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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단편소설2

70. 상투

by 자한형 2022.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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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투 -최인준

 

1

 

있지, 있구말구.

아무도 못 알아듣게 김첨지가 이 말을 여러 번 입 속으로 거듭 뇌었다. 대낮에도 어둠침침한 사랑방 구석에 누구 하나 알아들을 사람도 없건만 그래도 행여 누가 듣는가 해서 입 속으로만 후물어 넣는 것이었다.

있지, 있구말구.

무슨 큰 일이나, 저질러놓고, 고리고 자기의 잘못을 자기에게 변명하는 것처럼-

그러나 김첨지 머리에 있던 상투가 없어졌다는 것은 아침마다 동녘에서 해가 떠오른다는 진리와 마찬가지로 어데까지든 부정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었다. -엄연한 사실-을 될 수 있는 대로, 아니 억지로라도 부정하려고 하는 데에 - 김첨지의 모순된 심리가 미묘하게 움직이었다.

때문에 상투가 없어진 것이 정말이면 정말일수폭-그리고 날이 가면 날이 갈수록.

있지, 있구말구.

하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인제도 헌 주머니 쌈지에서 케케묵은 참빗을 꺼내 가지고 늘 하던 버릇대로 상투 밑을 버억! 내려긁다가,

-

하고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며 손에 들었던 참빗을 머리맡에 내동댕이쳤다. 가위로 썩썩 잘리운 상투 밑 자리에 톱날 같은 참빗으로 사정없이 내리 문지르니까 딴은 아프기도 하였다. 그것은 동시에 김첨지가 상투로 말미암아 받은 마음의 상처까지 무참하게 내리 문지르는 것이었다.

때문에 김첨지가,

-

하고 소리친 것은 그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비명이었다. 비명의 절규이었다. 원통한 일이었다. 생각할수록 절통한 일이었다. 자기가 싫다는 것을 억지로 잘리었기 때문에 더욱 기막히는 일이었다. 있던 상투가 없어지니깐-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더한층 그전 상투가 그리워지기도 하였다.

상투를 턱없이 그리워함이 이따금 김첨지로 하여금 어림없는 착각을 일으키게 하였다. 그래서 번히 없는 줄 알면서도,

있지, 있구말구.

하고 입 속으로 거듭 뇌었다. 억지로라도 그렇게 믿으려고 애쓰는 것이었다.

마치 자기의 사랑하던 아내가 죽은 뒤에 제 몸 혼자 빈 방안에 앉아서 그 아내가 영영 돌아오지 않을 줄 번연히 알면서도 행여 기다려지던 것처럼-그처럼 안타까운 심정이 요즈음의 김첨지를 아주 우울하게 만들어놓았다.

오늘도 어데다 하소할 데조차 없는 -우울한 심사-를 가슴에 품은 채 사랑방에 혼자 틀어박혀서 짚신을 삼고 있었다. 김첨지는 마을에서도 그중 밥술이나 먹는다는 허 대감네 머슴 사는 늙은이였다.

 

2

 

그것은 십여 일 전 일이었다.

초가을 - 벼를 베기 시작할 날도 이제 앞으로 며칠 남지 않고 해서 김첨지가 마루 밑 바닥에 간직해두었던 녹슨 낫 세 자루를 망태에 넣어 가지고 십리가 넘는 장거리에 갔었다.

왼편 다리를 약간 절름저리며 장거리를 향해서 걸어가는 김첨지의 뒷모양이 점점 멀어갈수록 조그마한 몸집은 그만 땅속에 자지러들고 유별나게 큰 상투만 우쭐우쭐 걸어가는 것 같은-누가 보든지 그렇게 우스꽝스럽게 뵈는 것이었다.

그만큼 그 상투의 존재가 위대하였다. 실상 그 위대한 상투의 존재가 김첨지의 전부라고는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까지 김첨지의 중요한 부분을 대표할 수는 있었다. 하여간 김첨지와는 분리할 수 없을 만큼 김첨지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지위를 가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기야 김첨지 자신만이 인정하는 -중요한 지위-라고 하더라도.

장거리에 사람이 물밀듯하였다.

김첨지는 곧 대장간으로 찾아갔다. 그리고 한나절이 잔뜩 기울어서야 낫 세 자루를 모두 벼려 가지고 대장간을 나오다가 반가운 친구 XXX를 오래간만에 만나서 잡담 제하고 가까운 선술집으로 그를 끌고 갔다. 좋아하는 막걸리에 얼큰히 취해서 어중이떠중이 장황한 이야기를 펼쳐놓다가 석양녘에야 집에 돌아오느라고 면소 앞을 지나갔다.

 

달아, 둥그신 달아

님의 동창에 비치신 달아

 

도야지 멱따는 것 같은 걸걸한 목소리를 듣기 거북하게 내뽑으며 김첨지가 어지러운 발길을 면소 앞까지 옮기어놓았을 때 !

이리 와.

웬 쓰메에리 (스탠딩 칼라 양복)를 입은 면 직원 하나가 김첨지의 팔 소매를 잡아끌었다.

. 뭐 어째?

술취한 김첨지도 무조건하고 끌려가지 않으려고 버티었다. 그러니깐 쓰메에리의 표정이 갑자기 험악해졌다.

늙은 게 술은 처먹고.

자기보다도 나이로 말하면 갑절이나 넘는 늙은이에게 함부로 반말질하는 것보다 늙은이에게서 반말질 받는 것이 이 시대의 젊은 사람 중의 하나인 쓰메에리에게는 커다란 - 다시없이 커다란 모욕이 아니면 안되었다.

쓰메에리가 김첨지를 끌고 면소 뒤로 돌아가면서 사무실을 향하여 소리쳤다.

규지, 하아미못테고이 (급사, 가위 가져와).

금방 규지가 가위를 들고 달려나왔다. 그래서 김첨지가 뭐라고 말할 사이도 없이 그렇게도 김첨지가 아까워하던 큼직한 상투가 그만 단번에 싹 잘리고 말았다.

너무 뜻밖에 당하는 봉변이라 김첨지는 어리둥절하였다. 얼빠진 사람처럼 우두커니 서서 그리고 한참동안이나 술취해서 흐리멍텅한 눈초리를 땅바닥에 힘없이 떨어뜨리고 있었다.

그 눈이 점점 커졌다.

얼음판에 짐 싣고 나가자빠진 황소의 허무적인 커다란 눈방울처럼 - 눈동자가 커질 대로 커져서 다시 더 커질 수 없으리만큼 커져서는 면소 뒤 담 모퉁이에 떨어진 새카만 상투의 무참한 시체 위에 못 박힌 채 아주 굳어버리고 말았다.

무섭게 흡뜬 커다란 눈동자에 서릿발 같은 노기가 서리어졌다. 마침내 듬썩 다물어졌던 두터운 입술이 경풍 앓는 어린애처럼 푸르르 떨리었다.

이놈, 이 무도한 놈.

김첨지가 악이 받쳐서 호통할 때는 벌써 쓰메에리도 규지도 어디로 갔는지 눈앞에 보이지 않았다. 일은 벌써 그릇된 뒤였다.

이 천하에 무도한 놈.

그러나 김첨지는 자기의 분한 감정을 어데로 빠져갈는지 몰랐다, 그래서 무섭게 흡뜬 눈초리가 눈앞에 가로막힌 담장을 넘어서 가을의 푸른 하늘을 노려보다 가 그 다음 순간 또다시 발 밑 아래로 눈초리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인제는 턱없이 흥분되었던 감정이 한고비를 넘어서서 그 뒤에 오는 쓸쓸함이 - 끝없이 푸른 가을의 하늘과 같은 -쓸쓸함-이 김첨지의 서 있을 기력까지 빼앗아갔다. 그만 김첨지카 담 모퉁이에 펄썩 주저앉으며 상투의 시체를 덥썩 움키어 잡았다.

움키어 쥐고 또 새삼스러운 감정이 가슴속에서 치밀어 올라오는 것처럼 소리쳤다,

이놈, 이 무도한 놈.

해가 져서도 김첨지는 일어나지 않았다. 아침저녁으로 차지는 초가을 선들바람이 홑겹 베적삼 밑을 파고들어서 으시시 추웠다.

술도 완전히 깨었다.

오늘에 된 모든 일, 일생 중에도 처음 당하는 봉변의 자초지종이 차례차례로 머리에 살아왔다. 그러나 인젠 고함칠 기력조차 잃었는지 그냥 상투만 붙들고 머리를 수그린 채 발끝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그날 밤의 숙직원이 나와서 김첨지를 일으키었다.

, 가요-

그리고 나서 친절하게 김첨지의 상투가 잘린 이유를 설명하였다.

이 비상시에 처해서 우리 농민들은 자력갱생을 하지 않으면 안되오. 그럼에는 우선 색의단발을 해야 하거든. 그 보기 싫은 존마게(상투)를 머리 위에 올려 모시고는 도저히 이십세기 문명인이라고 할 수가 없단 말야. 알어 듣겠소.

-

김첨지는 커다랗게 신음할 뿐이었다. 보다도 그 이유를 알아듣고 수긍할 만큼 우리 김첨지의 완고한 두뇌는 조금도 진보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상투가 잘리지 않았느냐 ?

그 이유를 들을 필요는 없다.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 이십세기 문명을 끄집어낼 필요도 없는 것이다.

어쨌든 누가 뭐라고 하든 상투가 잘리지 않았느냐? 이 비참한 결과만이 김첨지가 당면한 그리고 가장 커다란 문제이었다

, 이런 법도 있소.

김 첨지가 숙직원에게 하소하였다.

상투의 시체를 움키어 쥐고 통곡하였다.

세상에 대체 이런 법도 있소.

울다가 넋두리를 하다가 제바람에 기진해져서 밤이 퍽이나 깊어서야 김첨지가 집으로 돌아왔다.

 

3

 

원체 체소한 그 몸집에 비해서 김첨지의 상투는 어울리지 않게 컸었다.

숱이 많고, 새카맣고 기름이 뚝뚝 흘러서 번지레하게 윤이 나고 - 그것은 삼단 같은 머리꼬랑이가 발뒤축까지 치렁치렁 늘어지던 총각 시절에도 김첨지가 가질 수 있던 다만 하나의 자랑거리였었다.

늙어가면서 왜 자자하게 늘어지는 머리가 보기 흥케 되었어도 머리 한복판 가운데 엄연하게 들어앉은 큼직한 상투만은 오십 줄이 넘었어도 김첨지가 가질 수 있는 다만 하나의 자랑거리였다. -자랑거리-가 없어진 후로 김첨지는 아주 딴 사람이 되고 말았다.

상투를 잘리운 지도 벌써 열흘이 넘었건만 김첨지는 만에 출입을 퍼하고 사랑방 구석에만 틀어박혀서 짚신을 삼았다. 짚신을 삼다가도 갑자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짚신짝을 홱 내던지고 땅이 꺼질 듯이 한숨을 쉬었다. 이러한 표면적인 변화는 보다 더 큰 마음의 동요를 심자하게 일으키는 것이었다.

자상하던 김첨지였다. 바지런하고 자차분하고 꼼꼼하고 궁뎅이가 가비엽고 -그래서 주인에게도 꾸중 한마디 안 듣고 살아오던 김첨지였다.

구태여 흠을 잡는다면 입바른 말을 톡톡 잘 내쏘기 때문에 뒤 어지러운 마을 색시들이 질색을 하고 멀리하는 것이나 도리서 이런 점이 젊은 사내들의 비위에 맞아서 아무나 물론하고 흉허물없이 지내갔다. 말하자면 호인이었다.

그러던 김첨지가 외인을 꺼리고 실신한 사람처럼 방안에만 있는 것이 먼저 허 대감의 주의를 끌었다.

아니, 그렇게 방구석에만 능실구랭이처럼 박혀 있으면 어쩔 테야. 가을도 거두어들일 생각을 해야지.

허 대감이 걱정해도 김첨지는 잠자코 있었다. 대답하는 대신에 그 여위고 불쑥 튀어나온 광대뼈 위로 뜨거운 눈물방울을 주루룩 흘리었다.

그 눈물이 현재의 김첨지의 심경을 충분히 설명하고도 남았다. 하지만 오십 줄이 넘어선 늙은 첨지의 우는 꼬락서니가 물론 허 대감의 동정을 살 수는 없었다.

원 늙은 사람이 그렇게도 소갈머리가 좁단 말인가?

입맛을 두어 번 쩍쩍 다시고 못마땅한 듯이 혀를 끌끌 차며 허 대감이 안방으로 들어가 버리었다.

그렇게도 소갈머리가 좁단 말인가.

이 말은 어떤 의미로서는 김첨지를 위한 충고이었다. 좀더 마음을 크게 먹었더면 그만 일에 그렇게까지 상심하지 않았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쩐지 김첨지는 허 대감의 충고까지가 고맙게 클리지 않았다. 도리어 자기를 멸시하는 것 같아서 야속스러웠다. 이 세상이 모두 원망스러웠다. 그렇게 생각하면 자기자신까지가 보기 싫어졌다.

어서 죽어버렸으면.

이러한 -마음의 동요-가 김첨지의 가슴속에서 커다랗게 소용돌이를 치고 있었다.

 

4

 

상투는 또한 추억의 실마리였다.

상투로 말미암아 얼크러진 과거 -그 가운데 김첨지가 가장 잊지 못하는 것은 죽은 아내에 대한 추억이었다. 김첨지가 처음 상투를 올리기는 산에 나무하러 다니면서 동무들과 싸움하는 것밖에 모르던 열다섯 살적이다.

그때 열아홉 살에 시집온 그의 아내는 얼굴이 둥굴넓적하고 투실투실하고-그 마음씨도 투실투실하고 순박하였다. 조금도 나어린 남편이라고 넘겨보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아침마다 일어나는 즉시로 김첨지의 상투를 풀어서 곱다랗게 빗질하고 동백 기름을 발라주고 은동곳을 찌르고 큼직한 상투를 보기 좋게 짜올려 주었다. 김첨지가 철이 나서 아내가 무언지 알 때까지 사오 년간을 하루같이 계속해 주었다.

그렇게 끔찍하게 굴던 아내가 삼십이 넘어서자 죽고 말았다, 우연히 병을 얻어서. 지금도 김첨지는 아내가 무슨 병으로 죽었는지 모른다. 다만 죽기 전에 단 한번이라도 약을 못 써준 것이 김첨지는 한이었다.

워낙 친척 없고 가난한 살림에 하늘처럼 믿던 아내가 죽으니깐, 다시 장가도 못 가고 홀몸으로 농사도 지을 수 없어서 이곳 허 대감네 집에 머슴으로 들어왔다. 머슴살이 이십 년-그래서 김첨지는 덧없이 늙었다.

이 평범한 일생 가운데도-아내와 금슬이 좋던 김첨지는 언제나 아내에 대한 기억을 잊어본 적이 없다. 잊지 못할수록 죽은 아내가 그리웠다. 죽은 아내가 정성껏 손질해주던 상투가 한없이 정다웠다. 이십 년이 지나간 지금에도 자기의 상투 밑에 그윽한 아내의 살내음새가 남아 있는 듯싶었다.

때문에 지금에도 아침마다 손수 상투를 짜올리는 것만은 거르지 않았다, 상투를 풀어놓고 빗질을 할 양이면 엉클어진 머리카락마다 아내에 대한 추억의 실마리가 저절로 풀려 나오는 것이었다. 그 추억의 실마리를 따라서 까마득한 과거의 세계로 헤매는 것이 김첨지의 즐거움이었다. 또한 서러움이었다. 어쨌든 좋은 의미로서나 언짢은 의미에서나 김첨지에게는 그 상투가 오십 평생의 반려이었다.

이제 앞으로도 죽는 날까지 떠나지 않으려던 -반려-마저 잃어버리고-김첨지는 진정으로못 살 것 같았다.

하지만 상투는 기어코 잘리고야 말지 않았느냐?

 

5

 

김 첨지는 늙었다. 고리고 완고하였다.

소위 -신식-이라고 떠드는 햇아이들이 모두 중대가리가 되어서 저마다 제멋대로 거덕거리는 데 여간 큰 반감을 갖지 않았다.

존마게상-

이라고 심지어 뒤꼭대기에 피도 안 마른 어린 놈들에게 비방과 조소를 받을 때마다 김첨지는 세상을 개탄하였다. 말세임을 저주하였다.

햇아이들이 머리를 깎으면서부터 -소위 -개화풍-이 이 땅에 몰려오면서부터 이 세상이 점점 까다로워지고 영악해 가는 것을 김첨지는 최근 몇십 년간의 체험으로 절실히 느끼었다.

다만 조선의 -얼굴-을 자기의 상투 끝에서만 응시하는 것이었다. 상투야말로 이 땅의 표상이었다. 또한 자기의 표상이었다.

때문에 김첨지는 자기의 상투만은 한사코 지키어왔다, 마을의 구장이나 양반 행세를 버리지 않는 허 대감이 -개화풍-에 떠들려서 상투를 헌신짝처럼 잘라 버리어도 김첨지는 머리를 깎지 않았다.

한번은 네냐 내냐 하고 지내는 천길이가 머리 기계를 가지고 덤벼들었을 때도 김첨지는 성을 내고 발악을 하다가 나중엔 천길의 불알을 잡고 늘어지면서까지 상투를 지키었었다.

김첨지에게 진보는 없었다. 그러되 이 땅이 운명하는 마지막 순간까지라도 자기의 표상만은 잃어버리지 않으려는 -고집-이 있었다.

그런데 그 -고집-이 잘리고 말았다. 울고불고 발버둥쳐도 오십 평생의 -반려-를 기어코 잃어버리었다. 아내에 대한 추억의 실마리가 한꺼번에 끊기고 말았다. 자기의 표상-삶의 목표가 여지없이 깨어지고 말았다.

인제 무엇이 남았느냐?

인제 김첨지에게서 무엇을 찾아낼 수 있느냐?

지금의 김첨지에게는 절망적인 통곡 이외에 아무 것도 없다. 죽는 날까지 없어진 상투를 위해서 밤낮으로 통곡하지 않으면 안 되는 마음의 상주(喪主)이었다.

김첨지는 때때로 천반자 속에 깊이 간직해둔 상투를 눈앞에 꺼내놓고 울었다. 싸고 또 싸고 열 겹 스무 겹 상투의 시체를 싸놓은 백지를 한 장씩 풀어놓고 울었다. 두 장씩 풀어놓고 울었다. 열 장 스무 장을 불어놓고 울었다. 그리고 다시 차례 차례로 상투를 싸면서 울었다, 열 겹, 스무 겹 싸놓고 천반자 속에 도로 넣으면서 울었다.

그것은 마음의 통곡이었다. 이 마음의 상주는 상투의 시체를 붙잡고 처량하고도 눈물겨운 곡()을 마음으로 한없이 부르는 것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벼 벨 때가 왔다.

 

6

 

하늘이 맑고 바람이 산들거리고-그날은 허 대감네가 가을을 거두는 날이었다, 그래서 김첨지도 할 수없이 일꾼을 대가지고 벌판에 나가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러나 김첨지는 상투 없는 것이 마음에 꺼리어서 밤새도록 궁리하였다. 그리고 아침 일찍 일어나서 허 대감을 보고서 왜수건 하나를 달래었다

그건 뭘 하누?

의심스러운 얼굴로 허 대감이 물었을 때는,

쓸데가 있죠.

알 뿐으로 왜수건을 받아 가지고 나와서야 머리에 뒤집어썼다.

-인제야 누가 알어.-

그렇게 스스로 자기를 변명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 변명만으로 자기의 마음까지가 평온하리라고 자기 스스로 보증할 수는 없었지만 김첨지는 벌판에 나가면서도 마음이 조마조마하였다. 실상 상투 잘리운 것을 무슨 큰 죄나 지은 것처럼 생각하는 김첨지였다.

벌판에 나가서도 김첨지는 될 수 있는 대로 여러 일꾼들과 떨어져서 혼자 벼를 베어나갔다. 머리를 수그리고 기운 없이 일하는 그의 입술 새로 땅이 거질 듯한 한숨이 길게 새어나왔다.

이 김첨지의 어색한 태도가 제일 먼저 걸쩍스럽고 짓궂게 생긴 천길이의 눈에 보였다. 연방 한 손이 더듬어 올라가서 만지작거리는 김첨지의 왜수건을 눈여겨 보던 천길이가 비슬비슬 김첨지 옆드로 가까이 갔다.

천길이는 여전히 머리를 수그린 김첨지의 뒤로 돌아서 갑자기 달려들며 왜수건을 잡아챘다. 동시에 -

?

김첨지가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일어나는 서슬에 상투 밑의 머리카락이 산산이 헤져 날려서 상투 잘리운 자리가 시퍼렇게 드러났다.

.

그 다음 순간 입술을 질끈 씹던 김첨지가 한 손에 낫을 번쩍 들고 천길이를 노리어보고 있었다. 그 표정이 점점 무섭게 변하여갔다.

무섭게 변한 표정으로-그러나 김첨지는 아무 말 없이 징글스럽게 천길이의 얼굴만 뚫어지게 노려보고 있는 것이었다.

지금의 김첨지를 -그 무섭게 변한 표정이 넉넉히 말하고 있는 커다란 분노를 얼마라도 짐작할 수 있었다면 천길이는 그대로 김첨지 앞에서 머뭇거리지 않고 달아났을 것이다.

그러나 그전과 같이 흉허물 없이 지내던 김첨지로만 여기는 천길이는 그런 사소한 표정의 변화만으로-그 표정의 변화가 그 다음 행동으로 옮겨가지 않는 이상 선뜻 물러갈 만큼 예민한 감정을 가지지 못하였다.

, 글쎄 존마게는 어쨌느냐 말야, 핫핫핫.

무슨 신기한 발명이나 한 것처럼 천길이가 유쾌하게 한바탕 웃어댔다. 그러니까 같이 벼 베어나가던 여러 사람이 일시에 왁 하고 따라 웃었다.

그래도 김첨지는 웃지 않았다. 그렇다고 울지도 않았다. 어떻게 보면 웃는 것도 같고 또 어떻게 보면 우는 것도 같은-아니 지금의 김첨지는 웃을 수도 없고 울 수도 없는 그렇데 절망적이면서도 어떤 분노에 가득한 감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 절망적인 분노를 -그러나 순직한 김첨지는 죄없는 천길이에게 떼어메칠 수는 없었다.

그대로 징글스럽게 천길이를 노려보던 김첨지가 분노에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수건을랑 인줘.

기 떨려나오는 목소리가 도리어 천길이에게는 애원하는 것처럼 들리었다. 그 애원하는 꼴이 볼만하다는 듯이 천길이는 짓궂게 좀더 놀려먹으려고 하였다.

이 고집쟁이 영감아. 글쎄 그 조상신주처럼 위하던 상투는 어째놓고 이 수건은 뭘 하는 게야. 언제는 내 불알을 서발이나 뽑아놓더니, 요놈의 영감쟁이가 -

그러면서 왜수건을 줄 듯이 김첨지 앞으로 흔들어 보였다.

인줘.

글쎄, 이걸 쓰면 누가 속냐 말이야.

천길이는 종내 주지 않았다. 공연히 웃기만 하였다.

그만두게,

좀처럼 달래서는 주지도 않고 성화만 받칠 것을 번연히 아는 김첨지는 그만 손에 쥐었던 낫을 논바닥에 내던지고 논두렁으로 어정어정 나와서 펄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허리춤에 끼웠던 담뱃대를 꺼내서 희연을 피워 물었다. 담배를 한 모금 들이빨았다가 후- 하고 담배연기를 배앝았다. 가슴속에서 회오리치는 그 어떤 감정을 담배 연기에 섞어서 내뿜으려는 것처럼.

담배를 푸억푸억 피워서 속이 좀 후련해지니깐 김첨지는 어쩐지 가슴속이 쓰리었다.

갑자기 서러워졌다. 가슴이 뻐개지는 것 같고 목구멍이 메어지는 것 같은 자기도 무어라고 형용해야 좋을지 알 수 없는 서러움이 일시에 복받쳤다. 그래도 김첨지의 눈에는 눈물 한방을 어리지 않았다.

그것은 극도의 서러움이었다. 사람이란 언제나 자기의 힘으로 억제할 수 없는 너무나 커다란 서러움에 짓눌릴 때는 눈물도 안 나오는 법이다. 지금의 김첨지가 맛보는 서러움이 그만한 정도의 서러움이었다.

이 서러운 마음으로 벌판을 에워싸고 있는 멀곤 가까운 산 뒤로 피어오르는 솜덩이 같은 횐 구름만 무심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7

 

그날 밤이었다.

마을에서 김첨지가 없어지고 말았다.

며칠이 지나가도 보이지 않았다.

김첨지가 어디로 갔는지 아는 사람도 없었다. 또한 김첨지가 어디로 간다고 알려준 사람도 없었다. 아무도 모르는 밤중에 온다간단 말없이 자취를 감추고 만 것이었다.

천길이만은,

농담이 너무 과했어.

하고 새삼스럽게 후회하였으나 인제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김첨지의 간 곳을 알면 금방 쫓아가서 사죄하고도 싶었으나 그날 낮에 김첨지가 낫을 한 손에 번쩍 들고 무섭게 노리어보는 전에 없던 험악한 표정을 눈앞에 그리어보고는 그만 진저리를 쳤다. 혹시 김첨지가 어디로 간 것은 자기 때문이 아닌가고 생각할수록 천길이는 가슴이 답답하여졌다.

허대감이 눈이 휘둥그래서.

, 그 첨지가 어딜 갔단말고.

하고 천길에게 물었으나,

모릅지요.

하고 우물쭈물하는 수밖에 없었다.

암만해도 그 첨지가 망령이 들어서 나간 모양이야.

글쎄요.

허대감의 그 불행스러운 추측은 지금의 형편으로는 천길이도 마찬가지로 가질 수 딨는 불행스러운 추측이었다.

<그 첨지가 망령이 들기 전에야 온다간단 말 없이 없어질 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천길이는 될 수 있는 대로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기실은 김첨지가 자기 때문에 어디로 간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짓기 위해서 허 대감의 불행스러운 추측은 어느 정도까지 천길이의 답답한 마음을 누그러뜨릴 수가 있었다.

그렇지, 그 첨지가 망령이 들었어.

나중엔 천길이가 이렇게 아주 단정해버리고 말았다.

과연 김천지는 어디로 갔던가?

그것은 그날 낮에 산 뒤에서 무심하게 내려보던 횐 구름이나 알았을까. 그 횐 구름을 따라서, 흰 구름과 함께 정처 없는 길을 김첨지는 그야말로 정처 없이 떠나갔던 것이었다.

 

8

 

마을에서 김첨지가 사라진 채 - 겨울이 지나갔다. 김첨지가 없는 이 마-을에도 여전히 추운 겨울이 두 번째나 속절없이 지나갔다. 겨울이 오고가는 사이에 김 첨지의 인상도 마을사람의 머리에서 점점 희미해져갔다.

지금도 살었을까?

겨우 천길이만은 김첨지에 대한 기억을 잊을 수가 없었다. 김첨지를 잊을 수가 없다는 것은 천길이에게도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건만 좀처럼 자기의 머리에서 김첨지의 존재를 지워버릴 수가 없었다. 보다도 날이 갈수록 김첨지의 존재가 뚜렷하게 머릿속에 살아오는 것이었다. 그 무서운 표정이 어떤 때는 꿈에도 나타나 보였다.

그때마다.

그 첨지야 죽었지. 죽지 않었으면야 그 동안 무슨 기별이라도 있을 게 아닌가.

천길이는 김첨지가 죽고 영영 돌아오지 않기를 원하였다. 한데 김천지가 돌연히 이 마을에 돌아왔다.

또 한번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왔을 때 봄과 함께 김첨지가 그 형체를 나타낸 것이었다.

이 김첨지의 형체를 마을사람들은 처음 몰라보았다. 몰라보리만큼 그 행색이 너무 초조하였다. 얼굴은 혈색을 잃고 불쑥 나온 광대뼈 위에 수염이 거칠하게 나고 허리가 활등처럼 꾸부러져서 지팡이를 짚고 엉금엉금 기면서 쿨렁쿨렁 기침하는 꼴이 병이 골수에 깊이 든 것 같았다.

그것은 누가 보든지 거지행색이었다. 거지 중에도 상거지 - 늙은 거지였다. 삼 년 동안을 거지로 떠돌아다닌 모양이었다. 다만 그 눈만이 - 움푹 기어들어간 그 눈이 말하고 있는 음침하고도 살기가 떠도는 그 눈동자만이 옛날의 김첨지와 같은 점이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마을사랑의 눈에 뜨인 것은 그때 잘리었던 상투가 보라는 듯이 머리 한복판 가운데 들어앉은 것이었다.

, 김첨지요. 오래간만이구려.

그래도 천길이만은 김첨지를 선뜻 알아보았다. 고리고 반갑게 웃음을 지으려다가 멈칫 물러서며 터져 나오려던 웃음을 다시 꿀꺽 삼키어버렸다.

그 눈, 그 얼굴,

삼 년 전 가을 벼 베던 때에 김첨지가 자기를 노리어보던 그 눈, 그 얼굴 - 그것보다도 심각한, 그리고 암담한 빛의 농도를 더한 무서운 표정이 아니었던가?

이 무서운 표정을 김첨지의 얼굴에서 찾아내던 천길이는 어쩔 줄을 모르고 뒷걸음질쳤다. 그러나 그것은 천길이가 제바람에 겁을 집어먹고 놀랐을 뿐으로 김첨지는 태연스럽게 뒷걸음질치는 천길이 앞으로 엉큼엉큼 다가서며 대하는 것이었다.

참 오래간만일세.

---

글쎄 무슨 별고나 없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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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도 잘 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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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어서 씨근거리며 대답을 못하는 천길이를 유심히 들여다보던 김첨지가 갑자기 무슨 생각을 했는지 빙그레 웃으며 천길이의 어깨를 툭 쳤다.

자네 내 왜수건은 어쨌나?

그건, .

천길이가 당황해서 머리만 벅벅 긁었다.

그러니깐 김첨지가 뭘 속에서 끄집어내는 것처럼 핫핫핫 입을 쩍! 벌리고 크게 소리쳐 웃었다.

씽 빈 동굴 속에서 울려나오는 것 같은-그러나 날카로운 조소가 섞인 비웃음이었다.

인젠 쓸데 없네. 내가 상투를 이렇게 길렀으니깐.

김첨지가 두손으로 자기의 상투를 붙잡더니 또 한바탕 웃어댔다. 천길이가 김첨지의 왜수건을 벗겨 가지고 너털웃음을 터뜨리던 것처럼 이번엔 김첨지가 천길이를 보고 호기롭게 웃어주는 것이다. 그것은 복수의 잠재의식이 불타는 징글스러운 비웃음이었다.

이렇게 한바탕 웃어주고 싶은 생가에 김첨지는 삼 년 동안이나 거지 노릇을 하며 돌아다니는 중에 상투를 짜올려 가지고 비로소 이 마을에 돌아왔던 것이었다.

인제 첨지의 소원은 성취되었다.

그러나 그 행색이 너무 초조하여졌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나 하리만큼 다 죽은 송장이었다. 말하자면 그 불타는 복수심이 김첨지를 이곳까지 끌어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김첨지는 천길이와 함께 허 대감집에 찾아갔다.

, 김첨지로군.

큰방에서 같이 자리를 하고 앉았던 허 대감이 김첨지의 머리에서 상투를 발견하자 입맛을 두어 번 쩍쩍 다시면서,

.

하고 고개를 꿈적 이었다.

상투를 또 올렸네그려.

---

김첨지는 그 이유를 설명하는 대신에 허리를 굽실하였다. 그날 저켠부터 허 대감네 사랑방 구석에서 김첨지가 앓아 누웠다. 천길이의 지성스러운 간호를 받으며 밤새도록 끙끙 소리를 내며 앓다가 새벽녘에야 그만 죽고 말았다, 지금까지의 긴장이 한꺼번에 풀어지니깐-

태엽 풀린 시계처럼 하염없이 죽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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