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낭 기행
3박 5일 [서울 2, 정선 1, 대전 5, 광주 8, 목포 6명 합계 22명22 어른 14명 청년 : 5명 고등학생 3명, 남자 9명 여자 13명 평균 보행수 8,241보 총 보행수 41, 208보]
1일 차
토요일 날씨 흐림 [인천공항 – 다낭공항 – 호치민공항- 다낭공항- 노보텔 도착][5,145보 3.87km 189kcal]
우리가 집을 나선 것은 오후 3시 30분이었다. 대형 캐리어 두 개는 이미 차에 실어놓은 상태였다. 몸에 지니고 갈 손가방과 서류가방 하나 나머지는 손으로 드는 출장가방 하나가 있었다.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흐린 날씨였고 잔뜩 찌푸린 표정이 우울하고 비가 곧 내릴 듯한 흐린 날씨였다. 차량을 주차대행업체에 맡기고 해외여행으로 베트남 나낭을 다녀올 작정이었고 번거로움을 피해 다소 비용이 들더라도 차를 직접 몰고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해외여행을 수차례 다녔지만 이번처럼 차량을 주차대행업체에 맡기고 가는 것은 최초였다. 차량을 인계하고 공항의 플랫홈으로 들어갔다. 공항근처에 도착할 때쯤에 안개비처럼 흩뿌려대는 비가 내렸다. 지하철역 공항화물청사역 1번 출구에서 차를 주차 대행업체에게 인계하고 공항출발지로 이동했다. 주차 대행사 대리운자는 차량상태에 관해 전면 후면 옆면 등에 관해 스마트폰으로 사진촬영을 한 후 우리 내외를 공항 출국 수속 출입문 근처에 하차하고 차를 갖고 갔다. 우리내외는 캐리어를 끌고 가방을 들고 인천공항 청사에 들어가 참좋은 여행사 관계자와 조우를 약속한 N구역으로 이동했다. 강원도 정선에서 온 처조카 원경이가 오후 4시부터 도착해 기다리고 있었다. 일단 아내는 캐리어 짐을 나에게 맡겨두고 와이파이 도시락을 찾으러 다녀왔다. 언젠가 한 번은 그것을 깜빡 잊고 출국수속 후 다시 역으로 수속을 밟아 도시락을 찾고 다시 출국 수속절차를 밟은 적도 있었다. 정선에서 온 처조카 원경이와 만난 후 여행사의 관계자를 만나 여행일정표 등이 포함된 서류 등을 인계받았다. 그리고 곧 도착예정인 일행들에게 짐을 부치고 발권을 하는 수속을 할 E구역으로 오라고 통화를 했다. 아내도 중간에 우리와 합류해서 E구역으로 이동했다. 중간에 처남댁과 현민이를 만났다. 그리고 캐리어를 끌고 E구역에 가서 줄을 섰다. 그곳은 티웨이 항공의 전용창구였다. 길게 늘어선 줄이 코로나19 이후 일상의 회복을 실감하게 해주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계속해서 줄은 불어났고 길어졌다. 짐을 부치고 발권하는 절차를 밟는 것에 거의 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원경이는 조그만 캐리어였고 손가방이어서 직접 짐을 들고 탑승하는 것으로 했다. 일행 모두는 짐을 부치고 출국 수속절차를 밟았다. 정식 출국절차 였고 소지품 검사를 받고 소지품 금지품목 등에 관해서는 압수조치가 병행되었다. 맥가이버 칼을 부치는 짐 속에 넣었어야 했는데 소지품 가방에 넣었다가 압수 후 폐기조치 되었다. 그렇게 출국 수속을 마치고 나니 오후 7시 30분 경이었다. 비행기 출발까지 한 시간쯤 여유가 있었다. 인천공항 출발 예정시간은 8시 50분이었다. 112번 게이트였다. 공항 전용트레인을 타고 5분쯤 이동했다. 그곳에서 간단하게 저녁식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오후 8시 25분까지 게이트에서 탑승해야 하는 처지였다. 항공기 탑승까지 시간이 별로 없었다. 페스트푸드점 롯데리아가 근처에 있었다. 아내가 햄버그, 불고기 버그, 사이다를 사 왔다.. 주말이었고 설명절을 앞둔 시기라 공항 이용객이 엄청났다. 다른 일행은 목포에서 전세버스를 타고 이동했고 광주와 대전을 경유해서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19명이었다. 목포에서 탑승인원이 6명 광주 8명 대전 5명이었다. 대부분이 목포선원에서 수행을 함께하는 도반이었다. 몇 차례 해외여행, 제주여행 등을 같이 한 경험이 있었기에 스스럼이 없었다. 탑승수속 후 비행기에 탑승하고 보니 밤비행기 편이었다. 아내의 스승님이 옆좌석에 앉았다. 궂은 날씨 때문인지 항공편의 출발은 순조롭게 이루어지지 못했다. 제법 시간이 지난 9시 10분경에야 겨우 인천공항을 이륙할 수 있었다. 인천공항에서 다낭공항까지의 소요시간은 4시간 30분쯤이었다. 시차도 두 시간이었다. 기내식이나 음료 등의 서비스는 없었고 물 등이나 간편한 간식 등은 유료로 이용할 수 있었다. 물을 한 병 사서 나눠먹었다. 계산은 스승님이 하셨다. 4시간 30분이 지나 다낭 공항 상공에 도착했는데 기상악화로 인해 착륙을 할 수 없는 형국이었다. 나중에 가이드로부터 들은 기상이변은 짙은 안개 때문이었다. 지척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의 안개가 시야를 방해했다. 천재지변이었다. 다낭 상공 선회를 계속하다가 20분 후 호치민 공항으로의 이동을 결정해 그곳으로 갔다. 한 시간쯤 남쪽으로 비행을 한 후 호찌민 공항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항공기의 연료를 주유받았다. 그리고 다시 다낭공항으로 향했다. 거의 700킬로미터를 넘는 거리였고 항공기로도 1시간 10분이 걸렸다. 다시 도착한 다낭 공항에서 또다시 상공을 선회했다. 그리고 기상상황이 어느만큼 호전된 이후 관제탑의 착륙 허가를 득한 후에야 겨우 착륙할 수 있었다. 거의 10시간 쯤을 비행기 속에서 불안한 심정으로 보낸 힘든 다낭 여행 도착이었다.
2일차
일요일 [노보텔 체크인 – 조식 – 12 : 00 로비 집결 관광일정 시작 – 중식 씨푸드(랍소드 된장찌개, 오징어볶음 라면사리 등) - 오봉산 동굴(지옥문) -호이안 이동 씨클로(자전거와( 인력거 혼합) 이동) 마을관광. 광동회관(관우사당), 내원교. –목선 이동 [강유람] -도자기 마을 (호랑이, 양 토기 선물수령)-전통대나무배 이동 (노래방식 노래 춤 등)- 저녁식사 베트남 현지식(닭, 소, 돼지고기 유리, 모닝글로리, 사라다 과자 등) - 야시장 관광(콩카페 커피라테) - 돛단배에 올라 소원등 띄우기 – 호텔로 귀환. [9,608보 7.06Km 373kcal ]
우리 일행이 우여곡절 끝에 다낭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현지시간 오전 4시 30분 경이었다. 다낭 입국절차를 진행하고 짐을 찾는 시간을 보낸 후 베트남 현지인 가이드와 함께 전세 버스에 탑승후 호텔로 이동했다. 한국인 가이드는 공황을 빠져나온 후 갓길에서 승차했다. 본래 다낭공항 도착 예정시간보다 6시간쯤 늦어진 일정이다 보니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 7년째 다낭에 살았고 가이드를 업으로 하고 있는 베테랑 가이드였다. 다낭 공항은 도심 한복판에 이례적으로 공항이 위치해 호텔까지의 접근성은 좋은 편이었다. 오늘과 같은 천재지변이 자주 있는지에 관해 문의를 했는데 작년 10월에 두차례의 큰 태풍이 온 적이 있었다고 했다. 3일동안 이동이 제한되고 관광객은 오로지 호텔에서 일정을 소화했고 식사 등은 배달로 해결했다는 얘기였다. 아침 7시쯤에 노보텔 호텔에 도착했다. 아침해가 떠오르고 있는 일출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다낭 최고급 오성급 호텔에 도착한 우리는 캐리어를 들고 로비로 들어가 잠시 대기했다가 방을 배정받고 객실키를 받았다. 호텔 객실로 들어온 우리 내외는 대충 짐을 풀어놓고 샤워를 한 후 호텔 4층 식당으로 내려가 뷔페식 호텔 조식을 맛보았다. 음식은 엄청나게 다양한 종류였지만 우리 입맛에 맞는 구미를 당길 만한 것은 많지 않았다. 나중에 보니 던컨 도너츠, 바케트 빵 등도 즐비하게 준비해 놓았다. 쌀도 안남비로 통칭되는 인디카 계통의 쌀로 우리와 같은 자포니카종의 쌀은 맛볼 수 없었다. 아침 식사를 마친 후 객실로 올라와 오전까지 휴식을 취했다. 12시에 로비에서 일행과 만나 전세버스를 타고 중식장소로 이동했다. 첫 행선지는 랍소드 식당이었다. 랍소드의 크기는 그리 크지 않았다. 반주로 맥주를 좀 마셨다. 식사 후에는 오행산 투어에 들어갔다. 서유기에 나오는 손오공과 관련된 오행산이었다. 오행산 투어는 동굴을 둘러보는 것이었다. 지옥문으로 들어가 여러 곳을 돌아보았다. 동굴내부는 엄청 넓은 공간이었고 각양각색의 조각상, 동물상, 인간군상이 즐비했다. 표정이나 모습이 조금은 험악했고 과장된 느낌을 주기도 했다. 사진 촬영이나 동영상 등을 촬영하며 관광을 이어나갔다. 기온은 그렇게 높지 않아 무덥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관광후 화장실에 들렀는데 팁을 요구하는 요청에 1달러를 내놓기도 했다. 오행산 관광을 마친 후 호이안으로 이동했다. 40분쯤이 소요되었다. 씨클루드를 타고 15분쯤 호이안의 관광코스를 돌아보았다. 스마트폰으로 거리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촬영했다. 다낭 관광객의 대부분인 70% 정도의 관광객이 한국인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일부 서양인들도 눈에 띄었다. 씨클루드 관광 후에는 광동회관, 내원교 등지를 도보로 이동해 둘러보았다. 호이안의 거리가 혼잡할 정도로 관광객이 많지는 않았다. 다음주 베트남 최고의 설명절을 앞두고 있어서 금귤 나무나, 국화 등으로 장식을 해놓았다. 그리고 상점마다 사당에 위패를 모시 듯이 자신들의 신앙하는 신을 모셔놓고 장식을 만들어 놓았다. 명절이 끝나면 불로 태워버리는 풍속이었다. 금귤과 국화꽃 등이 재물이나 황금과 유사한 색깔이어서 그렇게 부유해지기를 소망하는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화려하고 아기자기한 모습이었다. 광동회관은 중국사람들이 지은 사당으로 삼국지의 관우가 모셔져 있었다. 내원교는 중국인 마을과 일본인 마을을 서로 연결하는 교량이었다. 일행 모두가 풍흥의 집 2층으로 이동해서 2층의 발코니 난간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을 찍어준 이는 한국인 가이드가 그 역할을 담당했다. 다음은 선착장으로 이동해서 목선으로 투본강 관광을 했다. 강변을 따라 이동해서 도자기 마을에 당도했다. 배에서는 구명조끼를 착용했다. 강을 따라 이동하면서 반대편으로 돌아가는 유사한 유람선 배들을 만나면 서로 간에 승객들끼리 손을 흔들며 서로를 격려하기도 했다. 투본강 투어를 마친 후에는 도자기 마을로 들어가서 각자 자신의 띠에 합당한 동물 모양의 토기를 하나씩 기념품으로 받았다. 다음의 일정은 저녁식사였다. 전통 베트남 음식이었다. 밥, 미역국, 야채사라다,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 등이 요리된 음식이었다. 반주로 보드카를 맛보았다. 식당 내의 연못 등도 남다른 정취를 느끼게 해 주었다. 낙향한 왕족이 지었다는 건물이었다. 식사 후에는 투본강 인근의 야시장 투어차례였다. 버스로 이동했다가 호이안으로의 이동은 소형 미니버스 우리의 봉고와 비슷한 15인승으로 이동했다. 이동시간은 5분쯤으로 그리 길지 않았다. 야시장 관광은 자유롭게 각자 취향대로 구경을 했고 집결시간과 집결지까지 정해서 알려주었다. 한 시간쯤 자유롭게 관광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한 팀은 야시장 쪽으로 갔고 어떤 팀은 술집에서 화이트 와인을 한 잔 하기도 했다. 다음 일정은 너댓 명씩 돛단배를 타고 이동하면서 소원등을 띄우는 놀이를 즐기는 것이었다. 조그만 종이배 위에 촛불이 켜졌다. 그리고 그것을 강물위에 띄우는 식이었다. 노를 저어 돛단배를 이동하는 식이었고 금새 끝나버리는 행사였다. 그 후의 일정은 호텔로 복귀하는 일정이었다. 첫날의 본격적인 관광이 끝났다. 호텔로 돌아와서 샤워를 하고 휴식을 취했다. 나는 객실로 돌아와 컵라면을 끓여서 맛보았다.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다. 야식으로 라면은 더할나위 없는 풍미를 느끼게 했다. 문제는 젓가락이었다. 디저트로 나온 망고를 먹었는데 망고용으로 나온 가느다란 나무꽂이가 두 개 있었다. 그것을 젓가락 대용으로 사용했다. 언젠가는 해외여행에서 라면을 끓여먹으며 젓가락 대용으로 연필을 두 자루 사용해 먹었던 경험도 있었다.
3일차
비 10 : 30 출발 – 바나힐 도착 –케이블카 (20분)- 골든브리지 전망대 – 와인창고 꽃정원, 파라다이스 정원 이동 –테마파크 (자이드롭, 놀이기구 등) - 바나힐 입구로 이동 – 다낭 타워 스테이크 하우스(37층스카이라운지) - 맛사지 (90분) -호텔 귀환 [10,683보 7.88Km 409kcal ]
아침에 기상은 6시 30분에 했다. 세면을 하고 단장을 한 후 4층으로 내려와 식사를 했다. 베란다로 나가서 다낭의 시가지 전경을 동영상으로 촬영했다. 다낭 시가지가 한눈에 보였다. 저멀리에는 산도 보였고 바다와 강이 합류되는 지점도 가까이 있었다. 호텔 뒤쪽에는 시청건물이 있었다. 처음으로 뷔페 음식으로 빵이 여러 가지로 준비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잔뜩 접시에 담아왔다가 처남네에도 나눠주었다. 어제 저녁 새벽 한 시 30분까지 늦은 회합을 한 탓에 일행들의 아침식사가 늦었다. 자매들간에 수다를 떨고 얼굴팩을 같이하면서 우애를 나눴던 시간이었다. 10시 30분이 호텔로비에서 가이드를 만나는 시간이었다. 바나힐로 가는 날이다. 평균기온이 20도라고 하니 무척이나 기온이 낮을 것으로 여겨졌다. 겨울 외투에 속의 털 부분을 걷어내고 외투만 입고 관광에 나섰다. 운동화는 가방에 넣었고 신발도 어제처럼 샌들을 신었다. 비가 내리다면 길이 미끄러울 것으로 여겨졌다. 5년전에 비해 성수기가 아닌 비수기여서 줄을 서야 하는 혼잡함은 전혀 없었다. 그렇다고 관광객이 없는 수준은 전혀 아니고 적정한 수준의 관광객 수는 유지하고 있었다. 줄을 서서 대기함이 없이 곧장 입장해서 케이블카를 탔다. 지상에서 해발 1,500미터 가까운 정상까지 케이블카를 두 번에 걸쳐서 타고 올라가는 식이었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케이블카의 건립 초기에는 엄청 욕을 먹었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은 각광받는 관광코스로 대박이 나서 5호 라인까지 건립이 될 정도가 되었다. 초창기 프랑스 식민지 지배시절 와인을 보관할 창고를 건립할 장소를 찾던 중에 바니힐이 물색되었고 그곳에 와인창고가 건립되면서 프랑스 고위층, 귀족들의 휴양지로 이곳이 각광을 받게 된 곳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집이 한 채 지어졌다가 차츰 그 규모가 확대되어 가면서 오늘날에는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부에는 놀이공원, 성당, 프랑스 마을, 독일인 마을 등 유럽풍의 건축물이 즐비한 것이 되었다. 정상부근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절이 건립되었다. 먼저 관광을 위해 우리 일행이 둘러본 곳은 골든브릿지와 와인창고 등이었다. 골든브릿지에는 대형 손모양이 석상으로 조각되어 있었고 그것이 다리를 떠받치고 있는 형상이었다. 사진으로 봐서는 손이 하나인 것으로 오해하기 십상인데 실상은 손이 두 개가 만들어져 있었다. 다리가 끝나는 지점에 손모양의 형상 크기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조그만 규모의 발, 얼굴, 손 모양 등의 별개 조각상이 세워져 있었다. 비는 내리지 않았으나 대부분의 관광객이 우의를 착용하거나 우산을 들고 관광을 하고 있었다. 지상에 비해 조금은 차가운 날씨로 느껴질 정도였다. 사람의 각종 부위별 조각상을 지나서 더 아래쪽으로 내려가니 와인창고가 나왔다. 와인 병 모양의 별도 형상이 입구에 세워져 있었고 한켠에는 우리 나라에서 흔히 보는 동백꽃과 수국이 꽃을 피우고 있었다. 와인창고 입구에서 아내와 나는 기념촬영을 했고 안쪽으로 들어가 보기도 했다. 와인을 보관하기 위한 호크통도 있었고 와인이 엄청나게 보관된 동굴을 볼 수 있었다. 기온이 낮고 어두컴컴해 으스스한 기운이 느껴졌고 참으로 힘들게 와인창고를 지었으리라는 짐작을 할 수 있는 고산지대의 외지였다. 와인창고 앞 꽃정원에는 춤을 추는 듯한 아가씨의 조형물이 받침대 위에 동상처럼 우뚝 솟아있었고 그 앞에는 아이 넷이 앙증맞은 모습으로 포즈를 취하는 청동상이 세워져 있어서 관광객들이 기념촬영을 했다. 골든브릿지와 와인창고 관광을 마치고 집결한 시간은 12시 30분이었다. 중식을 하기 위해 바니힐에 있는 리틀도쿄란 뷔페식 식당으로 갔다. 그곳에서 한식 등으로 식사를 했다. 넓은 공간이었지만 많은 사람이 운집해 있어 우리 일행이 한꺼번에 같이 모여 앉아 식사를 할 수는 없었고 삼삼오오 모여서 뿔뿔이 흩어진 채 식사할 수밖에 없었다. 아내는 각종 나물 등 식재료를 비벼서 비빔밥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디저트로 찰떡 케잌 등도 맛을 보았다. 관광객 들이 계속 모여들고 있어 혼잡했다. 식사 후 자유관광을 마치고 입구 집결지로 집합하는 시간은 오후 3시 30분으로 정했다. 아이들이 놀이 공원이 있던 구역으로 우르르 몰려갔고 조금 지난 후 어른 도 테마파크로 가서 그곳을 둘러보았다. 중앙에 위치한 놀이기구는 자이드롭이었다. 한꺼번에 꼭대기까지 올라갔다가 순식간에 내려와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식은 아닌 듯했고 두세 번에 걸쳐서 상승하거나 하강하는 식이어서 그렇게 큰 공포감을 느끼게 하지는 않아 보였다. 안개비가 흩뿌려대는 식의 비가 내리고 있었고 바람도 심하게 불어 관광하기에 썩좋은 날씨라고 보기에는 어려웠다. 제대로 시야를 확보하기가 쉽지않아 독일인 마을 등을 둘러보는 것은 포기하고 테마파크 등 실내 관광에 치중했다. 각종 흉상 모형, 전신상 등의 조각품이 여러 곳에 원형으로 산재해 있었다. 세계의 위인들 흉상이 있었고 어느 곳에는 여신들의 모습을 한 전신상이 원형으로 위치해 있기도 했다. 관광을 하던 중에 성당을 지나 호프집이 즐비한 곳에서 호프와 맥주를 주문했다. 그리고 그것을 들고 의자와 테이블이 있는 별도 건물에 들어가 좌정했다. 이미 그곳을 선점하고 있는 다른 손님들이 있었다. 긴 장화모양의 호프를 두어개 갖다 놓고 먹는 손님도 있었다. 자주 자리를 비우는 손님들은 아마도 적절한 장소에서 흡연이나 개인적인 용무를 위해 나갔다 오기도 했다. 비어 플라자라는 곳에서는 입장료를 받았는데 무척이나 고가였다. 실연을 하는 밴드(드럼 기타 등)와 가수(여)가 무대에서 노래와 춤을 선보였고 그것을 보면서 호프를 마시는 형식이었다. 우리는 호프와 흑맥주를 한 잔 마신후 집결지로 갔다. 그리고 일행 모두가 집합한 후 바니힐에서 하산하는 절차를 밟았다. 케이블카를 두 번 타고 바나힐 입구로 내려와서 전세버스에 올랐다. 다음의 행선지는 다낭 타워라는 곳에서의 스테이크 특별식을 맛보는 것이었다. 다낭 시가지가 다 보이는 37층의 스카이라운지에 올라가서 다낭의 전체 시가지의 불야성 같은 야경을 만끽하며 저녁식사 만찬을 즐기는 것이었다. 술은 레드와인으로 별도로 주문을 했고 비용을 지불했다. 스승님께서 건배제의를 했고 맛있는 식사를 제대로 즐겼다. 아이들도 음료와 디저트 등을 즐겼다. 그리고 일행 모두들 만족해 했다.
4일 차
맑음 비 호텔 조식 – 10시 집합 호텔 체크아웃 –버스로 이동 APEC공원 (고양이상) -노니 & 침향 판매점- 중부베트남식 샤브샤브– 다낭 대성당 – 전통시장 투어(콩카페. 라떼)- 린응사(해수관음상. 야생 원숭이, 개 ) - 커피도매상 –미케해변(28Km) 관광 – 잡화점 [말린 과일, 민망왕주, 기타] - 티아라 스파(오일마사지(오일맛사지 2H) - 저녁식사(삼겹살) - 한강유람선 – 다낭 공항 [8,983보 6.61km 344kcal]
아침 6시쯤에 우리 내외는 기상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베란다 문을 열고 베란다에서 다낭 시가지를 동영상으로 촬영했다. 어제보다는 안개가 적은 듯했다. 고작가가 다낭의 다리가 있는 전경을 그림으로 그려서 단톡방에 올렸다. 오늘은 호텔 체크아웃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무척이나 바쁘고 분주했다. 오전 7시 40분경에 아침식사를 위해 4층으로 내려갔다. 식사를 하러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무심결에 급하게 객실 밖으로 나오면서 실내화를 신은 채로 그냥 나왔다. 대략 난감한 일이었다. 어이없는 실수였다. 엘리베이터에 미리 탔던 중년 부인분이 식당 입장이 불허되는 것 아니냐고 우려를 표했더니 입장할 수 있다고 언질을 주었다. 일단 한쪽에 자리를 정하고 좌정했다. 식사는 아내가 가져왔다. 잠시 바깥으로 나가 다낭시의 전경을 스마트폰에 담았다.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한 후 식당의 제자리로 돌아왔다. 바깥에는 실외 수영장이 넓게 자리해 있었다. 안개비 같은 것이 흩뿌려지고 있는 상태였고 아침시간이었기에 수영장을 이용하는 손님은 없었다. 아침 식사는 처남내외와 함께했다. 옆좌석에는 스승님 내외가 식사를 하고 계셨다. 식사를 마치고 객실로 올라와 최종적으로 짐정리를 했고 침대 머리맡에 팁을 두고 퇴실했다. 첫날에는 정신이 없었던 탓에 팁을 챙기지 못했다. 호텔 로비로 내려와 체크아웃을 하고 카드키 두 장을 반납했다. 10시 정각에 버스가 도착했다. 캐리어를 싣고 승차했다. 첫 관광 코스는 2017년에 이곳에 개최된 APEC정상회담 기념 공원이었다. 강변에는 고양이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동상의 형상은 앉아 있는 모습의 고양이상이었다. 천정이 은빛인 조형물이 세워져 있었고 주변에는 여러 나무와 꽃들이 심어져 있었고 정상회담 참가국들이 선물한 각종 조형물들이 주변에 수놓아져 있었다. 베트남에서는 호찌민이나 하노이가 아닌 다낭에서 정상회담을 하는 묘수를 두었다. 거의 이름 없는 도시였던 다낭이 급부상하는 도시로 각광을 받기 시작한 계기를 만들었다. 전 세계의 기자들이 이곳을 방문했고 다낭이 어떤 곳이고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를 보도하면서 베트남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되었다. 우리나라의 해운대 동백섬에 있는 APEC정상회담 개최지와 유사한 모습으로 여겨졌다. 설날을 앞두고 화려한 모형의 조화로 꾸며진 형형색색의 꽃을 매단 나무들이 보기 좋게 세워져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끌기에 충분했다. 도로변에는 우리나라에서 조성한 조형물인 고양이 형상의 작품 앞에서 같은 포즈로 기념촬영을 가족단위로 했다. 공원관광을 마친 후 간 곳은 노니 & 침향 판매점이었다. 우리나라와 비교하자면 담배인삼공사 판매점과 유사했다. 노니와 침향은 국가에서만 관리하는 전매품이었다. 청산유수로 상품을 소개하는 것에 우리 일행 중 몇몇은 유혹당해 지갑을 열고 말았다. 아내, 처남, 처제 셋이었다. 상점에서 나온 후 다음으로 소화한 관광일정은 중식을 먹는 것이었다. 중부 베트남식 샤브샤브 요리였다. 해물이 주재료였고 모닝글로리 배추 등도 샤브샤브에 넣어서 먹었다. 쌀국수 면도 제공되어 쌀국수를 맛보기도 했다. 건더기를 다 먹은 후에는 종업원이 와서 밥을 볶아주었다. 야채 볶음밥 식이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간 곳은 다낭 대성당이었다. 서구의 대성당과는 규모면에서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러나 핑크빛이어서 사진은 잘 나왔다. 단체사진을 찍었다. 서울에는 눈이 내리는 모습이 SNS에 올라왔다. 딴 세상으로 느껴졌다. 즉석사진을 찍어서 곧장 칼라프린트기로 뽑아 한 장에 한국돈 천 원씩에 판매하기도 했다. 인기몰이를 한 탓에 한국돈을 권종별로 다 갖고 있었고 아내는 천원권을 만원으로 만원권을 오만원으로 교환해 주기도 했다. 단체 사진 두 장과 우리 부부내외가 성당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 세 장을 샀다. 성당의 뒤쪽에는 아베마리아 성모상을 모신 공간이 별도로 마련되었다. 우리 부부는 그곳에 들러 기념촬영을 했다. 성당관광을 마친 후에는 그쪽 부근에 있는 전통시장으로 이동해 자유롭게 둘러보는 자유시간을 가졌다. 콩카페가 있었다. 호이안을 관광하던 중에도 잠깐 들른 적이 있었는데 이곳에도 있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커피점 스타벅스가 유일하게 입점 후 마케팅에 실패한 나라가 베트남이라고 했다. (베트남은 세계 2위의 커피 생산국이었다.) 전혀 커피 취향이 달랐던 탓이었다. 오랜 연륜이 묻어있는 듯 고색창연한 모습이었다. 목조건물이었고 세월의 흔적을 느껴볼 수 있기도 했다. 한쪽 벽면에는 베트남인들의 옛날 모습을 엿볼 수 있는 흑백 사진들이 여러장 다닥다닥 붙여져 있었다. 라테 커피잔 속에 흰색의 우유나 크림으로 별모양을 만들어 내놓았다. 전통시장을 둘러본 후 자유시간을 가진 다음 찾은 곳은 린응사였다. 67미터 높이의 해수관음상이 우람하고 장엄한 모습으로 바다 쪽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호리병을 받쳐 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베트남 전쟁 후 미케 해변에서 돌아가신 수많은 보트피플(전쟁후 숙청을 피해 배로 배트남을 떠났던 피난민)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보트피플로 조국을 등진 사람들이 세계각지에서 출국하여 성공한 후 십시일반으로 모금을 해서 해수관음상을 건립했다고 가이드가 설명했다. 우리나라의 낙산사 해수관음상과 유사했지만 규모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린응사에는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개와 원숭이들이 있었다. 아주 작은 크기의 원숭이어서 위협적이지는 않았으나 관광객이 해코지를 하면 졸지에 뺨을 맞을 수도 있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커피점이었다. 코끼리 똥커피, 족제비똥 커피, 각질 제거용 커피젤, 로스팅용 컵 등 여러 제품에 대한 안내와 설명이 있었다. 그래도 거의 대부분의 손님들이 필요에 따라 취향에 맞게 선물용 또는 직접 집에서 먹을 요량으로 커피를 구입했다. 커피점을 나온 후 잠시 미케 해변에 들러 해변 백사장과 파도 등을 직접 접하고 관광하고 세계적인 해변 미케비치 해변을 직접 느껴보기도 했다. 다음의 일정은 잡화점이었다. 아내는 말린 과일을 샀고 처남은 민망왕주를 샀다. 잡화점에서 쇼핑을 한 후 찾은 곳은 마사지숍인 스파였다. 그곳에서 22시간 동안 오일마사지를 받은 후 피로를 풀었다. 오늘의 일정은 밤 10시까지 예정되었다. 비행기 이륙시간은 내일 오전 1시 50분이었다. 이제 남은 일정은 저녁식사와 식사 후 한강 유람선 투어만 남았다. 너무 늦은 시간에 출발하는 항공편이어서 최대한으로 일정을 늦은 시간까지 소화한 후 다낭 공항으로 가야 하는 일정이었다. 저녁식사를 위해 찾은 식당에서 선택한 메뉴는 삼겹살이었다. 한국인의 최애 식품인 삼겹살을 불판에 구워서 먹는 방식이었다. 마늘 양파 김치 등도 같이 구워서 먹었다. 거의 한국식이라 해도 될 정도였다. 소주는 좋은 데이였다. 소주의 가격은 한국돈으로 8천원 정도였다. 식당은 한인촌에 위치해 있었다. 한 시간 여의 식사시간을 가진 후 다시 버스에 탑승해서 강변의 유람선 선착장으로 갔다. 비는 가늘게 조금씩 내리는 날씨였다. 입장권을 끊고 유람선에 올랐다. 유람선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음료 과일 등이 개별적으로 선책 할 수 있도록 여지가 있었다. 먼저 흥겨운 한국의 유명 트로트 곡들이 노래와 함께 유람선 투어가 시작되었다. 한 여자 무희가 현란한 복장으로 뱃머리 부분의 갑판 위에서 춤을 췄다. 분위기가 한 끗 고조되었다. 빗줄기는 점점 더 굵어졌다. 무희의 춤이 끝난 후에는 희망자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기도 했다. 다낭의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다낭의 고층 빌딩들은 네온샤인 불빛으로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고 형형색색으로 끊임없이 변화하며 색다른 모습들을 보여주기도 했다. 음악에 맞춰 삼삼오오 모여 춤을 추기도 했고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했다. 립싱크를 하고 있는 느낌을 주기도 했다. 배의 머리 부분에는 비가 내리쳐서 의자와 탁자 등을 흥건히 적시기도 했다. 유람선 관광을 마친 후에는 나당공항으로 이동했다. 가이드가 다낭의 한 달 살기에 관해 설명해 주기도 했다. 2백만 원 정도면 충분히 지낼 수 있다고 했다.(차를 자가용처럼 사용하는 것은 금물이라고 했다. 현지인의 운전이 워낙 난폭해 곧바로 사고나고 분쟁에 휩싸이기 십상이라는 설명이었다) 처음과 마찬가지로 한국인 가이드는 공항 근처의 갓길에서 내렸다. 모두 아낌없는 박수로 여행일정을 훌륭히 안내한 가이드의 수고와 노고를 치하하기도 했다. 현지 베트남 가이드만이 우리와 최후까지 공항에서 탑승소속 때까지 일정을 같이한 후 작별을 고했다. 일행 중 어떤 이는 여행 후 남은 것들을 베트남 현지인 가이드에게 선물로 나눠주기도 했다. 다낭 공항에서의 출국 수속은 순조로웠다. 복장을 여름복장에서 겨울복장으로 갈아입고 캐리어의 짐도 다시 꾸렸다. 캐리어 한 개당의 무게가 15Kg이 기준 정량이었다. 일부는 너무 무게가 초과되어 다시 무게를 조정하기도 했다. 면세점에서 로열살루트 양주를 한 병 사기도 했다. 아내는 물을 사서 나눠 마시기도 했다. 한쪽편에 줄지어 있는 안마의자에서 여행의 피로를 풀기도 했다. 콘센트에는 스마트폰의 배터리를 충전시키기도 했다. 3박 5일간의 일정을 모두 끝내고 이제는 항공기 탑승만 남았다.
5일 차
다낭 공항 – 인천공항 – 귀가. [6,789보 5.07km –248kcal ]
탑승게이트에서의 수속은 탑승권을 보여주면 바코드를 체크하고 탑승하는 수순이었다. 탑승구에서 항공편으로의 이동은 버스로 이동했다. 그리고 비행기에 올랐다. 그래도 일찍 탑승 수속을 했던 터라 앞 좌석에 배정이 되었다. 우리의 옆좌석에는 막내처제네 식구들과 함께였다. 마참 한 좌석은 다행히 빈좌석이어서 가방을 놔둘 수 있었다. 탑승해서 한 시간 반 정도는 입국신고서와 세관신고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마지막 날의 여행기를 작성했다. 아침 3시 30분 경이 되었다. 항공기 내의 사방은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 항공기 내에도 정적이 감돌았다. 간헐적으로 여승무원, 남자 승무원 등이 순찰을 하듯 승객들의 불편함을 챙기는 듯했다. 잠시 뒤편의 화장실에 다녀왔다. 통로측 좌석이어서 불편 없이 앞뒤로 이동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그리고 잠에 빠져들었다. 6시 30분경에 인천공항에 착륙했다. 처음 도착할 때와 같은 이변이나 돌발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무사히 인천공항의 지상에 착륙했고 이제는 입국절차를 밟아서 귀가하면 다낭여행이 마무리되는 상황이었다. 지상에서 도착하자 찬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어제 눈이 내렸던 상황이라 겨울의 맹추위가 실감 났다. 몇 시간 전까지 그렇게 더운 지방에서 있었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을 정도였다. 캐리어 짐을 찾고 입국절차를 밟은 후에 바깥에서 일행들과 작별을 고했다. 일행 분들은 3층 전문식당가에서 아침식사를 한 후 전세버스로 대전, 광주, 목포로 순차적으로 이동할 예정이었다. 우리는 일단 와이파이 도시락을 반환했다. 그리고 주차대행사에 연락을 취해 조우할 장소를 택해 그곳으로 캐리어를 끌고가 기다렸다. 그리고 운전자를 통합화물센터역 1번 출구 근처까지 바래다주고 귀로에 올랐다. 인천공항에서 서울로 가는 길은 평일 아침이라 순조로울 것으로 예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명절을 앞둔 대목인 시기라 엄청난 정체가 있었다. 거의 두 시간 가까이 소요되었다. 집 근처 식당에서 닭볶음탕을 시켜서 먹고 귀가했다. 3박 5일간의 다낭 여행이 종료되는 순간이었다 4년 만의 해외여행이 행복하고 즐거웠으며 기쁨이 가득한 시간이었다. 여행은 언제는 종합선물세트와 같다고 한다. 행복한 여행이 삶의 활력으로 작용하고 일상을 회복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리라. 다낭 기행을 함께한 모든 일행도 올 한 해 건강이 함께하고 축복이 가득한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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