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갈 용기/ 김창규(행정학박사)[노년의 알쓸신잡1]
‘노년 알쓸신잡’은 ‘노년에 알아두면 쓸 데 있는 신기한 잡학’의 의미이다. 매일매일 복지관 이용노인들과 퇴직을 한 지인들이 늙어감에 대한 SNS를 통해 다양한 글들을 주고받고 있다. 쓸 데 있는, 쓸데없는 글들을 받아보면서 노인들이 그동안 살아오면서 삶의 회한, 바람 등 마음이 녹아있는 살아있는 글들이라 느껴졌다. 이에 정리된 내용이 있다면 많은 분들이 보다 잘 늙어가는 데 필요한 잡학이 되겠다 싶어 노년에 필요한 건강, 일, 친구, 관계, 자립, 꿈 등의 소재를 엮은 ‘노년알쓸신잡’을 연재하고자 한다.
(1) 늙어갈 용기
“카톡 카톡” 오늘도 나의 휴대폰은 메시지 도착 알람 소리로 분주하다. 개톡(개인톡)과 단톡(단체톡)방, 문자 메시지 앱을 번갈아 가며 하루 수백여 통의 메시지가 날아온다. 최근 노인복지관을 이용하시는 분들이나 지인들께 “친구들끼리 주고받으시는 노년 생활에 유익한 글이 있으시면 보내주십시오”라는 부탁을 드린 후부터 각종 메시지가 부쩍 많아졌다. 육 개월 여 동안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무시로 날아들어 오는 글, 시, 동영상물 등을 헤아려 보니 어림잡아 천여 통은 넘는 것 같다.
글을 보내주는 분들의 연령대는 60대 이상 80대로 폭이 넓었다. 직업군은 공직생활, 사업가, 교사, 개인 사업가 등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퇴직을 하신 분들이었다. 이분들은 전직 직장 동료, 초·중·고등학교 동창 모임, 사회모임 등 평균 3~5개 정도의 모임을 가지고 있었고, 이 모임들을 통해서 상호 퍼온 글들을 주고받으면서 옮기고 전파시키고 있었다. ‘상호, 주고받는다’는 것은 일방적이지 않다는 것이고, 일방적이면 지속해서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없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소통매체는 최근 SNS(사회 네트워크 서비스)가 활성화되면서 카카오톡, 블로그, 카페, 페이스북 등을 통해 다양하고도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었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전달 매체로는 단연 카카오톡이었고, 퍼온 글의 원천은 각자가 활동하는 네이버 카페와 유튜브, 블로그 등인 것 같았다.
그동안 받고 수집한 메시지의 내용을 살펴보자. 최근 퇴직을 하거나 퇴직을 앞둔 베이비부머 세대인 60대는 퇴직 이후의 삶과 늙음을 경험하는 것에 대해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늙음에 대한 담론은 활발하지 않았지만 ‘건강과 친구’에 대한 글들은 많았다. 그리고 7~80대는 인생 이야기와 노년의 삶에 대한 내용들로 주를 이루었다. 또한 자신이 만든 동영상뿐만 아니라 가짜뉴스, 19금 동영상물도 심심치 않게 접수되었다. 그런데 이 모든 글의 출처이자 지은이는 대부분 ‘옮긴 글’, ‘좋은 글’ ‘퍼온 글’들이었다. 여러 사람 간에 퍼오고 옮기다 보니 출처가 없는 글들이 된 것 같고, 퍼온 글들은 매일매일 카톡방, 유튜브방을 통해 빠르게 전파되고 있었다. 전달자의 유형도 다양했다. 어떤 사람은 ‘존재 확인형’으로 보내고, 어떤 사람은 ‘지식 과시형’으로, 또 어떤 사람은 받았으니 그냥 보내는 ‘무심형’ 등으로 구분되었다.
노년층에서 주고받는 메시지를 들여다보자. “인생 살아보니 별거 없더라” “칠 팔십 년을 살아보니 인생이란 이렇더라. 살아보니 노년의 삶에는 이런 것이 중요하더라” 등등의 노년의 지혜가 돋보이는 글이 많았고, 또한 “인생을 살면서 이런 것은 하고, 저런 것은 하지 말아라” 등의 계로록(誡老錄) 성격의 글들이었다. 한편, 글을 통해 “어떻게 살아야 하나?”하는 노년에 대한 두려움도 엿볼 수 있었다.
이런저런 노년의 모습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노년기가 인생 중의 가장 자유로운 시간이 아닐까?”이다. 퍼온 글 “황혼의 자유” 중 한 구절이다. “잠이 깨면 그때부터 자유다. 하루라는 시간이 모두 내 것이다. 무얼 하든 무얼 먹던 나의 자유! 내 마음대로이다. 구속도 없고 속박도 없고 의무도 책임도 없다. 세월이 흘러 인생 일흔 줄에 들어서야 나를 위한 나만의 시간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처럼 나이들어가면서 비로소 인생이 이렇게 넉넉하고 풍요롭게 된 것에 대해 놀라울 수 있다는 표현은 바로 ‘노년이 주는 자유’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동안 모은 글들에서 ‘노년을 살아가는 경험적 지혜와 방법’들을 찾을 수 있었다. 퍼온 글에서 강조하는 ‘노년에 필요한 중요한 것’은 3~7가지 정도로 제시되었다. 먼저 노인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세 가지는 ‘돈, 건강, 친구’였다. 다섯 가지로는 ‘건강, 돈, 일, 친구, 꿈’을, 어떤 사람은 ‘건강, 돈, 인간관계, 취미, 도전’ 등을 꼽았다. 그리고 일곱 가지로는 ‘건강, 배우자, 적정 재산, 일, 친구, 취미, 자립심’ 등이 추천됐다. 그리고 공동체, 정체성도 있었다. 정리해보면, ‘1.건강 2.돈 3.친구 4.일 5.꿈(희망)’ 다섯 가지였다. 그런데 ‘돈’은 육십이 넘어서 더 벌어야 되는 개념보다 관리해야 할 돈의 성격이라면, 결론적으로 노년을 살아가는데 중요한 것, 필요한 것은 ‘건강, 일, 친구(인간관계), 꿈’ 네 가지였다.
어떻게 늙어 갈 것인가? 노인(老人)으로 그냥 늙어갈 것인가?, 할 일 없이 길을 오가는 노인(路人)으로 늙어 갈 것인가? 지금–여기의 삶을 즐기기 위해 노력하는 노인(勞人)으로 살아갈 것인가? 생로병사! 늙는다는 것은 누구나 반드시 직면하는 인생의 과정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늙어갈 용기’가 필요하다. 노년에 더 자유롭고 행복해질 용기가 필요하다.
노인의 나이
댄스 동아리에서 나이를 잊고 열정을 불태우는 노인들. 마음엔 나이가 없다. 대구중구노인복지관 제공
댄스 동아리에서 나이를 잊고 열정을 불태우는 노인들. 마음엔 나이가 없다. 대구중구노인복지관 제공
“카톡 카톡”오늘도 나의 휴대폰은 각종 메시지 도착을 알리는 알람 소리로 분주하다. 이번 알쓸신잡의 주제는‘노인의 나이’이다. 계묘년(癸卯年) 새해가 밝았다. 계묘년은 검은 토끼의 해로 검은색은 지혜를, 토끼는 풍요와 생활력을 의미한다. 2023년은 베이비붐 세대(1955년~1963년생)를 상징하는 ‘58년 개띠’가 만65세가 되면서 노인세대로 진입하는 해이기도 하다. ‘베이비붐 세대’란 한국전쟁 직후인 베이비붐의 사회적 상황에서 태어난 세대들을 말하고, 이 시대에 태어난 이들을 일반적으로 ‘베이비부머’라 지칭한다. 또한 58년 개띠가 65+클럽에 입성하면서부터 2024년이면 노인 인구 1천만명을 돌파하게 되고, 2년 후인 2025년이면 노인 인구가 20% 이상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게 된다.
세상에서 쉽고도 어려운 것이 나이 먹는 것
노인의 나이는 누가 정했을까? 일반적으로 노화시기를 규정하는 노인의 구분기준은 연령에 따른 신체 나이이다. 노인연령 기준은 1956년에 유엔이 65세부터 노인이라고 지칭한 이래 지금까지 특정 국가의 노령화를 가늠하는 척도가 되어왔다. 우리나라의 경우 기초연금, 장기요양보험, 지하철 경로우대 등 주요 복지 제도가 65세를 기준으로 운용되고 있기 때문에 65세 이상을 노인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노화 시기는 사회적으로 규정한 객관적인 연령 기준과 별도로 생물학적 나이, 심리적 나이, 사회적 나이, 기능적 나이, 주관적 나이가 있다. 사회적으로 연령이 노인의 범주에 속하더라도 다양한 편차에 따라 사람들은 노화의 인식을 다르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자신이 노인연령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거나 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65세로 진입하면서부터 스스로 늙음의 덫에 가두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올해로 65세가 된 한 지인이 하는 말이다. "내가 올해로 65세 노인이 되었으니 너희들이 나를 잘 돌봐줘야 해!” 65세의 나이 덫에 걸렸다. 노인이라는 덫에 자신의 존엄함과 자립 의지마저 가둔 것이다. 실제 노인복지관에서나 일상에서 많은 고령층을 대하면서 본인이 불리할 경우에 "그것은 나이 들어서 어렵다”면서 자포자기하는 분들이나 자연스런 노화에 대해서도 너무나 쉽게 나이 탓을 하거나, 나이를 벼슬로 사용하는 분들을 종종 본다. 또한 은연중에 나이를 부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 깊은 구석에 "내 나이 들어봐”라는 이중적이거나 자기방어 기제를 가지고 살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세상에서 쉬운 것이 나이 먹는 것이자 가장 어려운 것도 나이 먹는 것이 아닐까?
늙는다는 착각, 나이는 자신이 정한다
몸이 늙으면 마음도 따라 늙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몸이 늙어도 마음이 청년인 사람이 있다. 과연 어떤 사람을 노인이라 해야 하는가? 노인은 나이가 들어 늙은 시기를 말하며, 나이를 먹어서 늙는다는 것은 한창때를 지나 쇠퇴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즉, 쇠퇴란 절정에 다다르고 나서야 이루어지는 것인데, 그렇다면 쇠퇴하기 전의 상태인 ‘그 절정의 위치’란 누가 정하는 것일까? 사무엘 울만은 ‘청춘’이라는 시에서 “청춘은 인생의 한 시기가 아니고 마음의 상태로서, 사람은 나이 때문에 늙지 않고, 이상을 버림으로써 늙는다”라고 했다. 일본 여류소설가 소노 아야코는 “받는 것을 요구하게 된 사람이 나이에 관계없이 노인이다”라면서, 진정한 성년이란 육체적 연령에 관계없이 베푸는 것이며, 누군가가 베풀어주기만 요구하는 사람, 베풀지 않고 받는 것에 익숙한 사람은 아무리 젊은 사람이라 하여도 노인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늙었다는 것, 노인이라는 것은 자신이 정하는 것이고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진다. 노인의 나이라도 자신 속에 살고 있는 꿈·열정을 알아차릴 때 더 이상 늙지 않은 청춘이고, 베풀지 않고 요구하고 받는 것에 익숙해진다면 노인이 된다.
마음엔 나이가 없고, 청춘엔 기준이 없다.
“정말 나도 마음부터 바꾸면 다른 노년의 삶을 살 수 있을까?” 우리의 머릿속에는 노화에 대한 편견-보호받고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 등-이야말로 사람들을 더 늙게 만드는 주범이기에 ‘늙는다는 착각’으로부터 깨어나야 한다(엘렌 랭어 ‘늙는다는 착각’).
지인이 카톡으로 글 하나를 보내온다. “살아가는 매 순간이 개인의 삶에서는 늘 최초이자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다. 우리는 처음 살고 처음 늙고 처음 죽는다.” 또한 지금이라는 현재도 순간순간 변해가고 있다. 지금 여기에 살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마음엔 나이가 없다. 청춘에도 기준이 없다. 오늘 이 순간이 내 인생에 가장 젊은 날이다. 가수 김용임씨가 노래 부른다. “나이야 가라. 나이야 가라. 나이가 대수냐. 오늘이 가장 젊은 날!.....청춘엔 기준이 없는 거란 걸 지금도 한창 때란 걸 잊지는 말아요. 오늘 이 순간이 내 인생에 가장 젊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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