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무게
엊그제는 말복이자 입추였다. 이를 고비로 불볕더위와 열대야는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차츰 수그러들고 있다. 얼마 전 일이었다. 어떤 가족 모임이 있어 시골을 내려간 적이 있었다. 휴가기간이었고 무더위가 한창이었던 터라 길도 많이 막혔고 거리도 상당했던지라 늦은 밤에 도착했다. 30여 킬로 미터의 시골 길을 달려 겨우 도착한 것이었다. 길 양옆으로 계곡이다 보니 여름휴가를 나온 차량이 기다랗게 주차되어 있었다. 칠흑 같은 어둠이 짙게 깔려었던 시골이 옛고향의 정취를 느끼게 해 주었다. 오랜만에 모임이었고 한 해에 두어 차례 하는 모임이었다. 모두 환영해 주었고 반겨주었다. 20여 명의 친척들이 모였다. 세월의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그중에 특히 눈길을 끄는 일이 있었다. 조그만 아이 둘이 눈에 번쩍 뛰었다. ‘웬 아이냐?’고 물으니 아무개의 아들과 딸로 누님의 외손자라는 것이었다. 머리를 뒤통수로 맞은 듯했다. 결혼한 지도 이태 정도로 알았는데 이렇게 큰 손자, 손주가 있었단 말인가. 참으로 부럽고 행복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어느새 훌쩍 커버린 손자 손주의 재롱에 흠뻑 빠져 있는 모습에 엄청나게 부러워했다. 어렵사리 손자도 안아보고 손주도 안아보았다. 낯선 친척 아저씨의 멋쩍은 행동에 손주는 울음을 터뜨리기도 하였다. 참으로 머쓱해지는 순간이었다. 삼복에 된더위가 한창인 때에 모임을 하게 된 것이었다. 이제는 40대에서부터 60대에 이르기까지 세월이 흘렀으니 세월의 무게를 실감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총 아홉 가족 중에서 서열 5위 정도 였는 데 50대 중반이고 보니 감회가 남달랐다. 10년 차의 막내 아우늠 이제 중년이 된 듯했다. 40대 중반이었고 아이들도 키가 너무 자라 있었다. 중학교 2학년이라고 했는데 168센티 미터나 되니 놀랄만 하였다. 미국에서 1년을 보낸 것이 성장을 더 빠르게 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모두 미리 맛있는 염소고기로 식사 하고 반주를 한잔한 상태에서 노래방 기기에 노래를 따라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한쪽 귀퉁이에 상을 하나 차려 놓고 늦었지만 만남의 기쁨을 나누었고 환담을 하였다. 식당 하나를 전체로 빌려 쓰고 있었다. 바깥에는 잔디를 잘 가꾸어 놓아 자리를 깔아놓고 쉬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얼마 전 사위를 본 형님 내외는 매우 만족한 듯한 모습이었는데 형수는 딸을 빼앗긴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허전하기 그지없다는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누님네의 손주는 6살 손자는 4살이라고 했다. 눈이 올망졸망한 게 그렇게 예뻣고 귀여운 인형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였다. 이제 10여 년후면 곧 그렇게 뒷방 늙은이가 되어 손자, 손주의 뒤치다꺼리나 하고 재롱이나 보면서 세월을 보내야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유행가 노fot말에 그런 것이 있었다. 내 평생 소원이 손자 손잡고 금강산 구경이라고 했던 것이 떠올려 졌다. 또 하나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고고 했었다. 예전에도 그런 적이 있었다. 결혼을 처음하고 처가 쪽 친척 집에 인사를 하러 갔었다. 그런데 그쪽 사위와 딸이 손자 두 명을 데리고 이미 와 있는 것을 보았다. 신혼 초였는데 그렇게 4살 6살 정도 였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게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6~7년을 앞서 간 사람에 대해 부러움이 가득한 눈길을 보낸 적이 있었다. 그러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는 25년이 지나 이렇게 간사스럽게 남의 손자, 손주의 재롱에 흠뻑 빠지게 된 것이었다. 앞으로 10년은 있어야 할 일인데 말이다. 인간의 간사스러움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갑장이라는 여자 친척의 외손자, 외손주를 봤다는 것에 대해서도 축하를 해주었다. 세월은 20대에는 20킬로 미터로 50대에 50킬로 미터로 간다고 한다. 나이에 비례해서 세월의 속도도 빨리 가고 세월의 무게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생을 살아가면서 느껴가는 감정의 기복이 그렇게 차이가 나는 것이리라. 이제는 어느 만큼 세월의 무게를 느끼지 않고 자기의 삶을 살아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했다. 얼마전에 만난 어느 지인은 그렇게 얘기를 했었다. 젊은 시절 조직에 파묻혀 일에 목메게 열중했고 집중했던 것이 가정과 유리되게 만들었고 가족과의 친밀한 관계 유지에 흠으로 남았다는 것을 후회한다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게 일에 직장에 몰두하고 몰입해서 자기의 삶과 생을 잃어버리고 희생해가면서 생을 영위해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상념에도 빠져든다. 딸아이가 자는 때에만 귀가를 하다보니 아버지와 딸간의 관계가 소원해졌던 것이다. 20여 년의 결혼생활 중 거의 절반을 주말부부로 살았다고 했었다. 그런 부분이 상당한 아쉬움으로 남는 부분인 듯했다. 손자를 본 자형은 이미 작년에 현역에 은퇴해서 편안하게 노후를 보내고 있는 처지였다. 항상 남의 떡이 커 보이고 맛있어 보이는 것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세월의 무게를 느껴보는 것도 이제는 그 젊은 시절의 무게와는 다르게 느껴지고 있다. 아이들이 장성한 상태가 되고 부모의 간섭이 더는 필요 없을 지경이 되어 버리고 나니 부부간에만 시간을 보내고 대화를 해야 할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자식들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것도 일주일에 한번 정도에 불과하다 보니 참으로 돈독한 가족애와 정을 쌓아 갈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다. 부모와 같이 놀러다니고 휴가를 가고 하던 것이 이제는 모두 과거지사가 되고 말았다. 친구들과 어울리고 전국 산천을 돌아다니고 필요하면 외국까지 배낭여행을 갈 정도가 되었으니 고리타분한 부모와 같이 여행하고 간섭받고 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이겠는가? 짝을 찾아 매진하는 사연이고 보니 부모도 뒷전이고 가족도 별반 애틋함이 덜해 지는 것 같다. 자식도 품안의 자식이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이제는 장년의 삶이 남아 있고 살아가야할 날이 살아온 날보다 훨씬 적은 상황에 처해져 있다. 앞으로 남아 있는 생이 창창한 데 두내외간에 어떻게 공통의 관심사를 갖고 살아갈 것인가를 깊이 있게 고민해 봐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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