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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학(인문과학, 사회과학, 철학, 역사, 기타)

여성의 시대는 열릴까

by 자한형 2022.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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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시대는 열릴까-조한혜정

21세기는 분명 여성의 시대가 될 것이다. 중세적 봉건 사회를 무너뜨린 것은 상인과 장인과 무사로 이루어진 젊은 남성 집단이었다. 이들 개혁 세력은 만인에게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는 유토피아를 만들어내겠다고 하면서 야심차게 근대라는 새 시대를 기획했는데, 그 이후 3~4세기가 지나서 많은 이들은 그 근대 기획은 실패했다고 말한다. 이제 위기에 처한 근대는 서둘러 진보의 신화를 접고 수혈을 해야 할 판이다. - 위기에 처한 근대 사회

탈근대와 대안적 근대성과 여성성에 대한 담론은 바로 이런 위기 상황에서 일고 있는 논의들이다. 근대의 전반부는 봉건적 남성성을 넘어서는 근대적 남성성의 시기고, 후반부는 근대적 남성성을 넘어서는 여성성의 시기라 할 수 있다. 근대의 전반부에 이루어졌던 작업은 봉건적 체제에 길들여진 수동적인 남자들을 근대적 국민으로, 그리고 거대한 시장의 수요·공급에 맞는 노동자로 만들어 가는 일이었다. 간혹 남자들의 힘이 모자라면 여자들을 끌어다 쓰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근대의 전반부는 남자들의 주무대였다. 이 시대를 통해 숙녀인 여자는 근대적 남성인 신사들이 보호해야 할 대상이지 주체는 아니었다. - 남성들이 주무대였던 근대의 전반

여자가 본격적으로 근대라는 무대에 등장하는 것은 근대 기획의 실패가 드러나기 시작할 즈음이다. 근대 기획은 이론가들이 꿈꾸던 것과 달리 인간이 서로를 도구화하는 시대를 낳았고, 표 관리에만 열을 올리는 무책임한 정치꾼들과 돈 벌기에 급급한 거간꾼[사이에 들어 흥정을 붙이는 사람]들이 득세하는 세상을 만들었다. 지구 환경은 심하게 오염되었고, 복제 인간이 만들어지고 있으며, 지구 전체를 한순간에 파괴할 핵무기가 만들어졌다. 한편에서는 원자화한 개인들이 외롭다고 아우성을 치고 다른 한편에서는 전 지구를 자유롭게 떠돌아다니는 자본이 그 자체로 하나의 체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마치 운전 기사 없는 거대한 자동차처럼 가속도가 붙어 질주하고 있는 이 체제는 위험하기 짝이 없다. 향방을 조절할 길이 없는 이러한 역사적 진행이 이를 곳은 파국뿐이다. 위기를 돌파하는 에너지는 사회 중심부가 아니라 주변부에서 나온다는 것은 인류 역사의 법칙이다. 주변에 있던 여자들이 대안 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당연한 귀결이다. - 근대의 대안 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는 여자들

20세기가 경쟁과 소유와 독점의 원리가 주도한 시대였다면 21세기는 공생과 자율과 공유의 원리가 주도하는 시대일 것이다. 도구적 합리성과 확장주의에 의해 굴절된 근대를 의사 소통적 합리성과 공존주의로 바로잡아가야 하는 것이다. 사실상 기력이 쇠잔하여 도덕성마저 잃은 현 체제는 주변에서 영입한 여자들의 힘을 빌려 겨우 지탱해나가고 있다. - 여성들의 참여가 필요한 21세기

20세기를 잘 살아낼 나라는 한마디로 여성의 시대를 적극적으로 열어가는 사회일 것이다. 그러면 한국이라는 사회는 어떤가. 한국 사회는 세계적으로 남녀 평등 지표가 매우 낮은 나라에 속한다. 한국 사회가 남다르게 남성성에 집착하는 것은 식민지적 근대화 경험과 관련이 깊다. 팽창주의[국가의 영토 확장을 지향하는 이념이나, 정책, 흔히 대내적으로 국가주의를 강조하고 대외적으로는 침략 전쟁을 써서 결국 전쟁을 불러일으키는 경향이 있다] 시대에 제국 남자들이 식민지 지배를 통해 자신들의 남성성을 확인해갔다면, 식민지 땅의 남자들은 자국내 여성을 식민화함으로써 자신의 상한 남성성을 지켜나갔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1960년대 이후 한국의 초고속 성장은 손상된 남성성을 회복하려는 열망의 소산인 측면이 없지 않다. - 남녀 평등 지표가 열악한 우리나라의 현실

한국 사회가 진정 변화를 원한다면, 그것은 왜곡된 남성성의 역사를 바로잡음으로써 가능하다. 남자들이 기형적 근대화 과정에서 굳어진 남성 콤플렉스에서 해방돼 자신들이 만들어낸 체제를 성찰해낼 수 있다면, 자신의 불안한 남성성을 확인하려는 명분과 당위 게임을 그만둘 수 있다면, 그래서 연줄로 이어지는 부패의 먹이 사슬을 끊어낼 수 있다면 한국 사회는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은 여자들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관료제적 공공성을 넘어 시민적 공공성을 세우기, 관계의 회복을 통해 삶의 질을 높이기, 격변의 시대를 유연하게 살아남기, 이런 것은 여성성을 포용하지 않고서는 해낼 수 없는 작업들이다. 남자와 여자가 생산적인 시대를 열어 가는 동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 한국 사회가 나아갈 길

희망의 문학 '새로운 시대에 요구되는 여성의 참여'를 쓴 글로 여성의 참여를 정당화하자는 주장을 논리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필자는 남성들이 중심이 되었던 근대 사회의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 세력이 바로 여성들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남성들이 주도한 20세기가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고 했으며, 위기를 돌파하는 에너지가 사회 중심부가 아니라 주변부에서 나왔다는 역사적인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