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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수필5

격세지감

by 자한형 2022.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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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세지감(隔世之感) -박 경 주(朴 景 珠)

여성의 시대가 왔다. 이름난 식당의 점심시간은 으레 주부들의 모임으로 분주하다. 거기서 밥을 먹고 간 주부들이 가족들을 데리고 주말에 또 그곳을 찾을 거라나? 그래선지 여자들은 어딜 가나 대접을 받는다. 백화점에 가보아도 여성 의류 매장은 남성 보다 두 개 내지 세 개 층이 더 많다. 모회사 사장님이 직장에서도 받기 힘든 대우를 그의 아내는 백화점에서 종일 누릴 수도 있다. 아무개 사장의 사모님을 시내 백화점에서 만났던 날, 나는 덩달아 사모님이 되었다.

대학을 다닐 때, 기숙사에서 함께 방을 쓰던 언니는 부산이 고향이라고 했다. 밍크로 만든 외투며 머플러를 두르고 화장품은 그때는 귀했던 일본 제품을 썼다. 나와 둘이 쓰는 방의 바닥에는 짐승의 털가죽으로 만든 융단을 깔아 놓았다. 룸메이트였던 나는 그해 겨울을 따뜻하게 날 수 있었다. 언니가 가지고 있던 보드라운 이불이며 잠옷, 가운, 세수할 때 쓰는 비닐 캡. 참 부럽고 신기한 물건들이었다. 요샛말로 나와는 차원이 달랐다.

어느 날 저녁, 기숙사 식당에서 밥을 먹던 그녀가 갑자기 배꼽을 잡고 까르르 웃는 것이 아닌가. 마침 우리는 특식으로 나온 마요네즈에 버무린 오이와 양배추를 먹으려던 참이었다.

내가 우리 할머니 때문에 못산다.”

.”

우리 할머니는 내가 마요네즈 먹을 때마다 요새 년들은 이리 좋은 것도 먹어. 우리 땐 어림도 없었지. 여자가 어떻게 맛난 걸 다 먹고 살아?’ 그러신다. 하하.”

정말?”

그래서 우리 할머닌 내가 마요네즈를 먹고 있음 접시 째 뺏어 가신다? 혼자 잡수시겠다고.”

여섯 명이 앉아 밥을 먹던 식탁에 웃음꽃이 피었었다. 모두 마요네즈 접시를 서로 자기 앞으로 당기는 시늉을 했다.

마요네즈가 우리나라에 유행이 된 건 아마 그 무렵이었던 것 같다. 집집마다 열풍이 불었다. 요리법도 간단했다. 손님상에는 으레 마요네즈로 버무린 과일이나 삶은 계란과 감자, 양배추가 오르곤 했다. 갓 결혼해서 내가 시댁 식구들 식탁에 제일 많이 올렸던 음식도 마요네즈로 버무린 것이었다. 하교한 시동생이 저녁상에서 허겁지겁 그걸 맛나게 먹던 걸 보았다. “형수님 이게 뭐예요? 맛있어요.” 젖빛 나는 소스를 머금은 시동생의 입가에 가득 번지던 그 번지르르한 윤기가 그때 사랑스러웠다. 이제는 그 시동생이 오십대 후반의 나이가 되었다.

선배 언니는 그 당시의 요새 년들보다도 확실히 앞서 갔다. 전기담요 위에서 잠들곤 하던 그녀가 참 부러웠다. 예쁜 액세서리, 고급 백, 큰 첼로 가방을 메고 방문을 나서던 그녀의 에스콰이어 구두는 지금쯤 어떤 브랜드로 바뀌었을까. 아님 그녀도 별 수 없이 나처럼 굽 없는 효도신발을 신고 있지는 않을까.

나는 대학시절 은행원인 큰오빠에게서 용돈을 타서 썼다. 용돈이 궁한 적은 없었다. 오빠는 늘 넉넉히 용돈을 주었다. 그 돈으로 남대문 시장에 가서 싸게 파는 옷가지들을 사곤 했다. 주로 내 옷과 엄마 옷들이었다. 그걸 사들고 광주 집에 내려갈 생각을 하면 잠이 오지 않았다. 엄마는 그 옷을 보시고 반색을 했다. 엄마는 집에서도 늘 한복을 입으셨기에 티셔츠나 바지나 치마들이 참 신기했을 것이다.

"우리 젊을 때는 미영베(무명베) 치마도 없어서. 옷이라곤 세라복 한 벌이 고작이었지. 학교 갔다 오먼 반듯하게 할라고 이불 밑에 깔아 두고 안 그랬다냐. 그렇게 안 살았다냐. 요새 느그들은 참 좋겄다."

그런 엄마가 어느 날 아버지 몰래 원피스를 시장에서 겁도 없이 두 벌씩이나 사왔다. 양장이 해보고 싶어서였다고 했다. 그걸 비밀이라고 내게만 알려주었는데 나는 입이 근질근질한 나머지 아버지에게 그만 고자질을 했다. 아버지는 그 일로 엄마를 심하게 꾸짖었다. 돈을 아끼지 않았다는 것이었고 한복을 입어야 점잖고 품위 있다고 하셨다. 생각해보면 엄마라고 마냥 점잖고 싶었겠는가. 엄마가 돌아가신 뒤 나는 그때의 고자질을 두고두고 후회한다.

전어 철에 전어 굽는 냄새가 나면 집 나간 며느리가 돌아온다.”는 속담이 있다. 그것도 옛말. 요즘 어떤 며느리가 전어 냄새 맡고 집에 돌아오겠는가. 밖에서 사먹고 말지. 길거리엔 음식이 넘쳐나고 식당도 넘쳐난다. 마켓에서 포장된 음식들을 사다가 차리기만 하는 시대가 열렸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시대가 변했다. 뒤늦은 후회지만 오히려 나의 아들들에게 공부보다는 가사를 가르쳤어야 했다. 각자도생을 위해.

금년 8월로 나는 만 65세가 되었다. 그득한 나이가 자랑스러운 건 나에게 기초연금이 나오기 때문이다. 기초연금 이십만 원에, 어르신 교통카드까지 받게 된 것이다. 노인 대접을 톡톡히 받게 된 셈이다. 국가가 고맙다. 그리고 이 돈을 세금으로 바치는 젊은이들이 고맙다. 대학시절, 선배언니의 할머니가 이런 요즘의 나를 보면 뭐라고 할까?

요새 년들은 그런 것도 받아? 우리 땐 어림도 없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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