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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수필4

오해

by 자한형 2022.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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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 -박완서

아파트에 살 때도 그러했지만 땅집에 살고부터는 더 더욱 쓰레기에 신경이 써진다. 아파트에서는 분류해서 내다버리는 순간 쓰레기 봉투는 익명의 것이 돼버린다. 그러나 땅집에서는 수거차가 오는 날 집 앞에 내다놔야 하기 때문에 누구네 쓰레기라고 딱지를 써붙인거나 다름이 없다. 쓰레기지만 깔끔하게 보이고 싶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담아서 꼭꼭 잘 여미게 된다. 쓰레기라도 깔끔하게 보이고 싶다는 내 허영심을 비웃듯이 수거차가 오기 전에 우리 쓰레기봉투가 무참하게 파헤쳐지는 일이 빈번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생선이나 닭고기를 먹고난 후는 영낙없이 그런 일을 당했다. 고양이들의 소행이었다. 개는 안기르는 집이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고양이 기르는 집은 없는 것 같은데도 동네에는 고양이들이 많다. 이렇게 도둑 고양이들이 많기 때문에 쥐가 거의 없다는 게 동네사람들의 설명이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수거차가 지나간 후에도 문앞이 깨끗하지 않고 닭뼈나 생선뼈가 어지럽게 널려있다는 건 여간 속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터져서 냄새나는 내용물이 꾸역꾸역 쏟아지는 쓰레기 봉투를 들어올렸을 미화원 아저씨에게는 또 얼마나 미안한 노릇인가. 그래서 생각해낸게 고양이가 좋아할만한 먹이가 생기면 봉투속에 넣지 않고 접시에 따로 담아 고양이가 잘 다니는 통로에다 놓아두는 거였다.

 

그 생각은 좋은 생각이었다. 적중했으니까. 그 후부터 스레기 봉투가 훼손당하는 일은 안 생겼고, 나도 고양이를 챙기는 일에 재미를 붙이게 되었다. 비린 것을 탐하는 고양이의 식성은 츱츱했지만 생선뼈를, 머리칼처럼 가느다란 가시까지도 깨끗이 발려내는 솜씨는 가히 예술이라부를 만했다. 그 대신 우리 식구들은 고양이 생각을 한답시고 닭고기나 생선을 먹을 때 점점 더 대강 먹고 살을 많이 붙여서 남기게 되었다. 나는 한술 더 떠서 식구들이 잘 안먹는 생선조림이 생기면 고양이를 위해 냄비채 쏟아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고양이는 절대로 과식하는 일이 없었다. 남겼다가 며칠에 걸쳐서 다 먹어 치웠다. 그래서 나는 속으로 우리 집 단골 고양이가 여간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한 번도 녀석의 모습을 제대로 본적은 없었다. 동네에는 여러 종류의 도둑고양이가 있었지만 우리마당을 환각처럼 바람처럼 스쳐지나가는 고양이는 베이지색 바탕에 검은 줄이 있는 상당히 아름다운 고양이라는 걸 알고 있을 뿐이었다.

 

오랜 장마가 갠 어느날 오후였다. 마침 혼자 집을 지키고 있었다. 무더위가 한풀 꺾였다고는 하나 집안에는 아직 곰팡내 섞인 습기가 많이 남아있어 앞뒷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었다. 마루에서 책을 읽고 있다가 무심히 부엌 뒷문 밖을 내다 보았을 때였다. 뒷문밖에는 꽤 넓은 툇마루가 있는데 거기 우리 집 단골 얼룩 고양이가 꼭 저 닮은 새끼를 다섯 마리나 거느리고 나란히 앉아 있는게 아닌가. 에미는 털이 꺼칠했지만 새끼들은 털이 반지르르 윤이 흐르는 게 정말이지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어떤 인간의 가족도 그렇게 아름다운 가족은 본 적이 없었다. 나는 거의 전율에 가까운 기쁨을 느꼈다. 그 뿐이 아니었다. 나는 감동까지 하고 있었다. 나는 나에게 잘 얻어먹은 에미 고양이가 그 동안 해산을 해서 반질반질 잘 기른 새끼들을 나에게 자랑도 할겸, 감사와 친애의 표시도 할겸해서 그렇게 가족 나들이를 나왔으려니 하고 있었다. 그 쌀쌀맞고 영악하기만 한 고양이로서는 기특하기 짝이 없는 마음 씀씀이 아닌가.

 

나는 마치 손주새끼들 반기듯이 만면에 웃음을 띄고 두 손까지 활짝벌려 그들 고양이 가족을 환대한다는 표시를 하며 부엌문쪽으로 갔다. 그러나 그 다음에 나는 기절을 할 뻔하게 놀라고 말았다. 에미가 눈으로 독하고 처연한 불을 뿜더니, 으르릉 이를 들어내고 나에게 공격태세를 취하는게 아닌가. 신속하고도 눈부신 적의(敵意)였다. 다행히 순간적이었다. 내가 혹시 대낮에 환상을 본게 아닌가싶게 고양이 가족은 소리도 없이 신속하게 모습을 감추었다. 그래도 나는 무서워서 얼른부엌문을 닫아버렸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나니까 고양이에 대한 내 오해가 하도 어처구니 없어서 슬며시 웃음이 났다. 그까짓 먹고 남은 생선 가시 좀 챙겨주고 나서 내가 녀석을 길들인 줄 알다니. 녀석은 챙겨주는 것보다 스스로 쓰레기 봉투를 뚫고 찾아내는 게 훨씬 스릴도 있고 보람도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녀석이 나를 공격하려 했다는 것 조차도 오해일 수도 있었다. 나에 대한 녀석의 적의는 곧 저렇게 생긴 인간이라는 족속에게 길들여지면 절대로 안돼라는 제 새끼들에 대한 강력한 경고가 아니었을까.

 

우리는 흔히 고양이는 은혜를 모르는 동물이다라고 생각하며 기르기를 꺼려한다. 그게 인간들의 통념이라면 고양이들끼리 통하는 생각은 인간이라는 머리 검은 동물에게 길들여진다는 건 자유와 자존심을 송두리채 내줘야하는 즉, 죽느니만도 못한 짓이라는 것이 아닐까. 나는 개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누가 개와 고양이중 어떤 것이 더 좋으냐고 물으면 으레 개라고 대답해왔는데 이제부터는 고양이라고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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