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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단편소설2

68. 미지의 새

by 자한형 2022.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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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未知)의 새 -한수산

 

그녀는 메모지를 잘게 찢어 휴지통에 넣으며 일어섰다. 거기에는 오전에 그에게 보낸 전보 문구가 적혀 있었다, 내일 새벽 차로 그곳엘 간다는 내용이었다. 그곳은 남쪽이었고 바다와 해수욕장과 그리고 그가 있는 곳이었다,

토요일 저녁, 그가 올라왔다가 일요일 밤차로 내려갈 때까지 서로의 시간에 서로의 지문(指紋)을 묻히며 보낸 그들. 그가 올라오기를 기다리며 놓여 있는 토요일의 이 가지런한 시간을 헤집고 자기를 내려가지 않을 수 없도록 한 아픔을 누르며 그녀는 빈 사무실을 나왔다. 그곳만은 밝고 따스한 곳이기를 바라면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창 밖을 바라보았다. 칙칙하게 변색되어 가는 남대문의 단청이 내려다 보였다. 비서실, 그녀의 책상에서는 고개를 조금만 돌려도 눈에 들어오곤 하던 남대문이었다. 먼지를 뒤집어쓴 그 모습에서 그녀는 문득 시골에 있던 할머니를 떠올렸다. 보지도 듣지도 못하던 아흔이 넘은 할머니. 무릎과 어깨가 붙어 버린 채 골방에서 먹고 누고 기어다니던 할머니였다. 그런 할머니가 저녁상에서 식구들 몰래 생선 토막 같은 것을 버선목에 감추었다가 밤이면 어둠 속에서 혼자 꺼내어 씹곤 하던 가련함. 젊은 시절에는 남달리 깨끗했었다는 할머니가 보여 주던 궁상맞은 가련함을 생각하며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먼지 낀 단청의 때 잃은 아름다움. 젊음에는 어디서부터 녹이 스는 걸까.

엘리베이터를 나온 그녀 앞에 지하 다방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마주 서 있었다. 이제 집에 가서 목욕을 하고 일찍 잠을 자야지, 새벽 찰 타려면 세 시엔 잠이 깨야 할 텐데, 하면서도 그녀는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다방 안은 어두웠다. 열대어를 기르는 수조가 화안하게 눈에 들어왔다. 그 옆에 앉았다. 열대어들이 흐늘거리는 투명한 수조를 통해서 건너편에 앉은 남자의 얼굴이 비쳐 보였다. 수초에 싸인 그의 얼굴 위에 뼈가 내비칠 듯 하얀 고기 한 마리가 미동도 없이 떠 있었다. 밖에서는. 오래 아낌을 받으며 있어야 말 것들이 먼지를 뒤집어쓰고 나날이 퇴색해 가듯, 자기의 앞에서도 빛을 바래 가는 것들이 있다는 아픔 속에서 그녀는 고기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 아픔, 그의 곁엘 가면 이런 아픔들은 쉬 삭아 버리겠지.

일요일 저녁 버스 터미널에서 헤어지며, 나 담 주엔 자길 못 만날 거야, 그러니깐...,,, 했을 때, 그러니까 올라와도 헛일이라 그런 얘기야?

그는 웃으며 떠날다. 그 웃음 뒤에 혼자 남아서 그녀가 맞은 참혹한 주말. 좁고 긴 복도를 끝없이 달려가고 있는 사람처럼 그녀는 수술대 위에 누웠었다.

"지난 토요일이었다. 간호원이 말했다. , 따라 하세요, 하나. 하아나. . 두울. . 세엣. 그리곤 넷을 세지 못하고 의식을 잃었다. 그에게는 아무 것도 알리지 안은 채 혼자 치른 실이었다. 어둠 속에서 어둠 속으로 묻어 버린 3개월의 아이. 산과 병원의 문을 나서니 바람이 몹시 불고 있었다. 구겨진 옷자락을 매만지며 거리로 나왔다. 그리고 친 근의 무게가 얹힌 손을 들어 택시를 잡았었다.

역광을 받아 건너편 남자의 이마가 그늘져 있었다, 그 위로 줄을 이은 기포들이 수조 바라에서 떠올라 갔다. 언젠가는 그에게 이야길 해야 하 리라. 언제쯤? 그녀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한 주일 내내 자기를 떠나지 않던 초조함도, 그리고 자기가 내려가기로 한 것도 바로 그 언제쯤의 탓이었던가.

그녀는 날라 온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다방을 나왔다. 새벽 차가 아닌 밤차를 타기로 마음먹으며.

 

갑자기 비명처럼 기적 소리가 울렸다. 이어 길게 또 한번. 블라인드를 올리고 밖을 내다보았다, 열차가 플랫포옴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열 한 시 사십 분에 서울을 떠난 급행이 처음 서는 역이었다. 육중한 쇠기둥이 떠받들고 있는 천장 높이 역 이름이 하얗게 바라보였다. 차를 내린 사람들이 출찰구를 향해서 걸어 나아갔다. 몇 사람이 올라와 자리를 잡으면서 열차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역을 빠져 나오자 갑자기 도시의 야경이 창으로 들어왔다. 곧게 뻗어 나간 가로등 불빛이 파랗게 떠오르고 멀어지는 거리의 불빛이 아롱거렸다. 한겨울의 얼어붙은 도시에 환하게 켜져 있는 불빛이 습기 낀 창을 통해서 반짝반짝 흔들리면서 창문은 별빛이 가득한 밤하늘이 되었다. 그 불빛이 멀어지며 어둠이 배어 오르는 창밖에 눈을 준 채, 그녀는 지난 여름을 생각했다. 그의 품에 안겨서 바라보던 하늘, 별이 와스스 떨어져서 가슴으로 쏟아져 들어오던 여름밤을.

그 여름내 지루하게 비가 내렸다. 길고 긴 장마가 개이자, 그들은 북한강 상류에 있는 산엘 올랐었다.

샘물이 흐르는 숲 속에서였다. 점심을 짓겠다면서 그가 배낭을 풀었을 때 그녀는 웃고 말았다. 등산용 식기가 아닌 남비를, 그것도 틈서리에 먼지가 보얀, 상표도 떼지 않은 것들을 그가 꺼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여기서 살림 차릴 테야?”

"요강도 하나 사 올 걸, 잘못했군.”

"버너도 안 가지고 오고, 남비는 또 뭐람.”

"아냐, 오늘은 그냥 이렇게 밥을 해 먹자구. 내가 나무를 해 올 테니 쌀 씻어 놔.”

어느새 그는 돌을 주워다 남비가 올라앉을 화덕을 만들고 있었다.

"어렸을 때 생각을 했어. 어머니 몰래 강가로 나가곤 했지.”

그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고향에서 국민학교를 다닐 때였다. 윤이 나게 닦아서 선반에 얹어 놓은 남비에 쌀을 퍼들고 강가로 나가곤 했다. 동무들과 물놀이를 하는 것이었다. 헤엄을 치고 놀다가 고기를 잡기 시작한다. 잡아들인 고기의 밸을 째는 동안 다른 애들은 땔나무를 주워 온다. 장마가 걷히고 난 갯가엔 떠내려 온 나뭇가지나 솔검불이 많이 있었다. 물미씨개라고 부르던 그것들을 주워다 불을 때면 남비가 새까맣게 그을곤 했다. 밥과 국이 다 되면, 남은 불덩이 위에 모래를 얇게 깔고 그것들을 올려놓는다. 다시 한바탕의 물놀이가 이어진다. 배가 고프기 시작한다. 촉촉히 젖은 머리카락을 털며 대여섯 명의 아이들이 모여 앉는다. 국남비를 열고 향긋한 비린내가 코로 스밀 때면 어느 능청맞은 놈이 강가로 나오는 길에 슬쩍 해 넣은 파를 뚝뚝 갈라 넣기도 한다.

뜨거운 햇볕에 달아오르는 모래 위에서 발가락을 옴츠렸다 폈다 하며 숟갈들이 부산하게 움직인다. 물에 들어가 있어서 까맣게 오그라 붙었던 불알들이 밥을 다 먹고 날 때쯤엔 따가운 모래 위에 닿을 정도로 처억 늘어진다. 그렇게 하루 종일을 강 가에서 보내다가 입술이 파랗게 얼어서 집으로 돌아오면, 집에서는 새까맣게 그을린 남비 때문에 어머니에게 꾸중을 듣는 차례가 언제나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반들거리는 남비에 그을음이 까아맣게 기어오르는 모습은 얼마나 재미있었던가. 한번은 그을린 남비를 닦을 셈으로 얼마나 모래에 문질렀던지 오히려 남비를 버려 놓았다고 얻어맞고는 고단한 김에 저녁도 못 먹고 잠이 들기도 했었다.

"그럼, 남비 그을리기를 또 하잔 말야? 참 구제 불능이네.”

했지만, 그녀도 어느새 쌀을 들고 일어서고 있었다.

"어제 시장에 들러 그릇을 샀거든. 집에 가지고 들어가니까 동생놈들이 우루루 나와 그게 뭐냐고 야단들이야. 회사 물건이라고 아예 손도 못대게 하곤 얼른 내 방에 갖다 감췄지.”

그렇게 말하고 있는 그는, 비서실에서 그녀가 보고 들을 수 있었던 같은 회사 직원인 그는 아니었다. 둘만이 만나 있는 시간의 그도 아니었다.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는 즐거움이 배낭 바닥에서 감자를 꺼내고 있는 그녀를 발가벗고 싶도록 만들었다.

"태초엔 모든 게 재밌었겠지. 습관이란 게 없었을 테니깐 말야. 난 낙원에서 추방되는 이브의 그림을 보면 이상하더라. 고통을 몰랐던 사람들이 왜 괴로운 표정을 했는지 모르겠어. 좀 겁나긴 했겠지만, 처음 겪는 일인데 어쨌든 즐거웠을 거 아냐?”

점심이 끝난 뒤, 밥을 하고 판 불 속에 묻었던 감자를 챙겨 가지고, 발 밑으로 강물이 내려다보이는 숲 속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댐을 막음으로 해서 생긴 인공 호수에 건너편 산이 푸르게 잠겨 있었다. 호수를 끼고 돌아간 길 위에 성냥갑 같은 차들이 오가는 것을 바라보며 감자 껍질을 벗겼다. 노릇노릇 구워진 감자의 껍질을 벗겨 쪼개면 하얀 가루가 손에 묻어나곤 했다.

저녁이 왔다.

멀리서 은빛의 작은 종이 울리듯 풀벌레가 울었다. 그녀는 무릎을 베고 누운 그의 귓불을 매만지며, 이제는 캄캄하게 어두워진 호수에 산기슭을 돌아가는 차들의 불빛이 비치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때, 어디선가 청아하게 뻐꾸기가 울었다. 슬프도륵 아름다운 밤의 소리였다. 그녀는 귀를 기울였다. 솔잎을 스치는 바람 소리만 숲 속을 헤매고 있었다. 긴 고요가 휩쌌다. 이어 안개 속으로 멀리멀리 퍼져 가듯, 물기 어린 한스러움을 담은 부피를 느낄 수 없는 울음소리. 그녀는 엷고 엷은 보랏빛의 휘장이 소리 없이 겹겹이 내려지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그의 품에 조그맣게 안겨서 그녀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무수하게 흩뿌려진 별들 사이로 파릿한 빛이 흘러가고 있었다. 은하수였다. 아득한 곳에서 들려 오듯 뻐꾸기가 울었다. 순간, 그녀의 가슴으로 솨아 하며 은하수가 흘러 들어오는 것 같았다.

가슴에서 반짝이는 것들, 그것을 그녀는 사랑이라고 젊음이라고 느끼면서 쏟아지기라도 할 듯 조용조용 산을 내려왔다.

이정표만이 하얀 간이역에서 막차를 기다렸다. 차는 비어 있었다. 고단해? 졸려? 하고 그가 물을 때마다 다만 고개를 끄덕이거나 가로저으며,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그녀는 돌아왔다. 밤뻐꾸기가 울고 있는 가슴에 은하수가 하나 가득 찰랑거리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찾아 헤매리. 그래서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빛나는 것만을 사랑하기를 그녀는 약속하고 또 약속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내렸다. 빈 대합실에는 거지 아이들이 머리와 머리를 맞대고 잠이 들어 있었다. 둘 다 새까만 맨발이었다. 역사를 나왔다. 입술이 시퍼런 여자가 다가오며 말했다. 방 있어요. 주무시고 가세요. 사람들이 흩어지는 역 광장을 걸어 나왔다. 자갈을 쏟아 놓는 것 같은 거리의 소음이 달려나와 그녀를 휩쌌다. 휴지 쪽이 날리는 광장에 서서 그녀는 안타깝게 하늘을 쳐다보았다. 캄캄한 하늘이 거기 있었다. 두어 개 흐릿한 별빛이 보일 분이었다.

"뭘 해?"

"은하수가 보이 질 않잖아.”

그가 고개를 들어 흘깃 하늘을 쳐다보고는,

"몰랐어? 은하수는 가려서 보이지 않아. 대기(大氣) 오염(汚染)으로 차단된 거야. 공해가 만들어 낸, 뭐랄까,,,,. 일종의 자연 이변(異變)이지.”

은하수가 가려진 하늘 높이 길 건너 호텔 옥상에 세운 네온이 빨갛게 치솟아 있었다. ()자의 획 하나에 불이 들어오지 않아 꺼졌다 켜졌다 할 때마다 호털 호털, 하고 깜박이고 있었다.

횡단 보도를 건너가기 위해 신호를 기다리는 그녀는 불빛이 어지럽게 돌아가는 거리를 바라보았다. 이 서울에서 무엇이 그녀를 욕되게 하는 지를 알 것 같았다. 배고픈 거지처럼 헤매게 하고, 목마르게 하고, 마음이 언제나 때묻은 것처럼 느끼게 하는가를 알 것 같았다. 젊다는 것, 그래서 살아가야 할 내일이 수없이 많다는 것이 처음으로 그녀를 암담하게 했다.

사람들 틈에 밀리면서 길을 건너갔다. 택시를 세우려는 그의 옷자락을 잡았다.

"왜 그래?”

그녀는 안타깝게 앞을 가리는 장막을 찢어 내리듯,

"우리,,,,,, 저기로 가.”

허공에 뜬 ()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손에 묻어날 듯 어둠이 밴 차창에 비친 그녀의 얼굴을, 먼 인가의 불빛이 눈물처럼 가로질러 갔다, 옛 주인을 생각하는 늙은 하녀 같은 얼굴이었다. 블라인드를 내렸다. 옛 주인도 늙은 하녀도 다 자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열차는 캄캄한 어둠 속을 달리고 있었다. 심야에 맞아죽는 개의 외마디소리처럼 이따금 기적을 울리며.

차를 내리니 새벽이었다,

플랫포옴은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 몇 명 안 되는 승객들과 출찰구를 나왔을 때 그녀를 기다린 것은 한밤내 내려간 싸늘한 기온과 낯선 건물뿐이었다. 새벽 차로 내려간다고 하고 밤차를 타 버렸으면서도 그녀는 잠시 대합실에서 머뭇거렸다. 어디선가 그가 불쑥 나서며 나야, 할 것만 같아서였다.

택시를 타고 거리를 빠져 나왔다. 그와 만나기로 한 바다 가까이에서 내렸다. 폐허와 같은 거리를 걸어 문 등이 켜진 여관을 찾아들었다, 베개 커어버만 바꿔도 잠을 설치곤 하는 그녀였지만, 무너지듯 자리에 누웠다. 너무 피곤해서 눈알이 쓰렸다.

 

늦은 아침에 잠이 개었다. 삭막한 방안에 햇살이 기웃거리고 있었다. 밖으로 나왔다. 길 양편으로 늘어선 집이 거의가 음식점이었다. 이곳 명물이라는 입에 맞지 않는 조개백반을 썰렁한 식당에서 들고 나자, 그와 만날 시간까지가 휑하니 비어 있었다. 거리를 돌아다녀 보았다.

여름 한철 해수욕을 오는 사람들 때문에 세워진 관광지는 곧 끝이 나고 나지막한 야산으로 에워싸인 논이 펼쳐졌다. 드문드문 집들이 보였다. 흑갈색 논 사이로 길이 하얗게 다가왔다.

그녀는 바다를 가리고 있는 산엘 올라가 보기도 했다. 산을 향해서 논길을 걸었다. 한강이 얼지 않았다는 겨울답게 따스한 햇살이 어깨에 나풀거리고. 엷은 바람이 머리칼을 매만지며 지난밤의 피로를 씻어 주었다.

머리가 맑아 왔다.

듬성듬성한 나무들 사이로 마른풀을 밟으며 산으로 올라갔다. 산기슭을 돌아가자, 갑자기 그녀의 앞을 가리듯 바다가 나무 위로 떠올라 왔다. 한 순간에 눈앞이 끝없이 트이는가 하자 다시 그만큼 막아서는 수평선. 달무리가 낀 듯 바다는 뽀얗게 흐려 보였다. 하늘과 땅을 가늠하며 무정하게 퍼져 나간 수평선을 그녀는 막막히 바라보았다. 흐르지 않는 물. 그녀는 중얼거렸다. 저건 물은 아니지. 알 수 없는 참혹함을 느끼면서 그녀는 산을 내려갔다.

노랗게 마른 잔디밭에 앉아 바라보니 마을이 한 눈에 들어왔다.

올라오면서 꺾어 들었던 마른 풀꽃들을 가지런하게 자르며 앉았는데, 어디선가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렸다. 나무로 가려진 바로 아래에서 두 남자가 사진을 찍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사진을 찍는 취미도 모를 일이라며, 그녀는 일어섰다. 그때 다시 그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그러니까, 이것도 풍장(風葬)의 분류에 들어간다고 봐야겠습니다.”

카메라를 든 남자가,

"그렇게 볼 수밖에 없겠죠. 그런데 그 풍장이라는 것이 말입니다. 집을 짓고 거기다 시체를 그냥 놓아 두었던가본데 어떤 곳에서는 나무에 매달기도 했다더군요.”

끌리듯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들이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은 짚더미였다. 짚더미라고 밖에 그녀로선 달리 이름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둥근 타원형으로 이엉을 해 덮고, 양끝에 말뚝을 박아 새끼로 잘 여미어져 있었다.

사진을 찍고 나자, 그들은 줄자를 꺼내어 크기며 높이를 재었다. 줄자를 챙기던 남자가 말했다.

"살이 썩고 뼈만 남을 때까지 조상의 시체를 말리는 게 효도였으니...”

"죽은 사람은 죽고 사람대로 그렇게 마르기가 소원이었다지 않습니까?”

산을 내려가는 그들을 보며, 짚이는 생각이 있었다. 초분(草墳) 그러면, 이것이 바로 그러한 무덤이란 말인가.

언젠가 학술 조사차 내려온 대학 후배들과 동행했었다면서 그가 초분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유 끔찍해. 하며 얼굴을 찡그렸던 그녀였지만 거기서 느낀 여자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을 그녀는 기억하고 있었다.

초분이란, 사람이 죽으면 바로 장례를 거쳐서 땅에 묻는 것이 아니라 집 가까이나 공동 묘지에 시체를 풀로 덮고 짚으오 이엉을 해 두는 것이 풍습이었다. 1년이나 3년이 지나 살이 쌕은 후, 남은 뼈만을 추려서 관에 넣어 일반적인 장사를 지내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장례를 두 번 지내는 거지. 남해의 어떤 섬에서는 뼈에 붙어 있는 살을 대나무 칼로 긁어내고 짚솔로 닦은 후에 관 속에 넣기도 한대.”

살은 썩어 흙이 되어도 영혼은 뼛속에 남아 있다고 믿기 대문에 생긴 복장제라고 그는 말했다. 그녀로서는 허무하기 이를 데 없는 믿음이 아직까지 관습으로 남아 있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바닷가이기 때문이야.”

"바다가 사람을 두 번 장사지내게 한단 말야?”

"물론, 더 큰 이유들이 있어. 부모가 죽자마자 바로 묻어 버린다는 건 아주 불경스럽다는 거지, 마치 죽기를 기다리기나 한 것처럼 생각되니까.”

한편으론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집안 가까이 안치해 두기도 했던, 그러한 마음의 밑바닥에는 돌아가신 분을 추모하는 효성이 깔러 있다는 것이었다. 죽은 것은 땅에 묻어야 하고. 그래서 묻힌 것은 썩어 흙이 된다는 자연의 순리를 알면서도 차마 묻어 버리지 못하는 유습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일이 돌아가신 분에 대한 애정 때문이라고 그녀로선 믿어지지 않았다.

"죽은 자의 외로움을 산 자가 위로한다고 해도 좋겠지.”

"바닷가라고 해서 별다른 건 없잖아.”

"미래보다는 과거를 중요시하고 자식보다는 조상을 위해 살았던 동양인에겐 부모의 시체를 중히 여긴다는 거야 당연한 생가이었겠지. 그런데 어촌에는 정월에 시체를 묻으면 그 해 고기가 잡히지 않는다거나 여러 사람이 죽는다는 미신이 많아. 지신(地神)이 노한다든가, 어쨌든 섬의 경울수록 심해서 십이월부터 이듬해 팔월까지 장례를 지내지 못했던 곳도 있다더군. 그런데 난 이런 생각을 해 본 거야.”

어부들이 바다로 나아간다. 고기잡이를 떠난 그들은 수개월씩 집을 비운 채 돌아오지 못할 때도 있다. 그 동안 집에서 누가 죽는다. 집에 남은 아낙네는 장례를 지내지 않고 시체를 내다가 풀로 덮어둔다. 바다에서 돌아온 남편은 거기서 마지막으로 죽은 사람의 얼굴이나마 본 후에 손수 장례를 치르게 된다.

"지역적으로 고립돼 있어서 문명의 전파가 늦으니까 그런 풍습이 오래 지워질 수는 있었겠지만, 역시 고기잡이라고 하는 그들의 생업의 영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흉어가 든다는 미신도 그렇고,,,,,, 먹고 산다는 자기 생활이 중요했을 테니까. 정월엔 매장을 안 한다는 것도 그래. 겨울이니까 시체가 늦게 부패하므로 얼마 동안 그냥 둔다는 일이 가능한 거야. 의식으로 생활을 미화시켰다고나 할까.”

풀로 시체를 덮어놓고 남편을 기다리며 바다를 내다보던 아낙네의 등에 어린아이가 흥얼거리며 업혀 있었으리라.

그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던 자기였다. 그러나 이제 생각할 때, 어둑어둑해지는 뜨락에 나와 바다를 바라보고 서 있는 여자에게 있어, 부모의 육신을 비바람에 썩히고 말리는 일이 생활에 아름다움을 주는 행위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산을 내려오며 그녀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조상의 삶이 그의 것만으로 끝날 수 없다는 내세관이 얼마나 많은 자기의 삶을 자기만의 것으로 살지 못하게 했을까. 한 사람은 죽었지만 남은 사람은 살아 있다는 눈에 보이는 사실을 그 자체만으로 바라볼 때, 삶은 더 삶다와지는 것이 아닐까.

죽은 쌀과 뼈에도 얽혀야 파는 인간의 마음, 마음, 마음,,,,,,. 논길을 타박타박 걸어서 그녀는 돌아가고 있었다.

제 시간에 제 장소로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는 올 것이다. 그러나 자기는 아무 것도 이야기할 수 없는 여자였다. 누가 있어 지금의 자기에게, 너는 생활에 아름다움을 주고 있는 거라고 말하겠는가.

시계를 보았다. 열 두 시가 지나 있었다.

해수욕장 앞, 유원지 입구에서 청기와를 얹은 커다란 문이 그들을 맞았다. 매표구에 가서 입장권을 사 가지고 돌아서는 그의 팔을 끼면서,

"자기, 아침에 면도했구나.”

그녀는 파릿한 그의 턱을 쳐다보았다. 그가 웃음을 띄우며,

"미안해.”

했다, 그것은 그의 버릇이었다. 지루하기만 한 연극을 보고 나을 때나, 횡단 보도를 건너려다 빨간불이 켜졌을 때도 그는 미안해, 하며 웃었었다.

"계엄령이 내렸대.”

그녀가 놀라워할 때도, 다만 그는 미안해, 했을 뿐이었다. 그러는 그의 얼굴에는 웃음이 없기는 했지만.

미안해, 라는 그의 웃음을 보며 그녀는 아, 이제 우리 만났어, 하는 다사로움을 느꼈다. 마른풀이 발 밑에서 서걱이고, 그렇게 말라 가는 육신이 있던 아침나절을 벗어나서 그녀는 낯익은 깁으로 들어가듯 그들의 분위기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나란히 유원지 안으로 들어갔다.

왼편으로 양어장이라는 푯말이 붙은 커다란 연못가에는 마른 등나무가 틀어 올라간 문이 보이고, 노란 색칠을 한 벤치가 놓여 있었다. 그림 같았다. 유원지의 울긋불긋한 원색 페인트 칠이 그들에게 여행자가 가지는 설레임을 안겨 주고 있었다.

매점, 탁구장, 음식점들이 늘어선 오른편으로 해수욕장이 나타났다. 바다를 면한 제방 안쪽으로 모래를 깔고 만든 해수욕장이었다. 둥글게 퍼진 모래밭에 틀이 빠져서, 쇠기둥을 박은 밑바닥 시멘트까지 드러난 다이빙대가 앙상하게 솟아 있었다.

둥근 모래밭이 텅 비어 있고, 비 내린 체육 대회가 끝난 시골 국민 학교 운동장 위에 걸린 만국기처럼 모래밭의 저 끝에 유흥장의 페인트 칠이 보일 뿐이었다. 다이빙대의 높이를 생각할 때, 물이 차면 여간 아늑해 보일 해수욕장이 아니었다. 그러나 물이 빠진 탓으로 더욱 넓어 보이는 해수욕장은 다만 쓸쓸했다.

갑자기 싸늘해진 날씨 때문에 내의를 꺼내 입고 출근을 하다가 옷에서 풍기는 나프탈린 냄새 속에서 이제 여름이 갔음을 느껴야 하던 도회의 늦가을, 플라타너스의 잎이 굴러가는 거리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그녀는 이곳을 그리워했었다. 거긴 말야, 등나무가 눈부시게 푸른 연못도 있고, 배를 타고 나가면 굴을 딸 수 있는 섬도 아주 가까이에 있어. 그는 손을 저으며 열심이었지. 지난 여름. 칫솔까지 챙겨 놓았다가 못 오고 말았기에 더욱 생각났는지도 모른다.

겨울의 해수욕장에 이글거리는 여름은 없었다. 바닷물에 씻긴 가슴들을 안고 사람들은 다 떠나 버린 빈 모래밭을, 그러나 손바닥과 손바닥으로 따스하게 속삭이며 그들은 거닐었다.

바다를 막은 방죽 너머에서 사람들이 걸어 나왔다. 웃음 소리가 들렸다. 초록빛 긴 코우트를 입은 여자가 남자에게 잡히지 않으려고 달려가고 있었다. 여자가 돌아서면 다시 남자가 쫓기곤 했다. 그녀는 모래를 차면서,

"올해 유행하는 색깔이 그리인이거든. 어느새 초록빛이 여기까지 왔지?”

모래밭을 지나 방죽으로 올라섰다.

"---”

그녀는 흠칫 서 버렸다. 바다였다.

간조로 물이 빠져나간 까아만 갯벌이 햇빛을 받아 멀리멀리 반들거리고 있었다. 배로 가야 한다던 작은 섬까지 갯벌이 드러나고 그 바닥에 놓여진 길고 긴 돌다리가 점점이 이어지고 있었다. 햇빛을 받아 빛나는 갯벌이 망연히 펼쳐지고 그 사이로 가늘게 이어진 한줄기의 돌다리 끝에 보오얗게 흐린 바다를 배경으로, 역광을 받아 까아만 섬이 떠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게 뻗어 나간 방죽 위에 바람을 맞고 서서 눈시울이 뜨겁도록 아름다운 바다를 내다보고 있는 그녀를, 그의 팔이 감싸안았다.

납물 같은 갯벌 위에 검은색과 횐색의 선과 면으로 짜여진 바다와 돌다리의 모습이 뜨거운 화인처럼 가슴에 들어와 박혔다.

그들은 방죽을 내려와서 돌다리를 걸었다. 고기 비늘같이 결이 져 빛나는 갯벌에 목선 한 척이 놓여 있었다. 물이 빠지며, 낮은 갯벌에 남았던 물이 졸졸거리며 바다로 흐르고 있었다.

"이상하다, 그치? 바닷물이 다 흐르네.”

그녀는 어린애처럼 종알거렸다.

긴 돌다리를 하얗게 하얗게 이를 드러내며 걸었다.

나무가 소복하게 얹힌 섬 아래에는 널쩍한 바위들이 바다로 비져나와 있었다. 바위에 올라서서 그가 내미는 손을 잡으며 그녀는 섬으로 올라갔다. 범의 뒤편으로 돌아가자 다시 반들거리는 갯벌이 펼쳐졌다. 바위에 앉거나 서서, 바다를 내다보거나 사진을 찍기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모두가 쌍쌍이었다.

모래가마니를 줄지어 놓은 길이 갯벌 위에 뻗어 있었다. 멀리서 조개를 잡는 사람들이 보였다,

어디선가 끄이윽끄이윽 하는 새의 울음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우유빛 유리로 가린 듯 보오얀 바다를 둘러보았다. 하늘을 쳐다보면서,

"무슨 샐까?”

그녀는 물었다. 그가 다른 바위로 건너뛰며,

"글쎄, 갈매긴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디서인지 알 수 없게 끄이윽끄이윽 하는 새의 울음 소리만 들렸다. 보이지 않는 새들이 어디에서 날고 있을까.

줄지어 놓은 모래가마니 위를 해풍에 머리칼을 날리며 젊은 남녀가 걸어 나가고 있었다. 반들거리는 갯벌에 까맣게 새겨진 그들을 보며,

"우리도 저길 가 볼까?”

하는 그녀의 말에,

"저 끝에 가 서서 뭘 하고 싶어?”

그가 돌아다보았다. 무엇을 할까. 그녀는 그의 곁으로 다가서서 속삭이듯 말했다.

"- 를 하고 싶을 꺼야.”

그들은 소리내어 웃었다. 햇빛 속에 박힌 그들의 모습은 하늘로 하늘로 떠오르는 것 같이 보였다. 그때 그녀는,

"어마, 저 남자 저기서 코를 풀었어.”

하며 고개를 돌려 버렸다. 남자가 버린 휴지가 햇빛 속에 포물선을 그리며 갯벌로 떨어졌다. 그가 말했다.

"있을 건 어디에나 다 있지.”

한 쌍의 남녀가 그들을 지나갔다. 남자가 앞서 걷고 있었다. 이야기를 할 때마다 여자는 멈칫 서곤 했다, 남자의 나이가 훨씬 많아 보였다.

"아직 깊은 사이가 아닌가보지?”

그녀가 웃었다. 그도 싱긋 웃었다.

"이제 돌아가면 깊은 사이가 되는 거야.”

바닷바람이 가려지는 큰 바위 아래로 내려와 나란히 기대섰다. 바위엔 서릿발 같은 조개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가까이에서 노래 소리가 들렸다. 그가 웃음을 터뜨리며,

"재들 좀 봐.”

그가 가리키는 곳으로 눈을 돌렸을 때, 그녀도 후훗 마고 웃고 말았다. 스무 살 남짓한 남녀였다. 바위 아래 모랫벌을 걸으며 노래를 하는 여자와 뒤를 남자 아이가 지휘라도 하듯 팔을 저으며 따라가고 있었다. 어깨에 메는 끈이 긴 여자의 헨드백을 남자가 목에 걸고 있었다. 목에 건 핸드백을 디룽거리며 걸어가는 남자 아이를 바라보며 그녀는 다시 웃었다.

마음이 밝아지는 정겨운 모습이었다. 바위를 오르내리느라 여자의 끈이 긴 핸드백이 거추장스러웠겠지. 그것을 받아 자기 목에 건 남자. 그들에게 어떤 축복 같은 것을 주고 싶었다.

바위로 올라서니 추웠다. 다리가 싸늘하게 얼어 들며 떨렸다. 오래 바닷바람을 살인 탓인가 보았다. 그녀는 섬 기슭에 세워진 목조 다실을 쳐다보았다. 다실이라기보다는 간이식당 정도로 생각할 수 있을 허름한 집이었다. 그 집을 지나치다가 차 있습니다라고 씌어진 서툰 글씨를 보며, 택시 주차장인가 봐, 하고 그가 웃었던 집이었다.

집 안으로 들어서니 훈훈했다. 안쪽으로 소주나 오징어 같은 식품들이 놓여 있는 실내에 무쇠 난로에서 장작불이 펄펄 소리를 내며 타고 있었다. 두어 개의 탁자는 비워 둔 때, 몇 사람이 난롯가에 둘러앉아 있었다. 그들도 의자를 옮겨 난롯가에 다가앉았다.

여기선 맛살조개나 생선회가 별미라면서 수염이 꺼먼 주인 남자가 난로에 장작을 넣었다.

"뭘 좀 먹을래?”

"아니. 그냥 차나 한 잔 할래.”

그들은 창 밖으로 바다를 내다보았다. 먼저 와 있던 사람들도 별 말이 없었다. 오징어를 먹던 남녀가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갔다. 타원형의 쟁반에 받쳐 온 차를 그가 받아 무릎에 놓았다. 장작불이 화끈거리는 난로 앞에서 무릎을 다탁 삼아 차를 마셨다, 갯벌 위에 결이 져 반짝이는 햇빛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물이 몇 시에 들어오나요?”

그녀의 물음에 주인 남자가,

"오늘 만조가,,,,,, 열 한 십니다.”

굵은 목소리였다. 그가 무릎 위의 빈 찻잔을 치우고 천천히 담배를 붙여 물면서,

"지난주엔 뭐했어?”

"지난주?”

그녀는 바다 위에 띄워 놓았던 눈을 거두어 그를 마주 보았다. 그리곤 담담하게.

"그냥, 아무 일도 없었어.”

다시 바다로 눈을 돌렸다. 남아 있던 두 남녀마저 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혼잣말처럼 나직이.

"사자하고 놀았어.”

"사자?”

"으응, 사자하고,,,,,"

그의 얼굴에 웃음이 감돌았다.

"그럼, 창경원엘 갔었어?”

그녀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사람도 별로 없는 창경원의 사자는 웅크린 채 졸고 있었다. 철창 안에서 초라하게 어슬렁대다가 다시 돌아와 누워 버린 사자. 어쩌면 아직 자기가 걸을 수 있다는 데 깊은 실망을 느끼는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그녀도 말하고 싶었다. 거길 나와서 병원엘 갔었어. 벽을 향해 달려드는 사람처럼, 그렇게.

찬바람이 휘몰려 가는 가슴팍을 쓸어 내리며 그녀는 말했다.

"올핸 겨울이 너무너무 따뜻해.”

그들이 밖으로 나왔을 땐, 암흑빛 갯벌과 그 끝의 바다가 바알갛게 물들고 있었다. 낙조였다. 시뻘건 불덩이가 꺼꾸러지면서, 거울처럼 반들거리던 갯벌은 군데군데 자흥빛이 아롱지더니 캄캄하게 가라앉아 가는 것이었다. 먼 수평선에 칼날에서 돋아나는 것 같은 푸른빛이 떠오르고 있었다.

바위를 뛰어넘으며 그들은 섬을 돌아 나왔다. 이제는 새까맣게 펼쳐진 갯벌 위로 뻗어 있는 돌다리를 걸었다. 방죽으로 올라와서 돌아다보니, 해는 바닷속으로 잠겨 버리고 까만 갯벌 위에 굵은 붓으로 그은 듯 바다는 하얗게 하늘과 땅을 가름하고 있었다.

텅빈 모래밭에도 어둠이 퍼지고 있었다. 다이빙대가 캄캄하게 묻혀 가는 해수욕장은 늪처럼 어두웠다.

해수욕장의 한쪽을 둘러싸고 있는 유흥장에 불이 켜졌다. 비어호올에서 느린 색소폰 가락이 새어 나왔다, 군용 막사같이 쓸쓸해 보이던 집이었다.

모래밭이 끝나는 곳에서 바라보니, 연못 둘레에 켜놓은 불빛에 벤치들이 화안하게 비어 있었다.

"우리 여기 좀 앉았다 가.”

"이제 그만 가야지.”

달래듯 굴러오는 목소리를 들으며,

"조금만. .”

그녀는 그의 팔을 끼었다.

"춥지 않아?”

아아니.”

그들은 벤치로 다가갔다. 나란히 앉았다. 잿빛 하늘에 잠겨 가는 산이 마주 보였다. 오전에 그녀가 올라갔던 산이었다,

", 나 저 산엘 갔었어.”

그녀는 낮에 본 초분과 거기서 만난 사람들을 이야기했다. 고기 한 마리가 떠올랐다. 사라진 연못 위에 둥근 물결이 퍼져 나가고 있었다.

"전에 자기는 그랬었어. 초분을 하게 된 중요한 이유가 내세관이나 조상을 생각하는 효성보다는 당사자의 실생활 속에 있는 것 같다고 말야.”

,,,,,,그렇지만 자기의 삶을 독립적 인 생애로 이해하기보다는 조상과 후손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그 둘을 잇는 매듭으로 생각했던 우리의 선조들. 과거의 처리는 곧 자신의 삶이 해야 할 가장 큰 과제였으리라 그것이 바로 효도의 바탕이기도 했다. 선영의 묫자리를 잘 쓰는 일은 후손의 번영을 가져오게 함이었고 후손이 잘 될 때에는 비로소 죽어서 조상 볼 낯이 있다는 자신의 삶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면 그것은 역시 내세관의 영향이 아니겠는가.

담배에 불을 붙이며, 그가 나직하게 말을 받았다.

"죽음의 문제를 생각할 때, 살아간다는 건 도대체 묄까, 하는 의문은 누구나 가지게 될 거야. 그러므로 내일을 의탁할 대상이 필요한 거지. 죽는다는 어쩔 수 없는 진실을 앞에 하고 미지의 시간을 맡길 수 있는 신()을 만들지 못한 이 땅의 사람들이지. 무속(巫俗)과 같은 원시적인 사제(司祭)의 형태를 넘어설 수 없었던 그들에게 있어, 장의 예식(禮式)의 절차가 그렇게 복잡했던 것은 필연적인 건지도 몰라. 죽어서 이곳보다 더 좋은 하느님의 나라로 가는 게 아니라, 다만 죽어 묻힐 뿐이라는 의식 구조가 시체에 그렇게 많은 의미를 부여하게 했을 거야. 시체에까지 매달려야 하는 미지의 시간에 대한 두려움.”

"그래, 바로 그런 데서 생긴 게 내세관이 아니냔 말야.”

그녀의 얼굴을 마주 보며, 그는 소리 없이 웃었다.

"여러 가지 원인들이 있을 수 있겠지. 그런데 흥미치고는 너무 음침하군."

그녀는 잠시 고개를 숙였다. 등나무의 마른 잎을 스치며 지나가는 바람에 섞여, 유원지에서 색소폰 소리가 간간이 들려 왔다. 낮에 산을 내려오며 스스로에게 가졌던 의문에 대답하듯 그녀는 말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그래도 내일을 향한 믿음이, 그래서 영원한 것을 생각하는 마음이 깃들어 있는 걸 거야.”

그것은, 우리들의 삶이 얼마나 왜소한가를 말없이 보여 준 겨울 바다의 망연함이 이야기한 말이었으리라. 내일을 믿다니? 마른 수초가 떠 있는 연못을 바라보며 그녀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흘러간 시간들이 만들어 놓은 믿음들이 하나하나 부서지는 오늘, 난 내일을 믿을 수가 업지 않았던가. 죽는다는 그것마저도 나에게 진실만은 아니었으니까. 24층 스카이 라운지에서 아이를 수술하기를 마음먹으며 불빛이 헤매는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처참한 가슴으로도 그녀는 그 불빛이 아름답다고 생각했었다.

아이를 낳는다는 결심을 할 수가 없었다. 불러 오른 배를 웨딩드레스로 감추고 신혼 여행을 떠나면, 몇 달 후에 아이를 낳을 수는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스스로에게 말했었다. 자신을 속이진 말자고. 생활을 바로 보자고 다짐하면서 그녀는 그 결혼과 출산으로 이어질 내일이 진실은 아니라고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었다.

그런 그녀를 할퀴듯 괴롭힌 것은 자기 혼자 치러 낸 수술마저도 역시 진실은 아니라는 느낌이었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그것은 허위일 수밖에 없으리라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물었다.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것만이 진실일까 하고. 출산의 고통, 그것은 이마에 소금을 절이며 일해온 남자의 곁에서 여자가 가져야 했던, 헤아리기조차 어려운 옛날부터 이어진 일이었다.

잘못은 어디에 있었을까.

그런 의문의 끝에서, 자신의 사랑을 의심해 보며 그녀는 열차를 탔었다 밤새도록 가혹한 심문을 했지만 그녀의 사랑에는 죄가 없었다. 그들이 만났던 시간의 어디에도 빼앗거나 바친다는 뜻은 없었다, 배신이라는 결과가 있을 수 없는 시간들이었다. 다만 서로가 갈망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새벽

휴지 조각이 날리는 플랫포옴을 빠져 나오다가, 그녀는 나직하게 말했었다. 얘야, 인간이란 괴로움이나 슬픔까지도 스스로 만들어 왔어. 그리곤 그 고뇌와 비애를 또 참아 내 온 거야. 너도 이젠 고통을 참는 법을 배우기로 하자.

그의 어깨에 머리를 묻고, 연못 건너에 있는 빈 벤치를 바라보았다. 그도 무슨 생각을 혼자 했던가보았다. 낮은 목소리로,

"봄엔 다시 서울로 올라가야겠지?”

올라와야 할 사람은 자기이면서 그녀에게 묻고 있었다.

"그럼,,,,,, 안 올라올 테야"

"가야겠지. 다만 무언가 두려운 생각이 들어=

두렵다니? 그가 처음 내보인 말이었다.

이곳에 회사 확장 계획에 따른 제2공장을 짓게 되면서, 그는 자원해서 내려왔었다. 그 동안, 화를 내고 있는 사람처럼 일에 매달렸었다, 그런 그를 보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었다. 그 동안에 보여 준 능력으로 해서, 다시 본사로 올라오면서 과장 승격이 확실하다는 것은 비서실에 있는 그녀만이 아는 사실도 아니었다. 함께 입사한 사원들 중에서는 가장 빠른 승진이었다.

"? 본사가 싫어?”

"아니, 그런 얘기가 아냐.”

그는 코우트 깃을 감싸쥐면서,

"공장이 세워지면서,,,,,, 이런 생각을 했어. 건물의 골격을 세울 때 철근을 박은 다음 나무로 통을 짜서 그 속에 시멘트를 부은 후 콘크리이트가 굳으면 나무판자를 떼어버리지. 또 인부들이 벽돌을 나를 때 딛고 오르는 나무 기둥을 많이 보았을 거야. 그런 건 건물이 되면 다 뜯어버리는 것들이지.”

잠시 말이 끊겼다. 담배를 밟아 1L, 그다 벤치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우리들이 일을 한다는 건 결국 그런 나무의 역할과 같은 거라고 말할 수 있겠지. 출퇴근이라는 생활--- 그 속에 무언가 진정한뜻이 남아 있어야 할 게 아냐? 그런데,,,,,, 거기엔 아무 것도 없거든. 그저 무의미한 일상사가 있을 뿐이야. 한때는 즐겁기만 했던 그 일상사가 차츰 괴롭게 느껴져. 마음의 어딘가에 흐르지 않는 물이 고여 있는 것 같은------"

이 남자가 가지고 있던 단순한 기쁨 단순한 의욕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녀는 암담했다. 가치의 기준은 다르더라도 누구나 자기가 살아가고 싶어하는 삶의 모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비참해지기보다는 행복해지려는 노력이리라. 그런데, 보다 행복해지려는 노력이 이런 의문을 가져왔다면 그 노력은 오히려 단순한 행복을 깨뜨리는 결과가 되는 것이었다, 열심히 산 시간이 오히려 그 (열심히) 속에 들어 있는 무모함을 보게 만들었다면, 이제 그에게 남는 건 무엇일까. 흐르지 않고 고여 있는 물.

"싫어. 여자한테 그런 얘길 하는 남잔.”

겨우 그의 손을 잡으며 한 말이었다.

"엄살이지, 무지무지하게 논리성도 없는 얘기고. 산다는 거야 더 어려운 일 아냐?”

"그래도 싫어. 그란 얘기. 다시는 하지 마아.”

그녀는 일어섰다. 그리곤 캄캄한 어둠뿐인 바다를 향해 얼굴을 돌렸다.

"반딧불이 라도 있었음 좋겠네.”

이 어둠 속을 반딧불이라도 떠다녔으면 좋을 것 같았다. 그도 따라 일어서며,

"여긴 바다야 그리고,,,,,, 겨울인걸.”

그가 그리워하는 맑은 삶처럼 맑은 목소리였다.

"저쪽엔 바로 논이던데,,,,,, 여름에 한번 와 봤음.”

"여름에도 반딧불은 없을 거야.”

캄캄한 어둠을 바라보고 선 채 그녀는 물었다.

"왜애?

"농약들을 심하게 뿌려 대서 반딧불마저도 이젠 다 멸종되어 버렸어.”

멸종돼 가는 반딧불. 바람에 날리는 불티같이 아직 죽지 않고 남아 있는 한 마리 반딧불처럼 그의 말이 귓가에 웅웅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흐린 탓일까. 하늘에는 별빛마저 보이지 않았다. 컴컴한 하늘이 그녀의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머리를 산 발한 외마디 비명처럼, 그러나 소리 없이 가로질러 가는 말들이 있었다.

"이젠 어디에도 반짝이는 것은 없나 봐.”

그녀는 혼잣말처럼 가만히 중얼거렸다.

하나, , , 넷 하고 헤아리기가 하얀 커어튼과 벽과 그런 것들을 바라보면서 깨어났을 때, 바람에 흔들리는 유리창 소리만 자갈 굴리듯 귀에 가득하던 그 아픔 속에서 그녀는 알아야 했다. 이제 자기에게 반짝이는 것은 없다고. 저 하늘의 은하수,,,,,,. 어둠 속을 떠다니는 반딧불도 없는 이 하루. 빛나는 눈망울을 가진 아이마저도 죽어 버린 여자의 이 사랑. 그녀는 캄캄하게 고개를 숙였다.

은하수도 반딧불도 없는 그녀의 안쪽을 이름 모를 새가 끄이윽끄이윽 날고 있었다. 망연히 서 있는 그녀의 뒤에서,

"이젠 가야지. 늦었어.”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가야겠지. 사람들은 그렇게 사는 거니까,

이제 돌아가야 할 도시를 그녀는 떠올렸다. 알 수 없는 빛에 넘쳐서 살아 움직이는 밤거리. 낮이면, 내장이 터진 물고기 같은 그 도시에서 파리 떼처럼 웅웅거리며 밀리고 또 밀리면서도, 사람들은 가슴 어딘가에 별 같은 것들을 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녀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무엇으로든 이 가슴속 하늘 높이 흐르는 은하수를 가려 버려야 한다. 마음의 벌판에서 끝없이 찾아 헤매려 하는 꿈의 반딧불을 죽여야 한다.

그래서 미움도 사랑도 없이 이제 돌아가야 할 거리의 불빛을 바라보는 일, 그 일을 해 내야 한다. 저 동물원의 사자처럼 아직 걸을 수 있음을 이따금 확인하면 되는 거야. 보이지 않는 아무것도 그리워해서는 안 돼

, 그렇지만, 그렇지만, ......

". 가야지. 안 갈 거야?

의 팔이 어깨에 얹히며 그녀를 돌려 세웠다. 틀어 올라간 등나무의 마른 가지들을 보며 그녀는 생각했다. 가을에 진 나뭇잎도 봄이면 새로이 피어나지 않던가. 그의 가슴에 힘없이 몸을 기대며 그녀는 말했다.

더 어두워지면 갈래.”

그때, 그녀의 안에서 날개를 퍼드덕거리며 수없이 많은 새들이 떨어져 내렸다. 끄이윽끄이윽 수면도 없이 캄캄한 마음의 늪지로 빠져 가는 소리들, 그것은 마악 태어나는 아이들의 울음소리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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