것으로 만족하여 밖으로 나갔다.

 

아까보다도 더 맑아진 햇살이 회전의자에서 물러가고 있었다. 나는 손을 도로 안 주머니 속에 넣었다. 그리고 좀 전에 지전을 꺼낼 때 묻어 나온 엷은 크림빛 종이쪽지――비자를 도로 거기다가 간수하였다.

내가 그것을 받은 것은 어저께 일인데 얼뜬은 실감이 들지 않았다. 무슨 장난 같이만 여겨지는 것이다. 몇 달 이것 때문에 미쳐 다녔었다. 그야말로 소 갈 데 말 간 데 다 쫓아다녔다. 끝으로는 이곳까지――인생의 외부에까지 와 버린 것이 아닌가? 지금 와서, 아주 모든 것을 단념한 지금 와서 잘못이나처럼 떨어져 온 것은 무슨 까닭인가? 우둥망청한 심경에는 내 자신이 재심을 받고 다시 결재를 신청한 사실조차가 생각키지 않아 이 오히려 당연한 필연이 우연 같게만 여겨지는 것이다. 이윽고 우연은 나에게 어떤 기적을 바라게 하는 것이다. 우연이란 미신성(迷信性)을 띠는 법이다. 이것이 아귀를 쫓는다는 부적(符籍)이 되어 전아를――나를 찾게 하여 줄 수도 있을 것이 아니겠는가? 기대와 희망이 고문처럼 몸을 저몄다.

복도를 울리는 구두소리가 이쪽으로 가까워 왔다. 이윽고 오늘은 가운을 입지 않은 닥터 김이 들어왔다.

밖에서 갓 들어오는 모양으로 얼굴이 상기되어 있다.

따뜻해졌군요.

이렇게 나는 간단한 인사 끝에 기후에 관한 말을 덧붙였다. 닥터 김은 좀 기분이 내키지 않은 얼굴이다. 즉시론 대꾸가 없다가 책상 앞 회전의자에 가 털썩 주저 않으며 불쑥,

봄이라서요.

무슨 탓이나 하는 것 같은 어조로 던지듯이 말한다.

어딘지 거북해 하는 눈치다. 말이 끊어져 침묵이 왔다. 내가 먼저 침묵을 깨뜨려 전아와의 면회를 청하려는데 닥터 김이 드르륵 소리가 나게 책상 서랍을 열더니 그림 한 장을 꺼내었다. 이윽고 한 손으로 그것을 치켜 들어 이쪽으로 보이며,

어떻습니까?

한다. 허심한 태도지만 바닥에 무엇이 있는 표정이다.

글쎄요.

좋지요.

좋다기보다――글쎄 아름답군요. 허지만 좀――불안의 미랄까요.

나는 몸을 뒤로 젖혀 되도록 그림을 멀리해 보았다. 타입용지 두배 가량 되는 와트만지에 템페라로 그린 그림이다. 나는 이런 그림을 본 일이 없었다. 억지로 말하면 그것은 의식(意識)의 심연(深淵)에서 일어난 비사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바탕에는 남김없이 푸른빛이 들도록 농후하게 검은 빛이 깔렸는데 가루민 레드와 은빛이 서로 얽히어 또아리를 틀며 몸부림을 쳤다. 공포와 쾌감과 죄스러움의 불안한 교착(交錯)――그 위를 칼 끝 같은 섬광이 무슨 구원이나처럼 새하얗게 번득이고 있는 것이다.

미쓰 윤의 그림입니다.

닥터 금은 무슨 선언이나 하는 것처럼 말하고 의자에 등을 기댄다. 한결 평정해진 전아에게 무료를 끄도록 화구를 갖다 준 것은 저년의 일이었다. 하여튼 전아가 다시 그림에 손을 대었다는 사실이 지금의 나에겐 눈물겨웁도록 고마웠다. 그러나 그림에서 오는 감동이 좀 불안스러운 것이다.

그래 그림을 그립디까?

닥터는 무슨 중대한 질문이나 받은 것처럼 입을

열지 않고 있다가 한참만에야 약간 몸을 일으키고,

구라파에선 곧잘 환자들에게 그림을 그리게 한답니다.

하고 뜻하지 않았던 말을 꺼내었다. 그는 일단 말을 끊었다가 어조를 바꾸고,

――통계적으로 보아 남자 환자는 궤짝이라든가, 주머니 같은 것을 많이 그린답니다――여자는 여자 환자는 그렇지요――버섯, ――.

안경이 번쩍 했다. 약간 외면을 한 것이다. 나는 가슴이 확 닳았다. 그런 것들이 정신분석상으로 보면 성기(性器)를 상징하는 것이고 여자 환자는 특히 다소 음()해진다는 것을 몇 번 드나드는 동안에 얻은 지식이었다. 그런 말을 듣고 보니 그림에서 받은 불안의 정체가 어렴풋이 짐작되어지며 웬지 전아가 한없이 애처로워지는 것이다. 그것은 젊은 전아의 그림이 그렇게 해석되는 것이 참기 어려웠다기보다 그런 그림을 그린 그녀가 오히려 진지하게 자신을 정시하려고 애쓰는 것 같아 마음이 흔들렸던 것일지 모르겠다.

꼭 만나고 가시렵니까?

닥터 김이 무엇을 암시나 하려는 것처럼 내 눈을 정면으로 들여다 본다. 그 정시를 받아 나는 마음이 비틀거렸다. 여기까지 와서 그녀를 만나지 않고 간 일이 있었던가?

며칠 전 큰 고모님이 다녀가셨는데――그래 이 그림을 그리던 날이군요――.

닥터의 소리가 까아맣게 들렸다. 등뼈가 한꺼번에 무너져 쏟아졌다. 닥터의 소리가 거푸 건너와서 마지막 칼부림을 하였다.

『――봄이라서요.

이 정신병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를 나는 알고 있었고, 또 이 정신병 의사가봄이라서요.하는 의미를 나는 잔인하도록 또렷하게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힘없이 일어섯 모자를 썼다. 이윽고 그 돌멩이 투성이의 마당을 걸어나왔다. 문간에서 웬지 담배 생각이 나서 걸음을 멈추고 포켓속에 손을 넣어 보았다. 그러나 진찰실에 잃어버려 두고 나왔는지 담배 봉지는 만져지지 않고 빳빳한 종이만이 손에 잡히었다. 비자……나의 머릿속에서 화폐개혁 후의 구화(舊貨)가 한 장 뱅그를 돌앗다. 뒤이어 누구한테선가 들은 어떤 일본의 악덕상인(惡德商人)이야기가 상기되었다. 북만주 시베리아를 훑다시피 하며 가진 악독한 짓으로 거만의 돈을 벌은 그가 트렁크 몇 개에다가 가득 루불 화를 채워 고국으로 떠나려던 아침, 혁명이 일어났더라는 것이다. 그는 그 몇 개의 트렁크를 들고 미친 듯이 네 거리로 달려가서 그때껏 모아온 돈을 바람에 날려 버렸다 한다.

못을 꽂아 심은 병원문을 나오면서 나도 그 악덕상인과 같은 흉포한 충동이 자꾸만 고개를 드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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