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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단편소설2

111. 사공과 뱀

by 자한형 2022. 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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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공 과 뱀

-홍성원

 

차가 산굽이를 홰 돌더니 밤나무가 길게 늘어선 제방 위로 올라선다. 바다다. 매미 울음소리가 귀청이 따갑도록 요란하다.

작은 포구(浦口) - 상앗대가 가로놓인 전마선 네 척이 입 구()자의 잔잔한 포구에 그림처럼 묶여 있다. 차안에서 바다 쪽을 바라보는 사람은 나와 그이 두람뿐이다. 이곳 주민들이 대부분인 승객들은 바다에서는 아무런 감동도 받지 않는다. 그들은 이곳이 삶의 터전이고 우리는 이곳에 휴가차 찾아 온 피서객인 탓이다.

포구 바깥에는 돛배 두 척이 팽팽하게 바람을 받고 어딘가로 한가로이 흘러가고 있다. 버스가 계속 제방 위로 달리고 있어서 배들은 전혀 움직이는 것 같지 않다. 그 너머로는 곶인지 섬인지, 남빛 바다 위로 많은 육지들이 듬성듬성 떠 있다. 마침 물이 나간 때여서 섬들은 수면 밖으로 오랜 세월 동안 해수(海水)에 침식된 시커먼 바위들을 번쩍이며 드러내고 있다. 검은 바위벽에 부딪치는 파도들이 쨍쨍한 햇볕 속으로 횐 포말들을 끊임없이 뿜어 올린다. 차의 엔진과 매미 울음소리로, 철썩이는 파도소리는 전혀 귀에 들리지 않는다. 돛배는 이미 시야에서 사라지고, 차창으로 바닷바람만이 싱그럽게 살갗을 간질인다.

버스가 멎었다. 마을은 전면으로 바다를 두고, 기다란 제방을 따라 얕은 산비탈에 오밀조밀 자리잡고 있다. 눈대중으로 어림잡아보니 불과 사십여 호의 자그마한 어촌이다. 초가지붕에는 거센 해풍에 날리지 않도록 사람 머리만한 크기의 돌들이 새끼줄에 묶여 주렁주렁 달려 있다. 제방이 끝나는 저쪽 갈밭으로는 거대한 철선(鐵船) 한 척이 뱃바닥을 하늘로 향한 채 큰 갑충(甲蟲)처럼 엎어져 있다. 선체가 온통 시뻘겋게 녹이 난 채 그 위로는 흰 페인트로 -반공방첩-이 쓰여 있다. 승객들이 어느 틈에 버스를 다 내리고 차안에는 나와 그이만이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버스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이가 불쑥 차장에게 말을 건넨다.

얼마나 남았나. 앞으로?

다 와갑니더.

다 와가는 줄은 알고 있어. 앞으루 몇 분이나 더 가야 되는지를 묻는 거야.

대답이 없다. 라이반을 쓴 그이의 얼굴에 다시 언짢은 기색이 떠오른다. 차장이란 한국에서는 어디를 가도 똑같은 모양이다. 무뚝뚝하고 말씨가 거칠고 때로는 승객들과 서슴없이 싸움도 한다. 그러나 그이가 언짢아하는 것은 비단 버스 차장의 불친절만은 아닌 것 같다, 그이는 이틀째로 접어든 이번 여행에 벌써 상당한 피로를 느끼고 있다.

손님들 오데서 피서 오십니꺼?

운전사가 룸미러를 통해 불쑥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 러닝셔츠 바람에 라이반을 쓴 그는 차장 못지 않게 무뚝뚝한 사내였다. 귀청이 따갑도록 카 스테레오를 틀어놓아서 우리는 이 사내에게 이미 두 차례나 그것을 꺼줄 것을 요구했었다. 그러나 그는 들은 척도 않고 아직도 귀청이 따갑게 -울산 아가씨-를 틀고 있다.

서울서 왔어요.

서울서예?

.

서울서 우지 이런 데로 오셨습니꺼? 여게는 시설도 나쁘고 해수욕장이 생긴지 얼마 안 됩니더.

시설이 안 좋다는 건 우리두 미리 알구 왔어요. 우린 조용한 장소를 찾아서 일부러 이리루 온 거예요.

, 조용하긴 조용합니더. 보이소, 저기가 바로 해수욕장입니더.

나는 고개를 돌려 운전사가 가리키는 바다 저쪽을 바라본다. 섬 같았다. 송림이 짙푸른 이쪽 머리에 방갈로 비슷한 건물 두 채가 서 있었고, 그 위쪽으로는 눈부신 백사장에 텐트 서너 개가 드문드문 흩어져 있다. 오후 세시의 한낮인데도 해변에는 욕객이 불과 칠팔 명이 있을 뿐이다. 이쪽과 저쪽으로 나룻배가 왕래하는지, 배 한 척이 바야흐로 저쪽 해안에서 떠나려 하고 있다. 배에는 사람들이 십여 명쯤 타고 있었고, 그 중에도 파라솔 네댓 개가 울긋불긋하게 유난스레 돋보인다. 버스는 곧 도선장으로 짐작되는 어느 허름한 주막 앞의 넓은 공지에 서서히 멈춰 선다.

다 왔입니더. 내리시이소.

짐들을 들고 버스에서 내리니 나룻배는 그제야 저쪽 해안에서 이쪽으로 오고 있다. 마침 가까이에 수박과 참외를 늘어놓은, 원두막 같은 것이 제방 끝에 서 있다. 이쪽은 석축(石築) 위로 고여놓았고 저쪽은 기둥 두개가 바다까지 길게 교각처럼 내려 뻗었다. 높이가 약 오륙 미터쯤 되는 기둥은 푸는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흰 물거품을 철썩철썩 뿜어 올린다.

버스에서 불과 십여 미터도 안 되는데, 그이는 원두막에 이르자 땀이 이미 겉옷에까지 흥건하게 내배었다. 서울에서는 전혀 피로를 모르던 그이였는데 웬일인지 이번 여행에는 유난스레 피로와 곤욕을 느끼는 듯하다. 그러나 원두막 그늘 속으로 들어가니 땀은 해풍에 날려 삽시간에 피부에서 잦아든다. 나는 그이에게 수건을 건네주며 난간에 두 손을 짚고 그이를 유쾌하게 돌아본다.

어때요, 시원하죠 ? 이 바람은 멀리 태평양을 건너온 바람이에요.

여보. 조심해. 그렇게 엎드려 있다가 난간이 부러지면 큰일나요.

나는 난간에서 몸을 일으키며 주먹으로 난간 각목을 탁탁 장난 삼아 두드려 보인다.

끄떡없어요. 헌데 웬일이죠? 피로가 아직두 덜 풀리셨어요-

아냐, 다 풀렸어. 바다를 보니까 모든 피로가 다 풀리는군.

거짓말이다. 나는 그이의 얼굴 표정 하나로도 현재 기분이 어떻다는 것을 훤하게 알 수 있다. 이상하다. 여행 후 나는 그이의 얼굴에서 전에는 결코 본 일이 없는 이상한 변화들을 문득문득 발견했다. 나는 그이의 이런 편화들을 처음에는 단순히 여행에서 오는 피로감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조심스레 그이의 행동을 살펴보면 그것은 단순한 육체적인 피로감만은 아니었다. 나는 그이가 서울에서는 상당히 정열적으로 늠름했던 기억들을 가지고 있다. 그이가 교편을 잡고 있는 학교 강단에서는 물론이고 강연회 , 발표회 , 세미나 따위에서 그이는 언제나 자기의 논리에 박력이 있고 정열적이었다. 그러나 이런 그이의 박력이 이번 여행을 시작한 이후로는 전혀 그이에게서 느껴지지 않고 있다. 물론 나는 그이의 박력을 그이가 종사하고 있는 학회(學會) 밖에서까지는 기대하지 않고 있다. 그이가 학자의 길을 택한 이상. 그이로서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허지만 아무리 그렇다고는 해도 나로서는 그이의 무기력에 적지 않은 신경이 쓰여진다. 그것은 이번 여행을 내가 주장하여 출발했다는 이유도 있으나 그이의 전부를 사랑하는 나는 그이가 서울 밖에서도 강연회 못지 않게 정열적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사실 그이는 시골의 들길이나 장터에서 바라보면 이상할 정도로 내 눈에 낯설어 보인다. 피부가 회고 약간 살이 오른 그이의 모습은, 시골의 강한 햇볕 속에서는 무언가 쩔쩔매는 듯한 극히 부조화한 인물로 보이는 것이다. 그것은 도시 인텔리의 창백한 무기력과는 약간 다르다. 농촌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그이는 농촌과는 능히 친숙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이는 도회생활에 권태를 느끼고 거의 입버릇처럼 농장경영을 말해온 터다. 도회지에서만 줄곧 성장해온 나로서는 그이의 이런 희망이 때로는 무척 부담스럽게 느껴진 때도 적지 않다. 헌데 농촌에 대해 이렇게 강한 노스탤지어를 품어온 그이가 막상 쨍쨍한 시골의 들길로 내려와서는 이상할 정도로 매사에 권태와 퍼로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서울 근교의 등산이나 하이킹에서는 그이는 한번도 이런 권태를 드러낸 일이 없다. 언제나 밝고 명랑한 표정으로 많은 동료 하이커들 중에서 그이는 단연 원기왕성한 리더가 되었던 것이다.

나룻배가 어느 틈에 바다를 건너 이쪽 도선장에 사람들을 부려놓는다. 십여 명에 달하는 많은 남녀들은 모두가 함께 놀러온 일행들인 모양이다. 짐꾼 두 명이 솥단지와 화덕을 지게에 진 것으로 보아 아마 그들은 밥까지 해먹으며 이삼일 해수욕장에 머물렀던 모양이다. 파라솔을 든 세명의 여인들은 첫눈에 보아서도 술집 작부들이 분명하다. 화장한 얼굴에 땀들이 내배어서 그녀들은 하나같이 분을 뒤집어쓴 도깨비 같은 얼굴들이다. 배를 내리며 남자들이 집적이자 그녀들은 째지는 듯이 비명을 내지르며 난잡스레 웃고 있다. 잠시 후 그들은 배에서 내려 석축 사이의 돌층계를 올라와 버스가 멎어 있는 넓은 공지로 왁자지껄 기어오른다.

워트기 되는기여? 이 버스 곧 떠날랑가?

먼저 올라온 양복장이 네댓 명이, 운전석에서 참외를 씹고 있는 운전사에게 묻고 있다. 전라도와 경상도의 접경 지대인 이곳에는 말씨도 전라도 경상도가 판이하게 서로 다르다. 아마 이들은 이곳에 인접한 전라도 지방에서 온 듯하다, 술들이 벌겋게 오른 그들은 버스에 오르자마자 요란스레 노래를 시작한다.

어얼씨구, 저얼씨구 차차차, 지이화자 조오쿠나 차차차--- 만화바앙창 ---

나는 그이가 짐들을 집어드는 것을 보고 곧 뒤따라 원두막에서 나와 돌층계 쪽으로 다가간다. 층계는 가파르게 밑으로 뻗어 기다란 장방형의 시멘트 제방에 닿아 있다. 제방에 닿은 나룻배에는 사공으로 짐작되는 청년 한 명이 닭고기 비슷한 것을 우적우적 씹고 서 있다. 그는 전신이 청동 빛으로 그을러 있고 몸에는 수영 팬티 한 장과 새까만 라이반을 자랑하듯이 산고 있다. 그이가 곧 제방 위에서 사공을 향해 입을 연다.

우릴 좀 건네주시겠소?

예 타이소.

, 짐 좀 받아주시오.

청년은 닭뼈다귀를 바닷속으로 꿱 던지고는 두 손을 썩썩 팬티에 문지르며 그이의 손에서 백 두개를 받아들었다. 땀에 번쩍이는 사공의 근육이 내 눈엔 무척 아름다와 보인다. 나는 아직 영화나 사진 외에서는 이렇게 육중하고 아름다운 사나이의 근육을 본 밀이 없다. 그는 마치 대좌 위에 섰던 동상이 갑자기 피가 통해서 껑충 지상 위로 내려온 듯한 착각마저 일으킨다.

배가 움직인다. 바다가 아직 얕은 탓인지 사공은 노 대신에 상앗대로 갯바닥을 밀고 있다. 상앗대를 미는 사공의 전신으로 다시 눈부신 힘살들이 솟아오른다. 그이가 사공에게 무어라고 말을 건다. 그러나 나는 어쩐 셈인지 그이의 말을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다. 배는 이미 제방을 떠나 선수를 곧장 맞은편 해안으로 향하고 있다. 볕이 따갑다. 마치 지글지글 끓는 기름이 살갗에 와 짝 끼얹어지는 느낌이다. 귀가 멍하고 소름이 돋아서 나는 잠시 넋 나간 듯이 앉아 있다. 이상하다, 그이의 희멀건 목덜미를 바라보며 나는 갑자기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다. 파리 한 마리가 잽싸게 날아와 땀으로 번쩍이는 사공의 어깨에 내려앉는다. 나는 다시 시선을 돌려 그이의 두 겹으로 겹쳐진 횐 목덜미를 바라본다. 추하다. 왈칵 구토증이 치받쳐서 나는 재빨리 침을 한 모금 삼켜본다. 소용없다. 구토증은 어느 틈에 빈혈증으로 변해, 나는 도망치듯이 또 한번 사공의 몸을 바라본다. 해방이다. 구토증은 씻은 듯이 사라지고 나는 쩌릿쩌릿하게 이상한 희열이 솟는 것을 의식한다.

그이와 사공은 아직도 이야기를 계속중이다. 무슨 이야길까? 내게는 이제 노를 젓고 있는 사공의 몸밖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구토증을 피하기 위해 사공을 보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타이르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거짓이다. 나는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무엇을 알고 있는가? 나는 그이를 배반했다. 이것은 순간적으로 나를 압도한 배반으로서 화농된 상처에 바늘 끝이 와 닿는 듯한 지극히 통렬하고 상쾌한 상처다. 그러나 또 하나의 확인된 상쾌감은 이 상처가 조만간에는 치유도 회복도 불가능하다는 확인이다. 내게는 지금 사공과 햇볕이 함께 내리치는, 통렬하기 그지없는 매저키즘만이 생생하게 감촉될 뿐이다. 아아, 얼마나 협소하게 갇혀만 지낸 나의 의식인가 ? 왜 나는 이런 통렬함을 두터운 일상의 껍질 속에서 움츠리고 피해만 왔었던가? 그러나 이제는 해방이다. 그이는 이미 나의 의식에서는 종이 한 장의 무게조차도 지니지 않고 있다. 나는 그이를 배반한 것이 아니고, 고이와 따를 분리시켜 생각할 수 있게 해방되었을 따름인 것이다!

현기증이 씻은 듯이 가신 나는 어느 틈에 카메라를 들어 사공의 전신을 조준하기 시작한다. 협소한 렌즈 속에 갇힌 사공은 나를 다시 한번 황홀하게 만들었다. 그는 이제 렌즈 속의 밀실에서 은밀하게 나와 밀회를 하고 있다. 완두콩 크기의 사공의 몸에는 여전히 눈부시게 아름다운 근육들이 움직이고 있다. 나는 사공을 가까운 거리에서 잡기 위해 렌즈를 좀더 가까이 사공 쪽으로 이동시킨다. 렌즈 속의 사공의 몸이 기우뚱하고 한쪽으로 기운다. 그러나 평형을 유지하려던 나는 렌즈 속에서 갑자기 사공을 잃어버렸다. 나는 내 몸 전부가 어딘가로 가볍게 날려가는 듯한 상쾌감을 느꼈다. 누군가가 고함을 친다. 주위가 갑자기 캄캄해져

서 나는 부지중에 카메라를 놓쳐버렸다.

물 속이었다. 배의 한쪽 끝이 부옇게 눈앞을 막았고. 그 사이로 검은 물체가 힘차게 나를 향해 물장구를 치고 있다. 나는 그것이 사공임을 알았고, 사공임을 알게 되자 나는 또 한번 해방된 자신을 발견했다. 나는 일부러 물에 빠진 것이다. 렌즈 속의 사공만으로는 나는 만족할 수가 없었던 때문이다.

힘찬 팔이 내 몸에 감기더니, 나는 돌연 눈부신 수면 위로 솟아올랐다.

괜찮십니꺼?

.

사진기는 우쨌입니꺼?

물 속에서 놓쳐버렸어요.

. 내 어깨를 두 손으로 잡으이소. 내가 헤엄을 칠끼니까 부인은 나만 잡구 있어야 됩니더.

배와 나와의 거리는 약 오륙 미터쯤 벌어져 있었다. 아마 사공이 물 속으로 뛰어들자 배가 저절로 해류를 따라 떠내려간 모양이다. 사공의 어깨를 두 손으로 잡은 나는, 사공에게 완전히 업힌 듯한 자세가 되었다. 물살을 차는 사공의 발이 나의 배 밑에서 격렬하게 움직이고 나는 그의 육중한 어깨에서 힘찬 힘살의 재빠른 움직임을 느낄 수 있다,

사공이 이윽고 뱃전에 다다라. 나의 허리를 두 손으로 밀어 올린다. 그것은 순간적인 동작에 불과했지만, 내게는 전율이 흐를 만큼 잊을 수 없는 감미로운 접촉이다.

조심해야지, 어떻소 여보? , 어서 이리루 올라와요.

나는 그이의 손을 잡고 가볍게 배 위로 기어올랐다. 그이가 내게 타월을 건네주어 나는 기침을 하며 얼굴에서 물기를 닦았다. 그러나 나는 그이보다는 물 속으로 되돌아간 사공 쪽이 더욱 궁금하다. 그는 나를 배 위로 올리고는 카메라를 찾기 위해 물 속으로 깊이 자맥질을 하고 있다.

어쩌다 발을 헛디뎠소? 맥주병처럼 꼿꼿하게 가라앉더군?

그이는 웃으면서 타월을 빼앗아 내 머리에서 물기를 닦아준다. 그러나 나는 이 순간에는 이미 그이의 말에는 아무 주의도 기울이지 않았다. 그이는 어느 틈엔지는 알 수 없지만 내게는 벌써 전혀 무관한 타인이 되어 있었다.

 

우리가 숙소를 정한 것은 그로부터 약 삼십 분 후다. 숙소는 뒤쪽으로 울창한 잡목 숲을 거느리고 섬에서는 약간 높은 위치에서 백사장을 훤하게 바른쪽으로 굽어보고 있다. 방 두개에 욕탕까지 구비한 방갈로는 우리에게는 기대 이상으로 조용하고 아늑하다.

짐을 풀고 마른 옷으로 갈아입은 나는 그이를 혼자 방갈로에 남겨둔 채 숙소를 떠나 길 쪽으로 내려왔다.

이상한 해수욕장이다. 공동 탈의장과 음식점 따위들은 모두 이쪽의 축대 위에 자리잡고 있고 정작 욕장인 백사장은 이곳에서 무려 이백 미터나 떨어져 있다. 시설이 빈약한 것은 이미 알고 찾아온 나지만, 막상 초라한 음식점과 잡상들을 둘러보니 새삼스레 내 주위가 허전한 듯이 느껴진다. 탈의장 옆의 엉성한 기와집 한 채가 바로 이 해수욕장의 유일한 숙박업소이자 음식점으로 되어 있다, 잡상들은 대부분이 리어카 위에 횐 광목으로 차일을 둘러치고 그 차일 밑의 초라한 목판 위에 소주와 과자 따위의 값싼 상품들을 한산하게 늘어놓고 있다. 그러나 이 잡상들 역시 모두 합쳐서 다섯 개가 고작이다. 수박이나 풋사과를 늘어놓은 광주리 행상까지 모두 합친다 하더라도 이 욕장의 장사꾼은 불과 열 손가락에도 못 미칠 정도인 것이다

탈의장 앞을 지나 행상들이 늘어선 그늘로 들어서니 느닷없이 등뒤에서 이상한 음향이 날카롭게 귀청을 때린다. 흔히 스피커를 처음 작동할 때 볼륨을 잘못 틀어서 생철을 긁듯이 날카롭게 울리는 음향이다. 음향은 세 개의 고만고만한 텐트 중에서 횐 페인트로 O()라고 쓴 바른쪽 텐트에서 울린 것이다. 이곳에도 역시 유흥장소에서의 불상사를 막기 위해 경찰관이 배치된 모양이다. 스피커는 곧 경상도 억 양으로 고성 방가를 삼가달라는 따위의 해수욕객 준수 사항들을 지루하게 늘어놓고 있다.

나는 이 스피커가 나를 위해 울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내가 그렇다고 생각한 것은 스피커의 쟁쟁한 음향이 줄곧 내 뒤를 쫓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피커는 포타블로서 서울에서는 흔히 역전에서 행상 따위들이 손으로 들고 외치는 소형이다. 스피커를 입에 댄 사나이는, 아래는 수영 팬티에 위에는 얼룽얼룽한 알로하 셔츠를 입고 있다.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좀더 억양을 높여 보란 듯이 외쳐댄다, 그러나 자세히 귀를 기울이니 내용은 어느 틈에 해상으로 침투하는 간첩에 대한 경계요령을 떠들고 있다. 간첩은 휴전선으로만 넘어오는 것으로 알았는데 태평양을 눈앞에 둔 이 나라의 남쪽 끝에서도 올라오는 모양이다.

스피커에 쫓겨 행상들 사이를 벗어난 나는 시원한 해풍을 마주 받으며 석축 끝에 서서 백사장 쪽을 바라보았다. 상당히 넓다. 물이 들었을 때는 어떨는지 모르지만 지금으로서는 백사장의 길이가 무려 삼 킬로는 됨직하다. 바다는 질펀하게 청색으로 뻗은 위에 간간이 구름 그림자가 드리워져 담청색으로 진하게 얼룩이 져 있다. 백사장 중간에는 칠팔 명의 욕객들이 세 개의 텐트 사이를 할 일없이 어정대고 있다. 텐트의 하나는 눈부신 오렌지색이고 둘은 부드러운 초록색이다.

나오셨습니꺼.

나는 몸을 돌려 축대 밑에 선 사나이를 내려다보았다. 사공이다. 여전히 알몸에 라이반을 쓰고 그는 무언가를 꾸적꾸적 씹고 있다.

, 잠깐 바람 좀 쐬이러 내려왔어요.

어떻십니꺼, 방가로는?

썩 좋아요, 아깐 참 감사했어요.

그는 두어 발짝 서 있던 곳에서 물러서더니 훌쩍 몸을 솟구쳐 내가 서 있는 축대 위로 떠올랐다. 동작이 어찌나 민첩하고 가벼운지, 흡사 먹이를 덮치는 표범처럼 날렵하다.

몬찾았입니더.

?

사진기 말입니더.

, -

선생님은 같이 안 내려오셨입니꺼?

, 몸이 피곤하시다구 그인 지금 잠을 자구 있어요.

사공은 가지런히 이틀을 드러내고 소리 없이 씩 웃는다. 역시 아름답다. 나는 갑자기 고동이 뛰고 얼굴이 왈칵 붉어졌다. 그는 알 턱이 만무하지만 나는 별안간 사공의 시선이 두렵게 느껴진다. 어쩌면 그도 내 허리를 밀어 올릴 때, 내게서 무언가를 감촉했는지 알 수 없다. 잘룩한 그의 허리의 근육이 숨을 쉴 때마다 소리 없이 오르내린다.

사진기는 나중에라도 제가 꼭 찾아드리겠입니더.

어떻게 찾는다는 거예요?

이 근방 물 속은 제가 훤하게 알고 있입니더. 오늘 밤중에 큰물이 빠지마 제가 꼭 건져낼깁니더.

밤에 다시 물이 빠지나요?J

, 새벽 두 시쯤에 다시 물이 빠질깁니더.

나는 햇볕을 피해 해송이 늘어선 그늘로 옮겨 섰다. 바닥에 패각이 가득이 깔려 있어서 발짝을 옮길 때마다 아삭아삭 패각들이 부서진다.

지금은 손님들이 없는 모양이죠?

, 아직 해가 있지 않십니꺼.

이 섬, 대체 크기가 얼마나 되요?

rll.는 아무도 모릅니더. 생각해 보이소. 물이 끊임없이 들고 나는데 그걸 우찌 알깁니꺼.

물이 들 때는 작아지구 물이 빠질 땐 넓어진단 말이죠?

맞십니더.

길이 어느 틈에 두 갈래로 나뉘어 하나는 도선장으로, 하나는 비스듬히 방갈로 위쪽의 산으로 뻗어 있다.

이리루 가면 어디루 가죠?

등대터루 가는 길입니더.

등대두 있나요. 이 섬에?

전에 무인 등대가 하나 있었는데 지금은 고마 없앴입니더.

바쁘시지 않음 절 좀 그리루 안내해주시겠어요?

그랍시더.

칡덩굴이 길에까지 내려 뻗은 것으로 보아, 이 길은 오래 전에 인적이 끊긴 모양이다, 길바닥에는 푸석한 부식토가 깔려 있고, 그 위로는 인근에서 떨어진 아카시아 가시가 질펀하게 널려 있다.

까시가 많은데 맨발루 걸으셔두 괜찮겠어요?

괘안십니더, 군살이 붙어서,,,,,,

길은 한동안 아카시아 숲으로 뻗어 올라가더니 바위투성이의 소로를 지나치자 다시 빽빽한 솔숲으로 연결되었다. 상당히 가파르다. 길 왼쪽으로는 소나무 사이로 시퍼런 바다가 번쩍번쩍 햇빛에 이랑을 반사한다. 해벽에 부딪는 파도소리가 철썩철썩 아득하게 들려왔으나 벼랑 턱에 가리운 탓으로 솟구치는 물기둥은 볼 수가 없다.

등대가 보이기 시작했다. 길이 가파라서 숨이 턱에 닿았으나 해풍 탓인지 몸에 땀은 나지 않는다. 등대는 과연 오래 천에 폐기된 듯 횐 회칠이 벗겨진 채 공장 굴뚝처럼 멋없이 우뚝 서 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등대 하단부에 사람 하나가 겨우 들어갈 만한 작은 구멍이 뚫려 있다. 사공이 구멍 앞에 쭈그리고 앉으며 나를 힐끗 올려다본다.

여게 등대 꼭대기까지 돌층계가 있입니더. 한번 올라가 보실랍니꺼?

나는 사공과 나란히 구멍 속을 들여다본다. 어둡다. 뭉클한 습기가 얼굴에 끼치고 속에서는 끊임없이 우룽우룽 하는 둔중한 음향이 들려온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사공은 다시 구멍 앞에서 물러선다.

이쪽으로 와 보이소. 여기가 전망이 제일 좋십니더.

등대에서 우측으로 십 미터쯤 내려가니 눈앞으로 솔숲이 빽빽이 우거진 두어 간 넓이의 공지가 나타난다. 공지 끝은 벼랑으로서 높이가 약 삼사미터쯤 됨직하다. 석양을 등으로 받고 있어서 벼랑 밑은 온통 컴컴하게 그늘이 져 있다. 내가 무심코 벼랑 끝으로 다가가자 사공이 갑자기 내 팔을 확 잡는다.

잠깐! 저걸 보이소,,,,,,

나는 후딱 발을 세운 채 사공이 가리키는 삼 미터 전방을 바라보았다. 뱀이다. 입에 두툼한 걸레 같은 것을 물고 있는 뱀은 우리가 발을 멈춰 세우자 고개를 꼿꼿이 우리 쪽으로 향해 쳐든다.

두꺼비를 잡아묵고 있입니더. 입을 보이소. 두꺼비 발이 나와 있지 않십니꺼.

나는 숨이 막혔다. 무서워서가 아니다. 뱀은 과연 두꺼비를 다 삼킨 채 목을 탱탱히 팽창시키고 발끝만 약간 입 밖으로 베어 물고 있다. 처절하도록 아름답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뱀이 두꺼비를 잡아먹는 것도 처음이거니와, 뱀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낀 것도 내겐 이것이 처음이다. 어깨서 뱀이 아름답게 보였는지는 나도 모른다, 내겐 다만 눈부신 햇볕 속에 비늘을 번뜩이며 두꺼비를 물고 있는 뱀이 귀청이 멍할 정도로 숨막히게 아름답고 처절할 뿐이다.

사공이 문득 내 곁을 떠나 가까운 곳에서 나뭇가지 하나를 꺽어 들고 돌아온다. 그는 잠시 내 곁에 서 있더니 뱀을 원점으로 하여 빙글빙글 맴을 돌기 시작한다.

뭘 할려구 그러세요?

잡아야 안되겠습니꺼?

우리가 피하면 될 텐데 왜 굳이 잡을려구 하세요?

아직 모르시는 모양이구마요. 두꺼비를 잡아 묵은 뱀은 약이 기맥히기 좋십니더.

약이 돼요?

.

나는 까닭은 알 수 없었지만 사공을 갑자기 말려야 한가고 생각했다. 그는 지금 뱀과 자신이 한 몸인 것을 모르고 있다. 나는 뱀을 처음 본 순간, 내 몸이 무언가에 삼켜지는 듯한 통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말하자면 나는 두꺼비가 된 채 등대의 컴컴한 동굴 속으로 한없이 한없이 삼켜지고 있었던 것이다.

뱀을 그냥 놔두세요 ! 돈이 필요하시다면 저 뱀을 내가 사겠어요.

내 음성이 컸던 탓인지 사공은 잠시 멈칫하며 발을 세운다. 나는 문득 사공을 향해 바른쪽 손을 조용히 내밀었다.

이리 줘요, 그 회초리.

와 그라십니꺼?

저 뱀을 내가 살 테니까 잡지 말라는 이야기예요.

와 몬잡게 하십니꺼? 돈 주고 사신다카이 우신 잡아야 안되겠입니꺼?

아니에요. 내가 산다는 것은 저 뱀을 그냥 놔주라는 뜻이에요.

놔주라꼬예?

.

사공은 나를 향해 빙긋 웃더니, 다시 슬몃슬몃 뱀의 주위를 돌기 시작한다. 어쩔 수가 없다. 그는 나나 다른 세계에 머물러 있고, 나와는 전혀 무관한 튼튼한 울 속에 갇혀 있다. 나는 그와 나와의 벽이 어떠한 것으로도 무너질 수 없는 것임을 깨달았다.

사공이 이윽고 뱀에게 다가가 어느 틈에 뱀을 후려치고, 뱀의 목 부분을 두 손가락으로 잽싸게 잡아 올린다. 뱀은 사공에게 목을 잡힌 채 하얀 혓바닥을 뒤집으며 꾸물꾸물 수직으로 묘한 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것 역시 나의 눈에는 뜻밖으로 아름답다. 뱀의 힘살과 사공의 힘살이 서로 다투듯이 격찬 대결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죽이진 마세요.

죽이다이요.

어떻게 하실 거예요, 이젠?

산 채로 항아리에 담아 술을 부어놓을낍띠더.

그렇게 해놓으면 약이 되나요?

. 뱀이 폭 삭으마 약이 아주 기막히게 좋십니더.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사공과 뱀을 번갈아 바라본다. 오버랩이 시작된다. 불과 한시간 전에 사공을 처음 본 순간부터 시작된 의식의 변화다. 그것은 햇볕이 쨍쨍한, 기다란 시간의 한 토막에서 불현듯이 시작되었다. 너무나 빠른 해방감의 확산에 라는 지금 현기증을 느낄 정도다. 햇볕, 바람, 귀가 멍한 정적과. 그 안에서 힘차게 움직이던 사공의 구리 빛 근육들만이 살아 있다. 확실한 것은 고것의 시작뿐 나는 그것의 동인(動因)을 알 수가 없다. 아마 나는 앞으로는 어떠한 평온도 누릴 수가 없을 것이다. 나는 모든 과거를 한꺼번에 잃은 대신, 그것의 보상으로는 방활과 번뇌와 지족한 외로움을 얻었을 분이다. 서울은 이미 헐거운 껍데기에 불과하다. 그곳에서 쌓았던 모든 재산들, 살찐 피부, 폭신한 안락의자, 골든 아워의 텔레비전 프로, 전기세 고지서, 뻐꾹 시계, 커피맛, 그이의 논문이 실린 장중한 장정의 논문집, 온실, 친구의 초대, 그이의 생일. 결혼 기념 일. 이런 것들은 이제 나를 묶는 단단한 족쇄에 불과하다. 어째서 나는 이렇게 되었을까? 아니 그것은 지금까지는 의식의 어느 모서리에 끼여 있다가 이제야 튀어나왔는가 ? 분출된 의식들은 걷잡을 수가 없다. 나는 한시간 사이에 그이를 사랑하는 남편으로부터, 한사람의 살진 타인으로 전락시켰다. 그러나 그이 가 차지했던 자리에 대신 메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나는 이 공허한 빈자리를 어떠한 것으로도 메꿀 수가 없는 것이다.

 

모기장 저쪽으로 그이의 횐 상체가 희미한 달빛을 받아 우유 빛으로 부옇게 돋보인다. 숙취다. 좀체 코를 골지 않던 그이였지만 오늘은 피로 탓인질 입술까지 요란하게 불고 있다. 몇 시나 됐었을까? 달이 중천에 떠 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이미 자정이 훨씬 지난 모양이다. 약을 네 알이나 삼켜보았으나 의식은 바늘에라도 찔리운 듯 파들파들 경련을 하고 있다.

너무 적막하다. 땅을 흔드는 파도소리를 나는 전신으로 접맥하듯이 듣고 있다. 아마 밖은 질펀한 백사장 위로 횐 파도와 달빛만이 제멋대로 뒤채이고 있을 것이다. 갑자기 무섭다. 퍼부가 탱탱히 팽창되어 당장 터질 듯이 무언가를 갈구하고 있다. 모든 기관은 활짝 열린 채. 다가오는 칼끝을 향해 절망적으로 몸부림을 치는 것 같다. 몸을 세워본다. 사방으로 늘어진 모기장이 당장 전신으로 투망처럼 조여온다. 모기장을 벗어나 슬리퍼를 끼어 신고, 잠시 방 복판에 선 채 그이의 콧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건강한 잠이다, 나는 그이의 건강상태를 이상

하게도 소리로 감지한다. 목소리, 발자국소리, 숨소리. 소변보는 소리....., 그러나 이런 것들도 나와는 이제 무관하다. 그는 변하지 않은 옛날의 그로 남아 있다. 나는 그의 의연한 성 속에 볼모로 잡혀온 당황무계한 포로인 것이다.

잠옷의 벨트를 매고 나는 방갈로 계단을 내려온다. 계단 양쪽의 양치류 - 숲속에서 풀벌레소리가 한층 주위를 적막하게 만든다. 달빛은, 어슴푸레 달무리가 진 탓으로 생각보다는 화사하게 밝지가 않다, 나는 마치 밀회라도 하듯 황급히 계단을 내려와 얼롱얼롱한 나무그늘 속으로 몸을 숨긴다. 그렇다, 나는 숨었다. 무엇이 나를 숨게 했는지 그것을 나는 알 수가 없다. 부끄러움은 아니다. 두려움도 아니다. 나는 무엇인가를 맞으러 가고 있었고. 그것을 맞이함으로써 좀더 크게 해방되고 싶을 뿐이다.

텐트와 행상들이 아무 곳에도 보이지 않는다. 음식을 팔던 기와집 대청에는 벌레들을 꼬이기 위한 남포등 한 개가 부옇게 매달려 있다. 해풍이 우수수 나뭇잎을 흔들고 지나가자. 나는 갑자기 삶의 충일감에 사로잡힌다. 살아 있는 것은 자연과 나뿐이다. 이런 힘차고 아름다운 시간에 잠을 자야 한다는 것은 엄청난 낭비에 속한다. 나는 가끔 그이의 건강한 잠 옆에서 오소리나 올빼미 같은 야행성 동물이 되고 싶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그이는 날카로운 지성에도 불구하고 이런 때는 속악하고 미련한 한 마리의 유인원의 꼴을 하고 있다. 강단에서 명쾌하고 박력 있게 자기의 논지를 펴나가는 그이는, 눈빛이 유난히 반짝이는 아주 영리한 침팬지나 오랑우탄이다.' 그이는 다만 몸에 털이 없을 뿐. 정신없이 잠을 잘 때는 지극히 태평무사한 오랑우탄이 되는 것이다.

백사장은, 물이 멀리 빠져서 도선장이라고 믿어지는 곳도 분간할 수가 없을 정도다, 슬리퍼를 끼고 나온 나의 발등에 해송(海松)의 바늘 같은 낙엽 이 따끔따끔 침을 놓는다. 가끔 해풍이 잠옷의 앞자락을 헤치고 하체로부터 가슴까지 섬찍한 냉기를 전해준다. 이것은 이질감이 아니고 폭 넓고 부드러운 자연의 어루만짐이다. 나는 자연을 손을 뻗어 찾는 대신 자연과 어느 틈에 은밀한 교섭을 하고 있다.

등대가 서 있는 벼랑 아래쪽에 문득 어슴푸레한 등불 하나가 떠 있는 것이 보인다. 등불은 배 복판의 작대기 괄에 달려 있고, 밴 안에는 노와 돗대뿐 정작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이 나타났다. 사공이었다. 자맥질을 방금 끝낸 그는, 한 손으로 뱃전을 잡고, 한 손으로 갈구리 같은 것을 배 위로 던져 넣는다. 얼굴 전면에 번쩍이는 것은 잠수부들이 사용하는 수경(水鏡)인 모양이다. 사공은 수경을 머 리 위로 밀어 올린 채 잠시 뱃전에 매달려 숨을 크게 몰아쉬고 있다. 가슴이 뛴다. 나는 무의식을 가장했지만. 실은 사공을 찾아 이곳에까지 나온 것이다. 변이는 이미 오래 전에 시작되었으나 내게는 아직도 완강한 습관의 벽이 남아 있다. 잠옷의 벨트를 풀기까지 약 이삼 분의 시간을 허비했다. 물은 허리까지 잠겼을 때는 차다고 느꼈으나 일단 수영을 시작하자 오히려 부드러운 온기를 전해준다. 목측(目測)으로 약 이십 미터라고 생각했던 배는, 그보다는 거의 두 배 가까운 거리에 떠 있다. 사공은 내가 배 쪽으로 접근하는데도, 내 쪽으로 등을 돌린 채 다시 잠수할 태세로 수경을 눈 위로 잡아 내린다. 나는 소리를 치고 싶었지만 숨이 차서 잠자코 수영을 계속했다. 내가 뱃전에 손을 댄 순간과, 사공이 다시 떠오른 순간과는 거의 동시다. 사공은 나를 발견하자 대뜸 뱃전에서 일 미터쯤 물을 차고 물러섰다.

, 누구요, 당신?

-.

저가 누군기요?

카메라 주인이에요.

아이, 이거 사모님 아닌기요?

나는 대답 대신 한 손으로 조용히 머리를 쓸어 넘겼다.

아이, 이거 우짠 일입니꺼 ? 사모님이 여게는 우짤라고 나오신십니꺼?

불빛이 보이길래 그냥 여기까지 와본 거예요.

사공은 잠시 어이없는 표정이더니 곧 내게로 다가와 나와 나란히 뱃전을 잡고 물위에 뜬다.

카메라 찾으셨어요?

아직 몬 찾았입니더.

한낮에두 찾기가 힘들 텐데 이런 밤중에 보이겠어요?

물 나가는 시간이 지금뿐입니더. 내일 나직에 찾을까 했입니더만 그때는 물에 밀리어서 사진기가 멀리 떠내리갈 1L로 생각했입니더.

공허한 대화다. 나즌 이 공허한 대화를 어떻게 끝낼까 머릿속으로 분주하게 궁리해본다. 헛숱고다. 나는 이미 습관을 파괴했지만 이번에는 사공 쪽에 완강한 습관이 남아 있다. 그것은 어쩌면 나의 습관보다 더 질기고 두터울는지 알 수 0-. 사공이 어느틈에 배 위로 을라가 내게 불쑥 한손을 내민다.

자 우신 올라오시이소.

나는 사공의 손을 잡고 가볍게 배 위로 몸을 올렸다. 춥다. 그러나 배 위에 올라온 나는 그제야 내 몸이 알몸인 것을 깨달았다. 사공은 내 몸에 시선이 미치자 또 한번 우두커니 선 채 등신처럼 나를 보고 있다.

나는 곧 웅크리고 앉으며 뱃바닥의 호롱불을 입으로 훅 불어 껐다.

추워요, 뭐 몸을 감쌀 만한 헝겊 같은 것 없으세요?

어둠 속으로 무언가가 내게 훅 날아온다.

그껏뿐입니더.

잠바 비슷한 옷이다. 땀내가 물씬 코를 찔렀으나 나는 그것으로 내 상체를 푹 감쌌다.

침묵이 흐른다. 배는 잔잔한 파도에 떠밀려 어둠 속으로 가볍게 롤링을 하고 있다. 지루한 기다림이다. 나는 사공의 접근을 기다리고 사공은 나의 진의를 헤아리는 중이다.

이윽고 사공의 억센 손길이 내 어깨를 강한 틀처럼 가둬버린다. 나는 숨을 죽인다. 준비는 이미 갖추어져 있으나, 내게는 아직도 습관의 타성이 남아 있다, 몸의 일부가 어느 틈에 사공의 손길에 완전하게 점령당했다. 등이 무언가에 찔리우고 있었으나 나는 이미 자유를 잃고 있다.

사모님, 가만히 계시이소, 움직이마 큰일납니더.

아파요, 등이 ,,,,,,

?

등을 뭔가가 찌르고 있어요.

응답이 없다. 사공은 이미 귀가 먹은 채 내 몸을 성급히 열려고만 허둥댄다, 어쩔 수 없다. 등에 간신히 손을 넣어 나는 통증을 적게 하는 도리밖에 없다.

첫 번째 접촉은 사공의 허둥댐으로 내게는 시종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사공은 이십 분도 채 못되어, 내게 두 번째의 접근을 시도해왔다. 이번에는 첫 번째와는 달리 사공도 퍽 침착했다. 아마 이번은 사공 쪽보다 나의 호흡이 더 격했던 모양이다.

두 번째 접촉을 끝낸 우리는 배를 저어 백사장으로 상륙했다. 물이 빠져서 넓어진 백사장은 해안에서 무려 오십 미터 가까이나 물에 젖어 있다. 시야에는 이제 넓은 모래밭과 무수하게 반짝이는 별밖에 보이지 않는다. 두 번의 접촉으로 몸의 물기를 말린 나는 강한 해풍에도 불구하고 아무 추위도 느끼지 않았다. 사공은 두 번째 접촉을 끝낸 후에도 계속 내게 세 번째를 요구해왔다. 어렴풋이 예측은 했으나 사공의 몸은 구리처럼 강건했다. 나는 심한 피로를 느꼈으나 사공의 요구를 거절할 용기가 없었다.

세 번째의 요구는, 강인한 사공의 건강에도 불구하고 시종 사공 쪽의 악전고투로 일관되었다. 나는 땀으로 모래를 적신 채 행위가 끝난 후에도 하늘을 향해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 피로했다. 하늘에 박힌 무수한 별들이 끊임없이 나를 향해 우박처럼 쏟아져 내렸다. 해안에 부딪는 파도의 울림을 나는 아득한 의식 밖에서 듣는 듯했다. 사공은 세 번째의 행위를 끝내고도, 여전히 미친 듯한 끝없는 식욕을 드러내었다.

그러나 피로가 점차로 풀리자 내게는 뜻밖의 공허감이 찾아왔다. 그것은 급격히 나의 내부로 침입한 후, 압지가 물을 머금듯 점점 크게 확산되었다. 사공은 나를 걸레처럼 피로하게 만들 뿐 나의 거대한 해방감 앞에는 바람에 날려 떨어진 한 장의 가벼운 낙엽 같은 존재였다.

어느 틈엔지는 알 수 없으나 사공도 이미 그이처럼 퇴색해버렸다. 모든 것이 퇴색했다. 과거도 그이도 별과 바다와 해까지도,,,,,나는 결국 모든 것을 다 잃은 채 아무리 채워도 메울 수 없는 거대한 빈 자루와 같은 존재로 되어 있었다. 아마 이 거대한 자루는 한번도 채워지는 일이 없을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 자루를 형벌이라고까지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나는 이 거대한 자루로 하여 두 번 다시 나의 미래를 연극처럼 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드디어 오늘에야 나의 자로써 세상을 재는 진정한 해방감을 내 손으로 잡은 것이다.

 

 

 

 

 

 

 

 

 

 

 

 

 

무언가가 옆구리를 찔러서 소년은 어둠 속에서 눈을 떴다. 소년의 옆구리를 찌른 것은 엄청나게 큰 외국 병정의 군화였다.

일어나 꼬마야. 널 주려구 좋은 담배를 가져왔다.

묘역(墓域)에는 벌써 어둠이 축축하게 깔려 있었다. 장방형 무덤들과 키 작은 유목(幼木))들이 어둠 때문에 아주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소년은 몸을 일으켰다. 부드러운 잿속에서 갈색의 반짝이는 병 하나가 발견되었다. 소년은 그제야 이 묘역에서 아주 오랫동안 술이 취해 잠들었던 것을 깨달았다. 노점상인들에게 쫓겨 이리로 온 후. 그는 한나절 이상을 이 묘에서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가자, 꼬마야. 너를 찾느라구 애먹었어. 이젠 안심이다. 내 말 듣니?

불을 붙여 건네주는 담배를 소년은 맛있게 받아 피웠다. 병정이 준 담배는 짙은 오야씨 냄새를 풍겼다. 소년은 이 병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마을에 큰 전투가 있었을 때 찾아왔고 그후로 죽 저자거리 모퉁이에, 검은 모자 대원들과 약간의 성군과 몇 대의 탱크들과 어울려 살았다. 그는 타다 만 가로수 밑동에 단검을 던져 꽂는 놀이를 좋아했다. 소년이 그 단검을 여섯 번쯤 뽑아주자 그는 소년과 친구가 되었다. 이상할이만큼 소년과 병정은 아주 발리 친구가 되었다

넌 똑똑한 놈이야. 그래 틀림없어, 너만큼 똑똑한 아이는 아마 이 세상에 없을 거야,

소년은 팔꿈치로 병정의 아랫배를 가볍게 찔렀다. 맞는 말이었다. 손버릇이 좋지 않다고 그를 쫓아내는 저자의 상인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성도 사람들은 소년을 아주 똑똑한 놈이라고 칭찬했다. 단 그들이 칭찬을 할 때는 소년에게 뭔가 긴한 볼일이 있을 때였다.

그래요, 난 똑똑해요. 허지만 그게 어쨌다는 거예요.

화내지 마라. 사실이잖니 ? 너만큼 똑똑한 아이는 이 세상에 절대로 없어. 너는 하려고만 들면 못하는 일이 없지 않니?

병정의 크고 두꺼운 손이 좁고 가냘픈 소년의 어깨를 위로하듯이 가볍게 두들 겼다.

물오리 똥이 더께로 깔린 자갈길을 지나 그들은 수로를 끼고 마을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한차례 큰 전투를 치른 후로 마을은 밤이 찾아와도 전처럼 등불이 많지 않았다. 저자거 리의 많은 집들이 그 전투 중에 부서졌다. 국민군은 이번에도 역시 외국 병정들에게 쫓겨 마을을 비워주고 멀리 퇴각했다. 외국 병정들은 마을의 중심부를 점령했고, 몇 개의 다리와 도로망 일부와 산등성이 약간을 차지하는 데 만족했다. 어떠한 외국 병정들도 국민군을 완전히 이길 수는 없다. 마을과 도로와 다리 목을 제외한 나머지 땅은 여전히 국민군의 출몰지역이기 때문이다.

마을 초입인 휴경지(休耕地)로 들어서자 동물성 단백질이 타는 짙은 누린내가 풍겨왔다. 소년은 콧구멍을 힘껏 열어 그 누린내를 천천히 맡았다. 소년이 묘역에서 잠든 사이에 마을은 다시 국민군의 습격을 받은 것 같았다. 노대(露臺)에 웅크린 마을 주민들의 신중한 침묵과, 바람결에 묻혀오는 짙은 누린내가 그 증거였다.

살 타는 냄새군요? 적군이 언제 또 마을을 습격했죠?

해질녘이야. 외바퀴 손수레에 화약을 싣고 와서 놈들은 다리를 폭파하고 우리 초소에 불을 질렀어. 코브라 짓이 틀림없어. 놈이 아니군 그런 짓을 할 수가 없지.

소년은 코브라를 본 일이 없다. 그러나 늪지대 이쪽의 3개 성()에 사는 사람들 중 코브라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정도다. 그는 도둑이고 살인자며 신출귀몰한 국민적 영웅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의 목에 금 3백 냥의 현상금이 붙어 있다는 사실이다. 다리나 화약고가 폭파될 때마다 그의 현상금은 꾸준히 불어 현재의 3백 냥에까지 이르렀다. 폭파할 다리나 화약고가 있는 한 코브라의 현상금은 앞으로도 계속 불어날 것이다.

코브라는 어떻게 생겼을까 ? 아저씬 그놈을 보셨나요?

아니, 보지 못했어. 내가 본 건 그놈의 사진뿐야.

그럼 오늘 다리를 폭파한 게 코브라라는 건 어떻게 아셨죠?

초소에 잡혀 있던 국민군 포로가, 습격이 시작됐을 때 그놈의 얼굴을 알아봤어. 포로는 코브라가 틀림없다면서 금화 두 냥을 걸고 내기를 해두 좋다는 거야.

저자거리가 가까와지자 불길이 보였고 냄새가 한층 짙어졌다. 불길은 다리목에 세워졌던 병정들의 초소와 장갑차에서 일고 있었다. 상당히 오랫동안 탔기 때문에 더 탈 것이 없어서 불길은 이제 막 꺼져 가는 중이었다. 폭파된 다리 경간(徑間)이 깊은 개천 속에 비스듬히 처박혔고, 점토가 깔린 개천 기슭에서는 병정들이 반도(叛徒))들의 시체를 포탄 구덩이에 느릿느릿 끌어 묻고 있었다.

꼬마야, 넌 부자가 되고 싶지 않니?

부자라구요?

네가 나를 도와주기만 하면 나는 너를 부자로 만들 수 있어. 그건 조금두 어렵지 않아. 넌 틀림없이 부자가 된다.

거리에는 끈끈한 얼룩과 잘게 부서진 많은 유리조각이 흩어져 있었다. 그 얼룩들은 사람의 피였고 누군가가 미끄럽지 않도록 그 위에 모래를 뿌렸다.

난 부자가 되고 싶어요. 허지만 어떻게 해야 부자가 되는지 모르겠어요.

너한텐 아주 쉬운 일이야. 코브라만 잡으면 넌 금새 부자가 되는 거야.

소년은 병정을 향해 고개를 크게 내저었다, 부자가 되고 싶긴 하지만 소년은 코브라를 잡을 수 없었다. 소년은 그를 본 일도 없고, 그를 잡는 데 필요한 장갑차나 총이 없었다.

이젠 성도의 관리들도 가짜 머리로는 속지 않아요. 지난번에 가짜 머리를 바친 사람은 두 손이 잘리고 눈알이 뽑혔대요.

그것은 사실이었다. 현상금이 붙은 이후 코브라는 세 번에 걸쳐 그의 머리가 성도 광장에 전시되었다. 이번만은 틀림없다는 성장의 확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때마다 진짜 코브라는 지하방송을 통해 성도의 관리들을 조롱하곤 했다. 그를 보았다는 어떤 사람은 그가 독수리나 표범보다도 빠르다고 했다.

가짜가 아니야. 우린 이번에 진짜를 잡으러 가는 거야. 그놈이 숨은 데를 알아냈어. 넌 그곳까지 우릴 안내만 하면 되는 거야.

포가(砲架)가 설치된 사령부 앞에 병정은 발을 세우고 소년의 어깨를 다정스레 두들겼다.

, 여기서 기다려라. 너한테 곧 술과 양고기를 갖다줄 테니.

 

달빛이 부서지는 늪지대 저쪽에서 아까부터 간헐적으로 자동화기의 연발 총성이 들려왔다. 워낙 거리가 먼 탓으로 총성은 목제 타악기의 둔탁한 연타음과 비슷했다, 운하의 수문 앞에 도착한 대원들은 그러나 아무도 그 총성에 놀라거나 긴장하지 않았다. 그들이 진짜로 두려워하는 것은 귓전에서 울리는 저격병의 단발 총성이다. 그 단발의 총성 후에는 반드시 그들 중에 하나가 쓰러지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령부의 경장갑차는 그들을 겨우 운하까지만 실어다주고 돌아갔다. 운하의 다리들이 모두 파괴되어 장갑차는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제부터 대원 일행은 16킬로에 달마는 긴 늪지대를 통과해야 한다. 16킬로 저쪽에는 그들의 목적지인 횐 코끼리의 대사원이 자리잡고 있었다. 소년이 묘지에서 불리어 나온 것은 사원까지의 길을 안내하기 위해서였다. 술과 양고기 두 근과 한 다발의 여송연을 보수로 받고, 소년은 외국 병정들에게 길 안내를 승낙한 것이었다.

일행은 모두 5명으로, 3명의 검은 모자 특공대와 소년 그리고 민병대 출신의 통역이었다. 소년의 친구를 포함한 3명의 검은 모자 특공대원들은 모두 간편한 경장을 갖추었고, 칼과 무전기와 기관단총 따위로 무장했다. 그들은 소년이 아는 한 세상에서 가장 용감하고 힘이 센 병정들이었다. 소년과 동족인 갈색 피부의 통역인은 소년처럼 아무런 무장 없이 맨몸으로 작전에 참가했다. 그는 이빨들이 검게 썩었고 뾰족한 턱에 자주 깜박이는 작은 눈을 하고 있었으며, 소년을 처음 만난 순간부터 소년에게 마구 거친 욕설을 퍼부었다. 소년은 몹시 자존심이 상했지만 친구인 대장을 생각해서 그의 모욕을 꾹 참았다.

대체적으로 운하까지가 외국 병정들의 순찰 코스의 끝이었다. 운하 저쪽은 늪과 포기와 독사와 수초(水草)와 깊은 수렁의 연속이었다. 물을 지배하는 동물들이 아니고는 그곳은 공포와 불모의 땅이었다. 반전(反轉)을 거듭해온 3년간의 긴 전쟁도 이 광막한 늪지대만은 작전지역에서 제외시켰다. 몇 개의 수문과 제방만 폭파하면 그곳은 어느 쪽 군대도 작전지역으로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운하에 도착한 대원 일행은 즉시 검은 피부의 민병대 두 명의 안내를 받았다. 샌들에 반바지만을 착용한 그들은, 한 명은 장총을 휴대했고 한 명은 허리에 긴 정글도를 질렀을 뿐이었다. 운하를 얼마쯤 거슬러간 그들은 한곳의 수초 사이에서 밑이 평평한 보트 한 척을 찾아내었다. 일행이 차례로 보트에 타자 그들은 노를 저어 보트를 천천히 운하 하류로 몰기 시작했다.

간헐적인 포성과 총성을 제외하면 늪지대는 대체로 조용한 편이었다. 반바지를 걸친 두 명의 민병대는 보트의 앞뒤로 나누어 앉아 규칙적으로 능숙하게 노를 저었다. 수면에 반사되는 달빛이 밝아 그들에겐 별도의 불이나 조명이 필요치 않았다. 순조롭게 흘러가던 작은 보트는 탄약상자 같은 장애물을 만나 가끔씩 멈추곤 했다. 며칠 전에 치른 격렬한 전투로 운하와 늪에는 많은 종류의 전쟁 쓰레기가 떠 있었다. 바람결에 심한 악취가 풍겨와서 대원들은 늪지대 어딘가에 아직도 치우지 못한 시체들이 썩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특공대 대장은 뱃머리의 민병대와 낮은 음성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대장이 유창하게 현지인 말들 해서, 민병대는 말이 걸려올 때마다 황송한 듯 머리를 깊이 조아렸다

자네들 관할의 이쪽 운하는 오늘 아주 조용했다더군?

, 장군님.

장군이 아닐세, 난 대위야. 헌데 자넨 늪지대 출신이 아니잖나?

, 장군님. 우리 대장이 절 성도에서 이리루 데려왔죠. 하루빨리 성도루 돌아가구 싶습니다. 늪지대는 저한테 맞지가 않습니다.

조금만 친절하게 대해주면 민병대는 모두 이런 식이었다. 대장도 그것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들과 계속 말이 하고 싶은 눈치였다.

자네들은 곧 여길 떠나네. 며칠 후 대대적인 공격작전이 있을 테니까.

똡니까? 공격입니까? 이번엔 어디가 공격목포죠?

삼각주야. 감사절 공격이지. 이번엔 국민당을 고원지대까지 쫓아낼 걸세.

큰 물건이 수면에 떨어지는 풍덩 소리가 들려왔다. 민병대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일제히 배 안으로 몸을 낮추었다, 뱃머리의 민병대가 노를 집어들어 갑자기 수면을 두 번 내리쳤다. 노를 뱃머리에 길게 누인 뒤 민병대는 이를 드러내고 대장을 향해 수줍게 웃었다.

잠복좁니다. 저쪽 수초죠. 별일 없으니 통과하라는 신홉니다.

성군은 현재 늪지대 북쪽의 삼각주 남방에 긴 전선을 두고 있었다. 따라서 운하와 늪지대 대사원은 전선에서 상당한 거 리를 둔 성군 후방지역이었다. 그러나 후방의 모든 지역이 성군의 완전한 지휘 통치하에 놓인 것은 아니다. 전선은 이 전쟁에서는 별로 큰 의미가 없었다. 언제부턴가 이 나라 국민들은 힘에 의해서만 성군의 통치에 순종했다, 힘이 충분치 않은 지역은 후방이라도 성군의 관할권밖에 있었고, 그곳은 오히려 성군보다는 반도(叛徒)인 국민군의 세력권으로 간주되었다. 이 불편을 극복하기 위해 성군은 그들의 힘을 도시나 촌락이나 교통요지 등의 특정 거점에만 집중했던 것이다.

늪지대에도 거점은 있었다. 대부분의 지역이 수초와 뻘밭인 황무지였지만 그 곳에도 비옥한 채전과 양질의 논과 좋은 어장을 가진 약간의 촌락이 산재해 있었다. 성군은 바로 이들 촌락을 그들의 전략 요충지나 작전 거점으로 삼은 것이다.

아무런 긴장이나 장애 없이 보트는 20여분 후에 성군의 첫 번째 거점에 도착했다.

거점 책임자는 성군 중위로서 대장에게 약 10분간 주위의 적정(賊情)과 현대의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호기심이 많은 사나이로 장황한 상황설명 후에 은근히 특공대의 작전임무를 물어왔다. 소수의 병력만으로 야간에 갑자기 출동한 특공대가 중위에게는 아무래도 심상치 않게 느껴졌던 것이다.

대장은 그러나 상황만 청취한 후, 중위의 질문에는 대꾸 없이 특공대를 즉시 다음 거점으로 출발시켰다. 중위가 친절하게 현지인 안내자를 붙여주겠다고 제안했으나 대장은 그것마저도 완곡하게 거절했다. 사실 대장에게는 더 이상의 안내자가 필요치 않았다. 앞으로의 안내는 마을에서 동행해온 소년만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달이 기울었다. 그러나 새벽은 아직 일렀다. 검고 축축한 밤하늘에 별들이 아직은 싱싱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대사원 앞의 황폐한 촌락에서 특공대는 방금 그들의 고된 행군을 끝마쳤다. 그들의 행군은 애초의 예정보다 무려 두 배 가까운 긴 시간을 소비했다.

통역이 독충에만 물리지 않았어도 행군은 제 시간에 끝났을 것이다. 자꾸 벗겨지는 반장화가 귀찮아서 통역은 그것을 벗어버렸고, 그러자 곧 뻘밭의 독충이 그의 발등을 물어버린 것이다.

대사원의 황폐한 촌락에도 성군은 역시 주둔하고 있었다. 이 촌락의 지휘자는 성군 대위로 가슴이 두껍고 목이 짧은 사나이였다. 그는 웃음이 헤퍼 호인형의 인상이었으나 어딘가 게을러 보였고 말씨가 아주 상스러웠다.

사전 연락이 없었기 때문에 대위는 처음에는 특공대의 도착을 귀찮아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내일 보급품이 공수(空輸)될 것이라는 말을 듣자, 그는 돌연 태도를 바꿔 특공대 일행을 환대하기 시작했다.

성군 대위의 주선으로 특공대는 곧 촌락 외곽의 독립 농가에 안내되었다.

독충에 물려 반 혼수상태에 빠진 통역은, 민간요법의 해독 치료를 받은 뒤 성군 막사 내에 별도로 수용되었다. 농가는 깨끗했다. 특히 오랫동안 물과 싸운 특공대원들에게 농가의 건조한 공기는 아주 쾌적했고 상쾌했다. 3개의 야전침대가 벽을 따라 가지런히 놓였고 그 맞은편 시렁에는 마른 짚이 깔린 별도의 침상이 마련되어 있었다.

소년은 야전침대보다는 그에게 익숙한 마른 짚이 깔린 농가의 침상을 잠자리로 택했다. 대장을 포함한 3명의 대원들은 방금 끝낸 행군에 대해 소년에게 무언의 찬사를 보냈다.

소년은 뛰어난 안내자였다. 그는 늪지대의 복잡한 미로를 수초의 종류와, 물 흐름의 방향과, 별의 위치로 정확히 찾아내었다. 마지막 장애물인 수초지대를 벗어났을 때. 대원 중 한 병사는 소년의 흙투성이 이마에 입술을 눌러댈 정도였다. 멀리 청회색 달빛 속에 목적지인 대사원이 어렴풋이 보인 것이었다.

행군이 가져다준 심한 피로에도 불구하고 소년은 침상에 든 채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그가 올라간 침상의 창에서는 성스러운 숲에 둘러싸인 대사원의 지붕과 아름다운 탑들이 내려다보였다. 대사원의 이러한 모습들은 소년에게는 해묵은 상처에 새롭게 가해진 둔중한 아픔이었다. 그는 대사원의 전경(全景)이 드러나는 새벽이 오는 것이 두려웠다. 자기를 이곳으로 유인해온 대장이 소년에게는 새삼스레 불안했고 원망스러웠다.

소년의 이러한 불안과 설레임을 대장은 아까부터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잠 못 드는 소년의 설레임이 무엇 때문인지 어렴풋이 이해되었다. 부하 대원들이 잠에 떨어지자 대장은 재빨리 소년의 침상으로 올라갔다. 벽 쪽으로 돌아누운 소년의 얼굴에 대장은 가만히 그의 술병을 디밀었다.

한 모금 마셔, 곧 눈꺼풀이 무거워질 테니까.

밑에서 비치는 벽걸이 램프 불에 소년의 빈약한 코와 큰 눈동자가 반짝였다. 병을 받아들고 몇 모금 마신 뒤 소년은 몸을 뒤집어 천정을 향해 반듯이 누웠다.

소리가 잘 들리는 밤이에요. 들어봐요, 대장. 램프의 기름 타는 소리도 들려요.

넌 좋은 귀를 가지고 있어. 내 귀는 나빠 그딴 소리는 들리지 않아.

전 알아요, 이런 밤을. 아마 새벽엔 옅은 안개가 낄 거예요.

놀랬다, 너한테는. 어떻게 넌 그런 것까지 알고 있니?

열살 때까지 늪에서 살았어요. 아버지랑 둘이 안 가본 데가 없었어요.

아버지가 뭘 했는데? 그리구 아버진 어떻게 됐니?

여러 가지 물건들을 배에 싣구 아버지는 늪지대 촌락으루 일 년 내내 행상을 다녔어요. 그런데 어느 날 배와 아버지가 한꺼번에 없어졌어요. 며칠 후 시체를 찾았는데 아버지 머릿속에 납 총알이 두 개 박혀 있었어요.

그래서 넌 어떻게 했니 ? 아버지를 잃구 지금까지 혼자 살아온 거냐?

아뇨. 대장은 알아요. 대장은 내가 옛날에 대사원에 있었던 것 알구 있어요.

소년의 눈과 대장의 눈이 거의 동시에 마주쳤다. 머리를 가볍게 좌우로 흔든 대장은 곧 소년의 팔을 잡아 불빛 쪽으로 뒤집었다.

그래. 난 너를 안다. 허지만 아주 조금뿐이야.

뒤집힌 소년의 팔 안쪽에는 고리 모양의 큰 화상이 나 있었다.

난 이 상처를 본 일이 있다. 이 상처는 횐 코끼리가 있는 대사원 본당 승려들만 왼쪽 팔 안에 가지고 있지.

잡힌 팔을 재빨리 뽑아낸 후 소년은 그것을 허리 뒤로 찔러 넣었다. 갑자기 고집스런 얼굴이 되어 소년은 엄숙하게 입을 열었다.

말해줘요, 대장. 당신은 왜 나를 대사원에까지 데려왔죠?

그 대답을 하기 전에 네 생각을 먼저 알고 싶다. 너는 저 대사원에 있는 많은 스님들을 알고 있겠지?

그래요, 많이 알아요. 그들이 아직도 떠나지 않고 남아 있다면,,,,,,

난 네가 무슨 이유로 대사원을 떠났는지 알고 싶다. 그리고 내가 만일 대사원을 상대로 싸운다면 네가 어느 편에 가담할 것인지 그것도 지금 알았으면 좋겠다.

내가 대사원을 떠난 것은 파문을 당해 승적을 잃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대장은 무슨 이유로 대사원을 상대로 싸우려 하는 거죠?

대사원은 중대한 잘못을 저질렀어. 우리는 대사원의 수장(首長) 스님이 지금까지 비밀리에 코브라를 숨겨온 사실을 알아냈다. 코브라를 우리에게 내주지 않으면 나는 부득이 내일 아침에 대사원의 스님들과 싸우지 않으면 안될 거야.

믿을 수 없어요. 대사원의 스님들이 왜 코브라를 숨겨야 한다는 거죠?

그 점엔 나도 동감이아. 지금까지 대사원은 엄중히 중립을 지켜왔거든. 허지만 이제는 사정이 달라. 우린 대사원이 코브라를 숨겼다는 아주 결정적인 여러 증거들을 확보했어.

소년이 팔을 뻗어 벽 앞에 세워진 작은 술병을 집어들었다, 급하게 세 모금의 술을 마신 뒤 소년은 술병을 다시 대장에게 건네주었다.

눈꺼풀은 언제 무거워지죠? 난 이만 자야겠어요.

콜크 마개를 꼭 막은 뒤 대장은 술병을 소년의 가슴 위에 내려놓았다.

이건 네 거야. 어느 편이 될 건지는 내일 아침에 말해주겠니?

미안해요, 대장. 내일 아침에도 소용없어요. 난 아무 편도 안될 거예요. 대장도 잘 아시잖아요?

아니야, 난 믿는다. 넌 똑똑하니까 부자가 되는 쪽을 택할 게다. 서둘러 대답할 필요는 없어. 내일 아침까진 시간이 아직 있으니까.

잘자요, 대장.

그래, 꼬마야.

 

안개가 걷히기 시작하자 대사원의 모습이 좀더 뚜렷이 드러났다.

대장은 쌍안경을 눈에 댄 채 숲과 광장과 탑과 사원을 차례로 살펴보았다. 거리감을 잃은 많은 사물들이 좁은 시야로 순서 없이 뛰어들었다. 가장 먼저 뛰어든 것은 사원 앞 광장에 흩어져 앉은 40여명의 누더기를 걸친 순례자들이었다.

이른 아침에 사원을 방문했을 때도, 그들은 광장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그 주위에 둘러앉아 차를 마시며 잡담들을 하고 있었다, 길 안내를 맡았던 성군 대위는 그들 중 반수 이상이 간밤에 도착하여 밤을 새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십여 명은 적은 숫잡니다. 전쟁 전에는 이 광장에 천오백 명이 몰려든 적도 있답니다. 요즘도 전투가 뜸하다 싶으면 하루에 백 명 정도는 쉽게 볼 수가 있습니다.

대위는 설명을 계속했다.

사원에서는 종을 칙서 일정한 시간에만 본당(本堂) 경내를 잡인들에게 공개합니다, 순례자들이 보고 싶어하는 것은 본당 경내의 석단 위에 모신 횐 코끼리 성상(聖像)입니다. 그 동안 여기 있는 순례자들은 감로천에 머리를 감고 제단에 바칠 향유와 초를 준비합니다.

안개가 걷혀 시계(視界)가 아주 깨끗했다, 사원은 깊은 물도랑으로 둘러싸인 숲이 무성한 작은 구릉 위에 앉아 있었다. 안개 속을 빠져 나온 오렌지 빛 해가, 숲 위로 약간 솟은 대사원의 화려한 금박 처마들을 비추었다.

대장은 쌍안경을 조정하여, 방금 싼 나귀 똥에서 더운 김이 솟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광장의 순례자들을 당분간 사원의 본당으로는 들여보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코브라와 그의 부하들은 얼마든지 순례자로 가장하여 본당과 내실에까지 잠입할 수 있었다. 그들의 출입을 통제하지 않는 한 대장의 이번 작전은 처음부터 실패인 셈이었다.

당신은 지금 나를 위해 몇 명의 부하들을 동원할 수 있겠소?

갑작스런 대장의 질문에 성군 대위는 놀란 듯이 고개를 들었다,

당장은 약 이십 명 정돕니다. 그것도 작전이 없을 때를 가정해서죠.

저 광장의 순례자들을 다리 이쪽으로 몰아내 주시오. 내가 사원측과 협상을 할 동안 당신은 어느 누구도 사원 본당에 들여보내지 말아야 하오.

그건 사원 쪽을 화나게 하는 처사가 될 겝니다. 우라는 물론이고 국민군들까지도 순례자들을 쫓아낸 적은 아직 한번도 없었으니까요.

나는 사원의 비위를 맞추려고 여기까지 찾아온 게 아니오. 사원의 책임자와 만나고 싶다는 나의 요청이 벌써 두 번씩이나 이유 없이 거절되었소. 십 분 후에 나는 다시 사원의 본당을 방문할 작정이오. 그때까지 당신 부하들은 저 순례자들을 홍교 밖으로 몰아내야 하는 거요.

성군 중사에게 쌍안경을 건네주고 대장은 빠른 걸음으로 분견대(分遣隊)를 나와 농가로 향했다,

농가로 이르는 비탈진 자갈길에 검은 털의 많은 염소들과 몇 명의 아이들이 어울려 놀았다. 그중에 한 아이가 대장에게 다가와 담배 피우는 시늉을 한 뒤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대장이 고개를 좌우로 내두르자 소년은 뒤로 물러서며 살인귀!하고 원주민의 말로 욕설을 내 뱉았다.

예측한 대로 독립 농가에는 소년이 홀로 침상에 앉아 바늘을 구해 해진 옷을 깁고 있었다. 대장이 가까이 다가가자 소년은 날카로운 앞 이빨로 바늘의 실을 물어 끊었다.

아침 먹으러 분견대루 나갔다가 거기서 얘기 대강 들었어요.

누굴 만났니?

녹차를 팔러 대사원에 들렀다는 늙은 절름발이 장사꾼을 만났어요.

그자를.

분견대 영창에 갇혀 있더군요. 좋은 사람인데 왜 가뒀죠?

대장은 뒷주머니에서 씹는 담배를 꺼내 한입 침착하게 베어 물었다.

난 코브라를 잡을 때까지는 잡인들의 사원 출입을 감시할 작정이다. 그 절름발이 녹차장수가 코브라의 부하거나 첩자일 수도 있지 않니?

대장은 사원에서 대체 누굴 만나고 온 거예요?

사원의 책임자가 누구냐구 하니까 홍포(紅布)를 걸친 늙은 중이 나오더군. 그자에게 용건을 얘기하고 사원 경내를 수색하겠다고 통고했다.

그래서 어떻게 했죠?

너무 크고 복잡해서 사원 수색은 불가능한 일이었어. 그후 중들을 다시 만났지만 그들은 입을 다물고 우리를 통 상대하지 않았다.

왜 대장은 사원의 주인인 수장(首長)을 직접 만나지 않은 거죠 ? 수장을 만나 위협을 했더라면 일이 아주 쉬웠을 텐데?

난 그렇게 어린 중이 수장일 줄은 미처 몰랐다. 너는 내가 그런 꼬마와 무슨 얘기를 하리라고 기대하니?

소년은 대장의 어깨를 짚고 침상에서 훌쩍 흙바닥으로 내려왔다. 탈곡용의 굵은 통나무에 앉아 소년은 규칙적으로 발 앞에 놓인 가죽 물통을 걷어차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장례를 집전했던 스님이 고아가 된 나를 대사원으루 데려갔어요. 거기서 나는 승려가 되기 위한 이천 일 동안의 수련과 공부를 시작했어요. 천사백 일이 조금 넘었을 때 전쟁이 터져서 난 죄를 짓고 파문을 당했어요. 사울 수장은 천사백 일 동안 나와 수련을 같이 받은 형제예요.

형제라니? 사울이 누구냐? 넌 수장을 알고 있구나?

그래요. 대사원의 수장은 태어날 때 이미 정해져 있어요. 태어나는 날. 큰 보름달을 먹은 아이만이 수장이 될 자격이 있는 거예요.

무슨 소리냐 ? 보름달을 먹는다는 건?

대사원의 수장이 될 수 있는 아이는 둥근 보름달이 조금씩 작아져서 하늘과 땅이 캄캄해지는 밤에 태어난 아이예요. 그런 아이만이 대사원에 들어가서 가르침과 계를 받은 후 대()를 이어 새로운 수장이 되는 거예요.

그럼 지금의 꼬마 수장은 언제 누구로부터 대를 이어받아 수장이 된 거냐?

영창에 갇혀 있는 녹차장수는, 작년 점등제 때 노() 수장이 열병을 얻어 급히 죽었다구 말했어요. 사울은 아마 그 직후에 새 수장으로 대를 이어받은 모양이에요.

대장을 보는 소년의 눈이 기름에 튀긴 은행 알처럼 반들거렸다. 목이 긴 군화에서 단검을 뽑아, 대장은 판자 벽에 걸린 여자 나체의 사타구니 부분을 도려내기 시작했다.

꼬마야, 넌 내가 얼마만큼 코브라를 미워하는지 알고 있니?

알아요, 허지만 대장은 코브라를 결국 못 잡고 말 거예요.

아니야. 난 잡는다. 약속해도 좋아. 너만 나를 도와준다면,,,,,,

대장은 내가 대체 어떻게 해주길 바라는 거죠?

너는 얼마 전까지도 저 사원의 공부하는 중이었어. 나를 도와줄 생각만 있다면 너는 얼마든지 그 방법을 찾아낼 거야.

내가 만일 대장이 라면 나는 사울을 만나겠어요. 사울은 저 대사원과 한 몸이 나 마찬가지예요. 어떤 사람도 사울의 앞에서는 아니오라는 말을 할 수 없어요. 수장은 곧 달이고 별이며 살아 있는 율법이기 때문이에요.

어째서 그럴까? 수장은 겨우 열여섯살짜리 살찐 소년인데?

, 어서 사원으로 가요. 사원에 가서 수장을 직접 만나세요.

 

주렴이 걷혔다. 홍포를 입은 두 승려의 옹위를 받으며 대사원의 수장 사울이 방안으로 들어 왔다.

대나무의자에 앉아 있던 대장은 수장이 들어서자 곧바로 그에게 다가갔다. 아무런 격식도 인사도 없이 대장은 갑자기 입을 열었다.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가를 당신들은 이미 알고 있소. 어떠한 희생을 지불하더라도 나는 코브라를 잡고 말 거요. 나는 더 이상 당신들에게 협상할 시간을 줄 수가 없소. 당신들의 결심을 재촉하기 위해 나는 부득이 나쁜 방법을 쓰기로 했소.

수장은 대장을 보고 있지 않았다. 흔들리지 않는 침착한 눈길로 사울은 말없이 벽 한곳을 보고 있었다.

소년티가 나는 수장의 얼굴은 양파처럼 살이 쪘고 박제된 동물처럼 무표정했다. 아무런 대답도 들을 수 없자 대장은 다시 말을 이었다.

코브라를 내게 인도하지 않는 한 나는 이 사원을 나의 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죠. 나는 왜 당신들이 이 성스러운 대사원을 위험과 곤란 속에 빠뜨리는지 알 수가 없소. 이 사원이 적으로 되면 우리는 당신들에게 못할 짓이란 아무 것도 없소. 내 경고가 거짓이 아니란 걸 당신은 조만간 알게 될 거요.

우리가 당신의 적이 될 수 없다는 건 당신이 더 잘 알고 계십니다.

수장 바른쪽의 늙은 승려가 수장을 대신해서 입을 열었다.

벌써 여러 번 말씀을 드렸지만 우리는 당신의 요구를 들어드릴 입장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선 코브라라는 사람이 어떤 인물인지 알지도 못하고 본 일도 없습니다, 그가 우리 사원을 방문했다면 그것은 병정으로서가 아니고 아마 평범한 순례자의 신분일 겝니다. 우리 사원에는 순례자가 많고 우리는 관례에 따라 그들을 모두 같은 신도로 받아들일 뿐입니다.

수장이 입을 열지 않으리라는 것은 이것으로 명백하게 드러났다. 대장의 요구로 만나주긴 했지만 수장은 시종 말이 없었다. 꼭 대답이 필요한 경우에도 양쪽의 늙은 승려들이 그를 대신할 정도였다.

코브라의 최근의 은신처가 이 사원이라는 증거는 아주 많소. 오늘아침에도 무전을 통해 나는 똑같은 정보를 수집했소. 최근까지 이 사원에 은신했던 반도가 성군에게 체포되어 아주 결정적인 증언을 했소. 그는 대사원이 자기들에게 수차에 걸쳐 은신처를 제공했고 자발적으로 자기들의 일에 많은 도움과 편의를 주었다고 자백했소. 당신들이 지금까지 지켜온 중립은 이것으로 깨끗이 파기된 거나 마찬가지요. 나는 더 이상 당신들의 중립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며, 이 시간 이후로는 이 사원이 우리들의 작전 지역 내에 포함될 것임을 통고 하오.

소매 속에 감추었던 두 손을 뽑아내어 늙은 승려는 대장을 향해 정중하게 합장을 했다. 이번에도 역시 수장을 대신하여 늙은 승려가 입을 열었다.

우리는 당신이 취한 조처에 대해 차후에라도 당신 스스로가 후회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하실 말씀이 더 없으시면 우리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우리 병사들이 임시로 머물 적당한 거처와 방이 필요하오. 코브라를 체포할 때까지 우리는 당분간 이 사원에 머물 거요. 바로 이 방이 좋을 것 같소. 한 시간 후에 다시 올 테니 그때까지 이 방을 치워주시오.

두 승려는 수장을 옹위한 채 빠른 걸음으로 방을 나갔다. 고들이 서둘러 주렴을 통과하자 대장도 곧 뒤를 따랐다

밖은 햇살이 눈부셨다. 본당 경내의 횐 코끼리상 앞에서 대장은 홍포를 걸친 중 두 명과 소년을 발견했다. 그들은 성스러운 코끼리상 그늘 밑에서, 장례식을 의논하는 사람들처럼 엄숙하고 진지하게 이 야기를 하고 있었다. 대장이 가까이 다가가자 중들은 곧 본당 쪽으로 떠나갔다. 소년만이 홀로 그늘 속에 남았다가 대장을 향해 햇볕 속으로 걸어나왔다.

결과가 안 좋은 모양이군요? 사울은 기어이 만나보셨나요?

중들은 내가 엄포만 놓는 줄 알고 있어. 그래서 나는 농민들에게 아픈 맛을 보여주기로 결심했다.

사울의 대답은 어땠어요? 코브라를 끝내 모른다는 대답인가요?

수장은 허수아비야. 내가 여러 번 말을 건넸지만 그는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았어. 내 질문에 대답을 한 건 수장이 아니고 그 옆에 섰던 늙은 중들이야.

화강암의 뜨거운 돌 바닥에 코끼리 그늘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대리석의 흰 코끼리상은 이 나라가 보유하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조각품 중의 하나였다. 대좌 위에 놓인 코끼리의 발톱을 소년의 새까만 손이 조심스레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대장은 이곳의 중들을 어떤 방법으로 혼내줄 작정이죠?

그들을 한방에 몰아넣고 코브라를 인도할 때까지 감금해둘 생각이다.

모두를 말인가요? 스무 명 전부를 가둬두겠다는 얘긴가요?

나도 그렇게 하기는 싫지만 더 좋은 방법이 없지 않니?

웃입술을 둥글게 말아 올린 채 소년은 눈살을 찌푸리고 대장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가지런히 드러난 그의 이빨들은 유백색의 코끼리상보다도 더욱 희고 청결했다.

사울은 벙어리도 아니면서 왜 대장에게 아무 말도 안 했을까요?

네 예측이 빗나간 거야. 그는 역시 허수아비에 불과했어.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사울에겐 아마 까닭이 있었을 거예요.

무슨 까닭?

사울은 자기가 책임질 수 없는 말은 하고 싶지 않았을 거예요. 어쩌면 사울은 대사원에 코브라를 숨기지 않았을는지도 알 수 없어요. 코브라가 사원에 숨어든 사실을 사울이 전혀 몰랐을 수도 있을뿐더러, 설혹 그걸 알았다 해도 사울은 일부러 모른 체할 수도 있는 거예요. 귀찮은 일은 모른 체하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니까요.

멀리서 포성이 들려왔다. 구슬처럼 파란 대장의 눈은 소년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듯했다. 털로 뒤덮인 대장의 손이 소년의 어깨를 부드럽게 두들겼다.

아까 너하구 같이 있던 중들과는 무슨 얘기들을 나눈 거냐?

대장에 대해 알고자 해서 아는 대루 얘길 해줬어요.

수장과 형제처럼 지냈다구 하면서 너는 본당으로 수장을 찾아보지 않는 거냐?

사울은 나와는 너무 달라요. 나는 사울을 보고 싶지 않아요.

네가 이곳에 와 있는 걸 사울은 지금 알고 있니?

그래요, 알구 있어요. 그래서 내게로 사람까지 보낸 거예요.

감정이 절제된 메마른 눈길로 두 사람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대장의 손이 어깨에서 떠나자 소년이 돌연 광장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난 이유를 모르겠어요. 대장은 언제부터 코브라를 그렇게 미워하게 됐죠?

놈은 도둑이고 살인강도며 아주 간교한 우리들의 적이야.

그건 다 아는 일이지만 아무도 대장만큼은 코브라를 미워하지 않아요. 더구나 국민군 쪽 사람들은 코브라를 영웅으로 부르기도 하잖아요?

도대체 너는 어느 쪽이냐? 성군 쪽에 있으면서 코브라 같은 놈을 두둔하다니?

난 아무 쪽도 아니에요. 내 쪽은 아마 술과 양고기뿐일 거예요.

눈부신 햇살과 대기층을 뚫고 갑자기 먼 곳으로부터 귀 익은 소음이 들려왔다. 소음은 느린 속도지만 차근차근 우렁차게. 이쪽으로 다가왔다. 소년과 대장은 삽시간에 소리의 광포한 울림 속에 갇혀버렸다. 군모의 챙을 위로 쳐 올린 후 대장과 한참동안 소리나는 쪽을 지 켜 보았다,

아군기야, 좀 이르군. 보급품을 사원 광장에 투하하도록 유도해야겠어.

 

성군 대위의 시체와 함께 대장은 그날 밤, 많은 병사들을 사원 경내로 진주시켰다.

대위의 시체가 발견된 곳은 홍교와 우물 두 곳이었다. 도랑 위로 걸쳐진 홍교 난간에는 대위의 목이 철사에 꿰어 달려 있었고, 그곳에서 약 50미터쯤 떨어진 우물에는 머리 없는 대위의 몸이 유지(油脂)에 싸여 버려져 있었다.

예리한 흉기로 절단된 머리는 대장의 지시에 따라 바늘로 꿰매어져 원래의 몸뚱이에 붙여졌다. 시체는 다시 간단한 목욕 후에 새 군복이 입혀졌고 성군들의 호송하에 사원 경내의 본당 마루로 옮겨졌다.

성군 대위의 갑작스런 죽음은, 대사원과 대장 사이께 새로운 긴장과 적대감을 불러일으켰다. 밖으로 드러난 몇 가지 이유로 해서, 대장은 대위의 죽음을 코브라 일당의 의도적인 범행으로 간주했다. 범행수법이 잔인한 것은 공포감을 유발시키려는 반도들의 얕은 꾀가 분명하며, 시체를 우물과 다리에 버린 것은 자기들의 결의를 과시하려는 반도들의 유치한 시위행위라는 것이었다.

대장은 냉정하고 침착하게 그의 증오와 복수심을 드러내었다. 사원측의 완강한 항의에도 불구하고 대장은 우선 사원 경내로 2개소대의 성군 병력을 진입시켰다. 코브라의 만행을 승려들이 좀더 잘 볼 수 있도록, 대장은 또한 대위의 시체를 본당 마루에 만 하룻동안 안치하도록 명령했다. 그러나 대장의 가장 큰 증오는, 시한부로 사원에 통고한 최후 통첩에 가장 잘 나타나 있었다.

그의 통첩은, 내일 아침 해뜨기 전까지 코브라를 인계하거나 그에 준하는 중요한 조처를 취해줄 것을 요구했다. 중요한 조처란, 코브라를 체포하는 데 필요한 결정적인 정보제공이나 사원측의 협조를 뜻했다. 이것은 코브라나 그 일당들이 범행 후 사원을 떠나 어딘가로 도망쳤을지도 모른다는 가정하에 취해진 요청이었다. 코브라가 설혹 사원에 은신하지 않았어도 이 것으로 대사원 승려들은 대장의 협박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게 된 것이었다.

통첩대로 이행되지 않았을 때, 대장이 취할 조치는 명백했다. 그는 대사원이 그의 통첩에 응하지 않았을 때는 -대단히 불행한 사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대장의 경고는 위협을 주기에 충분했다. 성군 대위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대장은 경우야 어떻든 먼저 피를 본 피해자이기 때문이었다.

밤이 깊어지자 모닥불이 꺼졌다. 사원의 짙은 어둠 속으로 성군 병사들은 하나씩 흩어지기 시작했다. 우기(雨氣)가 아닌 건기여서 병사들은 모포 한 장으로 노천에서 쉽게 잠들 수 있었다. 주위에 이슬을 피할 수 있는 많은 건물들과 회랑이 있었지만 병사들은 아무도 그것들 쪽으로는 접근하지 않았다, 명령에 의해 진주하긴 했으나, 대사원은 그들에게는 여전히 신성하고 거룩한 곳이기 때문이었다.

어슴푸레한 달빛 속에 몇 명의 초병(哨兵)들이 밤을 경계하며 서 있었다, 상관인 대위가 살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초병들은 어둠을 별로 두려워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하긴 그들은, 코브라나 국민군은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고는 사람을 함부로 해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기들의 죽음이 꼭 필요하지 않은 상. 성군 병사들은 코브라나 국민군을 미리 두려워할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양고기의 뼈를 숲 고양이들에게 던져주고 소년은 대장과 함께 다리를 건너 사원 광장으로 들어섰다. 낮에 비행기가 많은 보급품을 투하해서 광장에는 여러 종류의 상자들이 작은 산처럼 쌓여 있었다. 보급품은 주로 탄약과 총기였고 개중에는 가끔씩 비상식량과 술 따위도 섞여 있었다.

경무장을 한 두 명의 성군이 횃불 밑에서 보급품을 지키고 있었다. 대장은 보급품에 접근하여 단검으로 상자 하나를 능숙하게 뜯어 열었다. 손전등으로 상자 속을 환히 비추며 대장은 소년의 어깨를 다정스레 두들겼다.

이걸 주겠다. 다 주겠어. 그 대신 너는 내 부탁을 들어줘야 되는 거야.

좋아요, 말해보세요. 이건 정말 굉장한 물건이군요.

중들은 지금 대성상을 모신 큰 회장(會場)에 모여 있다. 돌바닥에 모두 무릎을 꿇고 벌써 두 시간째 꼼짝도 안 하는 거다. 놈들은 내가 말을 걸어도 누구 하나 대꾸하지 않는다. 수장을 제외한 스물다섯 명 이 모두 그렇게 돌덩이처럼 앓아 있는 거다. 꼬마야, 넌 그놈들이 왜 그따위 어리석은 짓을 하는지 알고 있다. 그리고 넌 그놈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움직일 것인지도 알고 있다. 만일 그놈들을 움직여만 준다면 나는 이것들을 너에게 모두 줄 수 있다. 자 꼬마야, 할 수 있겠지? 너는 그놈들을 회장 밖으로 몰아낼 수 있겠지?

소년은 상자 속의 물건들을 큰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것은 소년이 언젠가 맛본 꿈과 환상의 신비한 담배였다.

수장은 지금 어디 있죠? 난 사울을 만나겠어요.

회장 뒤쪽의 정자에 있다. 지금 당장 만나보겠니?

보리수 가지와 잎들 사이로 푸른 달빛이 어른거렸다.

수장 사울은 주렴 저쪽의 높은 대의자에 앉아 있었다.

형제여, 그대는 어찌하여 우리에게 감히 그러한 요구를 할 수 있는가?

염소 가죽을 깐 돌바닥 위에서 소년은 다시 수장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맨발에 남루한 누더기를 걸쳤지만 소년은 평시와는 달리 당당했고 침착했다.

사울 당신은 위대하고 거룩하십니다. 그러나 감히 말하지만 당신은 지금 큰 잘못을 저지르려 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진주한 병정들은 당신이 오랫동안 코브라를 어딘가에 숨겨왔다고 믿고 있습니다. 더구나 오늘 큰 샛별이 뜰 무렵에는, 사원의 바로 울안에서 병정 한 명이 목을 잘려 살해당했습니다. 이제 사원은 병정들의 간섭으로 중립이나 침묵이 용서되지 않는 큰 곤경에 처했습니다. 그 곤경이 어떤 것인지 당신은 왜 바로 알지 못하십니까.

형제여. 병정들과 그대는 작은 오해에 빠져 있다. 우리는 코브라가 누군지를 모르며, 를 사원 안에 숨겨준 일도 없다. 왜 우리가 특정한 사람을 특별히 우리의 사원 안에 숨겨야 한단 말인가? 지금까지 지켜온 우리의 중립을 왜 우리가 오늘에 이르러 포기해야 한단 말인가?

수장이시여, 당신은 그렇다면 병정을 만나 사실을 말해야 할 것입니다. 그를 회피하여 만나지 않는 한 당신은 저들의 오해를 해소할 길이 없습니다.

무슨 오해를 해소한단 말인가 ? 병정을 만난다는 것은 그것 자체로도 다른 오해의 씨가 아닌가 ? 사원을 참례하는 신도가 아니라면 나는 아무도 만날 수 없다는 걸 그대는 알지 않는가?

튕기는 듯한 수장의 음성에서 소년은 언뜻 기억의 한 토막이 되살아났다. 격렬하고 뜨거웠던 그때의 기억을 소년은 재빨리 입 밖으로 내뱉었다.

나의 파문이 생각나는군요. 사을 당신께선 그때의 일을 기억하시겠죠?

주렴 저쪽에서 달빛이 흔들렸다. 대나무의자가 잠시동안 삐걱거렸다. 충격은 재빨리 흡수되었지만 그 여운은 길게 끌었다, 어떠한 사람도 천사백일의 오랜 시간을 무시할 수는 없다. 주렴을 사이에 둔 두 소년은 천사백일간, 이 사원에서 함께 공부했던 공통의 추억들이 있는 것이다.

지금은 폐쇄되어 문에 자물쇠가 물려 있지만. 과거에는 대사원 경내에 떠돌이 중들을 위한 객관(客館)이라는 것이 열렸던 억이 있다. 그 객관을 청소하고 시중드는 일은 당서 배움 길에 있던 소년승들의 차지였다.

전쟁이 발발하여 약 6개월이 지난 어느 날, 40세쯤의 한 승려가 홀로 객관에 찾아들었다. 그는 고리처럼 똥그란 눈에 콧구멍이 위로 들려서 어딘가 코믹한 인상의 사내였다. 소년과 사울이 더욱 놀란 것은 걸찍한 그의 입담과 번개처럼 눈을 속이는 그의 재빠른 손놀림이었다. 십대 중간의 두 어린 소년에게, 그 객승(客僧)의 일거수 일투족은 찬탄과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행복한 관계는 미구에 큰 파국을 맞이했다. 어느 날 성도의 경찰이 지친 표정으로 객관에 찾아와서 두 명의 소년승들에게 한 장의 낡은 사진을 보여주고 돌아간 것이었다. 사진의 주인공은 머리털의 유무에 관계없이 그들이 존경해 마지않던 손빠른 객승이 분명했다. 그는 무려 전과 5범의 악명 높은 절도범이었던 것이다.

상습 절도범의 처리를 앞에 두고 두 소년승은 경찰이 떠나가자 큰 당혹감과 우울한 고민에 사로잡혔다. 그들은 우선 범인 처리에 날카롭게 의견이 대립했다. 사울은 그를 경찰당국에 고발조처하여 곧 체포토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소년은 일체 모른 체하여 그가 스스로 떠날 때를 기다려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결국 그들은 후자의 의견을 따른 결과, 며칠 후 좀더 비극적인 큰 불행을 맞기에 이르렀다. 본당에 모신 성상의 이마에서 범인은 대담하게도 보석을 뽑아갈 궁리를 했고, 그것이 당직중인 본당 승려에게 발각되자 범인은 칼을 휘두른 후 어딘가로 도망친 것이었다. 칼에 찔린 당직 승려는 불행하게도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며칠 후 범인 역시 늪지대의 수초지대에서 익사체로 발견되었다. 속세의 일로부터 눈을 돌렸던 작은 실수가. 의외에도 두 생명을 한꺼번에 잃는 엉뚱한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경찰의 사건처리가 대강 마무리된 보름쯤 후에 대사원의 승려들 회합은 또 하나의 엄숙한 뒷마무리를 서둘고 있었다. 그들은 자체 내의 조사를 통해 두 소년 중 한 소년이 치명적인 잘못을 저지른 사실을 알아내었다. 두 시간 동안의 격렬한 토의 끝에 그들은 이윽고 우울한 합의에 도달했다. 상황을 잘못 판단하여 두 명의 생명을 잃게 한 무앙이라는 소년에게, 그들은 승려로서는 가장 혹독한 파문의 중벌을 내리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파문 직후 무앙 소년은 사원에서 추방되어 전쟁이 한창인 거친 속세에 버려졌다. 그후로 2, 무앙 소년은 생존을 위해서만 온갖 지혜와 노력을 동원했다. 그러나 생존은 가능해졌지만 무앙은 2년 전의 그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신했다. 누더기를 걸친 피폐한 걸인의 모습으로, 그는 지금 대사원을 방문하여 과거의 동료인 사울 수장과 마주해 있는 것이다.

수장이시여, 당신은 방금 코브라가 누군지를 모르며 그를 사원 안에 받아주신 일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거룩한 당신께서 진실을 외면하신 채 사원을 무서운 파국으로 몰고 가는 행위일지도 모릅니다. 사원은 모든 백성에게 참배할 기회를 공평하게 제공하시고 있습니다. 거위도둑도, 악덕상인도, 심지어는 살인강도도 사원에 찾아와 당신의 거룩한 발 앞에 꿇어 엎드릴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헌데 당신은 왜 이들 중에 코브라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신이 그를 모른다는 것은. 진실로 모름이 아니고, 모르고 싶다 는 당신의 희망이 아니겠습니까? 더욱 당신이 아셔야 하실 일은, 모른다는 당신의 변명에도 불구하고 병정들이 당신 사원에서 코브라와 그 일당들을 찾아낼 수 있다고 믿고 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결국 대사원이 코브라를 숨겼는가 안 숨겼는가는 당신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사원 밖에 있는 병정들에 의해 가려질 뿐입니다, 수장이시여, 거룩한 당신은 이년 전에 한 소년승이 속세의 일을 외면했다가 큰 재난을 당한 사실을 잊으셨나이까 ? 그의 재난은 속세의 사악함에 현명하게 대응치 못한 어리석음에 있었습니다. 당신은 왜 그때의 교훈을 지금에 되살려 사원을 구하지 않습니까? 병정이 보낸 최후의 통첩을 당신은 절대로 가벼이 보셔서는 안됩니다. 수장이시여, 병정은 힘이 세며,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능히 이 대사원을 불태울 수 있습니다. 그의 통첩에 응하는 길만이 이 사원을 파국으로부터 구하는 길임을 명심하십시오.

형제여, 내가 지금 병정의 통첩에 응한다면, 차후에 나는 또 다른 통첩에도 다시 응해야 됨을 그대는 아는가? 대사원이 물소도둑과 흉악한 살인자도 내치지 않고 받아주는 것은 밖에 드러난 겉치레만을 보지 않고 사람의 몸 안에 숨겨진 때묻지 않은 예쁜 영혼을 보는 때문이라. 나는 이제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으로 이 대사원을 위하는 길인가를 알았노라. 형제는 더 이상 심려치 말고 밤이 깊었으니 이제 그만 물러가라.

화강암 깔개 돌들이 햇볕을 받아 뜨거운 열기를 내뿜었다. 훤히 트인 공간인 데도 대기는 부풀어올라 증기처럼 무덥고 답답했다. 광장은, 유리 속에 갇혀 영원히 밀폐된 기포(氣泡)처처럼 조용했다. 하오의 광포한 태양만이 하늘 가득히 폭군처럼 군림하고 있었다.

승려들은 횐 코끼리의 성상 앞에 손을 합장한 채 두 줄로 꿇어앉아 있었다. 그들의 눈은 열기로 감겼고, 갈색의 법의(法衣)는 걸레처럼 땀에 젖었다. 아침녘에 길었던 그들의 그림자가 지금은 짧아져서 검고 조그맣게 그들의 발치에 뭉쳐 있었다. 돌 바닥에 꿇은 그들의 무릎은 핏기를 잃어 어둡고 푸른 잿빛이었다. 햇볕에 노출된 맨머리와 이마에는 땀방울이 잦아들어 하얗게 반짝이는 소금의 테가 앉아 있었다.

그들은 아침에 해가 뜨자 돌연 광장으로 끌려나왔다. 그것은, 제 시간에 이행되지 않은, 최후 통첩에 대한 대장의 약속된 응징이었다. 두 명의 병자와 수장만을 제외하고는, 대사원의 전 승려가 코끼리상 앞에 무릎이 꿇리어졌다.

대장은 수장 사울에게 다시 한번의 기회를 부여했다. 간밤에 경고한 바 있는 -불행한 사태-, 그는 정오까지 한번 더 연기하노라고 통고했다. 정오까지도 응답이 없으면 대장은 -불행한 사태--심각한 사태-로 바뀔 것임을 경고했다. 특히 그는 -심각한 사태-를 거듭해서 수장에게 강조했다.

사울은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침묵으로 일관할 뿐이었다. 차일 밑 의자에 앉는 것이 허용된 그는, 차라리 볼이 통통한 백치와 같은 귀머거리 소년이었다. 대장은 그러한 어린 수장에게 놀라운 인내력과 자제력을 발휘했다. 광장의 경비를 성군들에게 맡기고, 대장은 통고가 끝나자 빠른 걸음으로 광장을 떠나갔다.

아침이 가고 태양은 머리 위로 높이 솟았다. 모든 그림자가 짧아졌고 대지는 숨을 막는 무자비한 열기로 뒤덮였다.

광장의 시간은 오래 전에 멎어버렸다. 그것은, 햇볕 속에 무릎을 꿇고 일체의 움직임을 멈춘 승려들에 의해 정지되었다. 광포한 하늘의 태양까지도 그들에게는 무력한 듯했다. 그들이 광장에 허용한 것은 침묵과 빛과 응축된 정적뿐이었다.

대장은 약속한 정오에 어김없이 광장에 나타났다. 그의 군화가 깔개 돌에 올리자 광장에는 다시 멈추던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늘에서 쉬던 성군 병사들이 자기 위치로 바쁘게 돌아갔다. 대장을 수행한 두 명의 검은 모자 대원들은 곧장 승려들이 꿇어앉은 코끼리상 앞으로 다가갔다.

보리수 그늘 밑에 앉아 있던 소년도, 몸을 일으켜 광장으로 나왔다. 그는 어젯밤 이후 줄곧 혼자 사원과 숲을 배회했다. 대장도 그를 찾지 않아서 소년은 모처럼 완전히 자유로왔다.

꿇어앉은 많은 승려들 중에서, 갑자기 5명의 승려가 돌 바닥으로부터 일으켜 세워졌다. 그들은 검은 모자 대원들에 의해, 열에서 이탈하여 수장이 앉은 차일 앞으로 인도되었다. 뜨겁게 달구어진 깔개 돌 위에 그들은 다시 한번 긴 횡렬로 앉혀졌다.

수장은 들으시오.

대장이 돌연 사울을 향해 엄숙하게 입을 열었다. 사울이 여전히 눈을 감고 있어서 대장은 잠시 기다렸다. 그러나 끝내 눈을 뜨지 않자 대장은 다시 말을 이었다.

두 차례에 걸친 나의 경고를 당신은 모두 묵살해버렸소. 그러나 나는 아직도 당신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고 싶소. 당신 앞에는 당신을 따르는 다섯 명의 승려들이 앉아 있소. 당신이 끝내 코브라를 두둔하면 이들은 내 명령에 따라 차례대로 사살될 거요. 처형은 당신이 신호만 하면 지금이라도 곧 취소될 수 있소. 그러나 끝내 고집을 피운다면 이들뜬 바로 이 자리에서 순서대로 사살될 뿐이오. 나는 당신이 생각할 수 있도록 삼십초의 시간밖에 줄 수가 없소. , 그럼 시작하겠소. 결심이 섰으면 신호를 해주시오.

사울의 눈은 떠지지 않았다. 대장은 곧 왼팔을 들어올려 팔목시계의 숫자판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광장의 시간은 다시 정지했다. 어느 틈에 검은 모자 대원은 권총을 뽑아 첫 번째 승려의 관자놀이를 조준했다. 갑자기 그 장면은 광장 전체를 외설스럽게 지배했다. 그것은 결코 보고 싶지 않은 구토를 유발하는 외설한 장면이었다.

강렬한 폭발음이 울리고 외설스러움은 사라졌다. 뜨겁게 달구어진 깔개 돌 위에 날계란을 던진 듯한 약간의 오물이 흩어졌다. 대장이 다시 입을 열었지만 사울에겐 여전히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잠시 후 두 번째 폭발음이 울렸고 그때도 역시 깔개 돌 위에 오물이 튀었다. 폭발음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고 대장은 곧 광장을 떠났다. 무의미한 살인이라는 깨달음이 대장을 겨우 진정시킨 것이었다.

시체를 치우던 병사 하나가 소년의 옆에서 가벼운 구토를 시작했다. 그는 구토로 눈이 충혈된 채 소년을 향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나는 오늘을 기억할 것이 다. 두고 보라, 파란 눈의 살인자를,.....

소년은, 위급을 알리는 마을의 날카로운 새벽 종소리에 눈을 떴다. 눈을 뜨자 소년에게 닥친 것은 앞을 막는 짙은 안개였다.

마을 복판의 광장을 향해 몇 명의 어른들이 뛰어가고 있었다. 너무 짙은 안개

때문에 그들은 허둥허둥 불편하게 귀고 있었다.

길 위에 깔린 자갈들이 이슬과 안개로 흠뻑 젖었다. 소년은 늪지대의 오늘 날씨가 유난히 좋을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는 오늘 대장을 버려둔 채 혼자 성도로 돌아갈 작정이었다.

광장으로 짐작되는 전방으로부터 종잡을 수 없는 소음이 안개를 뚫고 들려왔다. 인간들의 목소리가 분명한데 그것들은 한데 혼합되어 전혀 다른 소리로 들려왔다. 아주 가까이 다가갔지만 사정은 조금도 좋아지지 않았다.

아저씨, 무슨 일이죠? 갈색 구렁이가 갓난애라도 삼켰나요?

보렴, 네 눈으로. 외국 병정이 칼맞아 죽었구나.

어른들의 굵은 허리통들이 소년의 시야를 답답하게 가로막았다. 그래서 소년은 몸을 낮추어 어른들의 다리 사이로 땅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군용 비옷 위에 엎드려 있는 것은 소년의 친구인 파란 눈의 대장이었다. 옷이 벗기운 대장의 등에는 단검이 깊이 박혀 손잡이만 겨우 보일 뿐이었다. 낮췄던 몸을 재빨리 일으킨 후 소년은 천천히 어른들 사이를 빠져 나왔다.

안개에 몸을 숨길 수 있다는 것이 소년에게는 무척 다행했다. 그는 광장의 중심부를 벗어나 통나무이 쌓인 야적장 쪽으로 빠져 나왔다. 갓 베어낸 생나무로부터 나뭇진 냄새가 신선하게 풍겨왔다.

그놈을 도랑에서 건져냈다더군. 등판에 칼을 꽃은 건 코브라의 짓이 틀림없을까?

붙임성 있고 칼칼한 음성이 야적장 한곳으로부터 곧바로 날아왔다. 소년이 주춤 발을 세우자 다른 음성이 그 뒤를 따랐다.

누구의 짓인가는 문제가 아니야. 그놈이 죽어 없어졌다는 게 지금의 우리한텐 중요한 거야!

자넨 코브라를 어떻게 생가하나? 코브라는 정말 살아 있는 실제의 인물일까?

네 명의 코브라가 잡혀 죽었지만 그때마다 코브라는 버젓이 새루 생겼어. 진짜 가자는 따져서 뭘해 ? 필요한 때 나타나면 그게 모두 진짠 게야.

사원으로 향하는 큰길로 휘어지자 안개 속에서 돌연 밝고 우렁찬 대사원의 종소리가 들려왔다. 갑자기 소년의 전신으로 예기치 않은 힘찬 활력이 뻗어나갔다.

대사원은 살아 있었다. 그것은 바로 수장 사울의 빛나는 승리를 예고하는 종소리였다,

누군가에게 등을 떠밀리듯 소년은 새벽길을 힘차게 뛰기 시작했다. 소년의 귀에는 그제야 대장의 마지막 말이 똑똑히 들려왔다. 어젯밤에 잠자리로 찾아온 대장은 아주 우울한 표정이었다.

꼬마야, 나는 졌다. 코브라와 사울에게 완전히 패배한 거다. 이제야 나는 코브라와 사울이 나보다 월등히 강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허지만 나는 어째서 그들이 그토록 강한가를 알 수가 없다. 그들이 강해야 될 이유라고는 아무 것도 없지 않은가?

소년은 이제 그 이유를 큰 소리로 말할 수 있었다. 그들이 당신보다 강했던 이유는 그들에겐 걸어야 될 큰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홍성원(洪盛原: 1937- ) 무사와 악사

 

경남 합천 출생. 고려대 영문과 중퇴. 1964<빙점 지대><한국일보> 신춘문예에, <기관차와 송아지><세대> 창간 1주년 기념 문예 현상 공모에, <세디 데이의 병촌><동아일보>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되어 등단함. 그는 전쟁 소설을 다루고 있으며 휴머니즘에 입각한 저항 의식으로 작품을 구성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장편 <역조><빗돌 고개>, <종합 병원>, <프로방스의 이발사>, <>, <주말여행>, <폭군>, <즐거운 지옥> 등의 단편과 <고독에의 초대>, <호두껍질 속의 외출>, <막차로 온 손님들>, <곡예사의 혁명>, <사랑 강조 기간> 등의 신문 연재 소설이 있다.

 

 

사 공 과 뱀

-홍성원

 

차가 산굽이를 홰 돌더니 밤나무가 길게 늘어선 제방 위로 올라선다. 바다다. 매미 울음소리가 귀청이 따갑도록 요란하다.

작은 포구(浦口) - 상앗대가 가로놓인 전마선 네 척이 입 구()자의 잔잔한 포구에 그림처럼 묶여 있다. 차안에서 바다 쪽을 바라보는 사람은 나와 그이 두람뿐이다. 이곳 주민들이 대부분인 승객들은 바다에서는 아무런 감동도 받지 않는다. 그들은 이곳이 삶의 터전이고 우리는 이곳에 휴가차 찾아 온 피서객인 탓이다.

포구 바깥에는 돛배 두 척이 팽팽하게 바람을 받고 어딘가로 한가로이 흘러가고 있다. 버스가 계속 제방 위로 달리고 있어서 배들은 전혀 움직이는 것 같지 않다. 그 너머로는 곶인지 섬인지, 남빛 바다 위로 많은 육지들이 듬성듬성 떠 있다. 마침 물이 나간 때여서 섬들은 수면 밖으로 오랜 세월 동안 해수(海水)에 침식된 시커먼 바위들을 번쩍이며 드러내고 있다. 검은 바위벽에 부딪치는 파도들이 쨍쨍한 햇볕 속으로 횐 포말들을 끊임없이 뿜어 올린다. 차의 엔진과 매미 울음소리로, 철썩이는 파도소리는 전혀 귀에 들리지 않는다. 돛배는 이미 시야에서 사라지고, 차창으로 바닷바람만이 싱그럽게 살갗을 간질인다.

버스가 멎었다. 마을은 전면으로 바다를 두고, 기다란 제방을 따라 얕은 산비탈에 오밀조밀 자리잡고 있다. 눈대중으로 어림잡아보니 불과 사십여 호의 자그마한 어촌이다. 초가지붕에는 거센 해풍에 날리지 않도록 사람 머리만한 크기의 돌들이 새끼줄에 묶여 주렁주렁 달려 있다. 제방이 끝나는 저쪽 갈밭으로는 거대한 철선(鐵船) 한 척이 뱃바닥을 하늘로 향한 채 큰 갑충(甲蟲)처럼 엎어져 있다. 선체가 온통 시뻘겋게 녹이 난 채 그 위로는 흰 페인트로 -반공방첩-이 쓰여 있다. 승객들이 어느 틈에 버스를 다 내리고 차안에는 나와 그이만이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버스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이가 불쑥 차장에게 말을 건넨다.

얼마나 남았나. 앞으로?

다 와갑니더.

다 와가는 줄은 알고 있어. 앞으루 몇 분이나 더 가야 되는지를 묻는 거야.

대답이 없다. 라이반을 쓴 그이의 얼굴에 다시 언짢은 기색이 떠오른다. 차장이란 한국에서는 어디를 가도 똑같은 모양이다. 무뚝뚝하고 말씨가 거칠고 때로는 승객들과 서슴없이 싸움도 한다. 그러나 그이가 언짢아하는 것은 비단 버스 차장의 불친절만은 아닌 것 같다, 그이는 이틀째로 접어든 이번 여행에 벌써 상당한 피로를 느끼고 있다.

손님들 오데서 피서 오십니꺼?

운전사가 룸미러를 통해 불쑥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 러닝셔츠 바람에 라이반을 쓴 그는 차장 못지 않게 무뚝뚝한 사내였다. 귀청이 따갑도록 카 스테레오를 틀어놓아서 우리는 이 사내에게 이미 두 차례나 그것을 꺼줄 것을 요구했었다. 그러나 그는 들은 척도 않고 아직도 귀청이 따갑게 -울산 아가씨-를 틀고 있다.

서울서 왔어요.

서울서예?

.

서울서 우지 이런 데로 오셨습니꺼? 여게는 시설도 나쁘고 해수욕장이 생긴지 얼마 안 됩니더.

시설이 안 좋다는 건 우리두 미리 알구 왔어요. 우린 조용한 장소를 찾아서 일부러 이리루 온 거예요.

, 조용하긴 조용합니더. 보이소, 저기가 바로 해수욕장입니더.

나는 고개를 돌려 운전사가 가리키는 바다 저쪽을 바라본다. 섬 같았다. 송림이 짙푸른 이쪽 머리에 방갈로 비슷한 건물 두 채가 서 있었고, 그 위쪽으로는 눈부신 백사장에 텐트 서너 개가 드문드문 흩어져 있다. 오후 세시의 한낮인데도 해변에는 욕객이 불과 칠팔 명이 있을 뿐이다. 이쪽과 저쪽으로 나룻배가 왕래하는지, 배 한 척이 바야흐로 저쪽 해안에서 떠나려 하고 있다. 배에는 사람들이 십여 명쯤 타고 있었고, 그 중에도 파라솔 네댓 개가 울긋불긋하게 유난스레 돋보인다. 버스는 곧 도선장으로 짐작되는 어느 허름한 주막 앞의 넓은 공지에 서서히 멈춰 선다.

다 왔입니더. 내리시이소.

짐들을 들고 버스에서 내리니 나룻배는 그제야 저쪽 해안에서 이쪽으로 오고 있다. 마침 가까이에 수박과 참외를 늘어놓은, 원두막 같은 것이 제방 끝에 서 있다. 이쪽은 석축(石築) 위로 고여놓았고 저쪽은 기둥 두개가 바다까지 길게 교각처럼 내려 뻗었다. 높이가 약 오륙 미터쯤 되는 기둥은 푸는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흰 물거품을 철썩철썩 뿜어 올린다.

버스에서 불과 십여 미터도 안 되는데, 그이는 원두막에 이르자 땀이 이미 겉옷에까지 흥건하게 내배었다. 서울에서는 전혀 피로를 모르던 그이였는데 웬일인지 이번 여행에는 유난스레 피로와 곤욕을 느끼는 듯하다. 그러나 원두막 그늘 속으로 들어가니 땀은 해풍에 날려 삽시간에 피부에서 잦아든다. 나는 그이에게 수건을 건네주며 난간에 두 손을 짚고 그이를 유쾌하게 돌아본다.

어때요, 시원하죠 ? 이 바람은 멀리 태평양을 건너온 바람이에요.

여보. 조심해. 그렇게 엎드려 있다가 난간이 부러지면 큰일나요.

나는 난간에서 몸을 일으키며 주먹으로 난간 각목을 탁탁 장난 삼아 두드려 보인다.

끄떡없어요. 헌데 웬일이죠? 피로가 아직두 덜 풀리셨어요-

아냐, 다 풀렸어. 바다를 보니까 모든 피로가 다 풀리는군.

거짓말이다. 나는 그이의 얼굴 표정 하나로도 현재 기분이 어떻다는 것을 훤하게 알 수 있다. 이상하다. 여행 후 나는 그이의 얼굴에서 전에는 결코 본 일이 없는 이상한 변화들을 문득문득 발견했다. 나는 그이의 이런 편화들을 처음에는 단순히 여행에서 오는 피로감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조심스레 그이의 행동을 살펴보면 그것은 단순한 육체적인 피로감만은 아니었다. 나는 그이가 서울에서는 상당히 정열적으로 늠름했던 기억들을 가지고 있다. 그이가 교편을 잡고 있는 학교 강단에서는 물론이고 강연회 , 발표회 , 세미나 따위에서 그이는 언제나 자기의 논리에 박력이 있고 정열적이었다. 그러나 이런 그이의 박력이 이번 여행을 시작한 이후로는 전혀 그이에게서 느껴지지 않고 있다. 물론 나는 그이의 박력을 그이가 종사하고 있는 학회(學會) 밖에서까지는 기대하지 않고 있다. 그이가 학자의 길을 택한 이상. 그이로서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허지만 아무리 그렇다고는 해도 나로서는 그이의 무기력에 적지 않은 신경이 쓰여진다. 그것은 이번 여행을 내가 주장하여 출발했다는 이유도 있으나 그이의 전부를 사랑하는 나는 그이가 서울 밖에서도 강연회 못지 않게 정열적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사실 그이는 시골의 들길이나 장터에서 바라보면 이상할 정도로 내 눈에 낯설어 보인다. 피부가 회고 약간 살이 오른 그이의 모습은, 시골의 강한 햇볕 속에서는 무언가 쩔쩔매는 듯한 극히 부조화한 인물로 보이는 것이다. 그것은 도시 인텔리의 창백한 무기력과는 약간 다르다. 농촌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그이는 농촌과는 능히 친숙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이는 도회생활에 권태를 느끼고 거의 입버릇처럼 농장경영을 말해온 터다. 도회지에서만 줄곧 성장해온 나로서는 그이의 이런 희망이 때로는 무척 부담스럽게 느껴진 때도 적지 않다. 헌데 농촌에 대해 이렇게 강한 노스탤지어를 품어온 그이가 막상 쨍쨍한 시골의 들길로 내려와서는 이상할 정도로 매사에 권태와 퍼로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서울 근교의 등산이나 하이킹에서는 그이는 한번도 이런 권태를 드러낸 일이 없다. 언제나 밝고 명랑한 표정으로 많은 동료 하이커들 중에서 그이는 단연 원기왕성한 리더가 되었던 것이다.

나룻배가 어느 틈에 바다를 건너 이쪽 도선장에 사람들을 부려놓는다. 십여 명에 달하는 많은 남녀들은 모두가 함께 놀러온 일행들인 모양이다. 짐꾼 두 명이 솥단지와 화덕을 지게에 진 것으로 보아 아마 그들은 밥까지 해먹으며 이삼일 해수욕장에 머물렀던 모양이다. 파라솔을 든 세명의 여인들은 첫눈에 보아서도 술집 작부들이 분명하다. 화장한 얼굴에 땀들이 내배어서 그녀들은 하나같이 분을 뒤집어쓴 도깨비 같은 얼굴들이다. 배를 내리며 남자들이 집적이자 그녀들은 째지는 듯이 비명을 내지르며 난잡스레 웃고 있다. 잠시 후 그들은 배에서 내려 석축 사이의 돌층계를 올라와 버스가 멎어 있는 넓은 공지로 왁자지껄 기어오른다.

워트기 되는기여? 이 버스 곧 떠날랑가?

먼저 올라온 양복장이 네댓 명이, 운전석에서 참외를 씹고 있는 운전사에게 묻고 있다. 전라도와 경상도의 접경 지대인 이곳에는 말씨도 전라도 경상도가 판이하게 서로 다르다. 아마 이들은 이곳에 인접한 전라도 지방에서 온 듯하다, 술들이 벌겋게 오른 그들은 버스에 오르자마자 요란스레 노래를 시작한다.

어얼씨구, 저얼씨구 차차차, 지이화자 조오쿠나 차차차--- 만화바앙창 ---

나는 그이가 짐들을 집어드는 것을 보고 곧 뒤따라 원두막에서 나와 돌층계 쪽으로 다가간다. 층계는 가파르게 밑으로 뻗어 기다란 장방형의 시멘트 제방에 닿아 있다. 제방에 닿은 나룻배에는 사공으로 짐작되는 청년 한 명이 닭고기 비슷한 것을 우적우적 씹고 서 있다. 그는 전신이 청동 빛으로 그을러 있고 몸에는 수영 팬티 한 장과 새까만 라이반을 자랑하듯이 산고 있다. 그이가 곧 제방 위에서 사공을 향해 입을 연다.

우릴 좀 건네주시겠소?

예 타이소.

, 짐 좀 받아주시오.

청년은 닭뼈다귀를 바닷속으로 꿱 던지고는 두 손을 썩썩 팬티에 문지르며 그이의 손에서 백 두개를 받아들었다. 땀에 번쩍이는 사공의 근육이 내 눈엔 무척 아름다와 보인다. 나는 아직 영화나 사진 외에서는 이렇게 육중하고 아름다운 사나이의 근육을 본 밀이 없다. 그는 마치 대좌 위에 섰던 동상이 갑자기 피가 통해서 껑충 지상 위로 내려온 듯한 착각마저 일으킨다.

배가 움직인다. 바다가 아직 얕은 탓인지 사공은 노 대신에 상앗대로 갯바닥을 밀고 있다. 상앗대를 미는 사공의 전신으로 다시 눈부신 힘살들이 솟아오른다. 그이가 사공에게 무어라고 말을 건다. 그러나 나는 어쩐 셈인지 그이의 말을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다. 배는 이미 제방을 떠나 선수를 곧장 맞은편 해안으로 향하고 있다. 볕이 따갑다. 마치 지글지글 끓는 기름이 살갗에 와 짝 끼얹어지는 느낌이다. 귀가 멍하고 소름이 돋아서 나는 잠시 넋 나간 듯이 앉아 있다. 이상하다, 그이의 희멀건 목덜미를 바라보며 나는 갑자기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다. 파리 한 마리가 잽싸게 날아와 땀으로 번쩍이는 사공의 어깨에 내려앉는다. 나는 다시 시선을 돌려 그이의 두 겹으로 겹쳐진 횐 목덜미를 바라본다. 추하다. 왈칵 구토증이 치받쳐서 나는 재빨리 침을 한 모금 삼켜본다. 소용없다. 구토증은 어느 틈에 빈혈증으로 변해, 나는 도망치듯이 또 한번 사공의 몸을 바라본다. 해방이다. 구토증은 씻은 듯이 사라지고 나는 쩌릿쩌릿하게 이상한 희열이 솟는 것을 의식한다.

그이와 사공은 아직도 이야기를 계속중이다. 무슨 이야길까? 내게는 이제 노를 젓고 있는 사공의 몸밖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구토증을 피하기 위해 사공을 보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타이르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거짓이다. 나는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무엇을 알고 있는가? 나는 그이를 배반했다. 이것은 순간적으로 나를 압도한 배반으로서 화농된 상처에 바늘 끝이 와 닿는 듯한 지극히 통렬하고 상쾌한 상처다. 그러나 또 하나의 확인된 상쾌감은 이 상처가 조만간에는 치유도 회복도 불가능하다는 확인이다. 내게는 지금 사공과 햇볕이 함께 내리치는, 통렬하기 그지없는 매저키즘만이 생생하게 감촉될 뿐이다. 아아, 얼마나 협소하게 갇혀만 지낸 나의 의식인가 ? 왜 나는 이런 통렬함을 두터운 일상의 껍질 속에서 움츠리고 피해만 왔었던가? 그러나 이제는 해방이다. 그이는 이미 나의 의식에서는 종이 한 장의 무게조차도 지니지 않고 있다. 나는 그이를 배반한 것이 아니고, 고이와 따를 분리시켜 생각할 수 있게 해방되었을 따름인 것이다!

현기증이 씻은 듯이 가신 나는 어느 틈에 카메라를 들어 사공의 전신을 조준하기 시작한다. 협소한 렌즈 속에 갇힌 사공은 나를 다시 한번 황홀하게 만들었다. 그는 이제 렌즈 속의 밀실에서 은밀하게 나와 밀회를 하고 있다. 완두콩 크기의 사공의 몸에는 여전히 눈부시게 아름다운 근육들이 움직이고 있다. 나는 사공을 가까운 거리에서 잡기 위해 렌즈를 좀더 가까이 사공 쪽으로 이동시킨다. 렌즈 속의 사공의 몸이 기우뚱하고 한쪽으로 기운다. 그러나 평형을 유지하려던 나는 렌즈 속에서 갑자기 사공을 잃어버렸다. 나는 내 몸 전부가 어딘가로 가볍게 날려가는 듯한 상쾌감을 느꼈다. 누군가가 고함을 친다. 주위가 갑자기 캄캄해져

서 나는 부지중에 카메라를 놓쳐버렸다.

물 속이었다. 배의 한쪽 끝이 부옇게 눈앞을 막았고. 그 사이로 검은 물체가 힘차게 나를 향해 물장구를 치고 있다. 나는 그것이 사공임을 알았고, 사공임을 알게 되자 나는 또 한번 해방된 자신을 발견했다. 나는 일부러 물에 빠진 것이다. 렌즈 속의 사공만으로는 나는 만족할 수가 없었던 때문이다.

힘찬 팔이 내 몸에 감기더니, 나는 돌연 눈부신 수면 위로 솟아올랐다.

괜찮십니꺼?

.

사진기는 우쨌입니꺼?

물 속에서 놓쳐버렸어요.

. 내 어깨를 두 손으로 잡으이소. 내가 헤엄을 칠끼니까 부인은 나만 잡구 있어야 됩니더.

배와 나와의 거리는 약 오륙 미터쯤 벌어져 있었다. 아마 사공이 물 속으로 뛰어들자 배가 저절로 해류를 따라 떠내려간 모양이다. 사공의 어깨를 두 손으로 잡은 나는, 사공에게 완전히 업힌 듯한 자세가 되었다. 물살을 차는 사공의 발이 나의 배 밑에서 격렬하게 움직이고 나는 그의 육중한 어깨에서 힘찬 힘살의 재빠른 움직임을 느낄 수 있다,

사공이 이윽고 뱃전에 다다라. 나의 허리를 두 손으로 밀어 올린다. 그것은 순간적인 동작에 불과했지만, 내게는 전율이 흐를 만큼 잊을 수 없는 감미로운 접촉이다.

조심해야지, 어떻소 여보? , 어서 이리루 올라와요.

나는 그이의 손을 잡고 가볍게 배 위로 기어올랐다. 그이가 내게 타월을 건네주어 나는 기침을 하며 얼굴에서 물기를 닦았다. 그러나 나는 그이보다는 물 속으로 되돌아간 사공 쪽이 더욱 궁금하다. 그는 나를 배 위로 올리고는 카메라를 찾기 위해 물 속으로 깊이 자맥질을 하고 있다.

어쩌다 발을 헛디뎠소? 맥주병처럼 꼿꼿하게 가라앉더군?

그이는 웃으면서 타월을 빼앗아 내 머리에서 물기를 닦아준다. 그러나 나는 이 순간에는 이미 그이의 말에는 아무 주의도 기울이지 않았다. 그이는 어느 틈엔지는 알 수 없지만 내게는 벌써 전혀 무관한 타인이 되어 있었다.

 

우리가 숙소를 정한 것은 그로부터 약 삼십 분 후다. 숙소는 뒤쪽으로 울창한 잡목 숲을 거느리고 섬에서는 약간 높은 위치에서 백사장을 훤하게 바른쪽으로 굽어보고 있다. 방 두개에 욕탕까지 구비한 방갈로는 우리에게는 기대 이상으로 조용하고 아늑하다.

짐을 풀고 마른 옷으로 갈아입은 나는 그이를 혼자 방갈로에 남겨둔 채 숙소를 떠나 길 쪽으로 내려왔다.

이상한 해수욕장이다. 공동 탈의장과 음식점 따위들은 모두 이쪽의 축대 위에 자리잡고 있고 정작 욕장인 백사장은 이곳에서 무려 이백 미터나 떨어져 있다. 시설이 빈약한 것은 이미 알고 찾아온 나지만, 막상 초라한 음식점과 잡상들을 둘러보니 새삼스레 내 주위가 허전한 듯이 느껴진다. 탈의장 옆의 엉성한 기와집 한 채가 바로 이 해수욕장의 유일한 숙박업소이자 음식점으로 되어 있다, 잡상들은 대부분이 리어카 위에 횐 광목으로 차일을 둘러치고 그 차일 밑의 초라한 목판 위에 소주와 과자 따위의 값싼 상품들을 한산하게 늘어놓고 있다. 그러나 이 잡상들 역시 모두 합쳐서 다섯 개가 고작이다. 수박이나 풋사과를 늘어놓은 광주리 행상까지 모두 합친다 하더라도 이 욕장의 장사꾼은 불과 열 손가락에도 못 미칠 정도인 것이다

탈의장 앞을 지나 행상들이 늘어선 그늘로 들어서니 느닷없이 등뒤에서 이상한 음향이 날카롭게 귀청을 때린다. 흔히 스피커를 처음 작동할 때 볼륨을 잘못 틀어서 생철을 긁듯이 날카롭게 울리는 음향이다. 음향은 세 개의 고만고만한 텐트 중에서 횐 페인트로 O()라고 쓴 바른쪽 텐트에서 울린 것이다. 이곳에도 역시 유흥장소에서의 불상사를 막기 위해 경찰관이 배치된 모양이다. 스피커는 곧 경상도 억 양으로 고성 방가를 삼가달라는 따위의 해수욕객 준수 사항들을 지루하게 늘어놓고 있다.

나는 이 스피커가 나를 위해 울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내가 그렇다고 생각한 것은 스피커의 쟁쟁한 음향이 줄곧 내 뒤를 쫓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피커는 포타블로서 서울에서는 흔히 역전에서 행상 따위들이 손으로 들고 외치는 소형이다. 스피커를 입에 댄 사나이는, 아래는 수영 팬티에 위에는 얼룽얼룽한 알로하 셔츠를 입고 있다.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좀더 억양을 높여 보란 듯이 외쳐댄다, 그러나 자세히 귀를 기울이니 내용은 어느 틈에 해상으로 침투하는 간첩에 대한 경계요령을 떠들고 있다. 간첩은 휴전선으로만 넘어오는 것으로 알았는데 태평양을 눈앞에 둔 이 나라의 남쪽 끝에서도 올라오는 모양이다.

스피커에 쫓겨 행상들 사이를 벗어난 나는 시원한 해풍을 마주 받으며 석축 끝에 서서 백사장 쪽을 바라보았다. 상당히 넓다. 물이 들었을 때는 어떨는지 모르지만 지금으로서는 백사장의 길이가 무려 삼 킬로는 됨직하다. 바다는 질펀하게 청색으로 뻗은 위에 간간이 구름 그림자가 드리워져 담청색으로 진하게 얼룩이 져 있다. 백사장 중간에는 칠팔 명의 욕객들이 세 개의 텐트 사이를 할 일없이 어정대고 있다. 텐트의 하나는 눈부신 오렌지색이고 둘은 부드러운 초록색이다.

나오셨습니꺼.

나는 몸을 돌려 축대 밑에 선 사나이를 내려다보았다. 사공이다. 여전히 알몸에 라이반을 쓰고 그는 무언가를 꾸적꾸적 씹고 있다.

, 잠깐 바람 좀 쐬이러 내려왔어요.

어떻십니꺼, 방가로는?

썩 좋아요, 아깐 참 감사했어요.

그는 두어 발짝 서 있던 곳에서 물러서더니 훌쩍 몸을 솟구쳐 내가 서 있는 축대 위로 떠올랐다. 동작이 어찌나 민첩하고 가벼운지, 흡사 먹이를 덮치는 표범처럼 날렵하다.

몬찾았입니더.

?

사진기 말입니더.

, -

선생님은 같이 안 내려오셨입니꺼?

, 몸이 피곤하시다구 그인 지금 잠을 자구 있어요.

사공은 가지런히 이틀을 드러내고 소리 없이 씩 웃는다. 역시 아름답다. 나는 갑자기 고동이 뛰고 얼굴이 왈칵 붉어졌다. 그는 알 턱이 만무하지만 나는 별안간 사공의 시선이 두렵게 느껴진다. 어쩌면 그도 내 허리를 밀어 올릴 때, 내게서 무언가를 감촉했는지 알 수 없다. 잘룩한 그의 허리의 근육이 숨을 쉴 때마다 소리 없이 오르내린다.

사진기는 나중에라도 제가 꼭 찾아드리겠입니더.

어떻게 찾는다는 거예요?

이 근방 물 속은 제가 훤하게 알고 있입니더. 오늘 밤중에 큰물이 빠지마 제가 꼭 건져낼깁니더.

밤에 다시 물이 빠지나요?J

, 새벽 두 시쯤에 다시 물이 빠질깁니더.

나는 햇볕을 피해 해송이 늘어선 그늘로 옮겨 섰다. 바닥에 패각이 가득이 깔려 있어서 발짝을 옮길 때마다 아삭아삭 패각들이 부서진다.

지금은 손님들이 없는 모양이죠?

, 아직 해가 있지 않십니꺼.

이 섬, 대체 크기가 얼마나 되요?

rll.는 아무도 모릅니더. 생각해 보이소. 물이 끊임없이 들고 나는데 그걸 우찌 알깁니꺼.

물이 들 때는 작아지구 물이 빠질 땐 넓어진단 말이죠?

맞십니더.

길이 어느 틈에 두 갈래로 나뉘어 하나는 도선장으로, 하나는 비스듬히 방갈로 위쪽의 산으로 뻗어 있다.

이리루 가면 어디루 가죠?

등대터루 가는 길입니더.

등대두 있나요. 이 섬에?

전에 무인 등대가 하나 있었는데 지금은 고마 없앴입니더.

바쁘시지 않음 절 좀 그리루 안내해주시겠어요?

그랍시더.

칡덩굴이 길에까지 내려 뻗은 것으로 보아, 이 길은 오래 전에 인적이 끊긴 모양이다, 길바닥에는 푸석한 부식토가 깔려 있고, 그 위로는 인근에서 떨어진 아카시아 가시가 질펀하게 널려 있다.

까시가 많은데 맨발루 걸으셔두 괜찮겠어요?

괘안십니더, 군살이 붙어서,,,,,,

길은 한동안 아카시아 숲으로 뻗어 올라가더니 바위투성이의 소로를 지나치자 다시 빽빽한 솔숲으로 연결되었다. 상당히 가파르다. 길 왼쪽으로는 소나무 사이로 시퍼런 바다가 번쩍번쩍 햇빛에 이랑을 반사한다. 해벽에 부딪는 파도소리가 철썩철썩 아득하게 들려왔으나 벼랑 턱에 가리운 탓으로 솟구치는 물기둥은 볼 수가 없다.

등대가 보이기 시작했다. 길이 가파라서 숨이 턱에 닿았으나 해풍 탓인지 몸에 땀은 나지 않는다. 등대는 과연 오래 천에 폐기된 듯 횐 회칠이 벗겨진 채 공장 굴뚝처럼 멋없이 우뚝 서 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등대 하단부에 사람 하나가 겨우 들어갈 만한 작은 구멍이 뚫려 있다. 사공이 구멍 앞에 쭈그리고 앉으며 나를 힐끗 올려다본다.

여게 등대 꼭대기까지 돌층계가 있입니더. 한번 올라가 보실랍니꺼?

나는 사공과 나란히 구멍 속을 들여다본다. 어둡다. 뭉클한 습기가 얼굴에 끼치고 속에서는 끊임없이 우룽우룽 하는 둔중한 음향이 들려온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사공은 다시 구멍 앞에서 물러선다.

이쪽으로 와 보이소. 여기가 전망이 제일 좋십니더.

등대에서 우측으로 십 미터쯤 내려가니 눈앞으로 솔숲이 빽빽이 우거진 두어 간 넓이의 공지가 나타난다. 공지 끝은 벼랑으로서 높이가 약 삼사미터쯤 됨직하다. 석양을 등으로 받고 있어서 벼랑 밑은 온통 컴컴하게 그늘이 져 있다. 내가 무심코 벼랑 끝으로 다가가자 사공이 갑자기 내 팔을 확 잡는다.

잠깐! 저걸 보이소,,,,,,

나는 후딱 발을 세운 채 사공이 가리키는 삼 미터 전방을 바라보았다. 뱀이다. 입에 두툼한 걸레 같은 것을 물고 있는 뱀은 우리가 발을 멈춰 세우자 고개를 꼿꼿이 우리 쪽으로 향해 쳐든다.

두꺼비를 잡아묵고 있입니더. 입을 보이소. 두꺼비 발이 나와 있지 않십니꺼.

나는 숨이 막혔다. 무서워서가 아니다. 뱀은 과연 두꺼비를 다 삼킨 채 목을 탱탱히 팽창시키고 발끝만 약간 입 밖으로 베어 물고 있다. 처절하도록 아름답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뱀이 두꺼비를 잡아먹는 것도 처음이거니와, 뱀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낀 것도 내겐 이것이 처음이다. 어깨서 뱀이 아름답게 보였는지는 나도 모른다, 내겐 다만 눈부신 햇볕 속에 비늘을 번뜩이며 두꺼비를 물고 있는 뱀이 귀청이 멍할 정도로 숨막히게 아름답고 처절할 뿐이다.

사공이 문득 내 곁을 떠나 가까운 곳에서 나뭇가지 하나를 꺽어 들고 돌아온다. 그는 잠시 내 곁에 서 있더니 뱀을 원점으로 하여 빙글빙글 맴을 돌기 시작한다.

뭘 할려구 그러세요?

잡아야 안되겠습니꺼?

우리가 피하면 될 텐데 왜 굳이 잡을려구 하세요?

아직 모르시는 모양이구마요. 두꺼비를 잡아 묵은 뱀은 약이 기맥히기 좋십니더.

약이 돼요?

.

나는 까닭은 알 수 없었지만 사공을 갑자기 말려야 한가고 생각했다. 그는 지금 뱀과 자신이 한 몸인 것을 모르고 있다. 나는 뱀을 처음 본 순간, 내 몸이 무언가에 삼켜지는 듯한 통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말하자면 나는 두꺼비가 된 채 등대의 컴컴한 동굴 속으로 한없이 한없이 삼켜지고 있었던 것이다.

뱀을 그냥 놔두세요 ! 돈이 필요하시다면 저 뱀을 내가 사겠어요.

내 음성이 컸던 탓인지 사공은 잠시 멈칫하며 발을 세운다. 나는 문득 사공을 향해 바른쪽 손을 조용히 내밀었다.

이리 줘요, 그 회초리.

와 그라십니꺼?

저 뱀을 내가 살 테니까 잡지 말라는 이야기예요.

와 몬잡게 하십니꺼? 돈 주고 사신다카이 우신 잡아야 안되겠입니꺼?

아니에요. 내가 산다는 것은 저 뱀을 그냥 놔주라는 뜻이에요.

놔주라꼬예?

.

사공은 나를 향해 빙긋 웃더니, 다시 슬몃슬몃 뱀의 주위를 돌기 시작한다. 어쩔 수가 없다. 그는 나나 다른 세계에 머물러 있고, 나와는 전혀 무관한 튼튼한 울 속에 갇혀 있다. 나는 그와 나와의 벽이 어떠한 것으로도 무너질 수 없는 것임을 깨달았다.

사공이 이윽고 뱀에게 다가가 어느 틈에 뱀을 후려치고, 뱀의 목 부분을 두 손가락으로 잽싸게 잡아 올린다. 뱀은 사공에게 목을 잡힌 채 하얀 혓바닥을 뒤집으며 꾸물꾸물 수직으로 묘한 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것 역시 나의 눈에는 뜻밖으로 아름답다. 뱀의 힘살과 사공의 힘살이 서로 다투듯이 격찬 대결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죽이진 마세요.

죽이다이요.

어떻게 하실 거예요, 이젠?

산 채로 항아리에 담아 술을 부어놓을낍띠더.

그렇게 해놓으면 약이 되나요?

. 뱀이 폭 삭으마 약이 아주 기막히게 좋십니더.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사공과 뱀을 번갈아 바라본다. 오버랩이 시작된다. 불과 한시간 전에 사공을 처음 본 순간부터 시작된 의식의 변화다. 그것은 햇볕이 쨍쨍한, 기다란 시간의 한 토막에서 불현듯이 시작되었다. 너무나 빠른 해방감의 확산에 라는 지금 현기증을 느낄 정도다. 햇볕, 바람, 귀가 멍한 정적과. 그 안에서 힘차게 움직이던 사공의 구리 빛 근육들만이 살아 있다. 확실한 것은 고것의 시작뿐 나는 그것의 동인(動因)을 알 수가 없다. 아마 나는 앞으로는 어떠한 평온도 누릴 수가 없을 것이다. 나는 모든 과거를 한꺼번에 잃은 대신, 그것의 보상으로는 방활과 번뇌와 지족한 외로움을 얻었을 분이다. 서울은 이미 헐거운 껍데기에 불과하다. 그곳에서 쌓았던 모든 재산들, 살찐 피부, 폭신한 안락의자, 골든 아워의 텔레비전 프로, 전기세 고지서, 뻐꾹 시계, 커피맛, 그이의 논문이 실린 장중한 장정의 논문집, 온실, 친구의 초대, 그이의 생일. 결혼 기념 일. 이런 것들은 이제 나를 묶는 단단한 족쇄에 불과하다. 어째서 나는 이렇게 되었을까? 아니 그것은 지금까지는 의식의 어느 모서리에 끼여 있다가 이제야 튀어나왔는가 ? 분출된 의식들은 걷잡을 수가 없다. 나는 한시간 사이에 그이를 사랑하는 남편으로부터, 한사람의 살진 타인으로 전락시켰다. 그러나 그이 가 차지했던 자리에 대신 메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나는 이 공허한 빈자리를 어떠한 것으로도 메꿀 수가 없는 것이다.

 

모기장 저쪽으로 그이의 횐 상체가 희미한 달빛을 받아 우유 빛으로 부옇게 돋보인다. 숙취다. 좀체 코를 골지 않던 그이였지만 오늘은 피로 탓인질 입술까지 요란하게 불고 있다. 몇 시나 됐었을까? 달이 중천에 떠 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이미 자정이 훨씬 지난 모양이다. 약을 네 알이나 삼켜보았으나 의식은 바늘에라도 찔리운 듯 파들파들 경련을 하고 있다.

너무 적막하다. 땅을 흔드는 파도소리를 나는 전신으로 접맥하듯이 듣고 있다. 아마 밖은 질펀한 백사장 위로 횐 파도와 달빛만이 제멋대로 뒤채이고 있을 것이다. 갑자기 무섭다. 퍼부가 탱탱히 팽창되어 당장 터질 듯이 무언가를 갈구하고 있다. 모든 기관은 활짝 열린 채. 다가오는 칼끝을 향해 절망적으로 몸부림을 치는 것 같다. 몸을 세워본다. 사방으로 늘어진 모기장이 당장 전신으로 투망처럼 조여온다. 모기장을 벗어나 슬리퍼를 끼어 신고, 잠시 방 복판에 선 채 그이의 콧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건강한 잠이다, 나는 그이의 건강상태를 이상

하게도 소리로 감지한다. 목소리, 발자국소리, 숨소리. 소변보는 소리....., 그러나 이런 것들도 나와는 이제 무관하다. 그는 변하지 않은 옛날의 그로 남아 있다. 나는 그의 의연한 성 속에 볼모로 잡혀온 당황무계한 포로인 것이다.

잠옷의 벨트를 매고 나는 방갈로 계단을 내려온다. 계단 양쪽의 양치류 - 숲속에서 풀벌레소리가 한층 주위를 적막하게 만든다. 달빛은, 어슴푸레 달무리가 진 탓으로 생각보다는 화사하게 밝지가 않다, 나는 마치 밀회라도 하듯 황급히 계단을 내려와 얼롱얼롱한 나무그늘 속으로 몸을 숨긴다. 그렇다, 나는 숨었다. 무엇이 나를 숨게 했는지 그것을 나는 알 수가 없다. 부끄러움은 아니다. 두려움도 아니다. 나는 무엇인가를 맞으러 가고 있었고. 그것을 맞이함으로써 좀더 크게 해방되고 싶을 뿐이다.

텐트와 행상들이 아무 곳에도 보이지 않는다. 음식을 팔던 기와집 대청에는 벌레들을 꼬이기 위한 남포등 한 개가 부옇게 매달려 있다. 해풍이 우수수 나뭇잎을 흔들고 지나가자. 나는 갑자기 삶의 충일감에 사로잡힌다. 살아 있는 것은 자연과 나뿐이다. 이런 힘차고 아름다운 시간에 잠을 자야 한다는 것은 엄청난 낭비에 속한다. 나는 가끔 그이의 건강한 잠 옆에서 오소리나 올빼미 같은 야행성 동물이 되고 싶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그이는 날카로운 지성에도 불구하고 이런 때는 속악하고 미련한 한 마리의 유인원의 꼴을 하고 있다. 강단에서 명쾌하고 박력 있게 자기의 논지를 펴나가는 그이는, 눈빛이 유난히 반짝이는 아주 영리한 침팬지나 오랑우탄이다.' 그이는 다만 몸에 털이 없을 뿐. 정신없이 잠을 잘 때는 지극히 태평무사한 오랑우탄이 되는 것이다.

백사장은, 물이 멀리 빠져서 도선장이라고 믿어지는 곳도 분간할 수가 없을 정도다, 슬리퍼를 끼고 나온 나의 발등에 해송(海松)의 바늘 같은 낙엽 이 따끔따끔 침을 놓는다. 가끔 해풍이 잠옷의 앞자락을 헤치고 하체로부터 가슴까지 섬찍한 냉기를 전해준다. 이것은 이질감이 아니고 폭 넓고 부드러운 자연의 어루만짐이다. 나는 자연을 손을 뻗어 찾는 대신 자연과 어느 틈에 은밀한 교섭을 하고 있다.

등대가 서 있는 벼랑 아래쪽에 문득 어슴푸레한 등불 하나가 떠 있는 것이 보인다. 등불은 배 복판의 작대기 괄에 달려 있고, 밴 안에는 노와 돗대뿐 정작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이 나타났다. 사공이었다. 자맥질을 방금 끝낸 그는, 한 손으로 뱃전을 잡고, 한 손으로 갈구리 같은 것을 배 위로 던져 넣는다. 얼굴 전면에 번쩍이는 것은 잠수부들이 사용하는 수경(水鏡)인 모양이다. 사공은 수경을 머 리 위로 밀어 올린 채 잠시 뱃전에 매달려 숨을 크게 몰아쉬고 있다. 가슴이 뛴다. 나는 무의식을 가장했지만. 실은 사공을 찾아 이곳에까지 나온 것이다. 변이는 이미 오래 전에 시작되었으나 내게는 아직도 완강한 습관의 벽이 남아 있다. 잠옷의 벨트를 풀기까지 약 이삼 분의 시간을 허비했다. 물은 허리까지 잠겼을 때는 차다고 느꼈으나 일단 수영을 시작하자 오히려 부드러운 온기를 전해준다. 목측(目測)으로 약 이십 미터라고 생각했던 배는, 그보다는 거의 두 배 가까운 거리에 떠 있다. 사공은 내가 배 쪽으로 접근하는데도, 내 쪽으로 등을 돌린 채 다시 잠수할 태세로 수경을 눈 위로 잡아 내린다. 나는 소리를 치고 싶었지만 숨이 차서 잠자코 수영을 계속했다. 내가 뱃전에 손을 댄 순간과, 사공이 다시 떠오른 순간과는 거의 동시다. 사공은 나를 발견하자 대뜸 뱃전에서 일 미터쯤 물을 차고 물러섰다.

, 누구요, 당신?

-.

저가 누군기요?

카메라 주인이에요.

아이, 이거 사모님 아닌기요?

나는 대답 대신 한 손으로 조용히 머리를 쓸어 넘겼다.

아이, 이거 우짠 일입니꺼 ? 사모님이 여게는 우짤라고 나오신십니꺼?

불빛이 보이길래 그냥 여기까지 와본 거예요.

사공은 잠시 어이없는 표정이더니 곧 내게로 다가와 나와 나란히 뱃전을 잡고 물위에 뜬다.

카메라 찾으셨어요?

아직 몬 찾았입니더.

한낮에두 찾기가 힘들 텐데 이런 밤중에 보이겠어요?

물 나가는 시간이 지금뿐입니더. 내일 나직에 찾을까 했입니더만 그때는 물에 밀리어서 사진기가 멀리 떠내리갈 1L로 생각했입니더.

공허한 대화다. 나즌 이 공허한 대화를 어떻게 끝낼까 머릿속으로 분주하게 궁리해본다. 헛숱고다. 나는 이미 습관을 파괴했지만 이번에는 사공 쪽에 완강한 습관이 남아 있다. 그것은 어쩌면 나의 습관보다 더 질기고 두터울는지 알 수 0-. 사공이 어느틈에 배 위로 을라가 내게 불쑥 한손을 내민다.

자 우신 올라오시이소.

나는 사공의 손을 잡고 가볍게 배 위로 몸을 올렸다. 춥다. 그러나 배 위에 올라온 나는 그제야 내 몸이 알몸인 것을 깨달았다. 사공은 내 몸에 시선이 미치자 또 한번 우두커니 선 채 등신처럼 나를 보고 있다.

나는 곧 웅크리고 앉으며 뱃바닥의 호롱불을 입으로 훅 불어 껐다.

추워요, 뭐 몸을 감쌀 만한 헝겊 같은 것 없으세요?

어둠 속으로 무언가가 내게 훅 날아온다.

그껏뿐입니더.

잠바 비슷한 옷이다. 땀내가 물씬 코를 찔렀으나 나는 그것으로 내 상체를 푹 감쌌다.

침묵이 흐른다. 배는 잔잔한 파도에 떠밀려 어둠 속으로 가볍게 롤링을 하고 있다. 지루한 기다림이다. 나는 사공의 접근을 기다리고 사공은 나의 진의를 헤아리는 중이다.

이윽고 사공의 억센 손길이 내 어깨를 강한 틀처럼 가둬버린다. 나는 숨을 죽인다. 준비는 이미 갖추어져 있으나, 내게는 아직도 습관의 타성이 남아 있다, 몸의 일부가 어느 틈에 사공의 손길에 완전하게 점령당했다. 등이 무언가에 찔리우고 있었으나 나는 이미 자유를 잃고 있다.

사모님, 가만히 계시이소, 움직이마 큰일납니더.

아파요, 등이 ,,,,,,

?

등을 뭔가가 찌르고 있어요.

응답이 없다. 사공은 이미 귀가 먹은 채 내 몸을 성급히 열려고만 허둥댄다, 어쩔 수 없다. 등에 간신히 손을 넣어 나는 통증을 적게 하는 도리밖에 없다.

첫 번째 접촉은 사공의 허둥댐으로 내게는 시종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사공은 이십 분도 채 못되어, 내게 두 번째의 접근을 시도해왔다. 이번에는 첫 번째와는 달리 사공도 퍽 침착했다. 아마 이번은 사공 쪽보다 나의 호흡이 더 격했던 모양이다.

두 번째 접촉을 끝낸 우리는 배를 저어 백사장으로 상륙했다. 물이 빠져서 넓어진 백사장은 해안에서 무려 오십 미터 가까이나 물에 젖어 있다. 시야에는 이제 넓은 모래밭과 무수하게 반짝이는 별밖에 보이지 않는다. 두 번의 접촉으로 몸의 물기를 말린 나는 강한 해풍에도 불구하고 아무 추위도 느끼지 않았다. 사공은 두 번째 접촉을 끝낸 후에도 계속 내게 세 번째를 요구해왔다. 어렴풋이 예측은 했으나 사공의 몸은 구리처럼 강건했다. 나는 심한 피로를 느꼈으나 사공의 요구를 거절할 용기가 없었다.

세 번째의 요구는, 강인한 사공의 건강에도 불구하고 시종 사공 쪽의 악전고투로 일관되었다. 나는 땀으로 모래를 적신 채 행위가 끝난 후에도 하늘을 향해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 피로했다. 하늘에 박힌 무수한 별들이 끊임없이 나를 향해 우박처럼 쏟아져 내렸다. 해안에 부딪는 파도의 울림을 나는 아득한 의식 밖에서 듣는 듯했다. 사공은 세 번째의 행위를 끝내고도, 여전히 미친 듯한 끝없는 식욕을 드러내었다.

그러나 피로가 점차로 풀리자 내게는 뜻밖의 공허감이 찾아왔다. 그것은 급격히 나의 내부로 침입한 후, 압지가 물을 머금듯 점점 크게 확산되었다. 사공은 나를 걸레처럼 피로하게 만들 뿐 나의 거대한 해방감 앞에는 바람에 날려 떨어진 한 장의 가벼운 낙엽 같은 존재였다.

어느 틈엔지는 알 수 없으나 사공도 이미 그이처럼 퇴색해버렸다. 모든 것이 퇴색했다. 과거도 그이도 별과 바다와 해까지도,,,,,나는 결국 모든 것을 다 잃은 채 아무리 채워도 메울 수 없는 거대한 빈 자루와 같은 존재로 되어 있었다. 아마 이 거대한 자루는 한번도 채워지는 일이 없을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 자루를 형벌이라고까지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나는 이 거대한 자루로 하여 두 번 다시 나의 미래를 연극처럼 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드디어 오늘에야 나의 자로써 세상을 재는 진정한 해방감을 내 손으로 잡은 것이다.

 

 

 

 

 

 

 

 

 

 

 

 

 

무언가가 옆구리를 찔러서 소년은 어둠 속에서 눈을 떴다. 소년의 옆구리를 찌른 것은 엄청나게 큰 외국 병정의 군화였다.

일어나 꼬마야. 널 주려구 좋은 담배를 가져왔다.

묘역(墓域)에는 벌써 어둠이 축축하게 깔려 있었다. 장방형 무덤들과 키 작은 유목(幼木))들이 어둠 때문에 아주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소년은 몸을 일으켰다. 부드러운 잿속에서 갈색의 반짝이는 병 하나가 발견되었다. 소년은 그제야 이 묘역에서 아주 오랫동안 술이 취해 잠들었던 것을 깨달았다. 노점상인들에게 쫓겨 이리로 온 후. 그는 한나절 이상을 이 묘에서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가자, 꼬마야. 너를 찾느라구 애먹었어. 이젠 안심이다. 내 말 듣니?

불을 붙여 건네주는 담배를 소년은 맛있게 받아 피웠다. 병정이 준 담배는 짙은 오야씨 냄새를 풍겼다. 소년은 이 병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마을에 큰 전투가 있었을 때 찾아왔고 그후로 죽 저자거리 모퉁이에, 검은 모자 대원들과 약간의 성군과 몇 대의 탱크들과 어울려 살았다. 그는 타다 만 가로수 밑동에 단검을 던져 꽂는 놀이를 좋아했다. 소년이 그 단검을 여섯 번쯤 뽑아주자 그는 소년과 친구가 되었다. 이상할이만큼 소년과 병정은 아주 발리 친구가 되었다

넌 똑똑한 놈이야. 그래 틀림없어, 너만큼 똑똑한 아이는 아마 이 세상에 없을 거야,

소년은 팔꿈치로 병정의 아랫배를 가볍게 찔렀다. 맞는 말이었다. 손버릇이 좋지 않다고 그를 쫓아내는 저자의 상인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성도 사람들은 소년을 아주 똑똑한 놈이라고 칭찬했다. 단 그들이 칭찬을 할 때는 소년에게 뭔가 긴한 볼일이 있을 때였다.

그래요, 난 똑똑해요. 허지만 그게 어쨌다는 거예요.

화내지 마라. 사실이잖니 ? 너만큼 똑똑한 아이는 이 세상에 절대로 없어. 너는 하려고만 들면 못하는 일이 없지 않니?

병정의 크고 두꺼운 손이 좁고 가냘픈 소년의 어깨를 위로하듯이 가볍게 두들 겼다.

물오리 똥이 더께로 깔린 자갈길을 지나 그들은 수로를 끼고 마을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한차례 큰 전투를 치른 후로 마을은 밤이 찾아와도 전처럼 등불이 많지 않았다. 저자거 리의 많은 집들이 그 전투 중에 부서졌다. 국민군은 이번에도 역시 외국 병정들에게 쫓겨 마을을 비워주고 멀리 퇴각했다. 외국 병정들은 마을의 중심부를 점령했고, 몇 개의 다리와 도로망 일부와 산등성이 약간을 차지하는 데 만족했다. 어떠한 외국 병정들도 국민군을 완전히 이길 수는 없다. 마을과 도로와 다리 목을 제외한 나머지 땅은 여전히 국민군의 출몰지역이기 때문이다.

마을 초입인 휴경지(休耕地)로 들어서자 동물성 단백질이 타는 짙은 누린내가 풍겨왔다. 소년은 콧구멍을 힘껏 열어 그 누린내를 천천히 맡았다. 소년이 묘역에서 잠든 사이에 마을은 다시 국민군의 습격을 받은 것 같았다. 노대(露臺)에 웅크린 마을 주민들의 신중한 침묵과, 바람결에 묻혀오는 짙은 누린내가 그 증거였다.

살 타는 냄새군요? 적군이 언제 또 마을을 습격했죠?

해질녘이야. 외바퀴 손수레에 화약을 싣고 와서 놈들은 다리를 폭파하고 우리 초소에 불을 질렀어. 코브라 짓이 틀림없어. 놈이 아니군 그런 짓을 할 수가 없지.

소년은 코브라를 본 일이 없다. 그러나 늪지대 이쪽의 3개 성()에 사는 사람들 중 코브라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정도다. 그는 도둑이고 살인자며 신출귀몰한 국민적 영웅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의 목에 금 3백 냥의 현상금이 붙어 있다는 사실이다. 다리나 화약고가 폭파될 때마다 그의 현상금은 꾸준히 불어 현재의 3백 냥에까지 이르렀다. 폭파할 다리나 화약고가 있는 한 코브라의 현상금은 앞으로도 계속 불어날 것이다.

코브라는 어떻게 생겼을까 ? 아저씬 그놈을 보셨나요?

아니, 보지 못했어. 내가 본 건 그놈의 사진뿐야.

그럼 오늘 다리를 폭파한 게 코브라라는 건 어떻게 아셨죠?

초소에 잡혀 있던 국민군 포로가, 습격이 시작됐을 때 그놈의 얼굴을 알아봤어. 포로는 코브라가 틀림없다면서 금화 두 냥을 걸고 내기를 해두 좋다는 거야.

저자거리가 가까와지자 불길이 보였고 냄새가 한층 짙어졌다. 불길은 다리목에 세워졌던 병정들의 초소와 장갑차에서 일고 있었다. 상당히 오랫동안 탔기 때문에 더 탈 것이 없어서 불길은 이제 막 꺼져 가는 중이었다. 폭파된 다리 경간(徑間)이 깊은 개천 속에 비스듬히 처박혔고, 점토가 깔린 개천 기슭에서는 병정들이 반도(叛徒))들의 시체를 포탄 구덩이에 느릿느릿 끌어 묻고 있었다.

꼬마야, 넌 부자가 되고 싶지 않니?

부자라구요?

네가 나를 도와주기만 하면 나는 너를 부자로 만들 수 있어. 그건 조금두 어렵지 않아. 넌 틀림없이 부자가 된다.

거리에는 끈끈한 얼룩과 잘게 부서진 많은 유리조각이 흩어져 있었다. 그 얼룩들은 사람의 피였고 누군가가 미끄럽지 않도록 그 위에 모래를 뿌렸다.

난 부자가 되고 싶어요. 허지만 어떻게 해야 부자가 되는지 모르겠어요.

너한텐 아주 쉬운 일이야. 코브라만 잡으면 넌 금새 부자가 되는 거야.

소년은 병정을 향해 고개를 크게 내저었다, 부자가 되고 싶긴 하지만 소년은 코브라를 잡을 수 없었다. 소년은 그를 본 일도 없고, 그를 잡는 데 필요한 장갑차나 총이 없었다.

이젠 성도의 관리들도 가짜 머리로는 속지 않아요. 지난번에 가짜 머리를 바친 사람은 두 손이 잘리고 눈알이 뽑혔대요.

그것은 사실이었다. 현상금이 붙은 이후 코브라는 세 번에 걸쳐 그의 머리가 성도 광장에 전시되었다. 이번만은 틀림없다는 성장의 확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때마다 진짜 코브라는 지하방송을 통해 성도의 관리들을 조롱하곤 했다. 그를 보았다는 어떤 사람은 그가 독수리나 표범보다도 빠르다고 했다.

가짜가 아니야. 우린 이번에 진짜를 잡으러 가는 거야. 그놈이 숨은 데를 알아냈어. 넌 그곳까지 우릴 안내만 하면 되는 거야.

포가(砲架)가 설치된 사령부 앞에 병정은 발을 세우고 소년의 어깨를 다정스레 두들겼다.

, 여기서 기다려라. 너한테 곧 술과 양고기를 갖다줄 테니.

 

달빛이 부서지는 늪지대 저쪽에서 아까부터 간헐적으로 자동화기의 연발 총성이 들려왔다. 워낙 거리가 먼 탓으로 총성은 목제 타악기의 둔탁한 연타음과 비슷했다, 운하의 수문 앞에 도착한 대원들은 그러나 아무도 그 총성에 놀라거나 긴장하지 않았다. 그들이 진짜로 두려워하는 것은 귓전에서 울리는 저격병의 단발 총성이다. 그 단발의 총성 후에는 반드시 그들 중에 하나가 쓰러지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령부의 경장갑차는 그들을 겨우 운하까지만 실어다주고 돌아갔다. 운하의 다리들이 모두 파괴되어 장갑차는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제부터 대원 일행은 16킬로에 달마는 긴 늪지대를 통과해야 한다. 16킬로 저쪽에는 그들의 목적지인 횐 코끼리의 대사원이 자리잡고 있었다. 소년이 묘지에서 불리어 나온 것은 사원까지의 길을 안내하기 위해서였다. 술과 양고기 두 근과 한 다발의 여송연을 보수로 받고, 소년은 외국 병정들에게 길 안내를 승낙한 것이었다.

일행은 모두 5명으로, 3명의 검은 모자 특공대와 소년 그리고 민병대 출신의 통역이었다. 소년의 친구를 포함한 3명의 검은 모자 특공대원들은 모두 간편한 경장을 갖추었고, 칼과 무전기와 기관단총 따위로 무장했다. 그들은 소년이 아는 한 세상에서 가장 용감하고 힘이 센 병정들이었다. 소년과 동족인 갈색 피부의 통역인은 소년처럼 아무런 무장 없이 맨몸으로 작전에 참가했다. 그는 이빨들이 검게 썩었고 뾰족한 턱에 자주 깜박이는 작은 눈을 하고 있었으며, 소년을 처음 만난 순간부터 소년에게 마구 거친 욕설을 퍼부었다. 소년은 몹시 자존심이 상했지만 친구인 대장을 생각해서 그의 모욕을 꾹 참았다.

대체적으로 운하까지가 외국 병정들의 순찰 코스의 끝이었다. 운하 저쪽은 늪과 포기와 독사와 수초(水草)와 깊은 수렁의 연속이었다. 물을 지배하는 동물들이 아니고는 그곳은 공포와 불모의 땅이었다. 반전(反轉)을 거듭해온 3년간의 긴 전쟁도 이 광막한 늪지대만은 작전지역에서 제외시켰다. 몇 개의 수문과 제방만 폭파하면 그곳은 어느 쪽 군대도 작전지역으로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운하에 도착한 대원 일행은 즉시 검은 피부의 민병대 두 명의 안내를 받았다. 샌들에 반바지만을 착용한 그들은, 한 명은 장총을 휴대했고 한 명은 허리에 긴 정글도를 질렀을 뿐이었다. 운하를 얼마쯤 거슬러간 그들은 한곳의 수초 사이에서 밑이 평평한 보트 한 척을 찾아내었다. 일행이 차례로 보트에 타자 그들은 노를 저어 보트를 천천히 운하 하류로 몰기 시작했다.

간헐적인 포성과 총성을 제외하면 늪지대는 대체로 조용한 편이었다. 반바지를 걸친 두 명의 민병대는 보트의 앞뒤로 나누어 앉아 규칙적으로 능숙하게 노를 저었다. 수면에 반사되는 달빛이 밝아 그들에겐 별도의 불이나 조명이 필요치 않았다. 순조롭게 흘러가던 작은 보트는 탄약상자 같은 장애물을 만나 가끔씩 멈추곤 했다. 며칠 전에 치른 격렬한 전투로 운하와 늪에는 많은 종류의 전쟁 쓰레기가 떠 있었다. 바람결에 심한 악취가 풍겨와서 대원들은 늪지대 어딘가에 아직도 치우지 못한 시체들이 썩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특공대 대장은 뱃머리의 민병대와 낮은 음성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대장이 유창하게 현지인 말들 해서, 민병대는 말이 걸려올 때마다 황송한 듯 머리를 깊이 조아렸다

자네들 관할의 이쪽 운하는 오늘 아주 조용했다더군?

, 장군님.

장군이 아닐세, 난 대위야. 헌데 자넨 늪지대 출신이 아니잖나?

, 장군님. 우리 대장이 절 성도에서 이리루 데려왔죠. 하루빨리 성도루 돌아가구 싶습니다. 늪지대는 저한테 맞지가 않습니다.

조금만 친절하게 대해주면 민병대는 모두 이런 식이었다. 대장도 그것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들과 계속 말이 하고 싶은 눈치였다.

자네들은 곧 여길 떠나네. 며칠 후 대대적인 공격작전이 있을 테니까.

똡니까? 공격입니까? 이번엔 어디가 공격목포죠?

삼각주야. 감사절 공격이지. 이번엔 국민당을 고원지대까지 쫓아낼 걸세.

큰 물건이 수면에 떨어지는 풍덩 소리가 들려왔다. 민병대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일제히 배 안으로 몸을 낮추었다, 뱃머리의 민병대가 노를 집어들어 갑자기 수면을 두 번 내리쳤다. 노를 뱃머리에 길게 누인 뒤 민병대는 이를 드러내고 대장을 향해 수줍게 웃었다.

잠복좁니다. 저쪽 수초죠. 별일 없으니 통과하라는 신홉니다.

성군은 현재 늪지대 북쪽의 삼각주 남방에 긴 전선을 두고 있었다. 따라서 운하와 늪지대 대사원은 전선에서 상당한 거 리를 둔 성군 후방지역이었다. 그러나 후방의 모든 지역이 성군의 완전한 지휘 통치하에 놓인 것은 아니다. 전선은 이 전쟁에서는 별로 큰 의미가 없었다. 언제부턴가 이 나라 국민들은 힘에 의해서만 성군의 통치에 순종했다, 힘이 충분치 않은 지역은 후방이라도 성군의 관할권밖에 있었고, 그곳은 오히려 성군보다는 반도(叛徒)인 국민군의 세력권으로 간주되었다. 이 불편을 극복하기 위해 성군은 그들의 힘을 도시나 촌락이나 교통요지 등의 특정 거점에만 집중했던 것이다.

늪지대에도 거점은 있었다. 대부분의 지역이 수초와 뻘밭인 황무지였지만 그 곳에도 비옥한 채전과 양질의 논과 좋은 어장을 가진 약간의 촌락이 산재해 있었다. 성군은 바로 이들 촌락을 그들의 전략 요충지나 작전 거점으로 삼은 것이다.

아무런 긴장이나 장애 없이 보트는 20여분 후에 성군의 첫 번째 거점에 도착했다.

거점 책임자는 성군 중위로서 대장에게 약 10분간 주위의 적정(賊情)과 현대의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호기심이 많은 사나이로 장황한 상황설명 후에 은근히 특공대의 작전임무를 물어왔다. 소수의 병력만으로 야간에 갑자기 출동한 특공대가 중위에게는 아무래도 심상치 않게 느껴졌던 것이다.

대장은 그러나 상황만 청취한 후, 중위의 질문에는 대꾸 없이 특공대를 즉시 다음 거점으로 출발시켰다. 중위가 친절하게 현지인 안내자를 붙여주겠다고 제안했으나 대장은 그것마저도 완곡하게 거절했다. 사실 대장에게는 더 이상의 안내자가 필요치 않았다. 앞으로의 안내는 마을에서 동행해온 소년만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달이 기울었다. 그러나 새벽은 아직 일렀다. 검고 축축한 밤하늘에 별들이 아직은 싱싱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대사원 앞의 황폐한 촌락에서 특공대는 방금 그들의 고된 행군을 끝마쳤다. 그들의 행군은 애초의 예정보다 무려 두 배 가까운 긴 시간을 소비했다.

통역이 독충에만 물리지 않았어도 행군은 제 시간에 끝났을 것이다. 자꾸 벗겨지는 반장화가 귀찮아서 통역은 그것을 벗어버렸고, 그러자 곧 뻘밭의 독충이 그의 발등을 물어버린 것이다.

대사원의 황폐한 촌락에도 성군은 역시 주둔하고 있었다. 이 촌락의 지휘자는 성군 대위로 가슴이 두껍고 목이 짧은 사나이였다. 그는 웃음이 헤퍼 호인형의 인상이었으나 어딘가 게을러 보였고 말씨가 아주 상스러웠다.

사전 연락이 없었기 때문에 대위는 처음에는 특공대의 도착을 귀찮아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내일 보급품이 공수(空輸)될 것이라는 말을 듣자, 그는 돌연 태도를 바꿔 특공대 일행을 환대하기 시작했다.

성군 대위의 주선으로 특공대는 곧 촌락 외곽의 독립 농가에 안내되었다.

독충에 물려 반 혼수상태에 빠진 통역은, 민간요법의 해독 치료를 받은 뒤 성군 막사 내에 별도로 수용되었다. 농가는 깨끗했다. 특히 오랫동안 물과 싸운 특공대원들에게 농가의 건조한 공기는 아주 쾌적했고 상쾌했다. 3개의 야전침대가 벽을 따라 가지런히 놓였고 그 맞은편 시렁에는 마른 짚이 깔린 별도의 침상이 마련되어 있었다.

소년은 야전침대보다는 그에게 익숙한 마른 짚이 깔린 농가의 침상을 잠자리로 택했다. 대장을 포함한 3명의 대원들은 방금 끝낸 행군에 대해 소년에게 무언의 찬사를 보냈다.

소년은 뛰어난 안내자였다. 그는 늪지대의 복잡한 미로를 수초의 종류와, 물 흐름의 방향과, 별의 위치로 정확히 찾아내었다. 마지막 장애물인 수초지대를 벗어났을 때. 대원 중 한 병사는 소년의 흙투성이 이마에 입술을 눌러댈 정도였다. 멀리 청회색 달빛 속에 목적지인 대사원이 어렴풋이 보인 것이었다.

행군이 가져다준 심한 피로에도 불구하고 소년은 침상에 든 채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그가 올라간 침상의 창에서는 성스러운 숲에 둘러싸인 대사원의 지붕과 아름다운 탑들이 내려다보였다. 대사원의 이러한 모습들은 소년에게는 해묵은 상처에 새롭게 가해진 둔중한 아픔이었다. 그는 대사원의 전경(全景)이 드러나는 새벽이 오는 것이 두려웠다. 자기를 이곳으로 유인해온 대장이 소년에게는 새삼스레 불안했고 원망스러웠다.

소년의 이러한 불안과 설레임을 대장은 아까부터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잠 못 드는 소년의 설레임이 무엇 때문인지 어렴풋이 이해되었다. 부하 대원들이 잠에 떨어지자 대장은 재빨리 소년의 침상으로 올라갔다. 벽 쪽으로 돌아누운 소년의 얼굴에 대장은 가만히 그의 술병을 디밀었다.

한 모금 마셔, 곧 눈꺼풀이 무거워질 테니까.

밑에서 비치는 벽걸이 램프 불에 소년의 빈약한 코와 큰 눈동자가 반짝였다. 병을 받아들고 몇 모금 마신 뒤 소년은 몸을 뒤집어 천정을 향해 반듯이 누웠다.

소리가 잘 들리는 밤이에요. 들어봐요, 대장. 램프의 기름 타는 소리도 들려요.

넌 좋은 귀를 가지고 있어. 내 귀는 나빠 그딴 소리는 들리지 않아.

전 알아요, 이런 밤을. 아마 새벽엔 옅은 안개가 낄 거예요.

놀랬다, 너한테는. 어떻게 넌 그런 것까지 알고 있니?

열살 때까지 늪에서 살았어요. 아버지랑 둘이 안 가본 데가 없었어요.

아버지가 뭘 했는데? 그리구 아버진 어떻게 됐니?

여러 가지 물건들을 배에 싣구 아버지는 늪지대 촌락으루 일 년 내내 행상을 다녔어요. 그런데 어느 날 배와 아버지가 한꺼번에 없어졌어요. 며칠 후 시체를 찾았는데 아버지 머릿속에 납 총알이 두 개 박혀 있었어요.

그래서 넌 어떻게 했니 ? 아버지를 잃구 지금까지 혼자 살아온 거냐?

아뇨. 대장은 알아요. 대장은 내가 옛날에 대사원에 있었던 것 알구 있어요.

소년의 눈과 대장의 눈이 거의 동시에 마주쳤다. 머리를 가볍게 좌우로 흔든 대장은 곧 소년의 팔을 잡아 불빛 쪽으로 뒤집었다.

그래. 난 너를 안다. 허지만 아주 조금뿐이야.

뒤집힌 소년의 팔 안쪽에는 고리 모양의 큰 화상이 나 있었다.

난 이 상처를 본 일이 있다. 이 상처는 횐 코끼리가 있는 대사원 본당 승려들만 왼쪽 팔 안에 가지고 있지.

잡힌 팔을 재빨리 뽑아낸 후 소년은 그것을 허리 뒤로 찔러 넣었다. 갑자기 고집스런 얼굴이 되어 소년은 엄숙하게 입을 열었다.

말해줘요, 대장. 당신은 왜 나를 대사원에까지 데려왔죠?

그 대답을 하기 전에 네 생각을 먼저 알고 싶다. 너는 저 대사원에 있는 많은 스님들을 알고 있겠지?

그래요, 많이 알아요. 그들이 아직도 떠나지 않고 남아 있다면,,,,,,

난 네가 무슨 이유로 대사원을 떠났는지 알고 싶다. 그리고 내가 만일 대사원을 상대로 싸운다면 네가 어느 편에 가담할 것인지 그것도 지금 알았으면 좋겠다.

내가 대사원을 떠난 것은 파문을 당해 승적을 잃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대장은 무슨 이유로 대사원을 상대로 싸우려 하는 거죠?

대사원은 중대한 잘못을 저질렀어. 우리는 대사원의 수장(首長) 스님이 지금까지 비밀리에 코브라를 숨겨온 사실을 알아냈다. 코브라를 우리에게 내주지 않으면 나는 부득이 내일 아침에 대사원의 스님들과 싸우지 않으면 안될 거야.

믿을 수 없어요. 대사원의 스님들이 왜 코브라를 숨겨야 한다는 거죠?

그 점엔 나도 동감이아. 지금까지 대사원은 엄중히 중립을 지켜왔거든. 허지만 이제는 사정이 달라. 우린 대사원이 코브라를 숨겼다는 아주 결정적인 여러 증거들을 확보했어.

소년이 팔을 뻗어 벽 앞에 세워진 작은 술병을 집어들었다, 급하게 세 모금의 술을 마신 뒤 소년은 술병을 다시 대장에게 건네주었다.

눈꺼풀은 언제 무거워지죠? 난 이만 자야겠어요.

콜크 마개를 꼭 막은 뒤 대장은 술병을 소년의 가슴 위에 내려놓았다.

이건 네 거야. 어느 편이 될 건지는 내일 아침에 말해주겠니?

미안해요, 대장. 내일 아침에도 소용없어요. 난 아무 편도 안될 거예요. 대장도 잘 아시잖아요?

아니야, 난 믿는다. 넌 똑똑하니까 부자가 되는 쪽을 택할 게다. 서둘러 대답할 필요는 없어. 내일 아침까진 시간이 아직 있으니까.

잘자요, 대장.

그래, 꼬마야.

 

안개가 걷히기 시작하자 대사원의 모습이 좀더 뚜렷이 드러났다.

대장은 쌍안경을 눈에 댄 채 숲과 광장과 탑과 사원을 차례로 살펴보았다. 거리감을 잃은 많은 사물들이 좁은 시야로 순서 없이 뛰어들었다. 가장 먼저 뛰어든 것은 사원 앞 광장에 흩어져 앉은 40여명의 누더기를 걸친 순례자들이었다.

이른 아침에 사원을 방문했을 때도, 그들은 광장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그 주위에 둘러앉아 차를 마시며 잡담들을 하고 있었다, 길 안내를 맡았던 성군 대위는 그들 중 반수 이상이 간밤에 도착하여 밤을 새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십여 명은 적은 숫잡니다. 전쟁 전에는 이 광장에 천오백 명이 몰려든 적도 있답니다. 요즘도 전투가 뜸하다 싶으면 하루에 백 명 정도는 쉽게 볼 수가 있습니다.

대위는 설명을 계속했다.

사원에서는 종을 칙서 일정한 시간에만 본당(本堂) 경내를 잡인들에게 공개합니다, 순례자들이 보고 싶어하는 것은 본당 경내의 석단 위에 모신 횐 코끼리 성상(聖像)입니다. 그 동안 여기 있는 순례자들은 감로천에 머리를 감고 제단에 바칠 향유와 초를 준비합니다.

안개가 걷혀 시계(視界)가 아주 깨끗했다, 사원은 깊은 물도랑으로 둘러싸인 숲이 무성한 작은 구릉 위에 앉아 있었다. 안개 속을 빠져 나온 오렌지 빛 해가, 숲 위로 약간 솟은 대사원의 화려한 금박 처마들을 비추었다.

대장은 쌍안경을 조정하여, 방금 싼 나귀 똥에서 더운 김이 솟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광장의 순례자들을 당분간 사원의 본당으로는 들여보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코브라와 그의 부하들은 얼마든지 순례자로 가장하여 본당과 내실에까지 잠입할 수 있었다. 그들의 출입을 통제하지 않는 한 대장의 이번 작전은 처음부터 실패인 셈이었다.

당신은 지금 나를 위해 몇 명의 부하들을 동원할 수 있겠소?

갑작스런 대장의 질문에 성군 대위는 놀란 듯이 고개를 들었다,

당장은 약 이십 명 정돕니다. 그것도 작전이 없을 때를 가정해서죠.

저 광장의 순례자들을 다리 이쪽으로 몰아내 주시오. 내가 사원측과 협상을 할 동안 당신은 어느 누구도 사원 본당에 들여보내지 말아야 하오.

그건 사원 쪽을 화나게 하는 처사가 될 겝니다. 우라는 물론이고 국민군들까지도 순례자들을 쫓아낸 적은 아직 한번도 없었으니까요.

나는 사원의 비위를 맞추려고 여기까지 찾아온 게 아니오. 사원의 책임자와 만나고 싶다는 나의 요청이 벌써 두 번씩이나 이유 없이 거절되었소. 십 분 후에 나는 다시 사원의 본당을 방문할 작정이오. 그때까지 당신 부하들은 저 순례자들을 홍교 밖으로 몰아내야 하는 거요.

성군 중사에게 쌍안경을 건네주고 대장은 빠른 걸음으로 분견대(分遣隊)를 나와 농가로 향했다,

농가로 이르는 비탈진 자갈길에 검은 털의 많은 염소들과 몇 명의 아이들이 어울려 놀았다. 그중에 한 아이가 대장에게 다가와 담배 피우는 시늉을 한 뒤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대장이 고개를 좌우로 내두르자 소년은 뒤로 물러서며 살인귀!하고 원주민의 말로 욕설을 내 뱉았다.

예측한 대로 독립 농가에는 소년이 홀로 침상에 앉아 바늘을 구해 해진 옷을 깁고 있었다. 대장이 가까이 다가가자 소년은 날카로운 앞 이빨로 바늘의 실을 물어 끊었다.

아침 먹으러 분견대루 나갔다가 거기서 얘기 대강 들었어요.

누굴 만났니?

녹차를 팔러 대사원에 들렀다는 늙은 절름발이 장사꾼을 만났어요.

그자를.

분견대 영창에 갇혀 있더군요. 좋은 사람인데 왜 가뒀죠?

대장은 뒷주머니에서 씹는 담배를 꺼내 한입 침착하게 베어 물었다.

난 코브라를 잡을 때까지는 잡인들의 사원 출입을 감시할 작정이다. 그 절름발이 녹차장수가 코브라의 부하거나 첩자일 수도 있지 않니?

대장은 사원에서 대체 누굴 만나고 온 거예요?

사원의 책임자가 누구냐구 하니까 홍포(紅布)를 걸친 늙은 중이 나오더군. 그자에게 용건을 얘기하고 사원 경내를 수색하겠다고 통고했다.

그래서 어떻게 했죠?

너무 크고 복잡해서 사원 수색은 불가능한 일이었어. 그후 중들을 다시 만났지만 그들은 입을 다물고 우리를 통 상대하지 않았다.

왜 대장은 사원의 주인인 수장(首長)을 직접 만나지 않은 거죠 ? 수장을 만나 위협을 했더라면 일이 아주 쉬웠을 텐데?

난 그렇게 어린 중이 수장일 줄은 미처 몰랐다. 너는 내가 그런 꼬마와 무슨 얘기를 하리라고 기대하니?

소년은 대장의 어깨를 짚고 침상에서 훌쩍 흙바닥으로 내려왔다. 탈곡용의 굵은 통나무에 앉아 소년은 규칙적으로 발 앞에 놓인 가죽 물통을 걷어차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장례를 집전했던 스님이 고아가 된 나를 대사원으루 데려갔어요. 거기서 나는 승려가 되기 위한 이천 일 동안의 수련과 공부를 시작했어요. 천사백 일이 조금 넘었을 때 전쟁이 터져서 난 죄를 짓고 파문을 당했어요. 사울 수장은 천사백 일 동안 나와 수련을 같이 받은 형제예요.

형제라니? 사울이 누구냐? 넌 수장을 알고 있구나?

그래요. 대사원의 수장은 태어날 때 이미 정해져 있어요. 태어나는 날. 큰 보름달을 먹은 아이만이 수장이 될 자격이 있는 거예요.

무슨 소리냐 ? 보름달을 먹는다는 건?

대사원의 수장이 될 수 있는 아이는 둥근 보름달이 조금씩 작아져서 하늘과 땅이 캄캄해지는 밤에 태어난 아이예요. 그런 아이만이 대사원에 들어가서 가르침과 계를 받은 후 대()를 이어 새로운 수장이 되는 거예요.

그럼 지금의 꼬마 수장은 언제 누구로부터 대를 이어받아 수장이 된 거냐?

영창에 갇혀 있는 녹차장수는, 작년 점등제 때 노() 수장이 열병을 얻어 급히 죽었다구 말했어요. 사울은 아마 그 직후에 새 수장으로 대를 이어받은 모양이에요.

대장을 보는 소년의 눈이 기름에 튀긴 은행 알처럼 반들거렸다. 목이 긴 군화에서 단검을 뽑아, 대장은 판자 벽에 걸린 여자 나체의 사타구니 부분을 도려내기 시작했다.

꼬마야, 넌 내가 얼마만큼 코브라를 미워하는지 알고 있니?

알아요, 허지만 대장은 코브라를 결국 못 잡고 말 거예요.

아니야. 난 잡는다. 약속해도 좋아. 너만 나를 도와준다면,,,,,,

대장은 내가 대체 어떻게 해주길 바라는 거죠?

너는 얼마 전까지도 저 사원의 공부하는 중이었어. 나를 도와줄 생각만 있다면 너는 얼마든지 그 방법을 찾아낼 거야.

내가 만일 대장이 라면 나는 사울을 만나겠어요. 사울은 저 대사원과 한 몸이 나 마찬가지예요. 어떤 사람도 사울의 앞에서는 아니오라는 말을 할 수 없어요. 수장은 곧 달이고 별이며 살아 있는 율법이기 때문이에요.

어째서 그럴까? 수장은 겨우 열여섯살짜리 살찐 소년인데?

, 어서 사원으로 가요. 사원에 가서 수장을 직접 만나세요.

 

주렴이 걷혔다. 홍포를 입은 두 승려의 옹위를 받으며 대사원의 수장 사울이 방안으로 들어 왔다.

대나무의자에 앉아 있던 대장은 수장이 들어서자 곧바로 그에게 다가갔다. 아무런 격식도 인사도 없이 대장은 갑자기 입을 열었다.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가를 당신들은 이미 알고 있소. 어떠한 희생을 지불하더라도 나는 코브라를 잡고 말 거요. 나는 더 이상 당신들에게 협상할 시간을 줄 수가 없소. 당신들의 결심을 재촉하기 위해 나는 부득이 나쁜 방법을 쓰기로 했소.

수장은 대장을 보고 있지 않았다. 흔들리지 않는 침착한 눈길로 사울은 말없이 벽 한곳을 보고 있었다.

소년티가 나는 수장의 얼굴은 양파처럼 살이 쪘고 박제된 동물처럼 무표정했다. 아무런 대답도 들을 수 없자 대장은 다시 말을 이었다.

코브라를 내게 인도하지 않는 한 나는 이 사원을 나의 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죠. 나는 왜 당신들이 이 성스러운 대사원을 위험과 곤란 속에 빠뜨리는지 알 수가 없소. 이 사원이 적으로 되면 우리는 당신들에게 못할 짓이란 아무 것도 없소. 내 경고가 거짓이 아니란 걸 당신은 조만간 알게 될 거요.

우리가 당신의 적이 될 수 없다는 건 당신이 더 잘 알고 계십니다.

수장 바른쪽의 늙은 승려가 수장을 대신해서 입을 열었다.

벌써 여러 번 말씀을 드렸지만 우리는 당신의 요구를 들어드릴 입장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선 코브라라는 사람이 어떤 인물인지 알지도 못하고 본 일도 없습니다, 그가 우리 사원을 방문했다면 그것은 병정으로서가 아니고 아마 평범한 순례자의 신분일 겝니다. 우리 사원에는 순례자가 많고 우리는 관례에 따라 그들을 모두 같은 신도로 받아들일 뿐입니다.

수장이 입을 열지 않으리라는 것은 이것으로 명백하게 드러났다. 대장의 요구로 만나주긴 했지만 수장은 시종 말이 없었다. 꼭 대답이 필요한 경우에도 양쪽의 늙은 승려들이 그를 대신할 정도였다.

코브라의 최근의 은신처가 이 사원이라는 증거는 아주 많소. 오늘아침에도 무전을 통해 나는 똑같은 정보를 수집했소. 최근까지 이 사원에 은신했던 반도가 성군에게 체포되어 아주 결정적인 증언을 했소. 그는 대사원이 자기들에게 수차에 걸쳐 은신처를 제공했고 자발적으로 자기들의 일에 많은 도움과 편의를 주었다고 자백했소. 당신들이 지금까지 지켜온 중립은 이것으로 깨끗이 파기된 거나 마찬가지요. 나는 더 이상 당신들의 중립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며, 이 시간 이후로는 이 사원이 우리들의 작전 지역 내에 포함될 것임을 통고 하오.

소매 속에 감추었던 두 손을 뽑아내어 늙은 승려는 대장을 향해 정중하게 합장을 했다. 이번에도 역시 수장을 대신하여 늙은 승려가 입을 열었다.

우리는 당신이 취한 조처에 대해 차후에라도 당신 스스로가 후회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하실 말씀이 더 없으시면 우리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우리 병사들이 임시로 머물 적당한 거처와 방이 필요하오. 코브라를 체포할 때까지 우리는 당분간 이 사원에 머물 거요. 바로 이 방이 좋을 것 같소. 한 시간 후에 다시 올 테니 그때까지 이 방을 치워주시오.

두 승려는 수장을 옹위한 채 빠른 걸음으로 방을 나갔다. 고들이 서둘러 주렴을 통과하자 대장도 곧 뒤를 따랐다

밖은 햇살이 눈부셨다. 본당 경내의 횐 코끼리상 앞에서 대장은 홍포를 걸친 중 두 명과 소년을 발견했다. 그들은 성스러운 코끼리상 그늘 밑에서, 장례식을 의논하는 사람들처럼 엄숙하고 진지하게 이 야기를 하고 있었다. 대장이 가까이 다가가자 중들은 곧 본당 쪽으로 떠나갔다. 소년만이 홀로 그늘 속에 남았다가 대장을 향해 햇볕 속으로 걸어나왔다.

결과가 안 좋은 모양이군요? 사울은 기어이 만나보셨나요?

중들은 내가 엄포만 놓는 줄 알고 있어. 그래서 나는 농민들에게 아픈 맛을 보여주기로 결심했다.

사울의 대답은 어땠어요? 코브라를 끝내 모른다는 대답인가요?

수장은 허수아비야. 내가 여러 번 말을 건넸지만 그는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았어. 내 질문에 대답을 한 건 수장이 아니고 그 옆에 섰던 늙은 중들이야.

화강암의 뜨거운 돌 바닥에 코끼리 그늘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대리석의 흰 코끼리상은 이 나라가 보유하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조각품 중의 하나였다. 대좌 위에 놓인 코끼리의 발톱을 소년의 새까만 손이 조심스레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대장은 이곳의 중들을 어떤 방법으로 혼내줄 작정이죠?

그들을 한방에 몰아넣고 코브라를 인도할 때까지 감금해둘 생각이다.

모두를 말인가요? 스무 명 전부를 가둬두겠다는 얘긴가요?

나도 그렇게 하기는 싫지만 더 좋은 방법이 없지 않니?

웃입술을 둥글게 말아 올린 채 소년은 눈살을 찌푸리고 대장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가지런히 드러난 그의 이빨들은 유백색의 코끼리상보다도 더욱 희고 청결했다.

사울은 벙어리도 아니면서 왜 대장에게 아무 말도 안 했을까요?

네 예측이 빗나간 거야. 그는 역시 허수아비에 불과했어.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사울에겐 아마 까닭이 있었을 거예요.

무슨 까닭?

사울은 자기가 책임질 수 없는 말은 하고 싶지 않았을 거예요. 어쩌면 사울은 대사원에 코브라를 숨기지 않았을는지도 알 수 없어요. 코브라가 사원에 숨어든 사실을 사울이 전혀 몰랐을 수도 있을뿐더러, 설혹 그걸 알았다 해도 사울은 일부러 모른 체할 수도 있는 거예요. 귀찮은 일은 모른 체하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니까요.

멀리서 포성이 들려왔다. 구슬처럼 파란 대장의 눈은 소년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듯했다. 털로 뒤덮인 대장의 손이 소년의 어깨를 부드럽게 두들겼다.

아까 너하구 같이 있던 중들과는 무슨 얘기들을 나눈 거냐?

대장에 대해 알고자 해서 아는 대루 얘길 해줬어요.

수장과 형제처럼 지냈다구 하면서 너는 본당으로 수장을 찾아보지 않는 거냐?

사울은 나와는 너무 달라요. 나는 사울을 보고 싶지 않아요.

네가 이곳에 와 있는 걸 사울은 지금 알고 있니?

그래요, 알구 있어요. 그래서 내게로 사람까지 보낸 거예요.

감정이 절제된 메마른 눈길로 두 사람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대장의 손이 어깨에서 떠나자 소년이 돌연 광장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난 이유를 모르겠어요. 대장은 언제부터 코브라를 그렇게 미워하게 됐죠?

놈은 도둑이고 살인강도며 아주 간교한 우리들의 적이야.

그건 다 아는 일이지만 아무도 대장만큼은 코브라를 미워하지 않아요. 더구나 국민군 쪽 사람들은 코브라를 영웅으로 부르기도 하잖아요?

도대체 너는 어느 쪽이냐? 성군 쪽에 있으면서 코브라 같은 놈을 두둔하다니?

난 아무 쪽도 아니에요. 내 쪽은 아마 술과 양고기뿐일 거예요.

눈부신 햇살과 대기층을 뚫고 갑자기 먼 곳으로부터 귀 익은 소음이 들려왔다. 소음은 느린 속도지만 차근차근 우렁차게. 이쪽으로 다가왔다. 소년과 대장은 삽시간에 소리의 광포한 울림 속에 갇혀버렸다. 군모의 챙을 위로 쳐 올린 후 대장과 한참동안 소리나는 쪽을 지 켜 보았다,

아군기야, 좀 이르군. 보급품을 사원 광장에 투하하도록 유도해야겠어.

 

성군 대위의 시체와 함께 대장은 그날 밤, 많은 병사들을 사원 경내로 진주시켰다.

대위의 시체가 발견된 곳은 홍교와 우물 두 곳이었다. 도랑 위로 걸쳐진 홍교 난간에는 대위의 목이 철사에 꿰어 달려 있었고, 그곳에서 약 50미터쯤 떨어진 우물에는 머리 없는 대위의 몸이 유지(油脂)에 싸여 버려져 있었다.

예리한 흉기로 절단된 머리는 대장의 지시에 따라 바늘로 꿰매어져 원래의 몸뚱이에 붙여졌다. 시체는 다시 간단한 목욕 후에 새 군복이 입혀졌고 성군들의 호송하에 사원 경내의 본당 마루로 옮겨졌다.

성군 대위의 갑작스런 죽음은, 대사원과 대장 사이께 새로운 긴장과 적대감을 불러일으켰다. 밖으로 드러난 몇 가지 이유로 해서, 대장은 대위의 죽음을 코브라 일당의 의도적인 범행으로 간주했다. 범행수법이 잔인한 것은 공포감을 유발시키려는 반도들의 얕은 꾀가 분명하며, 시체를 우물과 다리에 버린 것은 자기들의 결의를 과시하려는 반도들의 유치한 시위행위라는 것이었다.

대장은 냉정하고 침착하게 그의 증오와 복수심을 드러내었다. 사원측의 완강한 항의에도 불구하고 대장은 우선 사원 경내로 2개소대의 성군 병력을 진입시켰다. 코브라의 만행을 승려들이 좀더 잘 볼 수 있도록, 대장은 또한 대위의 시체를 본당 마루에 만 하룻동안 안치하도록 명령했다. 그러나 대장의 가장 큰 증오는, 시한부로 사원에 통고한 최후 통첩에 가장 잘 나타나 있었다.

그의 통첩은, 내일 아침 해뜨기 전까지 코브라를 인계하거나 그에 준하는 중요한 조처를 취해줄 것을 요구했다. 중요한 조처란, 코브라를 체포하는 데 필요한 결정적인 정보제공이나 사원측의 협조를 뜻했다. 이것은 코브라나 그 일당들이 범행 후 사원을 떠나 어딘가로 도망쳤을지도 모른다는 가정하에 취해진 요청이었다. 코브라가 설혹 사원에 은신하지 않았어도 이 것으로 대사원 승려들은 대장의 협박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게 된 것이었다.

통첩대로 이행되지 않았을 때, 대장이 취할 조치는 명백했다. 그는 대사원이 그의 통첩에 응하지 않았을 때는 -대단히 불행한 사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대장의 경고는 위협을 주기에 충분했다. 성군 대위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대장은 경우야 어떻든 먼저 피를 본 피해자이기 때문이었다.

밤이 깊어지자 모닥불이 꺼졌다. 사원의 짙은 어둠 속으로 성군 병사들은 하나씩 흩어지기 시작했다. 우기(雨氣)가 아닌 건기여서 병사들은 모포 한 장으로 노천에서 쉽게 잠들 수 있었다. 주위에 이슬을 피할 수 있는 많은 건물들과 회랑이 있었지만 병사들은 아무도 그것들 쪽으로는 접근하지 않았다, 명령에 의해 진주하긴 했으나, 대사원은 그들에게는 여전히 신성하고 거룩한 곳이기 때문이었다.

어슴푸레한 달빛 속에 몇 명의 초병(哨兵)들이 밤을 경계하며 서 있었다, 상관인 대위가 살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초병들은 어둠을 별로 두려워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하긴 그들은, 코브라나 국민군은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고는 사람을 함부로 해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기들의 죽음이 꼭 필요하지 않은 상. 성군 병사들은 코브라나 국민군을 미리 두려워할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양고기의 뼈를 숲 고양이들에게 던져주고 소년은 대장과 함께 다리를 건너 사원 광장으로 들어섰다. 낮에 비행기가 많은 보급품을 투하해서 광장에는 여러 종류의 상자들이 작은 산처럼 쌓여 있었다. 보급품은 주로 탄약과 총기였고 개중에는 가끔씩 비상식량과 술 따위도 섞여 있었다.

경무장을 한 두 명의 성군이 횃불 밑에서 보급품을 지키고 있었다. 대장은 보급품에 접근하여 단검으로 상자 하나를 능숙하게 뜯어 열었다. 손전등으로 상자 속을 환히 비추며 대장은 소년의 어깨를 다정스레 두들겼다.

이걸 주겠다. 다 주겠어. 그 대신 너는 내 부탁을 들어줘야 되는 거야.

좋아요, 말해보세요. 이건 정말 굉장한 물건이군요.

중들은 지금 대성상을 모신 큰 회장(會場)에 모여 있다. 돌바닥에 모두 무릎을 꿇고 벌써 두 시간째 꼼짝도 안 하는 거다. 놈들은 내가 말을 걸어도 누구 하나 대꾸하지 않는다. 수장을 제외한 스물다섯 명 이 모두 그렇게 돌덩이처럼 앓아 있는 거다. 꼬마야, 넌 그놈들이 왜 그따위 어리석은 짓을 하는지 알고 있다. 그리고 넌 그놈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움직일 것인지도 알고 있다. 만일 그놈들을 움직여만 준다면 나는 이것들을 너에게 모두 줄 수 있다. 자 꼬마야, 할 수 있겠지? 너는 그놈들을 회장 밖으로 몰아낼 수 있겠지?

소년은 상자 속의 물건들을 큰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것은 소년이 언젠가 맛본 꿈과 환상의 신비한 담배였다.

수장은 지금 어디 있죠? 난 사울을 만나겠어요.

회장 뒤쪽의 정자에 있다. 지금 당장 만나보겠니?

보리수 가지와 잎들 사이로 푸른 달빛이 어른거렸다.

수장 사울은 주렴 저쪽의 높은 대의자에 앉아 있었다.

형제여, 그대는 어찌하여 우리에게 감히 그러한 요구를 할 수 있는가?

염소 가죽을 깐 돌바닥 위에서 소년은 다시 수장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맨발에 남루한 누더기를 걸쳤지만 소년은 평시와는 달리 당당했고 침착했다.

사울 당신은 위대하고 거룩하십니다. 그러나 감히 말하지만 당신은 지금 큰 잘못을 저지르려 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진주한 병정들은 당신이 오랫동안 코브라를 어딘가에 숨겨왔다고 믿고 있습니다. 더구나 오늘 큰 샛별이 뜰 무렵에는, 사원의 바로 울안에서 병정 한 명이 목을 잘려 살해당했습니다. 이제 사원은 병정들의 간섭으로 중립이나 침묵이 용서되지 않는 큰 곤경에 처했습니다. 그 곤경이 어떤 것인지 당신은 왜 바로 알지 못하십니까.

형제여. 병정들과 그대는 작은 오해에 빠져 있다. 우리는 코브라가 누군지를 모르며, 를 사원 안에 숨겨준 일도 없다. 왜 우리가 특정한 사람을 특별히 우리의 사원 안에 숨겨야 한단 말인가? 지금까지 지켜온 우리의 중립을 왜 우리가 오늘에 이르러 포기해야 한단 말인가?

수장이시여, 당신은 그렇다면 병정을 만나 사실을 말해야 할 것입니다. 그를 회피하여 만나지 않는 한 당신은 저들의 오해를 해소할 길이 없습니다.

무슨 오해를 해소한단 말인가 ? 병정을 만난다는 것은 그것 자체로도 다른 오해의 씨가 아닌가 ? 사원을 참례하는 신도가 아니라면 나는 아무도 만날 수 없다는 걸 그대는 알지 않는가?

튕기는 듯한 수장의 음성에서 소년은 언뜻 기억의 한 토막이 되살아났다. 격렬하고 뜨거웠던 그때의 기억을 소년은 재빨리 입 밖으로 내뱉었다.

나의 파문이 생각나는군요. 사을 당신께선 그때의 일을 기억하시겠죠?

주렴 저쪽에서 달빛이 흔들렸다. 대나무의자가 잠시동안 삐걱거렸다. 충격은 재빨리 흡수되었지만 그 여운은 길게 끌었다, 어떠한 사람도 천사백일의 오랜 시간을 무시할 수는 없다. 주렴을 사이에 둔 두 소년은 천사백일간, 이 사원에서 함께 공부했던 공통의 추억들이 있는 것이다.

지금은 폐쇄되어 문에 자물쇠가 물려 있지만. 과거에는 대사원 경내에 떠돌이 중들을 위한 객관(客館)이라는 것이 열렸던 억이 있다. 그 객관을 청소하고 시중드는 일은 당서 배움 길에 있던 소년승들의 차지였다.

전쟁이 발발하여 약 6개월이 지난 어느 날, 40세쯤의 한 승려가 홀로 객관에 찾아들었다. 그는 고리처럼 똥그란 눈에 콧구멍이 위로 들려서 어딘가 코믹한 인상의 사내였다. 소년과 사울이 더욱 놀란 것은 걸찍한 그의 입담과 번개처럼 눈을 속이는 그의 재빠른 손놀림이었다. 십대 중간의 두 어린 소년에게, 그 객승(客僧)의 일거수 일투족은 찬탄과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행복한 관계는 미구에 큰 파국을 맞이했다. 어느 날 성도의 경찰이 지친 표정으로 객관에 찾아와서 두 명의 소년승들에게 한 장의 낡은 사진을 보여주고 돌아간 것이었다. 사진의 주인공은 머리털의 유무에 관계없이 그들이 존경해 마지않던 손빠른 객승이 분명했다. 그는 무려 전과 5범의 악명 높은 절도범이었던 것이다.

상습 절도범의 처리를 앞에 두고 두 소년승은 경찰이 떠나가자 큰 당혹감과 우울한 고민에 사로잡혔다. 그들은 우선 범인 처리에 날카롭게 의견이 대립했다. 사울은 그를 경찰당국에 고발조처하여 곧 체포토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소년은 일체 모른 체하여 그가 스스로 떠날 때를 기다려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결국 그들은 후자의 의견을 따른 결과, 며칠 후 좀더 비극적인 큰 불행을 맞기에 이르렀다. 본당에 모신 성상의 이마에서 범인은 대담하게도 보석을 뽑아갈 궁리를 했고, 그것이 당직중인 본당 승려에게 발각되자 범인은 칼을 휘두른 후 어딘가로 도망친 것이었다. 칼에 찔린 당직 승려는 불행하게도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며칠 후 범인 역시 늪지대의 수초지대에서 익사체로 발견되었다. 속세의 일로부터 눈을 돌렸던 작은 실수가. 의외에도 두 생명을 한꺼번에 잃는 엉뚱한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경찰의 사건처리가 대강 마무리된 보름쯤 후에 대사원의 승려들 회합은 또 하나의 엄숙한 뒷마무리를 서둘고 있었다. 그들은 자체 내의 조사를 통해 두 소년 중 한 소년이 치명적인 잘못을 저지른 사실을 알아내었다. 두 시간 동안의 격렬한 토의 끝에 그들은 이윽고 우울한 합의에 도달했다. 상황을 잘못 판단하여 두 명의 생명을 잃게 한 무앙이라는 소년에게, 그들은 승려로서는 가장 혹독한 파문의 중벌을 내리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파문 직후 무앙 소년은 사원에서 추방되어 전쟁이 한창인 거친 속세에 버려졌다. 그후로 2, 무앙 소년은 생존을 위해서만 온갖 지혜와 노력을 동원했다. 그러나 생존은 가능해졌지만 무앙은 2년 전의 그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신했다. 누더기를 걸친 피폐한 걸인의 모습으로, 그는 지금 대사원을 방문하여 과거의 동료인 사울 수장과 마주해 있는 것이다.

수장이시여, 당신은 방금 코브라가 누군지를 모르며 그를 사원 안에 받아주신 일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거룩한 당신께서 진실을 외면하신 채 사원을 무서운 파국으로 몰고 가는 행위일지도 모릅니다. 사원은 모든 백성에게 참배할 기회를 공평하게 제공하시고 있습니다. 거위도둑도, 악덕상인도, 심지어는 살인강도도 사원에 찾아와 당신의 거룩한 발 앞에 꿇어 엎드릴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헌데 당신은 왜 이들 중에 코브라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신이 그를 모른다는 것은. 진실로 모름이 아니고, 모르고 싶다 는 당신의 희망이 아니겠습니까? 더욱 당신이 아셔야 하실 일은, 모른다는 당신의 변명에도 불구하고 병정들이 당신 사원에서 코브라와 그 일당들을 찾아낼 수 있다고 믿고 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결국 대사원이 코브라를 숨겼는가 안 숨겼는가는 당신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사원 밖에 있는 병정들에 의해 가려질 뿐입니다, 수장이시여, 거룩한 당신은 이년 전에 한 소년승이 속세의 일을 외면했다가 큰 재난을 당한 사실을 잊으셨나이까 ? 그의 재난은 속세의 사악함에 현명하게 대응치 못한 어리석음에 있었습니다. 당신은 왜 그때의 교훈을 지금에 되살려 사원을 구하지 않습니까? 병정이 보낸 최후의 통첩을 당신은 절대로 가벼이 보셔서는 안됩니다. 수장이시여, 병정은 힘이 세며,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능히 이 대사원을 불태울 수 있습니다. 그의 통첩에 응하는 길만이 이 사원을 파국으로부터 구하는 길임을 명심하십시오.

형제여, 내가 지금 병정의 통첩에 응한다면, 차후에 나는 또 다른 통첩에도 다시 응해야 됨을 그대는 아는가? 대사원이 물소도둑과 흉악한 살인자도 내치지 않고 받아주는 것은 밖에 드러난 겉치레만을 보지 않고 사람의 몸 안에 숨겨진 때묻지 않은 예쁜 영혼을 보는 때문이라. 나는 이제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으로 이 대사원을 위하는 길인가를 알았노라. 형제는 더 이상 심려치 말고 밤이 깊었으니 이제 그만 물러가라.

화강암 깔개 돌들이 햇볕을 받아 뜨거운 열기를 내뿜었다. 훤히 트인 공간인 데도 대기는 부풀어올라 증기처럼 무덥고 답답했다. 광장은, 유리 속에 갇혀 영원히 밀폐된 기포(氣泡)처처럼 조용했다. 하오의 광포한 태양만이 하늘 가득히 폭군처럼 군림하고 있었다.

승려들은 횐 코끼리의 성상 앞에 손을 합장한 채 두 줄로 꿇어앉아 있었다. 그들의 눈은 열기로 감겼고, 갈색의 법의(法衣)는 걸레처럼 땀에 젖었다. 아침녘에 길었던 그들의 그림자가 지금은 짧아져서 검고 조그맣게 그들의 발치에 뭉쳐 있었다. 돌 바닥에 꿇은 그들의 무릎은 핏기를 잃어 어둡고 푸른 잿빛이었다. 햇볕에 노출된 맨머리와 이마에는 땀방울이 잦아들어 하얗게 반짝이는 소금의 테가 앉아 있었다.

그들은 아침에 해가 뜨자 돌연 광장으로 끌려나왔다. 그것은, 제 시간에 이행되지 않은, 최후 통첩에 대한 대장의 약속된 응징이었다. 두 명의 병자와 수장만을 제외하고는, 대사원의 전 승려가 코끼리상 앞에 무릎이 꿇리어졌다.

대장은 수장 사울에게 다시 한번의 기회를 부여했다. 간밤에 경고한 바 있는 -불행한 사태-, 그는 정오까지 한번 더 연기하노라고 통고했다. 정오까지도 응답이 없으면 대장은 -불행한 사태--심각한 사태-로 바뀔 것임을 경고했다. 특히 그는 -심각한 사태-를 거듭해서 수장에게 강조했다.

사울은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침묵으로 일관할 뿐이었다. 차일 밑 의자에 앉는 것이 허용된 그는, 차라리 볼이 통통한 백치와 같은 귀머거리 소년이었다. 대장은 그러한 어린 수장에게 놀라운 인내력과 자제력을 발휘했다. 광장의 경비를 성군들에게 맡기고, 대장은 통고가 끝나자 빠른 걸음으로 광장을 떠나갔다.

아침이 가고 태양은 머리 위로 높이 솟았다. 모든 그림자가 짧아졌고 대지는 숨을 막는 무자비한 열기로 뒤덮였다.

광장의 시간은 오래 전에 멎어버렸다. 그것은, 햇볕 속에 무릎을 꿇고 일체의 움직임을 멈춘 승려들에 의해 정지되었다. 광포한 하늘의 태양까지도 그들에게는 무력한 듯했다. 그들이 광장에 허용한 것은 침묵과 빛과 응축된 정적뿐이었다.

대장은 약속한 정오에 어김없이 광장에 나타났다. 그의 군화가 깔개 돌에 올리자 광장에는 다시 멈추던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늘에서 쉬던 성군 병사들이 자기 위치로 바쁘게 돌아갔다. 대장을 수행한 두 명의 검은 모자 대원들은 곧장 승려들이 꿇어앉은 코끼리상 앞으로 다가갔다.

보리수 그늘 밑에 앉아 있던 소년도, 몸을 일으켜 광장으로 나왔다. 그는 어젯밤 이후 줄곧 혼자 사원과 숲을 배회했다. 대장도 그를 찾지 않아서 소년은 모처럼 완전히 자유로왔다.

꿇어앉은 많은 승려들 중에서, 갑자기 5명의 승려가 돌 바닥으로부터 일으켜 세워졌다. 그들은 검은 모자 대원들에 의해, 열에서 이탈하여 수장이 앉은 차일 앞으로 인도되었다. 뜨겁게 달구어진 깔개 돌 위에 그들은 다시 한번 긴 횡렬로 앉혀졌다.

수장은 들으시오.

대장이 돌연 사울을 향해 엄숙하게 입을 열었다. 사울이 여전히 눈을 감고 있어서 대장은 잠시 기다렸다. 그러나 끝내 눈을 뜨지 않자 대장은 다시 말을 이었다.

두 차례에 걸친 나의 경고를 당신은 모두 묵살해버렸소. 그러나 나는 아직도 당신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고 싶소. 당신 앞에는 당신을 따르는 다섯 명의 승려들이 앉아 있소. 당신이 끝내 코브라를 두둔하면 이들은 내 명령에 따라 차례대로 사살될 거요. 처형은 당신이 신호만 하면 지금이라도 곧 취소될 수 있소. 그러나 끝내 고집을 피운다면 이들뜬 바로 이 자리에서 순서대로 사살될 뿐이오. 나는 당신이 생각할 수 있도록 삼십초의 시간밖에 줄 수가 없소. , 그럼 시작하겠소. 결심이 섰으면 신호를 해주시오.

사울의 눈은 떠지지 않았다. 대장은 곧 왼팔을 들어올려 팔목시계의 숫자판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광장의 시간은 다시 정지했다. 어느 틈에 검은 모자 대원은 권총을 뽑아 첫 번째 승려의 관자놀이를 조준했다. 갑자기 그 장면은 광장 전체를 외설스럽게 지배했다. 그것은 결코 보고 싶지 않은 구토를 유발하는 외설한 장면이었다.

강렬한 폭발음이 울리고 외설스러움은 사라졌다. 뜨겁게 달구어진 깔개 돌 위에 날계란을 던진 듯한 약간의 오물이 흩어졌다. 대장이 다시 입을 열었지만 사울에겐 여전히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잠시 후 두 번째 폭발음이 울렸고 그때도 역시 깔개 돌 위에 오물이 튀었다. 폭발음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고 대장은 곧 광장을 떠났다. 무의미한 살인이라는 깨달음이 대장을 겨우 진정시킨 것이었다.

시체를 치우던 병사 하나가 소년의 옆에서 가벼운 구토를 시작했다. 그는 구토로 눈이 충혈된 채 소년을 향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나는 오늘을 기억할 것이 다. 두고 보라, 파란 눈의 살인자를,.....

소년은, 위급을 알리는 마을의 날카로운 새벽 종소리에 눈을 떴다. 눈을 뜨자 소년에게 닥친 것은 앞을 막는 짙은 안개였다.

마을 복판의 광장을 향해 몇 명의 어른들이 뛰어가고 있었다. 너무 짙은 안개

때문에 그들은 허둥허둥 불편하게 귀고 있었다.

길 위에 깔린 자갈들이 이슬과 안개로 흠뻑 젖었다. 소년은 늪지대의 오늘 날씨가 유난히 좋을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는 오늘 대장을 버려둔 채 혼자 성도로 돌아갈 작정이었다.

광장으로 짐작되는 전방으로부터 종잡을 수 없는 소음이 안개를 뚫고 들려왔다. 인간들의 목소리가 분명한데 그것들은 한데 혼합되어 전혀 다른 소리로 들려왔다. 아주 가까이 다가갔지만 사정은 조금도 좋아지지 않았다.

아저씨, 무슨 일이죠? 갈색 구렁이가 갓난애라도 삼켰나요?

보렴, 네 눈으로. 외국 병정이 칼맞아 죽었구나.

어른들의 굵은 허리통들이 소년의 시야를 답답하게 가로막았다. 그래서 소년은 몸을 낮추어 어른들의 다리 사이로 땅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군용 비옷 위에 엎드려 있는 것은 소년의 친구인 파란 눈의 대장이었다. 옷이 벗기운 대장의 등에는 단검이 깊이 박혀 손잡이만 겨우 보일 뿐이었다. 낮췄던 몸을 재빨리 일으킨 후 소년은 천천히 어른들 사이를 빠져 나왔다.

안개에 몸을 숨길 수 있다는 것이 소년에게는 무척 다행했다. 그는 광장의 중심부를 벗어나 통나무이 쌓인 야적장 쪽으로 빠져 나왔다. 갓 베어낸 생나무로부터 나뭇진 냄새가 신선하게 풍겨왔다.

그놈을 도랑에서 건져냈다더군. 등판에 칼을 꽃은 건 코브라의 짓이 틀림없을까?

붙임성 있고 칼칼한 음성이 야적장 한곳으로부터 곧바로 날아왔다. 소년이 주춤 발을 세우자 다른 음성이 그 뒤를 따랐다.

누구의 짓인가는 문제가 아니야. 그놈이 죽어 없어졌다는 게 지금의 우리한텐 중요한 거야!

자넨 코브라를 어떻게 생가하나? 코브라는 정말 살아 있는 실제의 인물일까?

네 명의 코브라가 잡혀 죽었지만 그때마다 코브라는 버젓이 새루 생겼어. 진짜 가자는 따져서 뭘해 ? 필요한 때 나타나면 그게 모두 진짠 게야.

사원으로 향하는 큰길로 휘어지자 안개 속에서 돌연 밝고 우렁찬 대사원의 종소리가 들려왔다. 갑자기 소년의 전신으로 예기치 않은 힘찬 활력이 뻗어나갔다.

대사원은 살아 있었다. 그것은 바로 수장 사울의 빛나는 승리를 예고하는 종소리였다,

누군가에게 등을 떠밀리듯 소년은 새벽길을 힘차게 뛰기 시작했다. 소년의 귀에는 그제야 대장의 마지막 말이 똑똑히 들려왔다. 어젯밤에 잠자리로 찾아온 대장은 아주 우울한 표정이었다.

꼬마야, 나는 졌다. 코브라와 사울에게 완전히 패배한 거다. 이제야 나는 코브라와 사울이 나보다 월등히 강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허지만 나는 어째서 그들이 그토록 강한가를 알 수가 없다. 그들이 강해야 될 이유라고는 아무 것도 없지 않은가?

소년은 이제 그 이유를 큰 소리로 말할 수 있었다. 그들이 당신보다 강했던 이유는 그들에겐 걸어야 될 큰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홍성원(洪盛原: 1937- ) 무사와 악사

 

경남 합천 출생. 고려대 영문과 중퇴. 1964<빙점 지대><한국일보> 신춘문예에, <기관차와 송아지><세대> 창간 1주년 기념 문예 현상 공모에, <세디 데이의 병촌><동아일보>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되어 등단함. 그는 전쟁 소설을 다루고 있으며 휴머니즘에 입각한 저항 의식으로 작품을 구성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장편 <역조><빗돌 고개>, <종합 병원>, <프로방스의 이발사>, <>, <주말여행>, <폭군>, <즐거운 지옥> 등의 단편과 <고독에의 초대>, <호두껍질 속의 외출>, <막차로 온 손님들>, <곡예사의 혁명>, <사랑 강조 기간> 등의 신문 연재 소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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