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퍼펙트 / 이병식
퍼펙트(perfect)란 말을 처음 들은 건 젊었을 때 볼링장에서였다. 한 게임을 스트라이크로 시작해서 스트라이크로 마감하여 300점 만점을 받는 것이다. 언젠가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여자 양궁선수가 과녁의 정중앙을 맞히어 중계방송용 카메라 렌즈를 깨뜨렸다. 그때 중계석에서는 퍼펙트 골드를 외쳤다.
퍼펙트는 그렇듯 완벽함에만 있는 것일까. 나는 한때 주차관리 일을 했었다. 내 나이 이미 노년에 이르렀지만 100세 시대에 대처하기 위해 조금 더 일이 필요했다. 주차관리 일은 책상에 앉아 사무 보는 일이 아니요, 기계를 돌려 생산을 하는 일도 아니다. 그렇다고 구멍가게에서 물건을 팔고 돈을 받는 일도 아니다. 차를 잠시 보관해주고 그 대가를 받는 서비스업이다. 또한, 주차장 일은 젊은이들이 양보하여 노인에게 주어지는 일자리이기도 하다.
사람들에게 돈 문제는 늘 민감하다. 그래서 아주 적은 금액으로도 고객과 다툼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소소한 다툼은 차라리 일상이다. 또 주차장은 작은데 들어오는 차가 많아 주차장은 늘 번잡했다. 통로에는 늘 차가 세워져 있었다. 안에 있는 차가 나갈 때는 통로의 차를 빼주어야 한다. 그때는 손님의 차를 운전해야 한다. 혹시라도 사고가 나면 해결하기 어려운 아주 난감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어 늘 긴장이 된다.
어쩌다 까칠한 손님을 만나 마음이 헝클어질 때는 치열한 삶을 살지 못했던 지난 젊은 날을 후회도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랴. 극복해야 할 일만이 현실인 걸. 엉뚱한 일도 벌어진다. 어느 날 차를 뺀다는 운전자가 나를 불렀다. 차 문을 여는데 문고리에서 소리가 난다는 것이다. 내가 한 일은 이중 주차되었던 차를 주차 공간에 넣어주기 위해 문 한번 여닫은 것뿐인데, 문고리가 고장 났다고 하니 난감했다. 지금껏 멀쩡했던 차를 내가 고장 냈다고 우기는 것이었다. 어떻게 달랑 차 한번 탄 사람한테 그럴 수 있냐고 항변하며 옥신각신해야 했다. 끝내 운전자가 그냥 나가기는 했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다. 여기저기 흠집 많은 차를 운전할 때는 늘 마음 한쪽이 찝찝하다.
주차관리는 옥외서 하는 일이기에 날씨에도 민감하다. 비 내리는 날에 차를 타고 내리는 것은 아주 난감한 일이다. 한여름 햇볕 받은 차 안의 기온은 찜질방 수준이다. 한 겨울에 만지는 핸들의 느낌은 마치 얼음을 만지는 것 같다. 그런 날의 일터는 극한의 작업장을 방불케 한다.
주차비를 받아내는 것도 경력에 따라 차이가 난다. 처음에는 차가 들어오면 달려가 용돈 떨어진 백수 아들처럼 꺼벙한 몸짓으로 손을 내밀고는 했다. 어떤 이는 아이에게 용돈 주듯 거드름을 피우기도 한다. 나갈 때 주차비를 내겠다고 하며 그냥 가는 손님이 있다. 주차비를 달라고 내민 손이 무색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나마 마감하기 전에 와서 주면 좋은데 퇴근할 때까지 나타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연락할 전화번호도 없을 때는 더 난감하다. 그럴 땐 야무지게 빚 독촉을 못 해 오랜만에 만난 빚쟁이를 놓친 듯 가슴이 아리다.
내가 출근한 후에 들어온 차들은 대개 주차비를 먼저 내고 간다. 그런데 내가 출근하니 이미 절반 이상의 주차 면에 차가 들어있다. 아침 일찍 들어온 차도 있을 것이고, 어젯밤부터 묵은 차도 있을 것이다. 날씨가 추워 차량 번호를 기록하는 손가락이 얼어 제대로 쓰기가 힘들다. 내가 퇴근할 때까지 주차비를 받아야 하는 신경 쓰이는 차들이다.
이십여 면의 작은 주차장이지만, 시내 복판에 있어 찾는 고객이 많다. 식당가라 점심시간은 더 붐빈다. 주차 공간은 없는데 들어오려 하는 차는 많다. 이중 주차를 해도 주차 공간이 없다. 차를 끌어들이는 일보다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일이 더 어려운 조건이다.
주차장에도 선순환, 악순환이 존재한다. 차가 꽉 차서 들어올 자리도 없는데 넣어 달라고 애걸복걸한다. 안 된다고 사정을 하느라 목이 쉰다. 어렵게 돌려보내고 나면 빈자리가 생긴다. 악순환이다. 세 시간이 조금 넘으면 주차비는 최고 금액으로 오른다. 그런 차가 나가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바로 다음 차가 들어와 그 자리를 채운다. 선순환이다. 선순환이 이루어지면 매상도 올라가고 기분도 따라 상승한다.
저녁이 되어 오늘의 일을 정리하며 마감한다. 미수금 된 차가 몇 대나 남았는지 파악한다. 내가 퇴근하기 전까지 올 수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문자도 보내고 전화도 한다. 전화도 안 받고 문자에 대답도 없을 때는 해결 방법이 없다. 직접 계좌 이체를 하라고 미납 고지서를 발부한다. 이런 차가 매일 한두 대씩은 생긴다.
마감을 하려고 컴퓨터 자판을 두드렸다. 당일 입금된 금액이 전부 얼마인지 합산했다. 미수금 된 차가 몇 대나 되는지 확인해보니 한 대도 없다. 문자를 보내거나 전화할 차량이 한 대도 없다는 건 완벽한 마무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환(奇幻)이라도 일어난 듯 마음이 설렜다. 엉킨 실타래처럼 풀리지 않던 수학 문제가 너무 쉽게 풀려 잘 못 푼 게 아닌가 걱정하는 그런 마음 말이다. 미소가 예쁜 여인이 환한 웃음이라도 살짝 선물하고 가면 금상첨화라 할까.
하루 일을 되새겨본다. 아침부터 이상하다 싶을 만큼 평온했다. 주차비 때문에 이러쿵저러쿵 소소한 다툼도 한번 없었다. 덤을 얻은 듯 기분 좋은 마무리가 된다. 뇌에서는 세로토닌이 땀처럼 분비되고 기분은 더욱 상쾌해진다. 그때 경험은 주차관리 일을 시작한 이래 한번도 없었던 경험이었다. 퍼펙트는 경천동지의 울림이 있어야만 하는 것일까. 그날 내가 이룬 것, 그것은 내 작은 삶의 퍼펙트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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