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 재 명
사람이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데는 자기가 처한 환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자기가 몸담고 생활하고 있는 삶의 터전인 공간이 과연 어떤 존재인가를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인간의 활동은 구체적인 공간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아무 데서나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판만 벌려 놓으면 원료가 하늘에서 그냥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물건을 만들어 놓기만 하면 절로 날개 돋친 듯 팔리는 게 아니다. 일하는 장소, 원료를 구하는 장소, 상품을 판매할 장소, 그리고 이 장소 사이의 길을 잘 알아야 한다. 일을 하는 데 있어서만 장소에 대한 지리적 지식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놀이를 하는 데도 장소에 대한 지리적 지식이 필요하다. 아무 데서나 하게 되면 그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삶의 질은 생활 영역의 범위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개인적 차원에서는 나이에 따라 활동 공간의 범위가 확대되고 사회적 차원에서는 역사적 발전에 따라 그 범위가 확대되었다. 전쟁은 바로 사회적으로 삶의 영역의 범위를 넓히기 위한 노력이 가장 극단적으로 표출된 전형적인 예라고 하겠다.
자기의 삶의 영역을 넓히고 삶의 가능성을 높이는 데는 타 지역에 대한 다양한 정보가 필요하다. 지리학은 고대 원시 사회로부터 삶의 조건을 구성하는 공간에 대한 정보의 수집과 체계화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발달하게 되었다. 즉 지리학은 학문의 발달 초기에서부터 그 주된 관심이 인간이 살고 있는 장소에 대한 지식을 체계화함으로써 그들의 삶의 조건을 개선하고자 하는 데 있었다.
원시 시대의 지리학
오래 전부터 인간은 장소에 대한 지식을 필요로 하였다. 자기가 살고 있는 곳은 어떻게 생긴 지역인가? 먹을 것은 어디에 많고, 물은 어디에서 구할 수 있으며, 편히 지낼 수 있는 잠자리는 어디에 있는가? 또는 위험한 곳은 어딘가 등에 대해서 알고 싶어했다. 지적 호기심은 다른 지역에까지 미치어, 산너머 혹은 강이나 바다 건너에는 어떤 세상이 있을까 하고 궁금해하였다.
원시 시대는 그 어느 때보다도 장소에 관한 정보를 많이 필요로 하던 시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오늘날과 같이 생활을 영위해 나가는 데 필요한 자원의 공급 체계가 잘 갖추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개인이나 부족 민들이 자원의 소재지에 관한 정보를 제대로 가지고 있지 않으면 그만큼 생활이 불안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자원을 어디에서 구할 수 있을 것인가, 어디에 그러한 자원이 많이 있는가에 대하여 잘 알고 있어야 했다. 그 '어디에'라는 장소, 그 소재지에 관한 정보가 없다면 하루하루 생활이 그만큼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먹을 것이나 물을 구할 수 있는 곳, 잠자리로 이용하기에 적합한 동굴, 맹수들의 서식처, 위험한 절벽, 다른 적들의 거주지 등에 대한 정보는 매우 중요한 지식이었으며 하루하루의 경험을 통하여 얻은 정보들은 하나둘씩 체계화되고 정리되었다. 그러한 정보는 지도라는 양식으로 발달하게 되었다. 어쩌다 발견한 물을 구하기 좋은 곳, 먹을 수 있는 맛있는 열매가 많이 나는 곳, 사냥하기 좋은 곳 등에 관한 정보를 지도로 만들어 이용하게 되었다. 항상 돌아다니면서 살아야 했기 때문에 길에 대한 정보는 매우 중요하였던 것이다.
원시 시대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지역의 지리를 요모조모 잘 아는 것이 얼마나 잘 사느냐 하는 삶의 질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다. 인간의 역사는 어떻게 보면, 삶의 우연성과 불확실성을 극복하고자 한 노력의 역사라고 할 수 있는데, 원시 시대에는 우연성 극복이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의 길에 대한 지식을 통하여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국가 성립 이후의 지리학
인간이 농경 기술을 개발하고부터는 지리적인 지식이 더욱 체계화되기 시작하였다. 정착을 하여 살기 때문에 더욱 살기 좋은 곳을 골라 거주하고자 노력하였다. 어느 땅이 비옥하여 농사가 잘 될 것인가, 어느 땅에 어느 식물이 잘 자랄 것인가, 집 지을 재료는 어디에서 구해야 하는가? 장소를 선정하는 데 더욱 체계적인 지식이 동원되었으리라 생각된다. 자연 공간을 해석하고 이를 적절히 변경하여 이용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고부터 이런 것이 가능하였다고 본다. 자연 상태로 존재하는 식물을 인위적으로 기르기 시작하면서 기후나 토양과 식물의 성장 조건에 대한 지식이 보다 고도화되었다고 할 것이다. 식물을 옮겨 심거나 인위적으로 재배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자연에 대한 통제력이 늘어났음을 뜻한다. 곧, 자연에 대한 지식이 그만큼 많이 늘어났다는 이야기이다.
정착 생활은 각 장소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을 요구하였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한 곳에서 오랫동안 거주하는 것이기 때문에 거주하는 곳에 대한 더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그 장소를 효율적으로, 보다 효과적으로, 보다 집약적으로 이용할 수 없는 것이다. 장소의 특성을 알아야 용도를 잘 분류하여 이용할 수 있다. 즉 토지 이용의 면에서 분화가 가능한 것이다. 이런 분화는 자연에 일정한 인위적인 질서를 부여하기 시작하였다.
국가는 정착 생활이 어느 정도 가능해지면서 발달하였다. 자연에 대한 통제력이 전혀 없이는 어떤 일정한 지역을 다스린다는 것의 의미가 없어진다. 지역별 자연의 특성과 인구 및 자원의 분포 상태 등에 관한 지식이 체계화되어야 일정 지역에 대한 통치 행위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국가가 성립하면서 지리학은 획기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국가는 지배자가 다스리는 일정한 영역을 갖고 있는데, 지배자는 자기들의 힘이 미치는 지역에 대하여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자기의 통치 지역에 대한 바른 지식이 없으면 국가를 성공적으로 다스릴 수가 없는 것이다. 인구에 대한 정확한 지식은 조세를 거두어들이거나, 전쟁시나 위급시에 장병을 뽑아 군대를 만들거나 국가적인 사업을 하기 위해 사람을 동원하는 데 필요하였다. 그리고 각 지방의 산물에 대한 지식이 정비되어 있어야 조세를 잘 거둘 수 있었다. 행정 구역을 적절히 구분하고, 행정 관리를 파견하기 위해서는 각 지역에 대한 세세한 정보가 집대성되어 있어야 했다. 따라서, 국가 성립 초기에서부터 지도 제작과 지리지 편찬 사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국가가 성립하고부터는 그 국가들 사이에 분쟁이 발생하게 되고 각 국가는 서로 영토를 넓히려고 노력하였다. 그리하여 전쟁이 자주 일어났는데, 지리적인 정보는 군사용으로 매우 중요한 지식이 되었다. 군대를 이끄는 장군은 천문 지리에 밝아야 했다. 정벌하고자 하는 곳의 지리를 모르고 싸울 수는 없는 것이다. 싸움 자체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벌하고자 하는 지역이 어떠한 지역인지, 과연 정벌할 만한 가치가 있는 땅인지에 대하여 사전에 알고 있어야 한다. 많은 노력을 들여 정벌하였는데 빼앗아 이용할 자원이 없다면, 그것이야말로 허사인 것이다.
지도를 만들고 지리지를 만든 것이 꼭 자원을 관리하고 다른 지역을 정벌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국가의 위업을 자랑하기 위하여 펴내는 경우도 많았다. 『동국여지승람』같은 경우가 대표적인 예이다. '우리 나라는 이와 같이 훌륭한 나라이다'라는 것을 알리기 위한 것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것은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수행하였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에도 지리는 사회 교과목으로서 조국의 발전된 모습을 널리 알리기 위한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국토 지리의 교육 목적의 하나는 국민의 이데올로기적인 통합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 이전의 지리학 하면 풍수지리, 지도, 지리지가 그 내용이다. 풍수지리는 자연을 해석하는 전통적인 관점이다. 다양한 자연을 일정한 논리로 해석하여 살기 좋은 곳을 선별하고 그렇게 선별한 지역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논리 체계인 것이다. 풍수지리는 어느 정도 문자를 알고 자연을 해석할 수 있는 지식인이나 지배자들이 갖고 있던 하나의 과학적 지식1)이다. 힘없는 시민이야 이것저것 가릴 땅이 없었기 때문에 살기 좋은 곳을 고른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었다. 도읍지, 중요 행정 관청, 절2)등의 건물을 짓는데 풍수 지리라는 과학이 이용되었다. 온갖 논리를 다하여 좋은 자리를 찾고, 그렇게 찾은 곳은 온갖 조흔 말을 다 동원하여 명당 자리로 합리화하려고 하였다. 풍수지리는 그런 작업을 하는 데 적절한 도구였다. 오늘날에도 서민들은 최첨단 건축학이라는 과학적 지식의 혜택을 누리지 못한 달동네 판잣집에서 겨우 생활을 영위해 나간다.
1) 오늘날의 과학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풍수 지리가 비과학적이라고 하나, 풍수 지리가 성행하던 당시에는 가장 합리적인 입지론, 혹은 환경론이었다. 단지 오늘날 우리의 취향에 맞지 않는 점이 많다는 것뿐이다. 거주지를 선정할 때 고려하는 요소가 다르고 평가 기준이 다를 뿐이다. 요소와 기준의 문제일 뿐이지 논리의 체계성에서는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과학성은 시대적으로 규정되는 것이다. 오늘날의 검증 기준으로 볼 때 풍수 지리가 경험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이론적 논술을 갖고 있다는 것일 뿐이다. 그 당시의 맥락에서 보면 풍수 지리는 가장 합리적이고 논리가 엄격한 과학이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2) 절이 갖는 의미가 지금과는 다르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삼국 시대나 고려 시대 같은 경우에는 절이 단순한 하나의 종교 건물이 아니었다.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내고 유지하는 곳이다. 오늘날의 국립 대학교가 갖는 의미와 비슷하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지배적인 엘리트를 양성해 내는 기관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 당시에는 가장 힘있는 학문 연구 기관이었던 것이다. 아무나 절에서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귀족의 자녀만 공부할 수 있었다. 절은 가장 웅장하고 멋있게 지어졌다. 옛것을 생각할 때는 오늘날의 의미와 기능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 당시의 의미와 사회적 기능을 생각해야 바로 이해할 수 있다.
산업 혁명 이후의 지리학
산업 혁명이 성공함에 따라 상품의 대량 생산이 가능하게 되었다. 물건을 손으로 만들 때는 속도가 느려 많이 만들 수가 없었다. 기계를 통하여 물건을 만들 수 있게 되니까 당장 많은 원료가 필요하게 되었다. 손으로 만들 때에는 동네에서 재배하여 수확한 원료만 해도 충분하였다. 그때에는 원료가 부족해서 물건을 못 만들기보다는 손이 딸려서 못 만들었다. 원료보다는 노동력이 큰 문제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기계가 등장함에 따라 손이 딸리기보다는 재료가 딸리기 시작하였다. 어디서 재료를 많이 구해 와야 했다. 비싼 돈주고 산 기계인데 놀리고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동네에서 원료의 생산을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다른 지역에서 값싸게 구해 와야 했다. 너무 비싸게 사오면 수지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많이 생산한 제품을 동네 사람들이 다 소비할 수 없었다. 전에야 각자 자기가 만든 것을 빠듯하게 사용하였다. 남는 게 없었다. 오히려 조금 부족한 듯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한 기계에서 만들어진 똑같은 그 많은 제품을 동네 사람들이 다 쓸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하여 그 기계를 가지고 다른 필요한 물건을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여러 가지 상품을 요모조모 만들 수 있다면 생활에 필요한 이런저런 물건을 만들어 쓸 수 있을텐데, 한 기계로는 보통 하나의 물건밖에 만들 수 없었다. 기계라는 것은 그렇게 만능이 되기가 어려운 것이다. 산업 혁명 초기의 기계라는 것은 실을 만드는 것, 베를 짜는 것등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공장은 제철 공장이 대표적인 것이었다. 그 많은 실과 천, 그리고 제철 제품을 공장이 있는 동네에서 다 쓸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디 내다 팔아야 했다. 고생한 값어치가 있도록 비싸게 팔 수 있는 시장을 개척해야 했다. 이제는 물건을 만드는 일만 열심히 해서 될 일이 아니었다. 원료를 제때제때 구해 오고 만든 물건을 잘 팔아야 했다. 물건 만드는 일이야 기계가 제대로 돌아가기만 하면 특별히 신경 쓸 일이 없다. 신경 쓰이는 것은 원료를 구하고 물건을 내다 파는 일이다. 이런 일을 물건 만드는 사람이 한꺼번에 모두 다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누군가 이런 일에 전념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하는 일들이 점차 나뉘어지게 되었다. 기계를 만드는 사람, 기계를 돌려 물건을 만드는 사람, 원료를 공급해 주는 사람, 물건을 시장에 내다 파는 사람 등 하는 일들이 서로 나뉘어지게 되었다. 노동의 분화는 기계가 등장하면서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산업 혁명 이후 원료를 안정적으로 보급받고 물건을 안심하고 자유롭게 내다 팔 수 있는 지역을 확보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게 부각되었다. 세계의 모든 나라가 그런 것이 아니라 산업 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룬 나라를 중심으로 해서만 그런 현상이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제국주의라는 것이다. 기계를 이용하여 물건을 만들기 시작한 나라는 그런 일을 지속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자기들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다른 나라를 확보해야만 하였다. 제국주의란 바로 원료의 공급지와 상품의 시장으로서 식민지를 개척하는 제국의 논리를 말한다. 제국들은 식민지를 개척하고 점령 지배하기 위하여 강력한 군대를 키웠으며 국내적으로도 독재 정치를 하였다.
쓸모있는 식민지를 개척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이 세계 각 지역에 대한 지리적 지식이었다. 원료 공급지와 시장으로서의 가치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지역 단위로 조직된 다양한 정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다양한 정보 중에서도 제국의 부를 늘리는 데 중요한 자원이 어디서 많이 나는가에 대한 정보가 핵심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국가 사이의 무역이 보다 활발해지면서 다른 나라에 대한 지리적 지식의 요구가 급증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아래 지방 지리학3), 산물 지리학 혹은 상업 지리학4)이 발달했고, 나아가서 오늘날의 경제 지리학으로 발달하게 되었다.
식민지 개척은 나라간에 경쟁이 되어, 식민지의 자원뿐만 아니라 군사 전략적인 측면도 매우 강조되었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강대국을 중심으로 정치 외교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게 됨에 따라 지리학에서도 정치 지리학이 매우 발달하게 되었다. 정치 지리학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환경 결정론이라는 비판을 받는 동시에 파시즘과 결탁되었다는 비난을 받으면서 급격히 쇠퇴하였으나, 최근에 정치 경제학적인 접근 방법이 도입되면서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다.
3) regional geography를 지역 지리, 혹은 지지(地誌), 또는 지방 지리학으로 번역한다.
4) 소위 commercial geography라는 것이다.
지리학의 과학화
현대 지리학은 절로 발달한 것이 아니다. 지리학을 하는 사람들의 의도적인 노력에 의해서 발전된 결과물이다. 처음엔 다른 지역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지리학은 세계의 각 지역에 대한 정보가 점차 늘어나면서 그러한 자료를 체계적으로 조직하여 다루려는 노력을 하였다. 그러한 노력의 산물로 등장한 것이 지역 지리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역 지리학도 지역 정보의 양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그 변화가 가속화되면서 사회적 쓰임새에 대한 의문이 생기게 되었다. 새롭게 변화된 사회적 상황에 능동적으로 적응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사이에 등장한 것이 계량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양의 정보를 조직적으로 다룰 수 있는 과학적인 방법이 고안된 것이다. 초기의 모든 학문은 자료를 수집하고 분류하는 데 그치고 있었다. 정보의 양이 늘어감에 따라 그것을 쉽게 해석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야 했다. 지리학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소위 과학화의 바람을 탈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컴퓨터를 이용하고 고도의 통계적인 방법이 동원되었다. 그리하여 이론을 개발하고자 하였다. 개별적인 사례에 대한 일차적인 정보 자체로 현상을 판단하고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간단한 법칙을 중심으로 이해하고자 하였다. 정보를 취급하는 데 효율화를 추구했던 것이다. 사실 일차적인 정보를 처리하기가 너무나 힘들었기 때문에 과학화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학문의 사회적 가치가 소위 '과학적 기준'에 있지 않았던 시절에는 새로운 것, 색다른 것 등이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그 지역의 독특한 지리적 지식에 대한 요구가 사회적으로 지배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과학성'이라는 것이 학문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조건으로 요구됨에 따라 지리학은 각 지역의 독특한 개성보다는 일반성에 초점을 두게 되었다. 즉, 지리학에서는 지역 연구가 차별성보다는 지식의 표준화를 정립하는 데 필요한 일반성을 추구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현대의 지리학은 사람들이 주어진 자연 환경을 어떻게 이용하여 촌락과 도시를 만들어 살고 있는가,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농업이나 공업 등의 활동이 이루어지는 생산 공간, 주거ㆍ상업ㆍ놀이 활동이 이루어지는 소비 공간, 생산과 소비가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연계시켜 주는 도로 등의 유통 공간을 어떻게 조직하여 이용하고 있는가에 관심을 가지고 생활 공간상에서의 인간 활동의 일반적 원리를 찾고 있다. 다시 말하면, 지역이나 생활공간을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 나가는가, 그리고 그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관찰ㆍ조사하고, 생활 공간상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여, 우리가 살고 있는 장소를 보다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지구촌 사회에서의 지리학
그 동안 우리는 지리가 어떻게 발달해 왔는가를 간단히 살펴보았다. 지리는 우리가 자리잡고 살고 있는 장소가 도대체 어떤 곳인가를 알고 싶은 지적 호기심으로부터 발달해 왔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지리학의 내용과 방법이 크게 변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장소'를 고르고, 우리가 '길(道)'을 잃지 않고 각기 '바른 자리'에서 살아갈 수 있는 '길(방안)'을 모색하는 일이 변치 않고 수행되어 왔음을 알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세계의 여러 나라가 아주 가까운 이웃인 지구촌에서 살고 있다. 우리는 이제 세계를 잘 알아야 한다. 지구촌 사회에서 '촌놈'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세계를 잘 알아야 한다. 지난 걸프 전쟁 때 멀리 떨어진 남의 나라들 사이의 싸움이 우리 나라의 경제 생활에 얼마나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지를 직접 체험하였다. 이러한 간단한 예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참으로 크다. 즉, 다른 나라의 상황이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세계의 다른 나라를 잘 모르면 우리 나라의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세계를 모르면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을 수 없게 된다. 세계를 잘 알아야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잡을 수 있으며, 세계 속에서 우리의 '바른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옛날처럼 닫혀 있는 좁은 지역에서 삶을 영위할 때는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의 지리는 특별히 연구하거나 배우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넓고 복잡한 세계이 전지역이 우리의 생활 무대로 등장한 오늘날 이 지구촌의 지리는 체계적이고 치밀한 전문적인 연구 없이는 알기 어렵다. 따라서 이 지구촌 사회에서의 지리학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도 크다. 세계의 지리를 모르고서는 우리 나라가 나아갈 길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류재명/서울대 지리 교육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부산대학교 지리 교육학과 전임 강사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아시아』, 『우리의 삶터를 아름답게』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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