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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학(인문과학, 사회과학, 철학, 역사, 기타)

단일 문명론의 오류

by 자한형 2022.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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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 문명론의 오류-아놀드 토인비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은 21개 문명을 체계적으로 비교·연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21개의 문명과 같은 실체는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하나의 문명, 즉 서구 문명이 있을 따름이라는 반론이 있다.

이와 같은 단일 문명에 대한 견해는 근대 서구 역사가들이 사회적 환경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갖게 된 그릇된 생각이다. 서구 문명은 근대에 들어와서 자신들의 경제적 조직망을 전 세계에 쳐 놓음으로써 경제적 통일을 이루었고, 뒤이어 서구 정부는 군사력에 의한 정복으로 동시대 세계의 모든 국가들을 단일한 정치체제로 묶을 수 있었다. 이러한 경제적·정치적 세계 통일은 놀라운 사실이다. 그러나 이 같은 사실을 단일체 문명의 증거로 인정하는 것은 피상적인 견해이다. 경제적·정치적 세계 지도는 서구화하고 말았지만, 문화적 세계지도는 서구 사회가 세계를 경제적·정치적으로 정복해 나가기 이전의 상태와 본질적으로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화의 측면에서 식견을 가진 사람들에게 비서구 4개 문명의 윤곽은 계속 뚜렷하게 남아 있다. 그러나 대다수 서구인들은 그러한 안목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그들의 그릇된 사고는 다른 문명에 속하는 주민을 '원주민'이라고 부르는 데서 잘 드러난다. 우리 서구인들이 '원주민'이라고 부를 때, 우리는 은연중에 그들에게서 문화적 요소를 제거하고 있다. 그리하여 서구인들은 그들을 자신들과 같은 감정을 가진 인간으로 보지 않고, 그 나라에 득실거리는 야생의 짐승, 또는 그 지방의 식물군 및 동물군처럼 취급하고 있다. 우리가 그들을 '원주민'이라고 생각하는 한 그들을 멸종시킬 수도 있는 일이요, 그들을 길들여 종을 개량하고 있다고 믿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서구인들은 그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세가지 그릇된 생각

'단일체 역사'의 가정은, 문명의 물줄기는 오직 서구 문명의 흐름밖에 없으며, 그 밖의 문명들은 이 본류에 이르는 지류들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사막의 모래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소멸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릇된 인식은 다음의 세 가지 근원에 바탕을 두고 있다. 첫째는 '자아중심적' 미망(迷妄)이고, 다음은 '변하지 않는 동양의 침체'라는 미망이며, 또 하나는 직선적으로 전진하는 운동으로 파악되는 '진보'의 미망이다.

자아 중심적 미망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것은 누구나 자연스럽게 빠져들기 쉬운 잘못이다. 그리고 알아 두어야 할 일은 오로지 서구인만이 이 잘못에 빠져든 희생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유대인은 그들이 선민 중의 하나가 아니라 유일의 선민이라는 환각에 사로잡혀 있다. 서구인이 '원주민'이라고 부르는 대상을 그들은 '이방인'이라고 불렀으며, 그리스인은 '야만인'이라고 불렀다.

'변하지 않는 동양의 침체'라는 미망은 너무나도 명백한 환각이며 진지한 연구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도 아니므로, 그 원인 규명은 별 흥미를 끌지 않을뿐더러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다. 이 설에 따르면, 동양은 한때 문물에서 서구 사회를 앞질렀으나 이제는 매우 뒤지고 있다는 것이며, 따라서 서구는 계속 움직이고 있는 데 반해서 동양은 계속 침체하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런데 일반 서구인에게 잘 알려져 있는 동양의 고대사라고는 오직 구약 성서에 포함되어 있는 내용뿐이라는 사실을 새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아라비아 사막의 트란스요르단 지역의 생활이 성경 창세기에 묘사된 족장의 시대의 생활 모습과 처음부터 끝까지 일치하고 있다는 것을 오늘의 서구 여행자가 놀라움과 기쁨이 엇갈린 감정으로 관찰하게 된다면, 그것이 동양의 변하지 않는 침체의 특성을 증명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여행자가 마주친 것은 변하지 않는 동양 사회가 아니라, 변하지 않고 있는 아라비아 초원의 자연이었을 뿐이다. 아라비아 초원의 자연 환경은 그 곳 사람들에게는 매우 가혹한 주인이어서, 이 환경에 적응하고자 하는 인간의 능력은 매우 좁은 범위 내에 한정되어 있다. 이 지역의 사막과 초원은 어느 시대든지, 대담하게도 그 곳에 살고자 하는 모든 인간들에게 가혹하고도 변화가 없는 생활 양식을 강요해 왔던 것이다. 따라서, 그와 같은 증거를 변하지 않는 동양 사회의 논거로 삼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예를 들어 이야기하자면, 서구에도 그들의 선조들이 아브라함 시대에 삶을 영위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의 생활을 오늘에도 하고 있는, 알프스 산맥 계곡의 오지(奧地)들이 있다. 아라비아 사막에서 변하지 않는 동양의 논거를 끌어 낼 수 있다고 한다면, 마찬가지로 알프스의 오지에서 변하지 않는 서구의 논거를 유도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직선으로 진행한다고 파악되는 '진보'에 대한 미망은 인간 사고의 극단적인 단순화를 보여 주는 하나의 예가 된다. '시대 구분'을 할 때 서구의 역사가들은, 연통 청소부가 사용하는 여러 개의 마디가 연결된 브러시와도 같이, 끝에서 끝까지 이어진 단일 계열 속에 시대를 배열한다.

서구 역사가들이 물려받은 브러시 자루에는 본래 두 개의 마디만이 있었다. , 역사를 구약 시대와 신약 시대로 나누거나, 등과 등을 맞대는 식의 기원전과 기원 후로 계산하는 이분법과도 같이, 고대와 근대로 나누는 두 개의 마디뿐이었다. 그러다가 시대가 경과함에 따라서 서구의 역사가들은 이른바 중세라고 하는 제3의 마디를 두 개의 마디 사이에 추가함으로써 브러시 자루를 연장하는 것이 편리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 및 '근대' 서구의 역사를 인류 역사의 자체와 동일시하는 것은 지역주의에서 나온 편견에 불과하며 당치도 않은 견해이다. 21개 사회 중의 하나에서 다른 하나의 사회로 넘어가는 역사적 이행을 마치 전체 인류사의 전환점이나 되는 듯이 취급하는 것은 서구인들이 자아중심의 환각에 빠져든 결과이다. 그것은 마치 어떤 지리학자가 지중해 연안과 유럽 지리에 대한 내용으로만 가득 차 있는 책에다 '세계지리'라는 제목을 붙여서 책을 내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문명전파설의 오류

한편, 지금까지 거론한 통속적이고 전통적인 미망과 또 다른 매우 이색적인 '단일체 역사' 개념이 있다. G. 엘리어트 스미드가 지은 '고대 이집트인과 문명의 기원', W.H. 페리가 지은 '태양의 아들 : 초기 문명사의 연구'에서 시작된 문명전파설이 그것이다.이 학자들은 이색적인 의미에서 '단일체 문명'이라는 설을 믿고 있는데, 그들은 이집트 사회가 외부의 어떠한 다른 사회의 도움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창건되어 온 유일한 문명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 밖의 모든 문명의 출현은, 미국에서 일어난 문명까지도 포함하여, 모두 이집트 사회로부터 연유하며, 미국 문명은 하와이 이스터섬을 경유하여 미대륙에 도착했다고 분명히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문명은 재봉틀, 담배, 소총으로 구축되는 것도 아니고, 알파벳이나 숫자로 구축되는 것도 아니다. 교역을 통해서 세계 도처에다 서구의 기술이라는 새로운 문명 요소를 수출하기란 지극히 쉬운 일이다. 그러나 서구의 한 시인이나 성자가 자기 마음에서 불붙고 있는 영혼의 불길이라는 또 하나의 문명 요소를 비서구인의 마음에 불붙인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때에 따라서, 문명 간의 영향 관계를 전파 현상에 돌릴지라도, 인간 역사 속에서 독창적 창조력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독창적 창조력의 불꽃이나 핵심은 어느 인간의 마음 속에서도 불꽃을 튀기며 개화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현대 인류학자인 머피도는 자신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개진하고 있다.

"인간의 사상이나 실천의 유사성은, 어느 곳에서나 인간 두뇌의 구조는 유사하며, 그 결과 인간 심리 성질이 유사하다는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알려져 있는 인간의 모든 역사 단계에서 인간의 생리 기관이 그 구조에 있어서나 신경 계통에 있어서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과 같이, 인간의 심성도 어떤 보편적 특성과 능력과 행동 방식을 지니고 있다. ……. 두뇌 활동의 유사성은 19세기에 다윈과 러셀 월레스의 지성에서도 보게 되는 일인데, 이 유사성은 같은 자료에 입각하여 연구함으로써 동시대에 같은 진화 이론에 도달케 했던 것이다 .아놀드 토인비, 역사의 연구(A study of history)심화 자료

토인비/ 영국의 역사가, 문명평론가.

런던 출생. 경제학자 A.토인비의 조카. 옥스퍼드대학에서 고전고대사를 전공하고 왕립 국제문제연구소 연구부장, 런던대학 국제사 연구교수, 외무성 조사부장을 역임하고 런던대학 명예교수가 되었으며, 1956CH(名譽勳位保持者)의 서열에 올랐다. 고대와 현대를 연결하는 거시적 입장에서 집필한 필생의 역작 역사의 연구(12, 19341954,1959,1961)에서 많은 문화유형을 고구(考究)하여 세계사를 포괄적으로 다룬 독자적인 문명사관(文明史觀)을 제시하였다.

그리스 이후 쇠퇴하였던 역사의 반복성에 빛을 부여함으로써 고대와 현대 사이에 철학적 동시대성(同時代性)을 발견하고 역사의 기초를 문명에 두었다. 문명 그 자체를 하나의 유기체로 포착하고, 그 생멸(生滅)이 역사이며, 그 생멸에 일정한 규칙성, 즉 발생 ·성장 ·해체의 과정을 주기적으로 되풀이하는 것으로 보았다. 26개의 문명권을 병행적 ·동시대적으로 나열하고, 이들 모두가 규칙적인 주기(週期)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구명하였다.

한편, 문명의 추진력을 고차문명(高次文明)의 저차문명(低次文明)에 대한 도전대응의 상호작용에 있다고 보았다. 이 밖에 내적 ·외적 프롤레타리아트’, ‘세계교회등 특수한 용어에 의한 개념이 사용되고 있는데, 19세기 이후의 전통사학에 정면으로 도전함으로써 새로운 역사학의 길을 개척한 점에서 크게 주목되었다. 그 밖의 저서로 Nationality and War(1915) Greek Historical Thought(1924) A Survey of International Affairs(19241938) Civilization on Trial(1948)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