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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다른 낯설음 저너머

색다른 낯설음 저너머

by 자한형 2023.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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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다른 낯설음 저너머

미술 사조중에 초현실주의라는 사조가 있었고 그 초현실주의라는 사조가 추구하는 내용이 다음의 표현이다. " 인간의 무의식 속에 내재된 비합리적인 감정이나 잠재의식, 환상, 공상을 새로운 표현 기법을 통해 표출함으로써 현실을 초월하려한 화피이다." 초현실주의는 1919년부터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후까지 약 20년동안 프랑스를 중심으로 해서 일어났던 전위적인 문학·예술운동으로, 다다이즘과 미래주의등 20세기에 등장한 다른 전위운동에 비해 제1, 2차 세계대전동안 가장 폭넓게 확산되었으며 논쟁적인 예술운동이었다. 초현실주의는 근본적으로 경험의 경계를 넘어서려고 애썼으며 현실을 본능적이고 잠재적인 꿈의 경험과 융합시켜서 논리적이며 실재하는 현실, 그 자체를 바라보는 시각을 확장시켜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현실에 도달하려 했다. 초현실주의가 표현한 방법이 바로 "색다른 낯설음" 이었는데, 그 들은 일상 생활에서의 낯익은 사물들을 일상적 맥락에서 떼어놓음으로서 성취가 된다. 또 한편 그들은 콜라주와 몽타주 기법 들을 이용했는데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물 들이 엉켜있는 작품에서 일상적이고 단조로운 현실세계에서 잘 찾아볼 수 없는 당혹스러운 결과를 도출해 낸다. 결국 이들이 찾고자 했던 것은 단순히 꿈을 표현해 낸다는 것이라기보다는 일상화되고 관념화되어버려서 똑같은 삶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더 넓은 인식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 것이었다. 이 운동을 예시한 미술가들은 보쉬, 아르침볼드, 피라네시, 고야, 롭스, 그리고 연대에 와서는 르동, 키리코 등으로 환상적이면서도 기이한 면에 대해 새로운 관심을 보였다. 이들과 비슷한 특징 때문에 샤갈 또한 이 운동의 선두주자로 언급된다. 미로, 아르프, 마송, 에른스트같은 화가들은 프로타주와 꿈의 현실적 재생산 사이를 넘나드는 기법을 통해 시각적인 등가물을 창조하려고 했다.

어느날 문득 지인한분이 글을 몇자 써가지고 오셨다. “상선약수 대교약졸(上善若水 大巧若拙)” 노자의 도덕경 최고의 선은 물과 같이 비운 듯 모자란 듯 되는 것. 물은 첫째 공평함을 나타내며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은 수평을 유지하기 위함, 둘째 완전함을 나타내며 아레로 흐를 때 작은 구덩이라도 완전하게 채우며 흐른다. 셋째 상황에 따라 한없이 변하면서도 본질을 잃지않음. 네모난 그릇에는 네모로 둥근 그릇에 닿으면 둥글게 변하면서 쏟으며 언제나 본래의 성질을 가지고 있음. 넷째 겸손하다. 가장 중요한 생명의 근원이지만 언제나 아래로 흐르며 낮은 곳에 있는 모든 것을 적셔준다. 일전에 한번 상선약수를 제자해 주신데 대하여 덧붙여 세세하게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게 해 주신 것이었다. 그러면 과연 대교약졸은 무엇인가. 훌륭한 기교()는 도리어 졸렬()한 듯함 아주 교묘()한 재주를 가진 사람은 그 재주를 자랑하지 아니하므로 언뜻 보기엔 서투른 것 같다는 뜻 이라고 한자사전은 설명하고 있다. 매우 공교한 솜씨는 서투른 것같이 보인다는 뜻으로, 진정으로 총명한 사람은 뽐내거나 과장하지 아니하므로 도리어 어리석은 것처럼 보인다는 말이다 라고 국어사전에서 설명되어져 있다.

그 지인은 80세 이르렀다. 어떻게 그렇게 건강하십니까? 비결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마음가짐을 가지셨길래 그러실 수 있습니까? 어떤형태로든 그렇게 물어 온다고 한다. 그러면 그분은 그렇게 말씀하신다고 한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왔다가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고 가지 못하는 것이 인생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 욕심부리고 남기려하고 아귀다툼하고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집착할 필요가 어디 있는가?

자신은 모든 것을 다 버렸다. 신체 장기 모든 부분을 기증했고 남은 몸뚱이 마저도 해부용으로까지 기증해 놓은 상태다. 그렇게 모든 것을 버리고 나니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고 건강이 복으로 오더라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두가지 얘기를 해주었다. 첫째는 일본 북해도를 처음 갔을 때의 일이라고 한다. 79년도 쯤이라고 했다. 두분이 가셨단다. 농협조합장과 갔다. 일본 동경을 거쳐서 북해도로 가는 여정이었다고 한다. 자신은 낙농을 했기 때문에 선진 낙농현황만 살펴보고 오면 되고 또한 그것을 배워오는 것이 목적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는 골똘히 궁리를 거듭해서 뭔가를 더 가져와야 하겠다고 고민했단다. 그래서 여러 가지로 수소문을 하던 끝에 물어 보게 되었다. 가장 밥맛이 좋은 쌀이 뭔가? 그러니 그쪽에서 얘기한 것이 히까리()라는 것이 들어가는 것이 밥맛이 좋은 것을 의미한다고 가르켜 주었다. 그리고 그런 밥맛이 좋은 것이 북해도에서도 생산이 되느냐? 그렇다. 그것은 북광(기타히까리(北光))이라는 것이다. 그 볍씨를 구할 수 있느냐? 있다. 줄 수 있느냐? 한되정도는 줄 수 있다. 그래서 그는 한 되의 북광 볍씨를 가져오게 되었다고 했다. 일본 공항 검색대는 무사히 통과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 공항검색대에서 문제가 되었다고 한다. 조합장 짐에 반되를 넣었고 자신이 반되를 가지고 가던 차였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조합장의 반되를 자신의 짐에 집어 넣고 검색대에서 그렇게 얘기를 했다고 한다. “지금 한창 흉년이 2년째나 들어 모든 국민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니 이 볍씨로 우리 국민을 살리려고 가져온 것이다. 정식적으로 하면 식물 검역소를 통과해야하고 절차가 까다로우니 이번 한번 만 선처를 해달라.” 그러자 그 직원은 그런 상황설명을 듣고 충분히 이해하고 통관을 시켜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그것을 자신이 살았던 지역인 안양, 의왕지역에 반되를 주었다. 그 나머지 반은 여주의 P모씨에게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 여주의 사람들은 모두가 알고 있기를 P씨가 그 종자를 가져온 것으로 알고 있을 지경이라고 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이다. 그것이 증산에 도움이 상당히 되었다고 하니 참으로 보람된 일을 한 것이었다. 요즘의 대한민국 최고 쌀로 인정되고 있는 쌀이 어떤 것이냐 하면 해남 옥천의 한눈에 반한 쌀이라는 브랜드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 쌀의 종자가 일본의 이번 쓰나미로 휩쓸고 간 지역에서 가져온 볍씨로 재배한 쌀이라는 것이다. 쓰나미가 일주일만 늦게 와서도 갖고오지 못할 뻔한 일이 벌어졌으리라고 한다.

다음으로 들려준 두 번째 얘기다. 73년도에 미국을 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 때의 일정으로는 5명이 일행으로 갔고 일정은 한달가량의 여정이었다고 한다. 아무런 이유없이 한국농업의 중추적 역할을 맡고 있는 농업인 5명을 그렇게 초청해서 미국의 농업현황을 시찰시켜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아무런 부담없이 미국의 농업 현황을 살펴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 때 그분은 그렇게 했다고 한다. 결코 한국 농업에 대해서 일언반구도 하지마라. 그리고 카메라를 다 나에게 다오 내가 다 찍을 것이다. 그분이 갖고 있었던 것은 그들이 아무 이유없이 그렇게 한국 농업 지도자들을 모셔놓고 그들의 농업현황을 시찰시킨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곧 미국이 장차 한국에 농산물을 수출하고 시장개척을 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농업현황에 대한 정보를 파악해야 했고 그들의 환심을 사서 우호세력을 넓혀놓을 필요가 있었을 것으로 판단했던 것이다. 그렇게 시찰을 시켜 놓고 결국에는 그들은 그 필름을 다 환수해서 하나도 유출되지 않도록 했을 것이다라는 것이 그분의 머릿속에 있었다. 그래서 그분은 그때 당시 LA에 있던 동생들에게 가서 그 다섯 카메라에 담겨진 사진을 현상해서 그것을 들고 고국으로 하루 늦게서야 돌아왔다는 것이다. 참으로 대단한 혜안을 가진 것으로 밖에 이해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그랬다. 예전에 미서전쟁이 있었다. 그때 일본은 그 미서전쟁을 목도할 수 있었다. 일본의 유신정부는 선진문물을 여러모로 받아 들이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을 했다. 첫째가 미국으로의 파견이었다. 한참 촉망받던 해군 중위 사네유끼는 일본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과 영국등에서 참사관으로 근무를 하게 된다. 그러던 와중에 미스전쟁이 터진다. 그곳에서 그는 파나마 운하 부근에서의 해전을 직접경험하게 되고 그 전쟁의 키가 되는 작전 폐색작전을 두눈으로 생생하게 바라보게 된다. 그것이 제대로 된 역사적 사실인지 아니면 허구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렇게 그런 상황을 경험하게된 것은 이후 있을 러일전쟁에서의 해전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된다. 여순 요새에서 러시안 해군은 육지로 둘러쌓여진 여순만에서 한발짝도 옴짝달싹을 하지 않은채로 전쟁을 수행하려 했다. 이런 속에서 돌파구를 마련 했던 것이 작전참모였던 사네유끼가 폐색작전을 떠올리게 된다. 그래서 그는 여순만 입구에 배를 침몰시켜 더 이상 러시아의 배들이 바다로 나오지 못하게 만드는 작전을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엄청난 희생을 감수하고 그 유능해던 친구장교까지 잃으면서 감행했던 것이 폐색작전이었다. 조그만 변방의 나라가 세계의 유수 선진국과 어깨를 겨루어 당당히 나설 수 있었던 것에는 정말 뼈를 깍는 각고의 노력과 피나는 희생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한 부분이었다. 결코 그들의 노력을 폄하하고자 하거나 그것에 경도되는 부분은 결코아니며 그것에 빠져버리고자 하는 부분도 아니다. 분명한 것은 그들을 뛰어넘고 그 이상의 무엇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정말 제대로 된 의식과 노력과 기타 우리의 국격을 높일만한 근성을 끊임없이 발휘해야 하는 것이다. 금년에 올림픽이 있었다. 우리는 축구에서 그들을 넘어섰다. 그러나 과연 우리가 세계에서 일본을 능가하는 것으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과 열정을 쏟는 저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지인분이 선진국이었던 미국과 일본을 다녀오면서 그것도 최초로 다녀오면서 그 모든 것들을 담아왔고 간직해 오면서 희망했던 바는 우리도 그렇게 남들에게 가르쳐주는 모범적인 국가를 만들고가 했던 염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부분이리라 여겨진다. 혹자는 그렇게 얘기한다. 일본이 67년대 올림픽을 치렀고 우리가 80년대 치렀으며 북경이 2000년대에 치렀다고 한다. 20여년씩의 차이가 나고 있다. 우리가 코흘리개 시절에 그렇게 부러워 했던 나라가 미국이고 일본이었다. 지금 일본은 나락으로 치닫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도 심상치 않다. 그럼에도 우리는 욱일승천하고 있고 제대로 선진대국에 진입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변화무쌍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그 어떠한 부분도 극복해낼 수 있고 이겨갈 수 있을 만한 대응능력을 갖고 있다고는 하지만 자신할 수 없는 부분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 호언장담했던 조선산업도 이제는 수주가 끊어질 정도가 되었다고 하니 안타까운 노릇이다. 향후 경제성장율이 3%에서 왔다갔다할 지경에 이르르고 있다. 과연 우리는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는가. 색다른 낯설음 저너머처럼 그렇게 불투명하고 암울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지만 주어진 여건과 상황하에서 전력을 다해 매진한다면 좋은 결과를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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