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회마을 -김세준
여행이 세속적인 것은 세속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소설가의 여행기에서 읽었던 이 역설적인 문장은 내가 여행을 떠날 때마다 가슴에 품고 가는 말이다. 여행을 떠나기 위해 신발끈을 질끈 묶는 순간, 우리는 지긋지긋한 ‘일상’과 너무나도 익숙하고세속적인 ‘여기’를 떠나 낯설고 매혹적인 ‘거기’로 가는 것을 꿈꾼다. 그러나 여행에서 돌아올 때쯤이면, 우리는 다시 내가 발붙이고 있는 세속적인 ‘여기’가 가장 포근한 둥지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음에 감사하며 안도의 한숨을 쉰다.
세속적이지 않은 ‘거기’를 둘러보는 동안 벌써 세속적인 ‘여기’를 그리워하게 되는 이 짓궂은 역설이라니! 그러나 바로 그 역설이 이끄는 진실 때문에 나는 오늘도 여행을 떠나기 위해 다시 설레는 마음으로 신발끈을 묶는다.
자 이제 떠나보자. 우리의 밋밋한 일상을 한바퀴 휙돌아 나오게 할 매혹적인 ‘거기’, ‘하회(河回)’로….
들어가기
하회마을은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 오롯이 저 혼자서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다. 마을은 마치 견고한 띠를 두른 듯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을 옆에 끼고 온갖 세파에 시달리는 속세로부터 보호받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하회마을은 산과 강으로 고립되어 있다. 이제는 너무나 잘 알려진 곳이 된 바람에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넓은 주차장이 그 속살을 다 드러내고 누워 있지만, 그 옛날 하회마을은 아마도 옷섶을 꼭 여민 정숙한 아낙네처럼 그렇게 제 고운 모습을 감추고 있었을 것만 같다.
하회마을 관리사무소와 하회동 탈 박물관이 자리잡고 있는 매표소에서 본격적인 하회마을의 초입이라 할 수 있는 하회마을 안내판이 있는 곳까지는 약 1km 정도 걸어 들어가야 한다. 20여분 걸어야 하는 수고로움을 덜어주기 위해 언제인가부터 매표소와 마을 입구를 오가는 버스가 생겼는데, 버스를 타고 지나쳐가는 편안함보다는 노란 은행잎을 밟으며 걷는 호젓함 쪽을 택하기를 권한다. 종합 안내소와 하회별신굿탈놀이 전수관이 있는 마을 입구까지 천천히 걷다 보면 오른쪽으로 하회마을을 휘감아 도는 낙동강과 부용대를 측면에서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꼭 부용대에 오르지 않아도 전망대에서는 하회마을의 전체적인 모습을 멀리서 느긋하게 감상할 수 있는데,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이 풍경 또한 걷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작은 기쁨이다
천천히 거닐기
마을에 들어서면 큰 와가를 중심으로 주변의 초가들이 오밀조밀 원형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나지막한 돌담과 가지런한 가옥한 가옥의 지붕을 보고 있으면 시야를 가리며 우뚝 솟은 현대식 건물에 익숙해진 눈이 잠시 편안함을 느낀다.
마을 안에 있는 시내버스 정류장을 지나치면 바로 왼쪽으로 ㅁ자형의 ‘하동고택’이 자리하고 있다. 이 가옥의 지붕을 보고 있으면 시야를 북촌을 가르는 길가에 자리 잡고 있는데, 하회마을의 동쪽에 있다고 하여 하동고택이라고 부른다. 고택이라는 명칭에 어울리지 않게 지금은 찜닭과 헛제삿밥을 파는 음식점 겸 민박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음식을 먹기 위한 손님보다는 옛가옥의 모습을 둘러보기 위해 들어갔다 나오는 사람들이 더 많다. 옛 가옥의 고색창연함과 선비의 흔적을 찾으려 했던 사람들은 대개 눈앞에 고스란히 드러난 현실을 보며 씁쓸한 표정을 짓는다.
오래된 이 마을을 찾는 사람들은 하회마을이 선비의 꿋꿋함을 닮은 모습으로 세월의 흐름에도 변하지 않고 옛 모습 그대로를 간직한 채 우리 앞에 재현되기를 원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하회마을은 민속촌과는 달리 관광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세트장이 아니라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터전이기도 한 것이다. 일 년 내내 날 것 그대로의 삶의 속살을 내보이며 살아가야만 하는 하회마을사람들에게 그곳은 ‘밥 벌어먹고’ 살아가야만 하는 치열한 삶의 현장인 것이다. 고풍스러운 옛 마을 안에 어울리지 않게 섞여 있는 간판이며 앞뜰에 주차되어 있는 최신형 승용차와 현대적인 살림살이 역시 그 속에 삶이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징표이므로 무조건 눈살을 찌푸리고 바라볼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고결하든 비루하든 삶은 그 자체로서 존중받아야 하기에…….
하동고택을 지나는 하회마을의 큰길을 중심으로 남쪽으로는 ‘충효당’과 함께 남촌을 대표하는 ‘남촌댁’이 있고, 북쪽으로는 ‘양진당’과 함께 북촌을 대표하는 ‘북촌댁’이 자리 잡고 있다. 그 사이사이로 낮은 구릉 형태의 골을 따라 가옥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여느 마을과 달리 집들이 삼신당 느티나무를 중심으로 강을 향해 배치되어 있어 좌향이 일정하지 않고 사방으로 향해 있다. 언뜻 제멋대로인 듯 보이지만 큰와가와 초가들이 나름의 질서를 이루고 들어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진정 이곳이 학문과 문화적 안목의 바탕 위에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마을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회마을의 예스러운 모습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곳은 ‘삼신당 신목’으로 들어가는 골목길이 아닐까 싶다. 기와를 얹은 흙담사이로 난 좁은 골목길에 들어서면 잠시 세월의 아득함 속으로 가라앉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골목길 저 안쪽에서 하회의 곳곳에 서린 옛이야기가 두런두런 흘러나올 것만 같아 느릿느릿 걸음을 옮기며 비밀스런 기운이 느껴지는 삼신당 신목으로 들어가 보았다. 그곳에는 수령이 600여 년이 된 느티나무가 굳건히 뿌리를 내리고 있는데 이 나무는 하회마을의 정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아기를 점지해주고 출산과 성장을 돕는 신목(神木)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잠시 숙연한 모습으로 손을 모으고는 저마다의 소원을 마음속으로 빌고 있었다.
비밀스러운 골목길을 다시 빠져나와 큰길에 서면 양쪽으로 하회마을의 대표 가옥이라 할 수 있는 양진당과 충효당이 각기 좌우로 터를 잡고 있다. 연꽃이 물 위에 뜬 것 같은 형세를 취한 하회마을에서연꽃의 꽃술에 해당한다는 양진당은 현재 보수 중이라 그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새 옷으로 갈아입기 위해 앙상한 골격만 남기고 모든 것을 벗어버린 채 건축용 비계 사이로 비쳐 보이는 양진당의 윤곽은 왠지 조금은 쓸쓸해보였다.
보수 중이라 볼 수 없었지만, 양진당 사랑 대청마루에는 서애 류성룡 선생의 맏손자인 졸재 류원지 공이 썼다는「하회십육경」현판이 걸려 있다고 한다. 「하회십육경」은 하회마을을 대표하는 아름다운 경치를 시로 담아낸 것이라고 하는데 그 내용을 보면 실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단순히 눈에 비치는 경치를 담아 낸 것이 아니라 오감을 열고 진정으로 대상을 사랑하는 자만이 볼 수 있는 경치라 할 수 있다. 바위에 어린 맑은 물이나 성난 물결, 달이 돋은 경치, 구름에 잠긴 마늘봉의 경치와 눈 개인 숲의 경치라든가 고기잡이 배의 불빛 따위는 범속한 세인인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양진당 보수가 끝나면‘사랑하면 보이게 된다’는 진리를 담은「하회십육경」도 세상에 다시 그 모습을 드러내리라
양진당을 나와 ‘작천고택’을 지나 오른쪽으로 돌아서면 하회마을을 감아 도는 강둑길이 나온다. 울긋불긋 물든 느티나무 길을 따라 걸으며 바라보는 강 풍경은 아름답고 평온하다. 강 건너편으로는 절벽 같은 ‘부용대’가 보이고, 모래사장을 따라 ‘만송정’ 솔숲이 그윽한 향기를 품으며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솔숲은 겸암 류운룡 선생이 젊은 시절에 조성한 것으로 풍수지리학적으로 마을 서쪽의 지기(地氣)가 약해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심은 비보림(裨補林)이라고 알려져 있다. 만송정 솔숲 역시 보호를 위한 휴식년으로 지정되어 2010년까지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하회마을에 올 때마다 솔숲 한 가운데 가만히 앉아서 들어보곤 했던 강바람 소리를 놓치게 되어 몹시 아쉽기만 하다.
강가로 내려서면 고운 모래사장 끝에 나루터가 있다. ‘옥연정사’와 ‘겸암정사’가 있는 부용대까지 왕복하는 이 배는 관광객이 많은 주말이면 가라앉지 않을까 염려될 정도로 많은 이들을 빼곡히 싣고 부지런히 강을 오간다. 수심이 그리 깊지 않아 노를 젓지 않고 긴 장대로 강바닥을 밀며 나아가는데 뱃사공은 오랜 경력을 몸소 보여주듯 노련하게 장대를 움직여 뱃머리를 돌리며 나아간다.
부용대에 올라서면 그제야 하회마을의 구석구석이 한눈에 들어온다.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이라 불리는 하회마을의 지형이며 저 멀리 마을의 뒤를 감아 휘돌아 나가는 낙동강의 물줄기까지 하나가 되어 하회마을을 이루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 옛날 하회마을 사람들은 아등바등 힘겨운 삶 보따리 속에서 잊고 살았던 자신의 본 모습을 부용대에 올라 비로소 다시 찾아보곤 하지는 않았을까. 중심에서 한 발짝 떨어져 나와 거리를 두고 있을 때만이 진정한 자신을 볼 수 있는 법인데, 부용대는 그런 의미에서 거리를 두고 바라보기에 딱 알맞은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돌아 나오기
마을을 한 바퀴 돌아 안내소가 있는 곳으로 나오면 안내소 맞은 편 안쪽으로 ‘하회별신굿탈놀이 전수관’이 있다. 12월에서 2월까지를 제외하고는 주말 오후마다 이곳에서는 하회별신굿탈놀이 공연을 펼친다.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하회별신굿탈놀이는 국보인 하회탈과 함께 민중들이 남긴 진정한 문화와 역사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우람한 고택과 전적들이 선비와 양반의 자취라면, 역사 속에서 언제든 살아 숨 쉬는 실체로서 생생하게 재현될 수 있는 탈놀이야말로 하회를 지키며 살았던 이름 없는 서민들의 발자취가 아닐까. 그래서인지 턱없이 비틀거리면서도 마냥 천진하게 웃고 있는 ‘이매’가 유독 마음에 와 닿는다. 누구라도 ‘이매탈’을 쓰면 세상시름 다잊고 한없이 웃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출발할 때 질끈 묶었던 신발끈을 다시 조여 매고 일상으로 돌아오는 길은 익숙하기에 편안하다. 이제 ‘거기’를 내려놓고 다시 ‘여기’로 돌아온다. 세속적이기 때문에 푸근하고 익숙한 일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