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조부(祖父)님
현길언
1
할아버지가 이상해지기 시작한 것은 엊저녁부터였다.
여든 다섯 나이에도 할아버지는 한시도 쉬지 않고 무엇을 하면서 지냈다. 집 주위 자잘한 일들을 손보기도 하였고, 어떤 때는 들이나 밭에까지 나가기도 하였다. 아버지가 없는 집안 살림이긴 하나 할아버지까지 일해야 할 처지는 아닌데도 늘 그렇게 무엇인가를 하면서 지냈다. 닷새 전에는 손자인 나를 데리고 마을 안을 한 바퀴 돌면서 가을 곡식과 감귤 밭들을 돌아보고 오더니 그만 자리에 눕고 말았다.
집안에서는 노인이 무리를 한 때문이라고 생각하다가, 이틀을 넘기면서부터는 나이도 나이어서 세상을 뜰 때가 가까웠다고들 수군거렸다.
그래도 읍내 병원으로 모시기 위해 경운기까지 준비하였으나 할아버지는 끝내 듣질 않았다. 그뿐이 아니다. 약은 말할 것도 없고 미음 한 모금 거두질 않았다. 원래 분명한 성품과 고집을 아는 식구들이라 속수무책이었다. 사흘을 넘기면서 종조부를 비롯한 친척들이 모여 밤을 지내면서 운명할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제 초저녁 때였다. 낮부터 모였던 일가 어른들도 저녁을 먹고 온다고들 집으로들 돌아가고, 집에는 종조부와 두서너 사람들이 마루에 앉아서 잡담들을 하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누워 있는 안방과 마루 사이에는 샛문이 열려져 있어서, 사람들은 마루에 앉아서도 방안의 동정을 살필 수 있었다. 어머니는 내 아내와 부엌에서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얘야 ! "
마당에 서 있던 나는 황망스런 종조부의 부름에 후다닥 마루로 들어갔다. 지금까지 누워만 있던 할아버지가 일어나서는 마루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 돌연한 사태에 짓눌려 꼼짝도 못하였다. 그것은 이 다음 일어날지도 모를 어떤 사태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모두들 죽음 직전의 한순간에 있을 수 있는 할아버지 거동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런데 그 다음 일이 이상하게 돼 버렸다. 마루로 들어서는 나를 보신 할아버지 눈이 이상히 빛났다. 그건 너무나 투명한 눈이었다. 눈빛만이 아니었다. 얼굴 이 점점 상기되더니 생기가 서리기 시작하였다. 그때였다.
"아, 네가 희빈이구나. 난 네 애비다."
순간, 나는 노망을 하시는구나 생각하였다. 그런데 그 다음 더 가관스런 일이 벌어졌다.
"삼촌님, 얼마나 고생이 많습니까."
할아버지가 종조부 앞에 넙죽이 엎드려 큰절을 하였다.
"성님!"
종조부가 얼른 두 손으로 할아버지 웃몸을 붙잡아 일으키면서 비통스럽게 부르짖었다. 늙어서 노망을 한다는 게 얼마나 가련한 일인가를 생각하다가, 어쩜 단순한 노망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아심이 일었다. 그것은 할아버지 모습에서 죽은 아버지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버지를 모른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와 할아버지 모습에서 지금까지 나대로 아버지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바로 할아버지에게서 찾을 수 있었다.
종조부를 바라보던 할아버지는 훅 일어서더니 툇마루로 나가 가지런히 놓여진 신을 찾아 신고는 마당으로 가 섰다. 두리번거리며 집 주위를 돌아다보다가 울타리 건너 빽빽하게 심어진 밀감나무 밭으로 눈을 돌렸다. 한참이나 그곳에 눈을 주며 서 있던 할아버지는 하늘을 향해 기지개를 켜고는 "여보" 하고 집안을 향해 소리쳤다. 그 소리에 마루며 부엌에 있던 사람들이 의아하니 마당으로 나왔다. 부엌에 있던 어머니가 화들짝 놀라며 물 묻은 손을 털며 마당으로 나섰다.
꿈속에서만 듣던 생전의 아버지 음성을 들었던 것이다. 그때였다,
"아, 여보 얼마 만이라. 그 동안 고생이 말이 아니었수?"
할아버지가 어머니를 보더니 환하니 반가운 얼굴로 한 발짝 다가갔다.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하였다.
"난 집을 떠난 후 이리저리 떠돌아 댕기다가 다시 이렇게 와서. 참 세수를 해야크라 물을 좀 주어."
틀림없는 젊은 아버지 목소리였다. 목소리만이 아니다. 할아버지는 바로 20대의 아버지처럼 혈기가 넘치는 청년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시아버지가 며느리에게 '여보'라고 하는 흉측스러운 처사에 당혹하면서도 너무나 돌연한 사태에 어리등절하였다. 종조부는 조심스레 주위를 살피더니 그래도 집 밖 사람들이 없는 데 안심된 얼굴로 어머니에게 물을 떠오도록 눈짓하였다. 나는 어머니 얼굴에서 지금까지 보지 못하던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청상으로 50을 넘긴 나이에 늘 찐득하게 들러붙던 그 한스러운 수심이 싹 가시고 할아버지 얼굴에서처럼 생기가 스물거리는 걸 찾을 수 있었다. 그 생기가 점점 짙어 가더니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나는 이 기막힌 사태 앞에 눈앞이 캄캄하였다, 어머니까지 할아버지처럼 되지 말기를 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죽은 사람 혼이 들린 사람은 그 죽은 사람이 살았을 때 모습과 꼭 같이 된다는 말은 들었으나, 그게 다 그렇고 그런 이야기로만 들어왔는데, 그 사실을 나는 할아버지에게서 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가 할아버지를 아버지로 받아들인다면 이건 마지막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는 천천히 부엌으로 들어가더니 큰 플래스틱 대야에 물을 가득히 퍼서 할아버지 앞으로 가져갔다. 할아버지는 천천히 소매를 걷어올리고는 왼손부터 대야에 담갔다. 그리고 이어 오른손을 집어넣더니 오래오래 그대로 있다가 꺼냈다. 그리고는 손을 씻기 시작하였다. 어머니와 종조부는 멀거니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삼십 년 전 일이다. 이 마을 민보단 부단장이었던 아버지는 어느 날 공비로 몰려 마을 앞동산 잔디밭에서 마을 청년 여덟 사람과 함께 죽음을 당했다. 그것은 공비들에게 피살된 마을 구장의 죽음 때문이었다. 그때 어머니는 나를 밴 만삭의 몸이었다. 외아들인 아버지 죽음은 장손인 할아버지에겐 크나큰 타격이었다. 그 사건이 있은 후 석 달 후에 어머니는 나를 낳았다. 나는 아버지에 대해선 전연 모른다.
그러나 이따금씩 엿들었던 사람들의 이야기와 어머니의 한숨 섞인 말마디에서 나는 아버지를 나대로 상상하여 머리에 간직하며 살았다.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그 아픔과 외로움을 견디기 위하여 아버지 모습을 가슴에 심어놓고 살아 왔다.
한참이나 손을 씻던 할아버지는 물 묻은 손을 툭툭 털고는, 수건을 들고 서 있는 어머니를 보더니 싱긋 웃으면서
"전에 내가 입던 옷 좀 내줘. 하도 오래 옷을 갈아입지 못해서---”
말끝을 흐리며 수건도 받지 않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말소리와 거동이 틀림없이 아버지 살았을 때라고 나는 생각되었다. 어머니는 종조부 얼굴을 한 번 보고는 뒷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얼마 안 있어 할아버지가 입던 옷 중에서 손보아 오던 것을 꺼내 들고 할아버지 방으로 들어갔다. 어머니가 건네 드리는 옷을 받아든 할아버지는
"여보, 이게 내 옷인가? 원, 이건 아버님 옷이주. 정신두......"
할아버지는 심히 불쾌한 듯, 그러나 애써 참는 얼굴로 옷들을 물렸다. 어머니는 말없이 옷을 거두고 마루로 나왔다.
"제 애비 옷이 있느냐?"
종조부가 수심찬 얼굴로 물었다. 30년 전에 죽은 사람 옷을 간수해둘 리가 없는 줄 알면서도 해 본 소리다. 그런데 어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예."
하고 대답하면서 다시 뒷방으로 들어가더니 얼마 있다가 명주로 곱게 다듬어 만든 홑바지 저고리를 들고 나왔다. 그건 바로 아버지 옷이었다. 이런 기막히고 가슴 흔드는 일이 또 있을까.
어머니는 아버지 죽음이 정말 믿기지 않아서 언젠가는 할아버지에게 빙의(憑依)되어서라도 아버지가 나타날 것을 믿고서, 아니면 입던 옷으로라도 아버지의 모습을 고이 간직해 두려고 그 옷을 이제껏 장 속에 간수해 둔 것인가.
할아버지는 그 옷을 받아들고는
"여보, 잘 간수해둬서? 고마와, 고마와."
가까이 있었으면 어머니 손목이라도 푹 잡을 듯이 진심으로 고마워 하였다.
"난 이제 잠을 좀 자야크라."
옷을 갈아입은 할아버지는 모여 있는 사람들이 다 들으라는 듯이 크게 말하고는 풀석 요 위에 쓰러져 버렸다. 공중에서 줄을 타는 심정으로 아슬아슬하게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사람들이 몸을 움직이며 숨을 몰아쉬었다. 어머니는 벌써 코를 고는 할아버지 얼굴을 잠깐 훑어보고는 이불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종조부가 방안으로 들어와 눈을 감은 할아버지 모습을 보시더니
"틀림없이 신규와 닮았다."
탄식처럼 말하고는 마루로 나와 담뱃불을 붙였다. 신규는 아버지 이름이었다.
"노망은 아니어. 성님이 신규를 들린 거여."
할아버지가 아버지 혼령에 빙의되었다는 이야기이다.
2
할아버지는 꼬박 스무 시간 동안 죽은 듯이 잠만 잤다. 사람들은 잠에서 영원히 깨어나지 못할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것은 하나의 바람이었다. 종조부는 장례 절차를 내게 분부하기도 했다. 소식을 들은 일가 친척들이 부산히 드나들었다. 그러나 어저께 일어났던 이야기는 누구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아니했다. 단지 할아버지 병세를 말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노망기까지 보이고 있다는 이야기가 오갔다.
어머니는 아침이 되자 집 울타리를 사이에 둔 밀감 밭에 들어가 종일 나오질 않았다. 일할 게 있어서가 아니다. 노란 글시 주렁주렁 달린 귤나무 아래 땅을 호미로 '박박' 긁으며 그냥 둬도 그늘에 짓눌려 죽을 잡초들을 뽑고 있었다. 꼭 잡초들을 뽑아 버리려는 게 아니다. 그냥 여러 번 호미 질을 하는 것으로 족한 것이다. 언뜻 뒤에서 보면 호미로 땅을 파는 게 손가락으로 땅을 후비는 것 같았다. 마음 깊숙한 곳에 쌓여진 깊은 상처를 '박박' 긁어 새빨간 궂은 피를 철철 흘려내 버리려는 것 같기도 했다. 사실 호미로 땅을 긁어낼 때의 어머니 심정은 늘 그런 것이었다. 이 사태에 아버지를 그렇게 잃어버린 어머니는 그냥 슬픔만을 간직하여 살아갈 수는 없었다. 내일도 기약할 수 없었던 그 시절이었다. 아버지가 구장을 죽인 공비로 몰려 죽었으니까, 어머니가 공비 계집으로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던 때였다.
사태가 좀 가라앉자 이번에는 배고픔이 앞섰다. 사태로 몇 년 동안 농사를 짓지 못한 처지들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 시체를 제대로 매장하지도 못한 채 세 살난 나를 등에 업고 40리 넘는 길을 걸어 외가집엘 갔다. 외삼촌은 우리 모자를 보시고는, '죽은 사람은 죽어도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면서 밀감 묘목을 줬다. 육묘장을 경영하던 외삼촌은 감귤에 대한 생각을 다른 사람보다 먼저 가졌었다, 어머니는 나를 외가집에 둔 채 그 묘목을 등짐으로 지고 다시 40리 길을 되돌아와 그걸 심었다. 그로부터 어머니는 마음이 상할 때마다 그 밭으로 가서 땅과 씨름을 하였다. 이제는 옛일이 되었으나 외삼촌 말과 같이 산 사람은 살아야 되는 것을 어머니는 밀감 밭을 만들며 터득하였다.
나는 마당 한가운데 서서 할아버지가 잠들고 있는 방을 건너다보다가 공연히 땅만 긁어 헤치는 어머니를 생각하였다. 그런데 다음 순간 난 극심한 곤혹에 빠지기 시작하였다. 만약 어머니까지 아버지로 나타난 할아버지를 정말 아버지로 알아 버린다면.... 생각하기조차 흉측스러운 일이었지만 그 사실은 어쩌면 가깝게 다가오는 것같이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어머니 가슴속에 응어리진 한이 아직도 풀려지지 못한 걸 생각하면 그런 일을 전연 생각 안 할 수도 없었다.
마루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수런거리기 시작하더니 종조부님이 나를 손짓하여 불렀다. 그와 거의 동시에 할아버지 방문이 벌컥 열려졌다.
"야, 희빈아! "
할아버지가 툇마루로 나오며 나를 불렀다. 오랜 잠 속에 묻혔던 얼굴이 아니었다. 목소리가 걸걸하니 힘이 있었고 여전히 번쩍이는 눈빛에 혈기가 넘치고 있었다. 순간 나는 스무 몇 살 때 찍었다는 아버지 사진에서 본 그 모습이 생각났다.
"어머니는 어델 갔나."
어머니가 어느 틈엔지 마당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얼굴은 숙였는데 걸음걸이가 약간 휘청거렸다. 할아버지는 꿈을 꾸듯이 멍청히 어머니를 바라보다가
"나 손을 좀 씻어야겠어. 물을 좀 갖다 주어."
어머니에게 물을 청했다. 사람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감히 말문을 열지 못하는 놀람에 숨을 죽이는데 어머니는 물을 떠다 할아버지 앞에 놓았다. 어제처럼 오래오래 손을 씻었다. 오랜 잠 때문인지 눈 언거리에 눈곱이 흥건하게 끼었으나 그건 상관하질 않았다.
"희빈아 같이 갈 곳이 있다."
손 씻기를 마친 할아버지는 앞장을 서며 내게 재촉하였다.
"성님, 어디를 가시려고 그러십니까? "
마루에 서 있던 종조부가 황급히 내달아 나오며 할아버지 손을 붙잡았다. 실성한 몸으로 동네를 돌아다닌다면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삼촌님, 저 양 구장네 집에 다녀오쿠다."
"양 구장이라니요 ? "
"아니 양 구장도 모르우과. 그 넓은드르 양 구장 말이우다."
아버지가 죽던 그 시절 마을 구장(區長)을 했던 사람을 말함이다. 아버지 죽음을 몰고 온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 아들을 만나 내가 구장을 죽이지 않았다는 증거를 보여야 허쿠다."
사람들은 아연했다. 30년이 넘어 모두 잊어버린 일들을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그때 어머니 뱃속에 있던 내가 세상에 나와 죽은 아버지보다 더 나이를 먹었는데 그 일을 다시 끄집어내서 어떻게 할 것인가.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되어 그때의 그 정황을 기억하고 있는 것인가.
할아버지는 멍청하게 서 있는 사람들을 둔 채 그냥 밖으로 걸어나갔다. 순간 아버지에 대한 막연한 생각들이 내 가슴속에서 굉장히 크게 요동치기 시작하였다. 그건 지금까지 아주 잊어버렸던 일들에 대한 것들이었다. 아니 일부러 잊어버리려 했던 것들이기도 했다. 나는 신들린지도 모른 할아버지에게서 불현듯 아버지를 느끼기 시작하였다, 나는 황급히 할아버지 뒤를 쫓았다. 떡 벌어진 어깨며, 팍 펴진 허리며 등, 길쭉한 아랫도리며,,,,,, 할아버지는 혈기가 왕성한 20대의 모습으로 내가 따르기 힘들게 내닫듯 걸어나갔다.
할아버지는 옛날 양 구장네 집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 아들이 죽은 아버지 또래니까 60을 바라보는 나이다. 양 구장이 살아 있다면 할아버지 나이다.
1948년이었다. 봄부터 어수선했던 섬 사정은 가을이 접어들면서부터 더 극심해졌다. 중산간 마을 사람들은 해변마을로 소개를 하였고, 공비들의 습격과 이에 대한 군경합동 토벌대들의 작전이 벌어지면서 섬은 온통 수라장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 마을은 그냥 평온하였다. 일주도로변에서 5리쯤 떨어진 부락이었으나 공비가 되어 야단스럽게 날뛸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경찰관서는 없었으나 청년들이 스스로 민보단을 만들어 마을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큰일이 벌어졌다. 구장이 공비들에게 납치 당한 것이다. 온 마을 사람들이 동원되어 마을 주위를 뒤지다가 마을 냇가 숲 속에서 처참하게 죽은 구장을 찾아냈다. 발가벗겨 사지를 나무가지에 묶어놓고 창과 돌멩이로 찌르고 쳐서 거의 갈가리 찢겨진 채로 죽어 있었다. 마을이 생기고 처음 있는 일이었다. 구장의 죽음을 본 마을 사람들은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첫 번째로 그 아들과 가족에게 그 증상이 나타났다. 그들은 경찰관서로 달려갔다. 아버지를 죽인 공비들이 마을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아버지를 비롯한 여덟 청년이 희생됐다. 나는 그런 사실을 어렴풋이 느낄 뿐 더 자세하게 알려고도 아니했다. 그건 나뿐만이 아니다. 할아버지도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아버지가 과연 구장을 죽였는가 하는 문제의 해명에 우리의 관심은 멀어져 갔다. 그런 일들은 있을 수 있는 일로 받아들여졌다. 그건 세월 탓만은 아니다. 그 시국에 그런 죽음은 흔히 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모두들 잊어버리는 것이 그 아픔을 치유하는 일로 생각하고 있었다.
죽은 구장의 아들인 길삼씨는 툇마루에 걸터앉아 있었다. 밖에서 일을 하다가 잠깐 들어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듯 싶은 모습이었다. 그는 훌렁훌렁 마당으로 들어서는 할아버지를 보더니 훅 자리에서 일어섰다. 뒤이어 나와 종조부를 비롯한 몇몇이 뒤따라 들어오는 걸 보더니 이상한 얼굴을 하였다.
"길삼이, 오랜만이네."
인사를 할까말까 어정쩡하게 서 있는 길삼씨 손목을 할아버지가 덥석 잡으며 반갑게 흔들었다. 순간 그의 얼굴 표정이 묘하게 움직였다. 틀림없는 노인인데 목소리는 젊은이 같고 어디서 많이 들은 듯이 귀에 익었다. 더구나 할아버지에게서 전연 딴 사람의 인상을 받아서 더더욱 놀랐다.
"날 모르크라. 나야 나, 신규나."
신규가 아버지 이름임을 안 길삼씨는 또 한번 놀랐다. 할아버지는 이제 완전히 아버지로 변신한 것이다. 길삼씨 얼굴이 흙빛으로 변하면서 내게 구원을 청하는 눈길로 뭐라고 말하려 하였다. 그러나 나도 그에게 할아버지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미쳤다고, 아니면 노망한다고 할 것인가.
"길삼이, 난 자네 부친을 죽이지 않았네."
그건 할아버지 심장 깊숙한 데서 울려나오는 목소리였다. 우는 듯 애원하는 듯, 귀기가 서린 듯, 동짓달 한밤중 울담을 에워싼 삽나뭇가지를 흔드는 바람소리처럼 들렸다. 그 한마디는 마당을 갑자기 싸늘하게 만들었다.
길삼씨의 얼굴에 주름살이 파르르 떨렸다. 말문이 턱 막힌 듯 눈만 멀뚱거렸다. 그때 종조부가 나섰다, 그러자,
"삼촌님, 전 결코 구장을 죽이지 않았수다."
할아버지가 종조부 앞으로 다가오며 사정투로 말했다. 그리고 마당가에 몰려선 사람들을 멀거니 바라봤다. 마치 법정에 선 죄인이 무죄를 하소연하는 그 얼굴이었다. 그 무죄는 증거가 없다. 단지 심증만 그럴 뿐이다. 완전범죄를 획책한 범인의 덫에 걸려든 피고는 벗어날 길이 없다. 그러나 그가 믿는 건 자신은 무죄하다는 그 사실뿐이었다. 나는 이상한 충격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정말 아버지 혼이 할아버지에게 옮겨간 것이다. 그렇다면 아버지인 할아버지 말은 사실일 수도 있다. 헌데 종조부는 그게 아니었다.
"성님, 정신을 차리십서. 무슨 말을 경 허염쑤과. 이제 다 잊어버린 걸 무사 다시 시작허염쑤과."
'정신을 차립서'에 힘주어 말하는 종조부의 얼굴엔 귀찮고 두려운 표정이 역력하게 서려 있었다. 할아버지는 종조부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시 길삼씨에게 얼굴을 돌렸다.
"길삼이, 자네도 잘 아는 일이라. 우린 그때 어떻게 해서라도 마을의 평온을 유지시키기 위하여 애쓰지 않았는가. 헌데 일이 일어난 거주."
할아버지는 목이 마르는지 침을 자꾸 삼켰다. 옆에서 보니까 주름이 쭈글쭈글한 목에 선하게 서려 있는 힘줄이 자꾸만 꿈틀거렸다. 그리고 힘이 부치지도 않는지 그냥 우뚝 선 채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이 이야기를 해나갔다. '자네 내 이야기를 잘 들어보게'로 시작한 할아 버지 이야기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것을 여러 사람들에게 풀어놓듯이 표준말씨로 거침없이 이어졌다.
그날 우리는 윗동네 정 서방네 집에서 화투를 쳤지. 민보단원들의 친목회로 메밀 국수를 해 먹은 후에 닭잡아 먹기 내기로 시작한 게 판이 커졌어. 민보단 사무실은 향사를 지키는 당직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그 집에 모여들어 판에 끼거나 구경들을 했었지.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놀 때 자네 부인이 달려와선 구장 어른이 공비들에게 납치 당해 갔단 소식을 전했어. 우린 공비란 말에 그만 혼비백산 자리를 박차고 흩어졌지. 내가 곧바로 향사로 와 보니 민보단원들은 철창(鐵槍)을 옆에 두고 코를 골고 있었어. 우리들은 비상을 걸고 대원들을 모았어. 허나 쉽게 모여지질 않더군. 총 가진 공비와 싸운다는 게 겁이 났는지도 모르지. 그럭저럭 날이 밝아서 겨우 모여 자네 집엘 갔었네. 자네 모친과 동생들만 겁에 질려 있었어. 자네가 없길래 물었더니 지서에 갔다더군. 난 그때 우리가 즉시 경찰관서에 연락을 못 취한 게 생각났어.
지서에서 경찰관들이 오고 해서 우리는 구장 어른을 찾기 위해 마을 주위를 샅샅이 뒤졌어. 이틀만에 찾았지. 허나 그건 끔찍스런 현장이었어. 난 그때 자네에게 어떤 말을 해 줘야 할지 말문을 찾지 못했네.
구장 어른의 장사가 끝난 며칠 후였지. 지서에서 경찰관들이 큰 트럭을 타고 와서 민보단원들을 집합시켰어. 우리는 이제부터 토벌대에 배치되어 공비를 잡는 일에 나서는가 생각했어. 모두 스물 두 사람이었어. 우리는 지시에 따라 차를 타고 지서까지 갔어. 그때부터 경찰
관들이 우리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어. 공비 취급을 하기 시작했어. 그날 새벽 구장을 납치한 일에 가담한 자를 색출하는 거야. 우린 처음에 어처구니가 없어 고개만 흔들었지, 허나 노름을 했다는 사실이 꺼림칙하여 그날 저녁 행적을 얼버무려 버린 것이 화근이었지. 그날 저녁 우리는 회식을 끝내고 각자 헤어졌다고 대답한 사람들은 거의가 끝까지 노름판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었어.
며칠 후에 우리들의 진술이 우리들 자신에게 퍽 불리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사실대로 말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었어. 더구나 단장과 부단장이 큰 사태가 발발했는데도 지서에 연락도 취하지 않고 뒷날 아침까지 작전을 지연시킨 것은 이상하다는 거야. 또한 그날 저녁 대원 회식을 빙자하여 마을 경계를 소홀히 한 점 등은 모두 의심을 받게 되었어. 우리는 할말이 얼었지. 그러나 우리가 구장을 납치하거나 그 일에 가담하지 않은 사실만은 명백하기 때문에 크게 걱정을 안 했지. 우리는 결국 마지막으로 자네의 증언을 필요로 한 거야.
끝까지 자네가 우리와 함께 있었으니까 일은 쉽게 판가름 날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취조관은 자네의 증언을 듣기로 결정하였네. 일은 간단한 거였지. 자네 부인이 그 소식을 갖고 그 정 서방네 집에 왔을 때 우리가 모두 함께 있었다고 딱 한마디만 해 주면 다 되는 일이었어. 그러나 그 기대는 허물어지고 말았어.
할아버지는 말을 끊고 원망스러운 눈으로 길삼씨를 넘겨다보았다. 어느덧 할아버지 주위를 에워싼 사람들의 눈도 이상하게 빛났다. 모두들 어떤 사태가 일어날 순간을 기다리듯 초조한 얼굴들이다. 80노인과 60노인이 한바탕 붙기라도 할 것을 기대하는 호기심 찬 눈들이었다.
더구나 종조부는 안절부절못하였다. 정신나간 할아버지가 무슨 짓이라도 저지르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아버지 죽음에 대한 할아버지 말보다도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날 것을 더 마음썼다. 모여 있는 사람들도 같은 생각들이었다
"자네를 만나자 일이 곧 마무리될 줄 믿었네. 자네의 한마디면 우리의 혐의는 다 풀려지는 것이었으니까. 그런데 자네의 눈에서 우리를 증오하는 살기를 보았을 때 우리는 덜컹 겁부터 났어. 지금까지는 취조관들도 그렇게 겁이 나지 않았는데 자네의 싸늘한 표정에 그렇게 겁이 난 것은, 자네에게 거는 기대가 마지막이었기 때문이었어."
할아버지 목소리가 '걱걱' 하니 울음과 한숨이 섞여 있었다.
-그날 밤, 하도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기 때문에 우리 집사람이 그 소식을 갖고 온 그때에 함께 있었던 사람들을 확실히 기억할 수 없읍니다. 중간에도 들고나고 했으니까요. 그때 설령 함께 있었다 하더라도 우리 부친의 납치 사건에 관련이 안 됐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자네에게 마지막 매달리려던 마음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네는 쇳소리처럼 그 한마디를 하고 홱 나가 버렸네. 자네에게 걸었던 한 가닥 기대가 허물어진 것은 물론 그런 증언은 우리에게 더 불리한 결과를 가져왔어. 계획적이란 거야. 구장의 납치를 위장하기 위하여 그날 밤
민보단원들이 연회를 열었다는 거야."
이런 이야기들은 누구도 몰랐던 사실들이었다. 단지 당시 수사관과 길삼씨만 알고 있다. 허나 그들도 이미 30년 전 일인데 하나하나 기억하고 있을 리 없다. 헌데 그걸 할아버지는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모여선 사람들은 할아버지의 이야기에 관심
을 보이지 않았다.
"자, 길삼이, 이제랑 다 말을 하게. 그날 밤에 처음부터 끝까지 나는 자네 곁에 있었지 않아서 ?"
길삼씨 얼굴이 점점 하얗게 되며 입술 언저리가 까맣게 타들어 가면서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후딱 서너 발짝 앞으로 나서 더니 길삼씨 오른편 팔을 확 붙잡았다. 순간 휘청, 길삼씨 몸이 중심을 잃었다. 그것은 붙잡힌 손을 빼려 하였기 때문이었다.
"자네, 우리 그 집에 가보세. 그날 밤 일을 내가 모두 그대로 말할 테니까."
할아버지는 길삼씨를 붙든 채 마당에 모여선 사람들을 헤치고 밖으로 내달았다. 실로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60이 안 된 길삼씨가 80이 넘은 할아버지에게 몰려가고 있었다. 종조부와 모여선 사람들이 어리둥절하다가 우하니 뒤를 따라 나갔다.
나도 할아버지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바싹 그 뒤를 따랐다.
할아버지는 길삼씨를 끌고 마을 어구에 있는 정 서방네 집으로 들어갔다, 쓰러져 가는 초가가 한 채 있었다. 댓돌 위에 앉아 있던 개가 인기척에 짖지도 않고 집 뒤울 안으로 달아나 버렸다. 집은 문이 열려진 채 사람은 없었다.
마당에 들어선 할아버지는 길삼씨 손을 풀고는 집 주위를 휘휘 둘러보더니,
"참, 저 방이군."
하면서 마루 건너 안방을 가리켰다. 그때 뒤따라오던 사람들이 마당으로 들어섰다
3
"난 그날 밤 일들을 모두 기억하고 이서. "
할아버지는 길삼씨 손을 잡고 집 동편 울 안으로 들어갔다. 동백나무들이 빼곡하게 들어선 뒤울은 햇볕이 가려져 고즈넉하고 침침한 느낌을 주었다. 거기에 작은방 방문이 나 있었다. 사람 하나 드나들 정도로 작은 문이었다.
"더러는 마루에서 윷을 놀았고, 우리는 이 방에서 화투를 쳤어. 자네는 여길 앉았고, 그 곁에 내가, 내 곁에 단장이 앉았었지."
방문 곁에서 시렁 쪽에 길삼씨가, 그 곁에 할아버지가 직접 앉았다. 시렁 가운데 편, 그러니까 방의 가운데쯤 민보단장의 자리라고 설명을 했다. 그렇게 자리에 앉은 후 직접 화투를 치는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울 안에 모여든 사람들은 참 희한한 일도 다 있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하거나, 빙긋이 웃거나, 심각해 하면서 잔뜩 호기심에 찬 눈으로 구경들을 했다.
"자네가 돈을 다 잃었던 때쳤주. 매우 초조한 얼굴을 나는 지금도 기억허염서."
할아버지는 조금 여유를 얻은 듯이 길삼씨를 보며 빙그레 웃기까지 하면서 말했다. 길삼씨는 완전히 넋 나간 사람이 되어 할아버지 얼굴을 순간 순간 뚫어져라 바라볼 뿐 입은 조개처럼 꽉 다물었다.
"자네가 돈을 다 잃고 어디 가서 돈을 좀 변통하여서 다시 들어와 얼마 안 돼서 자네 부인이 왔었네. 그때 자넨 손에 들었던 화투장을 던지며 일어서더니 같이 둘러앉아 있던 우리들을 획 둘러보더군. 그건 후에야 느낀 것인데 같이 갈 동료를 찾는 것이었어. 헌데 우린 공
비라는 바람에 모두 혼이 나간 거지. 자네의 처지를 생각할 겨를이 없이 그냥 뿔뿔이 흩어져 버렸어. 그런 우리들 처사가 자네 가슴을 아프게 했겠지. 그러나 그 시각에 내가 자네와 함께 있었다는 건 확실한 사실이 아닌가. 그때 죽은 여덟이 바로 자네가 화투장을 던지고 우리를 둘러볼 때 자네 눈 속에 박힌 얼굴들이야. 그건 틀림없는 사실이 아닌가. 어, 길삼이 대답을 좀 해 보게. 응, 왜 입을 다물엄서."
말을 끝낸 할아버지는 눈으로 나를 찾았다. 사람들은 갖가지 이상한 눈총으로 할아버지를 바라보는데 그런 것에 아랑곳 않고 나를 손짓해 불렀다.
"야, 회빈아. 넌 들었지. 내가 여기 이 방에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가슴이 찡하니 울리면서 뭣이 섬뜩하였다. 30년 전에 죽어간 아버지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나도 같이 미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러면서 난 미치지 말고 할아버지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간직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난 공비가 아니라 구장을 죽이지도 않았다."
할아버지는 길삼씨를 붙잡고 어서 대답을 하라고 다그쳤다. 그러나 길삼씨는 바들바들 떨면서도 입을 꼭 다문 채였다
"대답을 해. 대답을,,,,”
할아버지는 애걸하듯 하였다. 그러나 길삼씨는 먼 허공만을 응시하며 썩은 나무처럼 대답을 하지 않았다.
"넌 들었지. 믿을 수 있지. 내가 공비가 아니란 걸."
할아버지는 길삼씨가 대답을 안 하자 내게 눈을 부릅뜨며 확인시키듯 하고는 후다닥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내달았다.
사람들은 안타까워하면서 한마디씩 하였다. 길삼씨는 그냥 허공만 쳐다보고 서 있다.
"완전히 미쳤어. "
"노망을 하는 거여.
"그때 일이 언젠데. 다 잊어버린 일 왜 다시 꺼내시는 건가."
"아들을 들렸어. 거 봐. 아들이 살았을 때와 닳지 않나, 목소리며 걸음걸이까지,,,,,"
나는 그런 이야기들을 귓가로 흘리면서 불끈 뜨거운 게 가슴속에서 솟구쳐 올라오는 걸 도로 꾹 삼켰다. 그리고 할아버지 뒤를 따라 달렸다.
"빨리 가 봐라. 큰일이다, 큰일."
종조부의 걱정스런 음성이 등뒤에서 들려왔다.
정 서방네 집에서 곧장 돌아온 할아버지는 다시 어머니를 찾았다. 어머니는 울담 건너 그 감귤 밭에서 흙을 긁어 파고 있었다. 그건 마치 아버지가 죽은 후 그냥 아무렇게나 흙만 덮어두었다가 오랜 뒤에 시국이 평안해지자 장사를 지내려 흙을 헤집으며 뼈를 추리던 그때 그 손놀림이었다. 그걸 보면서, 나는 문득 그 한스러움을 이기려, 아니면 한의 깊숙한 곳으로 영원히 빠져 버리려는 아프고 괴로운 몸짓처럼 느껴졌다. 다 잊어버릴 때에 다시 생각나게 하는 할아버지의 처사가 야속하기도 했지마는, 그러나 그것은 영원히 잊어버릴 뻔한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다시 되살리는 계기가 된다는 데서, 어머니는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흙을 파 헤집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어머니가 떠 온 줄에 여느 때처럼 손을 오래오래 씻더니 배고프다면서 밥을 달라고 했다. 부엌에서 정성을 다하여 상을 마련, 방으로 들어가자 할아버지는 냄새만 한동안 맡다가 수저로 뜨는 시늉만 하고서 상을 물렸다. 그리고는 냉수를 청하여 한 그릇을 다 비운 후에 곧 잠자리에 들어 코를 골기 시작하였다.
저녁이 되자 일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성님은 오늘 저녁을 넘기지 못할 것이여. 그러니 권당들은 일들을 미리미리 좀 해 줘야겠어."
할아버지 말고는 일가 중에서 가장 어른인 종조부는 할아버지 장례 문제에 마음을 쓰면서 일을 준비시켰다.
나는 그러한 집안의 분위기에 못마땅하면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모두들 할아버지의 이틀 동안의 일들에 관해서는 약속이나 한 듯이 입들을 다물고 있는 일이 이상하기만 했다. 가만히 종조부의 눈치를 보건대 의식적으로 그 일을 피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할아버지 장례를 미리부터 요란스럽게 서두는 것 같았다.
"종조부님."
나는 뭔가 확인하고 싶었다. 아버지가 죽던 그때 그 상황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건 종조부밖에 없다.
"오늘 할아버지 말씀이 모두 허황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내가 아버지 줄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려 하자,
"다 옛날 이야기다. 잊어버린 일들을 공연히 꺼내어 무얼 하겠다는 거야. 이제 큰일 앞에 두고 그런 사사한 일에 마음쓰는 건,,,,,, 너는 더구나 상주될 몸이 아니냐."
종조부의 말은 핀잔에 가까웠다. 나는 의기가 소침하였으나 그렇다고 아버지 죽음에 대산 일을 넘겨 버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다시 꺼내려는데,
"알아서 좋을 게 있구 몰라서 좋을 게 있는 거여. 이제 어떡 허려는 것이야. 더구나 실성한 노인네 말을 믿고서,”
종조부의 말은 내 뜻을 완전히 분질러 버렸다. 저 방에 누워 있는 분은 할아버지임에 틀림이 없다. 할아버지에 빙의되어 아버지 모습으로 우리들에게 나타났다 해도 그것 역시 실성한 할아버지로 받아들여 질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나는 방안에 모여 앉은 친족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폈다. 모두들 뭔가 불안한 표정들이었다. 그것은 할아버지 죽음에 대한 불안이기보다는, 오히려 저 잠에서 할아버지가 다시 깨어나는 데 따른 불안이었다. 지금까지 몰랐던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지는 데 대간 불안이었다.
4
밤새에도 별일이 없었다. 밤은 무사히 넘겼다. 동이 트고 해가 마당 가운데로 솟아올라도 할아버지 방에선 별 기척이 없었다
밤을 무사히 넘긴 할아버지는 다시 깨어나 어떤 일을 만들지도 모른다는 기우를 사람들은 갖고 있었다.
"오늘을 넘기진 못할 것이여."
"그만하면 만수를 누린 셈이지."
"속 아픈 일도 많이 당했지만 그래도 복 있는 분이어. 증손자까지 봤으니.”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죽음에 다다라서 할아버지가 어떤 큰일을 저지를까 하는 염려가 끼여 있는 말이기도 했다. 종조부는 그런 일에 대비해서 건장한 청년 몇을 집 주위에 배치해 놓기도 했다
열 한 시쯤 되어 할아버지는 어제처럼 우닥탁 자리에서 일어났다.
"희빈아."
마루에 모여 앉은 사람들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며 마당으로 나오더니 나를 찾았다. 내가 얼른 나서자,
"왜 이리 시끄러우냐. 오랜만에 나를 봐도 반가운 인사 한 마디 하는 사람이 없구나."
심히 불쾌한 얼굴로 사람들을 휘둘러보더니 세숫물을 청하였다. 어머니가 여느 때처럼 물을 떠가자 다시 손을 씻고 또 씻었다.
"성님."
종조부가 갑갑한 얼굴로 손만 씻는 할아버지 곁으로 다가서며 불렀다.
"성님, 소원이 뭣입니까. 굿을 하여 원을 풀어드리리까?"
말소리엔 눅직한 습기가 잔뜩 끼여 있었다. 사람들은 벌써부터 굿 이야기를 하였었다.
"무슨 굿 말이우꽈. 내가 구장을 안 죽였다는 것만 알아주면 됩니다. 난 공비가 아니우다."
할아버지는 종조부가 원망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어머니가 흐흑 하며 치맛자락으로 콧물을 훔쳤다.
"회빈아, 저 앞동산으로 가자. 그리고 삼촌님, 길삼이를 글로 보내주십서. 꼭 마지막으로 헐 말이 있수다."
할아버지는 내 팔을 부여잡고 빠른 걸음으로 집을 나섰다. 붙잡힌 오른 팔목이 뻣뻣하게 저려 오도록 할아버지 손목엔 힘이 있었다.
우리들은 마을 가운데 있는 앞동산이찬 잔디밭에 이르렀다. 이곳은
밤낮으로 마을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하란 곳이었다. 그리고 아버지와 여덟 청년들이 죽은 곳이기도 했다.
할아버지가 한동안 뒷짐을 지고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을 때 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희빈아, 넌 저리로 가거라."
할아버지는 무슨 큰일이나 일어날 것처럼 나를 손짓하여 쫓아내듯 하였다. 그리고 빙 둘러싸여 있는 사람들을 죽 훑어보다가 길삼씨를 알아보고는,
"어이, 길삼이 여기로 좀 오게."
길삼씨가 사람을 비집고 나갔다. 벌써 그는 할아버지에게 완전히 매인 몸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곧 무슨 일이 일어날 것처럼 흥미롭게 두 사람을 건너다보며 가슴을 조아렸다. 나는 사람들과는 떨어져 이 광경을 보는데 눈꺼풀이 싸르르 떨리면서 가슴이 콱콱 막혀 갔다.
"길삼이, 그날 우리는 결국 자네 부친을 납치한 공비가 되어 이곳으로 끌려왔어. 마을 사람들 앞에서 우리 죄상이 폭로될 참이었지."
사람들은 숨소리를 삼켰다. 어쩌면 할아버지가 호주머니에서 식칼이라도 꺼내어 콱 길삼씨 가슴을 찌르는 사건이라도 기다리는 것 같았다.
"그래도 우리는 낙담하질 않아서. 죽기 직전이라도 자네가 나서서 해명해줄 줄 알았지."
할아버지 목소리는 착 가라앉아 있었다. 길삼씨는 경계하는 몸짓으로 뒤로 멈칫멈칫 물러섰다.
"그런데 우리가 포승에 묶여 트럭에서 내리자마자 자네 모친의 악받친 목소리를 들었지. 그와 동시에 우리들의 어깨와 등을 향해 돌멩이와 몽둥이들이 내려쳐졌어. 그들 중에 자네를 보았구. 핏발선 눈으로 우리를 향해 저주를 보내고 있었어. 난 모든 기대가 허물어짐을 느꼈구. 그러면서도 죄 없이 죽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여서,"
할아버지는 길삼씨를 원망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두 사람 사이에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자 맥이 풀린 듯 몸들을 뒤척이며 긴장들을 풀었다. 그때였다. 후다닥 할아버지가 길삼씨를 제쳐놓고 내닫기 시작하였다. 나는 사람들 틈에 끼여 있다가 엉겁결에 몇 걸음 쫓아가다가 서 버렸다. 할아버지는 80노인답지 않게 마을 북쪽 길로 내닫고 있었다.
"어어,,,,,,"
사람들은 이 의외의 사태에 입을 벌렸다.
"여보게들 뭣들을 하는 거여. "
종조부가 젊은이들을 향해 소리치자 와 하고 여남은 장정들이 할아버지 뒤를 따랐다.
나는 죽으라고 뛰는 할아버지와 쫓아가는 청년들을 바라보다가 아버지의 최후를 생각하였다. 들은 이야기로는 아버지도 지금 할아버지와 같이 처형 직전에 포승을 풀고 내빼어 달아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붙잡혀 와 죽었다고 했다. 나는 죽음 직전의 탈출을 시도한 아버지의 그 마음을 85세의 늙은 몸을 끌고 달려가는 할아버지 모습에서 생생하게 알아볼 수 있었다.
사람들은 역시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보듯 '어어 아아' 하고 할아버지와 청년들 간의 거리가 좁혀지는 데만 관심을 두고 있었다. 나는 이제 달아나는 할아버지를 붙잡는 일이, 그날 탈출하던 아버지가 붙잡히는 것처럼 할아버지에겐 절망스런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이 그저 좁혀지는 거리만 보며 안타까워할 뿐이었다. 청년들은 왜 할아버질 쫓고 있는 것일까. 결국 할아버지는 미친 사람밖에 될 수 없는 것인가. 할아버지 이야기는 미친 사람의 이야기로 끝나는 것인가.
할아버지는 건장한 청년들에게 붙잡힌 채 몸부림치면서 질질 끌려오고 있었다. 나는 그걸 보는 뿐간 꿈속처럼 깊은 수렁에 빠져 가는 절망감에 고개를 숙여 버렸다. 얼마 후였다.
"희빈아!"
하는 아버지 목소리를 듣고 눈을 떴다. 할아버지가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나를 찾는 눈빛이 유난히 번쩍였다.
내가 사람들을 비집고 할아버지에게로 다가갔을 때 뭐라고 말할 듯 입을 달싹이다가 푹 쓰러져 버렸다. 사람들이 약간 웅성거렸고 종조부가 달려나와
"성님, 성님."
소리를 몇 번 하였다.
할아버지는 집으로 옮겨진 후 곧 숨을 거뒀다. 사람들은 조용조용히 움직이며 종조부 지시에 따라 장례 준비를 했다. 그 정도 노망을 하고서 돌아가신 게 천만다행이란 얘기가 친족들과 일꾼들 사이에 오갔다. 누구도 아버지 죽음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꼭 약속한 일 같았다.
지은이 : 현길언(玄吉彦: 1940- )
제주 출생. 제주대학 국문학과 졸업. 1980년 <현대문학>지에 <성 무너지는 소리>와 <급장 선거>가 추천되어 등단. 그는 제주도라는 향토적 삶의 세계를 소재로 하여 분단된 민족 비극
의 실상을 파헤치는 작가이다.
주요 작품으로는 <우리들의 신부님>, <귀향>, <열전(1-5)>(연작), <사제와 제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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